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7월의 행복에세이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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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같은 사람
서 미 숙 / 수필가, 시인
지난해 연말, 내가 활동하는 문학단체를 통해 전국초등학교 우수일기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G초등학교 4학년 영훈이 라는 아이가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영훈이네 가 족은 아빠, 엄마, 누나, 영훈이 이렇게 네 식구인 데 아빠는 직장으로 인해 지방에 내려가 일을 하 시고 엄마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슈퍼 마켓에서 판매원으로 일을 하신다. 그렇기에 중학 생인 누나가 집안일도 거들며 바쁜 엄마를 대신 해서 영훈이의 학습과제물도 챙겨주고 함께 공부 도 도와준다.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아도 영훈이의 일기를 통해 가 족모두 성실하고 화목한 가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기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기는 주3회 쓰면서 주제를 정한 다음 거기에 대한 내용을 쓰도록 지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훈이의 일기를 살펴보던 중‘촛불회 의’라는 주제가 눈에 띄었다.
영훈이의 아빠가 한 달에 한번 주말을 맞아 지방 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집안에 있는 밝은 전등불을 모두 꺼놓은 상태에서 마루에 있는 큰 탁자위에 예쁜 색의 촛불 하나를 켜두고 온 식구가 둘러앉 아 촛불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촛불회의 시 간에 영훈이가 사회자로 진행하면서 식구들의 순 서를 정해 아빠, 엄마, 누나 순서로 그동안 가족들 에게 하고 싶었던 말, 자신의 잘못이나 반성할 점, 그리고 가족들에게 건의하고 싶은 사항 등을 주로 이야기 한다고 했다.
참 귀하고 특별한 가족회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영훈이의 일기내용에 감동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모두가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족과의 대화 가 단절되어가는 지금의 시대에 영훈이네 가족의 ‘촛불회의’는 참 위대하고 좋은 발상이라는 느 낌이 들었다.
가족과 돈독한 사랑으로 소통하며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시간을 갖는 영훈이네 가족을 상상해보며 그런 이유에서 나는 영훈이의 일기에 높은 점수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영훈이네 가족 은 촛불회의가 끝날 무렵 마무리는 아빠와 엄마가 늘 영훈이와 누나를 꼬옥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영훈이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씀하셨다던“영훈아! 언제나 세상을 살아가면 서 촛불과 같은 사람이 되렴” 영훈이는 그 느낌 이 너무 행복하다고 적었다.
지금도 영훈이 아빠가 영훈이에게 들려주었다던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자신을 태움으로써 주위를 환하 게 밝혀주는 희생정신을 지닌 거룩한 사람이 되라 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되니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촛불’이라는 의미는 신성함과 엄숙함으 로 자기를 희생하는 은은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 가온다. 모든 종교의식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문화 에 희생과 사랑이라는 고귀한 정신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촛불은 또한 생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신체에 곧잘 적용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초의 심지는 마음, 초의 몸통은 육체를 상징한다고 했다.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은 마음과 몸 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또 교회에서는 초 의 심지를 그리스도의 영혼, 초의 몸을 그리스도의 육신, 그리고 불꽃은 그리스도의 신성이라 하여 촛 불을 삼위일체에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촛불은 그 렇게 성스럽고 고귀한 상징으로 의미된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바슐라르의 책‘촛 불의 미학’에서는 촛불이 잘 타고 있는 시간은 얼마나 커다란 시간,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길게 뻗치고 끝이 뾰족해진 불꽃 속의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생명의 미묘함! 삶과 사랑과 꿈의 가치가 그때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라며 촛불 의 미학(美學)을 아름다운 글로 그려내듯이 표 현했다. 바슐라르의 책을 읽으면서 촛불의 의미 는 희생이기도 하지만 또한 서서히 타들어가는 인내심을 발현하는 사랑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 같았다.
촛불은 우리 마음속에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촛 불은 아주 서서히 타들어 간다.
촛농이 녹아서 타들어 가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 본 적이 있다.
촛불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깊은 의미는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천천히 가슴아파하고 아 주 천천히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모든 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마침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두려움 없이 던지는 것이다.
과연 촛불 같은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명의 촛 불처럼 사랑의 원천으로 남아 끝없는 창조의 원 동력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눈앞에 닥 친 현실의 삶에 골몰하느라 조급해하고 불안해하 면서 진정으로 따뜻한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 고 살아간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또는 가족만의 의미 있는 행 사 등에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위해 예쁜 색 양초를 잠시 동안 켜두고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 을 바라보자.
서로의 마음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새겨들며 촛 불의 신성함과 어울려 한층 더 축복이 내려질 것 만 같다. 소멸함으로써 더욱 빛나는 사랑, 촛불의 순수함을 부디 잊지 말았으면 한다. 문득 생각해 본다. 영훈이네집 촛불회의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 을까? 일기를 통해 만났지만 한 번도 만나본적 없 는 영훈이라는 아이의 밝은 표정을 떠올려보면 마 음이 흐뭇해진다. 그리고 영훈이는 초롱초롱한 눈 망울로 내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선생님! 우리 모두의 맘속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을 켜놓 고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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