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 최계월 “조국의 영광

연관태그 검색 [태그 in 태그]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는 한국 친선방문단을 거부할 만큼 우리와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1962년 2월 도쿄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해 막혔던 한-인니 외교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60년대 초 이리안자야(서파푸아)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일본 정 부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서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 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JIKS)을 위해 당시로써는 거 금인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최 회장의 유전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인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 표는 2020년 1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큰 금액의 장학금을 JIKS에 기부하고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세워 잘살아 보겠다는 용기를 낼 무렵인 1963년 최 회장은 한국남방개발을 설립해 우여곡절 끝에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 해외투자 기업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이 5천 달러를 밑돌았을 때 교내 나래홀 강당 앞에 최계월 회장 흉상을 설치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안 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나가면 산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 후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고인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한-인니 관계가 지금 과 같이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최 회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대승적 기업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원유 확보와 새로운 유전 개발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 통령의 최측근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인맥을 활용해 서부 마두라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성 사시켰다. 베니 장군은1969~1973년 기간에 주한 총영사로 근무했던 지한파이다. 앞서 최 회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 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하르토 대통령 등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 다. 개발 초기인 1968년 인도네시아에 대한민국 해병대 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원시 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 임상조사와 위급환자 후송 등 목적으로 1969년 한국인 최초로 경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길 만큼 생각과 행동이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7 최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애국자이다. 동서냉전기인 1964년 북한은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압도했고 양국의 우호 유머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기울었다. 초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은 최계월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에 유치원 인 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일본 정·재계와 돈독한 인맥이 있던 최 회장은 외교 수완을 발휘해 네덜란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최 회장을 인도네시아에 특별 초청했 고 최 회장의 산림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데코는 대한민국 1호 해외투자에 이어 1981년 ‘해외 유전개발 제1호’라는 새 역사도 썼 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코데코는 외환보유고의 10% 규모인 450만 달러를 빌 려 인도네시아에서 산림개발에 투자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고 남부 칼리만탄주 바뚜리찐 (Batu Licin) 지역에 27만㏊를 개발해 모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현 지 간선도로의 이름이 ‘잘란 라야 코데코’(Jalan Raya Kodeco)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최 회장은 183㎝의 우람한 체구와 선이 굵은 얼굴에 운동 으로 다져진 강인한 신체. 보스 기질과 배짱 학교 등을 지어주는 등 현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또 우리 기업 진출 초창기인 1976년 자카르타에 한국학교 설립(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한·인니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 우호 관 계를 통해 회사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소망을 사훈에 담았을 것으로 그를 아는 사람 들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최계월 회장은 2015년 11월 향년 96세로 일본에서 별세했 다. 최 회장의 삶은 애국 회사의 번영’은 한국남방개발㈜(KODECO/코데코)의 사훈이 다. 매우 독특한 사훈에는 코데코 창업자 최계월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 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에 폐허가 된 조국이 영광을 되찾고 회사의 번영”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투철한 애국심과 진정한 글로벌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선구자 ‘조국의 영광
한인회 연락처
서식다운로드
기업 디렉토리
참여마당
일정표
사이트맵
사이드 메뉴
건강 및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지속하려면 체중 조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도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의 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는 폭식이나 불균형한 식습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식이요법과 운동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읽어주는 여자스트레스 관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핵심입니다. 꾸준한 습관 형성으로 건강과 체중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https://joo-da.tistory.com/임플란트 임플란트는 치아 손실 후 가장 효과적인 대체 수단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이 시술은 치조골에 인공 치근을 심고, 그 위에 크라운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치과에서의 정밀한 검사가 필수적이며, 치아 읽어주는 남자 치아 상태에 따라 맞춤형 계획이 세워집니다. 임플란트의 주요 장점은 내구성과 자연스러운 외관이지만, 시술 후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치과 방문과 구강 위생 관리로 임플란트의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https://dentalnam.com/고객센터 고객센터는 고객과 기업 간의 중요한 소통 창구입니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제품의 환불 절차, 사용법 안내, 서비스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주황오리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객의 요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만족스러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https://teetoo.co.kr/…
삥땅동 2024-10-16
한인기업 디렉토리
한인업체 등록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