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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세랑 왕자님!” 슬라롱의 본진에선 디포네고로 왕자는 물론 그렇게 군대를 나누면 슬라롱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칠 병력이 얼마 남지 않습니 다. 일부 지역을 잠시 포기하고 슬라롱 공격에 집 중하심이….” “적들이 우리 배후를 따라잡게 놔둘 수는 없는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16 일이요. 저들을 방치하면 우리가 슬라롱에서 섬 멸전을 벌이는 동안 족자를 동서 양쪽에서 압박해 오게 될 것이오.” 디포네고로 왕자의 봉기에 동조해 자바 전역에 서 들불처럼 일어난 백성들의 반란은 네덜란드군 이 자바섬 밖에서 힘겹게 소환해온 병력들을 적절 히 분산시키며 디포네고로군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5년 10월 2일과 4일에 대대적인 슬라롱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디포네고로는 미리 공격정보를 파악 해 한발 앞서 덱소(Dekso)로 본진을 옮겼고 부녀 자들과 노인 꺼두 끼 아이 모조와 망꾸부미 왕자 등 디포네고로군 수뇌 들이 모두 나와 병사들을 인솔하고 들어오는 세랑 왕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계속된 전투로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세랑 왕자는 믿음직한 미 소로 그들의 환대에 답했고 디포네고로의 삼촌 뻘 인 그는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드콕 장군은 디포네고로의 슬라롱 본진을 포위 하려 했지만 먼저 스마랑 망꾸부미 왕자에 못지 않은 중요한 직책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6월 9일 네덜란드군이 강력한 폭탄을 터 뜨려 성벽 일부를 무너뜨린 후 성안으로 밀려들자 전황은 디포네고로군에게 급격히 불리하게 전개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계속된 전투에서 많은 희 생자를 낸 디포네고로군은 크게 패한 채 물러나야 했고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수비를 위해 700명 의 병력을 남겨두었으나 디포네고로군은 더 이상 탈환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1826년 7월 8일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승전의 여세를 몰아 다시 덱소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 나 이번에도 미리 정보를 입수한 디포네고로는 이 미 까수란(Kasuran)으로 본진을 옮긴 상태였습 니다. 하지만 이번엔 네덜란드군을 회피하는 것만 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덱소를 더 이상 점령하 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네덜란드군이 7월28일 족 자로 철수하던 길에 디포네고로군은 회심의 기습 작전으로 적 부대의 허리를 끊었습니다. “알라후 악바르!” 쁠레레드 전투 삽화 (https://en.wikipedia.org) 디포네고로 전쟁 네덜란드 지원을 협의하는 마두라 술탄과 재상 (https://m.kiblat.net)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3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수풀 속에서 느닷없이 뛰어나와 아귀처럼 달려드는 디포네고로군은 앞 서 몇 번의 승전으로 자만에 차있던 네덜란드군 을 강타했습니다. “적장을 잡아라! 쁠레레드에서 당한 것을 철저히 갚아 주어라!” 이 전투에서 코치우스 대령과 족자 끄라톤의 두 왕자가 처참하게 전사했고 네덜란드군 사령관 환 긴(van Geen)은 간신히 목숨만 살려 수하 몇 명 과 도주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네 덜란드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디포네고로 군은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후1826년 내내 네덜란 드와 망꾸느가라안 봉국의 군대들을 맞아 승승 장구했습니다. 바글렌에서도 농민군이 네덜란 드군을 몰아냈고 끄지완(Kejiwan)에서도 베이 왕자(Pangeran Bei-조요꾸수모 왕자)가 승전 보를 전해왔습니다. 족자 북동부 방면의 들랑구 (Delanggu) 지역에서는 양쪽의 대군이 맞붙는 매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전황이 디포네고 로군에게 크게 유리해지면서 네덜란드군을 헤치 고 나가 결과적으로 ‘들랑구 대첩’이라 불려 마 땅할 큰 승리를 거둡니다. 여기서 디포네고로군은 수십 정의 소총과 12문의 화포를 노획했습니다. 그후 한동안 네덜란드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 자 디포네고로군 전략고문이 되어 있던 끼아이 모 조의 제안에 따라 디포네고로 왕자는 수라카르타 지역에서 망꾸느가라안 봉국에 대한 대규모 공세 를 조직했습니다. 네덜란드측에 가담해온 망꾸느 가라 2세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술탄 전하 바글렌 산과 들은 물론 그들의 부대 안에도 있을 것이란 의구심이 네덜란드군 고위 장교들 사 이에 팽배했습니다. 디포네고로는 그 사이 덱소에 본진을 갖추고 부대를 재편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 비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1 1825년 말 디포네고로군은 이모기리를 공격하 던 네덜란드군을 격파했고 족자술탄국 동쪽 지역 에서는 뚜멍궁 수로네고로(Tumenggung Suronegoro)가 이끄는 군대가 네덜란드군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많은 소총과 화포들을 노획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족자 술탄국 서편에서는 전열을 정 비한 네덜란드군이 덱소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포위해 들어왔습니다. 치열한 방어전에서 적잖은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디포네고로군은 네덜란 드의 예봉을 잘 막아냈습니다. 쁠레레드(Plered)는 1677년 마두라의 뜨루노 조요 왕자가 이끈 반란군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마 타람 까르타수라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왕가의 인물인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매우 의미깊은 곳이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디포네고로는1825년 쁠 레레드를 손에 넣은 후 몹시 기뻐하며 덱소의 본 진을 쁠레레드로 옮겨오기까지 했습니다. 디포네 고로군이 이동과 기동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릴 라전 위주의 군대였다 해도 본진의 잦은 이동이 번거롭지 않을 리 없었지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쁠레레드에 입성했습니다. 그곳에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모든 백성들과 귀족들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노술탄께서 족자에 돌아오셨다는 것 말입니다.” 수라카르타 접경의 동쪽 지역으로 군대가 이동 하던 중 알리바사(사령관) 센똣 쁘라위로꾸수마 가 디포네고로 왕자의 말을 따라잡으며 우려섞인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일찍이 영국이 유배시 킨 노술탄 하멍꾸부워노 2세를 네덜란드가 족자 로 다시 불려들이기 위해 삐낭섬에 사람을 보냈다 는 소문이 그 사이 자바 술탄국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1826년 9월 21일 족자에 도착해 다시 술탄으로 즉위한 것입니다. “하멩꾸부워노 5세 전하를 폐위하고 노술탄께서 다시 즉위하셨다는 소문에 귀족들 사이에 동요가 있습니다. 특히 망꾸디닝랏 왕자님은 끄라톤으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모 양이고요.” 노술탄과 삐낭섬에 함께 유배되던 중 탈출해 우여 곡절 끝에 족자 술탄국에 돌아온 망꾸디닝랏 왕자 는 디포네고로군의 정예부대 중 하나인 삼비로조 (Sambirojo)의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하멍 꾸부워노 왕가의 상당한 위치에 있던 그의 동요는 디포네고로군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분으로선 다시 뵐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 버님이 돌아오셨으니 만감이 교차하겠지.” 다음 호에 계속 수라카르타 등지에서 벌어진 농민군의 저 항에도 맞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엘 중령(Letkol Diell)! 자네는 반유마스 의 반군들을 진압하고 수리아디닝랏 왕 자(Pangeran Suryadiningrat)가 쁠레레드를 다 시 공격해 왔습니다. 네덜란드군 클리렌스 대령 덱소 22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하지만 쁠레레드의 강고한 방어력에 네덜란드의 초반 공격은 무위에 그쳤습니다. 쁠레레드의 방 어선엔 용맹스러운 소년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총 사령관 ‘알리 바사 쁘라위라디르조(Ali Basah Prawiradirjo)라 불리는 센똣 쁘라위라꾸수마 (Sentot Prawirakusuma)였습니다. 그는 당시 19살이었어요. 디포네고로의 다섯 번째 부인 라 덴 아유 렛나닝시의 이복동생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멍꾸부워노 2세의 사위이자 디포네고 로 왕자의 장인어른이기도 한 라덴 롱고 쁘라위로 디르조(Raden Ronggo Prawirodirdjo)였고 앞 서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일찌기 마디운 반란의 수괴로 몰려 덴덜스 장군(General Daendels)에 게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 드를 극도로 미워한 센똣이 일찌감치 디포네고로 군에 합류해 끼아이 모조 아동들은 수웰라(Suwela)라는 지 역으로 소개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텅 빈 슬라롱 에 도달한 네덜란드군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 므로 디포네고로군의 정보력과 기동력에 혀를 내 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포네고로가 심어놓 은 눈과 귀가 이슬람 울라마들의 강권에 따라 ‘자바 땅의 술탄 압둘하미드 헤루짜 끄라 아미룰묵미닌 사이딘 빠나따가마 깔리파뚤 라’ (“Sultan Abdulhamid Herucakra Amirulmukminin Sayidin Panatagama Kalifatullah Tanah Jawa)라는 칭호의 술탄으로 추대받았습 니다.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붙였던 ‘압둘 하미 드’라는 이름도 녹아든 이 긴 칭호는 그가 자바 의 칼리파임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옛날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임종 당시 약속 했던 것처럼 족자 술탄국이라는 일개 왕국의 국왕 이 아니라 자바 전체를 아우르는 이슬람 왕국의 술탄이 된 것입니다. 그는 쁠레레드에 견고한 방 어선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1826년 4월 16일에 망꾸느가라안 봉국 의 군대가 쳐들어와 디포네고로군의 쁠레레드 방 어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일단 순순히 후퇴한 디포 네고로군은 얼마 후 네덜란드가 물러난 후 다시 쁠레레드를 차지했지만 그해 6월 6일 마두라 군 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코치우스 대령(Kol Cochius)의 네덜란드군과 족자 끄라톤에서 출정한 수리아 왕자(Pangeran Suria) 클리렌스 중령(Letkoll Cleerens) 자네는 뜨갈과 뻐깔롱랑으로 나가 적 들이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게 하시오!” “사령관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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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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