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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호 청구권자금

3,107 2018.02.1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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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 근거하여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대일전쟁배상금청구 협상 은 일본 기시정부가 들어서면서 타결되어 1958년 1월 20일 수반드리오 외무장관과 후지야마 외 상간에‘평화협정’과‘배상금협정’이 자카르타에서 서명되어 4월부로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발효된다. 이로부터 60년이 흐른 오늘,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일본은 각종 대형 인프라사업투자를 확정짓기 위해 고위급 경제사절단이 방인하여 대통령궁에서 조꼬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문화활동에 심취되어있는 젊은 일본인들을 국내언론에 부각시켜 특집을 꾸미 는 등 경제, 문화 교류의 페달을 밟고 있다.

  대일청구권협상이 타결된 다음해인 1959년, 해외여행에 맛을 들인 수카르노 대통령은 자신의 58회 생일인 6월 6일에 맞춰 또다시 일본으로 향한다. 이번에 대통령 일행의 일본측 후원자는 영 어를 구사할 줄 아는 쿠보 마사오(久保正雄)라는 비즈니스맨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이토추상사와 연결되어 도니치 보에키(東日貿易)사라는 작은 무역회사를 경영하면서 자민 당 정권의 실력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이때 쿠보 마사오는 아카사카의 외국인 VIP전용 나 이트클럽에서  네모토 나오코를 수카르노에게 처음 소개하였다. 자카르타로 돌아간 수카르노는 2주간의 일정으로 네모토를 인도네시아 발리(Bali)로 초청한다. 네모토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마 어마한 보상을 제시하는 쿠보 마사오의 강요에 못이겨 도니치 보에키사의 자카르타지사 여직원 으로 가장하고 쿠보 마사오가 직접 동행하여 9월 15일 자카르타에 도착한다. 

  이로부터 3년여가 지난 1962년 3월 3일, 수카르노는 정식으로 네모토와 성혼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궁 역내에 위치한 이슬람사원에서 사이후딘(Saifuddin) 종교성장관의 주재로 혼례식이 거행되었으며‘랏나 사리 데위(Ratna Sari Dewi)’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인도네시아 이름을 부여 받고 국적까지 취득하게 된다. 

 당시 네모토의 도움을 받아 청구권자금 프로젝트를 수주한 일본의  진출기업들이 기금을 모아 5 헥타의 넓은 대지 위에 아방궁을 방불케 하는 별궁을 지어 동생의 이름을 붙인‘위스마 야소 (Wisma Yaso)’를 헌정하게 된다. 영부인으로 신분 상승된 데위 부인은 마침 이케다 수상부부 의 자카르타 방문 시 수카르노에 의해 정식으로 소개되었으니, 이제 경제이권뿐만 아니라 정치권 력까지 넘보기 시작하여 1965년 공산 쿠데타 당시 일본, 미국당국에 최고급정보를 제공하는 역 할을 한 바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청구권 관련 사업이권을 따내기 위해서는‘위스마 야소로 성 지순례 가는 것’이 필수 코스로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자카르따 시내 가똣 수브로또가에 위치 하고 있는 이 건물과 대지는 1966년 3월부터 수하르토 장군이 실권을 잡은 이후 국가에 귀속되 었다. 데위가 군부의 압력을 피해 급거 일본으로 귀국하자 이 장소는 수카르노가 사망한 1970년 까지 가택연금 장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국군역사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한편 데위의 후견인으로서 그녀를 최고권력자의 옆자리에 앉히는데 성공한 쿠보 마사오는 천재 일우의 기회를 놓칠세라, 물밀듯 유입되는 청구권자금의 독점창구가 되어 막대한 이권을 챙긴다. 이때 쿠보 마사오가 관장한 주요 프로젝트로는 도꾜 시내 인도네시아회관 건립, 주일대사관 증축 공사, 해양경비정 도입, 자카르타 대통령궁 영빈관, 국영텔레비전(TVRI) 송신탑, 모나스광장 조 성사업,그리고 호텔인도네시아(Jakarta),암바룩모호텔(Jogjakarta), 발리비치호텔(Sanur)), 사무드라비치호텔(Pelabuhan Ratu) 등 네 곳의 5성급호텔 건축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대표적인 인프라사업으로는 남부수마트라 빨렘방 시내 무시(Musi)강을 가로지르는 1.1 킬로 길이의‘붕 까르노 대교’(현재명칭‘암페라 대교’)가 1962년 착공되어 1965년에 완공 되었다. 바로 이 시기를 깃점으로 인도네시아 경제지도는 온통 일장기로 뒤덮이게 된다. 한편 7년 늦게 타결된 한국의 대일청구권 자금은 주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기간산업 용도 로 쓰여지며 인도네시아와 크게 대조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인도네시아 경제의 일본 예속화’추세는 1974년 1월 다나 카 수상의 자카르타 방문 당시 발발한‘반일폭동사건’이전까지 가속화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기업들이 어깨를 움츠리는 사이, 1970년부터 삼환기업 등 건설회사, 그리고 1975년부터는 쌍용,삼성,효성,현대 등 대기업들이 종합상사 형태를 갖춰 줄을 이어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원 목수출금지 조치로 인해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던 산림개발업체들 중 잔류하기로 결정한 회사들 은 합판산업에 전력을 투구하게 된다. 한편 자원개발분야를 개방하여 광산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호주, 영국, 일본 등 외국 광업사들이 광권을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정부도 이 제안에 참여하여 한국기업들이 석탄광업권을 확보하는데 일조를 하 게 된다. 그러나 자원사업의 속성상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탓에 1980년대 초에 개 발권을 취득한 마두라유전과 빠시르탄광 모두 광권취득 후 20년여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서야 그 결실을 보았으나 이마저 배타적인 정부정책에 휘둘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한국자원개발투 자의 양대 축이 모두 내국기업으로의 지분양도라는 변화를 겪으며 지금 그 운명을 가늠하고 있다. 
         김문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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