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3월 3월의 행복에세이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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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김치
서 미 숙 / 수필가, 시인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아온 탓인지 가끔은 한국에서 먹던 김장독에서 갓 꺼낸 차가운 겨울의 김장김치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에는 한 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번갈아 생활하다보니 김장철이 되면 친정언니는 의례히 내 몫의 김장김 치까지 담아놓는다. 특히 올해의 겨울은 다른 어 느 해 보다 김장김치로 인해 풍성한 겨울을 보내 고 있다. 동창인 세 명의 단짝친구들이 저마다 각 자의 맛을 자랑하는 김장김치를 가져다주었기 때 문이다. 일산에 사는 40년 지기 친구의 보쌈김치 는 짠맛도 전혀 없고 각종 견과류와 과일로 김치 속이 꽉 차 있어 먹을 때마다 보양식 김치를 먹는 느낌이다. 친구의 진한 우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 는 것만 같다. 또 한 친구는 아예 김치냉장고 안 에 들어가는 김치 통째로 제대로 숙성이 되어 한 창 맛이든 김치를 가득 담아 가져왔다. 한국에 있 을 때는 김치 걱정 말고 김치찌개며 김치전도 실 컷 부쳐 먹으라는 속 깊은 친구의 마음이 잘 익은 김치 맛처럼 정겹기 그지없다.
이처럼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음식인 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 살아도 한국인인 우리에게 진한 고 향의 맛과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어떤 반찬 이 많아도 김치가 없으면 허전해서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 역시 김치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임을 뼈 속까지 숨길수가 없는가보다. 김치는 한국 사 람들이 사시사철 즐겨먹는 발효식품이기에 종류 도 많고 맛도 다양하다. 한국과 계절이 다른 인니 에 살고 있어도 질병예방에 도움이 되고 건강지킴 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저칼로리 음식이면서 갖 은 양념이 들어가기에 비타민 및 영양소도 풍부한 것은 물론이다.
김치의 종류로는 보통김치와 김장김치로 나뉘며 보통김치는 오래 저장하지 않고 비교적 손쉽게 담 아먹는 것으로 배추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굴을 넣은 깍두기, 겉 절이 등이 있다. 김장김치로는 겨울동안의 채소공 급원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오랫동안 저장해 두고 먹는 김치를 일컫는다.
김장김치의 종류로는 통배추김치, 보쌈김치, 동치 미, 고들빼기김치, 섞박지 등 다양하다. 김장을 담 그는 일은 한국인만의 오랜 풍습이기에 지방마다 풍습, 기호, 계절의 차이에 따라 김치의 재료와 양 념, 담그는 방법과 시기등도 달라 여러가지 맛을 자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새삼 김치 이야기를 하자니 벌써 20여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지만 90년도 초반, 나는 처음으로 싱 가포르에서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 럼 김치가 세계적인 먹을거리로 글로벌화 되진 않 았기에 싱가포르 한국슈퍼에서 작게 포장된 일본 식 김치만을 팔고 있었다. 맛도 느끼하고 그것으 론 김치를 먹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질 않아서 나 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 식 배추가 슈퍼에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 다. 가까스로 로칼 시장에서 배추와 비슷한 양배 추를 발견하곤 그것을 사서 소금에 간간히 절여 놓았다. 그때는 갓 새댁이었고 김치도 친정엄마가 담그시는 걸 어깨너머로 본 것이 전부였다. 오직 한국식 김치를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억을 더듬 어 열심히 양배추 김치를 담가 보았다.
더운 나라 탓인지 양배추가 금방 숙성이 되어 그 런대로 배추김치 못지않은 맛을 내주었다. 해외에 서 처음으로 내가 담가본 김치를 가족들이 맛있 게 먹어주니 그렇게 마음이 흐뭇할 수가 없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의 삭막했던 삶을 즐겁 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김치로 인한 인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주재원 가족인 훈이 엄마의 잊지 못할 김치 맛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 생활의 특성상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 빈번하게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삶이란 늘 그런 것이라 여 기면서도 새로 이사 온 사람보다는 떠나보냈던 친 한 이웃을 못 잊어 맘이 뒤숭숭하던 어느 날 이었 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대문 앞에는 고향집의 친정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한 여인이 서있었다.
“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훈이 엄마예요, 인사도 드릴 겸 가져온 것이니 한번 드셔 보세요.” 그녀 가 가져온 것은 김치 한포기가 맛깔스럽게 담긴커다란 접시였다. 참기름 한 방울, 김치 한보시기 도 한국음식이 귀할 때라 그녀가 가져온 고춧가루 로 벌겋게 버무린 전라도식 김치쟁반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입맛을 현혹시킨 그 남도김치의 매력은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이웃을 만났다는 행복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김치로 인해 해외에서 돈독하게 다져진 그 녀와의 우정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이 다. 두 번째 해외생활인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식 배추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배추김치를 비 롯해 다양한 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기에 한인들의 먹을거리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김치 이야기를 하자면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 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비행기로 자주 왕래하다보니 주로 국적항공사 비행기를 애용하 는 편인데 기내식에 우리의 김치가 빠져있다. 비행 기에서는 장시간 앉아만 있기에 개운한 김치기 먹 고 싶을 때가 많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글로 벌 먹을거리인 한류로 떠오르는 우리의 한국식 김 치가 국적항공사 기내식에는 왜 제공되지 않는 것 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김치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 음식인 고추장은 튜브 형으로 제공되는 반면 김치 는 주 메뉴에 빠져있는 것 같다. 아마도 동남아 국 가의 두리안처럼 김치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외국인들에게 김치가 너무 짜거 나 맵다는 인식이 있다면 우리의 김치 맛은 살리고 냄새를 최소화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염분농도를 측정해서 짜지 않는 김치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한류바람이 불면서 한식이 각광받고 특히 김치가 세계화 되고 있다는 것은 김치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에서 재외국민으로 살아온 긴 세월동안 지치 고 힘들 때마다 맛있게 숙성되어 식탁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김치를 볼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 성을 확인시켜주고 내안에 있는 나의 의미를 깨닫 게 해준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우리의 자 존심인 김치가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또 다시 새 롭게 그려지고 우리의 것을 소중히 지키며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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