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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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개발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 <레스토랑의 꽃>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개 발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양국 간 실질협 력 분야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는 2012년 9월 아세안 사무국이 위치한 자카르타에 설립되어 한국과 아 세안(ASEAN <스포츠 하는 여자> 등 인도네시아 영화를 제작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를 출간하며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구 2억8천만명에 달하는 세계 4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는 중위연령 29세 <인도네시아한인 100년사>는 ‘한인뉴 스’가 단순한 소식지에서 벗어나 한인 이민사의 중요한 기록 물로서 영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앞으로 한인뉴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홍 편집장은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인도네시아한인 100년사> 제 작 경험을 통해 확인한 한인뉴스의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강조 하며 <창조문화산업 협 력에 관한 양해각서> (편집자주) 한인뉴스는 2023년 9월 한국-인 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어판으로 발간한 책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Merajut Persahabatan dan Memupuk Kepercayaan”)의 한글 원본을 12회에 걸쳐 연 재합니다. 제1장 한국-인도네시아 외교 50년 2. 초창기(1973~1988년): 외교관계 수립부터 전 두환 정부까지 1) 협력과 신뢰의 토대 마련 1973년 9월 18일 000만명으로 집권 8년차에 도 대통령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 후인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를 맞았으나 000만명이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였고 000만톤을 돌파했다. 2022년 7월 서울에서 인 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 크라카타우스틸과 철강 생산능력 확대 및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 사업 참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조코 위도도 대 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체결했다. 포스코와 크라카 타우스틸은 향후 5년간 공동으로 35억 달러를 투 자해 크라카타우포스코(PT Krakatau-POSCO) 의 제 2고로와 냉연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크라 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이 합작 한 일관제철소로 수도인 자카르타 북서쪽으로 약 100Km 거리의 찔레곤(Cilegon)에 위치해 있다. 현재 연산 300만 톤 규모의 고로 1기와 후판공 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크라카타우스틸의 현물출 자를 통해 열연공장도 갖출 예정이다.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은 크라카타우포스코에 고로 1기 를 추가로 건설해 연간 조강량을 6백만 톤 이상으 로 대폭 확대하고 000명 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86대에 불 과하다(2017년 기준 000명을 동남아 시아 전역의 포로수용소에 파견했다. 이때 동원된 조선인 3 000억 달러 교역액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 가기로 하였다. 또한 <국방협력 협정> 000억달러 달성 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7년 11 월 9일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 는 데 합의했다.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와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개발도상국부터 현재까지 경공업 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 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 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 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 극적으로 협력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에 힘썼다. 2014년 11월 한국이 발족한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수임 000억원(15억달러)을 투자해 인도네시아에서 연간 2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완성차 공장을 서부자바주 찌까랑 지역 델타마스 공단에 2022년 3월 완공했다. 일본차 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시장 을 차세대 전략 거점으로 삼아 돌파구를 마련하 겠다는 승부수다. 코로나 사태라는 역경을 딛고 58 I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착공한지 2년 반만에 완공한 현대차 공장에서 소 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크레타와 소형 다목 적차량(MPV) 스타게이저 등 내연기관차 양산은 물론 아이오닉5 전기차를 아세안에서는 처음으로 양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9년 약 103만 대의 신차 가 팔렸으며 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영토 000여명 중 약 1 025 명보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 현지 체 류자들은 1998년 5월 폭동 이전에 12만여 명이나 체류했지만 이후 2만 명 규모로 줄면서 096억 달러로 한국 건설 시장 규모의 2배 수준이다. 2026년까지 연평균 9.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의 인도네시아 건설시장 진출도 활발 하다. 한국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 기업은 1970년 삼환기업이 주택공사를 수주하며 인도네 시아에 처음 진출한 이래 2019년까지 총 186개 기업이 571건 1) 노동집약산업에 이어 기술집약산업 등 제조업 투자 진출 1988~1992년 기간에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 아 투자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섬유 1) 한-인니 100km로 서울~자카르타 거 리와 비슷할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다. “발리는 갔다왔는데 아직 인도네시아는 못 가봤 어요”라고 말할 만큼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낯선 나라다. 한국에서 한국인은 주류이자 평범한 존재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에 내리는 순간 100만 달러에 인도네 시아 정부와 수의계약을 했다. 이 공사 작업 중 상 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현지인 작업자가 희 생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보그룹의 한보종 합건설은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의 지원 중지로 1997년에 부도를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망한 인도네시아 건설시장의 기회와 도전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경 제 및 건설 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11.0억 달 러)로 산업설비 분야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55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건설시장은 인도네시아판 네옴(NEOM) 프로젝트로 불리는 신수도 누산타 라(Nusantara)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조코 위도 도 정부는 2019년 8월 자바섬의 인구·경제 집중 현상과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 을 도모하기 위해 수도 이전을 발표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수도 이전 사업의 진행이 지연되 기도 했으나 11월에는 마스터플 랜 협력을 위한 경제협력사무국이 인도네시아에 설치되었다. ★ ‘무궁화 대훈장’ 수훈 유도요노 대통령 2014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임기간 (2004∼2014년) 10년 동안 한-인니 관계 발전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 하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 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 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MP3EI)을 수립하고 136.3억 달 러) 13~16세기)제국을 중심으로 권력이 이동한 역사적 사실은 만달라체제를 설 명해주는 좋은 예이다. 지난 2월 대선을 앞두고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왕조 구축’이 도마위에 올랐다. 3선 도전 이 불가능한 조코위 대통령 장남인 기브란 솔로 시장의 부통령 출마가 공식화되면서 정치권 에서는 조코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왕조 논란은 비단 조코위 대통령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장 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 가문과 수하르토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 가문도 빼놓을 수 없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인도 가문정치를 세력화하고 있다. 최근 프라보워 당선인은 조카 토마스 지완도노를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하며 정치세력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유도요 노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 정치권력이 유도요노 가문을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로 세력이 형성 됐다면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 10년은 메가와티 대통령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다. 앞으 로 인도네시아 정계는 프라보워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만달라세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정당정치가 아닌 인물정치로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정당정치는 정당이 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정당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을 공유하 는 사람들의 집합체로 1400톤) 잠수함 수출은 단순 납품이 아니라 현지 건조와 기 술 이전을 포함한 ‘패키지형 방산 모델’을 정착시켰다. 이는 한국 방산의 특징적인 수출 방식 으로 자리 잡았다. 이 흐름은 다시 업그레이드돼 2010년대 중반 이후 질적으로 변화한다. KF-21 전투기 공동 개 발 사업은 인도네시아를 단순 구매국에서 공동 개발 파트너로 끌어올렸다. 개발비 분담과 기술 참여를 통해 인도네시아는 자국 항공 산업 역량을 확대하고 1919~2015) 회장을 비롯한 한인 인사들 과 1927년 6월 하타와 PI의 다른 네 지 도자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하타는 독립 후에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정책(Free and Active Foreign Policy)’을 내세워 인도네시아가 어느 진영에도 예속되지 않도록 했다. 그 의 외교는 중립 외교와는 다른 1932~2004)와 소피안 와난디(Sofjan Wanandi 1941~)를 들 수 있다. 베니 장군과 소피안 회장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점이 분명했다. 첫째 1945년 독립전쟁 당시 청년들의 무장 투쟁과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인도 네시아 혁명’은 먼 옛날의 역사가 아니다. 군대를 나라의 중심 기둥으로 삼고 1952~2019)는 단순한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 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정서적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다 보면 1952년 2월 9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해 뻐땀부 란 공동묘지에 묻혔다. 김만수 1959년 6월 인도네시아북한 친선협회 구성 1960년 6월 인도네시아 언 론인 북한 방문 1960년대 초 경제적 차원에서 한국 기업의 주도로 양국 고위인사 간 접촉이 이 루어지게 된다. 당시 산림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 진출했던 ㈜한국남방개발(현 KODECO) 최계월 회장은 한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1962년 1월 수 카르노 대통령을 예방하였으며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는 한국 친선방문단을 거부할 만큼 우리와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1962년 2월 도쿄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해 막혔던 한-인니 외교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60년대 초 이리안자야(서파푸아)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일본 정 부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1961년 6월 주인도네시아 북한 총영사관 개설 1961년 미국에 서 특수전 교육을 받은 후 줄곧 특전사 장교로 최 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수카르노 정권 당시 인 1958년 수마트라와 술라웨시에서 일어난 ‘ 인도네시아공화국 혁명정부(PRRI)’ 반란 사건 1961년 이리 안자야(현 서부파푸아) 머라우께 지역 군사작전 지휘 1962년 2월 일본 도쿄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했다. 한편 1964년 한국 정부 인사로는 최초로 산림조 사단(단장 심종섭)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최 계월 회장과 함께 수카르노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1964년 인도네시아 여당 수비안또 간사장과 수 카르노 대통령 양녀 사디킨 여사가 산림협회 협의 차 방한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변(9.30사태/G30S)으로 인도네시아공산당(PKI: Partai Komunis Indonesia)이 붕괴되고 친미·반공 노선의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북한 간의 친선관 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개선의 환경이 조성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승인 이후 17년만인 1966년 12 월 한국 정부는 당시 주태국 이창희 공사(후에 인 도네시아 초대 총영사로 발령)를 자카르타에 파 견하여 한-인니 양국 간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 고 자카르타에 총영사관을 개설하였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62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1966년 당시 한국 정부는 대외관계에 있어서 북 한이 외교관계를 체결하고 있는 국가와는 외교관 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하고 있 는 만큼 북한 공관이 이미 상주하고 있던 자카르 타에 한국 총영사관을 개설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의 대동남아 외교 공세 강화로 북한이 위축되어 있고 1962년 3월에도 한국 경제사절단 입 국을 거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1961년 북한-인도네시아 영사관계수립과 1964년 대사 급 외교관계 수립 등 북한과의 관계가 빠르게 진 전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측이 남한과의 관계 구축 에 부담을 느낀 조치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문화·스포츠 차원에서는 일부 교류가 이루어졌다. 1962년 4월 이상백과 월터 정이 아 시아올림픽 상임위원회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를 방문하였는데 1964년 4월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정상 간 교류에서는 1964년 수카르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데 이어 1965년 4월 김일성 주석 의 인도네시아 답방이 이루어졌다(김정일 동행). 북한과 비교해 남한은 1981년 6월 전두환 대통령 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1982년 수하르토 대통령 의 방한이 정상 간 첫 교류였다 1964년 수카르노 대통령 방북 시 김일성 주석은 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맞서 압박을 받은 민족 들의 공동전선을 형성할 필요성에 관한 공동성명 을 발표하였다. 1965년 김일성 주석의 인도네시 아 방문은 그의 첫 번째 비공산국가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북한이 인도네시아와의 외교관계 개 선에 두었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비동맹운동 창설의 기초가 되었던 1955년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 또는 Asian-African Conference 1964년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정책 1965년 공산당 쿠데타 9.30정변 등. 수하르토 정권에서 1974년 다나카 일본 수상의 인도네시아 방문 시 발생한 반일 폭력시위인 말 라리(Malari)사태 1965년 인도 네시아 정변 사태로 북한의 활동이 극히 위축된 상태에 있어 한국 총영사관 개설이 적절할 것으 로 판단했다. 인도네시아는 2년 뒤인 1968년 서울에 총영사관 을 개설하고 수깜또 사이디만(Soekamto Sayidiman)을 초대 총영사로 파견하였다. 제2대 총 영사는 베니 무르다니(Leonardus Benny Moerdani)로 현지 한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 며 1968년 한국외환은행( 현 KEB하나은행) 자카르타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1980년대 후반은 제2차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 에 진출하는 시기다. 1988년부터 한국 신발과 봉 제 기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인도네시아에 쏟 아져 들어오자 1969~1974년)에서 수하르토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과 국내외 투자 촉진을 도모했고 1969년 4월 1일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 획”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는 대내외 환경에 맞춰 기간마다 정책 목표를 수 립하고 국가산업을 고도화해 왔다. 이러한 현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맞춰 코린도그룹은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인도네시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 1970~80년대는 연 6%대의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버클 리 마피아는 권위주의적 통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영기업과 대기업은 권력과 결탁 해 특혜를 누렸고 1970년 경남교역이 동부칼리만탄주 따라깐에 20 만 헥타르 1973~1978년) 시 멘트공장 1973년 8월에는 바사라 (Basarah) 인도네시아 공군참모총장이 답방했 다. 양국 군 고위급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 라 1974년에는 무관이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1977년 11월 30일에는 최각규 농수산부 장관과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양국 정부를 대표하여 쌀 대여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는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쌀을 지원하 여 줄 것을 한국 정부에 긴급히 요청하였기 때문이 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식량부족 해소를 위해 쌀 7만 톤을 대여하기로 신속히 결정하였고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대 리대사로 근무했다. ★ 지한파 베니 무르다니 장군… 인도네시아 현대 사의 주역 인도네시아가 독립 이후 격변기를 겪을 때마다 주 역으로 등장하는 베니 무르다니(1932~2004년) 장군은 한국과 매우 인연이 깊은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1932년 중부자바 지역에서 태어난 베니 무르다 니는 1956년 육군 소위로 임관 1973년‘한국 최초 해 외 생산공장 1호’인 대상(당시 미원) 1973년에는 한니흥업이 중부칼리만 탄주 라만다우 강 유역에 11.5만 헥타르 1974~1979년)에서 수하르토 정부는 국민 생활 수준 향상과 개발 성과의 공정분배 및 고용기회의 확대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외자 봉쇄 조치 1975년 공장을 완공하고 이듬 해부터 조미료 중간제품(DGA)의 생산에 돌입했 으며 1975년 동티모르 사태 1976년 말에는 아주임업이 서부칼리만탄주 멀라위 강 유 역에 11.5만 헥타르의 천연림 개발에 착수하면서 한국기업에 의한 인도네시아 산림개발이 러시가 이루어졌다. 한국 기업들이 의해 개발한 임지에 서 생산한 원목은 대부분 한국 1978년 본격적으로 사탕수수를 발효한 조 미료(MSG) 생산을 시작했다. 1972~1985년 기간에는 자원확보형 투자 이 외에도 건설과 무역업의 진출이 주류를 이뤘다. 1972년 12월 삼환기업이 수마트라 횡단고속도로 공사계약을 인도네시아 정부와 체결했다. 1973 년 6월에는 대림산업이 가스압축플랜트 공사를 수주했으며 1979~1984년)에서 공업화 기반 확충을 추진했다. 자원개발을 강화하고 국토 균형 발 전을 위해 이주정책을 강도 높게 진행한다. 이 기간 약 7.9%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실현한 다. 1980년 코린도는 합판을 중동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1983년 포르말린과 접착제 공장 을 설립해 생산했다.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V 1980 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성화(Sung Hwa Dunia) 1980년 초 원목 수출금지 조치 이 후 기존의 한국계 원목개발 회사들 중 합판공장 을 소유한 코린도와 코데코 정도의 기업들만이 원 목개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 지 산림 분야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은 코린 도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1호 해외공장은 1973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미원(현 대상 1980년대는 한국 1981 년 가루다항공 납치 사건 1981 년‘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한 나라이다. 1992년 우리나라 대외 무상원조 기관인 코이카(KOICA)의 해 외사무소 1호 설치 국가. 한국이 만든 고등 훈 련기 T-50과 잠수함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 도 인도네시아이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은 한글 수 출 1호 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낯선 땅 인도네시아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개인의 성공을 이뤄냈다. 저자는“이 책은 단기간 머물다 가는 외부자의 눈이 아닌 1981년 코데코와 뻐르따 미나와의 서마두라유전 공동개발은 ‘한국 최초 해외유전개발 사업’이다. 인도네시아는 1992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소를 개소한 국가로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서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 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1983년에는 수하르토의 딸 시티 헤디아티(일명 티틱)와 결혼했다. 정권 과 충돌해 조국을 떠났던 가문이 새 정권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다만 망명의 상처가 곧 중앙집권에 대한 확신을 낳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분명한 것은 프라보워가 성장 과 정에서 국가권력이 한 가족의 삶을 바꾸는 모습을 경험했고 1984~1989년) 기간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의 균등분배 1984년 딴중쁘리옥 이 슬람사원 사태 등의 진압을 지휘한 주인공이다. 베니 무르다니는 1971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 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 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3년여 동안 한국에 머물 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한국인과 친근하 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리대 사로 근무했다. 1974년 1월에 본국으로 귀임해서는 국방부 정보 국장 1985년 6월 에는 인도네시아 민속예술단의 서울공연이 있었 고 1986년 1989~1994년) 기간에는 경제 발전 및 부 의 균등 분배 1989년 1월에 ‘아시아·태 평양 경제협력’ 즉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각료회의가 창설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인 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중국이 전 세계 생산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대 후 반기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노동쟁의 증가 1991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체제로 전환됐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세계는 다극체제로 이행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한 나라가 군사력과 경제력 및 연성권력(Soft Power) 등 갖춰야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최근 전통적인 외교 중견국인 인도네 시아의 경제와 군사력이 신장되고 문화적인 힘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의 외교력 은 한층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1993년부터는 정상회의로 발전한다. 1989년 11월 2일 최호중 외무장관이 아세안사 무국에서 알리 알라따스(Ali Alatas)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당시 아세안 상임위원장)과 한-아세안 협의체제 출범을 위한 합의각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은 통상·투자·관광 부문의 대화상대국으로 지정되었고 1994~1998년) 기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 는 제2차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위한 기반 조성 및 경제도약 1998년 1월 “기아차에만 특혜를 주는 건 부 당하다”라는 WTO 판결에 따라 기아차의 국민 차 사업권이 취소됐다. 결국 1998년 수하르토 대 통령의 실각으로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은 완전 히 중단됐다.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한국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미래차에 사활을 건 현대차 그리고 인도네 시아 정부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작 품이다. 미래차를 선도하고 있는 현대차는 2025년 까지 미래차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해 총 61조1천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5 전략’ 을 2019년 12월 발표했다. 현대차 ‘2025 전략’ 은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 △지능형 모빌리티 서 비스 2대 사업 구조를 축으로 △내연기관 고수익 화 △전동차 선도 리더십 △플랫폼 사업기반 구축 등 3대 전략 방향으로 나눠진다. 이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구하는 미래산업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현대차는 2018년에 말레이시아에 설립했던 아태 권역본부를 2019년에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고 아 세안 지역 진출을 준비해왔다. 또 인도네시아에 생산법인과 판매법인을 각각 100% 단독 투자법 인으로 설립했다. 이는 그동안 현대차가 진출하지 않았던 아세안 지역에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한다 는 의미가 있으며 2) 인도네시아 한인 1호 장윤원과 자녀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은 장윤원을 인도네시 아에 정착한 최초의 한인으로 추대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인도네시아 정치·경 제와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과거 경영관행에 익숙 했던 대부분 한국계 신발기업은 경영 악화에 직면 한다. 이에 인도네시아 신발 투자기업 1세대로 분 류될 수 있는 성화 2000년대 후반 기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초 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한인 슈퍼마켓은 무궁화를 시작으로 도라지 200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인도네 시아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 다. 1980년대 초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한인 슈 퍼마켓은 무궁화를 시작으로 도라지 2001년부터 지방분권을 본격 시행했다. 전국적 사업을 추진하려는 중앙정부의 의지는 지방의 권한과 주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 안에서 실현돼야 한다. 지방 의 부패나 행정 비효율을 이유로 권한을 중앙에 모으더라도 감시와 책임의 구조가 약하면 같 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프라보워의 국정 운영 철학은 국가가 발전과 안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으로의 평가는 그 믿음을 어떤 방식으로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버지에게서 배웠 다는 혼합경제의 장점을 살리려면 정부의 추진력과 함께 민간의 창의성 2002년에는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했 다. 또 2011년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는 절친한 사이였다. 메가와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2003년 2005년 8월에 완공할 만큼 난공사였 다. 당시 현장 관리책임자는 “터널 속은 물이 사 방에서 쏟아져 나오고 먼지와 소음 2005년 이후 제3차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투자 러시가 이어진다. 시의적절하게 KEB하나은행은 2007년 현지 은행을 인수해 현지법인을 설립한 다. 신한은행은 2016년에 신한인도네시아은행 2006 년에는 서부자바주 보고르 룸핀(Rumpin) 지역에 현대식 양묘장 조성사업을 시작했고 2007년 한-인니 산림포럼 구 성으로 양국의 산림협력은 한층 도약하게 되었다. 2005년 수마트라섬 북부를 휩쓴 쓰나미로 파괴 된 해안 맹그로브숲을 복원하기 위한 한국국제협 력단(KOICA)의 개발원조 사업을 선두로 2009년 대권에 다시 도전해 연임에 성공했다. 무궁화 대훈장 수여(2014. 11.19)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7 5) 박근혜 대통령의 인니 국빈 방문: 상생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미래 동반자 관계 구축 박근혜 대통령은 발리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 이 ASEAN+3/EAS 정상회의 참석 직후 2013년 10월 10~12일 기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하였다. 방문 둘째날에 대사관 신청사 준공식 제 막식과 기념식수 2009년에 는 롬복 섬에 소규모 산림전용·황폐화 방지와 산 림탄소축적 증진활동(REDD+) 시범사업 등 기후 변화 대응역량 강화사업을 추진했다. 정부 간 산림협력사업과 조림투자 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해 한국 산림청과 인도네시아 산림부 가 합의하여 2011년 인도네시아 산림부(현 환경 산림부) 내에 한-인니산림센터를 설치하고 이탄 지복원 200개였으나 200만 켤레 200만명 에 달하는 실업자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 며 2011 년에는 고려독립청년당 총령인 이억관에게 건국 훈장 애족장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집권당 총재로서 풍부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1999년부터 지난 다섯 차 례에 걸친 총선에서 대중적인 지지자들은 메가와 티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준 만큼 그는 투쟁민 주당을 결집하는 핵심인물이다. 포퓰리센터(Populi Center) 아디 아비딘 연구원 은 메가와티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에 대 해 2015년에 는 교육과 직무 사이의 불일치가 광범위했으며 2017년 목포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과 가깝게 지내왔다. (끝) 2002년 3월 30일. 김대중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통령 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메가와티 대통령은 먼저 북한 방문하고 이 어 남한을 방문하며 외교중재자 역할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2017년에 각각 15 2018)에서 일본의 지배가 단순한 식민 통치만 이 아니라 2018년이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과 성 장 2020년 1 2020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KB부코핀은행의 지분율을 67%까지 확대하며 경 영권을 확보했다. 최근 수년간 동안 한국계 은행이 앞다퉈 인도네 시아에 진출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출 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마진률이 한국보다 3배 정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중은행의 예대 마진률은 약 1.17%p에 불과한 반면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 1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무역과 공급망 붕괴가 산업에 타격을 입혔다. 최근 2023년에도 섬유·봉제 수출은 전년 대비 15.95% 감소했는데 2021년 기준 49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 9월 한국타이어 는 서부자바주 브까시 지역에 있는 공단에 총 3억 53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해 1단계 완공 한 인도네시아 공장은 승용차용 타이어 2022 년 석탄을 450억 달러 수출했다. 하지만 2023년 12월에는 발리-인천 노선도 주4회로 증 편했다. 이에 따라 양국 간의 직항 편은 주 31회가 되면서 인적교류가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 미국 2023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베트남의 섬유·봉제 경쟁력을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베 트남이 섬유·봉제 수출에서 우위를 점하는 주요 요인은 낮은 생산 비용 2023년 상반기 동안 인도네시아 를 방문한 한국 관광객수가 14만5천 명으로 올해 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낙관하면서 2023년 인 도네시아 방문 한국 관광객수가 연간 목표치 19만5천 명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주요 어젠다는 두 가지이다. 먼저 4월 10일 실시하는 제22대 국회 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의 사전 신고 2023년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아 출 간한 인도네시아어판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은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공동체를 소개하 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이제 고국에 있는 우리 동포에 게 인도네시아 한인들을 소개하는 <인도네시아 로 간 오랑꼬레아>를 출판했다”라며“재임 기 간 동안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인‘인도네시아 한인 역사 바로 세우기’를 무난히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라고 출판 소감을 말했다. 저자는“이주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인도네 시아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조심해야 하고 2023년에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한인사회 활동의 정상화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 증진을 위한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했다. 새해에도 한인회가 불확실 성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든든한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끝) 2024 대선 결산... 인도네시아 향배는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결선투표가 진행될 것이라는 정치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2024년 10월 현재 국가 예산 적자가 309.2조 루피아(약 194억 3천만 달러)에 달해 재무부의 자원 배분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I 19 에너지 문제 에너지 분야에서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석탄을 주요 수출 수입원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2024년 4분기 제조업 총생산의 5.34% 를 차지했다. 그러나 섬유 산업은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충격 2024년 기준 섬유·봉제 산업은 전체 고용의 2.75%를 차지 했다. 고용 외에도 이 산업은 제조업의 핵심 축으로 2024년 독립 기념일 이전에 대통령궁 건립 완료 등이다. △2단 계(2025~2035년)는 주요 경제 인프라 구축 완 료 2024년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 는 해외관광지로 일본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의 저개발 지역 주민 중 약 82.6% 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 구글과 테마섹의 연구에 따르면 2024년은 올해보다 0.1% 포인트 하락한 2.9%로 예측하고 있다. 즉 글로벌 경제가 2024 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률과 관련 2025년 인도네시아 경제 전망 그리고 도전과 기회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2024년 10월에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임기 중 경제성장률을 8%로 끌어올리 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실질적인 임기 첫해인 2025년의 인도네 시아 경제 전망은 어떨까? 전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개발을 통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면 2026년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해라기보다 2027년은 5.2%로 내다봤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평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세계은행의 판단 근거는 분명하 다. 민간 소비가 다소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45년까지 주요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해외 투 자를 유치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구축할 예정이다. 정부 예산은 토지개발 20년 뒤에도 참고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해외 한인 언론의 중요 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조: 뉴스는 오늘을 기록하지만 결국 내일의 역사 책이 됩니다. 이주민은 본국에서도 212.1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이는 전 세계 누적수주액 기준 10위 27개 문단으로 구성된 이번 성명은 서문에서 양국 정상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 계’격상 합의를 명시하면서 ①전략적 협력 ②실 질협력 ③인적교류 ④지역·글로벌 협력 분야별 로 협력 내용을 언급했다. 두 정상은 또 장관급 공 동위원회·차관급 전략대화 등을 통해 양국 간 전 략적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져 온 데 만족감을 표하 며 외교·국방 분야에서 2+2 회의 등 신규 협의체 설치를 모색하는 한편 방산 분야 협력이 상호 신뢰 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표상임을 재확인하면서 역량 강화와 연구·개발·공동생산을 더욱 강조 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지속 증진하기로 했다. 아울 러 양국은 철강·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진행 중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2년 임기의 의장에 취임했다. 한편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2년 11월 8일 발리 민주주의포럼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이 명박 대통령에게 양국 간 관계 증진에 대한 공로 로 인도네시아 최고 훈장인 ‘빈땅 아디뿌르나’ 훈장(Bintang Republik Indonesia Adipurna)을 수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4년에 인도네시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첫 번째 대통령이다. 1949년 동부 자 바주 빠찟딴 지역에서 퇴역 육군 준위의 아들로 태 어나 1973년 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정계에 진 출하면서 군을 떠날 때 4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2000년 압두라흐만 와히드 정권에서 에너지광물 장관으로 입각해 뒤 정치·안보조정장관으로 승 진했지만 1년 뒤 탄핵사태에 직면한 와히드 대통 령의 비상사태 선포 요구를 거절하다가 해임됐다. 2004년 메가와티 정부에서 정치·안보조정장관 으로 재임명됐지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다시 물러 났다. 이후 그는 민주당을 창당해 2004년 대선에 서 출마해 인도네시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 박근혜 대통령 2년 후인 1991년에 완전 대화상대국 으로 격상되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2년 9월 2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다시 만났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이 가장 심각한 문제 라고 지적하고 2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현지 총자산은 163억 달러(약 21조 5천억원)에 이른다. 2010년 전후에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의 인도 네시아 투자가 이어진다. 롯데마트가 2008년 10 월에 인도네시아 마크로(Makro) 19개점을 인수 3. 자본·기술집약산업 진출 시기: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1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하며 우리나라 유통업체로서는 최초로 인도네시 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0년 8월 직접 투 자 방식을 통해 수도 자카르타에 간다리아 시티점 (Gandaria City)을 오픈했고 2위 후보를 놓고 2024 년 6월 26일에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특히 대선 이후에는 불확실성이 해소돼 국내외 투자가 본격적 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또한 2024년 11월 27일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주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는 전국 규모의 지방선거가 열린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는 지방선서를 예정된 11월 27일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선만큼 중요한 인도네시아 국정 어젠다는 동부칼리만탄에 건설할 신수도 누산타라(Nusantara)의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인도네시아 대국 만들기 사업 가운데 하나인 행정수도 이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장남 기브 란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쁘라보워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기브란을 대선에 출마시켰다. 조코 위는 2014년 독립기념일인 8월 17일 이전까지 행정부 일부를 옮기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 내년 독 립기념일 행사는 누산타라에서 거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수십년이 걸릴 신수도 메가프로젝트 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포석이다. 신수도 누산타라 1단계 사업의 목표는 2024년까지 대통령궁 2장 경제·비즈니스 2차 2층 은 작은 도서관과 주말 예배당으로 사용되며 3. 발전기(1988~2002년): 노태우 정부부터 김 대중 정부까지 1) 협력의 에너지 확대와 성과의 축적 이 시기에는 양국 간 실질 협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정비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 하기 위한 발전 동력이 만들어졌으며 30%씩 투자해 설립한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연간 생산능력 300만톤 규모의 동남아 최초 일관 제철소를 완공해 가동한지 4년만에 누적 판매량 1 30.1억 달러) 그리고 기 타(전기 300년 넘게 이어지길 바랍니다. 손현규 | 연합뉴스 특파원 30년의 정직한 만듦새 300년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함께 걸어온 30년 335개 와 13 335개와 13 34.7억 달러) 그리고 건축이 14.2%(108건 36%를 득표해 힘겹게 당선된다. 부패가 만 연한 행정을 뜯어고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불시 현장방문(blusukan)을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개 선방안을 찾아 행정개혁을 단행했다. 시내 중심가 도로를 장악해 교통과 미관을 해치는 노점상들과 수십 차례 면담을 통해 새 유통센터로 이전시키는 등 대화와 설득을 통한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조코위는 2012 년에 자카르타 시장에 당선돼 특유의 발로 뛰는 지도자로서 종횡무진하면서 큰 성과를 냈다. 히로시마 G7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2023.05.21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53 이어 대중적인 인기가 급상승한 조코위는 2014 년에는 투쟁민주당(PDIP) 대통령 후보가 되어 명 문가 출신인 쁘라보워 수비안또 그린드라당 총재 와 맞붙어 대권을 거머쥔다. 조코위 대통령은 전 국을 누비며 민생을 챙기면서 높은 인기를 얻어 2019년에 쁘라보워 후보와 다시 격돌해 연임에 성공한다. 조코위 대통령의 국정활동을 알리는 소셜미디어 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의 팔로워는 각각 4 3D 프린팅 3년 뒤면 창간 3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축적해 온 미디어 자산을 바탕으로 다가올 30주년을 향해 준비 중이신 특별한 기획이나 발전 구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신성철 대표(이하 신): 『한인뉴스』의 뜻깊은 창 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30주년은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0년은 뉴스를 생산한 시간이 었고 3년 반가량의 일제 강점기에 민족 의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3월 30일 김 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와 한반 도 및 동아시아 등 지역정세 3장 외교로 구성됐다.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7 1장에는 인도네시아 1호 한인 장윤원부터 1940년대에는 일제가 강제로 파견한 포로 감시원 등 일본군 군속의 대규모 인도네시아 이주와 항일운동. 그리고 일부는 일제 패망 후에 귀국하지 않고 잔류한 한인들 이야기. 한인회와 한인단체 3점 이상인 기업은 파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도 인도네시아는 뒤처지고 있다. 비교우위지수(RCA)에 따르면 3차 및 4차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 진행하면서 4.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노무현 정 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 전략적 동반자 관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동행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기간에 한국 과 인도네시아 양국 외교사는‘전략적 동반자 관 계’로의 격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양국은 자유민 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동 반자라는 인식 하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크게 증대 시킨다. 200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이 후 양국 간 협력이 정치·경제·방산·문화·인 적교류·국제무대 등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매년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여 협력관계가 급속히 증진되었다. 2015년까지의 무역액 500억 달러 달성 400개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인 한 국기업이 투자한 유통기업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008년 말 대형마트 ‘마크로’ 19개 점을 인수 하며 국내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시 장에 진출했다. 2019년 12월 롯데마트는 중부자 바주 뜨갈 지역에 인도네시아 50호점을 열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 유통업계 역시 온라인 중 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10대 도시 대형 점 포와 중소 도시 거점 점포를 연결해 전국적인 물 류 네트워크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3년 6월 자카르타 메가꾸닝안 지역의 복합단 지인 ‘찌뿌뜨라 월드 자카르타‘에 복합쇼핑몰 인 ‘롯데쇼핑 에비뉴점‘을 오픈했다. 유통산업에서 현지 한인이 운영하는 유통기업과 슈퍼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유통기업들은 먼 타국에서 한인들의 식생활을 책임져 주었을 뿐 만 아니라 400개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편의점에는 라면과 떡볶이 등 한 국 식품을 쉽게 볼 수 있다. 롯데몰 내부의 상설행사장 KOREA 360 8 I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인 한국기업이 투자한 유통기업이다. 롯데마트 는 2008년 한국 유통 기업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 로(Makro) 19개점을 인수하며 현지 사업을 확대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매장 50곳 을 운영 중이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 유통업계 역시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 는 만큼 10대 도시 대형 점포와 중소 도시 거점 점포를 연결해 전국적인 물류 네트워크 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3년 6월 자카르타 메가꾸닝안 지역의 복합단 지인 ‘찌뿌뜨라 월드 자카르타’에 복합쇼핑몰인‘롯데쇼핑 에비뉴점’을 오픈했다. 유통산업에서 현지 한인이 운영하는 유통기업과 슈퍼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유통 기업들은 먼 타국에서 한인들의 식생활을 책임져 주었을 뿐만 아니라 400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400톤급 잠수함 3척을 순차적으 로 건조했다. 또한 양국은 다목적 전투기(KF-21)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최근 KF-21 분 담금 연체와 인도네시아 기술자의 기술 유출 시도 문제로 술렁거리고 있다. 2024년 인도 네시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미해결된 사항이 원만히 해결돼 양국 방위산업 협력이 더욱 확 대되기를 기대한다. (끝) 4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466조 루피아(약 34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며 5. 제2차 성숙기(2017년 이후): 문재인·윤석열 정부 그리고 미래 1)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과 CEPA 발효 제2차 성숙기에는 한-인니 관계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EPA)을 발효하면서 양국은 50년을 넘어 영원 한 미래 동반자로 발돋움하는 시기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7년 11월 9일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 의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자카르타에서 60㎞ 떨어 진 대통령궁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 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한-인니 공동번영과 평 화를 위한 공동비전성명(ROK-ROI Joint Vision Statement for Co-Prosperity and Peace)’을 채택했다. 총 4개 분야 500루피아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실제 유가가 90~100달러로 오르고 루피아 가치가 떨어지면 정부 부담은 훨씬 커진다. 쉽게 말 해 500만 명의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71조 루피아 규모의 무료급식 프로그램 예산과 향후 4~5년 안에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하려는 계획에 예산이 집중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5년 국방 예산은 165.2조 루피아 로 전년 175.1조 루피아보다 5.65% 삭감했다. 이 같은 대규모 복지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 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율이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최저 수준이다. 경제 규 모 대비 재정 규모가 작다 보니 대대적인 세수 확보 없이는 충분한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없다. 18 I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수입을 확대하기 위해 2025년 1월부터 부가가치세(VAT)를 1%P 인 상하여 12%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부가가치세는 세수입의 비중이 큰 만큼 국가 세수입 증 대가 예상된다. 2025년은 인도네시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 이나 전쟁과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변화 등 혼란스러운 글로벌 상황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될 전망이다. 다음은 현지 언론 보도를 정리한 2025년 인도네시아 현 안 문제의 해법이다. 식량문제 인도네시아의 농촌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큰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기상기후지질청(BMKG)은 2024년 1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라니냐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지역에서 예년보다 많은 강우가 예상돼 농경지가 침수되어 농 업 생산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500만명과 1 500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운다. 1961년 8월 9일 유형배는 자카르타 특별법원에 서 정식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북한 출 신인 유형배는 수카르노 정권의 2인자였던 수반드 리고 외무상의 평양 방문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는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을 자주 왕래 하며 사업을 키운다. 유형배는 1967년 이슬람 신 자가 되고 500여명이 자바섬 자 카르타 500여명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도착 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 나서며 인도네시아까 지 전선이 확대되고 억류한 연합군 포로(와 그 가 족)의 수가 26만 명을 넘어서자 이들에 대한 감 시와 감독을 위해 1942년 3월에 군사목적(군인 500여명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후 대림산업은 반뜬주 찔 레곤 철강단지 내 냉연제철공장을 EPC(설계·조 달·시공) 방식으로 수주했다. 이 공사는 1985년 에 5월에 착공해 1987년 5월에 완공했다. 1979년에 자카르타지사를 설립한 쌍용건설은 이듬해 수마트라 횡단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해외 고급 건축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쌍용건설 은 그랜드 하얏트호텔 등 인도네시아에서도 굵직 꿁직한 랜드마크를 세운다. 그랜드 하얏트호텔은 쇼핑몰 플라자인도네시아를 포함하는 당시로서는 초호화 복합단지로 총공사비 1억2천만달러 규모 이다. 이 호텔은 수하르토 대통령의 2남 밤방이 소 54 I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유한 비만타라그룹이 발주한 프로젝트이다. 인도 네시아 군부와 관계가 각별했던 쌍용건설은 자카 르타 증권거래소II 528조 루피아(약 90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도 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다시 강조할 경우 6)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인 조직 600명에 달 했다. 그들은 일본군과 분리해서 귀국할 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인 공동체를 만들었 다. 한국은 광복 후 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과 달 리 귀국선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7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금융사들이 난립해 있다. 더욱이 인 도네시아 현지 은행들의 독점 체제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엄격한 감독은 외국계 은행 에게는 어려운 여건이다. 한국계 은행들은 현지 진출 초기에 현지에 진출 한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금융 영업에 초 점을 맞췄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 은행인 빈땅마눙갈은행(PT Bank Bintang Manunggal)을 인수를 시작으로 이후에 진출한 한국 계 은행들도 인수·합병을 통해 현지화 전략으로 리테일(소매) 영업을 확대하는 등 변신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3 최근 인도네시아 금융산업에서 디지털 뱅킹을 확 대되면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에서 비대면·디 지털 기반의 금융서비스 등 첨단 금융서비스를 선 보이고 있다. 기타 리스업으로 750만 달러 규모의 도로 공사 국제입찰에서 도급계약을 수주했다. 북부술 라웨시주 마나도(Manado)에서 아무랑(Amurang)을 잇는 연장 82㎞ 고속도로는 인도네시 아 정부가 도서지역산업개발사업의 하나로 추진 한 프로젝트이다. 국제실업은 호주와 일본 건설 업체와 협력해 시방서를 준수한 양질의 시공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다음 공사도 수주했다. 1977 년 북부수마트라 아엑나울리(Aek Nalui)~따 루뚱(Tarutung) 도로공사는 공사금액 1 755 개와 5 755개와 5 777만 달러)가 배정된 신수도 누산타라 건설 국가예산은 조정이 불가피하다. 앞서 프 라보워 대통령은 10월 24일부터 나흘 동안 중부자바주 마글랑에서 열린 내각 수련회에서 누 산타라 프로젝트를 오는 2028년까지 완공시키겠다고 밝혔으나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2025년 국가예산은 프라보워 정부의 우선 국정과제인 식량 80%가 민간 부문에서 유입될 전망이다. 이 프로젝트는 국토 균형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8월 17일은 독립기념일이다. 특히 독립기념일 즈음에는 보름가량 축제 분위기 가 이어진다. 인도네시아 독립은 보통 수카르노와 하타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투쟁으로 설 명된다. 실제로 그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지금과 같은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되는 과정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다. 바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점 령기다. 역사학자 이선 마크(Ethan Mark)는 저서 『제2차 세계대전기 일본의 자바 점령』(Japan’s Occupation of Java in the Second World War 8월 24일 950 만 달러 9개 증권사 등 28개 한국 금융사가 진출했 다. 이들은 그동안 약 27억 달러(약 3조5천700 억원)를 투자했으며 9학년)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51 아버지 AI 시대에 정당한 활용과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조: 지난 30년 동안 쌓인 기사들은 공동체의 기억 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기록은 기관과 단체 별로 흩어져 있습니다. 한인회와 상공회의소 APEC 정상회의(11월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Bantuan Langsung Tunai) 제도를 도입했다. 조 코위 정부는 보조금을 일부 줄이고 CJ 등과 같은 전 자와 바이오 산업이 진출해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급등하자 CJ 등과 같은 투자성공 사례를 낳는 기반 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봉제와 신발 등 노동집약적 한국 기업이 동남아 국가를 투자 대상으로 주목한 이유 는 원화의 절상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이 발효되면서 양국 경제협력이 50년을 넘 어 100년을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앞서 인 도네시아는 지난 2020년 11월 고용창출법(일명 옴니버스법)을 제정해 경직된 노동시장의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인도네시아 CEPA는 양국 시장을 개방한 다는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인 FTA와 비슷 한 협정이다. 하지만 CEPA는 상품과 서비스 교 역 GDP 성장률 8%를 목표로 한다. 이 조직의 경영진 22명 가운데 9명이 미국 아이 비리그 출신이고 Global Value Chain Hectic(엄청 바쁜) Honestly(솔직히) 등이 있다. 흔히 사용하는 구어체 문장의 예를 들면 IBK인도네시아은행 IBK인도네시아은행 등은 각각 현지 은행 두 곳을 인수·합병(M&A) 하면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국민은행은 2018 년 7월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 주가 됐고 ICT(정보통신기술) 등 투자와 협력을 고도화시 켜 나가고 있다. 또 한류에 대한 인식이 인도네시 아 국민 저변으로 확산되면서 양국 간 문화에 대 한 이해와 교류가 심화됐다. 2006년 4월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하산 위라유다(Hasan Wirayuda)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IFG 프로그레스의 총요소생산성(TFP IMF는 2023년에 이어 2024년 에도 약 5%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도네시아의 경제 회 복세가 비교적 강하다고 평가했다. IMF는 이어 인도네시아의 2024년 경제 성장률은 긴축 재정 및 통 화 정책과 원자재 가격의 정상화로 인해 다소 둔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도네시아 인의 한국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거주 ITC IT와 비즈니스가 만든 한영혼용체 판교 지역에는 IT 기업과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판교 사투리’ 는 오랜 전통의 방언이 아니라 JC케미칼 JIKS)을 위해 당시로써는 거 금인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최 회장의 유전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인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 표는 2020년 1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큰 금액의 장학금을 JIKS에 기부하고 JSP)-복합화력발전 건설 프로젝트(2018) K-POP 댄스 등 다양한 프 로그램들이 순차적으로 제공될 계획이다. 이 기사를 쓰는 나 역시 《무지개 공부방》을 찾 는 학생들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데 작은 보탬 이 되고자 지난 5월 <다문화 한마음 큰잔치>와 이 번 인터뷰를 계기로 500여 권의 영어책과 한글책을 기증했다. 앞으로도 뜻이 있는 한국인 학생들과 함 께 《무지개 공부방》에서 봉사 활동을 계획 중이 다. 《무지개 공부방》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더 큰 꿈을 품고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K-마트 등이 있으며 K-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확산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번 조사에서 한류 경험자의 절반 이상(50.7%)은 ‘향후 한국산 제품·서비스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3.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제품·서비스별로는 식품(64.7%) 이 가장 높았으며 KB 부코핀은행 등 순차적으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 시장에 진출해 소매금융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 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로서는 처음으로 한화생명 (Hanwha Life Insurance)이 2013년 현지법인 을 설립해 영업하고 있다. 한국 증권사도 속속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NH 투자증권이 지난 2009년 현지 증권사와의 합작 사 형태로 처음 진출한 이후 키움증권과 미래에 셋대우 KCC글라스 KEB 하나은행 등 여러 기관 에서 상가 월세를 보조 받았으나 KF-21 전투기 공동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최초 의 국가가 인도네시아이다.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7 냉전시대인 1973년에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중 남북한이 대사관을 동시에 상주시킨 첫번째 국가이다.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도네시아인 의 한국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KMK LG 상사 LG에너지 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NGO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였다. 인도네시아 전역에는 코이 카가 파견한 한국어 OK뱅크인도네시아 OK저축은행은 2019년에 OK뱅크인도네시아 그 리고 IBK은행은 2019년에 On The Way(가는 중) PT Miwon Indonesia)이다. 인도네시아 진출 초기 미원의 과장급 한국인 영업 사원들은 경쟁이 치열한 대도시의 일본과 대만계 브랜드 아지노모도와 사사(Sasa)와의 경쟁을 피 해서 섬과 산간지역을 찾아다니며 미원을 판매했 다. 특히 무더위 속에서도 단정한 복장을 한 한국 인 중견사원들이 장터를 누비고 다닌 열정적인 모 습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미원은 판매 영업부터 시작해 Pembela Tanah Air)에 자원하면서 군인으로 성장한다. 1965년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인 9·30사태 (G30S)를 당시 수하르토와 함께 진압하면서 수 하르토 정권의 1등 공신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 기도 했으나 Perhimpunan Indonesia)의 총무(1922~1925)와 회장(1926~1930)을 맡으며 반식민·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토착 엘리트 계층이었던 인도네시아인 유학생들이 보 인 이와 같은 태도 변화에 네덜란드 당국은 당황했으며 R&D 투자 확대 That’s why(그게 이유야) Tokopedia Total Factor Productivity) 분석은 섬유 산 업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TFP는 주어진 투입 대비 생산 효율을 측 정하는 지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섬유 및 의류 산업의 TFP는 2013년부터 꾸준히 하락세 를 보여 왔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 생산성뿐 아니라 노동자의 업무능력 Traveloka 등 자국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발판삼아 제조업에 도 ‘IT 혁신’ △한국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선 도 제조업체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등을 추 진하고 있다. 최근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5대 육성산 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YANG CHIL-SUNG [신간]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재인도네시아 한인회가 오는 9월 20일 한인 의 날에 즈음해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를 출간했다. 데일리인도네시아의 신성철 발행인과 조연숙 편집장 공저한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는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간은 인도네시아에서 한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특별대담] 기록하는 언론이 디아스포라의 미래를 연다 한인뉴스 30년·데일리인도네시아 27주년 기념 기획 대담 인터뷰 “기록하지 않는 공동체에는 미래가 없다.” 1996년 7월 첫발을 내디딘 『한인뉴스』가 30 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27년간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주요 현안을 매일 실시간으로 기록해 온 『데일리인도네시아』 역시 3년 뒤 창간 30주 년이라는 뜻깊은 이정표를 앞두고 있다. 1999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인 인터넷 신문으로 출발한 데일리인도네시아는 지난 27년간 정교한 취재와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동포사회의 정보 불균형을 해 소하고 지성적 공론장을 구축해 왔다. 월간 지면 매체와 데일리 디지털 매체라는 각자 의 영역에서 두 매체는 상호 보완적 연대를 통해 한인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 축을 이뤄왔다. 데일 리인도네시아를 이끌어온 신성철 대표와 조연숙 편집장 부부를 만나 그간 축적해 온 언론 아카이 브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특집]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 한국은 박정희 정부의 주도로 산업 구조 근대 화와 자립경제의 확립을 촉진한다는 기치 아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 을 시행한 데 이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 획’(1967~1971년)을 한창 진행할 때 [특집]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2 1) 중화학공업 literally the best!” (솔직히 literally(말 그대 로) oligarchy) 하에서 부패와 친족주의가 만연하는 필리핀 정치처럼 되는 “필리핀 화”의 징후로 보고 있다. (끝) one enemy too many)는 슬로건은 단순한 실용주의를 넘어 one enemy too many)라는 외교 슬로건은 겉보기에 실용주의 외교처럼 보이지만 pocha)가 현지에서는 떡볶이 tadi malam makanannya enak banget traffic-nya hectic banget!” (나 출근하는 길인데 ‘다문화 가정 성공 1호’ 라 자랑하는 김하나 씨의 이야기를 할 때 고 교장 님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다 문화 가정 학생들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헌신 을 잘 보여준다. 또한 ‘버클리 마피아’를 보면 ‘수미트로노믹스’로 고도 경제 성장 꿈꾸는 프라보워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경제정책의 기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취임 직 후 보수적 재정정책을 고수해 온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강대국들과 동등하게 협상하는 ‘능동적 외교’를 지향했다. 다극 질서에서의 다중 포지셔닝 프라보워의 외교는 하타의 원칙을 계승하면서도 ‘스케일업’ 같은 영어식 용어들이 직설적이고 간결한 표현과 결합되어 핵 심 메시지를 더욱 빠르게 전달한다. 때로는 이러한 언어 사용이 유머러스하게 풍자되기도 하 는데 ‘올라운더’ ‘이 나라를 직접 세우고 구 한 주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훗날 군부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강력한 명분이 되었다. 5. 수하르토 정권과 군부 독재의 시작 독립 이후 민간 정치인들이 혼란을 거듭하자 ‘이 슈’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의 주파트너로 참여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얼마 앞둔 11월 ‘정책’보 다 ‘배분’이 권력 유지의 수단이 되었다. 정치연구소 파라 신디케이트(PARA Syndicate) 정치분석가 비르디카 리즈키 우타마는 “엘 리트의 복종 위에 세워진 안정”이라 표현했다. 프라보워는 이를 능력주의나 개혁으로 포장하 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 배분 자체를 국가 안정의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그러나 엘리트 간 연 합이 곧 국민적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잇단 거리 시위는 그 괴리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외교: 광폭 외교… 원칙과 방향성은 의문 프라보워 외교는 활발하지만 방향은 불분명하다. 그는 베이징·뉴욕·카이로를 오가며 “균 형 잡힌 독립성”을 강조했지만 ‘정치적 안정’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문제다. 값싼 기름은 당장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만 ‘피봇’ ‘한-인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 고 그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 빈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국빈 방문 중에 원자력협력협정과 관광협력협 정이 양국 대통령의 임석 하에 서명되었고 “ 아버지가 40년 전 제안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꿈 을 이제 프라보워 대통령이 현실로 만들었다” 고 언급했다. 프라보워 정부의 경제정책은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장점으로는 △고도 경제 성장을 향한 국가 비전을 명확히 제시 △산업화·다운스트리밍 전략으로 부가가치 제고 △ 협동조합·중산층 강화를 통한 사회 기반 확충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8% 성장 목표의 과도한 낙관성 △비상 재원인 SAL을 대규모로 투입할 경우 미래 재정 여력 축소 우려 △물류 병목 “150호 한인사회 역사를 쓴 홍석영 편집장의 담담한 퇴장”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2013년 1월호부터 지금까지 150권의 ‘한인뉴스’를 엮어온 홍석영 한인뉴스 편집장이 정든 자리를 떠난다. 격동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인뉴스’의 변천 사를 함께하며 한인사회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그의 발자취는 단순한 편집장 의 퇴임을 넘어 “2024년 인도네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 3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이후 보낸 2023 년에 대중교통을 비롯한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21세기의 대사건인 코로나 사 태가 언제 있었는지 쉽게 망각할 정도로 모든 일상이 정상화됐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즈음에 시작 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그에 뒤따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 습·침탈 등으로 2023년은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전쟁의 해’였고 “2026년 인도네시아 “Gue lagi on the way ke kantor “Terima kasih”는 “terima”는 “받다”를 의미하고 “kasih”는 “사랑 “가 급적 아삽(ASAP)하게 해 주세요” (가급적 빨리 해 주세요) 등으로 표현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데일리 스크럼(daily scrum) 갑시다” (일일 업무회의에 갑시다) “모든 사람에게 싼 기름”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지원”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기름값’보다 ‘누구를 지원하느냐’ 이제 인도네시아의 핵심 과제는 보조금을 완전히 없애느냐 유지하느냐가 아니다. 더 중 요한 것은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바꾸는 일이다.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싼 연료를 제공하기보다 △저소득층 “목표와 실행 방안이 어느 정도 얼라인(align) 된 거 같네요” (목표와 실행 방향이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다) “복잡다단한 인도네시아 이슬람 쉽게 이해하기”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에서 좀 살다 보면 현지 사회가 이슬람 사회인지 잊고 살 때가 많다. 물론 인도네 시아는 국교가 이슬람은 아니지만 인구 약 2억8천만 명 가운데 85%가량인 2억4천만 명이 무 슬림으로 이슬람 주류사회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중동지역 은 물론 다른 나라의 이슬람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도는 이슬람의 본거지인 중동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고 “아군도 적군도 없는 인도네시아 정치”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인 대부분은 공식 석상에서 발표를 하거나 심지어 사석에서 자기 의견을 밝힌 후 에도 맺음말로 “만일 여러분의 마음을 언짢게 했다면 용서를 빕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 니다”(Mohon maaf jika ada kata kata yang kurang berkenan dan terima kasih atas perhatiannya)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사람의 이 말 속에는 이 곳 사람들만의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적인 큰 의미를 내포한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선을 위한 TV토론회에서 각 후보 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인 후에도 형식적이긴 하지만 인사말과 제스처로 서로에게 예의를 다 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다시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항상 남겨 둔다.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3명의 대선 후보 모두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가 ‘루꾼’(rukun “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이 유지되고 기독교가 확장되지 못 했을까?” 1602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를 점령하면서 식민지를 확장한 네덜란드 동인도회 사(VOC)는 소수의 인력과 병력으로 식민지화를 하는 과정에서 정복보다는 향신료 무역 “인도네시아 외교력의 지평을 넓히는 프라보워”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지난 10월 20일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세안을 넘어 글로벌 을 지향하는 외교 전략을 천명했다. 이날 프라보워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인도네시아의 미 래 외교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제3차 세계대전을 경고하면서 ‘군사동맹 반대’와 ‘식민지화 반대’ 및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외교’(Independent & Active Foreign Policy)를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반복했던 아세안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대신 ‘좋은 이웃 정책’(Good Neighbor Policy)을 외교 정 책의 기반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천 명의 친구는 부족하고 “인도네시아 정치도 필리핀화 되는가?”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1986년 2월 25일. 성난 필리핀 군중은 21년 장기 집권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 권을 붕괴시켰다. 당시 28세의 나이로 하와이로 쫓겨났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일 명 봉봉)는 2022년 대통령에 당선돼 그해 6월 말부터 필리핀의 대통령 직을 수행하고 있 다. 아버지가 피플파워로 축출된 지 36년 만에 필리핀 대통령에 올랐다. 32년간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998년 민주화 운동에 이은 폭동으 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한편 수하르토가 축출된 지 26년이 지났으나 수하르토 가문은 정 치적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피플파워로 독재 정 권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중심제의 공화제를 채택했지만 각각 다른 길을 가 고 있는 것일까? 1998년 5월 수하르토가 하야하면서 수하르토 가문의 정치적 야심은 물거품이 되었다. 수 하르토 이후 개혁시대(Era Reformasi) 초기에 강한 반(反) 수하르토 정서로 인해 수하르 토의 자녀들은 즉시 수하르토의 정치 기반인 골까르당 지도부에서 추방됐다. 정치 분석가 들은 수하르토 가문이 주요 정치 세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다. 인도네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정치전 문가 마젤로 라이노 훼니스 연구원은 지난 1월 5일 자카르타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인샬라”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관광지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성가시다. 섣불리 대응하면 계속 따라 붙기 일쑤다. 이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뜨리마 까시~”라고 말한다면 “프라보워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어디서 왔나” 논설위원 신성철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국가가 경제의 방향을 정하고 자원을 모아 국민의 생활을 바꿔 야 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초대형 국부펀드 겸 전략 투자기관 다난타라(Danantara) 를 통한 국가 자산 운용 “한국 기업은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왔나?”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대한민국은 1960년대 외환보유고가 1억 달러 남짓할 정도로 국가재정이 형편없었던 시 기에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해외직접투자(FDI)를 과감하게 실행했다. 해외직접투자를 결 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왜 인도네시아를 선택했을까? 해외직접투자를 하려면 기업이 갖고 있는 인력 “한국기업 “현대차의 투자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완전 무공해인 수소차와 전기차가 매우 인상적이 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9 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3번째 한-아세안 특별정 상회의 기간 중 현대자동차와 투자협약식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어 조코위 대통령은 2020년 1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관계자와의 연례 회의에서 “2024년 자카르타에서 동부 칼리만탄 주로 이전하는 신수도에는 전통적인 내연기관 차 량의 운행을 금지하고 친환경 자율주행 전기차만 운행하게 할 것”이라고 친환경 미래자동차로의 변화를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가 약 1조8 《데 일리인도네시아》 신성철 대표 《무지개 공부방》 은 한 국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을 제공하며 《한인뉴스》 이영미 편집위원 《한인뉴스》의 무궁한 발전과 임직원 및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과 건승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4 I 한인뉴스 2026년 7월호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시간과 기억이 담긴 《한인뉴스》 의 역사 한인뉴스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96년 창간 이후 한인뉴스는 인도네시아 교민사회의 든든한 소통 창구로 자리 하며 교민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오랜 시간 교민사회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공동 체 발전에 기여해 온 한인뉴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30년은 인도네시아 한인사회가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해 온 시간이기도 합니 다. 한인뉴스는 그 여정을 함께하며 한인사회의 여러 순간을 지켜봐 왔고 가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강점이 있지 만 생산 방식은 사람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제조업 강 국의 꿈을 이루려면 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뛰어넘어 4차산업 기술로 직행을 추진하는 가운데 가루다인다와 가루다항공은 지난 9월 2째주부터 인천-자 카르타 노선을 기존 주3회에서 주4회로 증편했고 가치사슬)이 재편되면서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 러한 혼돈의 시대에 자원부국이며 잠재력이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GVC의 지각변동의 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의적절한 한-인니 CEPA 발효는 양국 간 경제 협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 가파른 원화 절상 및 임금 상승에 따른 제 조비용 상승으로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국내 노동집약적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을 모색 하게 됐고 각 시기별 챕터 서두에 시대적 특 징을 요약하여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주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조심해야 하고 각국의 주권을 존 중하고 갈룽궁 산속 게릴라본부 등에서 벌어 진 전투에서 활약했다. 반둥과 족자카르타를 잇 는 철도와 도로를 공격하고 감가상각 가속 감독했다. 이 중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인 도네시아 영화 최초로 키스신을 선보여서 사회 전 반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야기했다. 허영은 일제 말기 조선에서 총독부의 국책 영화 <너와 나>(1941)를 찍으면서 맹렬한 친일영화인 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 건너가서는 일본군 휘하의 포로수 용소에서 살아가는 호주군 포로들이 호화로운 하 루 일과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주는 <콜링 오스트 레일리아!>라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 사진 허영 [출처: Id Film Center]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61 제로 호주군 포로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고 감사합니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해준 도움 강력한 국영기업(BUMN)을 앞세워 핵심 자원을 통제하고 농 촌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국가 주도형 경제 체제를 완성했다. 프라보워 정부로 이어지는 혁명 정신 인도네시아 혁명기에 시작되어 수하르토 시절에 정립된 ‘국가 중심 같 은 해 아세안 국민 27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20년초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2022년 초반까 지 각종 회의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시립무용단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부채춤과 살풀이 공연을 선보였다.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결연 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서울-자카르타 이외에도 발리주-제주특별자치도 같은 해 12월에 첫 선적이 이루어졌다. 쌀을 수입하던 한국이 외국으로 쌀을 대여한 것은 건국 이래 처 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영 농기술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현대건설이 자카 르타와 남부 외곽 보고르(Bogor) 지역을 잇는 자 고라위(Jagorawi) 고속도로 건설계약을 체결했 다. 종합상사로 한남무역(1971년 쌍용그룹 인 수)이 1968년 진출하여 인도네시아에 시멘트를 수출하고 커피를 수입했다. 1973년 11월에는 한 일시멘트가 동부자바주 수라바야에 철근 생산 공 장인 한일자야(Hanil Jaya)를 설립했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원유 확보와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실로 1981년 5월에 코데코에너지 와 국영 석유회사 뻐르따미나(Pertamina) 간 서 부 마두라(Madura Barat) 유전공동개발 사업이 승인되었고 개개인의 삶과 가족 개발 조사 개발이 한창이던 거리 개인의 사랑 이야기와 국가 간 인연이 어떻게 맞물려 확장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여사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은 아버지 사르워 에디 위보워 장군의 외교관 경력에 서 시작된다. 사르워 에디 장군은 1974년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로 부임했고 개인적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며 거대 기업을 이끄는 오너나 실력 있는 기업인이 직접 정계에 진출하거나 장 관·고위 관료로 기용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에릭 토히르 현 청년체육부 장관이자 전 국영기업부 장관은 인도네시아의 손꼽히는 미 디어·스포츠 재벌로 거대한 내수 시 장을 앞세워 제조업에서 중국의 일부분을 맡게 될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해외 투자 유치에 있어서 금융보다는 제조업 분야 투자 비중이 높고 투자 여건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 투자부에 따르면 2022년 인도네시아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430억 달러로 사 상 최대 규모이며 거부 건강한 동포 사회를 만들어 가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한인뉴스가 앞으로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종이와 디지털을 아우르는 대표 매체로 더욱 발전하며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수 카르노 초대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 대통령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건설 등 한국 기업들이 이미 현지에 진출해 있었던 터라 인도네시아에 직접투자는 진출에 따른 초기 비용 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건전하고 역동적인 안정 국가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걸프 국부펀드와 협력하며 겉으로 보이는 숫자 너머 산업의 뿌리를 다시 들여다볼 때다. [끝] 견제의 실종 2024년 2월 대선 직후부터 프라보워는 거의 모든 정당을 포괄하는 거대 연정을 구성했고 결과적으로는 독립 이후 국가 운영의 틀에도 영향을 남겼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정치와 군 부 결국 그들은 대통령 권력의 도구였다. 대중의 눈에는 ‘엘리트주의적 집단’으로 비쳤다. 결국 수하르토 정권 붕괴의 한 원인으로 이어졌다. 이 경험 때문에 이후 어떤 정부도 연료 가격 인상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값 을 올리면 국민 반발이 크고 경 제 경남기업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였다. 동 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한 자카르타 한국학교도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1973년 9월 18일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쟁 후보들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프라보워는 거의 5년 전부터 대선을 준비해 왔다.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에게 패 한 직후 2019년 7월에 프라보워는 자카르타 도시철도(MRT)에서 정적인 조코위 대통령 과 극적인 만남을 연출했다. 그해 10월 프라보워는 조코위 2기 정부에 국방장관으로 입각 하면서 조코위와 손을 잡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수하르토의 전 사위 인 프라보워는 국방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높였다. 프라보워의 당선에는 조코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서민 출신으로 정 치적 기반이 약한 조코위 대통령은 2기 조코위 내각에 프라보워를 합류시키면서 야당 세 력을 규합해 하원(DPR) 의석수 70% 이상을 장악했다. 이로써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해 고용촉진법(일명 옴니버스법)과 신수도 이전 관련 법률 등 주요 국정 과제를 신속하게 처 리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임기 중 도로와 철도 경쟁국인 베트남과 방글라데시는 기술혁신과 저비용 구조로 무섭게 추격해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정책도 혼선을 빚었다. 2024년 무역부령 제8호는 수입 요 건을 완화했지만 경제 경제 성장 활성화 및 국가 안보의 강화 등을 주요 정책 목표로 추진한다. 수 하르토 정부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비(非)석유가스산업 부문 보다는 노동집약산업과 중 소기업 육성에 중점을 둔다. 또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자본집약산업과 수출지향산업에 해외 투자를 권장한다. 이 기간 코린도는 제지공장과 스포츠화 제조업을 가동한다.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V 경제 실익 경제·외교적 영향력 확 대이다. 방산은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수출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세워 잘살아 보겠다는 용기를 낼 무렵인 1963년 최 회장은 한국남방개발을 설립해 우여곡절 끝에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 해외투자 기업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이 5천 달러를 밑돌았을 때 경제안보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협력을 더 증진하겠다고 밝혔다.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이 많은 인도네시아가 한국의 공급망 안정화를 돕고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도 더 강해지고 있다. 프라보워 정부는 석유 경제와 비즈니 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으로 경제와 비즈니스 및 사회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끝) 경제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경제의 자립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다. 프 라보워 정부의 ‘거래 중심 성장전략’은 단기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산업 구조 개혁이나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사회: 침묵하는 시민 경제적 불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한국계 다문 화 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자택에서 한글 경제학자들은 프라보워 집권기에 국영기업의 역할이 더 커질 것 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농민단체 HKTI 회장을 역임한 프라보워는 당장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직후인 지난 2월 21일 조코위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아구스 하리무 르띠(45)를 농지공간기획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남 인 아구스 신임 장관은 이번 대선에서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구스 장관의 등용을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자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36)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2030년까지 세계 10대 산업국으로 진입하 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을 진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국가차원의 산업 로드맵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Industry 4.0’의 개념을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해 5대 제조업(식음료 경제협력 등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 을 포함하게 된다. 2) 문재인 대통령 경트럭용 타이어 등을 연간 600만개를 생 산할 수 있는 최신 제조 설비를 갖췄다. 2013년 12월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업 체 크라카타우스틸(PT Krakatau Steel)이 각각 70% 경프리깃함 경험을 함께 축적하고 공유하는 공동 체입니다. 그 중심에는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연결하고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며 한국 사회의 생활 리듬을 이해해 갔다. 무 엇보다 국가 재건을 향한 한국인의 집념과 자립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훗날 그는 한국에 서의 경험이 인생의 시야를 넓혀 주었고 고도 경제성장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는 한국 기업 취업과 유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주)보성에서 4명의 졸업생이 근무 중이며 고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 면 자동차 판매가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2023년 1월부터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포괄적 경 제동반자 협정(CEPA)을 발효됐다. CEPA는 시장 개방과 함께 경제 협력에도 무게를 두는 협정이다. 이번 협정을 통해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주요 품목 대부분의 관세가 즉시 철폐 또는 단계적 으로 철폐된다. 현대차는 이번 협정으로 자동차 강 판에 쓰이는 철강제품(냉연 고용 창출 △국가 안정: 정치·사회적 균형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발전 등이 다. 수미트로 박사는 또한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용 창출에 중점을 둔다. 농업·제조업·관광 같은 회복력 있는 산업을 지 원하는 동시에 곳곳에서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은 막 성장 단계에 접어들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부지 런히 발전하고 있었다. 도시 풍경은 현대식 건물과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루며 활기를 띠고 있 었다. 문화적 색채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도착한 첫날부터 이 도시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국은 또 한편으로 그의 사랑이 무르익은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군 장교였던 SBY와의 관 계는 이른바 ‘장거리 연애’로 이어졌다. SBY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공 격적 확장재정정책을 지지하는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를 기용했다. 이는 긴축에서 성장 중 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공 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한인뉴스』가 지난 30년 동안 공동체의 역사 를 기록해 왔다면 공급망 붕괴와 수요 감소가 주요 요 인이었다. 유엔 무역통계(UN Comtrade)에 따르면 공대학장과 건축본부장을 역임하며 자카르타 스망기 캠퍼스와 쁠루잇 소재 대학병원 등을 건축 해 현재의 캠퍼스 골격을 세운다. 로마 교황청은 이 공로를 인정해 1990년에 아트마자야대 개교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 장인 ‘실버메달’(Equitem Commendatorem Ordinis Sancti Silvestri Papae)을 장순일에게 수여한다. 셋째 딸인 장평화(1942~2016년)는 국립 인도 네시아대학교(UI)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 조교 로 근무하면서 공동 개발 확대다. KF-21 이후에도 항공 공동기자회견 공무원 이전(인구 20만명) 공식 외교관계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시기 개인적 신뢰와 네트워 크로 양국 관계의 토대를 닦은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베니 장군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군과 정보 공통된 흐름을 보여준다. 글로벌 문화의 영향 아래 두 지역 모두 글로벌 언어인 영어를 각 산업과 세대의 요구에 맞게 수용해 일상 언어를 변화시키 고 있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과거 미디어 그룹을 이끌었으며 이탈리아 명문 축구 클럽 인터 밀란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9월호 I 7 과 미국 프로농구 팀의 구단주를 지냈다. 현재도 언론 과도한 규제 과도한 이벤트 중심 정책보다는 안전 과실송금 보장 등 투자 안정 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투자법은 선언적인 내용에 그치지 않고 관련 법규정을 마련하고 2022년 3 월 밤방 수산토또노 신수도청장을 임명하면서 본 격적으로 이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45년 최 종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신수도 누산타라의 면적은 25만6000헥타르로 자카르타보다 4배 더 넓다. 인도네시아는 신수도 사업을 통해 국내외 투자를 유치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관료주의와 당리당략의 문 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관세 면제 광물 교내 나래홀 강당 앞에 최계월 회장 흉상을 설치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안 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나가면 산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 후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고인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한-인니 관계가 지금 과 같이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최 회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교민 사회 행사 교육 구조적인 문제 해결은 오롯이 인도네시아 정부 의 몫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일자리 창출’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회생 방안은 끝내 마련되지 못했다. 58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 흔 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인 섬유·봉제 산업은 고용과 경제 성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 네시아 통계청(BPS)에 따르면 국 내 회복력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 방 협력은 양국 관계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2022년 프랑스산 라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7 팔 전투기 42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며 국가 권력 간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대 표되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입법 국가 발전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이 시기 형성된 ‘친한(親韓) 정서’는 이후 영부인 시절까지 이어진다. 서울에 첫발을 내디딘 아니 여사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마침내 우리는 서울로 이주했다.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남산 언덕 인근의 꽤 큰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집 주변의 경치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넓은 마당에는 아름다운 식물 들이 가득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파랑 국가 재정 및 외교적 자율성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국과 협력하되 종속되지 않고 국가 통제를 확대하는 모든 조치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통치 방식이 마주한 제도적 조건도 수하르토 시대와 다르다. 인도네시아는 1998년 이 후 민주화 개혁을 거쳤고 국가가 석유 국가를 위한 희생 같은 가치관이었다. 이들은 일본 패전 이후 곧바로 네덜란드와의 독립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군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특히 중요한 인물이 바로 수하르토(Suharto)다. 그는 훗날 32년 동안 인도 네시아를 통치한 대통령이었는데 국가의 니켈 등 핵심 광 물 개발 정책과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주도했다. 군인 출신이자 거대 자원 비즈니스의 이해 당사자로서 국가 정책과 사기업의 이익을 조율하는 자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이처럼 이념이나 사상적 대립보다는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가 훨씬 실효성 있는 통 치 및 생존 방식이었던 문화가 수백 년간 축적되었다. 현대 인도네시아 정치가 이념적 스 펙트럼보다 정당 간의 연합 국가주의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점령기 속에서 만들어진 ‘국가의 틀’ 태평양전쟁 말기 국내 산업 보호 대책은 없었다. 값싼 수입산이 물밀듯이 들어오며 국내에서 직접 가공해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다운스트림 정책)이다. 부실한 작은 국영기업들은 과감히 합쳐서 덩치를 키우고 있는데 국내와 외국 기업을 연결했다. 특히 한국 기업이 현지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문화 적·제도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지한파’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한 친분 때문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과 산업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인도네시아 발전 모델과 연결하려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호영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2008.6~2011.3)는 2011년 발행된 소피안 와난디 평전(그라메 디아)에 “한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소피안 회장을 존경의 의미로 ‘빡 회장님(Pak Hoe Jang Nim)’ 또는 ‘Mr. Chairman’이라 부른다”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에게 조언 과 지침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조언자 역할을 했고 한국 기업과 인도네시아 정 부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도 맡았다”고 썼다. 외교관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 오늘날 한·인도네시아 관계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불린다. 그러나 이 관계가 처음부 터 제도적으로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창기에는 외교 인프라도 제도적 틀도 부족 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사람과 사람 간(People to People) 교류와 신뢰였다. 베니 장군은 국가 와 국가 사이의 통로를 열었고 소피안 회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았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오늘날처럼 외교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았고 정치·경제·군사 영역이 뒤 섞여 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개인의 판단과 신뢰가 국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컸 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는 지금과는 다른 궤적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외교는 문서와 협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국가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람이 곧 외 교다. 베니 무르다니와 소피안 와난디는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제도가 미비하던 시절 이들은 신뢰와 인간관계로 두 나라를 연결했고 그 토대 위에서 오늘의 한·인도네시아 관계 가 형성되었다. 지금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그들이 남긴 ‘성과’보다도 관계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오래된 진실일 것이다.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 덕분에 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경제적 호황을 누린다. 이 기간 한국 기업은 중화학공 업 국내총생산(GDP)에 서 민간소비가 55%가량 차지할 만큼 탄탄한 내수 시장은 유통 서비스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 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소비가 55%가량 차지할 만큼 탄탄한 내수시장은 유통 서비스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음식문화를 접한 인도 네시아 10~20대의 한식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겁다. 팬데믹 기간에 떡볶이로 대표되 는 K-분식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음식으로 는 떡볶이와 김밥을 꼽을 수 있다. 떡볶이의 맵고 짜고 단맛은 인도네시아 현지인 입맛에 잘 맞으며 국력은 커졌지만 국립 싱크탱크인 국가연구혁신청(BRIN) 자료에 따르면 프라보워 정부는 ‘식량 자립’ 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최대 공약인 ‘대규모 무상 급식 프로그램’은 단순 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이를 위해 ‘국가영양청’이라는 거대한 새 정부 조직을 만들고 국민 전체를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이려 했다. 인도네시아 지도자들 은 이런 ‘동원 방식’을 목격했고 국방·방산 등 여러 방면에서 후속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 령은 양국이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고 경제 네트워크를 고도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 제조기술 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 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이 ‘메 이킹 인도네시아 4.0’ 전략에 최적의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또 디지털 교육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맡았던 베니 장군은 수하르토 정부의 군부 실세로 한국기업을 후원했으며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맡았다. 수하르토 정부의 군부 실세였던 베니 장 군은 인도네시아 한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한국 기업을 후원했으며 국방장관 국영기업 사장 자리를 독점했다. 수하르토의 정치 기반인 골까르(Golkar) 당은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여러 직능 단체를 모아 거대 여당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반대파 정당들을 누르고 권력을 강화했다. 6. 인도네시아식 경제: ‘가족주의 자본주의’와 국가의 통제 인도네시아 혁명 지도자들은 식민지 시절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한 기억 때문에 서구식 자본주 의를 반대했다. 그래서 헌법 제33조에 “경제는 가족 정신(Kekeluargaan)을 바탕으로 함께 노 력하여 운영해야 한다”는 독특한 조항을 넣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주의 경제’는 서양에서 말하는 ‘재벌 가문의 독점 경영’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서로 돕는 상부상조(Gotong Royong)는 이윤만 추구하며 경쟁하는 서구식 시장경제를 경계한 다. 대신 온 국민이 한 가족처럼 서로 도와야 한다고 보았고 국영기업의 중심 구조가 재정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감 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재만 등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부자바 가룻 지역에서 활동한 민병대 빵에란 빠빡(Pangeran Papak) 부대에 자원한다. 이들이 민병대에 가입 한 시점은 194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빵에란 빠빡 부대’에는 조선인 4~5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칠성 국제 고립이라는 삼중고에 빠졌다. 수하르토는 권력을 장악한 뒤 UC 버클리 출신 경제학자 그룹을 불러들였 다. 위조요 니티사스트로 국제 네트워크 국제 시장에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유입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먼저 프라보워 대통령이 공약한 우선 국정과제인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경제성장의 주요 동 력이 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 국가예산에서 71조 루피아를 배정해 초등학교 어린이를 중심으로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진행하고 국제무대에서의 협 력 방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의사 전달이 있었다. 또 정보기술 분야에서 협력 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국제분쟁 중재 등 중견국 외교를 펼치면서 외교력을 과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냉전시대에도 미국과 소련에 치우치지 않는 비동맹운동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 또는 Asian-African Conference)를 1955년 자국의 반둥에서 개최해 비동맹의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했다. 반둥회의의 목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수립하고 국회 등 정부 핵심기관을 이 전하는 것이다. 2단계는 행정수도를 지원하기 위해 주거와 교육 국회와 주요 정당은 침묵했다. 시민사회는 수하르토 시대의 ‘침묵의 구조’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정치적 ‘안정’은 대 화와 타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과 복종으로 유지되고 있다. 프라보워의 통치 스타 일은 여전히 군사적 명령 체계를 기반으로 하며 군 장교와의 사랑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정치적 충성은 ‘안정’의 이름으로 제도화되었고 군만두 군부 군부 내부의 불만 군부 실력자 군부 중심’의 유산은 오 늘날 프라보워 정부까지 이어진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수하르토의 사위였고 특전사령관 출신이 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2024년 10월 취임 후 시행하고 있는 핵심 정책의 기조에는 과거 혁명 시 기의 유산이 견고히 자리 잡고 있다. 첫째 군속 군위안부 군은 식량 단지 개발 군의 재등장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군의 행정 개입이 민간 전문성의 약화를 초래하고 군인 프라보워에게 국가는 영토와 질서 를 지키는 조직이기도 했다. 경제적 자립과 국가안보를 함께 강조하는 그의 언어는 이 두 경 험이 만나는 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식량과 에너지를 확보하고 천연자원의 부가가치를 국내 에 남기는 정책은 경제 발전의 수단이면서 대외 의존을 줄이는 방안이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 에서는 중앙정부의 조정력과 대통령의 실행 권한이 강조된다. 2025년 2월 출범한 다난타라는 이러한 생각을 제도로 보여준다. 국영기업 자산과 배당을 바탕으로 전략적 투자를 추진하는 이 기구에 대해 프라보워의 친동생 하심은 아버지가 40년 전 제안했던 구상의 실현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가족의 회고이며 당시 구상과 현재 제도가 같 다는 뜻은 아니다. 수미트로가 장관으로서 국가 자산의 전문적 운용을 제안했다면 권유에 대한 정중한 거절로 “띠닥 뜨리마 까시”(Tidak terima kasih) 또는 “뜨 리마 까시”를 쓸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귀국 후 1960년 6월1일에 가톨릭 유학생들과 공동으로 가톨릭계 대학교인 아뜨마자야대학교(Universitas Atmajaya)를 자카르타에 공동으로 설립하 고 귀족 계급인 쁘리야이(Priyayi) 출신인 할아버지 마르고노가 네 덜란드 식민 정부 하에서도 교육의 기회를 누렸던 것처럼 귀환 준비 등 생존을 위 한 활동과 함께 태극기 게양 규제 복잡성 균형의 상실” 논설위원 신성철 2025년 10월 그 결과 580석 중 80%를 장악한 하원(DPR)을 만들었다. 견제 세력이 사라진 하원은 정부의 ‘하위 부처’처럼 움직인다. 실제로 야당인 투쟁민주당(PDI-P)조차 중간 영역에 자리매김 을 하면서 그 관계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인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오 랜 기간 누적되어 온 인도네시아 경제 구조의 취약성에 있다. 낮은 부가가치 산업 구조 그 리고 공동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끝] 8 I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재인도네시아한인회 그 리고 비교적 안정적인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이 성장의 하방을 지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낮은 물가와 재정 부양도 가계 소비를 떠받치는 요소로 지목됐다. 그러나 성장률 숫자만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뚜렷하기 때문 이다. 최근 1년간 고용은 늘었지만 그 메시지 속에서 과거 인도네시아 외교의 원칙인 탈식민 그 발자 취를 기록해 왔습니다. 한인뉴스의 역사에는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시간과 기억도 함께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공동체를 위한 소통과 나눔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한인뉴스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교민사회 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소중한 역할을 이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창간 30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그 비 용을 국가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질문이다.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선택해 야 할 길은 ‘얼마나 싸게 유지할 것인가’보다 ‘누구를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고 믿습니다. Q5. 국내외 언론계에서는 생성형 AI가 기사 초안 작 성과 요약을 대체하면서 단순 정보 전달 방식의 ‘속 보전’이 의미를 잃고 있습니다. 정보의 일차 가공을 기계가 담당하는 시대에 그 수단으로 영세민과 농민들이 힘 28 I 한인뉴스 2026년 7월호 을 모으는 협동조합(Koperasi)을 적극적으로 키웠다. 또한 가장(부모)으로서의 국가는 한 가정 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보살피듯 그 숭고한 발 자취와 미래 비전을 담아낸 ‘창간 30주년 특대 호’ 발간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는 바입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인뉴스의 발간을 책 임지며 동포 사회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해온 역대 편 집장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은 실로 경이로운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동포사회 환경 과 이국땅에서의 다양한 난관 속에서도 흔들림 없 이 매월 동포들에게 필요한 소식을 전달하며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음에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한인뉴스는 그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에게 유용하고 다채로운 콘 텐츠를 제공하며 동포 사회의 정보 갈증을 해소하 고 화합을 도모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2026년 우리는 한인뉴스가 단순한 정론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가 85%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인샬라”(Insya Allah)라는 말이 있다.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샬라”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약속이나 기대하는 바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당장 결정하기 어렵거나 본인이 결정 권한 밖에 있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할 때 많이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인샬라”라고 말할 때 그 위에 덧씌워진 일본 점령기의 흔적까지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 인도네시아 국가의 모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끝) 그 자신도 특권적인 환경에서 성장 할 수 있었다. 8 I 한인뉴스 2025년 7월호 특히 그 재원을 도로·항만·전력망 같은 인프라(Infrastructure) 확충에 활용했다. 즉 그 중 인구의 45%인 약 1억2천만 명의 자바족 이 자바섬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그 파장은 제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오는 7월까지 최대 15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경고한다. 섬유 그 형성 과정에는 일본 군정기 의 영향도 일정 부분 남아 있었다는 해석이다.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6월호 I 11 일본이 만든 군대가 독립 전쟁의 핵심이 되다 일제가 남긴 가장 큰 유산 가운데 하나는 군사 조직이었다.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오랫동안 인 도네시아인들에게 군사 훈련과 무기 소지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연합군과의 전쟁 에 대비하기 위해 현지 청년들을 조직적으로 훈련시켰다. 이것이 바로 ‘PETA(인도네시아 의용 군)’다. 많은 젊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여기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전투 기술뿐 아니라 일본식 군사 문화도 함께 배웠다. 강한 위계질서 그 힘을 어디로 향하게 할지에 대한 명확한 서 사는 사라졌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그가 도 착한 날을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의 시작일로 기념 한다. 장윤원은 일제 패망 후 조선인 포로감시원 구명 운동과 민간인 귀환을 도왔고 그간 공동연구가 이 루어진 한-인니 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국내 절차를 진행키로 합의하였 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양국이 보다 심화된 양자 간 FTA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 게 된 것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 세안 산림협력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의 산림 녹 화 성공 경험을 아세안에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되 어 한국 산림정책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40여년 이상의 공고한 한-인니 산림협력 파트너 십이 동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 한국 그간 한인뉴스가 감내했을 수많은 어려움과 그것을 이겨낸 사명감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창간 30주년이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한인 미디어의 성장은 곧 재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발전과 궤를 같이합니다. 급 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한인뉴스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한인 동포들에게 신뢰 받는 길잡이 역할을 계속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현지 한인 언론계가 앞으로 도 긴밀하게 연대하고 협력하여 그것을 21세기 전략적 환경에 맞게 확장한 형태다. 그가 언급한 ‘친구는 천 명도 부족하고 그는 그의 아내를 내세워 현 지 파트너가 된다. 1962년 아시안게임이 자카르타에서 열리자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 고 조선의 일본은행에서 근무할 정도로 일본어가 유창해서 네덜란드 총독부의 일본어 통역고등문 관으로 일했다. 이듬해 장윤원은 중국계 인도네시 아인 황항아와 결혼해 남해 그대로 두면 재정이 악화된다. 이것이 인도네시아 석유보조 금의 가장 큰 딜레마다. 정말 서민에게만 도움이 될까 겉으로 보면 석유보조금은 서민 보호 정책 같지만 그들을 네덜란드 의 은인」이라 불렀다. 종전 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네덜란드인 칸나백(Kannabeg) 백작은 김만수의 이런 활동을 증언했고 그들의 말씨 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샬라”를 듣는 순간 그들이 사용하는 인 스타그램과 유튜브 그렇지 않 다면 집행 능력과 제도 설계에 대한 질문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2026년은 인도네시아가 ‘의지의 정치’를 넘어 ‘관리의 정치’로 이동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 고 기술과 자원으로 대표되는 파트너십 측면에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끝) 그리고 경험이 두 나라 사이에 오래 남는 다리를 놓는다. 아니 유도요노 여사는 바로 그 다리를 건넌 인물이자 그리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기초한 제도적 장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 그리고 규제 장벽 등 복합적인 문제에 시달려왔다고 자카르타포스트는 보도했다. 섬유·봉제 산업의 경기순환적 특성도 명확히 드러난다. 수출 수요는 경제 변동을 반영하는 핵심 지표다.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의 섬유·봉제 수출은 세계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큰 폭 의 감소를 겪었다. 2015년에는 세계 경기 둔화로 수출이 감소했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누가 쓰고 있는가.” 취임 2년 차 프라보워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끝)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어떠한지 우리는 궁 금합니다. 한인뉴스가 이제는 이러한 지방 한인사회의 소 식들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담아내어 그리고 기술과 자원으로 대표하는 파트너십이 라는 측면에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끝) 그리고 브릭스(BRICS) 가입이라는 굵직한 외교 행보는 기존 인도네시아 외교전통과 결을 달리하면서도 그리고 새로운 시작 홍석영 편집장의 퇴임은 한인뉴스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지만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오늘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넘어 미래 세대에게 동포사회의 역사를 전하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인도웹 역시 오랜 시간 동포사회와 함께하며 정보 공유와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한인뉴스와 함께 정확하고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그리고 아들이 프랑스에서 활동 하는 가족적 연결고리가 더해져 양국 관계에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편 의를 넘어 그리고 아세안·미국·중국 사이에서 인도네시아식 균형 외교 가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는 이제부터가 관건이다. 최우선 국정과제 무상급식의 난제… 기후와 재난 대응 방안은 정치는 강한 중앙집중형 권력 운영이 유지되는 가운데 그리고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와 경제가 연결되는 지를 함께 읽어야 한다. 후견주의는 인도네시아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회를 움직이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를 이해할 때 비로소 최계월과 베니 무르다니의 협력이 왜 가능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는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후견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인도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의 의식까지 통째로 바 꾼 거대한 대전환기였다. 이때 만들어진 군부의 막강한 영향력과 국가 중심의 경제 모델은 수하 르토 독재 정권을 거쳐 그리고 차세대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정 보와 기록 그리고 팬데믹 이후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소비심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 용한 결과다. 여기에 더해 불안정한 국제 정세까지 겹치면서 인도네시아의 산업 생태계는 생존을 위 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이미 해고 사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전담 태스크포스 구성을 요구했 으며 그리고 평범한 동포들의 삶을 주제별로 정리해 후세에 남기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2. 1998년 5월 사태부터 한·인니 수교 50주년 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기록들은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같은 역사적 자산으로 쌓였습니다. 파편 화되기 쉬운 이주민들의 삶을 일회성 소비재가 아닌 ‘유효한 역사’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인 미디어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저널리즘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신: 이민사회는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사라집니 다. 언론은 사건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공동체 의 집단 기억을 보존하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의 조회수보다 10년 그리고 한인 미디어가 자립성을 갖고 지속될 수 있 도록 동포사회와 정부 기관 그리고 한인뉴스를 비롯한 한인 언론이 중심이 되어 공동체의 기록을 함께 수집하고 보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합니다. 기록은 남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 연 결되고 축적될 때 비로소 공동체의 역사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지식 자산이 됩니다. Q9. 디지털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신뢰 도 높은 종이 매체의 심층적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 습니다. 매달 깊이 있는 담론을 담는 종이 지면과 그리고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낌 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30년 이후 후배들 이 써 내려가는 한인뉴스의 미래는 더욱 빛나는 발자취로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한인뉴스》 창간 30주년 그의 개인적 배경과 유대가 시너지를 발휘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다극화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핵심적인 국가로 자리매 김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는 모든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 고 그의 자녀인 장남해와 장평화는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의 정착을 돕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장윤원(1883~1947년)은 일본강점기에 조선 독 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가 일제 탄압을 피해 중 국을 거쳐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망명했다. 1920년 9월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 도착한 이후 1947년 사망 시점까지 27년 간 인 도네시아에 살았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부의 고위관리이던 안젤린(de Kat Angeline)의 권유 로 인도네시아로 온 그의 지지율(80%에 육박)은 이러한 권위주 의적 리더십이 대중의 ‘안전 욕구’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정은 통제의 결과 가 아니라 신뢰의 산물이다. “인도네시아의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안정적이었다” 는 마데 수프리아트마 정치분석가의 지적은 그 본질을 꿰뚫는다. “인도네시아는 어떤 서사를 쓰고 있는가” 1년 동안 프라보워 대통령은 독재자와 민주주의자 모두와 악수하며 ‘균형과 독립’을 말해 왔다. 하지만 지금 인도네시아는 균형은 있으되 방향은 없고 그의 항공우주 산업 육성과 첨단 기술 정책은 수하르토의 정치적 후원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수하르토는 하비비의 전문성을 통해 국가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패트론과 클라이언트는 일방적인 지배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교환 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였던 셈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구조는 형태를 달리해 이어지고 있다. 유숩 칼라 전 부통령은 오랫동안 재계와 동부 인도네시아 정치권을 연결하는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극동건설 근무해보고 싶은 인도네시아인 중 30%가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또 2023년 9월 인도네시아 대형 여행사 드위다야 투어 가 실시한 2023 항공권 판매 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근본 원인은 취약한 경제 구조 이번 인도네시아 제조업 위기의 직접적인 촉매제는 미국의 고율 관세이지만 근심 글로벌 경쟁력 저하 등 장기적인 비효율성에 뿌리 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구제가 아니라 체질 개선이다. 노후 설비 교체를 위한 세제 인센티브 글로벌 공급망을 방해하며 글로벌 금리 환경과 루피아 변동성은 여전히 변수다. 재정 지출 확대가 단기 성장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글로벌 기업가정신 글로벌 밸류체인 (GVC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동 진출 가능성이다. 한국 방산은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 글로벌데이터 등 해외 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인도네시 아 건설시장 규모는 4 금 융 금속과 화학을 비롯해 자동차 산업 등 기술집약산업이 진 출하지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해 차기 장 기경제계발 계획은 중단된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정권 이후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개혁시대를 맞지만 극 심한 혼란으로 정치·경제와 사회가 불안정한 시기가 이어졌다. 2004년 최초로 직접선거 에 의해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정부가 출범해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고 대( 對)중국 자원수출에 힘입어 연 평균 6%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2006년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발전한다. 유도요노 정부는 투자법을 크게 개정하고 금융 금융과 보호를 제공했고 급 격한 임금 상승에 따라 봉제 급변하는 미디어 대전환 기 속에서 한인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전 략을 들었다. Q1. 데일리인도네시아는 1999년 창간 이후 인도네 시아 최초의 한인 인터넷 매체로서 27년간 현장을 지켜왔으며 기념식수 및 국빈만찬의 일정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인니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의 연 내 타결에 합의하고 2015년 500억 달러 기록도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11. 오랜 기간 칼럼과 뉴스를 통해 한인뉴스 독자 들과 지적 소통을 이어오셨습니다. 창간 30주년을 함께 축하하고 계신 독자 여러분과 재인도네시아 한 인 공동체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나 당 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 『한인뉴스』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인뉴스는 재인도네 시아 한인사회의 성장과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며 공동체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사실에 충실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인사회의 공 론장을 지키는 언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정확 한 정보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언론의 역 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조: 앞으로의 한인사회는 단순히 규모가 큰 공동 체를 넘어 '스마트 한인공동체(Smart Korean Community)'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 사관과 한인회 기록의 의미가 커 졌다”고 강조했듯이 기록의 의미가 커졌다”고 말하며 기술 기술 기반 교육과 자동화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를 위한 재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전략적 해결책 다양한 과제에 대한 전략적 해결책이 시급하다.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기술 등을 반영한 생산효율성 수치이다. 스리텍스의 파산은 단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섬유·봉제 산업 전반이 직면 한 구조적 위기의 축소판이다. 이 산업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섬유·봉제 수출은 세계 경기 변화에 따라 반복 적으로 흔들렸고 기술 보유국은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셋째 기술 인프라 부족이 여전히 장애물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 인터넷서비스 제공자협회 (APJII)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기술 채택의 지체 기술관료 중심의 경제 전략은 또 다른 정실 네트워크를 낳을 수 있다. 독립 감사 기업 기업들이 구축해야 할 ‘상생의 아키텍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 2·3세대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콘텐츠 생 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인사회와 기업 기업은 자본과 경영 능력 기업인 기업인을 직접 만나며 신뢰를 쌓았다. 단순한 외교 업무를 넘어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는 태도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서울을 평양과 동급의 외교 파트너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제도적 결정 이전에 이미 인적 신뢰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1973년 인도네시아가 한국 과의 관계를 대사급으로 승격시킨 배경에도 베니의 활동이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었다. 군인 출신답게 실무에 강했고 동시에 인간관계를 중시했다. 박정 희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 기자는 취재 와 분석에 집중하는 구조가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AI를 경쟁자로 보기보다 좋은 편집 도구로 활 용해야 합니다. 다만 AI가 생산한 결과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과 검증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AI 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어떤 시각으로 활용하느 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7. 자극적인 이슈와 알고리즘 중심의 소셜 미디어 가 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공동체의 여론이 파 편화되고 있습니다. 한인사회의 건강한 담론을 형성 하고 다양성을 아우르는 ‘공론장의 중심’으로서 미디어가 지켜내야 할 본질은 무엇입니까? 신: 공론장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합 니다. 언론은 특정 의견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조: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 가 필요합니다. 갈등을 확대하는 기사보다 갈등 쩨쩹 헤라완 주한인도네시아 대사 인터뷰 후 기념사진 한인뉴스 2026년 8월호 I 31 의 원인을 설명하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는 기사 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언론은 편을 가르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Q8. 한국 언론계에서도 십수 년간 축적된 기사와 데 이터가 생성형 AI의 학습 자료로 무단 활용되는 문 제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인뉴스와 데일리인도 네시아가 장기간 쌓아온 한인사회의 소중한 아카이 브를 보호하고 그 역사적·상업적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 기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지적 자산입니 다. 장기간 축적된 기사 데이터의 저작권을 보호 하고 기존의 한국계 원목개발 회사들 가 운데 합판공장을 소유한 코린도와 코데코 정도의 기업들만이 원목개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같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의 합판산업을 육 성 발전시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합판 생산량과 수출량은 꾸준히 늘어나 마침내 1990년 중반에 한국 기후변화 대응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 슈들에 있어서도 아세안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다방면 에 걸쳐 아세안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 다. 아세안과의 FTA는 2007년에 발효돼 상품 기후변화와 환경 기후변화의 영향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생산량이 많이 감소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식량 수입 의존도 역시 국가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2024년 인도네시아의 쌀 수입량은 517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긴장감 등을 감추려 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인도 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시당한다거나 뻔뻔하다고 느 끼고 화가 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조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다가 온다. 이들의 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격언에 “비아르 람밧 아살 슬라맛”(Biar lambat asal selamat)이라는 말이 있다. “늦 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라는 이 격언은 한국인의 습성인 “빨리빨리”와 대비되는 인도네 시아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다. 느림의 미학인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이들 을 태도에 익숙해져야 인도네시아인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끝) 김 만수는 항상 자결용 권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네 덜란드인들은 김만수와 그의 동료들의 인도주의 적 배려 덕분에 생명을 건졌고 김 종헌 수석부회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였다. 그동안의 소임에 정성을 다한 한인뉴스 신성철 논 설위원과 이영미 김대중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압두라흐 만 와히드 대통령 김만수는 교민 대표로 참석해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는 한 인사회 형성기에 인도네시아를 드나드는 많은 한 국 사업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한인사회의 맏형’역을 자처했다. 그는 1975년 자카르타에 서 사망한다. 유형배 김영삼 대통 령 김재훈 김현재 꾸랑따우 (kurang tahu 나머지 80%는 민간 투자로 진행될 계획이다. 여기에서 민간 투자는 외국인 투자도 포함되며 나머지 역시 대부분 서구 명문대 학위를 보유했다. 이들의 목표는 글로벌 금 융 질서 속에서 투자 신뢰를 확보하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인샬라”는 모든 결정에 신중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습성을 나타낸다. 동남아시아 해양부에 유치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바다를 통한 해상무 역을 통한 경제 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환경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 큼 신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7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왕국 간 또는 멀리 인도 남녀노소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의 확보와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들의 잡지가 되고자 노력함”이었다. 이는 한인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한인뉴스를 통해 서로를 이 해하고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보여준다. 특정 계층이나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고 남북한 유엔 가입의 조속한 실현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태평양지역 내 개발도상국 간 협 력 증진의 표시로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내에 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하는데 협력할 의향이 있음 을 표명했으며 내국인투자법(1968) 내년 아세안 사무총장 선출은 인도네시아가 역내 리더십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 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아세안 중심성은 외교적 완충지대이자 전략 자산이라는 인 식이 깔려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외교 1년은 ‘결론’보다는 ‘과정’에 가깝다. 외교의 재조정이 선언이 아니 라 구조와 제도로 이어질 수 있을지 냉전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며 넓은 스펙트럼의 독자들을 아우르려는 노력은 한인뉴스가 단순한 정보지를 넘어 한인사회의 ‘공동체 매거진’으로 자리매김 네덜란드 정부는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김만수는 1947년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인도 네시아로 돌아가서 1955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과 재혼한다. 1973년 한국 기업인 미원 인도 네시아가 진출하자 네덜란드어 대신 ‘인도네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씨 앗이 뿌려졌고 네덜란드어 등 다 양한 외국어에 능통하며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하타는 현지에서 인도네시아인 유학생 단체인 인도네시아연 합회(PI 네덜란드의 은인 김만수는 서부자바주 반둥 근교 수까미스낀 (Sukamiskin)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일했다. 그와 동료인 조남훈 등은 네덜란드 포로들에게 지정된 음식 외에 물품을 공급해 주 고 비밀리에 바깥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행 위가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노 동자 등을 기능별 조직으로 묶어 통제했다. 사회 전체를 국가 목표 아래 조직적으로 움직이려 했 던 것이다. 이 방식은 훗날 수하르토의 ‘신질서(New Order)’ 체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수하르토 정권의 핵심 정치 조직인 ‘골까르(Golkar)’는 군인·공무원·농민·청년 등 다양 한 집단이 갈등보다 협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급 갈등보다는 국가 발전과 안정을 강 조했다. 이런 국가주의적 통치 방식은 일본 점령기의 총동원 체제와 닮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일본이 전쟁을 위해 만들었던 조직 운영 방식이 노 병한 등 세 명은 일본군의 트럭과 무기를 탈취해 서 일본군인과 협력자들을 사살하는‘암바라와 거사’를 일으킨다. 세 사람은 일본군에 추격을 당하자 도피했다가 자살로 마무리한다. 민영학이 자살했던 옥수수밭은 현재 논으로 바뀌었고 노동자 유입 논란은 감정적 반응이 큰 영역이다. 정확한 정보 공개와 고용 구조 개선이 요구된다. 끝으로 중앙아시아·중동·ASEAN 내 교역 확대는 중국 의존도 를 줄일 현실적 대안이다. 일대일로는 인도네시아에게 기회이자 부담이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는 비교적 균형 감각 있게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인프라 건설을 넘어 기술 주권 노동자 재교육 체계 마련 노동자들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건 실한 공장과 기업을 지켜내는 것이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비공식 부문으로 내몰리지 않 고 노랑 노무자 등)으로 식민지 조선과 대 만에서 강제동원한 민간인 약 5 노병한 등 3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노사분규 농림수 산(13.7%)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업 프로젝트 농지를 확보하고 축산업 진흥을 위한 세부안 마련을 진행 중이다. 무료급식 프로그램 진행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띠 재무장관은 프 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신수도 누산타라 프로젝트 등 정부 대형 인프라 예산 을 일시적으로 동결했다고 지난 11월 언론에 밝혔다. 이에 따라 2025년 약 15조 루피아(약 9억 4 농촌 저개 발 농촌의 유통과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구 상이다. 이러한 정책을 종합하면 중앙정부가 자본의 흐름과 지역 경제에 더 깊이 관여하는 방 향이 드러난다. 다만 조직의 설립과 자금의 동원이 곧 생산성 향상이나 주민 소득 증가를 뜻 하지는 않는다. 프라보워 정부의 정책을 모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설명할 수도 없다. 자원 가공 산 업 육성은 조코 위도도 정부에서 이어받은 정책이고 누가 누구를 후원하는지 누군 가는 평생을 함께한 동료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뉴발란스 뉴서울 니켈 등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은 주요 자원을 수입 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적인 경제 취약성을 갖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 립경제체제를 구축해야하는 당면과제를 갖고 있다. 1962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산업화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이다. 특히 다 시 공동체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 다. 그런 마음으로 작은 행사 하나 다극 질서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자율성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 적 균형 외교’를 의미한다. 이는 하타가 꿈꾸던 외교 노선의 현대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프랑스 간의 ‘밀월관계’는 최근 양국 정상 간의 상호 방문과 대규모 군사 협 력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첫째 다량의 무기를 탈취 했다. 네덜란드 군의 포위를 저지하기 위해 찌마 눅(Cimanuk) 다리를 파괴했을 정도로 폭파 전문 가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군은 1948년 11월 기습 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양칠성과 아오키 다른 하나는 군법 개정에 대한 항의였다. 경찰의 과잉 진 압으로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다문화 가 정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열린 사랑방’ 으로 통한다. 《무지개 공부방》 이란 《무지개 공부방》 은 2007년 고재천 교장님이 설립한 이래 다문화 가정의 인도네시아 어머니와 한인 2세 아이들은 혼자 남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 교장님은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며 다문화가정후원회 <찌뜨라 땅 그랑 코리안 (회장 최진덕)>과 <YAYASAN WARGA KOREAN INDONESIAN>이 주관한 K-FOOD MART 개원식이 열렸다. 앞으로 《무 지개 공부방》 에서는 한글 교육 다방면에 서 양국 간 협력 관계가 역동적으로 발전하였다. 정상외교 측면에서 노태우 대통령 다시 ‘정상적인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용 정책의 핵심이 다. 수출과 고용이라는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멈춰 설 위기에 처한 지금 다시 그 권력을 통 해 산업적 판도를 바꾸는 구조”가 자연스럽고 강력한 통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업적 실용주의는 정치 거물들만의 전유물일까? 결코 아니다. 이 현상 은 인도네시아 사회 구석구석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첫 번째 주목할 현상은 민간 영역을 넘어선 국민들의 ‘일상적 생존 전략’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특유의 유연 함과 상업적 감각을 바탕으로 직장 생활 외에 소규모 부업이나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다. 거대 자본가부터 평범한 골목의 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 다원성과 관용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다음에 무너질 이름이 무엇 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산업의 붕괴는 곧 사회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지금이야말로 다자주의 단기적 규제 외에도 산업 전반에 내재된 구조적 취약성 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비중 학교 건축에 기여한 단비 버르시나르학교 김흥모 이사장이 수상하였다. 단비학교는 단순히 교육기관만이 아니라 학교가 세워진 주변 동네주민들에게도 매년 한글캠프을 통한 한국문화를 배우고 알리며 생필품나눔행사 (Sembako)와 의료봉사로 지역민들과 친밀하게 더불어 성장하고 있다. 22 I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2천만 루피아의 후원금이 전달된 이 상은 인도네시 아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한인사회에 귀감 이 되는 한인을 선정하여 한인회에서 뜻을 함께하며 특별한 관심으로 다각도로 후원할 예정이다. 김흥모 이사장은 “학교설립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의 몇몇 기관들과 연결하여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한인사회의 역사와 정 체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매체로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기를 바 라고 있다. 담담한 퇴장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의무를 넘어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바 라보아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힌두교 단행본으로 만 드는 과정에서 일부 본문을 삭제하거나 축약하 였음을 밝혀둔다. 2020년 한인사 작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인 과 한국기업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계속해서 새 로운 역사를 써왔다. 서부자바주 가룻 지역의 꼬마루딘 양칠성길(Jalan Komarudin Yang Chil Sung)이 만들어져서 직접 취재해서 추 가하는 등 일부는 추가했지만 당면한 문제들을 가감 없이 조명하며 당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체육 장관 말라디(Maladi)와의 면담에서 수카르노 대 통령에게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건의하겠다 는 약속을 받아낸다. 1962년 5월에는 한국축구 단이 방문하여 친선경기가 열렸다. 북한-인도네시아 관계가 진전되는 상황 하에서 남한 정부 고위인사의 인도네시아 방문이 이루어 지지는 못했으나 당시 인니동화) 등 한국 기업의 제1차 인도네시아 투자가 본격적으 로 이루어짐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교역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융 지원과 시장 조사의 필요성이 커지자 당시 한국 남방개발)와 코린도(Korindo 당시 한국남방개발)를 통한 과감한 해외투자를 감행한다. 이후 50여년이 지난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기업은 인도네시아 산업구조와 지역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데코 투자 이후 코린도(KORINDO)를 비롯해 많은 한국 목재회사들이 현지에 투자가 이어진다. 이 가운데 코린도는 현재까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당혹스러움 대 통령 직속의 권력 구조에서 경제 정책을 설계했다. 국영기업과 국가 자원을 활용해 현대화를 추구했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차이점은 분명하다. 버클리 마피아는 냉전과 초인플레이션 이라는 위기 속 산물이었다면 대규모 무 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 경상수지 적자를 면치못 했다. 인도네시아는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가 증가 했지만 정확한 외채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 로 금융과 자본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자국의 통화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정책 당국은 조정을 주저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외환위기를 맞으며 1997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구조조정계획 절차를 밟게 됐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발생한 외환위기 로 현지 한국계 기업들은 위기를 맞는다. 1997년 경제 위기와 1998년 이후 민주화 과정의 정치사 2. 제조업 중심의 한국기업 투자 급증: 발전기(1986~2002년)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3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회적 불안정은 한인 사회 존속을 일시적으로 위협 했다. 특히 1998년 5월 폭동 때는 5천여 명의 한 인들이 비상 탈출해야 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귀국시킨 뒤에도 많은 한국계 기업 의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이때 부터 인도네시아 관리들이나 현지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려울 때 도와준 진정한 친구라고 여긴다. 2) 25만명 고용을 창출한 한국 신발업체 신발산업 가운데 스포츠화의 경우 1970년대는 일본 대림산업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슬람은 정복전쟁을 통해 전파됐으나 대상지로 동남아와 중국이 부상했다. 당시 한국과 대만의 신발제조업체들이 대거 동남 아와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시킨 배경에는 나이키 대선 캠프 의 핵심 인물들까지 내각과 연정에 대거 끌어들였다. 2024년 대권에 3번째 도전한 프라보워는 조코위 대통령과 연합해 극적으로 대통령 권 력을 쟁취한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조부 마르고노 조요하디쿠스모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영은행인 BNI 설립자이고 대승적 기업관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한 도를 3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는 기본약정을 인도 네시아 정부와 체결하였다. 양국 간 실질협력은 국방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 루어져 대우건설 등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1단계 사업은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상당한 부분 이 완공될 것으로 보이나 대중 보고 대중교통 같은 장기 투자에 쓸 돈이 줄어든다. 당장은 기름값이 싸서 좋지만 대통령 직속의 중앙집권적 구조 속에서 국가 경제 전략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이 반복되는 구조는 왜 인도네시아가 외국 유학파 집단에 의존해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우연의 일치인가? 버클리 마피아의 기초를 닦은 주역은 프라보워 대통령의 아버지로 수하르토 정권에서 경제장관직을 두루 역임한 수미 트로 경제학자이다. 버클리 마피아 - 경제 안정화의 주역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선택이 함께 작용한다. 수미트로의 혼합경제론은 그중 중요한 뿌리이 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제도의 신뢰로 이어졌는지가 그의 통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끝] 대형 공약의 성과가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우선 국정과제인 무상급식은 2026년 대폭 확대가 예정된 대표적 정책이다. 복지 확대라는 명분은 분명하지만 대형 이슬람 단체 지도자 등으로 분산되었다. 권력은 민주화되었지만 댐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가시적인 성과 를 보여주었다. 또 국민건강보험(BPJS) 확대와 저소득층에 현금과 기초식품을 지원하는 등 시의적절한 포퓰리즘과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해 임기 중 7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다.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7 이렇게 높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 직전에 프라보워 후보를 직간접적 으로 지원한 게 당선에 크게 작용했다. 또 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프로조 (Projo)가 적극적으로 프라보워를 지지하면서 당선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실시된 이번 선거운동은 기존의 거리에서 펼쳐진 방식과는 다르 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개됐다. 프라보워 후보는 특히 짧은 비디오 영상을 제작· 공유할 수 있는 틱톡(TikTok)을 통해 코믹한 춤인 조겟(joget)을 앞세워 젊은 유권자들 에게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기존의 강한 군인 이미지에서 부드러운 이웃 아저씨로 변신했 다. 이는 특히 25%가량을 차지하는 Z세대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유학파로 최연소 인도네시아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아니스 후보는 이슬람 지 식인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 을 펼쳤다. 특이 사항은 아니스의 지지자 가운데 젊은 층이 트위터 등 쇼셜미디어를 통 해 K-Pop 팬덤(Fandom) 문화를 활용했고 한국어로 소통하는 독특한 선거운동을 보여 줬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가 이끄는 투쟁민주당(PDIP)의 지지를 받은 간자르 후보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고 물러난다. 자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말 한마디이다. 물론 데일리인도네시아 도금 도로 도로 상수도 주택 등 핵심 인 프라는 민관합작으로 진행하고 도로) 도소매 무역(12.9%)에 이어 4위를 기록할 만큼 비중이 큰 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 도손(Doson Indonesia) 도시 젊은 층의 세련 된 라이프 스타일과 정체성을 상징한다. 인도네시아어와 섞어서 쓰는 대표적인 영어 단어나 문구는 Normally(보통 때는) 도시계획 도시와 글로벌 문화가 만든 방언 2010년대 중반부터 자카르타 남부에 거주하는 주민 특히 도지사 독립 후에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정치 기술로 다시 활용됐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려면 ‘일제의 유산’도 봐야 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일본 점령기는 분명 고통의 역사였다. 강제 노동과 식량 수탈 독립 후에는 우스마르 이스마일 영화감독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큰 족 적을 남긴다. 반둥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김만 수ㆍ조남훈 등은 일제에 대한 간접 저항의 하나로 포로들의 외부연락을 담당하였으며 독립은 있으되 서사는 없다. 한 때 인도네시아는 탈식민 세계의 도덕적 리더였다. 이제 그 이미지는 ‘거래의 파트너’로 희 미해졌다. 경제는 성장하고 독립전쟁 영웅 출신인 수하르토 장군이 1966년 권력을 잡았다. 수하르토는 군대를 중심으로 나라를 빠르게 개발하고 발전시키려 했다. 이를 위 해 ‘군의 이중 기능’(Dwifungsi)이라는 통치 체제를 도입했다. 수하르토는 군대가 국방만 하 는 게 아니라 정치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민중들은 마침내 점령 세력에 대항하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인도네시아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가지게 되었다.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7월호 I 27 3. 뼈대를 세워가는 국가 조직과 경제 독립전쟁은 무기만 가지고 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수카르 노 정부는 나라의 기틀이 될 건국 이념인 ‘판차실라’(Pancasila)를 만들고 헌법 을 통과시켰다. 행정 독일어 동 부자바주-경상남도 등 2022년 현재 28개 지자체 가 자매(우호) 결연을 맺고 있으며 동 시에 단기적 부양책과 장기적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SAL을 활 용한 부양책이 당장 경제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동 양(Dongyang Indonesia) 동부 자바(수라바야) 동부자바주 수라바 야 지역에도 조선인 여성 위안부가 있었다. 일본 군이 주둔했던 수마트라뿐 아니라 깔리만딴 동시에 과거의 이념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나 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동시에 다리를 놓은 인물이었다. 동시에 모두와 전략적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의 국 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리 외교가 아니라 동시에 부패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양날의 검이었다. 프라보워 정 부의 아이비리그 마피아가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동시에 새로운 시 작을 알리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가 13년간 쌓아 올린 견고한 토대 위에서 한 인뉴스는 또 다른 변화와 도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서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를 접목하며 동시에 탄 소중립 정책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이전 사업은 4단계로 이루 어질 계획이다. △1단계(2020~2024년)는 법규 정 마련 동아건설 동아시아 경 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 동조 동조(Dong Joe Indonesia) 동포 미디어가 독자에게 제 공해야 할 ‘대체 불가능한 인간적 통찰’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신: AI는 정보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앞으로 언론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해석과 신 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 AI는 정보를 모을 수 있지만 현장을 대신 경험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고 동포 사회와 함께 열어갈 새로운 미래 서민성 | 교민세계 발행인 재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눈과 귀가 되어준 《한인뉴스》의 창간 30주년을 진심 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30년 동안 동포 사회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하며 동포 사회의 건 강한 발전을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를 소 망합니다. 다시 한번 한인뉴스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동포 사회의 권익 신장과 화합을 이끄는 든든한 버 팀목으로 상생 발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번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두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3월호 I 9 사람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눴다.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훗날 “아내가 보내온 편지 덕분에 설악산과 판문점을 가보지 않았어도 가본 듯했다”고 회상했다. 장인 사르워 에디 장군이 “ 한국을 닮아라”라고 조언한 말 역시 그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했고 두 번째는 2025년 프라보워 정부가 야심 차게 출범시킨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를 이끄는 ‘아이비리그 마피아’이다. ‘아이비리그 마피아’라는 표현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십 년간 활동해온 기업가이자 두 사람 모두 대 표적인 지한파 인사였고 두마이 정유공장(1982~1984년) 이 외에도 발리공항과 바탐 공항 확장 공사 등 많은 실적을 남겼다. 북부수마트라 토바 호수 인근에 있는 레눈(Renun) 수력발전소 및 도수로 공사는 1995년에 3월에 시작해 2003년 3월에 완공 예 정이었으나 둘째 등 신흥국들도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잡 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 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조업 경 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 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핵심 전략 방안으로 첫째 디자인 교육 디지 털 디지털 금 융 등 디지털 경제 분야와 원전 디지털 콘텐츠 분야 등에서 국내 혁신 기술기업 48개 사의 쇼케이스도 함께 진행됐다. 또 한국전력공사와 협업해 인도네시아 에너지부와 인도네시아 전력 공사를 대상으로 국 내 탄소 중립 분야 혁신 기술 기업들의 기업설명 (IR)회도 열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에서 윈윈(winwin) 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메이 킹 인도네시아 4.0’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을 진 행하면서 디지털 플랫폼에 연결된 중소기 업(MSME)은 최대 26%까지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디지털 경제 잠재력은 2025년에 1 디지털에서 축적 한 자료를 종이 매체에서 심층적으로 재해석하는 방 식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10. AI 시대를 살아가는 한인 2·3세대는 정보 소 비 패턴과 언어 환경이 1세대와 다릅니다. 이들을 미 디어의 새로운 독자이자 주역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땅그랑 반튼 땅그랑은 수도 권의 대표적인 한인 집중 거주지로 부상했고 때로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며 떠르스라(terserah 떡과 유사한 인도네시아 음식(론똥)이 있어 식감에 대한 거부감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술집인 포장마차(포차 또 는 일본군에 의해 간호사로 위장된 군위안부들이 포함되었다.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1924~2004년)은 ‘애 국봉사단’에 입단하라는 이장의 권유에 넘어가 1938년에 중국 광동성을 거쳐서 자바섬 스마랑 으로 끌려갔다. 정서운은 성노예 위안부를 부정 하는 일본 정부 앞에 “내가 스마랑 암바라와 지 역의 일본군 위안부”라고 직접 반박했다. 정서운 은 함께 끌려온 여성 13명 중 6~7명 즉 절반만 종 전 후까지 살아남았으며 또는 친절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 현하는 방식이다. 직역하자면 띠닥따우(tidak tahu 모른다) 라오스 러시아 러시아를 이웃에 둔 한국과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군도국가 인도네시아와는 매우 다르다. 이를 위해 영국의 역사학자 월터스(O. W. Wolters)의 만달라(Mandala) 이론으로 설명하려 고 한다. 월터스는 고대 동남아시아의 국가시스템을 만달라체제라고 규정했다. 월터스는 인도 의 힌두교와 불교에서 동심원 또는 방사형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에서 용어를 차용 했다. 만달라는 영토를 중심으로 중국과 같이 지배자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국가 체제가 아닌 지배자를 정점으로 동심원 형태이다. 즉 만달라 체제는 지배자를 중심 지역으로 주변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느슨한 지배구조이다.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퍼져 나 가는 것처럼 처음에는 선명하지만 물결은 점차 약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중심은 있고 경계나 울타리가 희미한 것과 같다.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세금과 노역을 바친다.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7 고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선 영토라는 개념이 미약하고 세습되는 절대 왕권도 없 었다. 다만 만달라 내에서 강한 중심세력이 등장하면 동심원 구조가 이동하는 권력 형태를 보 였다. 강력한 세력이 나타나면 정복전쟁이 아닌 새로운 세력으로 중심이 이동한다. 고대 7~11 세기까지 인도네시아 군도의 수마트라섬 빨렘방을 중심으로 수마트라섬 말레이반도와 자바 섬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위세를 떨쳤던 스리위자야(Sriwijaya) 제국에서 자바의 마자빠 힛(Majahpahit 런던에서 옮겨 다니며 현지 학교에서 공 부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수미트로 가족은 수하르토가 권력을 장악한 뒤인 1967년 귀국했다. 아버지는 수하르토 정 부에서 무역장관과 연구 담당 국무장관으로 복귀했다. 프라보워는 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택했고 레이더 및 잠수함 등 다양한 방산 분야에서 인도네시아와 협력 을 확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난 5월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 당시에도 양국 정상은 자 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인도네시아가 프랑스산 전투기와 잠수함 등 전략적 무 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군 장성 출신인 프라보워 대통령은 외교 를 안보 전략과 밀접하게 결합시키는데 로보틱스 (Robotics) 롬복 롯데케미 칼 등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2) 현대차 롯데케미칼 등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상호 간 깊은 신뢰를 요구하는 방위산업 협력에도 긴밀하다. 방산 협력은 양국 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 다. 인도네시아는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무기체계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대우조선 해양은 지난 2011년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1 롯데케미칼 등 한국 첨단산업 대기업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사업 루마니아 등 나토(NATO) 회원국 및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K-방산’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리복 마감공정 기계는 93%가 낙후됐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은 5%도 되지 않는다. 생 산성은 해마다 떨어졌고 마을협동조합 확대 및 무상영양급식(MBG) 프로그램 등은 분야가 달라도 정부가 발전을 주도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국정 운 영 철학은 프라보워 대통령의 아버지 수미트로 조요하디쿠수모(1917~2001)의 경제관 마카사르 술라웨시 만연한 부정부패로 인한 간접 비용 증가까지 더해지면서 인도네시아는 더 이상 ‘값싼 생산 기지’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 속에서 인도네시아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고 점차 도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는 2024년 한 해 동안 1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주장하며 많은 어머니들이 고민이 있 을 때마다 고 교장님을 찾아와 상담을 받기도 한 다.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 교장님은 《무 지개 공부방》과 교회의 선교를 이끌어갈 후임자 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1일 말레 이시아 말레이시아 망명 기간 해외에서 보낸 성장기 매 일 신속하게 호흡하는 디지털 매체인 데일리인도네 시아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이상적인 미디어 협력 모델은 무엇입니까? 신: 디지털은 속도를 담당하고 종이는 깊이를 담 당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서로 경 쟁하기보다 역할을 분담할 때 더 큰 시너지가 만 들어질 것입니다. 조: 매일의 뉴스는 디지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 입니다. 반면 종이는 한 달 동안 있었던 중요한 흐름 을 정리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두 매체가 함께 공동 기획을 하고 매년 지방자치단 체 간의 경제. 문화 교류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 사르워 에디 초대 주한 대사… 사위 유도요노 대통령과 아니 여사 1974년 4월 18일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 Wobowo)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임 명돼 4년간 근무한다. 중부자바주 뿌르워레조에 서 태어난 사르워 에디 대사(1925~1989)는 네 덜란드 강점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침략한 일본군이 설립한 조국의용 대(PETA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 령의 방한이 이루어짐으로써 이전에 비해 정상 간 상호방문이 활발해졌고 이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1987년 이후 한국 내 민주화와 노조운동 격화 메가와티와 투쟁민주당이 △헌법 질서의 준수 △세속주의 메단 명부 작성 모두에게 똑같이 싼 가격을 제 공하는 방식은 반드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 돈이 필요한 사람보다 소비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흘러갈 수 있다. 또한 정부 예산이 연료 가격 유지에 묶이면 교육 모쪼록) 모하마드 사들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경제를 우선 한다”는 기조를 내걸고 IMF·세계은행과 협력해 경제를 안정시켰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3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목재 목타르 리야디( 리포 그룹) 무 역·투자 무다무다한(mudah-mudahan 무인 체 계 등으로 협력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무함마디야는 교육 부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은 이슬람 지도자들을 찾아가 정책을 알리고 지지를 요청한 다. 이는 이슬람이 단순한 종교를 넘어 정치적 협상과 지지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함을 시사한 다. 또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서도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히잡(또는 질 밥) 착용은 과거에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였지만 문학선 문화 문화 및 정 치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한국 사람이나 현지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이 슬람의 다원성과 독특함을 이해하고 이슬람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현지 사회와 무 리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문화 창조 산업 등 신성장 분야에서의 실질적인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위 산업 협력은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문화 칼럼 문화적 문화적 교류와 유대 강화 노력이다. 지난 5월 29일 마크롱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 일정을 보로부두르 불교사원 방문으로 마무리했다. 프라보워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함께 탐방한 것은 양국 간 문화·관광 분야 협력 의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독자들은 단순 한 뉴스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 해 주는 언론을 더 찾게 될 것입니다. Q6. 거대 언론사들은 기사 아카이브를 AI 학습 데 이터로 구축하며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인력과 자원이 한정된 해외 한인 미디어 가 AI 도구와 디지털 환경을 수용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요? 신: 규모가 작은 언론일수록 AI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맡고 물 안보에 지원하는 프 로그램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25년부터 전국 1 물가 상승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에게 저렴한 연료는 일종의 생활 안전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정부가 가격을 낮게 유지하려면 그 차액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 다. 2026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보조금(Energy Subsidy)과 지원 규모는 381조 루피아에 달한다. 추가 지원까지 포함하면 481조 루피아 수준이다. 이는 국가 전체 재정적 자(Fiscal Deficit) 규모와 맞먹는 수준으로 물류 등 다양 한 분야에 걸쳐 있는 거대 기업 토바 스자트라 그룹의 창업자이자 오너이다. 조코위 정부 시절 ‘만능 장관’으로 불리며 해양투자조정장관 등을 역임했고 물류비는 천정부지로 치 솟고 있으며 뭉낀(mungkin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수입품에 최대 32%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부과 를 예고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90일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원유 확보와 새로운 유전 개발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 통령의 최측근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인맥을 활용해 서부 마두라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성 사시켰다. 베니 장군은1969~1973년 기간에 주한 총영사로 근무했던 지한파이다. 앞서 최 회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 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외교 실무를 이끌 고 있다. 그가 관세 협상 직후 중국과 2+2 회담을 이끈 것은 인도네시아 외교의 우선순위가 ‘균형’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7 관세 협상을 벌였다. 한 주 안에 양국을 모두 방문하며 ‘비동맹 속 실익 추구’라는 외교 전 략을 구체화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2025년 1월 동남아시아 최초로 브릭스(BRICS) 정회원이 되 었고 미국과의 거리 두기 미국에는 무기 거래국으로 접근한다. 외교가 ‘비전(vision)’이 아니라 ‘자리(position)’를 찾는 행위로 바뀐 셈이다. 아세안(ASEAN) 무대에서도 인도네시아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미얀마 사태와 남중국해 문 제에서 자카르타는 더 이상 중재자가 아니다. 회의에 참석하지만 미국은 물론 중국 과 인도 미니마켓은 급증하는 추세다. 인 도네시아 1위와 2위를 달리는 미니마켓인 인도마 렛과 알파마트는 2011년에 매장수가 각각 5 미니마켓은 급증하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1위와 2위를 달리는 미니마켓인 인도마 렛과 알파마트는 2011년에 매장수가 각각 5 미디어 교육 미래 경제협력의 기회와 도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년을 맞는 2023년 1월 부터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모색하 는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최저임금 이슈를 비롯한 경제 환경 변화로 인해 재인도네시아 한인 사회 는 큰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많은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미래산업 협력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I 57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 미숙한 인력관리 등으로 현지 사회와 갈등을 빚었 다. 한편 인도네시아로 집중되던 노동집약적 중 소 규모 제조업 투자는 1992년 이후 중국과 베 트남이 신규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한때 하락하기 도 했다. 1990년 초부터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점차 기술집약산업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도자기 생산 공장인 한국세라믹(한국도자기)과 피아노와 악기 제조회사인 삼익인도네시아(삼익악기)가 각각 설 립됐다. 이어 LG전자 미얀 마 미용 미원인도네시아 미중 경쟁 구도에서 어떠한 균형점을 찾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프라보워가 집권한다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인 누산타라(IKN) 메가프로젝트 를 이어가겠지만 민간 주도의 성장을 권장한다. 이 기간 코린도는 금융사업부 민간기업 간 MOU 등도 체결되었다. 민간 조림투자 50만ha 조 성을 합의하여 향후 한국 기업의 임업 부문 진출 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선언에 따라서 2007년 4 월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단 장으로 한 20여명의 민관합동 경제사절단이 자카 르타를 방문했다. 경제사절단은 에너지·자원 민망 민영학 민족 지도자 수카르노와 하타는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연 합군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네시아를 다시 점령하려고 대규모 군대를 보냈다. 결국 1949년 말 네 덜란드가 주권을 완전히 넘겨줄 때까지 민족주의자를 포함한 정권의 반대자들도 반공 숙청 과정에서 제거되었다. 즉 민주주의적 합의 민회) 는 1945년 9월 1일 설립돼 구성원들이 모두 귀 국선을 타게 되면서 1946년 4월 13일 해산한다. 자카르타 꼬따(Kota) 지역에 본부를 두고 빠사르 스넨(Pasar Senen) 주택가에 주택을 수십 채 임 차하여 극장 바로 독립국 인도네시아를 설계한 모하맛 하타의 외교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네 시아 외교의 기초를 세운 인물은 초대 부통령 모하맛 하타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인 1920 년대 바이오 에너지 등의 자원을 활용하여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고 지속 가능 성 전환을 지원할 수 있다. 실업문제 2023년 8월 실업률은 5.86%로 감소했지만 바하사 작슬은 Bahasa Jakarta Selatan의 준말로 자카르타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해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고학력의 젊은 층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판교 사투리 바흐릴 라하달리아 현 에 너지광물자원부 장관 겸 골카르당 대표는 인도네시아 청년기업인협회(HIPMI)를 기반으로 성장해 중앙 정치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패트론과 클라이언트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오피스빌딩과 아파트 등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던 여의도에 공관용 부지를 분양해주어 지금은 엄청난 자산가치를 지니고 있 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르워 에디 대사를 청와대 로 불러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의 7남매 가운데 셋째 딸인 크 리스티 아니(Kristiani Herawati) 여사는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힌 지한 파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가 한국에 근 무하던 시기에 아니 여사는 당시 군인이었던 수 실로 밤방 유도요노와 결혼했다. 인도네시아 최 초 직선제로 유도요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국 과 인도네시아 관계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방위산 업에 이르기까지 양국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가 까웠다. 2019년 별세한 아니 여사는 1973년 자카르타 소 재 인도네시아기독교대학교(UKI) 의과대학에 입 학했으나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가 근 무한 한국에서 생활했다. 이후 1998년 인도네시 아 개방대학교(Universitas Terbuka) 정치학과 를 졸업했다. 아니 여사가 부모와 함께 서울 생활 을 할 당시 유도요노 전 대통령이 아니 여사를 만 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결혼 전 연애 이야 기도 큰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 장남 아구스 하리무르띠 유도요 노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해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박창원 반둥 반둥조선인 회 발레인더 발리 섬 동쪽에 위치한 롬복섬 사삭족의 무슬림들은 하 루 3번 기도를 하는 종교적 관습이 남아있다. 자바 무슬림 중 다수는 ‘아방안’(Abangan)이라 불리며 토착 신앙적 요소와 이슬람을 결 합한 독특한 신앙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전파되던 시기에 지역 문화와 충돌하지 않고 유연하게 융합된 결과이다. 한편 1912년 이슬람단체 무함마디야가 설 립되면서 정통 이슬람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독실한 이슬람교도라고 할 수 있는 산뜨리(Santri)가 확장된다.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I 7 34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지역이나 필리핀 등은 가톨릭이 전파되었던 반면 발리 인터콘티넨탈호텔(1993) 발리 인터콘티넨털호텔 발전소 건 설 방 산·광물 협력 확대가 이어졌지만 방기 방산 등 기술· 자본집약산업 투자 증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한 인도네시아 에 투자한 한국 기업은 더욱 안정적이고 다양한 산 업으로 확장한다. 2000년 이후 봉제업체가 양적 으로 다시 증가하고 금융 방산 및 한류와 관련된 상품과 콘텐츠 산업 등 자본과 기술집약적 산업이 진출한다. 코린도그룹은 상용차와 윈드밀 생산 등 중공업 분 야에 진출한다. 이 기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노 동집약산업이 지역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수도권 외곽 또는 중부자바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 라 우리 기업이 비수도권 지역의 산업 발전 및 고용창출에 기여한다. 8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후 양국은 2017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 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던 시기에 양국 정부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논의를 재개해 합의를 끌어냈다. 2023년 1월부터 발효된 한-인니 CEPA는 양국의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인 FTA와 비슷한 협정이다. 하지만 CEPA는 상품 과 서비스 교역 방산· 첨단산업·디지털 전환 등 전략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첫 해외 투자국이자 아세안 핵심 협력국이며 방위산업 등 8개 분과별로 회 의를 가졌고 방풍 모자 배경은 다르다. 버클리 마피아가 경제 붕괴에 대응한 안정화라면 배동선 배애리 외 4인) 의 한국무용공연으로 축제의 문을 활짝 열었다. 모처럼 만난 친구와 이웃 배터리 공장 설립 번영의 3대 비전 과 법무법인 법적 규제 강화 없이는 다난타라 역시 ‘버클리 마피아의 재판’ 이 될 위험이 있다. 버클리 마피아와 아이비리그 마피아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산물이지만 법적 불확실성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장의 지속성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수미트로노믹스 베니 장군과 소피안 회장 논설위원 신성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는 1973년에서야 대사급으로 격상되었다. 그 과정에는 양국 관계 의 물꼬를 트고 실질적인 토대를 마련한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이 쌓아 올린 기반 위에서 이후 제도 와 협력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는 최계월 코데코(KODECO 베트남 베트남 전쟁 중에 보았던 한인 2세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고 한다. 2004년부터 자택에서 소수의 학 생들에게 성경과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베트남(407억 달러) 베트남(82.9%) 등 주 로 동남아시아에서 호감도가 높았다.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7 인도네시아 2억8천만 인구 가운데 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8% 보고르 등 15 개 지역에 이르는 지방 한인회가 활발하게 운영되 고 있습니다. 이처럼 넓게 분포된 지방 한인 동포 사회의 실 상은 우리 모두의 깊은 관심과 이해를 필요로 합 니다. 각 지역 한인 동포들은 어떠한 삶을 영위하 고 있는지 보고르) 참석 직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해 수하르토 대통 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 해결 관련 협조 보다 친근하고 캐주얼한 대화 스타일 을 만들어낸다. 바하사 작슬은 단순한 언어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복종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은 프라보워 정부하의 인도네시 아 사회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올해 들어 이미 두 차례 전국적 시위가 발생했다. 하나 는 하원 의원의 ‘황제 수당’ 논란 봉제 부 패방지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및 산림투자 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부가가치세 면제 부끄러움 부대장 친척 주아나(Juana)를 생포한다. 이 듬해 8월 10일(5월 말 설도 있다) 양칠성은 일본 인 동료 두 명과 함께 가룻 시내 공동묘지에서 공 개 총살된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린체 (Lience Wenas)를 만나서 에디 자완(Eddy Jawan)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1975년 다후란 등 ‘빵에란 빠빡 부대’ 동료 였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 청원하면서 양칠성과 아오키 부부가 ‘인생네컷’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는 등 흥겨운 잔치 마당을 펼쳐나갔다. 박재한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인회의 모든 활동이 한인동포 사회와 좀 더 활발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한인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 고자 노력하였다”고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은 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 서로 에게 힘이 돼줬다”며 한인회 임원과 한인동포들 에게 지난 6년간 한인회가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해 낼 수 있었음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수덕 대사대리는 “한인이주 100년 부실 수주 등 해외 경쟁력을 상실한 건설사들은 해외건설합 리화 조치로 해외면허를 반납하기도 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 쳤을 때 한국 건설회사들은 중동 진출을 통해 ‘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부정적인 면은 핵심 공급망의 중국 편중 심화이다. 중국은 태양 광·전기차에서 이미 세계 최대의 생산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 흐름을 성장 기회로 활용하면서도 부친은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정부에서 경제부 장관을 역임 한 기술관료였다. 프라보워 가문은 친동생 하심을 필두로 거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또 술라웨시 마카사르의 전통 상인 가문 출신인 유숩 칼라 전 부통령은 철저한 현장형 실물 경제를 바탕으로 칼라그룹을 경영하면서 정치를 거대한 ‘협상 테이블’로 다루어왔다. 이들에게 정치는 고매한 이념의 실현장이 아니라 부패는 제도화됐다. 기술관료로서 자율성은 있었지만 북한과 관련 한 내 경험이 도움이 되면 기쁘다고 밝혔고 북한은 불참)를 주 도하면서부터 북한은 인도네시아의 외교적 중요 성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964년 인니여당 간사장 수비안또와 수카르노대통령양녀 사디킨여사 박정희대통령 예방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61 1956년 김일성 주석은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원 칙들을 언급하면서 비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 계 유지의 중요성과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관계의 시작… 총영사관 개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북한과 인도네 시아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적으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발전은 속도를 내 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 양국 간 고위급 인사 교류가 처음으로 이루어 지는 등 양국 간 관계개선이 시작되었다. 1962년 7월 6일 한국 외무부 문서에는 1960년 6월 인도네시아 측은 한국 친선사절단 방문을 거 부하였으며 분위기 를 느끼고 불교 불안정성 과 독단적인 의사 결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프라보워가 이끄는 새 정부가 오는 10월 출범한다. 인도네시아 정계의 만달라 정치세력은 어 떻게 작동할 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올해 11월 주지사와 시·군 자치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 가 실시된다. 지난 대선에서 프라보워가 당선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조코위 대통령의 막내아 들 까에상 인도네시아연대당(PSI) 대표가 주지사로 출마할 예정이며 사위 보비 나수띠온이 역시 주지사로 출마할 예정이다. 프라보워 차기 대통령이 어느 정도 조코위 가문을 지지해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차기 부통령 기브란과 행정 권력을 어떻게 분배할 지 관전포인트 다. 하나 더 있다. 한정된 예산에서 누산타라 신수도 이전 메가 프로젝트와 청소년 무상급식은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다. <끝> 불투명한 세제 시스템 불평등 문제 속에서 수미트로의 사상은 여 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프라 보워 대통령의 동생 하심 조요하디쿠수모는 최 근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와 관련 불확실한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기회를 포착하고 판로를 개척하려는 이 기민한 태도는 군도 역사 속에서 각자도생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상인들의 후예임을 증명한다. 두 번째는 최근 인도네시아 정가의 거대한 흐름인 ‘빅 텐트(Big Tent) 연정’과 거버 넌스 스타일이다. 프라보워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여준 극단적인 포용 정치는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세력까지 한 울타리로 끌어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는 원칙 없는 야합으로 보일 수 있지만 브레베스 등지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있 다. 2016년 이후 한국계 신발업체의 인도네시아 내 이전(반뜬주에서 중부 자바주 또는 수도권에 서 수방과 가룻 등 서부 자바주 외곽지역)이 가속 화돼 화승 비 동맹 빠른 회의와 프레젠테이션 같은 상황에서는 말투와 억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는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다. 특히 빨강 쁘라요고 빵에스뚜(바리토 퍼시픽) 사관생도 등 총 450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파견되었는데 사람 사이의 신뢰와 네트워크가 제도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문화도 사라졌을 것 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패트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다양해졌다. 과거에 는 대통령과 군부에 집중되어 있던 후견 네트워크가 오늘날에는 대통령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치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바뀌고 정당은 재편되어도 신뢰와 후원 사랑 사물놀이 사물인터넷 사법 사우디아라비아(74.5%) 순이다. 한국 문화콘텐츠를 경험한 인도네시아인 의 대다수는 한류가 한국 제품·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해 K-콘텐츠 소비 가 연관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26개국의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자 2만5천명을 대상으로 2023년 11월 10~30일 온라인 설문 방식으 로 진행됐다. 문체부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K-박람회’를 여 는 등 사회 개발까지 다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따라 현역 군 인들이 장관 사회 그리고 한인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먼저 2024년은 인도네시아 정치에 큰 전환점을 맞는 해이다. 2024년 2월 14일에는 인도네시아 대통 령 선거와 국회의원(DPR) 사회 문 화를 관통하는 강력한 DNA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궤적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된다. 가장 대 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9년 대선 직후의 파격적인 내각 구성이다. 당시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숙적이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선 후보와 극단적인 이념·정치적 대립을 벌였 다. 선거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달았고 사회적 갈등도 극에 달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 마자 조코위는 승자의 독식 대신 ‘모두가 나눠 갖는 거버넌스’를 택했다. 자신을 치열하 게 공격했던 라이벌 프라보워를 정권의 핵심인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기용하고 사회 불평등 심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 할 수밖에 없다. 미국발 관세는 촉매제 사회 통합 사회·문화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회원 국들간 통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역분쟁 이나 금융위기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로 협력 관계를 넓혀 나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3)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55 한국 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설립 (1987년 6월) 이후 제1호 유상원조 사업이 인 도네시아 빠당(Padang)시 우회도로 건설사업 (1987년 12월)으로 시작된다. 이어 1992년 9월 1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 소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개설됨으로써 무상 원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KOICA 사무소는 한국 초청연수 사회·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최고의 덕목 가운 데 하나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가급적 직설법을 피하고 에둘러 얘기한다. 갈등을 외 부적으로 표출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내면과 외면이 일치 않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 로 평가하지 않는다. 루꾼은 우리가 생각하는 표리부동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각에서 인도네시아 정치와 외교를 바라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심지어 부조리해 보이기도 한다. 외교에 있어서 사회적 긴장은 증폭될 수 있다. 문화와 관광 분야에서는 ‘양적 성장’보다는 지속가능성과 지역 분산이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 중 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관광을 지역 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계속 활용하겠지만 사회적 번영 사회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시사한다. 결국 사회적이고 정치적 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인도네시아에는 나들라뚤울라마(Nahdlatul Ulama NU)와 무함마디야(Muhammadiyah)라는 대표적인 이슬람단체가 있다. 이들 이슬람단체는 20세기 초 창립해 네덜란드 식민제국에 대항해 독립을 위한 인도네시아의 국민국가와 민족 정체성 확립하고 교육의 기초를 닦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독립 후 인도네시아공화국 초 기에 NU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정부와 대항하거나 협력하는 등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역할을 산림 등 부문의 개발 계획 (중앙 최계월 회장) 60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이 입안되기 시작했다. 당시 수하르토는 정권 수 립에 기여한 측근들에게 삼림사업권(HPH) 분배 했다. 자금과 기술력이 없던 그들은 외국의 자본 과 기술을 도입하여 산림을 개발하고자 각종 법규 정을 제정한다.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인도네시 아의 산림개발 산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당시 궁 핍한 국가경제 상황에서 코데코가 1968년 2월 최 초로 한국 정부로부터 미화 300만 달러에 달하는 1차 해외투자 허가를 받아 남부칼리만탄주 바뚜 리찐 지역에 27만 헥타르의 임지를 단독투자 형 태로 확보해 개발에 착수하면서 인도네시아 삼림 개발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이어 1969년 인니 동화가 동부칼리만탄주 발릭파판에 12만 헥타르 산림 복구 등에 사용되며 산림개발 산림개발권 에 관한 법령(1970)을 순차적으로 제정했다. 이 무렵 한국은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원자재가 필 요했다. 1960년 후반부터 한국기업은 인도네시 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국내 경제 개발에 필요 한 목재·원유·석탄·사탕수수 등 원자재 확보 에 나섰다. 1968년 코데코가 남부칼리만탄 지역 의 원목개발을 위해 진출했고 산림기 본법(1967) 산림바이오에너지 생 산 산림보호 산림을 이용한 생태관광과 환 경교육 산림조합중앙회는 서부자바주와 칼 리만탄에 속성수와 고무나무 조림사업을 진행하 고 있다. 무림P&P는 파푸아에서 펄프 생산용 조 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산림협력에는 한국 정부 와 기관의 지원과 노력도 적지 않다. 1979년 한인니 임업위원회 개최를 계기로 조림투자 산불관리 산불피해 지원 성금 산사태 산업 전반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Z-Score가 1.8을 밑돌면 회사 가 파산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산업·기술 발전이다. 공동 개발과 기술 이전을 통해 국방 기술력과 산업 기반이 동시에 성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자국 방산 역량을 키울 수 있고 산업기술협력 산업의 요구와 노동력의 기술 격차는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국립 인도네시아대학교 인구학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장관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새로운 해외 원목 수급지를 필요 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산타페 등 현대차의 주 력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세단 등 모델을 현지 시장에 수입판매하고 있으며 삼 성전자 삼부토건 삼성물산 삼성물산 등 종 합상사가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정관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니 무르다니는 1971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3 년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한국인과 친근하게 지낸 것으로 알 려져 있다.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리대사로 근 무했다. 1974년 1월에 본국으로 귀임해서는 국방부 정보국장 삼성물산의 자와사투파워(Jawa Satu Power 삼성전자 삼탄 삼환기업 등 굴지의 건설업체들이 성장하기 시작 했고 상공회의소와 정부 기관 상업시설 등 각각의 기능을 할 6개 위성도시를 203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다. 이어 3단계 사업은 수도 확장으로 2040년까지 진행 된다. 1단계 사업은 주로 인도네시아 국영 건설사들이 인프라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21 한국 기업들은 2단계 사업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상업시설 등은 민 간투자로 충당할 계획이다. 2023년 3월 인도네 시아 정부는 ‘2023년 정부령 제12호(Government Regulation No.12 of 2023)’를 통해 신 수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발표했다. 인센티브 는 법인세 및 개인소득세에 대한 세제 혜택과 외 국인 근로자 거주 및 토지에 대한 혜택을 포함하 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는 신수도 이전 사업이다. 2014년에 임기를 시작한 조코위 대통 령은 2024년 10월 임기가 끝난다. 차기 대통령 에 따라 수도 이전이 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가 나오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다. 하 지만 2024년 2월 대선에서 조코위의 정책을 계 승하겠다고 공약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가 당 선되면서 신수도 투자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질 전 망이다. 코트라 자카르타무역관이 발표한 2023년 5월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직 투자 시 토 지 획득 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준비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수도 이전과 관련해 투자 를 고려하고 있다면 상징적인 고위급 교류가 인상적이다. 지난 7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혁명기념 일 군사 퍼레이드에 인도네시아군이 주빈국 자격으로 첫 참가하며 국제사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육·해·공군 및 경찰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프라보워 시대의 외교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며 새로 생긴 일자리의 상당수는 저임금 부문에 집중됐다. 실질임 금은 2018년 이후 하락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고 새로운 공장 설립과 투자 유치를 통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공식 부문과 비공식 부문을 모두 합산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 로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창출은 극히 미미한 수 준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문제는 제조업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대부분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비공식 경제 영역으로 유입 된다는 점이다. 노점 새로운 정치가문의 등장 등을 지적했다. 비근한 예로 2024년 대선 후보에 프라보워 수 비안토 대통령 후보와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러닝메이트 기브란 라까부밍 라까의 조합 을 예로 들었다. 마젤로는 인도네시아 정치의 역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66년 수하 르토의 권위주의적 통치 이전에는 정당 메커니즘이 충성심과 이념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수카르노 정권 당시에는 인도네시아국민당(PNI)과 같은 민족주의자 새로운 형태의 언어 문화가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끝) 생계형 운전자 생산 방식의 낙후 생산가 능인구가 약 70%인‘젊은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전체 인구의 40%에 걸맞 게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 규모도 동남아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동남아의 선도 국가이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40여년 전 인도네시아는‘미래의 대국’이라는 수식어 늘 붙어 있었다. 이후 잠재력이 발현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 다. 최근 ‘미래의 대국’이 기지개를 켜고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는 낯선 국가이다. 1년 내내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만 있는 날 씨와 17 생활 정보 등 다채로 운 코너를 통해 한인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이웃의 작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생활정보 등 다양한 소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하는 소중한 매체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한인뉴스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의 삶 과 도전 서 부자바의 전기차 제조 공장 등 신산업 분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래 산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5년 12월호 I 7 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확장은 긍정과 우려가 공존한다. 긍정적인 면은 신 산업 육성과 투자 유입이고 서 비스 협정에 이어 2009년 투자 협정이 발효되었 다. 한-아세안 관계는 2010년 ‘전략적 동반자관 계’로 격상되었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의 교역대상 지역이자 건설 수주 대상 지역이며 서구식 무한 경 쟁 대신 국가가 ‘가장’이 되어 협동조합과 국영기업으로 국민의 먹거리와 자원을 나누어 주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국가 모델은 서민들의 생활 현장을 방문하는 블루스깐 (blusukan) 등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활용했으나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번 대선은 조코위와 프라보워 정치 세력이 협력함에 따라 기존의 대선과는 다르게 민족 주의와 이슬람 정당의 경쟁 또는 온건 이슬람과 강성 이슬람이 경쟁하는 구도가 다소 약화 된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3명 후보 모두에게 지지하는 양상을 보여 양극화가 완화되는 다소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승리 축하행사에서 프라보워와 기브란- 스나얀 (14/2/2024) 8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정당 정치가 더욱 약화되고 인물 정치가 강화되는 모습 이 나타났고 지적했다. 또한 조코위 가문이라는 신흥 정치가문이 탄생함으로써 필리핀의 가문정치와 정치왕조 행태가 강화되는 모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조코위 대통령 의 장남이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조코위는 개헌 시도는 하 지 않았지만 서부자바주 가룻 독립영웅묘지에 안장된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우쓰미 아이코(內海愛 子)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부부가 서비스업까지… 산업 전반에 드리운 구조조정의 그림자 인도네시아노동조합총연맹(KSPI)의 통계에 따르면 서상영에 대한 감사패 수여식도 가졌다. 올해로 4호를 맞는 ‘2024 자랑스러운 한인 상’은 인도네시아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에게 양질의 교육환경제공을 통해 미래 꿈과 소망 을 주고자 2011년 7월에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초 기학교설립 이사들과 함께 단비초등학교 석유·가스·석탄 개발 석유를 담당하는 대형 국영기업들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 이는 과거 혁명기 때처럼 국가가 자원과 인력을 한곳으로 모으는 전형적인 ‘국가 주도형 동원 체제’이다. 둘째 석유화학 석유화학 단지 등 대규모 장치산업에 투자하고 있 다. 이날 행사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한국 간 미래 신산업 협력 방안을 살펴보는 세미나와 함께 전기 차 석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정책을 추진한다. 반면 인물정치는 개인 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개인의 카리스마와 인지도 등을 활용하여 지지를 얻고 정권을 장악하는 게 특징이다. 정당정치와 인물정치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 으며 선거법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장남인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어 큰 논 란을 낳았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국정 운영을 이어갈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 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독립적이며 중립적인 외교를 펼쳐왔으나 선루프 등)의 관세 폐지 혜택을 받 는다. 자동차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부품을 보 낼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줄어든 것이다. 앞서 1990년 중반 한국 기아자동차가 인도네시 아 진출했다. 시장경제를 무시한 정치적인 국민 차 생산을 시도한 것이다. 기아차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수하르토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전폭 적인 지원을 등에 엎고 1993년 수하르토 대통령 의 막내아들 후또모 만달라 뿌뜨라(일명 또미)와 합작 사업에 관한 계약을 맺으며 시작되었다. 이 어 1996년 기아차는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권 을 획득해 기아차 세피아(1500cc) 모델을 ‘띠 모르’(Timor)로 결정했다. 자동차에 부과되는 수입관세를 면제받는 특혜를 누렸으나 선물 선진국과의 통상마찰 등 국내외적 경영 여건의 나빠졌기 때문 이다. 당시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노 동력이 풍부하고 비교적 임금이 낮았을 뿐 아니 라 선진국에서 떠나는 제조 업을 이어받아 육성해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됐 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건설 사업들이 적자를 내 며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하지만 1975년 정 부가 ‘해외건설촉진법’을 제정하고 국가적으로 지원하면서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삼환기업이 1970년 자카르타 주택공사를 수주 해 한국 건설회사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이후 우리 건설업체의 진출이 이어졌다. 대림산업 의 가스압축플랜트공사(1973) 설립 이후 지난 50여년 간 정치·안보 섬 유 섬유 섬유·봉제 산업생산과 설비가동률(Industrial Production and Capacity Utilization) 은 2019년 84.93%의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4년 12월에는 67.12%까지 떨 어졌다. 이 하락세는 코로나19로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섬유·봉제 산업의 침체는 해당 규제 시행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 IFG 프로그레스(Indonesia Financial Group Progress)의 연구에 따 르면 성과의 해가 될 것인가” 논설위원 신성철 2026년 인도네시아는 ‘변화의 약속’이 ‘체감되는 성과’로 옮겨지는지 시험받는 해가 될 가 능성이 크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부 출범 이후 2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성실과 사명 으로 한인뉴스에 각 분야의 칼럼을 기고한 장기기 고자 이승민 성장기 성장한 기업은 다시 정 권을 지원하면서 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수하르토의 대표적인 경제적 피후견인은 수도노 살 림(살림 그룹) 세계 82위). 또한 더운 나 라에 사는 사람들은 차에 대한 구매 욕구가 큰 편 이다. 적도 근처의 나라에서 도보로 이동한다는 건 세계 시장이 흔들릴수록 인도네시아 정부 지갑도 빠르게 얇아진다. 왜 연료 가격은 정치 문제일까 인도네시아에서 연료 가격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직결된다. 수하르토 정 권 시절 세대를 잇고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도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이든지 인도네시아 사람이든지 현대인들은 말하는 도중에 이중 언어 또는 다중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 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서울 근교의 판교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남부 지역에서 각각 탄생한 ‘판교 사투리’와 ‘바하사 작슬’(Bahasa Jaksel)이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 여준다. 판교 사투리는 IT업계가 집중되어 있는 판교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우리말과 영어의 혼용 체 말투를 지칭하는 말이며 세수 감소 소득세 감면 소비자들은 전통시장보다는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현대적인 유통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9년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현대 적인 유통 채널 가운데 하이퍼마켓과 미니마켓( 편의점)은 확산 추세인 반면 소비자들은 전통시장보다는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현대적인 유통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9년 현재 인도 네시아에서 현대적인 유통 채널 가운데 하이퍼마켓과 미니마켓(편의점)은 확산 추세인 반면 소통의 창구이자 역사의 기록자로서 묵묵히 헌신해 오신 한인뉴스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타국에서 우리말로 된 언론을 발행하고 그 명맥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 은 여정입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한인 미디어를 운영하며 동포 사회와 호흡해 온 동반자로서 소피안 회장은 경제와 민간 교류의 영역에서 그 길을 확장한 인물이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출신인 소피안은 인도네시아 경제계에서 보기 드문 조정자였다. 기업인 속어가 인도네시아어에 섞여 사용된다. 이 같은 변화는 소셜 미디어 (SNS)와 인터넷의 영향 아래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손양 섭과 노병한이 자살한 당시 창고는 암바라와 성요 셉성당 뒤편에 위치해 있다. 고려청년독립당은 1945년 1월 8일 일본군 수송 선인 스미레마루호 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카르타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던 영국군과 네덜란드군 손양섭 수교50주년을 거치며 보여준 박재한 한 인회장의 헌신과 한인사회의 화합에 감사한다” 고 말하고 이장근 아세안대표부대사는 “한인회 의 여러 행사와 사업을 통해 만난 한인사회의 모 습은 자긍심을 갖게 한다”고 전했다.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I 21 이어 6년간 한인회에 헌신한 손한평 수까부미 수도 수라바야 수라바야-부산광역시 수르야 위조워노(구당가람 그룹) 수르요 수만또(Surjosumanto) 등에게 영화와 연극에 대 해 가르쳤다. 1947년 12월 2일 딴중쁘리옥 항구 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휴전 협정 조인 식의 기록사진을 찍은 사람도 허영이다. 1949년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허영은 자카르타 로 돌아와 영화제작사 ‘키노 드라마 아틀리에’ 를 설립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수미트로 조요하디쿠수모 (1917~2001)가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경제학 박사로 수소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고도화하자고 제 안했다. 양국 정상은 내년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 하자는 데 공감했다. 이어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 투자 분 야 고위급 대화 출범 ▲ 한·인니 경협 2.0(디지 털 파트너십) ▲ 핵심광물 협력 ▲ 녹색전환 이니 셔티브 ▲ 인프라 개발협력(신수도·중전철·해 양교통 등) 등 총 10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 됐다. 윤 대통령이 앞서 지난 11일 캄보디아 프놈 펜의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 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공개한 다음 개최된 첫 아세안 경제인 행사다. ★ 조코 위도도 대통령: 양국 관계를 고도화하는 데 기여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한국-인도네시아 관계에 크게 두 가지를 기여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위 대통령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또다른 하나는 2019년 양국 대통령은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이하 CEPA)의 최종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CEPA는 2023년 1월부터 발효됐다. 앞서 2017년 11월 9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며 수입 급증을 조절할 수 있는 무역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보호’와 ‘경쟁력 강화’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일관된 산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스리텍스의 몰락은 시작일 수 있다.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다면 수직 불일치(학위와 실제 직무 간 불일치)는 53.33% 수출 실적 악화 라는 삼중고가 덮친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거대한 파도에 더해 수출 촉진 등의 부문에서 제한적이지만 해 외투자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 9월 30일 발발한 공산 쿠데타를 진압하면서 권력을 잡은 수하르토 대통 령 대통령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경제 개발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산업화 정책에 박 차를 가했다. 산업화의 발판으로 인도네시아 최 1962년 8월 수자르보 산림부장관 방문 대 자원인 광물과 원유 수카르노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신생 정부는 350년 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를 사수하 기 위해 다시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전쟁’을 벌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 한 연합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에는 역부족이 라고 판단하고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정 부에서 재무·산업·무역 장관을 역임하며 산업화와 무역정책 수카르노의 권력 집중과 공산당 세력 확대에 대한 반발 이 얽혀 있었다. 1958년 수미트로가 해외로 도주하면서 어린 프라보워도 외국에서 10년 동 안 생활하면서 싱가포르 수평 불일치(전공과 직업 간 불일치)는 60.52%였다. 이 문제는 구조적 실업 현상 을 반영하며 수필 집필과 글쓰기 모임 을 주도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개인적 인 문학적 소통과 글쓰기 경험이 데일리인도네시아 의 편집 방향이나 뉴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결을 더해주는지 궁금합니다. 조: 문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이고 수하르토 대통령 등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 다. 개발 초기인 1968년 인도네시아에 대한민국 해병대 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원시 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 임상조사와 위급환자 후송 등 목적으로 1969년 한국인 최초로 경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길 만큼 생각과 행동이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7 최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애국자이다. 동서냉전기인 1964년 북한은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압도했고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인도네시아에 적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 혔다. 1989년은 한국이 동남아 외교에 있어서 전기가 마련된 해이다. 북미 및 유럽의 지역 경제공동체 가 배타적 경향을 보이자 수하르토 시대의 경제성장 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수하르토 정권은 수카르노 정권의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정당의 충성심을 억압하면서 통 제된 정치적 환경을 조성했다. 1998년 수하르토의 몰락과 B.J. 하비비에게 권력 이양으로 민주화를 주도하는 개혁과 새 로운 정치 지도자가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마르코스 이후 처음으로 1987년 민 주적인 선거를 치른 필리핀과 비교하면 수하르토 체제에서의 군 경력을 함께 놓고 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는 수미트로 박사는 독립한 인도네시아가 원 자재 수출과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창했다. 정부가 국내 기업을 키우고 제조업과 농촌 경제를 육성해야 한다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신봉했다. 그러나 외국 자본이나 시장의 역할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되 국가가 발전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실용주의에 가까웠다. 프라보워는 아버지가 인도네시아 경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취하는 혼합경제를 적용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의 경제관에서 국가의 역할이 큰 이유를 설명해 주는 직접적인 증언이다. 부자의 삶에는 국가권력과의 충돌도 깊이 새겨져 있다. 수카르노 정부에서 상공장관과 재 무장관을 지낸 수미트로는 정권과 대립하다 수카르노 정권기인 1958년 수마트라에서 수립 된 인도네시아공화국혁명정부(PRRI)에 가담했다. 혁명정부라는 반정부 활동은 중앙과 지방 의 자원 배분 갈등 수하르토의 사위인 쁘라보워 수비안또와의 경 쟁과 수하르토 정권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숙련 노동력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 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선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 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선결 과제로는 △수입 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와 부품의 국내 대체를 위 한 산업생태계를 육성 △5대 육성산업(식음료 숙소로 사용하였다. 본부에는 중경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보낸 태극기를 게양했 다. 민회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에게도 숙소 를 제공하고 집단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리고 일본군과 교섭하여 넉넉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물자와 자금을 확보한다. 조선어 교실 을 개설해 귀국을 앞둔 동포들에게 모국어를 가르 치고 순일 술 라웨시 슈퍼마켓은 축소되 고 있다. 2018년에만 헤로 슈퍼마켓이 26개 점포 가 문을 닫았고 슈퍼마켓은 축소되고 있다. 2018년에만 헤로 슈퍼마켓이 26개 점포가 문을 닫았 고 스리 물야니 전 장관이 약 500조 루피아를 저축한 결정은 단순히 비축이 아 니라 선견지명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도네시아가 ‘성장·분배·안정’의 세 축을 충 족하며 장차 선진국 문턱에 오를 수 있을지는 향후 프라보워 정부의 선택과 실행력에 달 려 있다. (끝) 스리텍스 같은 토종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기업들의 재무 구조도 한계에 이르렀다. 2015년 이후 섬유 기업 다수는 유동성 위기에 시달 렸고 스리텍스의 눈물과 섬유·봉제 산업의 경고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지난 3월 1일 스마랑 등의 포로 수용소에 배치되어 포로감시와 노역업무를 했다. 애초 포로 감시원은 2년 연한의 계약직 군속 신분 이었으나 스마랑조선인회 등 지역명을 딴 조선인(혹은 고려인)민회를 결성했다. 민회는 일본군이나 연 합군과 교섭을 통해 식량과 물자 확보 스마트 관개 및 드 론 모니터링을 활용한 스마트 농업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또 카사바와 사고(Sago) 등 주식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를 장려해 식량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정부 와 민간 부문이 기술 인프라에 투자하는 데 협력해야 하며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 구축 사 업에 한국 기업 참여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두 나라가 공동개발한 전투기 ‘KF-21’을 포함한 방산 분야 협력 의지도 재확인했다. 5) 윤석열-조코위 대통령 회담…”한국 스타윈 스타윈 (Starwin Indonesia) 스포츠 등의 분야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 회장까지 겸임하며 경제·사 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비즈니스적 효율성을 공직에 그대 로 이식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루훗 판자이탄은 전직 장군 출신이면서 동시에 석탄 광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역사가 됩니다. 30주 년을 준비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지난 30년 의 기록을 다시 읽고 의미를 연결하는 작업입니 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변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사업 을 다각화하고 있다. 특히 코린도는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에 발맞춰 성장해온 대표적인 한 상기업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있을 때 시선이 한 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협력하고 우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고 시장 신 뢰를 흔들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졌다. 일대일로(BRI) 프로젝트 재가동 시장은 이미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다. 고용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고 식량 분야 협력을 다변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지난 11월 개최한 세미나에서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세미나에서 공통적으로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1월호 I 25 제기된 평가는 신중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외교정책을 비교적 중앙집중적으로 운용하면서 협력 파트너와 외교 무대를 다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얼마나 일관되고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CSIS 연구진은 프라보워 외교의 성격을 ‘직관 중심’이라고 진단했다. 초기 국면에서는 전략 적 감각이 작동했지만 식품 안전 신 발회사 직원들의 소비는 땅그랑 지역경제에 활력 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 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하였고 신뢰 신발 신발 등 노동집약산 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신발 제조업체 PT 아디스 디멘션 풋웨어 신발산업 신생 독립국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모 하마드 하타 초대 부통령이 제시한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이 시작이며 신생국가 인도네시아 속에 남은 일제의 흔적 논설위원 신성철 독립의 역사 뒤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이야기 매년 6월 1일은 인도네시아 건국이념이자 국가 철학이 탄생한 빤짜실라의 날(Hari Lahir Pancasila)이고 신앙이라는 다섯 원칙 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념의 일부 구조가 일본 군정 시기의 국가주의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당시 “개인보다 국가와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논리를 강조했다. 사회 갈등보다 는 조화와 협력을 중시했고 신용 규제를 통한 토착 자본 을 보호한다는 정책을 펼쳤고 신의 뜻대로) 등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걸 원치 않거나 말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때는 부 모 또는 가족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실수하거나 무안한 마음이 들 때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체제를 좋아하지 않으며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정책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신청을 당부했다. 국외부재 자 신고는 2023년 11월 12일부터 2024년 2월 10일까지이며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 기 시작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 정착하면서 땅그 랑 찌뜨라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신한금융투자 신한기공 신한인도네시아은 행 신흥목재 실리 추구 중심의 ‘거래 정치’ 양상을 강하게 띠 는 것은 이러한 상업적 실용주의 전통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에서 는 “경제적 성공을 이룬 기업가가 국가의 실무를 맡아 행정을 이끌고 실리와 타협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 출해 내는 비즈니스 프로젝트에 가깝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는 정계와 재계의 경계가 매 우 유연하여 실제 구조는 조금 다르다. 연료를 많 이 쓰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여러 대 보유하거나 이동이 많은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5월호 I 9 중산층 이상 계층이 오히려 더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즉 실제 정부 발표는 2만 명대 수준이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 고용 규제가 매우 엄격하 다. 그러나 이 괴리는 단순한 통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반중 정서 실제로 한인뉴스는 기업 소식 실제로는 다극 체제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자율성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균형외 교’다. 이는 하타가 꿈꾸던 외교 노선의 현대적 재해석이라 볼 수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해외 순방지로 중국을 택하고 실제로는 미래에 특정 사건 이 발생하면 정부나 기업이 떠안게 될 수도 있는 우발 채무(Contingent Liability)가 누적되 는 구조다. 즉 실질적 협력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 하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이러한 한국의 대아세 안 협력 강화·발전 의지를 환영하였으며 실질적인 국방 협력 강화이다. 프랑스와 인도네시아는 수교 75주년을 맞이했으며 싱가포 르 싱가포르 싼 기름값은 국민 불만을 줄이는 중요한 통치 수단이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 기(Financial Crisis) 당시 정부가 재정난 때문에 연료 가격을 크게 올리자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고 쌍용건설의 자카르타 하얏 트호텔(1993) 아 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과 예배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한인기업의 후원과 봉사의 손길로 운영되는 《무지개 공부방》 12년 전 메리츠금융그룹이 기증한 46인치 스마 트 TV가 여전히《무지개 공부방》의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조금은 낡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된 시설과 물건들에서 고재천 교장님과 사모님의 정 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국 2세 자녀들에게는 다문화 속 희망의 색을 덧칠하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르치는 《무지개 공부방》 이야기 한동훈(JIKS 아니 여사 는 당시 의대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선택했다. 당시 서울은 산업화의 초입에 있었지만 도시 전반에는 강한 역동성과 근면함이 흐르고 있었 다. 남산 인근 이태원 관저에서 생활하며 바라본 서울의 풍경 아디다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빅바 이어들이자 브랜드 마케팅 기업들이 개발도상국 인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편 했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 전후 한국의 중소자 본이 가장 선호한 투자대상국으로 아름다운 마무리 ‘2024 한인회 송년의 밤’ 개최 12월 5일 아마도) 아마르타푸라 초고층아파트 (1997) 아세안과 중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KF-21 사업에서 나타난 분담금 문제처럼 아시아 지역 기준으로는 싱가포르 (431억 달러) 아식스 등 글 로벌 브랜드 제품을 연간 1억3 아이들을 키웠다”는 한 여성 노동자의 말은 한 기업의 몰락이 곧 수많은 삶의 붕괴로 이어진 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전통적으로 기쁨과 나눔의 달로 여겨지는 라마단의 시작과 맞물려 더욱 뼈아프다. 이날 문을 닫은 기업은 인도네시아 최대 섬유·봉제 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스리텍스(Sritex). 한때 북대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군용 위장복을 수출하며 국제적 위상을 자랑하던 이 기업은 결국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법원의 파산 판결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구 제를 약속했지만 아이들이 바르고 정직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아이비리그 마피아 - 국부펀드 시대의 실험 2025년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부펀드 다난타라를 출범시켰다. 국영기업 자산을 묶어 전략적 으로 운용 아이비리그 마피아 역시 국부펀드의 불투명성과 권력 집중 문제로 비판받고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강력한 투명성 장치와 민주적 견제 없이는 아이비리그 마피아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선제적 전략이다. 또한 권위주의 체제가 아닌 민 주주의 환경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도 차이다. 공통점과 차이 두 집단은 공통적으로 국제적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삼은 엘리트 기술관료 집단이었으며 아이비리그 마피아는 다극화·탈탄소화·자원 민족주의라는 글로벌 격변기의 선택이다. 전자는 단기적 위기 관리에 치중했지만 아직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기 이전에 제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 사로 부임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먼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북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고 아태지역의 국가들도 무역 자유화 및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악천후와 엄격한 감독하에서 공사를 진행해 상당한 액수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특히 우기에 공사가 지연 인도네시아에서 뿌리내린 한국 건설의 과거와 현재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53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되자 안 보에서는 미국과 가까웠다. 2024년 10월 안보 협력 강 화이다. 무기와 군사 기술을 함께 개발·운용하면서 군사적 신뢰와 동맹 수준의 관계가 강화된 다. 단순한 무기 구매보다 더 깊은 전략적 협력으로 이어진다. 둘째 안보적으로는 미 국과 가까운 경향을 보여왔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외교 철학은 이러한 하타의 원칙을 계승하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듯했 으나 안정적인 정착의 반세기는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가진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통해서 일구어낸 값진 시간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 해 준 우방국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3장에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 발전 단계에 따라 태동기 안쫄바루해안지구매립공사(1999) 팔 렘방수반가스처리시설(2002) 알쏭달쏭 말 한마디 “뜨리마 까시” 알아서 하세요) 암본 등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에도 조선 인 위안부의 흔적이 남아있다. 해방 직후 귀국선 을 타기 위해 「재자바조선인민회」에 집결한 조 선인들은 포로감시원과 민간인들로 구성되어 있 었다. 민간인 그룹 중 여성들은 군위안부 출신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 등 6년 동안 대통령이 3차례 교체되는 과도기적 혼란을 겪는다. 2004년 최초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 고 대(對) 중국 자원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연 평 균 6%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도요노 정부는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폈 고 앞으로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 계’에 걸맞은 실질협력 내실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4) 윤석열-조코위 대통령 “공급망·인프라·방산 협력 강화” 윤석열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은 2022년 7월 28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안보와 인프라 구축 등 양국 간의 실질적 협력 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방명록에 ‘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적합한 파트너’라고 적었 고 앞으로도 교민사회와 함께 써 내려갈 한인 뉴스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정재은 | 인니투데이 발행인 한인 사회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오래도록 함께하는 《한인뉴스》 가 되기를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창간 30주년을 축하합니다. 30년이라는 뜻깊은 시간동안 한 결같이 재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다양한 소식을 전해온 한인뉴스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정보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하게 많아지는 환경 속에서도 많은 동포들 이 한인뉴스를 찾고 폭넓게 소통하는 매체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재인도네시아 동포 사회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소통의 창구 앞으로의 30년은 모두를 연결 하는 지식 플랫폼이자 스마트 한인공동체를 만들 어가는 구심점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 대합니다. 앞으로의 30년은 축적된 기록을 지식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기사와 사진 액화천연가스(LNG)의 안 정적 공급 확보에 대해 중점적으로 협의했다. 북 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제네바합 의로 해결의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북한의 합의사 항 이행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수하르토 대통령 도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 라고 지적하면서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인도네시아산 LNG 수입과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 령은 안정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가격 합리화도 중 요하다고 언급하였으며 수하르토 대통령은 공감 을 표하고 실무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개최 하루 전에는 양국 과학기술 담당 장관 간 원자력협력의향서 서명이 있었다. 김영 삼 대통령은 귀국 후 11월 23일 수하르토 대통령 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정상회담 성과와 수하르토 대통령의 APEC 의장 역할을 평가하고 인도네시 아의 LNG 가스 공급에 대해 재확인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병행 추진이라는 공동의 가치에 입각해 새 로운 협력관계 발전을 위한 고위급 교환방문이 지 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 11월 27일 아세안 +3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과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 독립을 승인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용단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이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 임을 강조했다. 와히드 대통령은 동티모르와는 달 리 아쩨는 역사와 현실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토의 일부라고 언급하면서 독립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 다.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에 대해 인도네시아 동 포들은 한국 언론에 반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환담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한국 정부는 동티모르 파병이 유엔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른 것으로 동티모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5) 와히드 대통령 방한 및 메가와티 대통령의 남북 동시 방문 2000년 2월 와히드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야전 점퍼 등 개인 장구류를 수출했다. 이후 1980년 초 코리아타코마(Korea Tacoma)가 인도 네시아 해군으로부터 전차 상륙함(LST) 6척을 수주하면서 양국의 방산 협력은 해군 장비로 확 장됐다. 이는 진정한 한국 방산 제품의 첫 해외 진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시기에는 장비 이전과 운용 경험 공유 단계로 발전했다. 한국이 보유하던 Tacoma급 전차 상륙함이 인도네시아 에 이전되면서 협력의 성격이 단순 수출에서 군사 자산 공유로 발전했다. 이 시기가 양국 간 신 뢰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양국의 방산 협력 전환점은 2000년대 항공 분야에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KT-1 기본 훈련기를 처음 구매한 국가가 인도네시아이다. 2001년 인도네시아의 KT-1 10대 도입은 단순 구매를 넘어 기술 이전 논의로 이어졌다. 이어 2011년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을 도입 하면서 인도네시아는 한국 항공기 수출의 첫 번째 핵심 고객이 됐다. 같은 시기에 잠수함 협력 사업도 시작됐다. 장보고급(209급 약소국을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 이후 개혁시대라는 큰 변화를 겪은 인도네시아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부 시기에 국력이 신장되면서 G20 회원국이 됐으며 약일까 독일까 프라보워 대통령은 아버지 수미트로의 경제 철학을 신뢰하며 이를 국가 발전 전략의 토 대로 삼고 있다. 수미트로노믹스는 인도네시아의 고도 성장을 지탱하는 나침반이지만 약한 정당 충성 도 양국 간 ‘포괄적동반 자협정’(CEPA) 등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 한 구체적인 목표들이 정해지고 이의 달성을 위 해 공동 노력했다. 한국 기업들은 에너지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 력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이명박 대통령(2008~2013년)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2004~2014년) 간 관 계는 각별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 (MP3EI)’을 수립해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 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양국 정상 간 실질 협력 강화 합의에 따라 한국 기 업의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2007년 중 부발전·삼탄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출입은 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통해 약 7억4천만 달러 규모의 찌레본 석탄화력 발전소 민자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4)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5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양국 대통령은 민간 부문 합작사 업의 증진을 장려하기로 했다. 4) 한국과 인도네시아 지방자치단체 자매결연 1984년 7월 25일 염보현 서울시장이 자카르타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4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를 방문 수쁘랍또(Suprapto) 자카르타 주지사와 자매결연 조인식을 개최했다. 이는 양국 지방정부 간 최초의 자매결연이다. 이에 따라 양국 방산 협력은 아세안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모델로 자리 잡을 가 능성이 있다. [끝] 양국 정부는 각 각 김좌겸 총영사와 베니 무르다니 총영사를 대 사대리로 임명하고 이를 통보하였다. 1973년 10 월 23일 한국 정부는 김좌겸 주자카르타 총영사 를 초대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했다. 인도네시아 는 1974년 4월 18일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에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e Wibowo) 를 임명했다. 2) 초창기 군사 관계 및 인도네시아에 쌀 대여 한국과 인도네시아 군사 관계는 1970년대 초 군 고위급 인사의 상호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 10월 인도네시아 안보·질서회복사령관 빵가베안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2) 1974년5월14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았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53 (Panggabean) 장군 일행이 심흥선 합참의장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군사회담을 가졌다. 1972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군의 초청으로 서종철 육군참 모총장 일행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였다. 1973년 5월에는 옥만호 공군참모총장이 인도 네시아를 방문하였고 양국 항공사의 취항도 이루어졌다. 2) 노태우 대통령 공식 방문: 협력 관계 발전의 또 하나의 계기 제공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 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과 수하 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한 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은 철강·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진행 중인 협력을 강 화하기로 했고 양국의 우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이후 대한민국은 자원개발을 뛰어넘어 신 발·봉제 등 노동집약산업을 필두로 제조업 부문에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 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 프라 구축을 한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 졌다. 초창기 산림개발 업체들의 뒤를 이어 미원 양칠성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2023년 11월 10일 서부자바주 가룻군은 인도 네시아 영웅의 날을 맞아서 찌삐쭝 마을의 한 도 로에 양칠성의 이름을 딴 ‘잘란 코마루딘(양칠 성)’을 명명했다. 찌삐쭝 마을은 팡에란 파팍 유 격대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사진. 양칠성의 묘비 어떤 정치 시스템이 더 좋은지는 사회적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끝) 어떻게 이어지나 이러한 프라보워의 외교 전략 속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위치에 놓일까? 프라보워 대통령 은 지난 6월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과 6월 23일 직접 통화를 통해 축하를 전하고 어떻게 정착했는지에 대한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안내서이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에 대 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교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에게는 따뜻 한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매체로 거 듭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 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깊은 이해도를 갖게 되 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경험과 언어 능력은 그가 프랑스와 같은 서구 국가들과 소통하고 관계 를 구축하는 데 있어 큰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 나아가 어묵 등을 선보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김창범 대사는 “지방 사람들은 상대적으 로 한식을 비롯해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잘 없 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이 지방까 지 신경 써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어제 저 녁 진짜 맛있었어) 자카르타 남부 지역에 있는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미셸 르즈끼(22)는 지난 2022년 현지 언 론 자카르타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대부분 자카르타 남부에 살고 외국인과 자주 접 촉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며 “직장과 소셜미디어에서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섞어 서 쓴다”고 말했다. 언어학자 나디아 이자뚜니시아 씨는 “이러한 언어 혼용 현상은 글로벌 화의 가속화로 자카르타 남부 지역을 넘어서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일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영어로 말하면서 스스로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두 언어 언어도 급변한다: 판교 사투리와 바하사 작슬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초연결 글로벌 사회는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 언어조차 단 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에까 찝따 위자야(시나르마스 그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8월호 I 11 룹) 에너지 에너지 전환 에너지 협력 에너지·AI·전략광물· 식량 안보에 집중하는 것이다. 구조는 1960년대 버클리 마피아와 닮았지만 에밀 살림 엔터테인먼트 여기에 지방은행까지 포함하면 1 여성 여전히 ‘우리들의 잡지’로서 한인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150권의 ‘한인뉴스’를 통해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삶과 함께 숨 쉬었 던 홍석영 편집장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그의 헌신과 열정은 한인뉴스 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의 담담한 퇴장과 함께 여전히 군부의 영향력과 강한 국가주의 문화 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배경에는 단 3년 반이었지만 강력했던 일본 군정 기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네덜란드 식민지 역사만 이 아니라 여전히 봉사 인 력과 재정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현실이 공개적으로 논의 되지 못했지만 역 사적 기억 및 국내 정치 세력의 부추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또한 중국 기업이 건설·운영 과정에서 기술자·관리자를 다수 투입하고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 다. 일반적으로 정당정치는 정책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보장하지만 연 계성 증진 및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 한 국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장려했다. 명문 정치가문 출신이거나 재벌가 출신이 아닌 가 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조코위 대통령에게 인 도네시아 서민과 중산층들은 친근감을 느낀다. 정 치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소 규모의 가구사 업가 조코위는 2005년에 중부자바주 솔로시장에 출마 연계성 증진 및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 는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장려했다. 두 정상은 포괄·현대적이고 높은 수준의 상호 호 혜적인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조 기에 타결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도 의견 일치를 봤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 본·호주·뉴질랜드 5개국을 더해 아시아·태평 양 지역 15개국 사이의 무역의 룰을 정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로 2020년 15개국간 최종 타결 및 서명이 이뤄졌다. 이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EPA)을 타결하고 2023년 1월부터 발효하면서 양국간 경제 관계 전반에서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CEPA는 양국 간 무역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협 정(FTA)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상품과 서비스 교 역 연구 협력 연이은 풍작으 로 주곡인 쌀이 자급선을 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3) 한국 대통령의 최초 인니 방문과 인니 대통령의 최초 방한 1980년대 한국 정부는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외교 다변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81년 6월 25일부 터 7월 9일까지 아세안 5개국(인도네시아 연장 129km 규모의 프로젝트로 한국 건설의 도로공사 시공 능력을 인정받았다. 국제 실업은 인도네시아에서 2건의 대규모 공사를 시공했지만 1983년 서울 본사가 부도가 나면 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1980년에 진출한 한보종합건설은 자카르타~머 락(Merak) 간 13.5km의 고속도로 공사를 1981 년 3월에 착공해 1982년에 완공했다. 이어 자카 르타 또망(Tomang)~그로골(Grogol) 도심고속 도로 공사 등 대형토목공사를 진행하면서 시공 능 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에는 자카르타 그로골 고 가도로 인터체인지와 쯩까렝(Cengkareng) 톨게 이트 진입로 공사 2건을 1 연장 59km)로 현대건설이 1973년 수주해 1978년에 완공했으며 지금도 현지에서 훌륭한 토목공사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게 한 나라도 인도네시아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19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릴 때 연평균 7%의 고도성장 을 달성했다. 이 기간에 한국 기업들이 원목을 비롯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에 투자하는 시기였다. 코데코와 코린도 등 한국 원목개발회사들의 투자가 몰렸고 한국 내 합판산업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한국 기업은 칼리만탄과 수마트라 등 오지 밀림에서 과감하게 사업을 펼쳤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I 열연 등)과 자동 차 부품(변속기 영부인으로서의 공적 역할까지 이 서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단 순한 협력 파트너를 넘어 정서적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국가 간 관계를 움직이는 것은 양국 간 조약과 교역량만이 아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기억 영어 영어 단어나 신조어 영어를 자유 롭게 활용하며 공동체를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기존 미디어를 보라고 하기보다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를 반복했다. 알트만 Z 스코어(Altman Z-Score) 지표는 상당수 기업이 디폴트 위험에 가까워졌다고 경고한다. 스리텍스의 사례는 단순한 경기 불황의 문제 가 아니라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선구 자가 됐다. 일제 패망 이후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귀환하였 지만 허영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인 도네시아 독립투쟁에 참여한다. 1946년 식민종 주국이던 네덜란드가 영유권을 내세우며 인도네 시아를 침략하자 예총은 물론 한국문화원 예측 가능한 세제 개편 예측 불가능 한 세금 정책 오늘날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부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의 뿌 리로 깊게 이어지고 있다. 1.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1945년 8월 15일 오늘날 프라보워 정부의 통치 철학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 고 있다. [끝] 오른쪽은 빵에란 빠빡 부대 활 동 당시 모습 [출처: 책 적도에 묻히다에서 캡처] 60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8) 인도네시아에 남은 조선인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로 온 조선인 중 소수는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는다. 영화 감독 허영은 족자로 망명한 수카르노 정부에서 홍 보 활동을 하고 오일 팜 오토바이 택시 온라인 판매 완구 등 노동집약산업을 중 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저임금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민간 신용 증가 왜 인도네시아는 독립전쟁 시기를 ‘혁명시대’라고 부를까?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는 1945년부터 1949년까지 4년 반 동안 치열한 무장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 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이 시기를 ‘독립전쟁 시기’ 대신 ‘혁명시대’(Revolusi Nasional Indonesia)라고 부른다. 왜일까? 미국 출신 역사학자 이선 마크(Ethan Mark)를 비롯한 동남아 역사학자들은 이 4년 반의 시기가 단순히 외국 군대를 몰아내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이 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낡은 계급 구조와 경제 체제 외교 및 경제 유발 효과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이 한류 문 화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류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쳐서 더 나 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외교 영향력까지 함께 확대된다. 무기 거래는 장기 유지·보수·개조(MRO)까지 이어져 지속적인 협력 관계로 만든다. 4.5세대 쌍발 엔진 초음속 전투기로 저피탐(스텔스) 기술이 적용됐으며 AESA(능동 전자 주 사)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 장비 상당수가 국산화된 KF-21의 양산 1호기 출고와 인도네시아의 KF-21 16대 도입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공동 개발이 실제 수출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공동 개발.양산.수출로 이어지는 방산 생태계가 완성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은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외교가 진전되기도 하며 외교를 아우른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과 의 관계에서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직책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통한 외교였다. 그는 1970년 외교부의 전문성과 국회의 민주적 감독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외교는 한 개인의 결단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지역 차원에서는 아세안의 위치가 다시 강조됐다. 인도네시아 외교에서 아세안은 여전히 중심축이어야 하며 외국 투자자 사이를 연결하는 비공 식 제도로 기능하기도 한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성공한 사례 가운데 상당수도 결 국 현지 사회와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한 결과였다.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외국인 투자자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특히 한국 기업들과 깊 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던 초창기부터 조언자이자 후견인 역할을 했다. 제도도 정보도 부족했던 시절 요식업 등 서비스업도 경영악화에 따른 디지털화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고용을 줄이고 있다.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수출 주문은 눈에 띄게 줄었고 용역)가 5.2%(252건 우리의 시 야를 넓혀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로 지정학 적 이점을 살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 조코 위도도 대통령 국빈 방한: 창덕궁에서 특별한 환영식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8년 9월10 일 한국을 국빈 방문하였다. 맑은 가을 날 우유 생산량도 충분하지 않아 무상급 식을 위해서는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를 위해 프라보워 정부는 식량안보를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있 으며 우익 및 소수자 포용 △전통적 인 이슬람과의 협력 등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고 꼽았다. 메가와티는 한반도 평화에 관심과 영향력을 발휘 하는 등 오랜 기간 한반도 평화 중재자 역할을 기꺼 이 맡아왔다. 메가와티는 1964년 아버지인 수카르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해 김일성 주석을 만 났고 우중버뚱 웃거나 미소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원금은 물론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원자재 확보 원전 윌리엄 수르야자야(아스트라 인터내셔널) 유권자 매수 등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정당정치 기반의 부족 유도요노 대통령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 결과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사 르워노 장군이 주한 대사로 재직할 당시 예비 사 위였던 자신에게 “한국 국민의 역동성과 자립 의 지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을 닮아라.’”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다음 호에 계속) 유력 정치 가문 유림사리 등 총 7개 업체 가 있었지만 유머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유아 교육 유족이 없 고 일본 이름치곤 이상한 한 사람을 집요하게 추 적하면서 양칠성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 는 것이 밝혀진다. 1995년에는 한국 시민단체 등 의 노력으로 묘비명이 일본인 ‘야나가와 시치세 이(梁川七星)’에서 ‘KOMARUDIN 유통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시작하자 지난해 요 소수 품귀 사태 당시 인도네시아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내놓은 공동발표문에서 공급망 은행 음 악 음식을 제공 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네덜란드인 포로들을 도와 주었다. 당시 수까미스낀 수용소에서 김만수와 같 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로는 유홍배ㆍ이병용 등 이 있었다. 김만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하여 자카르타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는 196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관 개 설에 일익을 담당할 만큼 초창기 이곳 한인사회 형성에 공헌하였다. 유홍배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인과 결혼하여 1970년대 초에 자카르타에서 사 망하였다. 이병용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해 동부자바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살다가 그곳에 서 사망하였다. ★허영 음식점에서 식사(61.4%) 응답자 57.9%가 한류가 한국 제품·서비스 이용 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의 류 구매(52.8%) 등이 높은 소비 의향을 보였다.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호감도 조사 에서 가장 높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이다. ‘마음에 든다’(호감)라고 답한 비율은 인도 네시아(86.3%) 의료 의료기기 의약품 생산까지 담당하며 행정 의 전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는 수하르토 시절의 ‘이중 기능(dwifungsi)’을 떠올리게 하지 만 의제는 주도하지 않는다. 지 도력은 참여로 대체되고 이 기간 연평균 6.8%의 성장을 달성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원목수출 규제정책을 진행함에 따라 코데코와 코린도는 현지에 합판공장을 설립했다. 또 한국의 건설사가 현지에서 고속도로와 플랜트 건설을 수주하는 등 현지 진출이 러시를 이 루었으며 주로 자바섬 이외의 지역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7 앞서 10년 간 경제 기반을 다진 인도네시아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II 이 기간에는 자카르타와 수도권 지역에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제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VI 이 는 역대 혁명기념일에 외국 파견 병력 중 최대 규모이다. 이 행사에 주빈으로 초청된 프라보 워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귀빈석에서 인도네시아군에 경례를 보냈 다. 마크롱 대통령은 혁명기념일을 하루 앞둔 연설에서 “우리와 함께 제국주의와 진영논리 를 거부하는 국가들 이 렇게 맺은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 종족이 있으며 이 로써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더욱 부 각되었다. 이 회의 계기에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 직후 양국 대통령 내외는 예정에 없던 단독 오찬 에 이어 서귀포 바다를 산책하면서 각별한 친분 을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에 한-아세안/아 세안+3/EAS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발리를 방문하였고 이 시기 인도네시아의 섬유 및 의류 수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7 출은 가치 기준으로 15.95% 감소해 이 의존도는 206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목표를 달 성하려는 인도네시아 국가 목표와 배치된다. 2022년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12.30% 정도지 만 인도네시아의 재생 가능 에너지 잠재력은 442GW에 달하며 이 중 첫 6대는 2026년부터 인도될 예정이다. 프랑 스는 최근 자주포 이권 배분 이는 1982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 이래 인도네시 아 정상의 첫 방한이었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 통령은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 증진 이는 시장에 경제를 맡기기보다 국가가 자산을 직접 관리 하겠다는 강력한 국가 자본주의 행보이다. 셋째 이는 아세안 국가 중 최대 수치다. 인 도네시아가 높은 성장을 이어가며 자동차 부문에 서 아세안 시장 1위로 우뚝 설 날이 멀지 않았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는 자동차 보급율도 낮다. 한 국자동차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인구 1 이는 양국 정상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략적 필요와 개인적 유대의 시너지 인도네시아와 프랑스 간의 ‘밀월관계’는 프라보워 대통령이 추구하는 ‘전략적 균형 외 교’의 한 단면이자 이는 인도네시아 노동력 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끝) 이는 인도네시아 노동력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는 교육시스템 개혁이 핵심이며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 국 방문으로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국 방문으로 이는 인도네시아 역사 상 가장 큰 쌀 수입 기록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경제 족자카르타 지역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젊은 기업가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열어주고 있지 만 이는 청정에너지 기술에 대 한 투자와 화석연료 보조금 개혁을 통해 즉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전략을 사용 하면 이는 판교만의 독특한 업무 문화와 젊은 감각을 반영한다. 판교 사투리는 한국어 어순에 중간중간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이는 팬데믹 이후 과잉 재고 조정을 위해 미국 소매업체들이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되풀이되는 사이클은 인도네시아 섬유·봉제 산업이 외부 충 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며 이는 한국 국가원수로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와 동남아의 평화와 안전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 전 세계의 평 화 및 안정의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는 점 에 견해를 같이하고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와 인 도네시아 진출에 큰 교훈이 됐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신발산업 이 2005년 파크랜드(PT Parkland World Indonesia)의 풍원제화 인수를 계기로 현지 한국 신발제조업계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어 창신(Chang Shin Indonesia)과 태광(Taekwang Industrial Indonesia) 등 대규모 한국 신 발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신발업계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집권 후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대외 여건이 변화하면서 제조업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이동식 도서관 ‘모빌 삔따르(Mobil Pintar)’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 동 복지와 교육 분야에서 사회 적 기여를 확대했다. SNS를 통 해 국민과 소통하며 영부인의 공적 역할을 현대적으로 확장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활 동은 인도네시아 사회 내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존재는 양국 관계에도 상징적 의미를 더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최초 직선제 대통령 으로 유도요노가 당선된 이후 한국과 인도네시아 협력은 외교·안보·경제·방산 전반으로 확대됐다. 물론 국가 협력은 구조적 이해관계 위에서 작동하지만 이들 유통회사들은 인도네시아 대도시 식품 유통 점포에 납품 하거나 한국인이 근무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에 한국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류에 깊이가 더해지고 인도네시아인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큼 확산하면서 그 영향력 도 커졌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쌍방향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자는 데 초 점이 맞춰지고 있다. 양국 모두에게 자국의 문화는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자국민 의 정체성 고양 이들 유통회사들은 인도네시아 대도시 식품 유통 점포에 납품하거나 한국인이 근무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에 한국식품 을 공급하고 있다. 2019년 8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푸드 트럭과 홍보 버스를 몰고 ‘자바섬 횡단’이라는 색다른 공공외교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국 친 구 이듬해 코린도(당 시 인니동화)도 동부칼리만탄 지역에 같은 업종 에 진출했다. 코데코와 코린도 진출 이후 원목개발이 러시를 이룰 때 이러한 개인적 신뢰 는 군납 계약과 자원 개발 이러한 군사 현대화 추진과 국제적 위상 강화는 프랑 스와의 국방 협력을 통해 가속화되고 있다. 셋째 이러한 사 회적 배경은 권력과 신뢰를 형성하는 자산으로 작용한다. 지방 분권 이후에는 지역 유력 가문 이 새로운 정치 패트론으로 성장했고 이러한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 과 올해 1~2월 두 달 동안 6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는 지난해 전체 해고 인원과 맞먹 는 수치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해고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섬유 기업인 PT 스리텍스와 PT 카르야미트라 부디센토사 이런 바탕 에서 무역과 투자 등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 가기로 했다. 1982년 10월 16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전두환 대 통령의 초청으로 나흘 일정으로 공식 방한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 로서는 최초의 한국 방문이었다. 또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아세 안 5개국 순방 이후 아세안 지도자로서 최초의 답 방이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 달성 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 간 의 직접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로 인해 정당 충성도가 감소하고 정당정치 기반이 약화되었다. 필리핀 민주화 이후 정당체제와 수하르토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제 정당의 출현은 의 미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마젤로는 평가했다. 일관성 있는 국정에 관한 논의는 줄어 들고 신선한 아이디어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기울었다. 초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은 최계월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에 유치원 이로써 본격적인 유전개발이 시작되 었다. 코데코에너지의 유전개발사업은 한국 최초 자원을 찾아 인도네시아로… 초창기(1968~1985년) 대한민국 최초 해외직접투자 ‘코데코’… 최초 해외공장 ‘미원’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59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의 해외석유개발 사업으로 이를 21세 기 다극 체제에 맞게 확장한 형태로 평가된다. 그가 내세운 “친구는 천 명도 부족하고 이를 계기로 2007년 《무지개 공부방》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우리은행 이를 다민족·다언어 사회를 하나로 묶는 국가 통합 논리로 바꾸어 활용했다. 즉 빤짜실라는 인도네시아식 국가 이념이지만 이를 수행할 건설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건설업법(1958년)도 도입됐다.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 면서 각종 개발사업이 대형화됐다. 이어 1960년 대 후반에는 월남전 특수를 계기로 해외시장에 눈 을 돌리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이 1965년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하면 서 우리 건설업계가 해외진출에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대는 압축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연평균 10.8%가 넘는 국내 건설투자가 이뤄졌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1967∼1971년)에 는 사회기반시설(SOC)의 성장률이 무려 12.6% 에 달했다. 또 ‘중동 붐’을 타고 해외진출이 본 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다 경쟁 이를 연구자와 차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 표입니다. 조연숙 편집장(이하 조): 30년은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만큼 긴 시간입니다. 매일 기사를 쓰 하비비센터 취재 후 기념사진 한인뉴스 2026년 8월호 I 29 다 보면 하루하루의 기록은 작고 평범해 보이지 만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통합 아카이브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는 대사관과 한인회 이미 1973년 수교 이 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은 관계로 발전해 왔다. 특히 KF-21 공동개발 이미 2006 년에 인도네시아의 정당이 ‘필리핀화’(Philippinization) 현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인 도네시아 정치권에서 필리핀화는 당내 권위주의 강화와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정당의 부상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 현지 어머니 와 함께 자라며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 이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에 대한 상처 와 불신도 깊었다. 고 교장님은 이러한 다문화 가 정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며 그들 역시 한국인의 자녀임을 강조하며 이미 선택한 길의 성과와 한 계가 드러나는 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성과가 축적된다면 안정의 해로 기록될 것이고 이번 에는 한국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상황 이 긴장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포럼의 공동주재자 역할을 기 꺼이 받아들였다. 9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발리에 체류하는 동안 8개의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축적된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친분은 결국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날 정상회담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인도네 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MP3EI)에 주요 파트 너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 참여 요청에 대 한 구체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그 다음 해인 2011 년 2월 하따 라자사 경제조정부 장관을 단장으로 이상문 이슬람 문화와 인도 문화가 공존하 는 곳. 인도네시아 영토의 최서단과 최동단의 거리는 약 5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회를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또 발리민주화포럼(Bali Democratic Forum) 을 설립해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을 전망하려면 먼저 프라보워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51년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유력 가문의 네 자녀 중 셋 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수미트로 조요하디꾸스모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대통 령 정부에서 여러 장관직을 역임했다. 아버지 수미트로가 1958년 수카르노 정권에 반대해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7 설립한 인도네시아공화국혁명정부(PRRI)가 실패하자 이슬람 정당 마슈미 (Masyumi)와 같은 이슬람주의자 그리고 인도네시아공산당(PKI) 소속의 사회주의자 등 정치적 이념이 분명하게 구분됐다.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7 수카르노 집권기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은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탄압과 억압을 받 게 되면서 행정부와 군부로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이 슬람주의자 이슬람화 또는 폭탄테러 등과 같은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이해하려면 이어 1962년 3월에 우리 경제사절단 입국을 거부한 것으로 1962년 7월 한국 외무부 문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1961년 북한과 인도네시아는 영사관계 수립과 1964년 대사관계를 수립하는 등 외교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는 대한민국과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63년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정관계 인맥이 있던 최계월 ㈜한국남 방개발(현 KODECO) 회장의 주선으로 도쿄에서 수카르노 대통령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7 부장과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변(G30S)으로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붕괴되고 친미·반공 노선의 수하르토 정권 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북한 간의 외교관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 아 관계개선의 환경이 조성됐다. 1966년 12월 자카르타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설립됐다.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이전인 1968년 대한민국 최초 해외직접투자가 인도네시아에 서 이루어지면서 현지에서 우리 기업이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다. 1973년 9월 18일 이어 미국을 방문했다. 중국 과는 ‘2+2 대화’를 통해 해양안보 이어 베트남 (78.6%) 이에 따라 발리 이에 따른 ‘경기 침체’의 해 였다. 설상가상으로 엘니뇨 기후현상으로 인류의 삶은 더욱 팍팍한 한 해였다. 한편 한국과 인도네시 아가 수교 50주년을 맞아 서로 축하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축제의 2023년이었다. 이제 어제를 돌아보면서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전망해 볼 때이다. 2024년 인도네시아의 정치 이에 반발 한 일본업체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 다. 1997년 한국보다 먼저 외환위기를 맞은 인도 네시아는 자동차 수요가 30% 수준으로 뚝 떨어졌 고 이와 관련 이장근 아세안대표부대사 이제는 보다 구조화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교정책 결정 과정 이 소수 참모진에 국한되지 않고 이제는 점차 동포 사회에서 알려지고 있으며 이젠 한류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024년 4월 발표한‘2024 해외 한류 실태조사’(2023년 기준)에 따르면 이집트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이처럼 프라보워는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되 이후 강력한 대통령과 군부가 지 배하는 체제 안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10월호 I 7 아버지에게 국가가 산업화를 설계하는 주체였다면 이후 글로독 형무소로 이감된다. 1946년 4월 무 렵 이후 이슬람학교 설립 자금을 후원하 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국가 체제 형성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고 설명한다. 물론 일본 점령기 는 강압과 수탈의 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은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세력을 조직하고 동원하 면서 이후 인도네시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가문을 이룬다. 1976년 7월 인 도네시아 신발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 최저임금 인상율이 연간 10%를 상회함에 따라 인도네시아 에서 생산비 절감 효과가 낮아진 동시에 한국에서 더 가까운 중국과 베트남이 대안 생산기지로 부상 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계기 로 중국의 생산원가가 급속도로 인상되면서 중국 54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에 진출했던 한국계 기업 중 일부는 한국으로 U턴하거나 인도네시아로 재이전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 투자기업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반뜬주 땅그랑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 도네시아 전체 합판 생산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코린도그룹 이외에도 한국 대기업들이 2000년대 이후 해외산림자원개발에 활발하게 투자하면서 팜오일 분야에 대상홀딩스 인 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인 도네시아인 장교들과 공모하지만 사전에 적발되 어 실패한다. 1945년 7월 일본군에 체포된 고려 독립청년당원 10명은 군사법정에서 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하다가 종전 후에 석방된다. 하지 만 다시 연합군에 체포되어 전범 조사를 받고 중노 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7년에야 귀국한다. 한국 정부는 2011년 11월에 자바에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벌인 항일투쟁을 해외에서 벌 인 항일독립운동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2008년에 암바라와에서 사망한 민영학 인 도와 중국 사이의 열대우림 지역에 위치한 만큼 유목 생활을 했던 중동국가과 내륙지역인 중 앙아시아 국가 민족들의 이슬람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다른 나 라의 이슬람과 비교할 때 다원성과 혼합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인도네시아 이슬람이 주 류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이슬람 신앙을 강요하거나 타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 지 않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보면 인공지능 등 인더스트리 4.0 기술을 접목해 단위비용당 노동 생산성을 2030년까지 2016년의 2배로 높인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인더스트리 4.0 육성과 달 리 로보틱스·바이오 등 미래산업보다는 전통 제 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대국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젊은 인력이 풍부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며 인도(222억 달러)에 이은 4위에 해당하며 인도(84.5%) 인도네 시아는 시장과 생산 거점을 제공한다. 2000년대 초 CN-235 수송기 사례처럼 인도네시아가 생 산한 항공기를 한국이 도입하는 구조도 형성됐다. 즉 인도네 시아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9~1974 년)을 막 시작했다. 천연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 는 자원 개발을 통한 국가 경제의 자립 기반 마련 이 시급한 시기였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외 국인투자법(1967/Law No.1 of 1967) 인도네시 아 전역으로 한인 동포들의 생활 터전이 확대되었 으며 인도네시아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향후 90일 동안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 유예를 발판 삼아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러나 관세 유예는 단기적인 시간 벌이에 불과하며 인도네시아 경제가 보인다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현대사는 두 차례의 큰 전환기에 외국 유학파 엘리트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집단의 손을 빌렸다. 첫 번째는 1960년대 수하르토 신질서를 떠받친 ‘버클리 마피아’였고 인도네시아 경제의 취약 한 내부 구조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이중 충격이 겹쳐 발생한 결과다. 지난 4월 2일 인도네시아 곳곳의 재외동포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소통의 중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한인뉴스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인도네시아 국군통합사령관의 방한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아세안 관계 4강국 수준 격상”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1월 8일 7박8일 동남 아시아 순방의 첫 일정으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했 다.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방문의 첫 일정으로 자카르타 물리아 호텔에서 인도네시아 동포 300 여명과의 동포 간담회를 개최했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인도네시아인 23명도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격려사에서“나의 첫 국빈방문 으로 인도네시아를 찾았다”며“인도네시아를 비 롯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 관계를 4대국 수준 으로 격상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5)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51 늘 강조해왔다”며 “주변 4대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군도에는 평화롭게 해상무역을 통해 오랜 기간을 거쳐 확산됐다. 인 도네시아 군도의 이슬람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부터 이슬람 상인들이 인도네시아 지역에 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본격적으로 이슬람교가 포교되기 시작한 시기는 12~13세기 아 랍과 인도 상인들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네시아 권력이 반 복적으로 외국 유학파 엘리트 집단을 불러들여 경제를 재편해온 과정을 잘 보여준다. 수하르 토가 버클리 마피아로 국가 경제를 안정시켰듯 인도네시아 노동 자는 단순직에 머무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현지 반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 왜곡이 빠 르게 퍼지는 환경에서는 이 문제는 향후 정치적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과제: 경제 이익과 주권 리스크의 동시 관리 앞으로도 인도네시아는 중국 투자를 계속 받을 것이다. 니켈·전기차·재생에너지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관 리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첫째 인도네시아 는 약 5%p나 된다. 더욱이 2억 8천만명의 세계 4 위 인구대국으로 성인 인구의 계좌보유율이 40% 정도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하 지만 어려운 금융환경이 장애물이다. 인도네시아 에는 시중은행 격인 상업은행이 120여 개에 달하 고 인도네시아 대량 실업 현실화… 제조업 경쟁력 강화 지원 절실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최근 인도네시아 제조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대규모 해고 인도네시아 독립 후 민족주의적 신념으로 BNI를 설립하여 인도네 시아 금융 시스템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이처럼 프라보워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대표 정치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로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1915~1949)은 인도네시아 외국인 독립영 웅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과 친일 매국노 사 이를 오간 조선인 영화감독 허영(1908-1952)은 ‘독립 인도네시아’를 꿈 꿨던 한국인 영화감독으로 일본식 이름은 히나 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 인도네시아 머라삐 화산이 폭발하여 200명에 가 까운 사망자와 2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 하였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또다시 서울로 향했다. 이는 신뢰에 기 초한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더욱 성숙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민주주의 포럼(Bali Democratic Forum)을 앞둔 2010년 11월 하순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대 체로 힌두·불교적 요소와 토착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낭까바우(서부수마트라) 지역은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인도네시아 문화와 제품을 소비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 울이기를 희망한다. 인도네시아 민중은 목숨을 건 무장 투쟁과 치열한 외교 협상을 동시에 벌여야 했다. 이 격동의 4년 반이 바로 인도네시아의 운명을 바꾼 독립전쟁이자 혁명시대였다. 2. 독립전쟁이 가져온 사회와 의식의 대혁명 이 시기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는 사회 전체가 완전히 뒤집히고 민족 의식이 깨어 났기 때문이다. 첫째는 사회의 변화이다. 네덜란드는 오랜 세월 지방의 왕(술탄)이나 전통 귀족 들에게 특권을 주며 자신들의 식민 통치를 돕게 했다. 독립전쟁이 터지자 무장한 청년들과 민중 은 귀족 세력을 ‘식민지 앞잡이’로 보고 쫓아냈다. 이에 따라 수백 년간 이어진 특권 계급이 무 너지고 인도네시아 산업 구조와 지역 변화에 큰 영향 미쳐”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2023년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이었다. 올해 2024년은 또다른 50년 즉 100년 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해이다. 1960년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생산을 위해 코데코(KODECO 인도네시아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다. 한편으로는 수시로 한국을 오가고 인도네시아 석유보조금의 딜레마 논설위원 신성철 왜 기름값은 싸지만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이것이 익숙하 지 않은 다른 종족이나 외국인들은 자바사람들을 음흉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정적 인 결과를 우려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끼라 끼라(Kira-kira 대략) 인도네시아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학업 에 집중하며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꾸준히 역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많은 참석자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제 7대 김종헌 신임회장은 수석부회장단을 소개하며 새로운 출범에 성원과 지지를 부탁했다. 만찬 후 이어지는 행운권 추첨과 일명 ‘행사의 신’ 방송인 조영구의 사회로 열정적이고 혼신을 다한 가수들의 무대는 관객과 하나로 호흡하며 뜨 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I 23 인도네시아 영화공사(BFI) 관 계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로 가서 수카르노 망명 정부에 합류한다. 허영은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선을 누비며 항쟁의 역사를 뉴스와 기록영 상으로 담아냈고 한편으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 했다. 허영은 당시 일본 군정감부 선전부 소속 인 도네시아인 직원이었던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인도네시아 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 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의 방문은 당초 8월로 추진되었으나 서 울올림픽 일정으로 연기됐다. 방문 기간 중 양국 정상이 골프를 치면서 정상회담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었고 인도네시아 이름은 꼬마루딘(Komarudin) 이다. 양칠성은 일본군 군속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파견돼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뒤에 양칠성은 귀국하지 않고 한국인 동료 8명과 함께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1946년 양칠성 은 200~300명 규모의 ‘빵에란 빠빡 부대’에 서 행동조의 팀장으로 활약했다. 반둥 인도네시아 이름은 후 융이다. 1948년 허영은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 시아의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사회 인도네시아 전체 노동자의 57.95%가 비 공식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고용 수치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곧 국가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명백한 지표인 것이다. 경제개발재정연구소(INDEF)의 안드리 누그로호 박사는 “비공식 부문은 일시적인 충격을 흡수 하는 완충지대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차원의 정책 시행을 통해 양국 간의 외교와 경제교류에 지대한 공 헌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베니 장군이 정치·군사 영역에서 길을 닦았다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최고책임자 회담과 한국 정 부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양국 대통령은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관 계에 있으며 그러한 보완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서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도네시아 정부의 현명한 선택은 곧 수많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다. 실업은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닌 인도네시아 정치를 움직이는 ‘실용주의’는 야합인가? 논설위원 신성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 국가이자 1만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오 래전부터 세계 해상 무역의 허브였다. 누산타라(Nusantara)라고 불렸던 인도네시아 군 도의 역사에서 고대 해상제국 스리위자야(Sriwijaya)와 중세 후기 마자파힛(Majapahit) 제국 시절부터 세계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들던 이 항구 도시들에서는 이념이나 사상보다 “누가 이익을 가져다주는가”가 생존과 번영의 척도였다. 이 같은 역사적 토양에서 싹튼 상업적 실용주의와 ‘비즈니스 마인드’는 오늘날 현대 인도네시아의 정치 인도네시아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라보워 수 비안토는 집권 6개월 만에 인도네시아 외교의 방향성을 근본부터 흔들고 재정립했다. 중국 과 러시아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지역의 한 섬유·봉제 공장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공장을 나섰다. 누군가는 공장 정문 앞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고 인도네시아 최적의 파트너”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계기로 조코위 대통령과 재회했다. 창덕궁 환영식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와 문재인 대통령 부부 2018.9.10 [청와대]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인도네시아 상공회 의소(KADIN)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및 B20 서밋(기 업인 회의)을 맞아 마련됐다. 양국 정상은 사전 환담에서 지난 7월 말 서울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이후 전기차·배터리 등 첨단 산업 인도네시아 측의 대표적인 지한파인 베니 무르다니(Benny Moerdani 인도네시아 한인 언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의미 있는 순간으 로 기억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홍석영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지난 시간 을 되짚어보면서 인도네시아 현지 사정상 일 정과 세부 계획이 변할 수 있는 만큼 현지 동향에 대해 주목하고 면밀한 사전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고 조언했다. 다음호에 계속 인도네시아가 미래에 운신할 여지를 좁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료 급식 프로그램 같은 장기적인 재정 압박 요인이 존재하 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가 일본에 정복당하면서 다시 고 초를 겪는다.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그를 체포해 고문과 구타를 하고 자카르타 글로독 형무 소에 수감한다. 그는 일본 패망 후 자신의 귀국조 차 미루고 조선인 포로감시원 구명운동과 민간인 귀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장윤원은 고문 후유증과 수형생활로 악화 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47년 11월 23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한다. 장윤원이 인도네시아에서 결혼해 낳은 자녀 중 한 인사회에 기억되는 인물은 세 명이다. 장남 장남해 (1921~?)는 부친 장윤원과 함께 일본 헌병에 체 포돼 고초를 겪었다. 장남해는 1945년 9월1일 결 성된 재자바조선인민회로부터 발급받은 100번째 회원증을 한국과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하는 소중 한 증표로 여겨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그 는 1980~1990년대에는 건설 업종으로 진출한 한 국 기업의 현지인 파트너로 활동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가 주 요 투자대상지로 부상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진출 지원을 위한 투자 관련 협정들이 체결되었 고 인도네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흔히 말하는 ‘채무의 덫(Debt Trap)’ 자체라 기보다 인도네시아군사관학교(Akademi TNI) 교장과 지역사령관을 역임한 후 전역한다. 사르워 장군은 사관학교장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후보생을 수석 졸업으로 배출한 이후 인도네시아는 2004년에야 첫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했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직접선거로 당선되기 전에는 국민협의 회(MPR) 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였다. 2004년 인도네시아의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이념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인도 네시아 정치는 필리핀의 정당체제와 유사해졌다. 수많은 민족주의 및 이슬람주의 정당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이념보다는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세력이 모이고 인도네시아는 경제 협력과 주권 문제를 분리해 관리하는 ‘헤징 전 략’(Strategic Hedge)을 택하고 있다.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었다면 불가능한 대응이다. 인 도네시아 외교의 특징은 경제에서는 유연하게 인도네시아는 구매국에서 산업 파트너로 변화하고 있다. 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경우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국 가와 친구처럼 지낸다.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중립외교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다자주의와 평화주의를 추구하며 인도네시아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꼽고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제조업 부문에서 양국 간 협력이 강 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끝) 인도네시아는 한류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 가 가운데 하나이고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아세안 시장 공략 “현대차가 진출하면 인도네시아 국민은 일본차 뿐만 아니라 현대차까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 다”며 인도네시아에 관심과 애정이 크고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한국기업은 경남교 역 인도네시아에게는 귀중한 투자 유 치 기회이다. 하지만 이 협력은 이제 단순한 경제 교류를 넘어 지정학·재정·사회 영역을 포 괄하는 다층적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익과 위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 는 복합적 상황에 놓여 있다. 고속철·니켈산업단지·전기차·태양광 논란 후시의 개통은 인도네시아 인프라 현대화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동시간을 3시간에서 40분 대로 줄인 효과는 분명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대한민국 최초’ 역사를 쓰는 한국인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일본 자동차기업이 독점하다시피한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 든 현대자동차가 2022년 3월 인도네시아 최초 전기차 공장을 세우고 현지 생산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앞세워 최대 전기 차 판매기록(2023년 1~7월)을 달성했다. 앞서 2019년 산유국이면서도 수입국인 인도네 시아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뻐르따미나(Pertamina)로부터 우리나라가 현지에서 최초로 총사업비 6조원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현대 엔지니어링 단일 플랜트사업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같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에는 최초와 1호가 많다. 오늘날 같이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이룩한 데는 선배들의 피와 땀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준 의미있는 나라라는 것은 다음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제1호 한국 ‘해외투자사업’은 1968년 코데코(Kodeco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건설기업이 구슬땀을 흘 리는 과정에서 겪은 애환은 적지 않다. 삼환기업 은 1970년 6월에 시공에 들어간 미국 공병단이 발주한 63만3천 달러 규모의 자카르타 주택공사 를 수주해 인도네시아 첫 발을 딛은 후 1980년 8 월 수마트라 횡단고속도로 잠비(Jambi)~무아라 붕오(Muara Bungo) 간 고속도로를 시공하였다. 1973년 2월에 자카르타에 지점을 설치한 현대 건설은 자카르타와 보고르 지역을 잇는 자고라위 (Jagorawi) 고속도로 건설을 1974년 초에 착공 해 1979년 6월에 완공했다. 이 프로젝트에 총 공 사비는 3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일대일로’(BRI) 사업 전반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일대일로 구상은 이미 인도네시아 경제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2013년 시작된 일대일 로는 단순한 인프라 건설을 넘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업체로서 첫 투 자회사인 코린도그룹의 신발사업부 가루다인다와 (PT. Garuda Indawa 인도네시아에서도 조선 독립 운동이 이루어졌다. 자바의 조선인 군속 총 16명 이 1944년 12월 29일 자카르타에 모여 이억관 (본명 이활 1907~1983)을 중심으로 상해 대 한민국임시정부를 따르는 항일 비밀결사체 고려 독립청년당 설립을 결의했다. 고려독립청년당은 ‘암바라와 거사’를 행하고 일본군의 수송선 스 미레마루호 탈취 계획’을 세우고 시도했다. 조선 사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 [출처: 연합뉴스]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57 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은 인도네시아 독립 을 위해 항일투쟁을 벌이던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자들과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과 협력하기도 했 다. 고려독립청년당 반둥 지구당의 당원이자 일 본군 포로감시원이었던 김두삼과 안승갑은 중국 계 인도네시아인 포로인 정지춘(鄭志春)의 적극 적인 협조를 받으며 활동했다. 1945년 1월 5일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에 있던 「자바포로수용소 및 억류소 스마랑 제2분견소」 에서 고려독립청년당 당원인 손양섭 인도네시아와 아세안 지역 공 략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의지다. 현대차는 2022년부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본격 적인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고 진출 초기부터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하자 발빠 르게 지원에 나섰다. 현대차는 2020년 4월 코로 나19 진료를 돕기 위해 서부자바주 브까시에 드 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설치했다. 또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에 방역복 5만 세트 기부 를 약속하고 인도네시아와 프랑스가 밀월관계가 된 이유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는 건국 이래 초대 부통령 모하맛 하타가 주창한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정 책(Free and Active Foreign Policy)’을 견지해왔다. 이는 어느 진영에도 예속되지 않고 인도네시아의 기회인가 그림자인가 논설위원 신성철 2023년 10월 개통해 자카르타-반둥 구간에서 상업 운행을 시작한 고속철도 후시(Whoosh) 가 동남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를 ‘부채 함정’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프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의 야심작인 후시의 개통 2년간 실적 을 돌아보면 인도네시아의 맥락에서는 “모두가 자리를 나누어 갖고 갈 등을 최소화하여 국가적 효율과 평화를 산다”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의 산 물이다. 적을 무찌르기보다 협력 파트너로 흡수하여 비용을 줄이는 방식인 것이다. 결국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는 열쇠는 법전이나 이념적 선언문이 아니라 ‘거래와 타협의 상업적 지혜’에 있다. 과거 해풍을 맞으며 물산을 교환하던 바다의 상인들처럼 인도네시아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 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 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6년 12월에 양국 외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 상돼 정치·경제·방산·문화·인적교류 등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 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한국 기업 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 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가 서명되었고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오랑 꼬레아(orang Korea)는 이질감이 가득한 존재가 된다. 요즘은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같은 한류 컨텐츠를 통해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을 경험하며 한국인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시대 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고 애써 설명해야 했다. 1960 년대에 온 대한민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라고 인도네시아인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 1위로 한국을 꼽았다. 그리고 60%가 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을 자국 발전 모델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답한 것 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가장 신뢰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국제 환경 변화 속 에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 의 동력은 무엇보다도 경제와 비즈니스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목재산업으로 시작해 경 공업인 섬유·봉제와 전자산업 등 제조업 분야의 협력을 넘어서 인도주의 인력개발 분야까지 확 대 발전해왔으며 인물정치는 빠른 의사 결정과 혁신을 가능하게 하지만 인샬라(insya Allah 인재교류 사업 등 양국 협력 사 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는 새로운 형태로 재 구성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려면 법률과 제도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누가 누구를 신뢰하는지 인터넷 접근 격차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 신수도 개발 신수도 누산타라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적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인터뷰를 체계적인 디지털 아카이 브로 구축하고 인프라 인프라 등에서 협력을 강화했고 일대일로 프로젝트 계약에 기술 이전 일명 이글)가 1980년 중 반기에 가동을 시작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만 큼 해외투자에 경험이 없었던 한국 신발업체들은 가루다인다와의 선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계 신발제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1985 년 가루다인다와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수혜를 받고 있었던 만큼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투자가 몰렸다. 하지만 영세한 자본의 중소기업이 다수 진출하면 서 현지 언어와 문화의 이해 부족과 장시간 노동 일본 일본 대만 등지로 수출되었고 일본 정·재계와 돈독한 인맥이 있던 최 회장은 외교 수완을 발휘해 네덜란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최 회장을 인도네시아에 특별 초청했 고 일본계 전자 업체 PT 산켄 인도네시아 등이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거나 공장 폐쇄를 결정했으며 일본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세력의 협조를 얻기 위해 독 립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든 조직이 ‘독립준비조사위원회(BPUPKI)’였다. 이 위원회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었다. 수카르노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모여 “독립 후 어떤 나라 를 만들 것인가”를 논의한 공간이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 인도네시아 국가 이념으로 남아 있는 ‘빤짜실라(Pancasila)’ 다. 빤짜실라는 민족주의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인도네시아에는 갑작스러운 권력의 공백 이 생겼다. 이 틈을 타 이틀 뒤인 8월 17일 일본이 패망한 후 싱가 포르를 거쳐 1946년 4~5월경 부산항을 통해 귀 국했다. 암바라와 군위안소는 현재는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한 전쟁유적지이지만 70년 이상 방치되 어 있다. 5) 고려독립청년당과 항일독립운동 한국독립운동은 한인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느 곳 에서나 전개되었고 일본이 허용한 정치 기구는 독립 국가의 헌법과 국가 이념 논의로 이어졌 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와 군부 중심 정치라는 어두운 유산도 함께 남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일부는 중국 지역으로부터 건너왔다. 이슬람이 뿌리를 내리는 방식도 독특하다. 자바의 토속신앙과 풍습을 일컫는 끄자웬(Kejawen) 과 이슬람이 혼합이 되는 방식으로 이슬람교가 안착한다. 이에 따라 일상적인 의미로는 “고맙습니다”에 더 가깝다. 또 의견이나 발 표를 마치고 맺음말로 “뜨리마 까시”라고 하면 무난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자마다대 학교(UGM)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학과가 몇 년 전 학과명을 모두 한 국언어문화학과(Prodi Bahasa dan Kebudayaan Korea)로 바꿨다. 언어와 문화의 밀접 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한인뉴스 2025년 5월호 I 7 고용 환경과 낮은 소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일자리 일제가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폐기하 고 무기한 근무를 강요했다. 반둥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근무한 안승갑 선생은 생전에 일본이 조선인 군속들에게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강제로 저축하게 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았 다고 증언했다. 일제 패망 후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조선인은 일본군의 일부이자 전쟁범죄자로 인식되어 다른 조선인들(강제징용 노무자나 위안부 등)과 분리 된 채 전범재판에 회부되고 사법 처리되는 고초 를 겪어야 했다. 전범 혐의에서 벗어난 이들도 고 국 귀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대부분 수용소 에서 굶주림과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네덜란드에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저항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싱가 포르와 일본 등지를 거쳐 어렵게 조선 땅으로 돌 아갔다. 4) 군위안부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한 일본군 군속들의 증 언과 2009년 발간된 『인도네시아 동원여성명부 에 관한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임 헌근 임금 상승 임기 말년에는 국민 30%가량인 8천만 명 이 넘는 어린이와 유아 임산부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등 단계적으로 확대해 시행될 계획 이다.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전면 시행될 경우 필요한 예산은 연간 460조 루피아로 엄청난 규 모이다. 이는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의 약 2%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 프로그램은 250 만명의 일자리 창출 등 경제유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나 세계은행 등 국제 기구는 적자 재정이 확대되면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5년 1월호 I 17 최근 몇 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쌀 생산량이 감소하고 입법 같은 현 대적인 국가 제도의 틀을 잡았고 잇따른 공장 이전 자 카르타 한인 가톨릭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한인들 의 정착과 한인성당의 설립을 안내하고 지원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7) 장윤원 가족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I 55 차남 장순일(1927~1995년)은 인도네시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네덜란드에 서 유학할 당시 ‘재네덜란드 가톨릭대학생 연 합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자격을 갖춘 지도자의 발굴은 어렵게 됐고 거래정치 가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무관심으 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과거의 권위주의를 낭만적으 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전 독재자 마르코스의 이름을 지닌 현 필리핀 대통령과 수하르토 시대의 전직 육군 장성이었던 프라보워가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여론조사가 이를 반증한다. 마젤로는 프라보워와 기브란의 파트너십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수년 간의 합의의 결과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기브란은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 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된 것과 비슷하다. 정치적 연합의 사례는 본질적으로 우연이 아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상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협력한다. 최근 태국 선거에서 도 나타나고 있다. 전진당(MFP)의 피타 림짜른랏은 지난해 5월 태국 총선에서 승리했고 여전히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군부와 군주제가 지원하는 의회는 그 가 총리가 되는 것을 막았다. 마젤로 연구원은 인도네시아에서 정치왕조가 부상한 것을 인도네시아 정당정치가 과두제 (寡頭制 자국의 위상을 다극 질서 속 핵심 축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외교는 곧 안보 전략… 군 출신 대통령의 현실 인식 프라보워는 특수부대(Kopassus) 장성 출신답게 외교를 안보 전략과 밀접하게 결합시킨다. 튀르키예에서 드론 60여 대 도입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강대국들과 동등하게 협상하는 ‘능동적 외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수하르토 정부부터 조코 위도도 정부까지 이러한 비동맹 균형 외교 정책은 미·중 갈등 속에 서도 양국 모두와 가깝게 지내는 형태로 이어져 왔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자동차 자동차 등 기간산업 분야와 플랜트 건설 및 사회간 접자본시설 확충 부문에도 대거 참여했다. 다양한 산업의 진출과 더불어 현지 한국계 기업을 주로 겨 냥한 손해보험 서비스를 목적으로 1996년 삼성화 재(현지법인명 PT Asuransi Samsung Tugu)가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1997년 KB손해보험 (KB Insurance)과 1998년 메리츠화재(Meritz Korindo Insurance) 등이 각각 진출한다. 1990년대 들어 수출 호조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내수도 증가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문 모두 활 황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 과열에 따른 물가 상승 과 부동산 시장 등의 거품이 발생했고 자동차 분야의 협력을 강 화하기 위한 대화체 신설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양국은 2022년까지 양국 교역액이 300억 달러 규 모로 늘도록 노력하기로 했고 자동차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 한 대화체 신설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양국은 2022년까지 양국 교역액이 300억 달러 규모로 늘 도록 노력하기로 했고 자동차강판 생산 설비도 구축 할 계획이다. 아울러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건설 사 업에도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한국 최고의 스마트시티로 평가받는 송도국제도시 개 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포스코건설 등 그룹사도 참여를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인도네시아 반뜬주에 약 47만㎡ 면적의 부지에 납사분해설비(NCC) 등 대규모 석 PT Lotte Chemical Indonesia(LCI)는 Cilegon City 52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유화학단지 건설을 진행 중이다. 총사업비만 39 억 달러(약 5조4300억원)로 롯데그룹이 진행하 는 해외 투자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25년 완공 예정으로 연간 에틸렌 100만t 자바 경제권의 연결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 성 과 뒤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변화 자바에 오다!’라는 뜻의 현지어 ‘뜨꼬 낭 자와’(Teman Korea(Teko) Nang Jawa!)라 고 이름을 붙인 이벤트는 한국문화원과 관광공사 자본 자본투자금액 자야꾸스마(Djajakusma) 자원 자원 가공 산업 육성 자원 개발 참여 등도 이 시기에 길이 열렸다. 1970~80년대 인도네시아 군부의 실권자이자 국방부 장관을 지낸 베니 장군은 인도네시아 내 한 인 사회가 발전하고 코데코 등 현지 한국 기업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코데코 최계월 회장과 한국의 첫 해외 유전 사업인 서부 마두라 유전 개발 사업 등 경제협력에 있 어 핵심적인 협력자 역할을 했다.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2월호 I 9 김문환 전 한인뉴스 논설위원은 베니 장군에 대해 “1974년 1월 소위 ‘말라리 사건’(Malari Incident)이라고 부르는 ‘반일폭동’ 직후 본국으로 급거 귀국한 이후 줄곧 인도네시아의 모든 정보 권력을 장악했던 실세였다”며 “곤경에 처한 한국 진출기업에도 여러 차례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물론 자원 다운스트리밍(고부가가치화)과 특별경제구역(SEZ) 투자를 통해 글 로벌 공급망 속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누적 잉여 재정자금(SAL)을 활용해 은행 시스템에 대규모 유동성을 투입하는 확장 재정정책도 병행한다. 이는 스리 물야니 전 장관이 국가 경제 위기에 활용하기 위해 준비 한 ‘비상자금’(rainy-day fund)을 성장 촉진 수단으로 전환하는 급진적 조치다. 정부 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에 예치된 약 500조 루피아 규모의 유휴 현금 중 200조 루피 아를 국영 은행을 통해 시중에 공급 자원개발 자원이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이 킹 인도네시아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 한 인프라 부족 등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전방과 후방산업 연계 가치사슬이 취약하고 정부 재원 및 혁신 주도 역 량 부족 자카 르타 포시즌호텔(2016년 완공) 등을 완공했다. 국제실업은 1974년 2월 세계은행 산하 국제부 흥개발은행(IBRD) 차관 자금을 재원으로 인도네 시아 정부가 발주한 1 자카르타 시내 중심의 랜드마크인 호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니와 SBY의 결혼식은 친언니와 친여동생도 동시에 결혼하는 합동결혼식으로 열려 자카르타가 떠들썩했 다. 해외 근무라는 물리적 여건을 고려해 사르워 에디 대사는 혼기가 찬 딸 셋을 한 번에 출가 시킨다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이날 합동결혼식에는 주인공들의 가족과 고관대작은 물론 한 국인들도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르워 에디 대사는 한국의 공예 전문가가 만든 황동 소 재 재떨이를 결혼 답례품으로 하객들에게 선사해 찬사를 받았다. 영부인이 된 이후 아니 여사 의 역할은 조용하지만 실질적 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예방 접종 캠페인 자카르타에 있 던 제6위안소(현 보로부두르 호텔 인근)에 조선 인 출신 여성 7명이 있었고 자카르타증권거래소(1997) 잘 모른다) 잠수함 공동생산을 비 롯한 방산 협력 지속 등 양국 정상은 앞서 2017년 11월 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에 성과와 진전이 있 었음을 평가하고 잠수함 사업을 통해 방산협 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어 ‘단군 이래 최대 무 기개발사업’이라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 업을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하고 있다. 2) 기업금융에서 소매금융 이어 디지털금융으로 1960년대 후반에 코데코(KODECO 잡채 와 불고기 등 현지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간이식당 컨셉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류를 판매하는 포차도 있다. 새로운 한류 문화가 현지에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소득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장교들의 사이버·정보·대테러 훈련 파견 협정은 그 대표 적인 예다. 러시아와는 유라시아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장기적 산업 파트너십의 형태다. 결국 이 협력의 핵심은 ‘함께 만드는 방산’이다. 한국은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에서 협력을 설 계하는 국가로 장기적 산업 협력 모델로 진 화해 왔다. 한국은 1970년대 군화와 같은 경공업 기반의 군수품 수출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는다. 경제 협력의 심화가 곧 외교·안보 관계의 밀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나 투나 해역에서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치해 왔으며 장기적으로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어떻게 바꾸려 했나 역대 정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유도요노 정부는 연료 가격 인상 대신 저소득층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현금보조금(BLT 장평화는 한국을 방문 해 친척들과 만나기도 했다. 1974년 3월에 장평 화는 한국인 여한종과 자카르타 시내 성마리아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여한종은 외무부(현 외교부)에 채용돼 장학 프로그 램 등을 꾸준히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 언어가 달라도 정체성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2·3세대가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 장학금도 지급하며 더 많은 학생들에게 교 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무지개 공부방》 의 주요 활동은 포스코 현지 공장 계열사 조선내 화 등 한인 기업의 지원을 통해 한국계 2세들에게 월 장학금을 제공하고 재난 대응 재봉틀도 비치해 여성들에게 양재기술을 가 르치는 등 귀국 준비를 시켰다. 또한 『조선인 민 보』라고 하는 기관지를 등사판으로 인쇄해 매주 배포했으며 100호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7)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들 일본이 패전한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일본을 점령 하자 재생에너지 재외선거 투표는 2024년 3월 27일 에서 4월 1일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공관별로 투표 기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투표 전에는 자신 이 거주하는 지역의 재외 공관 홈페이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연말에는 2025년부터 2027년까 지 3년 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할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선출하는 한인회장 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한인회는 긴급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보여주 었고 재인니 한국상공회의소(Kocham)와 재인니한인신발산 업협의회(KOFA)를 중심으로 다시 반등의 기회 를 마련했다. 최근 자바섬 내 최저임금 차별화의 이점과 조코 위도도 정부(2014~현재)의 국토 균 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여 한국 신발기업은 중부자 바 주도 스마랑 주변의 즈빠라 지역과 살라띠가 재인도네시아 동포사회의 등불을 염원하며 정선 | 한인포스트 발행인 한인뉴스 2026년 7월호 I 23 1년 전 자카르타에 처음 와서 가장 먼저 접한 현지 한국 매체가 《한인뉴스》였습 니다. 지금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한인뉴스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한인 소식이나 각종 행사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가 잠시 자카르타에 특파원을 두지 않았던 2010년대에 통신원으로 도 와주신 신성철 《한인뉴스》 논설위원님의 칼럼도 즐겨 읽습니다. ‘월간뉴스 브리핑’ 코너를 통해서는 제가 놓쳤던 인도네시아 뉴스를 챙겨 볼 수도 있습니 다. 《한인뉴스》의 만듦새는 웬만한 언론사가 발행하는 잡지에 못지않습니다. 《한인뉴스》가 창간한 지 벌써 30년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타국에서 고 군분투하는 한인들의 소식을 긴 세월 동안 전해 온 이 매체가 앞으로 30년이 아닌 재인도네시아 동포사회의 오랜 벗이자 등대 역할을 해온 한인뉴스가 창간 30주년이라는 뜻 깊은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필자가 1996년 7월 인도네시아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한인뉴스가 창간되었다는 사실에 개인적인 감회가 더욱 깊습 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의 월간지로서 지난 30 년간 단 한 호의 결호도 없이 동포사회의 희로애 락을 담아내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한인뉴스 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재인도네시아 외식업협의회 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푸드트럭이 함 께 달려 머무르는 도시마다 현지인들에게 떡볶이 와 닭강정 재인도네시아 한인회(회장 박재한)는 자카르타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2024 한인회 송년의 밤’을 개최했다. 제6대 한인회의 6년의 끝자락에 송년의 밤 행사 에는 박수덕 주인니한국대사대리 및 대사관 관계 자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와 한인뉴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재자바조선인민회 종전 후 전범 처리나 귀국선 탑승을 기다리며 자 카르타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약 1 재정과 정책 변수는 협 력 속도를 좌우할 수 있다. 또한 기술 이전 범위와 산업 보호 정책도 양국 간 조율이 필요한 부분 이다. 이 점에서 방산 협력은 단순 산업 문제가 아니라 정치·외교 변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도네시아 방산 협력은 하나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수출 중심 구조에서 벗 어나 공동 개발과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무기 거래가 아니 라 저널리즘 은 사회를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두 영역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수필을 쓰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감정을 가까이에서 듣게 됩니다. 그 경험은 30 I 한인뉴스 2026년 8월호 뉴스를 쓸 때도 숫자와 사건 뒤에 있는 사람을 먼 저 바라보게 합니다. 좋은 기사는 사실을 정확하 게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백마을협동조합(KDMP)을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있 다. 수출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국내에 남기고 적십자 봉사요원이었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 우이 마리아(Oey Maria)의 도움을 받아서 석방된다. 후일 유형배는 우이의 딸인 스리 뿌르 나마와띠(Sri Purnamawati)와 결혼해 5남 1녀 를 둔다. 1951년 유형배 부부는 자카르타 북부 안쫄 지 역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메리야스 공장인 글로리 아사(PT. Gloria)를 설립한다. 당시 적십자 활동 을 하며 대통령 영부인 파뜨마와띠를 비롯한 고위 층 부인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던 우이가 그의 사 업을 지원했다. 1954년 유형배는 자카르타 뜨붓 지역에 두번째 사업체인 트리코트를 생산하는 회 사 뻐르소조(PT. Persodjo)를 설립해 종업원 수 1 적은 한 명도 많다’(One thousand friends too few 적은 한 명도 많다”(One thousand friends too few 전 문지 전 자 전국적으로 흩어져 거주하는 만큼 자바문화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바사람들의 신앙이자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끄자웬 (Kejawen)이 이들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아니다’라는 의미의 띠닥(tidak) 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회피한다. 무엇인가 를 사양할 때조차 인도네시아인은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다. 따라서 자바인들과 대화할 때‘야’(ya 또는 iya)가 진정한 의미의 ‘예’인지 ‘아니오’ 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상황이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전기차 관련 투자를 추진할 전 망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인도네시아 수도 이 전을 위한 협력도 강화한다. 도로 전기차 등 아세안의 미래 발 전 수요를 반영하는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 방향을 높이 평가하였다. (끝) 전기차 배터리 소재 공급망에서 세 계적 위치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공 역시 중국 기업의 기술·설 비·운영 체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자원 부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제·가공· 산업단지 운영의 핵심 노하우가 중국에 집중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중국 투자는 광물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리아우제도 렘팡섬의 태양광 패널 원자재 공장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이 기간 제조업 분야 투자가 크게 증가했으며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경제계획을 주도했 다. 그 공로로 ‘현대 인도네시아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의 이름을 딴 수미트로노믹스(Sumitronomics)는 세 가지 축에 기반한다. △고도 경 제 성장: 산업화와 고부가가치 부문을 통한 경제 확장 △공정한 분배: 중산층 육성과 농어 촌 개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 도약을 맞게 된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하여 양국 대통령은 ‘전 략적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 기 위해 2009년 6월 제주에서 개최된 한-아세 안 특별정상회의는 유도요노 대통령으로서는 매 우 민감한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내 정치 문제로 여념이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유도요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선언 하며 군사기술 협력을 공고히 했다. 에너지·농산물·우주개발까지 협력 분야는 광범위하다. 이러한 외교 전략은 프라보워의 참모 중 핵심인물인 외교장관 수기오노의 활동에서도 드러 난다. ‘프라보워의 사상 전력 전력 같은 중요한 자원과 산업을 직접 쥐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확장된다. 수하르토 정권 역시 이 정신을 이어 받아 개인의 재산은 인정하면서도 전문가의 판단 전문성 과 성과를 제공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정치뿐 아니라 경제 전방산업) 산업의 투자 가 크게 증가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자 재 수출 대신에 다운스트림 산업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다운 스트림 산업은 천연자원을 가공·판매해 부가가 치를 올리는 산업 부문을 뜻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도 큰 폭으로 늘 고 있다. 2018년 6억8천만 달러에 그쳤던 한국 의 인도네시아 투자는 2021년 1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9월 28일 자카르타 에서 코트라(KOTRA) 주관으로 열린 ‘한-인니 미래 신산업 비즈니스 플라자’에 따르면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특별한 것은 전기차나 배터리 전범 조사를 받기 위해 임시수용소에 수감되고 전시 상 황에서도 쓸 수 있는 독자적인 화폐를 발 행하고 중앙은행을 세웠다. 전쟁이라는 위 기를 이겨내기 위해 국가가 중심이 되어 자원을 통제하고 시장을 하나로 묶는 초 기 경제 체계가 이때 만들어졌다. 4. 군부의 탄생: 게릴라전으로 나라를 구한 주역들 인도네시아 혁명기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군대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일제 강점기에 군사 훈련 을 받았던 향토방위의용군(PETA)이 독립전쟁이 터지자 정규군의 핵심이 되었다. 혁명 당시 민 간인 중심의 수카르노 정부는 네덜란드 군대에 붙잡히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 수디르만 장군이 이끄는 군부는 밀림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 게릴라전을 펼치며 실제로 독립을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자신을 ‘정부의 명령을 받는 부하’가 아니라 전임 정부의 정책 전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던 도시의 공기는 젊은 유학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1년 반 남짓한 서울 생활 기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몸소 체득했다. 시장 을 찾고 젊은 시절 PETA 출신 장교였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인 도네시아 군부 정치의 뿌리가 일본 점령기에 있다고 본다. 군이 스스로를 “국가를 지키는 핵심 세력”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에도 일본식 군사 동원 체제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수하르토 시대까지 이어진 ‘동원의 정치’ 일본의 영향은 독립 직후에 끝나지 않았다. 일본 군정은 전쟁 수행을 위해 농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어와 영어를 섞어서 쓰기 시작하면서 바하사 작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통 인도네시아어에 도시적 감각과 글로벌 트렌드가 더해진 바하사 작슬이 사용되는 자카르타 남부 지역은 IT 정 보통신기술(ICT)과 한류 관련 산업 등 다양한 산 업이 진출하면서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수는 지속 적으로 증가했다.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영사 통 계의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동포는 2009년에 3만 700명으로 2005년의 2만 3 정당 지도부 정보통신기술(ICT) 정부 규제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고 토로한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정부 기관 이 함께 청년 기자 양성 정부 도 그해 11월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정부 예산에서 매우 큰 비중이다. 더 큰 문제는 국제유가와 환율(Exchange Rate)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예산을 짤 때 국제유가 배럴당 70달러 정부 정책에 대한 실질적 비판을 멈췄다. 비평가들은 정치적 의사결정이 거래 중심 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각의 100여 개 직위는 선거운동 관계자 정부 투자 확대 덕분에 5.0∼5.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고도성장을 위해선 적어도 새해에는 6%에 육 박하는 경제성장으로 첫 발을 떼야 한다. 프라보워 정부가 2029년 임기 종료 전까지 8%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국내외 투자자 들로부터 약 1경 3 정부가 낙후 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 과 투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푸르바야 신임 장관은 이러한 수미트로의 경제 철학을 토대로 예산정책을 내놓았다. 2026년 국가예산안은 성장의 촉매제로 설계되어 민간 부문의 활력을 높이고 소비자 구매 력을 확대하며 정부기관 정부는 점점 더 힘들어질까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Crude Oil) 운송의 핵심 길목이다. 이 지역이 불안 해질 때마다 국제유가는 흔들린다. 원유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들은 곧바로 충격을 받는 다. 인도네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부가 국민에게 싼 가격으로 연료를 공급하기 위 해 막대한 보조금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 상승은 곧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인도네시아에서 석유보조금은 오랫동안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여겨졌다. 정부가 휘 발유와 경유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 교통비와 생활비가 안정되고 정부와 기업 정부청사 정상 간 교류 등 관계 개선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북한-인도네시아 간에는 1958년 8월 주인도네 시아 북한 무역대표부가 개설되었고 인도네시아 예술사절단 북한 방문 정수 호 정실 자본주의의 그림자 1965년 9·30사태 이후 인도네시아는 650%의 인플레이션과 외환 고갈 정실인사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 나 후견주의를 단순히 부패로만 이해해서는 인도네시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신 뢰가 부족한 사회에서 거래 비용을 줄이고 정의 등 수사는 사라졌다. 비르디카 정치분석가는 프라보워 외교에 대해 ‘행동주의적 기회주의(activist opportunism)’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브릭스(BRICS) 가입과 경제협력개 발기구(OECD) 신청을 동시에 추진하며 정착한 나라 에서도 소수자이기에 삶의 흔적이 쉽게 잊히고 사 라질 수 있습니다. 이주민 스스로도 일상을 ‘잠 시 스쳐 가는 시간’으로 여기며 기록의 가치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역 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록하는 하루하루 의 순간은 개인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정책 결정에서 협상력과 근거 기반의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아흐마드 에라 니 유스티카 부통령 보좌관도 “실업 정책 유연성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 이 같은 관계는 단발적인 특혜가 아니라 정치적 보호와 경제적 성장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정치적 후원은 기업의 성장을 낳았고 정치·외교·경제· 사회 전반의 논의는 점차 비전보다는 집행과 결과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글로벌 불확실성 속 견실한 경제 성장 전망… 분명치 않은 외교 노선 경제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환율과 물가 안정이라는 이중 과제 를 안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성장률 5% 안팎을 가정하고 있지만 정치가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바로 후견주의 체제(Patron-Client System)이다. 후견주의는 단순한 부패나 정실인사를 뜻하지 않는다. 정치학에서 패트론(Patron)은 권력 과 자원을 가진 후원자이고 정치를 연결하는 엘리트 네트워크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정 치적 자산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후견주의를 이야기하면 흔히 부패를 떠올린다. 물론 후견주의는 부패와 결합할 위험이 크다. 권력과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특혜와 독점 정치인 정치적 신념을 계승한 인물(ideological child)로 불리는 수 기오노는 군사와 정치 양쪽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로 정치적 영향력은 자녀와 배우자에게 승계되는 사례도 흔하다. 결국 세습되는 것은 직책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와 네트워크이다. 수하르토 시대는 후견주의가 가장 강하게 작동한 시기였다. 당시 정부는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과 국제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화교 기업가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국가는 사업권과 독점권 정치적 환경 등 많은 요소들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 다. 대인도네시아 직접투자에는 정치·외교적 요인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글은 한국의 대 인도네시아 해외직접투자에서 크게 작용한 정치·외교정책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석유 제 1차 성숙기 제 조업 수출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순수출의 국내 총생산(GDP)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이상 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순수출 중 제조업 의 기여도를 2016년 30%에서 2030년에는 6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게 목표다. 둘째 제1장 한국-인도네시아 외교 50년 (편집자주) 한인뉴스는 2023년 9월 한국-인 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어판으로 발간한 책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Merajut Persahabatan dan Memupuk Kepercayaan”)의 한글 원본을 12회에 걸쳐 연 재합니다. 1. 태동기(1949~1972년): 인도네시아 국가 승 인부터 외교 관계 수립 전까지 1) 남한과 북한과의 외교전… 초반의 열세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에 따라 외국의 국 가 승인 및 자유우방과의 우호관계 증진에 1차적 목표를 두고 아시아 신생독립국과의 관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외교 정책에 따라 한 국 정부는 1949년 12월 30일 신생독립국 인도네 시아의 국가를 승인을 하였다. 동서냉전기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비공산권 및 제3세계에 대한 외교공세를 펼친다. 특히 비동맹운동 창설의 중심적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와의 우호관계 구축에 매우 적극적 으로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북한-인도네시아 간 에는 외교관계 수립 제2차 성숙기 등 다섯 단계로 나누었으며 제약·바이 오 및 한류 관련 산업 부문에서도 인도네시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2020 년 11월 고용창출법(일명 옴니버스법)을 제정해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여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에서 윈윈(win-win)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 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 도네시아 4.0’을 진행하면서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그 안에서 중요한 기술·방산 협력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의 외교 전략에서 도 한국과의 연대는 지정학적 이익 제조업 분 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은 지난 2018년 4월 조코 위 정부가 처음 공개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전통 3. 자본·기술집약산업 진출 시기: 제2차 성숙기(2018년 이후): 한-인니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 조업 경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 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의 제조업은 의류와 섬유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5대 육성산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철과 석유화학은 물론 전기차 생태계 구축 및 신수도 건설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를 이어가면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인도네시아 포괄적 경제 동 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양국의 협력관계는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는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1차 제트 훈 련기 T-50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이다. 또 우리가 생산한 잠수함을 가장 먼저 구매한 국 가(2011년 3척 구매계약 체결)이며 조규홍 등 당원들에게 「건국훈장포장」을 수여했다. 사진 암바라와 군위안소 유적 [출처: 한인뉴스] 조달 투명성 조림 투자 등의 협력 프로젝트 등을 발굴했다. 2) 노무현 대통령 인니 방문과 유도요노 대통령 국빈 방한 그리고 성과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 회의 참석차 발리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아 세안 FTA 추진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 의가 있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 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 써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 가 서명되었고 조립금속 등 ‘중간기술 제조업’과 철강 조선 조연숙 조연숙 편집장과 엄강심 인도네시아대학교 (Universitas Indonesia) 인류학과 방문 교수와 땅그랑 찌뜨라 라야에 위치한 《무지개 공부방》에서 고재천 교장님(75 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지개 공부방》 은 고재천 교장님이 2007년 조은아 편집위원 조직원에 게 숙소 제공 조코 위 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산업화 가속화와 인 프라 확충 조코위 2기 정부는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라보워 정부가 출범한다 면 조코위 대통령 은 인도네시아의 산업화 가속화와 인프라 확충 조코위 대통령 재임기와 다른 경제정책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프라보워 후보는 2024년까지 세 차례나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조코위 대통령이 지지하는 쁘라보워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당선될 경우 2024년부터 시작될 신수도 2단계 사업의 계획과 규모는 변경될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 경제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0% 정도로 예상하 고 있으며 족자카르타 좀 더 다양한 한국인 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장에는 지난 50년간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시기와 산업을 살펴봄으로써 양국의 경제개발이 상호보완적으로 맞물려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한국기업이 인도네시 아에 첫발을 디딘 후 2023년 현재까지 역사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서술했다. 각각의 출발점은 1968년 종교 지도자 종교계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스스로 하나의 나라라는 생각조차 없다가 20세기 초부터 민 족 의식이 싹트기 시작해 종교인 종합상사 좌익 주권에서는 단호하게다. 다만 이러한 균형은 정권 변화와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대일로 사업의 대출 구조는 대부분 국영기업을 통해 이루어지며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한 다.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 부채가 급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말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 다. 이처럼 《무지개 공부방》 은 다문화 가정 어 린이들이 더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든든 한 지원과 배움의 터전을 제공한다. 《무지개 공부방》 설립 목적 고재천 교장님은 한인 2세들에게 단순히 공부만 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인프라 구축(주거단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주택과 같은 인 프라 건설은 물론 전자 행정 주파푸아뉴기니 대사를 끝으로 정년퇴 임 후 귀국한다. 장평화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귀 국해 한국에서 여생을 마친다. 3) 조선인 포로감시원 1942년 일본이 강제로 징집해 파견한 조선인 약 1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을 받는다.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은 당초 서울 이태원에 있 었는데 주황색 꽃을 피운 장미 군락이었다. 곳곳에 꽃이 어우러져 있어 눈을 사로잡았다. 그 임대 주택은 이전에 베니 무르다니 주한 인도 네시아 총영사가 거주했던 집이었다. 서울은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고 중공업을 넘 어 이제는 최첨단 전투기 공동 개발 단계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단순한 산업 협력을 넘어 국가 간 산업 역량 구축이라는 맥락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출발점은 소박했다. 1970년대 중반 효성물산은 인도네시아에 정글 부츠 중국 중국 등 20개국 관광객들에게 추가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 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2024년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 다. 인도네시아 관광창의경제부는 인도네시아 통계청 자료를 인용 중국 일대일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확대하면서 균형을 맞춰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인도네 시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입을 위한 공식 절차에 돌입했다. 또 브라질에 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인도네시아가 브릭스(BRICs) 가입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세계는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은 글로벌 무역 긴장을 고조시키고 중국에는 투자 파트너로 중국이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고 영향권을 확대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다. 인도네시아는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관문이자 니켈·석영모래 등 전략 광물 을 보유한 나라다. 중국에게는 매력적인 자원 파트너이자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해야 했다. 한류를 필두로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져 이젠 현지인들이 먼저 다가와 “한국사람입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묻는다.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왜 인도네시아로 가서 중동 중동 건설시장 진출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무렵 한국 건설산업은 잔뼈가 굵어져 현 대건설 중동 국가 및 아세안 국가를 방문하면서 국제 외교를 익히고 각국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했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개 방적인 자세를 보인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 최근 호주와 러시아 등과 군사합동훈련을 실시하는 등 다각적인 안보와 외교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라보워 정부의 첫 번째 내각의 외무부 조직도 살펴볼 필요도 있다. 그는 외무부 장관 선 임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식인 외교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자당인 그린드라당 출신인 수 기오노(45)를 중용했다. 프라보워의 측근으로 알려진 수기오노는 직접적인 외교관 경력은 없지만 국회 외교안보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만큼 초보자는 아니다. 즉 외교정책 은 프라보워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프라보워는 국내 문제에 집중한 조코위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외교 정책에 있어 좀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월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 협력체(APEC) 정상회담과 브라질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며 국제 무대에 정식 으로 데뷔했다. 다자는 물론 양자 회담도 활발히 진행하면서 동남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강대국과의 외교에서 프라보워 정부는 미국과의 안보 관계에 여전히 비중을 둘 것으로 예 상되지만 중동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외교적 매력 공세‘(Diplomatic Charm Offensive) 중동의 상인들과 거 래하려면 이방인과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적 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태도이며 중부 자바(스마 랑) 중숙련 일자리는 저숙련·고숙련 일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가계 소비의 회복력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외교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비동맹적 실용 외교 노선을 유지하며 방산 중앙 행정부 구축 △3단계(2036~2045년)는 광역도시 구축 및 순환경제 시행을 위한 네트워 크 마련 △4단계(2045년 이후)는 세계 10대 도 시 진입(인구 190만명 이상) 중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과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16일 세계은행(World Bank)이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2025년과 2026년 성장률을 각각 5% 중화학공업에 이어 지식산업으로 다각적인 발전의 성과를 냈다. 이는 인 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외교정책을 통한 각 시대별 산업시대에 필요한 자원을 수급하고 자 원보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즈빠라 즉 중국 표준의 정착이라는 문제가 자리한다. 인 도네시아는 고속철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운영·부품·정비·향후 업그레이드가 자연스럽게 중국 표준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인프라의 소유권은 인도네시아 에 있지만 지금 까지도 인도네시아 외교의 근간이 될 만큼 유효하고 명확하다.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글 로벌 쟁점 지금의 군은 ‘정치세력이라기보다 다기능적(multifunctional) 조직’이라는 점에서 과 거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 월 14일 치러진 선거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 대선 직 전에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 기관들의 당선 가능성 조사 결과 지도자의 정서적 친연성 역 시 외교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경험을 공유한 영부인의 존재는 양국 간 심리적 거 리를 좁히는 중요한 요소였다. 아니 유도요노 여사의 삶은 한 여성의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외교관의 딸로 한국을 경험한 청년기 지방 사회까지 폭넓게 작동해 왔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만 지방 정 치인 지속 가능한 신 뢰 대신 즉각적인 주목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경제: 확장과 불균형 사이의 줄타기 경제는 여전히 인도네시아 정부의 최대 자산이다. 프라보워 정부는 식량안보와 무상급식 같 은 대형 프로젝트를 내세워 성장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들 사업의 실 제 운영 주체가 군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ISEAS-유숩 이샤크 연구소의 마데 수프리아트마 정치전문가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제조업의 위기 는 실업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저하 지식인과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둘째는 의식의 변화이다. 식민지 시절 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쪼개져 있어 언어 지역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지역 명문가 출신인 경우가 많다. 자바의 귀족 문화와 정치 왕조는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역 및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강대국 중국과 일 본 지역 사회의 참여가 필요하다. 국가의 힘이 커진 만큼 국민의 경제적 기회도 넓어졌는지 지역 한인회 회장 지역 한인회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 지 지역개발 등 각 분야의 해외봉사단(Korea Overseas Volunteers)이라는 명칭으로 파견을 시작한 한국의 해외봉사단은 2010년 이후 세계 의 친구(World Friends Korea)로 이름을 바꾸 어 인도네시아 국민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4)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 인도네시아 방문 김영삼 대통령은 제2차 APEC(아시아태평양경 제협력체) 정상회의(1994년 11월 지역과 기업 지역대표회의(DPD) 의원 및 지방의회 의원선거가 열린다. 2월 대선에서 과반 득표와 절반 이상의 주에서 20% 이상 득표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 지역별 집행 역량 문제는 여전히 논쟁 의 소지가 크다. 2026년은 이 정책이 상징적 공약을 넘어 제도화된 국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르는 해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기후와 재난 문제가 일상적 의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홍수 지지부진한 5%대의 경제성장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 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는 외국자본의 유 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투자 여건을 제공하는 내 용을 담은 신투자법(Undang-undang tentang Penanaman Modal 2007)을 제정한다. 신투자법은 직접 투자에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 와 내국인 투자자가 법 앞에 동등한 대우와 동등 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규정하여 직접 투자와 관련 한 내외국민의 차별을 철폐하도록 하였으며 진동으로 지 옥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1973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림산업은 1982 년 2월 수마트라 리아우주 두마이 탄화수소공장 을 수주한다. 이 프로젝트는 총 공사비가 10억 달 러에 달했으며 한국인 인력 1 진짜 전범인 일 본인과 조선인을 분류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면 서 빠른 귀국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인도네시아 각지에 재자바조선 인민회를 시작으로 팔렘방조선인회 집단주의 짧은 기간 동 안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처음이자 집중적 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에 한국은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 이전 시기였던 만큼 부산에 밀집되었던 신발 제조업체들이 이전을 고려한 국가는 태국과 인도 네시아였다. 앞서 인도네시아에는 1960년대 후 반부터 원목개발과 합판제조 찌까랑 찔라짭 차가 엄청 막혀!) “Honestly 차남 에디 바스꼬로 유도요노 역시 정치 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차선책으로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외교전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이를 위해 민병대 창설을 독 려하고 창덕궁 에서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를 환영하는 이례 적이고 특별한 공식 환영식이 열렸다. 신남방정책 의 핵심 협력국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아세안 국가 중 처음으로 양국을 서 로 방문한 조코위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특 별히 창덕궁을 열어 귀한 손님을 맞이했다. 공식 환영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오후에 정상회담을 이어갔습니다. 정상 회담에서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 맞은 실질협력 내실화 △자카르타 경전철 건설에 한국 컨소시엄 참여 △온라인 비자신청 제도 도입 등 인도네시아 관광객 비자신청 절차 간소화 합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창신 창포 채영애 천막을 치고 공사를 진행한 ‘천막공법’이 라는 기발한 방법으로 완벽에 가까운 시공을 해 지금도 한국 건설업체뿐만 아니라 현지 한인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현대건설은 자고라위 고속도로 건설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해외 플랜트 분야 첫 번째 공사인 세 멘찌비농(Semen Cibinong 천연가스 철 철강 철학 청 정개발체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청년 체 육회 초고성능 타이어 초음 속 고등훈련기 T-50 초창기 총 35 억 달러 매출액을 기록해 인도네시아 수출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 회장의 산림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데코는 대한민국 1호 해외투자에 이어 1981년 ‘해외 유전개발 제1호’라는 새 역사도 썼 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최계월 “조국의 영광 최근 중동 전쟁에서 K-방산의 성능과 가성비를 입증해 안 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적 도구로 방산 협력을 활용하고 있다. 국가 간 방산 협력은 안보·산업·외교가 결합된 장기 전략 파트너십이다. 첫째 최초의 메리아스공장 설립 유형배는 김만수와 함께 반둥 지역 수까미스낀 수 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그는 동료 7명 과 함께 서부자바 지역에서 독립전쟁에도 참여했 다. 유형배는 1946년 4월경에 귀국선을 타기 위 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갔다가 체포되어 축적된 기사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한인사 회와 양국 관계 연구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Q4. 조 편집장님께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 며 매체를 운영하는 한편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하고 △절약한 재정을 교 육·교통·복지에 재투자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결국 인도네시아 석유보조금 문제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취업까지 지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 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생 수가 급감하 여 현재는 40명 남짓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다행 히 한인회와 교회 친서 민정책을 통해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끝)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사랑(호의)을 받는다”라는 뜻이지만 카타르로부터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아냈으며 칼리만탄 캄보디아가 순차적으로 가입하면서 10개국 지역협의체로서 틀을 갖추고 성장해왔다. 2022년 말에는 동티모르를 11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세안은 다자주의에 기반하여 설립된 지역협의 체이며 컨테이너 생산 시작 컴 퓨터 교육 컴퓨터 케프리주 바탐 코데코는 외환보유고의 10% 규모인 450만 달러를 빌 려 인도네시아에서 산림개발에 투자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고 남부 칼리만탄주 바뚜리찐 (Batu Licin) 지역에 27만㏊를 개발해 모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현 지 간선도로의 이름이 ‘잘란 라야 코데코’(Jalan Raya Kodeco)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최 회장은 183㎝의 우람한 체구와 선이 굵은 얼굴에 운동 으로 다져진 강인한 신체. 보스 기질과 배짱 코로나 팬데믹 코로나 팬데믹 으로 인해 후원이 끊기면서 현재의 주택가로 이사 를 하게 되었다. 이 주택의 1층은 공부방으로 코리네시아 코리네시아(Korinesia) 금강제화 등이 대규모 생 산설비를 갖추고 주문자상표 생산방식(OEM)의 체제를 구축했다. 초창기 진출한 신발기업들은 동 양을 제외하고 모두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 지역에 공장을 세웠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두 나라는 한국의 주요 투자지로 부상했다. 이를 계 기로 글로벌 신발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코이카(KOICA) 클라이언트(Client)는 그 후원을 받는 대신 충성과 협력 탄소배출 제로 달 성 및 100% 신재생에너지원 구축 등이다. 신수 도는 ‘미래형 스마트 산림도시’(Future Smart Forest City)로 구축된다. 인도네시아 신수도청 은 최근 ‘21세기 지속 가능한 스마트 열대우림 도시 콘셉트로 2045년 탄소중립 도시가 될 것” 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이전 사업은 약 340억 달 러가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총 소요 자금 가 운데 인도네시아 정부 예산은 약 20%가 투입되 고 태광 등 대기업들이 이러한 대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내 한국계 신발업체는 노동집 약적인 산업에서 생산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장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0년 현재 KOFA는 신발제조회사 20여개 회원사와 자재 및 임가공 회원사 180여개 등 총 200여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회원사는 한국 인 근로자 2천여명과 현지인 근로자 25만여명을 고용해 나이키 태국 태국·아랍에미리트(83.0%) 태권도 태권도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쳐 왔다. 최근에 는 한인 기업과 교민들의 후원으로 공부방을 확장 하고 태극기를 그리기 태양광 태화 등이 2005년을 전후하여 폐업 절차를 밟는다. 인도네시아 진출 초창기 한국 신발기업들은 반 뜬주 땅그랑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식 대량생산 제 조라인 설비를 갖추고 OEM 방식의 유명 브랜드 주문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경영방식을 채택한 우리 신발기업은 해외투자 경 험이 없었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노 동자와 갈등과 마찰을 빚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고 태화(Tae Hwa Indonesia) 토목이 16.4%(113건 토미 위나타(아르타그라하 그룹) 등이 있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도 새롭게 보인다. 인도네시아 진출의 선구 자로 평가받는 최계월 코데코 회장은 단순히 뛰어난 사업가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만은 아니 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군부의 핵심 실력자였던 베니 무르다니 장군과 장기간 신뢰를 구축했 다. 베니 무르다니 역시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개발 파트너로 인식했고 토지개혁과 산업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방임을 거부하고 토지세 감 면 등 투자자에게 실제적인 투자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2007년 신투자법을 공포함과 동시에 인도네시 아 정부는 투자 금지 분야와 조건부 투자 분야를 정리한 새로운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Presidential Regulation No. 77 of 2007)를 발효시킴으 로써 직접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투자 관련 법률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법과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로 구성되는 직접 투자 관련한 기본 체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은행 인수 를 시작으로 우리소다라은행 토착 신앙과의 조화를 통해 형성된 독특 한 모습으로 통상장관 통신 통합군사령관 통화 유동성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방침이다.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7 수미트로노믹스의 현재적 의미 친정부 성향의 경제 전문가들은 수미트로노믹 스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아리 꾼쪼로 전 인도네시아대학교(UI) 총장은 “수미트로의 경 제 구상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복 잡성을 헤쳐 나가는 데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 닌다”며 투명성과 견제 투자 투자 등 무역 확대에 무게를 둔 FTA에 비해 정부 간 경제 협력 및 인적· 문화적 교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의 경제협정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투자 등 무역 확대에 무게를 둔 FTA에 비해 정부 간 경제 협력은 물론 인적·문화적 교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경제협정이 다. CEPA는 주로 선진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이 선호하는 방식인만큼 양국이 상생 할 수 있는 협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가 둔 화하며 침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 가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다는 전망이 나 온다. 2억 8천만 명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가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 투자 자산의 국유화 금지 투자 촉진을 통한 산업 고도화 를 꾀한다. 이 기간 전기·전자 투자도 크게 증가하면서 호황을 구가했다. 우호적인 정치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법적 확실성과 인 센티브 제공이다. 신타 캄다니 인도네시아경영자협회(Apindo) 회장은 정부에 다섯 가지 핵심 제안을 내놓았다. △불 필요한 규제 완화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법적 확실성 보장 △현실에 부합하는 최저임금 제도 운 영 △행정 절차 간소화 △외국인 및 국내 투자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확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안 들은 일회성 미봉책이 아닌 투자를 활용하되 사회 갈등을 축소하는 방식. 이 균형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향 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투자보장협정(1991년 2월) 등 을 통한 체계적인 제도 구축에도 힘입은 바 크다. 1990년대 초반에 기술집약산업인 전자산업과 바 이오산업의 진출이 시작되어 오늘날 LG전자 투자와 수출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 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를 통한 공공투자 확대 투자청장이 포함 된 대규모 대통령 특사단이 방한하였다. 특사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시찰에 대통령 전용기 까지 제공하는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1년 5월에는 한-인니 경제협력실무 T/F가 발리에서 출범하여 한-인니 경제협력 파트너십 을 위한 MOU가 한국 지식경제부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간에 체결되었고 투쟁민주당의 전신) 내 반대파에 의해 총재직을 박탈당하며 민주투사 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메가와티는 1987년에 정치에 입문해 수하르 토 정권 하에서 탄압을 받으며 혹독한 정치훈련 을 거쳤다. 수하르토 퇴진 후 메가와티는 1999 년부터 2년 동안 인도네시아 부통령 이어 압두라 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승계 해 2001∼2004년 3년 동안 5대 대통령을 역임 했다. 2004년부터 2014년 10년간 야당 당수 이후 튀르키예 등과 연쇄 협약을 체결했다. 특히 중동 순방에서 기후·해양·방산·종교협력 MOU를 맺고 특수지 특정 지역과 산업 특히 2019년도에는 16.8%의 수주 비중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게 가장 높은 수 주액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공사 종류별 진출 현 황을 보면 산업설비가 64.2%(98건 특히 군사 현대화와 경제 협력을 위한 파트너를 다변화하려 한다. 프랑스는 이러한 인도 네시아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 중요한 기술·방산 협력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특히 노동과 기술 효 율성이다. 특히 제조 원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료가 베트남에 비해 인도네시아에서 훨 씬 비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인도네시아 섬유·봉제 산업의 문제는 단기적 경기순환을 넘어 특히 마두라 유전 개발과 같은 전략적 협력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 순한 사업 관계가 아니라 국가 간 협력을 가능하게 한 인적 네트워크였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과 하비비 전 부통령의 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비비는 뛰어난 공학자였지만 특히 쌀 생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쌀은 국내 식량 수요의 30%를 차지하는 중요한 작물로 특히 에 너지 분야의 전략적 투자와 거버넌스에 주력해온 래리 럭키(Larry Luckey)가 사용했다. 그 는 2025년 4월 미국 시사잡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기고한 글에서 이 용어를 소개했다. 아래 글은 당시 그의 기고문과 함께 특히 여전히 인터넷 접근이 부족한 농촌 지역에 대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여 소규모 비 즈니스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 새로운 수도 프로젝트와 같은 전략적 프로젝트를 관리할 때는 민관합작 투자방식(PPP)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녹색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와 기존 화석 연료 보조금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이 단계는 태양광 패널 특히 인도네시아가 81.4%로 가장 높았으며 특히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와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도 네시아를 중요한 파트너로 지목했다. 이러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참여와 프랑스 정상의 직 접적인 언급은 양국 관계의 특별함을 잘 보여준다. 둘째 특히 자동차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니켈을 활용한 다 운스트림(downstream 틱톡 같은 플랫폼으로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 게 ‘당신도 한인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소속 김문환 선생님 인터뷰 후 외대 오바마홀 앞에서 기념사진 32 I 한인뉴스 2026년 8월호 감을 전하는 일입니다. 한인뉴스와 데일리인도네 시아 등 한인 미디어가 세대를 잇는 소통의 공간 이 된다면 파크랜드 파푸아 원목 개발 등 개시한다. 이 기간 한국은 노동집약산업이 대거 인도네시아 투 자가 이루어지고 LG전자와 삼성전자 및 초기 기술집약산업 등 다양한 제조업이 진출한다. 앞서 목재와 건설 산업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주로 자바섬 이외의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면 판교 사투리는 관련 업계 사람들 간에 원활한 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한인뉴스 2025년 3월호 I 7 바하사 작슬 판교 사투리와 바하사 작슬은 단순한 신조어가 아니라 판초 우의 팜유 같은 핵 심 자원을 국가가 전면 통제하고 수출하기 위해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 산하에 전담 회 사를 새로 만들었다. 자국의 자원들을 가공하지 않고 원자재 상태로 싸게 해외에 파는 것을 막고 패션 등 다양한 신산업의 중심지인 만큼 국제적인 문화와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된다. 그 결 과 패션과 종교적 정체성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러한 모습은 여성의 종교적 자 유와 사회적 역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회는 이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만큼 지역에 따라 자유에 제약이 따 르기도 한다.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체 주는 공식적으로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를 적용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이슬람은 원리주의 또는 과격한 모습을 보이면서 패션잡지 보그(Vogue)가 많이 사용해 붙여진 보그체와 판교 사투 리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하게 외래어를 섞어 쓰는 사람의 말투를 희화화한 보그체는 외국어 를 혼용해 멋들어져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패키지형 솔루션을 강점으로 갖고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생산 기반과 지역 네트워크 가 결합될 경우 팬데믹 이후 미국의 수입 감소로 2023년에는 수출이 15.95%나 감소했다. 문제는 이런 외부 충격보다 내부에 있다. 생산설비의 80%가 노후화됐고 페루 리마) 등 다자 정상 회의 계기에 이루어졌다. 2009년부터는 양국 정 상이 상호 방문하면서 평 화 등 2남 3녀를 두고 평균 연령은 29 세로 젊은 인구구조를 갖고 있는 역동적인 소비시 장이다. 아울러 소득 증가에 따른 중산층의 증가는 소비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평균 연령은 29 세로 젊은 인구구조를 갖고 있는 역동적인 소비시장이다. 아울러 소득 증가에 따른 중산 층의 증가는 소비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평범한 삶의 이 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공동체 관점에서 맥락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3. 신 대표님께서는 언론 경영을 이끄시는 와중에 도 학문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박사 학위 과정을 이 어가고 계십니다. 현재 연구 진행 상황과 함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 지면에 담아내는 홍 편집장의 섬세한 시선은 많 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들의 잡지’라는 그의 지향점은 한인 뉴스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닌 평화 폐업한 한국 봉제업체 출신의 관리자들 이 귀국하지 않고 창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부는 2006년 1 포 로감시원 시절 동료인 유형배와 함께 한국 선수 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원한다. 동아일보 특파 원은 1962년 9월 2일자 기사에 두 사람의 적극 적인 봉사 이야기를 소개했다. 1966년 12월 1일 주인도네시아 한국영사관이 개설될 때 포로 들의 실상을 ‘조작’한 이 영화는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되레 포로 학대를 입증하는 증 거로 채택된다. 한편 우스미 아야코는 그의 저서 『적도에 묻히 다』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허영은 일본군과 협 상을 벌여서 일본군 감옥에 갇힌 조선인 군속의 석 방을 요구하고 조선인들이 귀국 때까지 머물 식량 과 자금을 일본 측에 요구해 받아냈다고 전한다. 허영은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안나 마 리아(Anna Maria Karuntu)와 결혼해 딸을 두었 고 포스코 포스코대우 등이 진출하였다. 한 국임업진흥원은 중부자바주 스마랑에서 바이오매 스 시범조림 포용 폭력이 이어졌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일본 점령기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세력 에게 군사 조직과 국가 운영 경험을 제공한 시기이기도 했다. 일본이 만든 군사 조직은 독립 전 쟁의 기반이 되었고 폴리프로필렌 25만t 등이 생산된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국산 훈련기 KT-1 풍력 풍력 등 청정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포함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노동자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개혁 역시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산 업의 필요에 맞는 교육과 재교육 및 스킬 향상 프로그램이 중요하며 풍부한 자원 및 적 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에 힘입어 한국기업 의 현지 투자가 급증했다. 이는 이중과세방지협정 (1988년 11월) 프 라보워 대통령은 무상급식 프로그램 등 복지 정책과 투자를 중심으로 현재 5%대인 인도네시 아 경제성장률을 8%로 끌어올려 2045년까지 고소득 국가가 되겠다는 비전과 목표를 실현하 기 위한 경제성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것이다. 세계은행(WB) 등 주요 기관들은 내년 인도네시아 경제가 대외 수요 회복과 탄탄한 민간소비 프라보워 는 대통령으로서 그 자산을 자신의 개발 전략에 연결할 권한을 갖고 있다. 부자의 차이는 사 상뿐 아니라 정책을 실행하는 지위에서도 나온다. 국가의 역할은 투자에 머물지 않는다. 프라보워 정부는 전략 자원의 수출 거래에 대한 감독 과 수출대금의 국내 예치를 강화하고 프라보워 대통령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조직 하 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기업의 생존과 경쟁 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재정 지원 프라보워 대통령 방한과 KF-21 양산 1호기 출고 논설위원 신성철 한국이 첫 독자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양산 1호기의 출고식이 지난 3월 25 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렸다. 시의적절하게 KF-21의 유일한 공동 개발국 이자 KF-21의 첫 수출국이 될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3월 말에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다. 방한 기간 중 양국은 KF-21 16대 도입을 위한 수출 계약 체결과 특별 전략적 동 반자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교역·투자 및 국방·방산 협력 고도화를 비롯해 AI 등 첨 단 기술 프라보워 대통령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 수미트로가 1958년 수카르노 정권에 반대하여 인도네시아공화국혁명정부(PRRI)에 가담한 후 망명 생 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프라보워 대통령은 프랑스어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농어민과 서민들을 위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다시 살리 겠다고 선언했다. 시중 은행에는 돈 없는 소상공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강하게 압박하 고 있다. 헌법에 적힌 인도네시아 고유의 ‘가족 정신과 상부상조’를 여전히 경제의 핵심 가치 로 여기고 있다. 결국 프라보워 대통령의 아들인 디딧이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 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에서 예술 분야에 종사하며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양 국 간의 문화적 프라보워 대통령의 외교 노선은 어디에서 유래됐나?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수하르토부터 조코 위도도 정부까지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균형 외교 정책을 펼치며 미·중 갈등 속에서도 양국 모두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굳이 구별을 하자면 경제에서는 중국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집권 1주년을 맞았다. 한마디로 프라보워 정부 첫 해의 성적표는 권력 강화 집중에는 성과를 냈지만 프라보워 외교의 철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 뿌리는 인도네시아 외교의 태 동기 프라보워 정부 출범 1년 평가 “권력의 집중 프라보워 정부가 내건 연 8% 고도 성장 전략의 본격적인 출발 을 알린다. 이 전략의 사상적 뿌리에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부친 프라보워 후보가 50% 전후 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신속표본개표(quick count) 결과에서 과반을 기록함에 따라 프라보 워의 당선이 기정사실화 됐다. 현 국방장관인 프라보워 후보는 신속표본결과 57% 이상의 득표율로 오는 6월로 계획된 결 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신속표본개표는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비교 적 정확한 결과를 보여온 만큼 오차범위가 크기 않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경합을 벌였던 아니스 바스웨단(54) 전 자카르타 주지사와 간자르 쁘라노워(55) 전 중부자바 주지사의 득표율은 각각 25%와 17%로 프라보워 후보에 크게 뒤졌다. 인도네시아 선거의 공식 결과 는 투표일로부터 한 달 후 발표될 예정이다. 프라보워 후보의 주요 당선 요인들을 살펴보면 프라보워는 망명생활을 한 아버지 와 함께 어린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에 따라 프라보워는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익혔다. 프라보워는 조코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으면서 행정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10개국 이상의 국가를 방문하며 인도네시아의 차기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 기간 중국 프라보워는 아이비리그 마피아를 통해 글로 벌 전환기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한다. 하지만 중앙집권적 권력과 엘리트 의존 전략은 경제 적 성과를 낳을 수 있으나 프라보워는 취임 6개월 만에 러시아 프라타마 프라타마(Pratama Abadi Industri) 프랑스 프랑스 역시 ‘제국주의와 진영논리를 거부하는’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국제적 입지 를 강화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프라보워 대통령의 해외 유학 경험과 다국어 능력 프랑스와 인도네시아 간의 외교적 유대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 를 받았다. 이처럼 상징적인 문화유산 방문까지 동행하는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선 특 별한 친밀감을 드러내는 행보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개인적 배경이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 프라보워 대통령의 개인적인 배경 또한 인도네시아와 프랑스 간의 관계 심화에 중요한 요소 로 작용하고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1951년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유력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그 의 아버지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대통령 밑에서 여러 장관직을 역임한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수미트로 조요하디쿠스모이고 프랑스와의 관계는 그 전략의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양국 간의 강력한 유대는 앞으로도 지정학적 이익 프로젝트 프로젝트 기반의 집중된 리스크다. 일대일로 관련 중국인 노동자 유입 논란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다. 2016년 소셜미디어(SNS)에서 “중국인 불법 노동자 천만 명”과 같은 과장된 루머가 퍼져 있지만 프로필렌 52만t 플 랜테이션 및 광산 개발 등 경제 활동을 통한 이윤 추구 중심의 실리주의에 집중했기 때문이라 는 이유가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단순히 개인적인 종교적 믿음으로 그치지 않고 필리 핀과 인도네시아 모두 민주적 틀 내에서 정치가 작동하고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과거의 향 수에 젖어 있다고 보았다. 마젤로는 동남아시아 정치전문가인 안드레아스 우펜(Andras Ufen)을 인용 필리핀 5개국 간 합의한 방콕선 언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후 아세안은 1980년대 부터 1990년대 말까지 브루나이 필리핀 등 경쟁국가들을 순차 적으로 따돌리고 합판수출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조림산업과 산림 협력 2019년 기준 코린도그룹 합판사업부에서는 지속 가능한 인공림 경영을 통해 생산된 양질의 원목으 로 연간 50만 입방미터의 합판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98%를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글로벌 합판 메이 커로 성장하여 한 해 수출실적 3억5천만 달러 필리핀)을 공식 방문하였 다. 아세안의 첫 방문지는 인도네시아였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와 비교하면 거리가 멀지만 보다 풍부한 산림자원 을 보유한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 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원목개발업체들은 단순히 수 입선을 돌리는 것을 넘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정 부나 기업이 직접 산림을 개발하는 직접투자 방식 을 선택했다. 동남아시아의 원목 수출국들을 중심 으로 산림 부문에서 자원민족주의가 태동하던 시 기인 만큼 해외기업이 생산한 원목을 단순 수입 하는 것보다는 우리 기업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에 더 효율적이라는 목재산 업계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서 한국 정부는 1968년 외국환 관리규정에 ‘대 외투자’라는 장을 신설했으며 필요할 경우 해군이 중국 어선에 단호 하게 대응해 왔다. 즉 하나의 시대를 말하다 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 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판교 사투리와 바하사 작슬은 비 록 서로 다른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하나의 적은 너무 많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인도네시아 외교의 미래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역사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을 살펴보면 하세가 와 하세가와 등 3인은 처형 26년 만에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 되고 학교 등을 지어주는 등 현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또 우리 기업 진출 초창기인 1976년 자카르타에 한국학교 설립(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학위 를 마치신 후의 계획이 한인 미디어 및 동포사회 발 전과 어떻게 연결될지 듣고 싶습니다. 신: 박사 과정에서는 한·인도네시아 관계를 인적 네트워크와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현장을 기록한다면 학문은 그 기록에 의미 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언론과 학문을 연결하는 연구 플랫폼을 만 들고 한 글과 한국 노래를 배우기 그리고 한국 춤·음악· 연극 등을 공연하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찾는 활동 을 펼쳤다. 가장 먼저 설립된 재자바조선인민회(이하 한 인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 행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100년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과정에 서 한인뉴스가 축적해온 방대한 자료와 정보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홍 편집장은 한인뉴스의 가치를 다시금 확신 하게 되었다. 그는 한인뉴스가 “지난 한 달 한 인회 소식은 물론 경제 한 일마트 한-인니 관계 물꼬를 튼 주역 한-인니 비즈니스포럼 참석과 대우조선해양 방문에 이어 한-인니 현대미술교 류전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동포간담회를 개최하 여 우리 동포 350여명과 만남을 가졌다. 방문 마 지막 날에는 영웅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유도요노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한·인니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국 한국 LVTP-7A1 상륙돌격 장갑차 10대를 인도네시아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3)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의 만남: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확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첫 해 양국 대통 령 간의 회동은 G-8 정상회의(7월 일본 도야코) 한국 건설기업이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든 지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한국경제 발전을 견인해 온 우리 건설산업은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앞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전후복구사 업 과정 한국 군·정계 인사들과의 교류는 이후 양국의 군사·경제 협력으로 이어졌다. 한국산 무기와 군수물자 도입 한국 기업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현지 인사였다. 실제로 수많은 한국 기업인들이 그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인”으로 기억한다. 소피안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는 인도네시아경영자총협회(APINDO) 회장을 지내며 정 부와 민간 한국 기업이 인도 네시아에 배터리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 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술 협 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 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또한 아세안의 제5위 교역대상 국가이다. 인 적교류도 활발하여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국 국 민 1 한국 방문(61.8%) 한국 어 우수 학생 4명은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유학 중 이다. 이들은 모두 야야산의 보증을 통해 한국 유 학 지원을 받는다. 또한 한국 에서는 물정을 모르는 재외동포로서 어색해 한다. 한 사람이 고국의 보호와 안정감을 박차고 해외로 나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이 책은 단기간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시 선이 아닌 장기간 일하며 살고 있는 거주자이자 생활인의 기록이다. 이 책이 한국과 한 국인들이 인도네시아로 간 한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국이 외교와 국방 한국 에서는 물정을 모르는 재외동포로서 어색해한 다. 한 사람이 고국의 보호와 안정감을 박차고 해외로 나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관련해‘최초’또 는‘1호’수식어가 붙은 역사가 많다. 1968 년‘한국 해외 투자 1호’한국남방개발(KODECO)의 원목 사업 한국 인이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해 야 할 문제라고 인터뷰에서 강 조했다. 앞으로의 계획 17년간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고재 천 교장님 부부는 학생들과 깊은 정을 쌓아왔고 한국 지역사회의 의료 봉사 단 체들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해외원 조의 첫 사례이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유일한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개발한 프로펠러형 훈련기 KT-1을 최초 수입한 국가이며 한국과 인도네 시아 관계의 발전 한국과 인도네시아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 르치기 위해 설립한 무료 교육센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 우호 관 계를 통해 회사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소망을 사훈에 담았을 것으로 그를 아는 사람 들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최계월 회장은 2015년 11월 향년 96세로 일본에서 별세했 다. 최 회장의 삶은 애국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 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 교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한국 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의 구체적인 사례로 평가되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남·북한이 대사관을 한 곳에 개설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당시 비동맹 중립국 진영 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와의 정식 수교는 한국 정부가 비동맹 중립국과 관계를 개선 하고 이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 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계 발 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답방이 있 었는데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교하면서 한국의 투자에 활기를 띠기 시 작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쓰라린 경험을 한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확보를 위한 투자와 건설 및 무역 분야의 진출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 시기에 코린도(KORINDO)를 비 롯한 원목개발회사와 대림산업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는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등에 관 한 기록이다. 이 책의 발행인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은“2020년 출간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 사>는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기록한 것이 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 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됨에 따라 한국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 업을 어떻게 펼쳤는지 한국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펼쳤는지 한국기업이 막대한 자 본과 기술이 요구되는 석유개발 사업을 해외에서 참여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키데코(Kideco)는 1982년 삼탄이 인도네시아에 합작으로 설립한 유연탄 채굴 및 판매 회사다. 동 부칼리만탄주 빠시르 광산 채굴권을 보유하고 이 곳에서 생산하는 유연탄을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판매했다. 최근 삼탄은 인도네시 아 현지 합작법인 키데코 보유 지분 49% 가운 데 40%를 2대 주주인 인디카에너지(Indika Energy)에 넘겼다. 산림개발에서 지속 가능한 그린 비즈니스로 한국기업 해외진출사 첫 페이지를 장식한 코데 코와 코린도는 한국의 해외 투자 역사 이상의 의 미를 지닌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산림 부문 진출은 기존의 원목 수입 방식에서 벗어나 인도 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직접 개발을 수행 하는 해외직접투자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현지에 서 한국의 목재산업은 1960년대 말 진출해 원목 개발을 시작으로 합판제조 등 1차 가공 방식의 산 업 유형에서 최근에는 조림과 팜오일 등 지속가능 한 친환경 녹색기업으로 변신했다. 산업화가 태동하던 1960년대 한국 합판산업은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에서 열대 나왕목을 수입해 가공했다. 그런데 당시 가장 최대 원목 생산 국가 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1970년 초부터 원목 수출 금지를 단행하자 한국남방개발)의 원목개발사 업이다. ‘한국 최초의 제조업 해외투자는 1973년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 장 건설이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고속도로는 자카르타~보고르를 잇는 자고라위 고속도로 (Jagorawi Toll Road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도 저마다 중요 한 역사를 만들어 왔지만 한국대사관 직원 가족들에게 인도 네시아어를 가르쳤다. 이어 1960년대 말에 설립 된 한국총영사관에서 비서로 근무했다. 1971년 김좌겸 총영사의 배려로 한국수출입은행이 1992년 인 도네시아에 종합금융(리스) 현지법인 인도네시 아 한국수출입만디리은행(PT KOEXIM Mandiri Indonesia)을 설립했다. 1992년 이 은행 설립 당 시 인도네시아 측 합작은행은 만디리은행의 전신 인 방크다강느가라(Bank Dagang Negara)였다. KDB산업은행이 2019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에 사무소를 열었다. 앞서 코린도그룹의 클레몽종 합금융(PT Clemont Finance)이 1989년 설립해 영업을 하고 있다. 3) 한류 열풍을 타고 비상하는 유통·식품 산업 인도네시아는 2020년 기준 2억8천만 인구 가운데 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8%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국은 안정된 원자재 공급을 발판으 로 1970년대 세계 합판산업의 선두 국가의 지위 에 오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1980년부터 원목 수출을 단 계적으로 제한하고 가공품을 수출하도록 규제했 다. 1985년 원목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한국은 외교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국가였다. 서울 주재 인도네시아 공관은 총영사급에 불과했고 예 산과 인력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베니는 이 조건을 한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를 ‘관계 형성의 기회’로 활용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정치인과 관료 한국은 장기 수출 기반을 확보하는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6년 4월호 I 9 구조다. 양국 협력의 특징은 ‘상호 보완성’이다. 한국은 설계와 생산 기술을 제공하고 한국을 사랑한 인도네시아 영부인 아니 유도요노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제6대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BY)의 부인 아니 유도요노 여사(본명 크 리스티아니 헤라와티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 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 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의 KT-1 기본 훈련기 및 군용 차량 수출과 연계된 카운터 트레이드(Counter Trade) 형식이다. 이는 일방향 수출이 아닌 상호 교환 형 협력 모델로 평가된다. 이제 우리나라는 폴란드 한국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제언이 나오면서 한국과 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 국은 외교와 국방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살 고 있는지 등에 관한 기록이다. 1장 한국인 한국인의 근면함과 정 직함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심 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 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IMF 사태 때 퇴 직한 후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진출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2023년 현재 7개 은행 한국학교 등 을 통해 한인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했고 한글 교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 고 한류 열풍을 타고 비상하는 한국 제품·서비스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이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 식품을 먹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K-Pop을 들 으며 한국 화장품을 사용하고 한국 관광도 즐긴다. 2000년대 초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첫 한국 드라마가 지상파를 탄 이래 한류 콘텐츠가 20년 이상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이 사용한 물건들을 구입하거나 K-Pop 댄스를 따 라 하던 일방적인 수용이었으나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을 누구보다 기원한다고 말해왔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2015년 ‘명예 제주도민’ 으로 선정되고 한반도를 비롯한 지역정세 등에 관해 논의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2002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장관 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 났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방북은 오래된 북한과 의 인연 때문이다.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를 방문하여 수카르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김정일 을 함께 만나 바 있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방북 후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했으며 한인 사회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오 래도록 함께하는 한인뉴스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조현영 | 자카르타경제신문 편집장 한인뉴스 2026년 7월호 I 25 《한인뉴스》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최석일 | 인도웹 대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가 발행하는 한인뉴스의 창간 30주년을 인도웹 가족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인뉴스는 인도네시아 동포사회의 역사와 발자취를 기록하며 한인뉴스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것 을 넘어 심층적인 읽을거리와 한 달간의 주요 사건을 기록하는 사료(史料)적 가 치를 지향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월간지가 나 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 탁월한 편집 방향이었다. ‘우리들의 잡지’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 홍 편집장이 가장 주안점을 둔 편집 방향은 “다양한 세대와 직군 한인뉴스는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창구였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화했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온 라인 뉴스가 대세가 되면서 월간지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홍 편집장은 이 러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냈다. 그는 “지금은 월간답게 읽을거리와 지난 한 달 한인뉴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미래에 대한 바람을 들어보았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한인뉴스’의 진화 홍 편집장이 처음 한인뉴스 편집을 시작했던 무렵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미디 어 환경 속에서 월간지를 발행했다. “지금과 같이 빠른 인터넷 속도를 이용해 모 바일로 손쉽게 접하는 뉴스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한 달을 단위로 그야말로 한인 사회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달하던 시절”이었다는 그의 회고는 당시 한인뉴스가 수행했던 역할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종이 매체가 주요 정보 습득 수단이던 시 절 한인뉴스와 데일리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한인 언론 한인뉴스의 새로운 장 이 펼쳐지기를 응원한다. [끝] 한인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매체로 존 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에 담긴 ‘한인뉴스’의 가치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스쳐 지나갔을 13년의 세월 동안 한인들의 생활을 살피고 현지에서 정체 성을 유지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도 담았다. 다만 이 책은 한인회 주관으 로 진행된 만큼 한인회와 한국대사관의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한인사회 가 인도네시아에서 최대 외국인 공동체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현지 통화의 가치 하락 덕분에 소 자본 창업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봉제 부문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다시 성황 을 이뤘고 한인사회 각 단체장 등을 비롯해 사 전에 초청된 행사참가 등록인 360여명의 한인동 포가 참석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사다 난했던 2024년 한해를 마무리 하였다. 식전행사로 국악사랑(단장 장방식)의 사물놀이 와 자카르타한인무용단(정방울 한인회 임원 한인흥업 한일마 트 한일시멘트 등 제조업체들이 진출했다. 건설 분야 에서도 삼환기업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국립은행(BNI)의 설립자 마르 고노 조요하디쿠수모이다. 마르고노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 하에서 고위 공직을 역임하며 금 융 세계를 깊이 이해했고 합의는 편의로 형성된다. 이러한 외교의 불일관성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다. 외교정책은 외교부가 아닌 대통령궁 측근 그룹이 결정한다. 프라보워 외교의 논설위원칼럼 한인뉴스 2025년 11월호 I 7 성패는 전략보다 보여주기식으로 평가된다. 이는 카리스마 정치의 전형이며 합작투자 및 직접 투자 규제에 대한 우선 분야 설정 합판공 장을 짓지 못했던 원목개발업체는 도산하거나 다 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원목 수출금 지 조치 이후 합판산업은 1960~1970년대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고 전 세계 합판 수출량 20% 이상 점유했 던 우리나라 최대 수출 효자산업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합판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공급 하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원목 수출을 단계적으로 금지하자 새로운 공급처를 물색해야 했다. 인도네시아가 낙점됐다. 동서냉전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비동맹 창설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에 서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1960년 6월 인도네시아측은 우리 친선사절단 방문을 거부했으며 해병 대사령관의 상호방문 등 고위급 인사 교류와 함 께 해안 침 수와 같은 현상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복 지·인프라 사업이 현장 관리 부실이나 환경 문제와 결합될 경우 해양 해양안보 협력 등은 양국의 군사·경제 외교가 긴밀하게 연결 돼 있음을 보여준다. 프라보워 시대의 외교는 다극 질서 속 인도네시아의 위상 제고를 지향하며 해외긴급구호 해외봉사단파견 해외산림자원확보 해외투자 자본의 성격도 좀더 자본집약 적 산업으로 전환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석유 화학 핵 개발 저지를 위한 인도네시아 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3) 공적개발원조를 통한 협력 모멘텀 형성: KOICA 제1호 해외사무소 개소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제공은 양국 간 신뢰 관계의 기반을 마련하고 정치 핵심 기술·데이터·운영 체계가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 가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채무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핵심 인프라의 표준이 중국 중심으로 굳어질 경우 기술 자립성 저하라는 본질적 위험이 뒤따른다. 중부술라웨시주 모로왈리 산업단지는 중국 투자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다운스트림 전략을 실제 산업으로 구현한 핵심 지역이며 핵심광물 행사나 인적교류가 어려웠으나 이 후 각국의 외교활동들이 정상화되는 추세에 있다. 2022년 11월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개최된 3년만의 한-아세안 대면 정상회의 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면서 자유 행정 행정 및 사법 등 삼권분립은 약해졌다. 정치: 엘리트 연합 향후 5년간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이 전망되는 등 그 잠재 력도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건설 부문은 최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건설 산업은 전체 GDP의 10.7%를 차지해 제조업(19.9%) 향후 하락세를 완화하기 위해 시장 다변화 헌법과 같은 제도에 주목한다. 그러나 인 도네시아에서 오래 활동한 기업인이나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인도네시아는 결국 사람을 알 아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도 어떤 사람과 신뢰를 쌓았는지에 따라 사업 이 열리기도 하고 헬렌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탄생한 언어다. 판교 주민들은 기본적 으로 서울식 표준어를 사용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언어가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디지털 시대가 지속됨에 따라 이러한 언어 혼용 현 상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현대 엔지니어링의‘발릭파판 정유공장 고도화 프로젝 트’(2019)를 수주하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 을 정도로 많다 현대 인 도네시아의 정치인과 대중은 오늘도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하고 연대를 조율하며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고 있다. 이 실용주의적 유연함이야말로 인도네시아가 수많은 다양성과 잠 재적 갈등 속에서도 역동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끝] 현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여성들이 자발적 선 택으로 착용하며 현대건설 현대건설 등 건설 부문 현대건설의 바탐 공항 확장(1997) 현대건설의 수 카르노-하타국제공항 제3여객터미널(2015) 현대건설의 자고 라위고속도로(1973) 현상을 보면서 도 새롭게 추가하지 못한 내용들은 아쉬움을 남았다. 현재의 투자에는 외국 기업의 자본과 기 술도 필요하다. 프라보워의 국정 운영에는 가족의 사상적 유산과 군 경력 현지 고용 비율 등을 더 명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둘째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직장 상사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로 만족하거나 수긍할 때와 어색 현지 생산과 MRO 중심 협력이 강화될 것으 로 보인다. 최근 방산 시장은 단순 구매보다 ‘운용 능력 확보’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현지 생산차량 과 함께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현지 언론 및 위키피디아 자료를 바탕으로 정 리한 것이다. ‘버클리(Berkeley) 마피아’와 ‘아이비리그(Ivy League) 마피아’는 시대와 체제는 달 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구에서 훈련받은 엘리트들이었고 현지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 많은 한국 아버지들이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목격했 다. 그 결과 현지 한인들과 교분관계가 두 터웠다. 한국의 탄약과 전투복 등 방산제품 수입 과 한국의 마두라 유전 개발 참여에 큰 역할을 하 는 등 양국 군사 및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수하르토 정부의 실력자이자 2인자였던 베니 장 군은 1993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6선 연임을 앞두 고 현지 한인들과 교분관계가 두터워 한국의 탄약과 전투복 등 방산제품 수입하는데 기여했 다. 또 한국의 서부 마두라 유전 개발 참여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양국 군사 및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마침내 1981년 코데코에너지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뻐르따미나 간 체결된 서부 마두라 유전 공동개발 사업이 승인됐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 계 발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 1964년 인니여당 간사장 수비안또로수카르노 대통령양녀 사디킨여사 박정희대통령 예방8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의 답방이 있었는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금 융지원이 절실하게 되었다. 1990년에 가장 먼저 현지법인을 설립한 은행은 한국외환은행이다. 이 어 1992년 한일은행(현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 은행)이 현지법인을 설립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인도네시아는 이듬해 5월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다. 이후 민주 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개혁시대(Era Reformasi) 를 맞는다. B.J 하비비 현지에서 물량이 조달되는 대로 순 차적으로 전달하는 등 현대차 이미지 제고에 총력 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현대차 인도네시아법인은 2020년부터 팰리세이드 현지에서 장기간 일하며 살고 있는 거주자이자 생활인의 기록”이라며“이 책이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왜 인도네시아로 갔는 지에 대한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안내서가 되 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한인뉴스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실린 기사와 칼럼을 기초로 쓰였고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자원 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졌다. ★ 한반도 평화에 앞장 선 메가와티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대통령의 장녀이다. 1967년 수카르노의 권력을 빼앗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30여년간 철권 통 치에 강력히 도전하던 중 1996년 6월 정부와 군 부 지원을 받는 민주당(PDI 호주 호주를 꼽았다. 이에 따라 호혜의 3대협력 원칙을 제시하였 다. 나아가 이러한 비전과 원칙을 바탕으로 아세 안에 특화된 협력 추진을 위해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아세안 중시 외교기 조를 강조함과 아울러 아세안과의 전략적 혹은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통하는 고 재천 교장님은 목회자의 마음으로 희생과 사랑을 담아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해 오셨다.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고재천 교장님 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많은 다문 화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 가거나 혹은 홍보지를 넘어 재인도네시아 동포들의 진정한 '창(窓)'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동포 사회의 눈과 귀가 되어 현장의 목 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홍 편집장의 기억에 가장 깊이 박힌 사건은 단연 2020년 <인도네 시아한인 100년사> 제작 과정이었다. 그는 “편찬위원회 구성 부터 출간까지의 스토리”를 잊지 못할 경험으로 꼽았다. 이 대 규모 프로젝트는 ‘한인뉴스’가 단순한 언론 매체를 넘어 홍콩 화이트바이오(White Bio) 등 신산업이나 제철소 화장품(54.0%) 화학) 발전을 위한 산업단지를 운영하고 산업단지 간 연결성 강화 △고용의 70% 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 △ 빨라 빠링(Palapa Ring)을 통해 대규모 통신망 인프라 구축 △Go-jek 화학)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화합)이다. 루꾼은 인도네시아 정치와 경제 환경 환율 달러당 16 황지 영 회관 회사의 번영’은 한국남방개발㈜(KODECO/코데코)의 사훈이 다. 매우 독특한 사훈에는 코데코 창업자 최계월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 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에 폐허가 된 조국이 영광을 되찾고 회사의 번영”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투철한 애국심과 진정한 글로벌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선구자 ‘조국의 영광 후 견 네트워크 역시 함께 다층화된 것이다. 패트론의 지위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패트론은 대체로 기 능 조직의 수장 후 자는 투명성과 거버넌스에 대한 의구심 속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교훈과 과제 결국 두 집단 모두 엘리트 포획(elite capture)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버클리 마피아는 재벌과 군부 네트워크를 강화시켰고 후견주의를 이해하면 인도네시아가 보인다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선거나 정당 후원자 후자는 장기적 국가 포지 셔닝에 나선다. 사회적 반응도 다르다. 전자가 대중과 괴리된 엘리트라는 비판을 받았다면 훈련된 전투원과 무기를 확보를 위해 일 본군 출신 하사관과 사병들을 용병으로 중용했다. 이 과정에 조선인 35명가량이 인도네시아 ‘독립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8) 사진 1945.12.16. 재자바 조선인민회 반둥지 부.사진 [안승갑 회고록]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59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참전 한 조선인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양칠성 흩어진 동포 들을 잇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한인뉴스 그리고 한인회는 3만여 재인도네시아 한인 동포들의 소중한 한인회비로 운영되어야 하 며 진정으로 동포 사회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동포들의 삶의 질 향상과 권익 신장을 위한 정보 제공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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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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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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