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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9 문화재가 된 태 극 기

3,978 2016.09.0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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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태극기하면 태극기를 게양하는 국경일이나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때 전 세계를 뒤덮은 태극기의 물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태극기가 문화재로 등록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태극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조미수호통상조약설과 박영효설이 있다. 첫 번째는 1882년 5월에 강화도에서 있었던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태극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이나 사실적 자료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강화도 조약을 맺고 난 몇 달 후인 9월에 임오군란의 사후 수습차 일본 방문시 특명 전권대신 겸수신사로 임명되었던 박영효가 고종 임금의 어명을 받고 만들어 사용했다는 설로서, 국기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1882년 10월 2일자 동경발행 『시사신보(時事新報)』의 기사 내용이나 박영효가 쓴 『사화기략(使和記略)』이라는 일기가 남아있어 현재로서는 문헌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국기를 사용한 시대순에 대한 역사적 통계자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다만 제네바에서 부상병 구호를 위해 조직된 국제적십자위

원회가 1863년부터 1913년까지 이 기구에 가입한 국가들을 기념하기 위해 ‘적십자가입 국기나무’ 포스터를 만든 바 있었는데, 거기에 어림잡아 서른다섯 번째 순서에 태극기가 걸린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국기 역사는 결코 타국에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기를 맨 처음 만들어 사용할 때는 나라 명칭을 붙여‘조선국기’로 부르다가 그 후 도안의 형태에 따라‘태극기’로 부르게 되었고, 2007년에는 대한민국 국기법을 제정하면서 아예 국기 명칭을‘태극기’로 명문화시켰다. 1882년에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고 그 후 이듬해인 1883년 3월에 정식으로 국기선포를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1910년 조선왕조가 일본에 의해 강제 침탈당하면서 국기인 태극기도 수난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태극기는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나라와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각인되어 항일독립운동을 하는데 무혈의 무기가 되었다.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서 싸웠던 태극기의 힘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기회와 함께 중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태극기를 대한민국의 국기로 채택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태극기는 무기 대신 항일독립운동의 횃불이 되었으나, 일본에게는 눈엣가시이자 최우선적으로 처단해야 할 대상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의미 때문에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새로운 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하였을때도 많은 법과 제도가 새로 만들어졌지만 국기만큼은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3.1 독립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현재에 이른 것이다.

 

 태극기가 처음 만들어진 역사나 그 후 일제강점기를 목숨으로 극복하고 승리한 자주정신의 고귀한 넋이 담긴 태극기가 2008년부터 문화재로 등록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18점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가 된 태극기의 유형을 크게 보면 태동기의 태극기, 일제강점기의 태극기, 6.25 전쟁사의 태극기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현존하는 태극기 중에 가장 오래된 데니(O.N.Denny) 태극기와 구한말 교육의 터를 일군 명신여학교 태극기와 동덕여자의숙 태극기를 보면 태동 당시의 제작 형태와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끝자락을 잡고 맞싸웠던 고광순 의병대장의 불원복 태극기, 3.1 만세운동 당시 다량의 태극기를 찍어내기위해 만든 태극기 목판, 독립만세의 횃불이 된 남상락 자수태극기, 임시대한민국정부에서 긴박한 독립자금을 호소했던 김구 서명문 태극기, 영국인으로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던 배설(裵說, Bethell,E.T.) 유품 태극기,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의 정원의 태극기, 승려신분으로 독립자금을 모금하다가 순국한 초월 스님의 진관사 소장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의 일제강점기 태극기에는 민족의 단결과 독립자주정신이 유전처럼 각인되기도 한다.

광복을 맞이하고서도 정치적 분열로 남과 북으로 갈라선 지 불과 4년여 만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일컫는 6.25전쟁이 터졌다. 이때 대학생들은 학도병을 지원하여 전쟁터에 나섰는데 건국대학교법학도 서명문 태극기와 경주학도병 서명문 태극기에서는 비장한 승리의 각오를 눈물겹게 헤아릴 수 있다. 그런가하면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와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미해병대원 버스비어 태극기에서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국기를 앞세워 불굴의 군인정신과 전쟁 없는 평화의 세상을 갈망하는 인류의 바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태극기는 여느 국기와 달리 역사적 시련과 애환을 담고 있어

서 문화재 가치는 물론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물로 영원히 사랑받아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장롱 속에서 무심코 간직되고 있는 태극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역사와 함께하는 문화재로서 큰 빛을 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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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명호 (태극기전문가. 중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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