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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행복에세이 <서미숙>

7,696 2012.05.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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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 서 미 숙 / 수필가
쉬 임 없이 흐르는 시간들, 그 세월 속에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를 먹고 삶 이라는

이름으로 인생을 장식한다. 누구나 값진 인생, 보람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

력을 한다. 그러나 노래의 가사처럼, 인생은 쓰다가 마는 편지, 그리다 마는 그림, 새기다 마는 조

각처럼 완전한 인생은 없다. 지극히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

각이 든다.

한편의 소설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인생을 장식하며 가치 있는 삶으로 흔적을 남기고픈 소리 없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새롭게 마음자리를다져 나가고 있나 보다. 음악의 세계에서 감상하

는 한편의 교향악처럼 강렬함과 부드러움, 고뇌와환희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서 진정으로 평

안을 누릴 수 있는 삶 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각기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유능한 지휘자

인 셈이다.

달리던 승용차가 도로 한가운데서 멈추는가 했는데 갑자기‘끼 이익’파열음을 내며 갓길로 급정

거를 한다. 기사는 바짝 성난 얼굴이다. 무분별 하게 끼어 들었다 질주해 가는 트럭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불시에 일어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와동시에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큰길 사이로 땅속에

박혀있던 큰 돌멩이가 어느 사이 파헤쳐져 운명의포크레인에 실려 가고 있다.

나는 앞으로 쏠렸던 몸을 겨우 수습하고 놀랐던가슴을 다스리느라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가로수

길에서 여전히 푸르름을 뽐내는 적도의 열대 잎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쨍

하고 다가오는 순간 아픈 상처에 자외선을 쏘이듯가슴이 쓰려온다.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

며 목말라 보이는 열대나무들을 바라보다 왜 갑자기‘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른 것일까……

삶과 죽음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있는 흡사 느티나무 같아 보인다. 죽음은 비록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맞이 할 수 밖에 없고미리 앞당겨 생각 하지 않아도 어차피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느 날, 그저 평범한 외출이 이세상의 마지막 날이 된다면…… 만약에 그렇게 된다

면 내게 가장 마음 아프게 걸리는 것은 무엇일까?물론 남겨진 나의 가족들이 되겠지만 내 머릿속

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뜻밖에도 내가 없는 쓸쓸한 나의 집이었고 주인 잃은 나의 소지품

들이었다.

갑자기 나오느라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놓은보다만 책들과 수많은 자료들, 손에 잡힐만한 크

기의 메모노트와 여기 저기 깨알같이 적어서 꽂아둔 메모 쪽지들, 그런데 왜, 그 순간 나의 메모노트

가 제일 먼저 떠올랐을까…… 언제부터인가 그때그때 잊어버리기 쉬운 기억들을 기록해 두는 습관

이 생겼다. 가깝게 다가오는 약속, 누군가 내게 들려준 유머나 멋진 단어들, 책 속에서 읽은 아름다

운 명언들, 심지어는 가족들과 나눈 정겨웠던 대화의 한 대목까지……

그것은 불혹의 나이를 살고 있는 어느 날, 초대도안 했건만, 불쑥‘노안’이라는 손님이 찾아오더

니 반짝이던 기억력 또한 감퇴되면서 난감했던 적이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내가 떠난 자리에 그깟 메모기록들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아마도 그것은 지금도 가슴 한 켠에 아

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한 친구가 남기고 간 쓸쓸한‘삶의 흔적’때문 인지도 모른다. 외등처럼 은

은한 빛으로 살다간 그 친구를 떠나 보낸지도 어느덧 10여 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녀

가 떠나기 전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머, 얘는 그렇게 무리하게 몸을 혹사 하는 건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응, 괜찮아, 견딜 만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기쁘고, 또 어떤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어서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한데 뭘...

평소에 혈압이 높아서 친구는 주기적으로 약을 먹었는데, 학생들 논술지도를 무리하게 하던 그녀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쓰러졌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교통사고로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친구는 친척의 연고와 동창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낯선 타국인 인도네시아에 와서 아이들을 호주로 유학까지 보내고 어렵게 그 뒷

바라지를 하며 힘들고 버겁게 살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정겨웠고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던, 따뜻하고 온화한 성

품이었던 나의 친구…… 그녀의 온기가 채 가시지도 않던 그녀의 방에서 소지품들을 정리하며 문득

내 손에 만져진 그녀의 기록들…… 그녀의 손때가묻어 있는 메모지들은…… 자신의 삶, 주어진 순간

, 어느 한 부분에 까지 지극히 성실했고 마음을다했던 그녀의 삶에 비추어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했고, 그렇게 그녀를 떠나 보낸 아쉬움과 슬픔은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유학간 아이들에게 보낼 물건 목록들, 며칠 후에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해먹을 반찬 명세표, 하루

하루 흘러가는 순간을 담아놓은 듯한 기쁨과 아름다움, 반성과 깨달음, 슬픔과 괴로움까지 희망

을 향한 뒷모습을 보는 듯, 쓸쓸하지만 평정함이배어나는 솔직한 느낌을 적어 놓은 짤막한 글들은

슬리퍼를 신고 잠깐 외출 나간, 죽음 따위완 아예거리가 먼 사람처럼…… 그녀를 생각하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녀가 남겼던 흔적들이 아프게 떠오르곤 한다.

나는 그 일 이후로 외출할 때나 혹은 비행기를 타고 긴 여행을 할 때면 책상 위의 메모지들을 깨끗

이 정리하고 평소에 입던 옷도 가지런히 옷장에 걸어 두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우연히 남겨질 나만의 흔적을상상해 보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고독과 사색

으로 늘 고뇌했던,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나의 흔적으로 오래 남겨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 해 보니 때때로 일몰 같은 슬픔이 밀려 온다.

살아 있는 동안 적어도 내가 가까이 했던 사람들에게 내 삶을 후회 없이 사랑했고, 편안하고 다정함

을 느끼게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 친구의 죽음이 있은 이후 한동안 심한 자괴감에 빠져서 그 동안 내가 살아왔던 무의미하게 느

껴진 삶에 대한 회의와 번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의 뇌리 속엔 그 친구에게 좀더 잘 해주지 못한일들, 그녀의 메모지에 남겼던 외로움 앞에 친구

로서 좀더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음이 자꾸 후회와 자책으로 떠올라서 한동안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슬픔과 미련의 시간들이지나간 뒤에야 새롭게 정화된 눈으로 마음의 거울

을 들여다 본다.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상처를 감싸 안은 진주 조개처럼 지난 아픔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는다.

어디에나, 또는 누구에게나 흔적을 남기고 떠날수 밖에 없는 짧은 인생이기에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며 최선을 다해 한번쯤은 값지고 보람 있게살아 볼만한 것임을……

환한 대낮인데도 먹빛 같은 어둠을 동반한 폭우가쏟아졌다. 그러다 서서히 빗줄기가 가늘어 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다시 반짝 해가 솟아난다.

친구의 해맑은 표정처럼 정겹게 다가오는 푸른 하늘은 황홀한 빛을 받아 청아한 호수처럼 넘실거린

. 비가 개인 뒤 맑게 개인 하늘의 산뜻함은 처연한 내 기억 속 무게에 포근한 위안이 되어 준다.

요하면서도 신비롭게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 안에

퍼지는 한낮 기후의 변화는 짧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간 친구의 삶처럼 내 안에 무지개로 다가

와 쓰라린 가슴에 희망을 불어 넣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 할 수 가 없기에 순간을 살면서 움켜지는 욕심들이 속절없이 느껴질 때도 있

. 하지만 막상 살고 있는 현실과 마주치면 부질없는 욕심이 앞서고 타산적인 개념에 빠져 들기도

한다. 힘들게 쌓아 놓은 명예와 부귀영화인들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죽음 앞에선 다 의미 없는

흔적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아름다운 흔적을남겼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하

게 될 죽음이기에 내가 떠나고 없을 흔적만이 남을 이 삶의 자리를 한번쯤은 돌아 볼 일이다.

한 친구가 남기고 간 슬픈 흔적에 대한 기억은 살아가는데 나를 성찰해 주는 좋은 거울이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해답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붙잡아 주고 앞으로 지고 가야 할 마음의 무게

를 덜어 준다. 가슴 따뜻해지는 나날을 만들어가고 진정으로 보람된 삶의 나이테를 엮을 수 있도

록 용기를 준다.

지나가는 바람에게 자리를 내주듯 나는 창가에 앉아 댓잎이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웅성이는

잎새의 환성은 환상적이다. 창밖의 세상은 푸르름으로 익어만 가고, 세월이 풀어 놓는 말없는 이치

는 내면에 잠재해 있던 슬픔의 잠을 깨운다.

괴테가 읊은‘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새롭게 의미해 보면서…… 오

늘도, 그리고 내일도 또 다시 태양이 비추는 곳으로 소중히 내 삶을 끌어 안고 나만의 세계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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