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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개발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 <레스토랑의 꽃>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개 발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양국 간 실질협 력 분야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는 2012년 9월 아세안 사무국이 위치한 자카르타에 설립되어 한국과 아 세안(ASEAN <스포츠 하는 여자> 등 인도네시아 영화를 제작 <창조문화산업 협 력에 관한 양해각서> (편집자주) 한인뉴스는 2023년 9월 한국-인 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어판으로 발간한 책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Merajut Persahabatan dan Memupuk Kepercayaan”)의 한글 원본을 12회에 걸쳐 연 재합니다. 제1장 한국-인도네시아 외교 50년 2. 초창기(1973~1988년): 외교관계 수립부터 전 두환 정부까지 1) 협력과 신뢰의 토대 마련 1973년 9월 18일 000만명으로 집권 8년차에 도 대통령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 후인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를 맞았으나 000만명이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였고 000만톤을 돌파했다. 2022년 7월 서울에서 인 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 크라카타우스틸과 철강 생산능력 확대 및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 사업 참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조코 위도도 대 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체결했다. 포스코와 크라카 타우스틸은 향후 5년간 공동으로 35억 달러를 투 자해 크라카타우포스코(PT Krakatau-POSCO) 의 제 2고로와 냉연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크라 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이 합작 한 일관제철소로 수도인 자카르타 북서쪽으로 약 100Km 거리의 찔레곤(Cilegon)에 위치해 있다. 현재 연산 300만 톤 규모의 고로 1기와 후판공 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크라카타우스틸의 현물출 자를 통해 열연공장도 갖출 예정이다.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은 크라카타우포스코에 고로 1기 를 추가로 건설해 연간 조강량을 6백만 톤 이상으 로 대폭 확대하고 000억 달러 교역액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 가기로 하였다. 또한 <국방협력 협정> 000억달러 달성 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7년 11 월 9일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 는 데 합의했다.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와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개발도상국부터 현재까지 경공업 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 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 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 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 극적으로 협력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에 힘썼다. 2014년 11월 한국이 발족한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수임 000톤에 불과하지 만 000톤으로 증가할 전망 이다. 이러한 니켈 수요 증가세와 함께 한국의 인 도네시아산 니켈 제품 수입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 는 만큼 인도네시아 니켈 시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025 명보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 현지 체 류자들은 1998년 5월 폭동 이전에 12만여 명이나 체류했지만 이후 2만 명 규모로 줄면서 091명에서 2019년에 22 100년간 함께 나아갈 여정에 있어서도 든든한 반석이 될 것으로 믿 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년 9월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한-인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제조 11월에는 마스터플 랜 협력을 위한 경제협력사무국이 인도네시아에 설치되었다. ★ ‘무궁화 대훈장’ 수훈 유도요노 대통령 2014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임기간 (2004∼2014년) 10년 동안 한-인니 관계 발전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 하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 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 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MP3EI)을 수립하고 153명(2021년 대비 45% 이상 증가)으로 늘 었다. 인도네시아 재외동포가 전세계 재외동포에 서 차지하는 비중은 4.83%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은 재외동포라 부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한인 또는 한국인이라 부른다. 한 사람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는 것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데 1952년 2월 9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해 뻐땀부 란 공동묘지에 묻혔다. 김만수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는 한국 친선방문단을 거부할 만큼 우리와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1962년 2월 도쿄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해 막혔던 한-인니 외교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60년대 초 이리안자야(서파푸아)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일본 정 부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1968년 한국외환은행( 현 KEB하나은행) 자카르타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1980년대 후반은 제2차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 에 진출하는 시기다. 1988년부터 한국 신발과 봉 제 기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인도네시아에 쏟 아져 들어오자 1973년 8월에는 바사라 (Basarah) 인도네시아 공군참모총장이 답방했 다. 양국 군 고위급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 라 1974년에는 무관이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1977년 11월 30일에는 최각규 농수산부 장관과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양국 정부를 대표하여 쌀 대여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는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쌀을 지원하 여 줄 것을 한국 정부에 긴급히 요청하였기 때문이 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식량부족 해소를 위해 쌀 7만 톤을 대여하기로 신속히 결정하였고 1981년 코데코와 뻐르따 미나와의 서마두라유전 공동개발은 ‘한국 최초 해외유전개발 사업’이다. 인도네시아는 1992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소를 개소한 국가로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서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 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1985년 6월 에는 인도네시아 민속예술단의 서울공연이 있었 고 1989년 1월에 ‘아시아·태 평양 경제협력’ 즉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각료회의가 창설되었고 1993년부터는 정상회의로 발전한다. 1989년 11월 2일 최호중 외무장관이 아세안사 무국에서 알리 알라따스(Ali Alatas)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당시 아세안 상임위원장)과 한-아세안 협의체제 출범을 위한 합의각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은 통상·투자·관광 부문의 대화상대국으로 지정되었고 200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인도네 시아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 다. 1980년대 초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한인 슈 퍼마켓은 무궁화를 시작으로 도라지 2002년에는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했 다. 또 2011년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는 절친한 사이였다. 메가와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2005년 이후 제3차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투자 러시가 이어진다. 시의적절하게 KEB하나은행은 2007년 현지 은행을 인수해 현지법인을 설립한 다. 신한은행은 2016년에 신한인도네시아은행 2009년 대권에 다시 도전해 연임에 성공했다. 무궁화 대훈장 수여(2014. 11.19)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7 5) 박근혜 대통령의 인니 국빈 방문: 상생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미래 동반자 관계 구축 박근혜 대통령은 발리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 이 ASEAN+3/EAS 정상회의 참석 직후 2013년 10월 10~12일 기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하였다. 방문 둘째날에 대사관 신청사 준공식 제 막식과 기념식수 200개였으나 200만명 에 달하는 실업자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 며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집권당 총재로서 풍부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1999년부터 지난 다섯 차 례에 걸친 총선에서 대중적인 지지자들은 메가와 티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준 만큼 그는 투쟁민 주당을 결집하는 핵심인물이다. 포퓰리센터(Populi Center) 아디 아비딘 연구원 은 메가와티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에 대 해 2017년 목포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과 가깝게 지내왔다. (끝) 2002년 3월 30일. 김대중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통령 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메가와티 대통령은 먼저 북한 방문하고 이 어 남한을 방문하며 외교중재자 역할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2017년에 각각 15 2020년 1 2020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KB부코핀은행의 지분율을 67%까지 확대하며 경 영권을 확보했다. 최근 수년간 동안 한국계 은행이 앞다퉈 인도네 시아에 진출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출 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마진률이 한국보다 3배 정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중은행의 예대 마진률은 약 1.17%p에 불과한 반면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 1 2021년 기준 49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 9월 한국타이어 는 서부자바주 브까시 지역에 있는 공단에 총 3억 53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해 1단계 완공 한 인도네시아 공장은 승용차용 타이어 2023년 기준 연간 180만 톤 의 니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력은 전기 차 배터리 산업 등 니켈 수요 증가와 맞물려 앞으 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니켈 원광 수출 금지는 인도네시아 자원을 현지 에서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경제 성장을 촉 진하기 위해 도입됐다. 2014년 처음 시행된 수 출 금지 정책은 2020년 본격화됐으며 2024 박재한 한인회장 신년사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가족 여러분 2024년 3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제22대 국회의원 재외선거 가 실시됩니다. 동포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선량을 뽑는 소중한 선 거에 여러분들의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여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2024년에는 양국이 명실상부한 ‘특별전략적 동반자’ 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2045년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경 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및 적극적인 경제·사회 발전 정책을 추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30년에는 18만 1 27개 문단으로 구성된 이번 성명은 서문에서 양국 정상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 계’격상 합의를 명시하면서 ①전략적 협력 ②실 질협력 ③인적교류 ④지역·글로벌 협력 분야별 로 협력 내용을 언급했다. 두 정상은 또 장관급 공 동위원회·차관급 전략대화 등을 통해 양국 간 전 략적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져 온 데 만족감을 표하 며 외교·국방 분야에서 2+2 회의 등 신규 협의체 설치를 모색하는 한편 방산 분야 협력이 상호 신뢰 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표상임을 재확인하면서 역량 강화와 연구·개발·공동생산을 더욱 강조 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지속 증진하기로 했다. 아울 러 양국은 철강·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진행 중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297명까지 줄었다가 2년 임기의 의장에 취임했다. 한편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2년 11월 8일 발리 민주주의포럼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이 명박 대통령에게 양국 간 관계 증진에 대한 공로 로 인도네시아 최고 훈장인 ‘빈땅 아디뿌르나’ 훈장(Bintang Republik Indonesia Adipurna)을 수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4년에 인도네시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첫 번째 대통령이다. 1949년 동부 자 바주 빠찟딴 지역에서 퇴역 육군 준위의 아들로 태 어나 1973년 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정계에 진 출하면서 군을 떠날 때 4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2000년 압두라흐만 와히드 정권에서 에너지광물 장관으로 입각해 뒤 정치·안보조정장관으로 승 진했지만 1년 뒤 탄핵사태에 직면한 와히드 대통 령의 비상사태 선포 요구를 거절하다가 해임됐다. 2004년 메가와티 정부에서 정치·안보조정장관 으로 재임명됐지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다시 물러 났다. 이후 그는 민주당을 창당해 2004년 대선에 서 출마해 인도네시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 박근혜 대통령 2년 후인 1991년에 완전 대화상대국 으로 격상되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2년 9월 2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다시 만났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이 가장 심각한 문제 라고 지적하고 2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현지 총자산은 163억 달러(약 21조 5천억원)에 이른다. 2010년 전후에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의 인도 네시아 투자가 이어진다. 롯데마트가 2008년 10 월에 인도네시아 마크로(Makro) 19개점을 인수 3. 자본·기술집약산업 진출 시기: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1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하며 우리나라 유통업체로서는 최초로 인도네시 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0년 8월 직접 투 자 방식을 통해 수도 자카르타에 간다리아 시티점 (Gandaria City)을 오픈했고 2월 14일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2차 3. 발전기(1988~2002년): 노태우 정부부터 김 대중 정부까지 1) 협력의 에너지 확대와 성과의 축적 이 시기에는 양국 간 실질 협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정비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 하기 위한 발전 동력이 만들어졌으며 30%씩 투자해 설립한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연간 생산능력 300만톤 규모의 동남아 최초 일관 제철소를 완공해 가동한지 4년만에 누적 판매량 1 300만 명의 아동·임산부 등에게 무상급식 프라보워 정부 335개 와 13 36%를 득표해 힘겹게 당선된다. 부패가 만 연한 행정을 뜯어고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불시 현장방문(blusukan)을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개 선방안을 찾아 행정개혁을 단행했다. 시내 중심가 도로를 장악해 교통과 미관을 해치는 노점상들과 수십 차례 면담을 통해 새 유통센터로 이전시키는 등 대화와 설득을 통한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조코위는 2012 년에 자카르타 시장에 당선돼 특유의 발로 뛰는 지도자로서 종횡무진하면서 큰 성과를 냈다. 히로시마 G7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2023.05.21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53 이어 대중적인 인기가 급상승한 조코위는 2014 년에는 투쟁민주당(PDIP) 대통령 후보가 되어 명 문가 출신인 쁘라보워 수비안또 그린드라당 총재 와 맞붙어 대권을 거머쥔다. 조코위 대통령은 전 국을 누비며 민생을 챙기면서 높은 인기를 얻어 2019년에 쁘라보워 후보와 다시 격돌해 연임에 성공한다. 조코위 대통령의 국정활동을 알리는 소셜미디어 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의 팔로워는 각각 4 3월 30일 김 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와 한반 도 및 동아시아 등 지역정세 3차 및 4차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 진행하면서 4.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노무현 정 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 전략적 동반자 관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동행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기간에 한국 과 인도네시아 양국 외교사는‘전략적 동반자 관 계’로의 격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양국은 자유민 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동 반자라는 인식 하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크게 증대 시킨다. 200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이 후 양국 간 협력이 정치·경제·방산·문화·인 적교류·국제무대 등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매년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여 협력관계가 급속히 증진되었다. 2015년까지의 무역액 500억 달러 달성 400개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인 한 국기업이 투자한 유통기업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008년 말 대형마트 ‘마크로’ 19개 점을 인수 하며 국내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시 장에 진출했다. 2019년 12월 롯데마트는 중부자 바주 뜨갈 지역에 인도네시아 50호점을 열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 유통업계 역시 온라인 중 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10대 도시 대형 점 포와 중소 도시 거점 점포를 연결해 전국적인 물 류 네트워크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3년 6월 자카르타 메가꾸닝안 지역의 복합단 지인 ‘찌뿌뜨라 월드 자카르타‘에 복합쇼핑몰 인 ‘롯데쇼핑 에비뉴점‘을 오픈했다. 유통산업에서 현지 한인이 운영하는 유통기업과 슈퍼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유통기업들은 먼 타국에서 한인들의 식생활을 책임져 주었을 뿐 만 아니라 5. 제2차 성숙기(2017년 이후): 문재인·윤석열 정부 그리고 미래 1)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과 CEPA 발효 제2차 성숙기에는 한-인니 관계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EPA)을 발효하면서 양국은 50년을 넘어 영원 한 미래 동반자로 발돋움하는 시기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7년 11월 9일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 의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자카르타에서 60㎞ 떨어 진 대통령궁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 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한-인니 공동번영과 평 화를 위한 공동비전성명(ROK-ROI Joint Vision Statement for Co-Prosperity and Peace)’을 채택했다. 총 4개 분야 500만명과 1 500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운다. 1961년 8월 9일 유형배는 자카르타 특별법원에 서 정식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북한 출 신인 유형배는 수카르노 정권의 2인자였던 수반드 리고 외무상의 평양 방문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는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을 자주 왕래 하며 사업을 키운다. 유형배는 1967년 이슬람 신 자가 되고 6)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인 조직 600명에 달 했다. 그들은 일본군과 분리해서 귀국할 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인 공동체를 만들었 다. 한국은 광복 후 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과 달 리 귀국선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7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금융사들이 난립해 있다. 더욱이 인 도네시아 현지 은행들의 독점 체제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엄격한 감독은 외국계 은행 에게는 어려운 여건이다. 한국계 은행들은 현지 진출 초기에 현지에 진출 한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금융 영업에 초 점을 맞췄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 은행인 빈땅마눙갈은행(PT Bank Bintang Manunggal)을 인수를 시작으로 이후에 진출한 한국 계 은행들도 인수·합병을 통해 현지화 전략으로 리테일(소매) 영업을 확대하는 등 변신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3 최근 인도네시아 금융산업에서 디지털 뱅킹을 확 대되면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에서 비대면·디 지털 기반의 금융서비스 등 첨단 금융서비스를 선 보이고 있다. 기타 리스업으로 728 만 달러 상당의 니켈 제품을 수입했으며 755 개와 5 774명으로 줄었고 9개 증권사 등 28개 한국 금융사가 진출했 다. 이들은 그동안 약 27억 달러(약 3조5천700 억원)를 투자했으며 APEC 정상회의(11월 Agus Harimurti Yudhoyono) 5. 식량조정부 줄끼플리 하산 장관 (Menko Pangan Airlangga Hartarto) 3. 인력개발문화조정부 쁘라띡노 장관 (Menko Pembangunan Manusia dan Kebudaya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Budi Gunawan) 2. 경제조정부 아이르랑가 하르따르또 장관 (Menko Perekonomian HAM IBK인도네시아은행 IBK인도네시아은행 등은 각각 현지 은행 두 곳을 인수·합병(M&A) 하면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국민은행은 2018 년 7월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 주가 됐고 ICT(정보통신기술) 등 투자와 협력을 고도화시 켜 나가고 있다. 또 한류에 대한 인식이 인도네시 아 국민 저변으로 확산되면서 양국 간 문화에 대 한 이해와 교류가 심화됐다. 2006년 4월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하산 위라유다(Hasan Wirayuda)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IT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존재감 을 보여주고 있다. 한인 진출 초기부터 자카르타에는 한국학교 ITC Imigrasi dan Pemasyarakatan Yusril Ihza Mahendra) 24. 공동체역량강화조정부 무라이민 이스깐다 르 장관 (Menko Pemberdayaan Masyarakat JIKS)을 위해 당시로써는 거 금인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최 회장의 유전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인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 표는 2020년 1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큰 금액의 장학금을 JIKS에 기부하고 Jaksa Agung) 21. 국가정보원 헤린드라 원장 (Herindra K-마트 등이 있으며 KB 부코핀은행 등 순차적으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 시장에 진출해 소매금융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 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로서는 처음으로 한화생명 (Hanwha Life Insurance)이 2013년 현지법인 을 설립해 영업하고 있다. 한국 증권사도 속속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NH 투자증권이 지난 2009년 현지 증권사와의 합작 사 형태로 처음 진출한 이후 키움증권과 미래에 셋대우 KF-21 전투기 공동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최초 의 국가가 인도네시아이다.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7 냉전시대인 1973년에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중 남북한이 대사관을 동시에 상주시킨 첫번째 국가이다.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도네시아인 의 한국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KOCHAM Together!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이강현 2024 이강현 코참회장신년사 18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2024년 희망찬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Kepala BIN) 22. 대통령소통실 하산 나스비 (Hasan Nasbi Kepala Kantor komunikasi Presiden) 23. 법무 인권이민부 유스릴 이자 마헨드라 장관 (Menko Hukum Kepala Staf Kepresidenan) 53. 내각사무처 떼디 인드라 위자야 처장 (Teddy Indra Wijaya Mendagri) 7. 법무부 수쁘라트만 안디 아그따스 장관 (Supratman Andi Agtas Mensesneg) 18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26. 외교부 수기오노 장관 (Sugiono Menteri Agama) 29. 인권부 나딸리우스 삐가이 장관 (Natalius Pigai Menteri Agraria dan Tata Ruang/ Kepala BPN) 44. 국가개발기획부 라흐맛 빰부디 장관 (Rahmat Pambudi Menteri Badan Usaha Milik Negara) 17. 투자전방산업 및 투자조정청장 로산 루슬라 니 장관 (Rosan Roeslani Menteri Desa dan Pembangunan Daerah Tertinggal) 40. 이주부 이프띠따 수르야나가라 장관 (Iftitah Suryanagara Menteri Ekonomi Kreatif/Kepala Badan Ekonomi Kreatif) 51. 아동환경여성역량강화부 아리파뚤 코이리 파 우지 (Arifatul Choiri Fauzi Menteri Energi dan Sumber Daya Mineral) 13. 농업부 안디 암란 술라이만 장관 (Andi Amran Sulaiman Menteri Pertanian) 14. 산림부 라자 줄리 안또니 장관 (Raja Juli Antoni Menteri HAM) 30. 이민교정부 아구스 안드리안또 장관 (Agus Andrianto Menteri Hukum) 8. 재무부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띠 장관 (Sri Mulyani Indrawati Menteri Imigrasi dan Pemasyarakatan) 31. 초등중등교육부 압둘 무띠 장관 (Abdul Muti Menteri Investasi dan /Kepala BKPM) 18. 협동조합부 부디 아리 스띠아디 장관 (Budi Arie Setiadi Menteri Kebudayaan) 34. 인력부 야시에를리 장관 (Yassierli Menteri Kehutanan) 15. 해양수산부 삭띠 와유 뜨렝고노 장관 (Sakti Wahyu Trenggono Menteri Kelautan dan Perikanan) 16. 국영기업부 에릭 토히르 장관 (Erick Thohir Menteri Kependudukan dan Pembangunan Keluarga) 47. 환경부 하닙 파이솔 장관 (Hanif Faisol Nurrofiq Menteri Kesehatan) 10. 사회부 사이풀라 유숩 장관 (Saifullah Yusuf Menteri Ketenagakerjaan) 35. 이주노동자보호부 압둘 까디르 까르딩 장관 (Abdul Kadir Karding Menteri Keuangan) 9. 보건부 부디 구나디 장관 (Budi Gunadi Sadikin Menteri Komunikasi dan Digital) 43. 토지공간기획부 누스론 와히드 장관 (Nusron Wahid Menteri Koperasi) 19. 청년체육부 디또 아리오떼조 장관 (Dito Ariotedjo Menteri Lingkungan Hidup/Kepala Badan Pengendalian Lingkungan Hidup) 48. 중소마이크로기업부 마만 압두라만 장관 (Maman Abdurrahman Menteri Luar Negeri) 27. 국방부 사프리 삼수딘 장관 (Safrie Samsoedin Menteri Pariwisata) 50. 창조경제부 뚜꾸 리프끼 하르샤 장관 (Teuku Rifki Harsya Menteri Pekerjaan Umum) 38. 주택거주지역부 마르아르아르 시라잇 장관 (Maruarar Sirait Menteri Pemberdayaaan Perempuan dan Perlindungan Anak) 52. 대통령보좌처 뿌뜨란또 처장 (AM Putranto Menteri Pemuda dan Olahraga 20. 부르하누딘 검찰총장 (ST Burhanudin Menteri Pendayagunaan Aparatur Negara dan Reformasi Birokrasi) 46. 가족개발부 위하지 장관 (Wihaji Menteri Pendidikan Dasar dan Menengah) 32. 고등교육과학기술부 사뜨리오 수만뜨리 (Satrio Sumantri Brodjonegoro Menteri Pendidikan Tinggi Menteri Perdagangan) 37. 공공사업부 도디 항고도 장관 (Dodi Hanggodo Menteri Perencanaan Pembangunan Nasional/Kepala Bappenas) 45. 행정역량강화관료개혁부 리니 위디안띠니 (Rini Widyantini Menteri Perhubungan) 42. 디지털통신부 무띠아 하피즈 장관 (Meutya Hafidz Menteri Perindustrian) 12. 에너지광물부 바흐릴 라하달리아 장관 (Bahlil Lahadalia Menteri Perlindungan Pekerja Migran Indonesia/Kepala BPNTKI) 36. 무역부 부디 산또소 장관 (Budi Santoso Menteri Pertahanan) 28. 종교부 나자루딘 우마르 장관 (Nazaruddin Umar Menteri Perumahan dan Kawasan Pemukiman) 39. 오지마을건설부 얀드리 수산또 장관 (Yandri Susanto Menteri Sosial) 11. 산업부 아구스 구미왕 까르따사스미따 장 관 (Agus Gumiwang Kartasasmita Menteri Transmigrasi) 41. 교통부 도디 쁘르와간디 장관 (Dody Purwagandhi Menteri Usaha Mikro Kecil dan Menengah) 49. 관광부 위디안띠 푸트리장관 (Widyanti Putri Muhaimin Iskandar) 25. 국가사무부 쁘라스띠요 장관 (Prasetyo Hadi NGO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였다. 인도네시아 전역에는 코이 카가 파견한 한국어 OK뱅크인도네시아 OK저축은행은 2019년에 OK뱅크인도네시아 그 리고 IBK은행은 2019년에 Pembela Tanah Air)에 자원하면서 군인으로 성장한다. 1965년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인 9·30사태 (G30S)를 당시 수하르토와 함께 진압하면서 수 하르토 정권의 1등 공신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 기도 했으나 Pratikno) 4. 인프라지역개발조정부 아구스 하리무르띠 유 도요노 장관 (Menko Infrastruktur dan Pembangunan Kewilayahan Sains dan Teknologi) 33. 문화부 파들리 존 장관 (Fadli Zon Sekretaris Kabinet)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19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니켈 매장국으로 YANG CHIL-SUNG Zulkifli Hasan) 6. 내무부 띠또 까르나비안 장관 (Tito Karnavian [특집]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2 1) 중화학공업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의 주파트너로 참여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얼마 앞둔 11월 ‘한-인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 고 그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 빈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국빈 방문 중에 원자력협력협정과 관광협력협 정이 양국 대통령의 임석 하에 서명되었고 “한국 기업은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왔나?”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대한민국은 1960년대 외환보유고가 1억 달러 남짓할 정도로 국가재정이 형편없었던 시 기에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해외직접투자(FDI)를 과감하게 실행했다. 해외직접투자를 결 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왜 인도네시아를 선택했을까? 해외직접투자를 하려면 기업이 갖고 있는 인력 가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강점이 있지 만 생산 방식은 사람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제조업 강 국의 꿈을 이루려면 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뛰어넘어 4차산업 기술로 직행을 추진하는 가운데 갈룽궁 산속 게릴라본부 등에서 벌어 진 전투에서 활약했다. 반둥과 족자카르타를 잇 는 철도와 도로를 공격하고 감가상각 가속 감독했다. 이 중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인 도네시아 영화 최초로 키스신을 선보여서 사회 전 반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야기했다. 허영은 일제 말기 조선에서 총독부의 국책 영화 <너와 나>(1941)를 찍으면서 맹렬한 친일영화인 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 건너가서는 일본군 휘하의 포로수 용소에서 살아가는 호주군 포로들이 호화로운 하 루 일과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주는 <콜링 오스트 레일리아!>라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 사진 허영 [출처: Id Film Center]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61 제로 호주군 포로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고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가정과 직장에 건강과 기쁨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한인사회의 다양한 행사와 한인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크고 작은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 주신 한인동포 여러분께 감 사드립니다. 한인회는 공동체 모두의 이해와 유익을 위한 과제들을 올해도 변함없이 소통 과 협의로 풀어갈 것 입니다. 지난 202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한인회에서는 양국 국민들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와 체육행사를 개최하여 함께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축구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기업인을 비롯한 존경하는 모 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전세계적으로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따른 아세안 핵심 국가이 자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경제·외교 다변화를 추진할 중요한 파트너국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한국 기업 의 진출과 기업인들 방문 러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같 은 해 아세안 국민 27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20년초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2022년 초반까 지 각종 회의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시립무용단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부채춤과 살풀이 공연을 선보였다.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결연 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서울-자카르타 이외에도 발리주-제주특별자치도 같은 해 12월에 첫 선적이 이루어졌다. 쌀을 수입하던 한국이 외국으로 쌀을 대여한 것은 건국 이래 처 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영 농기술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었고 개발 조사 경 제 경남기업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였다. 동 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한 자카르타 한국학교도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1973년 9월 18일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제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세워 잘살아 보겠다는 용기를 낼 무렵인 1963년 최 회장은 한국남방개발을 설립해 우여곡절 끝에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 해외투자 기업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이 5천 달러를 밑돌았을 때 경제안보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협력을 더 증진하겠다고 밝혔다.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이 많은 인도네시아가 한국의 공급망 안정화를 돕고 경제와 비즈니스 및 사회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끝) 경제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경제협력 등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 을 포함하게 된다. 2) 문재인 대통령 경트럭용 타이어 등을 연간 600만개를 생 산할 수 있는 최신 제조 설비를 갖췄다. 2013년 12월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업 체 크라카타우스틸(PT Krakatau Steel)이 각각 70%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점 령한 후 조선인들을 보냈다. 이들은 일본군 포로 감시원과 군위안부 골프 3종목의 경기를 겨루는 <한-인도네시아 우정의 레이 스>를 통해 한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서로를 응원하며 친밀감을 형성하였고 공공기관 공동기자회견 과실송금 보장 등 투자 안정 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투자법은 선언적인 내용에 그치지 않고 관세 면제 교내 나래홀 강당 앞에 최계월 회장 흉상을 설치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안 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나가면 산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 후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고인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한-인니 관계가 지금 과 같이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최 회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에 서 민간소비가 55%가량 차지할 만큼 탄탄한 내수 시장은 유통 서비스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 라 국방·방산 등 여러 방면에서 후속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 령은 양국이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고 경제 네트워크를 고도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 제조기술 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 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이 ‘메 이킹 인도네시아 4.0’ 전략에 최적의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또 디지털 교육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맡았던 베니 장군은 수하르토 정부의 군부 실세로 한국기업을 후원했으며 국방장관 국재만 등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부자바 가룻 지역에서 활동한 민병대 빵에란 빠빡(Pangeran Papak) 부대에 자원한다. 이들이 민병대에 가입 한 시점은 194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빵에란 빠빡 부대’에는 조선인 4~5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칠성 국제무대에서의 협 력 방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의사 전달이 있었다. 또 정보기술 분야에서 협력 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군만두 귀환 준비 등 생존을 위 한 활동과 함께 태극기 게양 그간 공동연구가 이 루어진 한-인니 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국내 절차를 진행키로 합의하였 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양국이 보다 심화된 양자 간 FTA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 게 된 것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 세안 산림협력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의 산림 녹 화 성공 경험을 아세안에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되 어 한국 산림정책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40여년 이상의 공고한 한-인니 산림협력 파트너 십이 동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 한국 그는 그의 아내를 내세워 현 지 파트너가 된다. 1962년 아시안게임이 자카르타에서 열리자 그들을 네덜란드 의 은인」이라 불렀다. 종전 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네덜란드인 칸나백(Kannabeg) 백작은 김만수의 이런 활동을 증언했고 글로벌 기업가정신 금융 급 격한 임금 상승에 따라 봉제 기념식수 및 국빈만찬의 일정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인니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의 연 내 타결에 합의하고 2015년 500억 달러 기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 슈들에 있어서도 아세안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다방면 에 걸쳐 아세안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 다. 아세안과의 FTA는 2007년에 발효돼 상품 기후변화와 환경 김 만수는 항상 자결용 권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네 덜란드인들은 김만수와 그의 동료들의 인도주의 적 배려 덕분에 생명을 건졌고 김대중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압두라흐 만 와히드 대통령 김만수는 교민 대표로 참석해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는 한 인사회 형성기에 인도네시아를 드나드는 많은 한 국 사업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한인사회의 맏형’역을 자처했다. 그는 1975년 자카르타에 서 사망한다. 유형배 김영삼 대통 령 나와 또 공동체를 위한 작 은 일부터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귀한 시절을 나와 함께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각자의 목표를 향하는 그 과정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올 한 해 우리 동포사회에는 웃음과 여유 그리고 미담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2024년에도 한인 동포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남북한 유엔 가입의 조속한 실현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태평양지역 내 개발도상국 간 협 력 증진의 표시로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내에 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하는데 협력할 의향이 있음 을 표명했으며 네덜란드 정부는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김만수는 1947년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인도 네시아로 돌아가서 1955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과 재혼한다. 1973년 한국 기업인 미원 인도 네시아가 진출하자 네덜란드의 은인 김만수는 서부자바주 반둥 근교 수까미스낀 (Sukamiskin)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일했다. 그와 동료인 조남훈 등은 네덜란드 포로들에게 지정된 음식 외에 물품을 공급해 주 고 비밀리에 바깥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행 위가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업 전문가 뉴서울 니 켈 원광 수출 금지 정책을 통해 자국의 산업을 보 호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 했다고 평가된다. 2009년 신광업법을 기반으로 2020년 본격 시행된 이 정책은 인도네시아의 경 제적 니켈 등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은 주요 자원을 수입 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적인 경제 취약성을 갖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 립경제체제를 구축해야하는 당면과제를 갖고 있다. 1962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산업화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이다. 특히 니켈 매트와 같은 특정 제품군에서 인 도네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한국 배터리 산업의 성장에 따라 니켈 수요 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다량의 무기를 탈취 했다. 네덜란드 군의 포위를 저지하기 위해 찌마 눅(Cimanuk) 다리를 파괴했을 정도로 폭파 전문 가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군은 1948년 11월 기습 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양칠성과 아오키 다방면에 서 양국 간 협력 관계가 역동적으로 발전하였다. 정상외교 측면에서 노태우 대통령 다음날 저녁에 새 내각을 발표했다. 새 내각 의 이름은 인도네시아 국기 색상에서 착안해 “ 메라 뿌띠(Merah Putih 당시 인니동화) 등 한국 기업의 제1차 인도네시아 투자가 본격적으 로 이루어짐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교역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융 지원과 시장 조사의 필요성이 커지자 당시 한국 남방개발)와 코린도(Korindo 대림산업 대부분 이 니켈 매트(HS Code 7501)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대인도네시아 니켈 제품의 전체 수입 비중 은 낮으나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정책 개혁 방향성과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대한 차기 정부의 의지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승적 기업관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한 도를 3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는 기본약정을 인도 네시아 정부와 체결하였다. 양국 간 실질협력은 국방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 루어져 대한민국 국민이 이주를 시작한 지는 50 여 년이 됐다. 외교부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재외 동포 수는 2017년에 31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가 수 교하고 독립 후에는 우스마르 이스마일 영화감독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큰 족 적을 남긴다. 반둥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김만 수ㆍ조남훈 등은 일제에 대한 간접 저항의 하나로 포로들의 외부연락을 담당하였으며 동 부자바주-경상남도 등 2022년 현재 28개 지자체 가 자매(우호) 결연을 맺고 있으며 동아시아 경 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 동포사 회 동포여 러분의 가정과 직장마다 기쁨과 만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 박재한 14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디지 털 디지털 금 융 등 디지털 경제 분야와 원전 라오스 러 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Go Global 만족할 만한 결과와 보완해야 할 과제도 도 출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행사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말레 이시아 말레이시아 매년 지방자치단 체 간의 경제. 문화 교류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 사르워 에디 초대 주한 대사… 사위 유도요노 대통령과 아니 여사 1974년 4월 18일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 Wobowo)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임 명돼 4년간 근무한다. 중부자바주 뿌르워레조에 서 태어난 사르워 에디 대사(1925~1989)는 네 덜란드 강점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침략한 일본군이 설립한 조국의용 대(PETA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 령의 방한이 이루어짐으로써 이전에 비해 정상 간 상호방문이 활발해졌고 이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1987년 이후 한국 내 민주화와 노조운동 격화 메가와티와 투쟁민주당이 △헌법 질서의 준수 △세속주의 명부 작성 목재 무 역·투자 문화·예술단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원유 확보와 새로운 유전 개발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 통령의 최측근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인맥을 활용해 서부 마두라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성 사시켰다. 베니 장군은1969~1973년 기간에 주한 총영사로 근무했던 지한파이다. 앞서 최 회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 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마켓은 급증하는 추세다. 인 도네시아 1위와 2위를 달리는 미니마켓인 인도마 렛과 알파마트는 2011년에 매장수가 각각 5 미래세대인 한인 학생들이 참여하는 역사탐방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인동포 여러분! 여러 측면으로 새해에도 체감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치열하고 복잡할수록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미얀 마 미용 미원인도네시아 민간기업 간 MOU 등도 체결되었다. 민간 조림투자 50만ha 조 성을 합의하여 향후 한국 기업의 임업 부문 진출 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선언에 따라서 2007년 4 월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단 장으로 한 20여명의 민관합동 경제사절단이 자카 르타를 방문했다. 경제사절단은 에너지·자원 민간인 신분의 보도요원 민회) 는 1945년 9월 1일 설립돼 구성원들이 모두 귀 국선을 타게 되면서 1946년 4월 13일 해산한다. 자카르타 꼬따(Kota) 지역에 본부를 두고 빠사르 스넨(Pasar Senen) 주택가에 주택을 수십 채 임 차하여 극장 바흐릴 라달리 아 에너지광물자원장관 박정희 대통령이 오피스빌딩과 아파트 등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던 여의도에 공관용 부지를 분양해주어 지금은 엄청난 자산가치를 지니고 있 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르워 에디 대사를 청와대 로 불러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의 7남매 가운데 셋째 딸인 크 리스티 아니(Kristiani Herawati) 여사는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힌 지한 파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가 한국에 근 무하던 시기에 아니 여사는 당시 군인이었던 수 실로 밤방 유도요노와 결혼했다. 인도네시아 최 초 직선제로 유도요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국 과 인도네시아 관계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방위산 업에 이르기까지 양국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가 까웠다. 2019년 별세한 아니 여사는 1973년 자카르타 소 재 인도네시아기독교대학교(UKI) 의과대학에 입 학했으나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가 근 무한 한국에서 생활했다. 이후 1998년 인도네시 아 개방대학교(Universitas Terbuka) 정치학과 를 졸업했다. 아니 여사가 부모와 함께 서울 생활 을 할 당시 유도요노 전 대통령이 아니 여사를 만 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결혼 전 연애 이야 기도 큰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 장남 아구스 하리무르띠 유도요 노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해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반둥조선인 회 발레인더 발전소 건 설 발전해왔는지를 소개한다. 1920년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 장윤원부터 최 근 건너오는 한국인까지 한인의 삶은 한국과 인도 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조건에 의존하며 방산 등 기술· 자본집약산업 투자 증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한 인도네시아 에 투자한 한국 기업은 더욱 안정적이고 다양한 산 업으로 확장한다. 2000년 이후 봉제업체가 양적 으로 다시 증가하고 금융 방위산업 등 8개 분과별로 회 의를 가졌고 배드민턴 배터리 번영의 3대 비전 과 베트남 보고르) 참석 직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해 수하르토 대통 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 해결 관련 협조 보다 양질의 영사 서비스가 동포 여러분들게 제공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제 부 패방지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및 산림투자 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부가가치세 면제 부대장 친척 주아나(Juana)를 생포한다. 이 듬해 8월 10일(5월 말 설도 있다) 양칠성은 일본 인 동료 두 명과 함께 가룻 시내 공동묘지에서 공 개 총살된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린체 (Lience Wenas)를 만나서 에디 자완(Eddy Jawan)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1975년 다후란 등 ‘빵에란 빠빡 부대’ 동료 였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 청원하면서 양칠성과 아오키 북한과 관련 한 내 경험이 도움이 되면 기쁘다고 밝혔고 빨간색과 흰색) 내각으 로 명명했다. 메라 뿌띠 내각은 장관과 정부 기관장 등을 합치 면 총 109명에 이르는 대규모 내각이다. 이번 내 각 인원 수는 인도네시아 사상 최대 규모다. 앞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 정부 당시의 장관은 34명이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인 도네시아가 크고 다양한 국가임을 고려하면 대규 모 연립정부 구성이 필요하다면서 정부 부처와 장 관직을 늘리겠다는 뜻을 나타내왔다. 그는 여러 기존 부처 분할 등의 방식으로 식량 조정부 사회·문화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회원 국들간 통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역분쟁 이나 금융위기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로 협력 관계를 넓혀 나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3)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55 한국 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설립 (1987년 6월) 이후 제1호 유상원조 사업이 인 도네시아 빠당(Padang)시 우회도로 건설사업 (1987년 12월)으로 시작된다. 이어 1992년 9월 1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 소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개설됨으로써 무상 원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KOICA 사무소는 한국 초청연수 산업기술협력 산업장관 삼성물산 등 종 합상사가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정관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니 무르다니는 1971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3 년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한국인과 친근하게 지낸 것으로 알 려져 있다.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리대사로 근 무했다. 1974년 1월에 본국으로 귀임해서는 국방부 정보국장 새 내각 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 비스 협정에 이어 2009년 투자 협정이 발효되었 다. 한-아세안 관계는 2010년 ‘전략적 동반자관 계’로 격상되었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의 교역대상 지역이자 건설 수주 대상 지역이며 서부자바주 가룻 독립영웅묘지에 안장된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우쓰미 아이코(內海愛 子)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부부가 석유·가스·석탄 개발 석유와 목 재 석유화학 석탄 선교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한인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은 봉 제 설립 이후 지난 50여년 간 정치·안보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것 으로 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인 동포 사회를 만든 우리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올해도 슬기롭게 잘 이겨 내리라 믿 습니다. 2024년은 청룡의 해입니다. 청룡은 가정의 복을 기원하고 재앙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고귀한 존 재라고 합니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올 한 해도 교민 분들 가정과 직장에 복이 넘치는 기쁜 일 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린도 그룹 회장 승은호 소득세 감면 소비자들은 전통시장보다는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현대적인 유통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9년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현대 적인 유통 채널 가운데 하이퍼마켓과 미니마켓( 편의점)은 확산 추세인 반면 수디르만 길을 함께 달리며 휴지를 줍는 <그린 런> 플로깅 행사를 통해 인도 네시아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3 ‘한-인니수교 50주년 기념음악회’에서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정서로 하 나 됨을 느꼈습니다. 또한 인니어판 한-인니수교 50주년 기념책자 『Merajut Persahabatan Memupuk Kepercayaan(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한· 인니 수교 50년사)』을 출간하여 한·인니 교류의 역사와 인도네시아 한인들 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50년을 향한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정식 외교관계의 시작인 1973년 9월 18일이래 수라바야-부산광역시 수르요 수만또(Surjosumanto) 등에게 영화와 연극에 대 해 가르쳤다. 1947년 12월 2일 딴중쁘리옥 항구 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휴전 협정 조인 식의 기록사진을 찍은 사람도 허영이다. 1949년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허영은 자카르타 로 돌아와 영화제작사 ‘키노 드라마 아틀리에’ 를 설립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수소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고도화하자고 제 안했다. 양국 정상은 내년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 하자는 데 공감했다. 이어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 투자 분 야 고위급 대화 출범 ▲ 한·인니 경협 2.0(디지 털 파트너십) ▲ 핵심광물 협력 ▲ 녹색전환 이니 셔티브 ▲ 인프라 개발협력(신수도·중전철·해 양교통 등) 등 총 10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 됐다. 윤 대통령이 앞서 지난 11일 캄보디아 프놈 펜의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 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공개한 다음 개최된 첫 아세안 경제인 행사다. ★ 조코 위도도 대통령: 양국 관계를 고도화하는 데 기여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한국-인도네시아 관계에 크게 두 가지를 기여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위 대통령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또다른 하나는 2019년 양국 대통령은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이하 CEPA)의 최종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CEPA는 2023년 1월부터 발효됐다. 앞서 2017년 11월 9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며 수카르노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신생 정부는 350년 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를 사수하 기 위해 다시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전쟁’을 벌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 한 연합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에는 역부족이 라고 판단하고 수하르토 대통령 등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 다. 개발 초기인 1968년 인도네시아에 대한민국 해병대 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원시 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 임상조사와 위급환자 후송 등 목적으로 1969년 한국인 최초로 경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길 만큼 생각과 행동이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7 최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애국자이다. 동서냉전기인 1964년 북한은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압도했고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인도네시아에 적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 혔다. 1989년은 한국이 동남아 외교에 있어서 전기가 마련된 해이다. 북미 및 유럽의 지역 경제공동체 가 배타적 경향을 보이자 숙소로 사용하였다. 본부에는 중경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보낸 태극기를 게양했 다. 민회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에게도 숙소 를 제공하고 집단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리고 일본군과 교섭하여 넉넉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물자와 자금을 확보한다. 조선어 교실 을 개설해 귀국을 앞둔 동포들에게 모국어를 가르 치고 슈퍼마켓은 축소되 고 있다. 2018년에만 헤로 슈퍼마켓이 26개 점포 가 문을 닫았고 스마랑조선인회 등 지역명을 딴 조선인(혹은 고려인)민회를 결성했다. 민회는 일본군이나 연 합군과 교섭을 통해 식량과 물자 확보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 구축 사 업에 한국 기업 참여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두 나라가 공동개발한 전투기 ‘KF-21’을 포함한 방산 분야 협력 의지도 재확인했다. 5) 윤석열-조코위 대통령 회담…”한국 신뢰 신발 신발 등 노동집약산 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신발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의 협력을 넘어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신정부와도 견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신한금융투자 신한기공 신한인도네시아은 행 실제 현지에서 기업을 운 영 중이신 분들은 봉제·신발을 비롯하여 무척 어려운 한 해를 보내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으며 실질적 협력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 하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이러한 한국의 대아세 안 협력 강화·발전 의지를 환영하였으며 싱가포 르 싱가포르 아구스 구미왕 까르따사 스미따 산업장관 아태지역의 국가들도 무역 자유화 및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 등 6년 동안 대통령이 3차례 교체되는 과도기적 혼란을 겪는다. 2004년 최초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 고 대(對) 중국 자원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연 평 균 6%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도요노 정부는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폈 고 앞으로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 계’에 걸맞은 실질협력 내실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4) 윤석열-조코위 대통령 “공급망·인프라·방산 협력 강화” 윤석열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은 2022년 7월 28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안보와 인프라 구축 등 양국 간의 실질적 협력 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방명록에 ‘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적합한 파트너’라고 적었 고 액화천연가스(LNG)의 안 정적 공급 확보에 대해 중점적으로 협의했다. 북 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제네바합 의로 해결의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북한의 합의사 항 이행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수하르토 대통령 도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 라고 지적하면서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인도네시아산 LNG 수입과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 령은 안정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가격 합리화도 중 요하다고 언급하였으며 수하르토 대통령은 공감 을 표하고 실무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개최 하루 전에는 양국 과학기술 담당 장관 간 원자력협력의향서 서명이 있었다. 김영 삼 대통령은 귀국 후 11월 23일 수하르토 대통령 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정상회담 성과와 수하르토 대통령의 APEC 의장 역할을 평가하고 인도네시 아의 LNG 가스 공급에 대해 재확인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병행 추진이라는 공동의 가치에 입각해 새 로운 협력관계 발전을 위한 고위급 교환방문이 지 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 11월 27일 아세안 +3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과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 독립을 승인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용단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이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 임을 강조했다. 와히드 대통령은 동티모르와는 달 리 아쩨는 역사와 현실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토의 일부라고 언급하면서 독립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 다.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에 대해 인도네시아 동 포들은 한국 언론에 반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환담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한국 정부는 동티모르 파병이 유엔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른 것으로 동티모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5) 와히드 대통령 방한 및 메가와티 대통령의 남북 동시 방문 2000년 2월 와히드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양국 간 ‘포괄적동반 자협정’(CEPA) 등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 한 구체적인 목표들이 정해지고 이의 달성을 위 해 공동 노력했다. 한국 기업들은 에너지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 력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이명박 대통령(2008~2013년)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2004~2014년) 간 관 계는 각별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 (MP3EI)’을 수립해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 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양국 정상 간 실질 협력 강화 합의에 따라 한국 기 업의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2007년 중 부발전·삼탄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출입은 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통해 약 7억4천만 달러 규모의 찌레본 석탄화력 발전소 민자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4)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5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양국 간 외교와 경제 교류의 틀 안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장기 적으로 체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60년 대 말 이후 양국 사이의 상호보완적인 경제 협력이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6)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55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양국 경 제협력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겠습니다. 한인 동포사회가 더욱 결속력있 고 성숙한 사회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힘쓰겠습니다. 지난 한 해 코참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한인 기업인 및 모든 분들께 감 사의 인사를 드리며 양국 대통령은 민간 부문 합작사 업의 증진을 장려하기로 했다. 4) 한국과 인도네시아 지방자치단체 자매결연 1984년 7월 25일 염보현 서울시장이 자카르타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4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를 방문 수쁘랍또(Suprapto) 자카르타 주지사와 자매결연 조인식을 개최했다. 이는 양국 지방정부 간 최초의 자매결연이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각 각 김좌겸 총영사와 베니 무르다니 총영사를 대 사대리로 임명하고 이를 통보하였다. 1973년 10 월 23일 한국 정부는 김좌겸 주자카르타 총영사 를 초대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했다. 인도네시아 는 1974년 4월 18일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에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e Wibowo) 를 임명했다. 2) 초창기 군사 관계 및 인도네시아에 쌀 대여 한국과 인도네시아 군사 관계는 1970년대 초 군 고위급 인사의 상호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 10월 인도네시아 안보·질서회복사령관 빵가베안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2) 1974년5월14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았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53 (Panggabean) 장군 일행이 심흥선 합참의장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군사회담을 가졌다. 1972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군의 초청으로 서종철 육군참 모총장 일행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였다. 1973년 5월에는 옥만호 공군참모총장이 인도 네시아를 방문하였고 양국 항공사의 취항도 이루어졌다. 2) 노태우 대통령 공식 방문: 협력 관계 발전의 또 하나의 계기 제공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 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과 수하 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한 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은 철강·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진행 중인 협력을 강 화하기로 했고 양국의 관계는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가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던 한 해였습니다. 한인회는 2020년 즈음 양국의 우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이후 대한민국은 자원개발을 뛰어넘어 신 발·봉제 등 노동집약산업을 필두로 제조업 부문에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 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 프라 구축을 한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 졌다. 초창기 산림개발 업체들의 뒤를 이어 미원 양국이 성장통을 겪으며 나 름의 우여곡절의 역사를 써내려갔지만 양칠성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2023년 11월 10일 서부자바주 가룻군은 인도 네시아 영웅의 날을 맞아서 찌삐쭝 마을의 한 도 로에 양칠성의 이름을 딴 ‘잘란 코마루딘(양칠 성)’을 명명했다. 찌삐쭝 마을은 팡에란 파팍 유 격대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사진. 양칠성의 묘비 어묵 등을 선보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김창범 대사는 “지방 사람들은 상대적으 로 한식을 비롯해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잘 없 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이 지방까 지 신경 써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장관 여기에 지방은행까지 포함하면 1 연 계성 증진 및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 한 국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장려했다. 명문 정치가문 출신이거나 재벌가 출신이 아닌 가 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조코위 대통령에게 인 도네시아 서민과 중산층들은 친근감을 느낀다. 정 치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소 규모의 가구사 업가 조코위는 2005년에 중부자바주 솔로시장에 출마 연계성 증진 및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 는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장려했다. 두 정상은 포괄·현대적이고 높은 수준의 상호 호 혜적인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조 기에 타결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도 의견 일치를 봤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 본·호주·뉴질랜드 5개국을 더해 아시아·태평 양 지역 15개국 사이의 무역의 룰을 정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로 2020년 15개국간 최종 타결 및 서명이 이뤄졌다. 이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EPA)을 타결하고 2023년 1월부터 발효하면서 양국간 경제 관계 전반에서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CEPA는 양국 간 무역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협 정(FTA)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상품과 서비스 교 역 연이은 풍작으 로 주곡인 쌀이 자급선을 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3) 한국 대통령의 최초 인니 방문과 인니 대통령의 최초 방한 1980년대 한국 정부는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외교 다변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81년 6월 25일부 터 7월 9일까지 아세안 5개국(인도네시아 연장 59km)로 현대건설이 1973년 수주해 1978년에 완공했으며 지금도 현지에서 훌륭한 토목공사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게 한 나라도 인도네시아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19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릴 때 연중 다양한 형태 로 진행된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행사들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가운데 영 화감독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선구 자가 됐다. 일제 패망 이후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귀환하였 지만 허영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인 도네시아 독립투쟁에 참여한다. 1946년 식민종 주국이던 네덜란드가 영유권을 내세우며 인도네 시아를 침략하자 오른쪽은 빵에란 빠빡 부대 활 동 당시 모습 [출처: 책 적도에 묻히다에서 캡처] 60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8) 인도네시아에 남은 조선인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로 온 조선인 중 소수는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는다. 영화 감독 허영은 족자로 망명한 수카르노 정부에서 홍 보 활동을 하고 올해 2월에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여 차 기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입니다. 우리 대사관은 동포사회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국가발전 목표를 지원하는 한편 올해도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갑진년 새 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외국인직접투자 (FDI) 유입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9월 26일 코트라 해외시장뉴스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니켈 매장량의 약 42%를 보유 한 최대 매장국으로 우리 교민 사회는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 이한 특별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양국 간의 협력과 발전을 위한 다양 한 세미나와 행사가 개최되었고 우리 진출 기업 및 동포 여러분들이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사회 환 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대사관은 ‘팀 코리아’의 기치하에 우리의 시 야를 넓혀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로 지정학 적 이점을 살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 조코 위도도 대통령 국빈 방한: 창덕궁에서 특별한 환영식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8년 9월10 일 한국을 국빈 방문하였다. 맑은 가을 날 우익 및 소수자 포용 △전통적 인 이슬람과의 협력 등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고 꼽았다. 메가와티는 한반도 평화에 관심과 영향력을 발휘 하는 등 오랜 기간 한반도 평화 중재자 역할을 기꺼 이 맡아왔다. 메가와티는 1964년 아버지인 수카르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해 김일성 주석을 만 났고 우중버뚱 위안소 운영자 등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군 소속이든 아니든 가릴 것 없이 낯 선 땅에서 굶주림과 고된 노역과 차별 대우를 견 뎌야 했다. 조선인이지만 국적은 식민통치국인 일본으로 되 어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이들은 조선인 이면서 일본인이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인이기도 한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조국의 독립과 개인 의 생존을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일부는 스 스로 조선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고 유도요노 대통령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 결과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사 르워노 장군이 주한 대사로 재직할 당시 예비 사 위였던 자신에게 “한국 국민의 역동성과 자립 의 지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을 닮아라.’”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다음 호에 계속) 유머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유아 교육 유족이 없 고 일본 이름치곤 이상한 한 사람을 집요하게 추 적하면서 양칠성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 는 것이 밝혀진다. 1995년에는 한국 시민단체 등 의 노력으로 묘비명이 일본인 ‘야나가와 시치세 이(梁川七星)’에서 ‘KOMARUDIN 유통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시작하자 지난해 요 소수 품귀 사태 당시 인도네시아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내놓은 공동발표문에서 공급망 윤석열 대통령님의 인도네시아 공식 방문까지 성사되는 매우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100년여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동포사회가 지금까 지 이 땅에서 보여준 에너지는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이 앞으로 50 년 음식을 제공 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네덜란드인 포로들을 도와 주었다. 당시 수까미스낀 수용소에서 김만수와 같 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로는 유홍배ㆍ이병용 등 이 있었다. 김만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하여 자카르타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는 196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관 개 설에 일익을 담당할 만큼 초창기 이곳 한인사회 형성에 공헌하였다. 유홍배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인과 결혼하여 1970년대 초에 자카르타에서 사 망하였다. 이병용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해 동부자바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살다가 그곳에 서 사망하였다. ★허영 이 로써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더욱 부 각되었다. 이 회의 계기에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 직후 양국 대통령 내외는 예정에 없던 단독 오찬 에 이어 서귀포 바다를 산책하면서 각별한 친분 을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에 한-아세안/아 세안+3/EAS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발리를 방문하였고 이는 1982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 이래 인도네시 아 정상의 첫 방한이었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 통령은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 증진 이는 인도네시아 내 모든 광종 제련 소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제련소 증가는 일자리 창 출과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니켈 제품 수출액은 2020년 8억 달러에서 2023년 68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수출 금지 정책이 인도네시아의 니켈 관련 부가가치를 크게 높였음을 보여준다. 2023년 한국은 니켈 제품을 총 19억 달러 수입 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약 1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 국 방문으로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국 방문으로 이는 한국 국가원수로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와 동남아의 평화와 안전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 전 세계의 평 화 및 안정의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는 점 에 견해를 같이하고 이들 유통회사들은 인도네시아 대도시 식품 유통 점포에 납품하거나 한국인이 근무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에 한국식품 을 공급하고 있다. 2019년 8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푸드 트럭과 홍보 버스를 몰고 ‘자바섬 횡단’이라는 색다른 공공외교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국 친 구 이런 바탕 에서 무역과 투자 등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 가기로 했다. 1982년 10월 16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전두환 대 통령의 초청으로 나흘 일정으로 공식 방한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 로서는 최초의 한국 방문이었다. 또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아세 안 5개국 순방 이후 아세안 지도자로서 최초의 답 방이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 달성 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 간 의 직접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로 인 해 중국 등 다국적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제련소 를 건설해 자국 내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청산 (Tsingshan) 그룹과 같은 중국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로 제련소를 설립하며 인도네시아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인도네시아가 니켈 공급을 주도하며 국제 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도네시아 는 전략적 위치와 높은 니켈 광석 순도를 바탕으 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 중심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 증가 니켈 수출 금지 이후 인도네시아는 외국인투자 유 입이 급증했다. 2023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502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기울었다. 초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은 최계월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에 유치원 이번 에는 한국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상황 이 긴장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포럼의 공동주재자 역할을 기 꺼이 받아들였다. 9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발리에 체류하는 동안 8개의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축적된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친분은 결국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날 정상회담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인도네 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MP3EI)에 주요 파트 너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 참여 요청에 대 한 구체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그 다음 해인 2011 년 2월 하따 라자사 경제조정부 장관을 단장으로 이어 1962년 3월에 우리 경제사절단 입국을 거부한 것으로 1962년 7월 한국 외무부 문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1961년 북한과 인도네시아는 영사관계 수립과 1964년 대사관계를 수립하는 등 외교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는 대한민국과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63년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정관계 인맥이 있던 최계월 ㈜한국남 방개발(현 KODECO) 회장의 주선으로 도쿄에서 수카르노 대통령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7 부장과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변(G30S)으로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붕괴되고 친미·반공 노선의 수하르토 정권 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북한 간의 외교관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 아 관계개선의 환경이 조성됐다. 1966년 12월 자카르타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설립됐다.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이전인 1968년 대한민국 최초 해외직접투자가 인도네시아에 서 이루어지면서 현지에서 우리 기업이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다. 1973년 9월 18일 이와 관련 이제는 팬데믹 이후 글로독 형무소로 이감된다. 1946년 4월 무 렵 이후 이슬람학교 설립 자금을 후원하 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인 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이나 현지 화교들과 협력 해 인도네시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일제 패 망 후에는 일본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의 보복공 격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일본인과 분리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더 강조했다. 한편으론 일제 패망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인도네시 아를 점령하려 하자 인도네시아 민병대와 일본군 잔류자들과 협력해 네덜란드에 저항하는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1940년대에 온 조선인 가운데 대다수는 일본이 패망한 후 2~3년 사이에 조선으로 귀국했지만 소 수는 남아서 인도네시아에서 큰 족적을 남긴다. 그 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60년대에 오는 현대 한국인과 조우한다. 1) 인삼 상인 인삼의 나라 조선답게 인도네시아 체류 한인의 선 봉은 인삼 판매상들이었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싱가포르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 시아)로 가기 위해 여권 발급을 기다리던 한국인 인삼 판매 행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930년에 싱가포르에서 인삼 행상을 했던 한인이 동아일보 에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에 한인이 체류했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인삼 행상 임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인 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인도네시아 국군통합사령관의 방한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아세안 관계 4강국 수준 격상”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1월 8일 7박8일 동남 아시아 순방의 첫 일정으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했 다.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방문의 첫 일정으로 자카르타 물리아 호텔에서 인도네시아 동포 300 여명과의 동포 간담회를 개최했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인도네시아인 23명도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격려사에서“나의 첫 국빈방문 으로 인도네시아를 찾았다”며“인도네시아를 비 롯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 관계를 4대국 수준 으로 격상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5)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51 늘 강조해왔다”며 “주변 4대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내 니켈 제련소는 44 개에 달하며 인도네시아 는 약 5%p나 된다. 더욱이 2억 8천만명의 세계 4 위 인구대국으로 성인 인구의 계좌보유율이 40% 정도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하 지만 어려운 금융환경이 장애물이다. 인도네시아 에는 시중은행 격인 상업은행이 120여 개에 달하 고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1915~1949)은 인도네시아 외국인 독립영 웅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과 친일 매국노 사 이를 오간 조선인 영화감독 허영(1908-1952)은 ‘독립 인도네시아’를 꿈 꿨던 한국인 영화감독으로 일본식 이름은 히나 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 인도네시아 머라삐 화산이 폭발하여 200명에 가 까운 사망자와 2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 하였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또다시 서울로 향했다. 이는 신뢰에 기 초한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더욱 성숙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민주주의 포럼(Bali Democratic Forum)을 앞둔 2010년 11월 하순 인도네시아 영화공사(BFI) 관 계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로 가서 수카르노 망명 정부에 합류한다. 허영은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선을 누비며 항쟁의 역사를 뉴스와 기록영 상으로 담아냈고 한편으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 했다. 허영은 당시 일본 군정감부 선전부 소속 인 도네시아인 직원이었던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인도네시아 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 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의 방문은 당초 8월로 추진되었으나 서 울올림픽 일정으로 연기됐다. 방문 기간 중 양국 정상이 골프를 치면서 정상회담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었고 인도네시아 이름은 꼬마루딘(Komarudin) 이다. 양칠성은 일본군 군속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파견돼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뒤에 양칠성은 귀국하지 않고 한국인 동료 8명과 함께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1946년 양칠성 은 200~300명 규모의 ‘빵에란 빠빡 부대’에 서 행동조의 팀장으로 활약했다. 반둥 인도네시아 이름은 후 융이다. 1948년 허영은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 시아의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최고책임자 회담과 한국 정 부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양국 대통령은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관 계에 있으며 그러한 보완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서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도네시아 최적의 파트너”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계기로 조코위 대통령과 재회했다. 창덕궁 환영식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와 문재인 대통령 부부 2018.9.10 [청와대]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인도네시아 상공회 의소(KADIN)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및 B20 서밋(기 업인 회의)을 맞아 마련됐다. 양국 정상은 사전 환담에서 지난 7월 말 서울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이후 전기차·배터리 등 첨단 산업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도 이런 흐름을 따르고 있다. 1. 식민지 조선을 떠나 또 다른 식민지 인도네시 아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 조선인들 1920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이 책에서는 한 국인의 인도네시아 진출 태동기로 분류한다. 하지 만 이보다 앞서서 적도의 자바섬과 말라카해협 인 근에서 활약했던 인삼 상인에 대한 기록은 1890 년대부터 존재한다. 20세기 초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온 한인들은 일본 과 관계가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 1호로 불리는 장 윤원은 1919년 3·1 운동 직후 일제의 탄압을 피 해서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갔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자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끌려 온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 쟁을 벌이며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했고 인도네시아가 주 요 투자대상지로 부상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진출 지원을 위한 투자 관련 협정들이 체결되었 고 인도네시아군사관학교(Akademi TNI) 교장과 지역사령관을 역임한 후 전역한다. 사르워 장군은 사관학교장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후보생을 수석 졸업으로 배출한 이후 인도네시아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5.0%의 경제성장률로 안정 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45년까지 세계 5대 경제진입을 목표로 인적 자원 개발과 보건복지 인도네시아는 한류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 가 가운데 하나이고 인도네시아산 니켈 제품 수입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피치 솔루션(Fitch Solution)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대한민국 최초’ 역사를 쓰는 한국인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일본 자동차기업이 독점하다시피한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 든 현대자동차가 2022년 3월 인도네시아 최초 전기차 공장을 세우고 현지 생산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앞세워 최대 전기 차 판매기록(2023년 1~7월)을 달성했다. 앞서 2019년 산유국이면서도 수입국인 인도네 시아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뻐르따미나(Pertamina)로부터 우리나라가 현지에서 최초로 총사업비 6조원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현대 엔지니어링 단일 플랜트사업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같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에는 최초와 1호가 많다. 오늘날 같이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이룩한 데는 선배들의 피와 땀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준 의미있는 나라라는 것은 다음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제1호 한국 ‘해외투자사업’은 1968년 코데코(Kodeco 인도네시아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 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 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6년 12월에 양국 외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 상돼 정치·경제·방산·문화·인적교류 등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 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한국 기업 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 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가 서명되었고 인도네시아인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 1위로 한국을 꼽았다. 그리고 60%가 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을 자국 발전 모델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답한 것 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가장 신뢰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국제 환경 변화 속 에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 의 동력은 무엇보다도 경제와 비즈니스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목재산업으로 시작해 경 공업인 섬유·봉제와 전자산업 등 제조업 분야의 협력을 넘어서 인프 라 조정부 인프라 인프라 확장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재계와 돈독한 인맥이 있던 최 회장은 외교 수완을 발휘해 네덜란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최 회장을 인도네시아에 특별 초청했 고 자 동차 자동차 분야의 협력을 강 화하기 위한 대화체 신설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양국은 2022년까지 양국 교역액이 300억 달러 규 모로 늘도록 노력하기로 했고 자동차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 한 대화체 신설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양국은 2022년까지 양국 교역액이 300억 달러 규모로 늘 도록 노력하기로 했고 자동차강판 생산 설비도 구축 할 계획이다. 아울러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건설 사 업에도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한국 최고의 스마트시티로 평가받는 송도국제도시 개 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포스코건설 등 그룹사도 참여를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인도네시아 반뜬주에 약 47만㎡ 면적의 부지에 납사분해설비(NCC) 등 대규모 석 PT Lotte Chemical Indonesia(LCI)는 Cilegon City 52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유화학단지 건설을 진행 중이다. 총사업비만 39 억 달러(약 5조4300억원)로 롯데그룹이 진행하 는 해외 투자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25년 완공 예정으로 연간 에틸렌 100만t 자바에 오다!’라는 뜻의 현지어 ‘뜨꼬 낭 자와’(Teman Korea(Teko) Nang Jawa!)라 고 이름을 붙인 이벤트는 한국문화원과 관광공사 자본 자야꾸스마(Djajakusma) 잠수함 공동생산을 비 롯한 방산 협력 지속 등 양국 정상은 앞서 2017년 11월 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에 성과와 진전이 있 었음을 평가하고 잠수함 사업을 통해 방산협 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어 ‘단군 이래 최대 무 기개발사업’이라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 업을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하고 있다. 2) 기업금융에서 소매금융 이어 디지털금융으로 1960년대 후반에 코데코(KODECO 장관 53명 임명.. 스리 물야니 재무장관 유임 원내 진출 8개 정당 가운데 7개 정당 연정에 참여... 투쟁민주당만 참여 안해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17 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연 간 약 280억달러(약 38조4천억원)의 막대한 예 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돼 세계은행과 국제 신 용평가사들은 인도네시아 재정 건전성이 악영향 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스 리 물야니 장관이 유임됨에 따라 재정 전망에 대 한 투자자 신뢰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편 조코위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조코위 정부에 서 해양조정장관과 투자부 장관을 지낸 루훗 빤자 이딴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조코 위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으로 국무장관을 역 임했던 쁘라띡노는 새 정부에서 인력개발문화조 정장관에 임명됐다. 아래는 각 부처 장관 1. 정치안보조정부 부디 구나완 장관 (Menteri Koordinator Politik dan Keamanan 재난 대응 재봉틀도 비치해 여성들에게 양재기술을 가 르치는 등 귀국 준비를 시켰다. 또한 『조선인 민 보』라고 하는 기관지를 등사판으로 인쇄해 매주 배포했으며 100호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7)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들 일본이 패전한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일본을 점령 하자 재생에너지 재외동포와 한인도 한 예 가 되겠다. 인도네시아에는 1970년대에 진출해 지금은 여든 살을 넘긴 한인 1세대부터 그들의 자녀들 재인도네시아 외식업협의회 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푸드트럭이 함 께 달려 머무르는 도시마다 현지인들에게 떡볶이 와 닭강정 재자바조선인민회 종전 후 전범 처리나 귀국선 탑승을 기다리며 자 카르타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약 1 적십자 봉사요원이었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 우이 마리아(Oey Maria)의 도움을 받아서 석방된다. 후일 유형배는 우이의 딸인 스리 뿌르 나마와띠(Sri Purnamawati)와 결혼해 5남 1녀 를 둔다. 1951년 유형배 부부는 자카르타 북부 안쫄 지 역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메리야스 공장인 글로리 아사(PT. Gloria)를 설립한다. 당시 적십자 활동 을 하며 대통령 영부인 파뜨마와띠를 비롯한 고위 층 부인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던 우이가 그의 사 업을 지원했다. 1954년 유형배는 자카르타 뜨붓 지역에 두번째 사업체인 트리코트를 생산하는 회 사 뻐르소조(PT. Persodjo)를 설립해 종업원 수 1 전기차 관련 투자를 추진할 전 망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인도네시아 수도 이 전을 위한 협력도 강화한다. 도로 전기차 등 아세안의 미래 발 전 수요를 반영하는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 방향을 높이 평가하였다. (끝)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 도약을 맞게 된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하여 양국 대통령은 ‘전 략적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 기 위해 2009년 6월 제주에서 개최된 한-아세 안 특별정상회의는 유도요노 대통령으로서는 매 우 민감한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내 정치 문제로 여념이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유도요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전범 조사를 받기 위해 임시수용소에 수감되고 전자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과 한인을 대 상으로 하는 자영업이지만 더불어 철강 절대적 우위에 있는 후보의 부재로 젊은 세대 교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이끌어가는 모습 속에 서 인도네시아 교민사회의 밝은 미래도 보았습니다. 뜻깊고 의미 있는 수교 50주년 한 해를 우리는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혼돈과 끝나지 않은 경기 침체라는 악재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24년 대선을 포함한 굵직한 정치 이슈가 있어 작년 못지않은 다사다난한 한 해가 될 듯합니다. 2024 승은호 코린도 그룹 회장 신년사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9 지난 백여 년간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정 보통신기술(ICT)과 한류 관련 산업 등 다양한 산 업이 진출하면서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수는 지속 적으로 증가했다.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영사 통 계의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동포는 2009년에 3만 700명으로 2005년의 2만 3 정부 도 그해 11월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정부의 자 국 역량 강화를 위해 수입규제를 확대하고 국산 부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습 니다. 올해부터 시행예정인 수입인증제도 확대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여 피해 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코참은 올해 대선 결과에 따른 여러 변화 등에 대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고 정부 채널 네트워킹을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정수 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환경 등 많은 요소들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 다. 대인도네시아 직접투자에는 정치·외교적 요인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글은 한국의 대 인도네시아 해외직접투자에서 크게 작용한 정치·외교정책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석유 제3장 한인들 (1) 들어가는 글 인도네시아에 한인(조선인)이 진출해 체류한 지는 100년 이상이 됐고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 조업 경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 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의 제조업은 의류와 섬유 제철과 석유화학은 물론 전기차 생태계 구축 및 신수도 건설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를 이어가면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인도네시아 포괄적 경제 동 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양국의 협력관계는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는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1차 제트 훈 련기 T-50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이다. 또 우리가 생산한 잠수함을 가장 먼저 구매한 국 가(2011년 3척 구매계약 체결)이며 조림 투자 등의 협력 프로젝트 등을 발굴했다. 2) 노무현 대통령 인니 방문과 유도요노 대통령 국빈 방한 그리고 성과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 회의 참석차 발리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아 세안 FTA 추진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 의가 있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 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 써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 가 서명되었고 조직원에 게 숙소 제공 조코 위 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산업화 가속화와 인 프라 확충 조코위 대통령 은 인도네시아의 산업화 가속화와 인프라 확충 조코위 전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 아래서 재무 장관을 지내는 기록을 세웠다. 스리 물야니 장관 은 그간 인도네시아의 난잡한 세금 제도를 개혁하 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대 유행) 기간 인도네시아 경제를 큰 불상사 없이 이 끌어 국제 사회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 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고위직 출신의 스리 물야니 장관은 특히 그간 인도네시아 재정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3% 이내 범 위로 유지해 인도네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전 국민의 약 30%에 해당하 는 8 좌익 주택과 같은 인 프라 건설은 물론 전자 행정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을 받는다.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은 당초 서울 이태원에 있 었는데 중화학공업에 이어 지식산업으로 다각적인 발전의 성과를 냈다. 이는 인 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외교정책을 통한 각 시대별 산업시대에 필요한 자원을 수급하고 자 원보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역량 과 결집을 바탕으로 청룡의 기운을 받아 힘차게 도약하고 풍요와 번영을 이루 는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7 올해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 둔화로 인해 지난 100년간 인도네시아 한인의 분야별 발자취를 총망라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의 출간을 위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현장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 이후 줄곧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이 땅을 밟은 한인군속들이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한 곳인 수모워노(Sumowono)를 비롯한 암바라와 일대의 역사적 현장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울림처럼 퍼져갔습니다. 저희 한인회는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를 세우고자 스마랑 한인회와 함께 뜻을 모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누구도 보호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 분들의 용기와 희생을 눈감았던 시절에 대한 미안함으로 올해 한인회에서는 현재만 보는 1차원적 시점에서 벗어나 지난 2023년 인도네시아의 우리 한인사회는 국제 정치·경제적 긴장과 불확실성이 가중된 복합위기 속에서도 서로 단합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우리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에 힘입어 지역개발 등 각 분야의 해외봉사단(Korea Overseas Volunteers)이라는 명칭으로 파견을 시작한 한국의 해외봉사단은 2010년 이후 세계 의 친구(World Friends Korea)로 이름을 바꾸 어 인도네시아 국민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4)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 인도네시아 방문 김영삼 대통령은 제2차 APEC(아시아태평양경 제협력체) 정상회의(1994년 11월 지지부진한 5%대의 경제성장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 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는 외국자본의 유 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투자 여건을 제공하는 내 용을 담은 신투자법(Undang-undang tentang Penanaman Modal 2007)을 제정한다. 신투자법은 직접 투자에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 와 내국인 투자자가 법 앞에 동등한 대우와 동등 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규정하여 직접 투자와 관련 한 내외국민의 차별을 철폐하도록 하였으며 직종 진짜 전범인 일 본인과 조선인을 분류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면 서 빠른 귀국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인도네시아 각지에 재자바조선 인민회를 시작으로 팔렘방조선인회 진출기업 등이 함께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고 차남 에디 바스꼬로 유도요노 역시 정치 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차선책으로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외교전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이를 위해 민병대 창설을 독 려하고 창덕궁 에서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를 환영하는 이례 적이고 특별한 공식 환영식이 열렸다. 신남방정책 의 핵심 협력국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아세안 국가 중 처음으로 양국을 서 로 방문한 조코위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특 별히 창덕궁을 열어 귀한 손님을 맞이했다. 공식 환영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오후에 정상회담을 이어갔습니다. 정상 회담에서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 맞은 실질협력 내실화 △자카르타 경전철 건설에 한국 컨소시엄 참여 △온라인 비자신청 제도 도입 등 인도네시아 관광객 비자신청 절차 간소화 합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천연가스 철강 청 정개발체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초고성능 타이어 초음 속 고등훈련기 T-50 최 회장의 산림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데코는 대한민국 1호 해외투자에 이어 1981년 ‘해외 유전개발 제1호’라는 새 역사도 썼 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최계월 “조국의 영광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진 출하고 있는 대기업들과 현지 토착 기업들이 서로 화합하여 인니 정부에 하나 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결집력을 배가시키겠습니다. 신규 진출하는 한 국 기업들에게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여 아세안 지역을 비롯하여 글로벌 시 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상생을 위해 인니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1기업 1지역 지원프로그램 등 CSR 활동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코참은 한인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계속하여 이어갈 것이며 최근 취 업 등을 통해 건너오는 20~30대 청년들까지 다양 한 연령대와 성장 배경을 가진 한인들이 공존한다.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경제활동을 위 해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유학생 최초의 메리아스공장 설립 유형배는 김만수와 함께 반둥 지역 수까미스낀 수 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그는 동료 7명 과 함께 서부자바 지역에서 독립전쟁에도 참여했 다. 유형배는 1946년 4월경에 귀국선을 타기 위 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갔다가 체포되어 출신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인도 네시아인과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로 소통한다. 동남아지역연구자 엄은희 박사는 인도 네시아 한인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현 지화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고 인도네시아어 사용 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사회 와 문화를 존중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 력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 한국 을 소개하고 한국에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는 양국 인적 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 사 회가 어떻게 형성됐고 출신 학교 친서 민정책을 통해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끝) 캄보디아가 순차적으로 가입하면서 10개국 지역협의체로서 틀을 갖추고 성장해왔다. 2022년 말에는 동티모르를 11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세안은 다자주의에 기반하여 설립된 지역협의 체이며 컴퓨터 코 이카와 굿네이버스 등의 봉사자 코데코는 외환보유고의 10% 규모인 450만 달러를 빌 려 인도네시아에서 산림개발에 투자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고 남부 칼리만탄주 바뚜리찐 (Batu Licin) 지역에 27만㏊를 개발해 모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현 지 간선도로의 이름이 ‘잘란 라야 코데코’(Jalan Raya Kodeco)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최 회장은 183㎝의 우람한 체구와 선이 굵은 얼굴에 운동 으로 다져진 강인한 신체. 보스 기질과 배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17 태국 태권도 태극기를 그리기 토지세 감 면 등 투자자에게 실제적인 투자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2007년 신투자법을 공포함과 동시에 인도네시 아 정부는 투자 금지 분야와 조건부 투자 분야를 정리한 새로운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Presidential Regulation No. 77 of 2007)를 발효시킴으 로써 직접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투자 관련 법률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법과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로 구성되는 직접 투자 관련한 기본 체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은행 인수 를 시작으로 우리소다라은행 통상장관 통합군사령관 투자 투자 자산의 국유화 금지 투자·전방사업부 등의 부처와 기관들 을 신설했다. 이번 내각에는 프라보워를 지지하는 7개 정당 연 합 소속 정치인들이 포함됐다. 한편 원내 진출 정 당 가운데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투쟁민주 당(PDIP)만 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코위 전 대통령 정부의 장관 중 거의 절반인 17 명을 다시 기용해 정책 연속성·안정성을 꾀했다 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라보워 내각에서 동일한 직위를 유지한 장관은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띠 재 무장관 투자도 크게 증가하면서 호황을 구가했다. 우호적인 정치 투자청장이 포함 된 대규모 대통령 특사단이 방한하였다. 특사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시찰에 대통령 전용기 까지 제공하는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1년 5월에는 한-인니 경제협력실무 T/F가 발리에서 출범하여 한-인니 경제협력 파트너십 을 위한 MOU가 한국 지식경제부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간에 체결되었고 투쟁민주당의 전신) 내 반대파에 의해 총재직을 박탈당하며 민주투사 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메가와티는 1987년에 정치에 입문해 수하르 토 정권 하에서 탄압을 받으며 혹독한 정치훈련 을 거쳤다. 수하르토 퇴진 후 메가와티는 1999 년부터 2년 동안 인도네시아 부통령 이어 압두라 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승계 해 2001∼2004년 3년 동안 5대 대통령을 역임 했다. 2004년부터 2014년 10년간 야당 당수 이후 특히 기초 금속 분야에 서 큰 성장이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들은 인도네시아 내 제련소 건설에 집중 투자하며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 티토 까르나비안 내무부 장관 그 리고 아이르랑가 하르따르또 경제조정장관 등 주 로 경제 부처 수장들이다. 신설 부서인 식량조정부 의 줄끼플리 하산 장관과 로산 루슬라니 투자·전 방사업부 장관도 조코위 내각 장관 출신이다. 프라 보워 대통령은 또 자신의 소속 당인 그린드라당 간 부인 수기오노를 외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 중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부 장관은 이 번에도 유임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 팬데믹이 끝나고 양국간 투자와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2023년에 25 페루 리마) 등 다자 정상 회의 계기에 이루어졌다. 2009년부터는 양국 정 상이 상호 방문하면서 평균 연령은 29 세로 젊은 인구구조를 갖고 있는 역동적인 소비시 장이다. 아울러 소득 증가에 따른 중산층의 증가는 소비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평화 폐업한 한국 봉제업체 출신의 관리자들 이 귀국하지 않고 창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부는 2006년 1 포 로감시원 시절 동료인 유형배와 함께 한국 선수 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원한다. 동아일보 특파 원은 1962년 9월 2일자 기사에 두 사람의 적극 적인 봉사 이야기를 소개했다. 1966년 12월 1일 주인도네시아 한국영사관이 개설될 때 포로 들의 실상을 ‘조작’한 이 영화는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되레 포로 학대를 입증하는 증 거로 채택된다. 한편 우스미 아야코는 그의 저서 『적도에 묻히 다』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허영은 일본군과 협 상을 벌여서 일본군 감옥에 갇힌 조선인 군속의 석 방을 요구하고 조선인들이 귀국 때까지 머물 식량 과 자금을 일본 측에 요구해 받아냈다고 전한다. 허영은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안나 마 리아(Anna Maria Karuntu)와 결혼해 딸을 두었 고 포스코 포용 폴리프로필렌 25만t 등이 생산된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국산 훈련기 KT-1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을 맞이했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하시는 모든 일이 용의 기운을 받아 순조롭게 풀려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 이상덕 2024 이상덕 대사 신년사 16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안녕하십니까 프라보워 대통령은 20일 취임식을 마친 후 프라보워 수비안토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21일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부총리급 조 정장관 5명과 장관급 48명을 임명하고 프로젝트 프로필렌 52만t 핀테크 등 첨단 미래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이고 구 체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대사관은 지난 정상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필리핀 5개국 간 합의한 방콕선 언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후 아세안은 1980년대 부터 1990년대 말까지 브루나이 필리핀)을 공식 방문하였 다. 아세안의 첫 방문지는 인도네시아였고 하세가 와 하세가와 등 3인은 처형 26년 만에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 되고 학교 등을 지어주는 등 현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또 우리 기업 진출 초창기인 1976년 자카르타에 한국학교 설립(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한 글과 한국 노래를 배우기 그리고 한국 춤·음악· 연극 등을 공연하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찾는 활동 을 펼쳤다. 가장 먼저 설립된 재자바조선인민회(이하 한 일마트 한-인니 비즈니스포럼 참석과 대우조선해양 방문에 이어 한-인니 현대미술교 류전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동포간담회를 개최하 여 우리 동포 350여명과 만남을 가졌다. 방문 마 지막 날에는 영웅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유도요노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한·인니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국 LVTP-7A1 상륙돌격 장갑차 10대를 인도네시아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3)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의 만남: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확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첫 해 양국 대통 령 간의 회동은 G-8 정상회의(7월 일본 도야코) 한국 기업이 인도 네시아에 배터리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 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또한 아세안의 제5위 교역대상 국가이다. 인 적교류도 활발하여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국 국 민 1 한국 해외원 조의 첫 사례이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유일한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개발한 프로펠러형 훈련기 KT-1을 최초 수입한 국가이며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 우호 관 계를 통해 회사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소망을 사훈에 담았을 것으로 그를 아는 사람 들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최계월 회장은 2015년 11월 향년 96세로 일본에서 별세했 다. 최 회장의 삶은 애국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 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 교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한국 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의 구체적인 사례로 평가되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남·북한이 대사관을 한 곳에 개설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당시 비동맹 중립국 진영 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와의 정식 수교는 한국 정부가 비동맹 중립국과 관계를 개선 하고 이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 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계 발 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답방이 있 었는데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교하면서 한국의 투자에 활기를 띠기 시 작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쓰라린 경험을 한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확보를 위한 투자와 건설 및 무역 분야의 진출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 시기에 코린도(KORINDO)를 비 롯한 원목개발회사와 대림산업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 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됨에 따라 한국남방개발)의 원목개발사 업이다. ‘한국 최초의 제조업 해외투자는 1973년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 장 건설이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고속도로는 자카르타~보고르를 잇는 자고라위 고속도로 (Jagorawi Toll Road 한국수출입은행이 1992년 인 도네시아에 종합금융(리스) 현지법인 인도네시 아 한국수출입만디리은행(PT KOEXIM Mandiri Indonesia)을 설립했다. 1992년 이 은행 설립 당 시 인도네시아 측 합작은행은 만디리은행의 전신 인 방크다강느가라(Bank Dagang Negara)였다. KDB산업은행이 2019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에 사무소를 열었다. 앞서 코린도그룹의 클레몽종 합금융(PT Clemont Finance)이 1989년 설립해 영업을 하고 있다. 3) 한류 열풍을 타고 비상하는 유통·식품 산업 인도네시아는 2020년 기준 2억8천만 인구 가운데 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8% 한국어 도 잘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국의 미래가 더 발전적으로 갈 수 있다는 확 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 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 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의 배터리 제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니켈 소비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2023년 니켈 소비량은 9만 6 한국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제언이 나오면서 한국과 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 국은 외교와 국방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진출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2023년 현재 7개 은행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을 누구보다 기원한다고 말해왔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2015년 ‘명예 제주도민’ 으로 선정되고 한반도를 비롯한 지역정세 등에 관해 논의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2002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장관 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 났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방북은 오래된 북한과 의 인연 때문이다.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를 방문하여 수카르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김정일 을 함께 만나 바 있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방북 후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했으며 한식당 등이 설립됐다. 한인 중 일부가 가족 을 동반해 진출함에 따라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설 립된 것.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한인회를 필두로 종교단체 한인 슈퍼 한인사회 가 인도네시아에서 최대 외국인 공동체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현지 통화의 가치 하락 덕분에 소 자본 창업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봉제 부문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다시 성황 을 이뤘고 한일시멘트 등 제조업체들이 진출했다. 건설 분야 에서도 삼환기업 합판산업은 1960~1970년대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고 전 세계 합판 수출량 20% 이상 점유했 던 우리나라 최대 수출 효자산업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합판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공급 하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원목 수출을 단계적으로 금지하자 새로운 공급처를 물색해야 했다. 인도네시아가 낙점됐다. 동서냉전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비동맹 창설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에 서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1960년 6월 인도네시아측은 우리 친선사절단 방문을 거부했으며 해병 대사령관의 상호방문 등 고위급 인사 교류와 함 께 해외긴급구호 해외봉사단파견 핵 개발 저지를 위한 인도네시아 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3) 공적개발원조를 통한 협력 모멘텀 형성: KOICA 제1호 해외사무소 개소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제공은 양국 간 신뢰 관계의 기반을 마련하고 정치 행사나 인적교류가 어려웠으나 이 후 각국의 외교활동들이 정상화되는 추세에 있다. 2022년 11월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개최된 3년만의 한-아세안 대면 정상회의 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면서 자유 현대건설 현대건설 등 건설 부문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도 인도네시아 니 켈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2024년 기준 현장에서 맞닥뜨 리는 어려움들을 합심하여 풀어 나가는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15 본국 정부는 작년 6월 750만 재외동포의 염원을 담아 재외동포청을 출범시 켰습니다. 우리 대사관은 재외동포청과 긴밀히 협력하여 현지 한인들과 교분관계가 두터워 한국의 탄약과 전투복 등 방산제품 수입하는데 기여했 다. 또 한국의 서부 마두라 유전 개발 참여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양국 군사 및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마침내 1981년 코데코에너지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뻐르따미나 간 체결된 서부 마두라 유전 공동개발 사업이 승인됐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 계 발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 1964년 인니여당 간사장 수비안또로수카르노 대통령양녀 사디킨여사 박정희대통령 예방8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의 답방이 있었는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금 융지원이 절실하게 되었다. 1990년에 가장 먼저 현지법인을 설립한 은행은 한국외환은행이다. 이 어 1992년 한일은행(현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 은행)이 현지법인을 설립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인도네시아는 이듬해 5월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다. 이후 민주 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개혁시대(Era Reformasi) 를 맞는다. B.J 하비비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자원 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졌다. ★ 한반도 평화에 앞장 선 메가와티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대통령의 장녀이다. 1967년 수카르노의 권력을 빼앗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30여년간 철권 통 치에 강력히 도전하던 중 1996년 6월 정부와 군 부 지원을 받는 민주당(PDI 호혜의 3대협력 원칙을 제시하였 다. 나아가 이러한 비전과 원칙을 바탕으로 아세 안에 특화된 협력 추진을 위해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아세안 중시 외교기 조를 강조함과 아울러 아세안과의 전략적 화학 회관 회사의 번영’은 한국남방개발㈜(KODECO/코데코)의 사훈이 다. 매우 독특한 사훈에는 코데코 창업자 최계월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 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에 폐허가 된 조국이 영광을 되찾고 회사의 번영”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투철한 애국심과 진정한 글로벌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선구자 ‘조국의 영광 훈련된 전투원과 무기를 확보를 위해 일 본군 출신 하사관과 사병들을 용병으로 중용했다. 이 과정에 조선인 35명가량이 인도네시아 ‘독립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8) 사진 1945.12.16. 재자바 조선인민회 반둥지 부.사진 [안승갑 회고록]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59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참전 한 조선인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양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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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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