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신성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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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기간 부디 씨의 하루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자바 출신이며 이슬람 신도인‘부디’는 가 상의 인물입니다. 자카르타에서 무역회사 를 다니는 평범한 40대 직장인 부디를 통해 신성 한 달인 라마단 기간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하루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기상~ 기상~ 기상~ 기상~ 기상~ 3시가 됐습 니다(Bangun~ bangun~ Bangun~ bangun~ Bangun~ pukul tiga)”지난 7월 2일 이른 새벽 어둠을 가르는 이슬람사원의 스피커에서 들려오 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전날 저녁,“오늘 부까 버르사마는 한식당에서 하 자구.”한국인 회사와 거래해 한국 음식을 즐겨먹 는 밤방 팀장이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재 촉했다. 부까 버르사마(Buka bersama)는 라마단 기간에 한나절 금식한 후 가족이나 직장동료들과 함께하는 만찬이다. 줄여서 북버르(bukber)라고 도 한다. 부디는 라마단이면 밤방 팀장이 연례행사 처럼 주최하는 회식에 참석했다. 부디는 오랜만에 시내 한식당에서 갈비찜과 잡채, 냉면을 배불리 먹 었다. 이어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열기를 더해가는 월드 컵에 대해 밤10시까지 갑논을박을 벌였다.
인근 사원의 낡은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째지는 듯한 기상 외침에 부디는 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여보, 일어나서 사후르 드시고 새벽기도 하셔야죠”아내 디안이 채근했다. 부디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사 후르(Sahur)는 라마단에 먹는 이른 새벽식사다. 디안은 세상이 모두 잠든 2시에 일어나 사후르를 차려놓았다. 아내는 동틀 무렵부터 해질 때까지 14시간 동안의 금식을 고려해 영양가가 있으면서 도 위에 부담이 덜한 음식을 차렸다. 흰 쌀밥에 닭 튀김 한쪽, 찐 계란 반쪽과 두부, 뻼뻬 그리고 오이 와 토마토 등 채소와 나물 등을 큰 접시에 담았다.
부디와 아내,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과 딸이 사후르를 먹는 동안 사원에서는“방운~ 방 운~ 방운~”소리가 이어진다. 큰 아들 조꼬와 작 은 딸 에니는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3 주 동안 학년말 방학이다. 부디는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쉰 후 코란을 봉독(Tadarus)하고, 신문 1면 에 게재된 금식력(Imsakiya)을 확인했다. 7월 2 일 화요일, 금식이 시작되는 시간인 임삭(imsak) 이 4시32분, 새벽기도(Sholat Subuh)는4시42 분. 여기저기 사원의 스피커에서 기도하라고 외치 는 아잔(Azan) 소리가 더욱 커졌다. 오토바이의 굉음, 폭죽소리, 동네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들이 어우러지면서 하루가 시작됐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아홉번 째 달이다. 1400여 년 전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아라비아반 도 서쪽 동굴에서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달이다. 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승달이 떠 오른 다음 날부터 단식을 시작하는 이슬람교의 전통 행 사다. 이 기간 중에는 일출에서 일몰 시까지 물을 포함해 어떤 음식도 먹어서는 안 되며 부부간의 성행위도 금지된다.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며 심 지어는 침을 삼켜서도 안 된다.
아뿔싸! 부디는 사후르를 먹고 난 뒤 새벽기도를 마치고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위해 잠깐 눈을 붙 인다는 것이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후다닥 옷 을 챙겨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사무실로 질주했다. 30분 앞당겨진 라마단 기간 출근시간보다 30 분 늦은 8시쯤 허겁지겁 사무실에 도착한 부디는“슬라맛 빠기(Selamat Pagi)”라고 기어들어가 는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나누고, 책상에 앉아 오 늘 해야 할 업무를 점검했다.
오전 업무를 정리하고 정오에 낮 기도(Sholat Dzuhur) 후, 인근 거래처에 외근을 나갔다. 오 후가 되니 무더운 날씨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 고 허기지고 심리적으로도 지쳤다. 사무실로 돌 아오는 길에 음식점 간판과 섹시한 여성이 눈에 띄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오후기도(Sholat Ashar) 시간인 3시 21분이 가까워지자 길에서 보이는 사원으로 들어갔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살면서 죄를 짓게 된 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달은 알라께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하고 다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도록 노 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또한 라마단 기간에 굶주림의 체험을 통해 가난한 사 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 기간 중 선행을 베풀 어야 한다. 이슬람 사원에서 부까 뿌아사를 하 면서 참석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딱질 (Takjil)이라고 부른다. 이는 뿌아사 기간에만 있는 중요한 행사의 하나이다. 무슬림들은 라마 단 기간 중 단식을 하며 올리는 기도는 소원이 더 잘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 평소 보다 더 열성 적으로 기도를 한다. 딱질과 자캇(zakat 희사) 또한 신성한 일이다.
Kurma dan Kolak
부디가 다니는 회사는 라마단 기간에는 평소보 다 출근 시간을 앞당기는 대신 1시간 일찍 퇴근 한다. 자카르타 퇴근길은 오늘도 어김없이 교통 지옥이어서 지친 육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 5시 52분…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사원에서 저녁기 도(Sholat Maghrib)를 알리는 아잔 소리가 들린 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급한 대로 길가 좌판에서 파 는 생수를 한 병을 3천 루피아에 사서 하루 동안 굶주린 속을 달래고 근처 사원에서 저녁기도를 했 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꼴락(Kolak)과 꾸르마(kurma)라고 부르는 야자대추를 준비해놓았다. 꼴락과 꾸르마는 당도가 높아 한나절 지쳐있는 몸 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꼴락은 통상 코코넛 버터 라고 부르는 산딴(santan)에 전통 설탕인 굴라자 와(gula jawa)를 넣고 바나나와 찐 고구마를 잘 게 썰어 넣는다. 아가르아가르(agar-agar)라는 한천같은 것도 들어간다.
“꼭꼭 씹어 먹어라”디안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 는 아이들을 타이른다. 부까 뿌아사를 위해 아내 가 성찬을 준비했다. 흰 쌀밥에 소또, 닭튀김, 생 선튀김, 감자조림, 숙주나물 무침, 양배추 요리, 과일 등. 부디는 집 앞에 있는 사원에서 7시 7분 부터 시작되는 밤기도(Sholat Isya)와 따라위 (Tarawih) 예배에 참석하고 코란을 봉독했다. 부 디는 이번 라마단에는 코란을 다 읽을 것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아내 가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다.“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요”라며 라마단에 쓸 돈과 월급과 르바란 상여금(THR)을 계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 부는 7월 25일부터 1주일 동안 이어지는 르바란 (이둘피트리) 휴가 계획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 를 나누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위한 옷과 르바 란에 때 가족이 입을 새 옷, 사원에 의무적으로 내 야 하는 희사인 자캇 그리고 고향의 친척과 친지 의 아이들에게 줄 신권 1만 루피아짜리 100장을 준비하기로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부디 와 디안은 벌써부터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달려 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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