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좌충우돌 인도네시아 표류기<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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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도네시아 표류기(5)”
이 준 규 (외환은행)
해외로 이민 가는 사람들과 주재원으로 발령받아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해외로 나오게 된 사연을 물어보면 아이의 교육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공부를 제대로 시켜서 한평생 살면서 느꼈던 영어로 인한 고통을 아이에게는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것과 대
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고, 내 아이가 인내해야 하는 환경이너무 열악하고 가슴 아팠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아이를 하나 아니면 둘만 낳다보니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되고, 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한없는 약자가 되어 요즘말
로 갑을병정의 정으로 시달리다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해외로 나가자’이런 스토리가 많을 것입니다.
저희 집도 사실 비슷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다고 하고, 무슨 다큐멘터리에는 위인을만든 선생님 이야기가 많
지만, 왜 우리주변의 선생님 중에는 그런 분이 드문 걸 까요… 아이가 1학년 때 학교숙제를 다해 가면 항상 노트에 개구
리모양의 도장을 받아와서 그게 잘했다는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5월의 스승의 날에 주
변에서 1학년 때는 그래도 한번은 학교를 가야 한다고 해서 큰맘 먹고 선물세트를 사들고 인사를 다녀왔더니 다음날부
터 아이의 노트에 별모양도장과 ‘참잘했어요’ 도장이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장이 있었다니… 이 사건
을 시작으로 우리부부를 실망시킨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해외주재원을 준비하게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교육에 치이고, 아이가 자꾸 움츠러들고, 평일에는 햇빛도 보지 못하는 현실이 싫어서 온 이곳에서도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한국과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이를 성공시키는 세 가지가 엄마의 노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세상의 말 때문에 어느 정도는 못본척 넘어가고는 있지만, 가슴 한켠에아이에 대
한 막연한 미안함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책가방을 던져놓고 골목으로 나가는 게일상이었습니다. 제
가 살던 미아3동은 마을 중심에 신일고등학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학교 뒷문 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면
금방 뒷산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아들만 셋이었던 우리 형제가 등장하면, 무슨 놀이든 정원이 안되어서 못하는 경우
는 없었습니다. 덕분에 한번 씩 우리 삼형제가 아이들을 꾀어서 숙제도 못하게 한다는 동네 분들의 원성이 들리는 날에
는 부모님께엄하게 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신일고등학교 뒷산은 어린 우리들에게는 학교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었습니다.
방아깨비며 여치나 사마귀를 잡아서 싸움을 시키고, 콩알탄이나 폭음탄 같은 화약을 마음껏 터뜨리고 놀다가, 마무리는
깡통에 구멍을뚫고 노끈을 연결해서 쥐불놀이를 하였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멀리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 산등성이에서 하는 쥐불놀이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위험하게 놀았는데도 산불이 한번도 나지 않았던 것이 더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의 정서와 감성이 바로 그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이는 오늘도 수학숙제를 끝내고 무슨 인강(인터넷강의)인가를 듣는다고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제가 배드민턴이나 치
러가자고 살살 꾀면,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다가, ‘내일 학교숙제반도 안했으면서 가기는 어딜 가냐’는 엄마의 말한
마디에 둘 다 조용히 물러납니다. 그나마, 이곳이 서울보다 나은 점은 학교에서 풋살이며, 수영등등 운동을 많이 시킨다
는 것입니다. 길게 보면결국 운동을 시키고, 좋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인줄 알지만, 아이는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운동할 시간도 없는 상황이다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이곳의 선생님들은 아이들 한명한명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오늘 수업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학생들을 남겨놓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해주거나, 숙제를 시킨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입니다.
제 경험에서 보면, 이렇게 열정이 있는 선생님들은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제 학창시절에는 지루한 지리시간을 일주일
중에서 가장 기다리게 만들었던 선생님과 수학공식을 만든 그리스학자들을 모조리 형님이라고 부르셨던 선생님이 계셨
습니다. 대입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잘 정리해 주시고는 남는 시간에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우리에게인생관과 세계관
을 불어 넣어 주셨던 지리시간과 ‘삐따고라스 형님과 어제밤에 직각삼각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로 시작했던 수학시간
이 제 가슴속의 명강의로 남아있습니다.
아이에게 저는 틈만 나면, 휴식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는 너무 많은 공부 양으로 쉴 틈이 없기 때
문입니다. 왠지 불안해 보입니다. 쉬지 않는 기관차는 엔진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으며, 휴식시간이 없다는 것은 제대
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말이니까요… 모쪼록 녀석이 한시 간을 공부하더라고 목적을 가지고 집중해서 하길바랄 뿐입니
다.
아이는 정말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특히나, 날씨가 좋은 이곳에서는 훨씬 더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엄마키를 넘어서 아빠와 키가 비슷해졌고, 발은 아빠의 발보다도 더 커버렸습니다. 언젠가 몸집이 자라는 것 이
상으로 생각도 자라서, 녀석과 한번 진지하게 인생이야기 해볼 날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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