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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행복에세이 <서미숙>

8,543 2013.11.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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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 단풍잎의 추억
56.jpg

연 재<행복 에세이>

서 미 숙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감사)

gaeunsuh@hanmail.net


국의 가을, 만추의 서정에서 잊고 있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을 건졌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책들을 펼쳐 보다가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가을을 남기고 간 추억한 조각을 말이다. 책갈피 속에 곱게 끼워져 있는빛바랜 단풍잎 두 어장이 숨 막히다 는 듯 페이지 사이에 가지런히 끼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형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은 채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 달라는 모습으로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서른 해가 더지난 지금까지 두 장의 잎이 헤어지기 싫은 듯 미라가 된 팔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해져왔다.

 

단풍잎을 가만히 코끝에 대보니 얇은 잎 새는 비좁은 책갈피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갇혀 지내다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알싸한 세월의 향기에 가슴이 시려온다. 가을은단풍이 있기에 더욱 화려한 계절이었지, 금수강산 이라는 말의 어원도 단풍든 아름다운 산야를두고 이르는 말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어서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교정의 나뭇잎이 온통 붉게 물들던 여고 2학년 가을 이었다.

잎사귀마다 색깔이 서로 다른 단풍잎을 수집하는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세상의 붉은 색이란 붉은 색은 죄다 모아도 한그루의 단풍나무를 꾸미기 어려울 거라며 단짝이었던 친구와 책갈피를 모두 단풍잎으로 채웠다. 우리는 서로 손가락을 걸며 두장의 단풍잎을 나란히 책갈피 속에 끼우며 변치말 자고 우정을 약속했었다.

 

솔 베이지송(Solveigs Song)을 잘 불렀던 그녀는 하이네시집도 항상 손에 들고 다녔다.‘그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늘 고대 하노라 늘 고대 하노라.’아마도 이런 내용의 가사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서정적인 이야기 속에 흐르는 모험과 슬픔과 사랑이 담겨져 있는 솔베이지송의 구슬픈 음악이 내 귓전을 울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때의 책이 지금까지 내게 남아 있다는 사실도벅찬 감동인데 우리가 모은 단풍잎까지 그대로 끼워져 있다니, 빛바랜 단풍잎사귀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보물 하나를 찾은 듯 반갑기 그 지없다. 마른 단풍잎에서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왔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길 좋아했던 나의 친구는 희귀한 병을앓고 있었다. 얼굴은 하얀 달빛을 닮은 듯 늘 창백해 보였다.

 

분홍색 조각달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어야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던 그녀의 소원은 무엇이 었을까. 그해 겨울, 첫눈이 오기 전 먼 시골로 요양을 간다고 단풍잎이 끼워진 시집을 내게 선물하며 학교를 떠났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살아 있기나 한 것일까? 그녀도 지금쯤은그때의 우리만한 딸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끔은 나를 생각해 줄까? 딸에게 봉숭아물을 들여 주며 여고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는 곱상한 여인으로 어디에서든 잘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만추의 서정을 간직한 가을 풍경은 빛바랜 단풍잎으로 하여금 우리를 향해 손짓하게 한다. 가을은 빛 깔을 통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두고 혹자는 떠날 때를 알고돌아서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떨어지는 단풍잎은 그 잎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기 때문 일거다.

어떤 시의 구절에 보면 단풍으로 불이 붙을 것 같은 금강산엘 가면 온몸에 화상을 입는다고 표현했다. 붉은 단풍으로 눈이 부시다 못해 온몸을 데일것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멋스러운 과장법인가.

캐나다의 한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곳에서는 벽난로용 연료로 단풍나무 장작을 최고로 친단다. 화력이 좋고 연기가 나지 않으며 그을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 파르스름한 불꽃의 색깔이 아름답고 타고 남은 재의 흰색이 곱다고 했다. 더구나장작을 태우면 향기가 좋아 귀한 손님이 올 때면반드시 단풍나무 장작으로 불을 붙인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는 또 하나의 단풍이 있다. 대학시절존경하는 교수님께서 파리에서 가져왔다고 기념으로 주신 마로니에 잎 한 장이 그것이다. 몽마르뜨 거리에서 주워온 노란 마로니에 단풍. 그 마로니에 잎을 유리액자에 넣어 내방 벽에 걸어두고는집에 찾아온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었다. 예술의도시 파리를 동경했던, 또 유럽의 문화에 호기심이 많았던 대학시절이었기에 그 나뭇잎 한 장에단풍잎이 흩어져 날리는 파리의 정취가 남아 있기라도 한 듯 소중하게 여겼다.

단풍나무를 한자로 나무 목()변에 바람 풍()자를 더해 단풍 풍()으로 쓴다.

단풍나무의 열매가 프로펠러처럼 생겨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풍()자와 목()자를 합쳐 단풍 풍()자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나뭇잎은 찬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붉게 물들기 때문에 단풍(丹楓)이라 했을까.
그 시절, 내가 그렇게 아꼈던 단풍잎은 다 어떻게했는지 모르겠다.

단풍잎을 통해 내게 이별의 아픔을 알려주었던 여고시절 나의 친구는 우리의 책갈피 속 단풍잎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마로니에 단풍으로 대학시절 문학의 깊이를 가르쳐준 그때의 교수님도, 단풍잎을 함께 모으던 그때의 친구도 지금은 그저책갈피속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모두가 가을 낙 엽처럼 다 떠나고 내 곁에 없다.
이렇듯 가을이면 내 눈을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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