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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호 - 김문환 논설위원 칼럼 [정경비화]

4,069 2017.09.0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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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호주 금광개발사인 몬테이그 골드사(Montague Gold Co.) 기술자들이 동부 깔리만딴 주 내륙지방인 부상(Busang) 마을을 탐사하던 중 원주민인 다약족(Suku Dayak) 부락민들이 사금(砂金)을 채취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듬해 이 호주 회사는 그 지역을 본격적으로 탐사하여 샘플링 검사까지 마쳤으나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 탐사그룹의 일원이었던 네덜란드 태생의 캐나다 국적자인 존 펠더호프(John Felderhof)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89년 펠더호프는 고국으로 돌아가 전직 몬트리얼 증권거래소 중개인이며 그의 오랜 친구였던 데이빗 월시(David Walsh)를 설득하여 월시 부인의 자금 25만불을 끌어들여 1989년 Bre-X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회사 설립 후 4-5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실이 없자 월시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1993년 4월 자카르타에 들어와 땀린가에 있는 한 호텔에서 펠더호프를 만나 부상광구를 매입하는 게 좋겠다는 펠더호프의 조언을 받는다. 월시는 결국 토착사업가인 하지 샤끄라니(Haji Syakerani)와 인도네시아민주당(PDI) 소속의 정치인인 유숩 머르끄(Jusuf Merkh)가 보유한 PT.Westralian Atan Minerals의 지분 80%를 매입하게 된다.

1995년 Bre-X사가 지정한 독립컨설팅사인 킬본 엔지니어링(Kilborn Engineering)은 부상광구 매장량이 7천1백만 온스에 달한다고 발표하자 Bre-X사는 토론토 증시와 나스닥에 상장하였으며 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된 펠더호프가 1996년 5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매장량을 2억온스까지 볼 수 있다고 흘리자 주가는 폭등하여‘신데렐라 주’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1996년도는 부상지역 금광이권을 둘러싼 로열 훼밀리간의 치열한 승부전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해였다. 1996년 3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캐나다의 영세 광업사인 Bre-X사가 동부 깔리만딴 주 부상지역에서 세계 최대의 금광을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부존량은 최소 7천 2백만 온스이며 단가 400불로 계산하여 300억불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당시 인도네시아 국가 총예산액에 접근하는 수치였다. Bre-X사는 대통령의 장남 시깃(Sigit)과 합작하기로 결정하여 그에게 컨설팅 용역비조로 40개월 동안 매월 미화 백만 불씩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와 동시에 20억불의 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분의 20%를 대형 금광회사인 Barrick Gold사나 Place Dome사에게 매각할 용의가 있다며 투자를 유도하였다. 토론토 증시에 상장된 Bre-X사의 주식은 상장 당시 주당 30 센트에 불과하던 것이 1996년 9월 9일에는 286불(CA$)까지 치솟는 기록을 세우자, 동년 11월 대통령의 장녀 뚜뚯(Tutut)까지 가세하여 인도네시아 정부가 개발허가를 타사에게 발급하기 전에 선수를 쳐 캐나다의 대형 금광회사인 Barrick Gold사와 합작으로 부상지역 금광개발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다 보니 수자나(I.B. Sudjana) 광업에너지부장관은 담당총국장을 제쳐놓고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1월 26일 정부는 금광개발 참여사에 대한 지분구조를 Bre-X사 25%, Barrick Gold사 75%로 정하며 각각의 지분에서 10%씩을 정부에 할애할 것과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는 12월 4일 이전까지 당자자간에 합의를 보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내용이 매스컴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각본대로 진행만 된다면 바로 밑 남동생인 시깃에 대한 뚜뚯의 역전승이 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했던가? 공개입찰을 기대했던 또 다른 금광회사인 Place Dome사는, 대통령의 두 자녀가 연관된 가운데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같은 거래행태를 비난하며 토론토 주재 인도네시아 총영사관을 통해 항의서한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발송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거의 Barrick Gold사로 기울어진 전세를 역전시킬 결정적인 방안을 모색하는데 골몰하였다.

 

Place Dome사는 당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던 B씨를 염두에 두었다. 대통령의 아들과 딸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대통령을 움직이는 일이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B씨임을 간파하고 그에게 접근하게 된다. B 입장에서도 밀실거래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무마하고 대통령 두 자녀의 진흙탕싸움을 말릴 수 있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 낸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Place Dome사의 John Olson 사장은 Barrick Gold사의 20억불 투자계획을 훨씬 뛰어넘은 50억불의 투자의향과 40%의 지분(Barrick Gold사는 10% 제안)을 로칼 파트너에게 이양하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발리에서 태어나 3성장군으로까지 입신한 수자나 장관은 1997년 2월 18일, 파란 넥타이의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1미터 80센티가 넘는 거구의 몸체를 TV 카메라에 꽉 채우며 3페이지에 달하는 발표문을 기자들 앞에서 낭독하고 있었다.

“부상지역 금광 가채량은 최소 7천만 온스에 달하며 본 광산개발을 위해‘Busang Indonesia Gold JV’라는 콘소시엄사가 설립되었으며 거대한 금광을 처음 발견한 Bre-X사의 권리를 존중하여 주주 구성은 Bre-X 45%, 국내회사 30% (B씨 계열의 2개사), 정부 10% 그리고 프리포트 맥모란사(Freeport McMoran) 15%로 최종 결정되었으며, 향후 운영권(Operator)은 인도네시아에서 이 분야에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프리포트 맥모란사가 30년간 보유하게 되며……….”

 

이 발표에 의해 그 동안 후발업체로 참여하여 경쟁을 벌였던 캐나다의 Barrick Gold사와 Place Dome사는 완전히 배제된 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버렸고, 기득권을 가지고있던 Bre-X 사도 결국은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Bre-X사에 배정된 45%의 지분이 외관상으로는 최대 주주로 보이지만 실상은 나머지 잔여지분 55%가 모두 정부 우호지분이었고 특히 운영권을 프리포트사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통령의 두 자녀도 프리포트사와 연계된 듯한 B라는 제3의 인물에게 여지없이 무너지며 노다지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미국남부도시 뉴올리안즈에 본사를 두고 있던 프리포트사는 1967년 정부허가를 받아 이미 파푸아 지역 그라스벅 광산(Grasberg Mine)에서 구리, 금광사업을 해오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깊은 유착관계를 맺어온 세계 정상급 자원개발회사였으며 B씨는 아부리잘 바끄리(Aburizal Bakrie)가 보유하고 있는 현지법인 PT. Freeport Indonesia의 지분 9.6%를 인수하였다.

 

광산업에 종사하다가 옥살이를 한 몇몇 한인동포들의 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뒤안길엔 때로는 함정과 사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아왔다. 프리포트사는 운영권을 부여받자마자 필리핀국적의 현장 책임자인 마이클 구즈만(Michael de Guzman)에게 인수인계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우연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화재가 발생하여 자료창고가 전소되었으며, 1997년 3월 19일, 항상 새벽 3시에 기상하여 비밀리에 혼자 샘플링 작업을 해왔던 마이클 구즈만은 Bre-X사의 기본 샘플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던 프리포트사에서 파견 나온 수석지질전문가 데이빗 포터(David Potter)와 업무협의를 갖기 위해 동부 깔리만딴주 사마린다 지사에서 현장 작업장으로 향하는 헬리콥터에 탑승한 후 몇 십분이 지나지 않아 돌연 깔리만딴 정글에 초개같이 몸을 내던지며 이 엄청난 음모의 비밀을 홀로 떠안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경찰당국의 사건 발표라고는, “그가 표본 검사물을 바꿔치기하여 경제성 여부를 오도한 사기범이라는 것”이었으며 4일 후 야생동물에 의해 거의 훼손된 채 얼굴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그의 시체를 정글 속에서 수습하여 마닐라로부터 날아온 그의 가족들로부터 어금니와 엄지손가락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였다는 신문보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달 후에 호주로 가족이민을 떠날 계획이 되어 있었다는 근거를 들어, 절대 그가 자살할 리 없다며 타살의혹을 제기한 유족의 주장은 마이클 구즈만으로부터 12만불 짜리 주택을 선물로 받은 고인의 젊은 현지처 가십에 묻혀 희석되고 말았다.구즈만이 사망하기 6개월 전, Bre-X사의 주가가 캐나다에서 상한가를 치던 시점에 데이빗 월시 사장 부부는 개인주식을 이미 매각하여 미화 2천만불을 챙긴 후였으며 개발담당부사장으로서 매월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구즈만을 지휘했던 펠더호프는 즉시 해고되었으나 1억불이 넘는 그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여 조세피난지인 케이만 군도(Cayman Island)에 4백 5십만불짜리 초호화 저택을 마련하고 국적을 이미 바꾸어 놓은 뒤였다.‘매장량이 미미하다’는 프리포트사 자체 샘플조사결과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는 Bre-X의 저항에 대해 1997년 5월 4일, 독립감사기관인 Strathcona Minerals은“샘플상에 금가루로 솔팅(Salting)된 대규모 사기행각(Massive Fraud)이 있었음”을 공식 발표하였다. 수십억불의 투자금을 날려버린 수천명의 투자자들은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98년, 데이빗 월시의 자택에 두 명의 복면괴한이 침입하여 손실금을 보상하라고 권총위협을 가한지 3주 후 데이빗 월시는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2인자였던 존 펠더호프는 온타리오주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고발당하였으나 9년 후인 2007년 7월 관할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였고 위원회는 더 이상 항소를 하지 않아 세기의 사기사건은 투자자에게 엄청난 손실만 가져 온 채 종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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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던 인도네시아 사회를 흡사 1800년대 후반 미국 서부의‘골드 러시’시대로 회귀시켜 놓았던‘인도네시아판 노다지 소동’은 이렇게 희대(稀代)의 사기극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구즈만이 탑승했던 헬리콥터의 조종사가 전직 특전사(Kopassus) 소속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겨두었다. 

 

사건 9년 후,

필자는 AFP통신 기사를 인용한 2005년 8월 23일자 The Jakarta Post지 3면을 펴자마자<Wife Says Missing Bre-X Geologist Alive>라는 제호에 눈길이 가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희대의 금광사기극을 벌이고 깔리만딴 정글 속으로 뛰어내려 야생 동물에 의해 훼손된 그의 사체가 겨우 수습되었다던 마이클 구즈만이 살아있다는 내용을 폭로한 내용이었다. 타이틀로 잡았던‘희대의 금광사기극’이 단순히 사건 속의 추리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엄청난 사기, 암투, 공작의 실체였음을 입증한 충격적인 기사였다. 구즈만의 5명의 현지처 중 한명인 제니(Genie)의 믿음대로 그가 언젠가 등장함으로 진실을 밝혀, 이 나라에 또 한번의 큰 광풍을 몰고 올지, 아니면 남미의 어느 제3국에서 이미 희생양이 되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다.

<논설위원/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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