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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바라와>를 발간한 이태복 사산 자바문 화 연구원장과 김주명 시인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를 출간하며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구 2억8천만명에 달하는 세계 4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는 중위연령 29세 000 명이 넘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한-인니 50년 역사에서 인도네 시아아에 한국을 알리고 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영토 091명에서 2019년에 22 100km로 서울~자카르타 거 리와 비슷할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다. “발리는 갔다왔는데 아직 인도네시아는 못 가봤 어요”라고 말할 만큼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낯선 나라다. 한국에서 한국인은 주류이자 평범한 존재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에 내리는 순간 10학년)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5 탐방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대한민국 대사관 류완수 영사는 “이번 8월은 경 술국치 주간입니다. 스마랑을 방문한 이유는 이곳 에 항일 독립 운동과 관련된 사적지가 다른 지역 에 비해 많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숙소나 고려독 립청년당이 투쟁한 곳을 학생들이 직접 방문함으 로써 1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정된 25명과 한인 회 박재한 회장을 비롯한 손한평 수석부회장 153명(2021년 대비 45% 이상 증가)으로 늘 었다. 인도네시아 재외동포가 전세계 재외동포에 서 차지하는 비중은 4.83%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은 재외동포라 부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한인 또는 한국인이라 부른다. 한 사람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는 것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데 1885년 미국 뉴 욕에 직장을 둔 상류층을 겨냥해 근교에 사냥과 낚시 등의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최고급 리조트와 주변 건설된 주택단지로 구성됐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담과 게이트 설치가 용이해지고 경비원을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게 되면서 중산층 주거지만이 아니라 저렴한 아파트와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들도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됐다. 인도네시아 내 주요 주택단지와 콘도미니엄에는 주거용 건물과 더불어 쇼핑몰과 병원과 학 교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운영되고 1942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 철도회사의 본부이며 1945년 10월 14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선언될 때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 군부대 및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위안부 시설로 이 용되던 장소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 는 장소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암바라와 성은 군 사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오랜 시간 머물 수 없 었고 1960년대 초 인도네시아는 한국 친선방문단을 거부할 만큼 우리와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1962년 2월 도쿄에서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해 막혔던 한-인니 외교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1960년대 초 이리안자야(서파푸아)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일본 정 부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1973년‘한국 최초 해 외 생산공장 1호’인 대상(당시 미원) 1981 년‘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한 나라이다. 1992년 우리나라 대외 무상원조 기관인 코이카(KOICA)의 해 외사무소 1호 설치 국가. 한국이 만든 고등 훈 련기 T-50과 잠수함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 도 인도네시아이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은 한글 수 출 1호 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낯선 땅 인도네시아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개인의 성공을 이뤄냈다. 저자는“이 책은 단기간 머물다 가는 외부자의 눈이 아닌 1981년 한국인 최초로 해외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든 서부 마두라 해상유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경 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1986년 1996년 한인뉴스가 창간했다. 이어 1997년 K-TV 1998년 벼룩시장과 한울 1999년 데일리인도네시아 1999년 창간한 데일리인도네시아는 하루 두 차례 뉴스 레터를 통해 시위와 자연재해 소식 등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해 한국인들이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한인미디어들은 웹사이트 1시간 거리의 ‘암바라와 위안부 시 설’을 방문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1시간 정도 만에 두 가지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후 경찰서에 돌 아와 운전면허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를 작성 한 후 접수 창구에 제출하면서 1인 가구 증가와 소통 기회 감소 자카르타에서 자연을 누리고 사람을 만날 공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최근 한국 사회 의 가장 큰 트랜드로 1인 가구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 네시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사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산책하고 다른 이들과 만날 공원이 적고 2002년 일요신문 2003년 2003년 한타임즈 2005년 한나프레스(한인포스트) 2006년 인도웹 2007 년 OKTN 2012년 자카르타경제신문이 설립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미디 어와 웹사이트 2018년이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과 성 장 2021년 온라인 미디어 인니투데이가 창간했다. 한인미디어는 자연재해 2023년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아 출 간한 인도네시아어판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은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공동체를 소개하 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이제 고국에 있는 우리 동포에 게 인도네시아 한인들을 소개하는 <인도네시아 로 간 오랑꼬레아>를 출판했다”라며“재임 기 간 동안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인‘인도네시아 한인 역사 바로 세우기’를 무난히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라고 출판 소감을 말했다. 저자는“이주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인도네 시아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조심해야 하고 2023년 한인회 주 요활동과 결산보고 2024 항일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몫이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9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본 역사탐방을 통해 재외한인 학생들의 역 사 소양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한편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 립 운동가들을 기리고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가 되길 바라며 2024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심의 28일 양일간 인도네시아한인 고 등학생들과 함께 스마랑 지역 역사탐방에 나섰다. 인도네시아 한인의 자취를 밟는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 재외한인학생들의 역사 소양 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바른 역사관을 새길 기회를 가졌다. 다수의 JIKS(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학생들 과 타 국제학교 10학년 297명까지 줄었다가 2장 경제·비즈니스 2종의 밧데 리팩 및 전기오토바이 생산공장을 공식 출범했다. 이날에는 PT.Baterai Listrik Motorindo 대표 인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박재한회장 2층 은 작은 도서관과 주말 예배당으로 사용되며 300만대에 달할 것이라며 공공 인프라 구축 과 환경오염 개선 관련 정부 보조금 등 정부 적극 지원에 힘입어 앞으로 eMOA가 인도네시아 전기 오토바이 시장의 산업 성장에 있어서 매우 발전적 인 전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PT.Baterai Listrik Motorindo 박재한 대 표는 인도네시아내 한국인 최초로 전기오토바이 생산 조립공장을 설립해 우리 한인기업에 근무하 는 근로자를 위한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위해 한국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15 계 KB은행과 제휴해 기존 할부제의 금융이자를 대폭 낮춘 할부 프로그램으로 한국기업에 근무하 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위한 특별한 금융을 지원 한다고 덧붙였다. 한인 기업인으로서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편의성 과 부담을 줄이면서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상생하고자 하는 박재한 대 표의 기업경영 철학이 담겨져 있다. eMOA는 초기단계에서 E1 3장 외교로 구성됐다.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7 1장에는 인도네시아 1호 한인 장윤원부터 1940년대에는 일제가 강제로 파견한 포로 감시원 등 일본군 군속의 대규모 인도네시아 이주와 항일운동. 그리고 일부는 일제 패망 후에 귀국하지 않고 잔류한 한인들 이야기. 한인회와 한인단체 6학년 학생들의 접영 시합까지 포함하 여 총 4개 종목의 시합으로 구성되었다. 본교 수영장에서 개최된 대회는 교장선생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준비운동 72점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1주일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합 격 점수를 보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경찰서 직원 들도 외국인이 시험장에 온 것도 신기한데 774명으로 줄었고 86회의 열린강좌 운영 8월 24일 8월 27일 오전 7시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모였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박재한 회장과 주인도네시 아 한국대사관 류완수 영사 9학년)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51 아버지 ACS Jakarta Angkatan Muda Kereta Api)과 일본군 간의 5일 전투로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지금은 철도 역사박물관과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고 약 600개 의 문으로 실내의 연결성과 규모에서 그 당시 철도회사의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탐방대원 학생들은 이태복 원장의 설명을 시종 진지하게 들었다. 라왕 세우를 끝으로 탐방일정 은 마무리 됐다. 탐방대원인 홍보배(JIKS 10)학생은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가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 수모워노에 독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머나먼 외지에서 항 일독립투쟁의 흔적을 좇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시간 속에 감사함과 경외감이 느껴졌다” 고 소회 를 말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 평양전쟁이라는 한편의 서사 를 보고 듣는 의미있는 여정이 었다 Bambang Soesatyo 국회 상원의장이자 인도네시아 오토바 이 협회(IMI)회장 E2두가지 모델로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제품의 대량 생산과 고객의 니즈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 게 될 것이며 E2의 기능적인 면을 살 펴보면 E1의 경우 1회 충전으로 140km(E2는 100Km)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가 내장되 어 있다. 최대속도는 70kph이며 4가지 속도 모드 가 있고 HUB 오토바이용 선택적 후진모드 기어 기능 IT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존재감 을 보여주고 있다. 한인 진출 초기부터 자카르타에는 한국학교 JIKS 박은주 JIKS)을 위해 당시로써는 거 금인 13만 달러를 쾌척했다. 최 회장의 유전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인 정필립 코데코에너지 대 표는 2020년 1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큰 금액의 장학금을 JIKS에 기부하고 K-POP 댄스 등 다양한 프 로그램들이 순차적으로 제공될 계획이다. 이 기사를 쓰는 나 역시 《무지개 공부방》을 찾 는 학생들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데 작은 보탬 이 되고자 지난 5월 <다문화 한마음 큰잔치>와 이 번 인터뷰를 계기로 500여 권의 영어책과 한글책을 기증했다. 앞으로도 뜻이 있는 한국인 학생들과 함 께 《무지개 공부방》에서 봉사 활동을 계획 중이 다. 《무지개 공부방》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더 큰 꿈을 품고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KEB 하나은행 등 여러 기관 에서 상가 월세를 보조 받았으나 Robert J Kardinal 국회의원 등 많 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자가 참석해 공식 런칭 을 축하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약 1 억 3천만여대의 오토바이로 인해 배출하는 배기 가스와 소음은 한계에 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기 오토바이로의 전환이 환영을 받을 시의적절한 런칭이라고 각 기관과 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박재한 대표는 인사말에서 “미래지향적 깨끗하 고 지속 가능한 혁신적인 교통수단인 eMOA 전기 오토바이를 인도네시아 시장에 소개하는 역사적 인 날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토 바이 시장 중 하나이며 오토바이는 인도네시아 경 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S자 코스 [신간]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재인도네시아 한인회가 오는 9월 20일 한인 의 날에 즈음해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를 출간했다. 데일리인도네시아의 신성철 발행인과 조연숙 편집장 공저한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는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간은 인도네시아에서 한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eMOA는 현지 에서의 생산과 고용 창출로 인도네시아 경제의 발 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비전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여 인도네시아를 아시 아의 전기 모빌리티 리더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 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Bambang Soesatyo 국회 상원의장은 축 사에서 2030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전기 오토바이 가 1 ‘다문화 가정 성공 1호’ 라 자랑하는 김하나 씨의 이야기를 할 때 고 교장 님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다 문화 가정 학생들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헌신 을 잘 보여준다. 또한 ‘스마랑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철도 청 년단(AMKA ‘자료 보관소’ ‘자료 저장소’ ‘자료 전산 화’로 순화하였다. 한인뉴스가 한인 기록소 또는 플랫폼이 되려면 한인뉴스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게 웹사이트를 개선해야 한다. 종이잡지는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더 라도 개별 뉴스는 실시간으로 보도해야 하고 “수상의 영광에 앞서 《한인니문화연구원》 (이하 연구원)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허브 센터로 높이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 다. 인도네시아를 생업과 교육의 장소 뿐만 아니 라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서 함께 이 해하고 《데 일리인도네시아》 신성철 대표 《무지개 공부방》 은 한 국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을 제공하며 《한인뉴스》 이영미 편집위원 가난 각 시기별 챕터 서두에 시대적 특 징을 요약하여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주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조심해야 하고 각 지역 경 찰서에 위치한 운전면허 시험장에 방문해 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거주하던 지역에 있는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지역 경찰서 위치 를 알려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개인만을 우선시하는 현세태에 선대의 경험과 가르 침을 전달해야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국의 외딴 불 모지에 흩어진 과거의 자 취를 챙기고 모아서 그들 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 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스마랑. 암바라와 지역 역사탐방으로 미흡하나마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눈으로 갈수 록 마모되고 스러지는 국외 독립투쟁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살아서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여러분의 참여로 더 보람있고 값진 역사 탐방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10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2024 항일 독립운동지 역사탐방 ▶인도네시아의 외딴 불모지에서 흩어진 과거의 자취를 챙기고 모아 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의미있게 되새김 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여행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8월 27일 개인이 소식을 올리는 등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도록 게시판 기능을 활성화해야 하며 거 주국 주류 사회에 한국 알리기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별하는 공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렇게 주변을 담장으로 두르고 차단기를 설치해서 출입을 제한한 주택 단지를 꼼쁠렉(영어 Complex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이라 부른다. 우리의 아파트에 해 당하는 주거공간은 콘도미니엄이라 부른다. 자카르타 한인의 공간 건설 후원금은 누가 냈을까? 인도네시아 대학교에 처음 한국어과가 생길 때 후 원금은 누가 냈을까? 1998년 5월사태 때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어떻게 대응했나? 한인미디어는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19세기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조성 됐다. 현대적인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시초는 미국의 ‘턱시도 파크’로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이었다. 시험에 떨어 진 후 경 험에 대한 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999년부터 문화탐방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339회를 기록했습니다. 문화탐방 이외에 12회의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및 시상식 개최 경기의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건강 한 태도를 함양할 수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수영 대회를 통해 학생들은 건강도 챙기고 더위를 이겨 내는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을 세워 잘살아 보겠다는 용기를 낼 무렵인 1963년 최 회장은 한국남방개발을 설립해 우여곡절 끝에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 해외투자 기업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이 5천 달러를 밑돌았을 때 경제와 비즈니 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으로 경제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한국계 다문 화 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자택에서 한글 경찰서에 다시 가지 말라 고 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다만 경찰서에 오기 전 미리 가져온 여권 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있었 냐고 물었다. 경찰서에서 무슨 이유로 회사로 전 화했는지 경찰서에서 실제로 자동차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봐서 합격자를 본 적 있냐고 물었다. 본 적이 있다 고 했다. 어떻게 합격했냐고 물었다. 젊은 경찰관 이 답하기를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는 한국 기업 취업과 유학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주)보성에서 4명의 졸업생이 근무 중이며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점 령한 후 조선인들을 보냈다. 이들은 일본군 포로 감시원과 군위안부 고문 공원을 대신해 쾌적하게 걸을 수 있게 했고 공적개요 등을 공개하여 국민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정부포상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한다. 올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박 재한 회장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고려독립청년단 소속 ‘3인의 열사들의 활동지와 교회’ 이후 우리는 고려독립청년단 소속이었던 민영 학 교내 나래홀 강당 앞에 최계월 회장 흉상을 설치했다. 최 회장은 국내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안 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 나가면 산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이 후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고인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한-인니 관계가 지금 과 같이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는 데에는 최 회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교도소장 교장 이 선아)에서는 방학을 앞두고 3학년 학생들이 페트 병과 투명 테이프를 이용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학교 수영장에서 경주를 펼치는 행사가 열렸다. 학생들은 팀을 이루어 3일 전부터 배를 설계하 고 제작하는 과정에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들은 창의성을 발휘해 배의 구조와 디자인을 고민 하며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체험했다.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교장 이선아)에서 2024 JIKS Swimming Competition 행사가 진행되었다. 매주 수영 수업 시간과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꾸준히 수영을 배우고 실력을 늘려온 82명의 학 생들이 멋진 수영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 여주었다. 이번 대회는 남녀 교장 이선아)에서 2024 JIKS Talent Show 행사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끼를 가진 1~6학년 110명의 JIKS 초등 과정 학생들이 56개의 공연에 참여한 이번 행사 는 노래 교직원 모두가 힘찬 응원을 보내주 었다. 학생들이 열심히 연습한 다양한 무대를 보 면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K-Culture의 열기를 학교 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한국의 자랑인 태권도와 악기 연주를 통해 서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멋진 학생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무대에서 자신 감을 키우고 무대를 관람하는 학생들에게도 자신 이 가진 재능을 더 열심히 키워야겠다는 동기가 되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꿈 과 끼를 펼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앞으로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낼 멋진 K-Star가 배출되 길 기대해 본다. 내가 바로 미래의 K-Star! 너의 꿈과 끼를 펼쳐봐! 2024 JIKS Talent Show 40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물살을 가르며 더운 날씨를 이겨내자! 2024 JIKS Swimming Competition 지난 7월 5일 (금) 교통 유도용 꼬깔콘 을 한 번이라도 건드리면 탈락이라고 했다. 시험 감독관이 세운 교통 유도용 꼬깔콘이 차량 한 대 가 겨우 지나갈 만큼 촘촘했기 때문에 직진으로 코스를 통과하고 후진으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 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시험감독관에게 시험 규칙에 대해 재차 물었다. 시험감독관은 맞다고 답변했다. 나는 시험감독관 에게 시범을 한번 보여 주면 군말 없이 시험을 보 겠다고 했다. 시험감독관이 시험용 차량에 탑승했 다. 시험용 차량은 한국으로 치면 봉고차와 비슷 한 종류였다. 시험감독관은 직진 기어로 시험 코 스를 모두 통과하고 교회와 성 당과 절 국가가 없으면 국민들이 고 통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의 중요성 그 강의를 여러 번 들으면 합 격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집으로 돌아와 운 전면허 시험에 전념했다. 1주일 후 다시 면허 시험장에 갔다. 70점이 합 격선이었는데 그 관계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인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 광고들을 통해 한인사회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한인상공회의소 그 리고 한인회와 재능 있는 연구원 가족들 덕분에 오늘의 이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하게 된 것 같습 니다.”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유공 정부포상자 국무총 리 표창을 받은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겸 손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750만 재외동포의 한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적 의 의를 되새기기 위해 2007년부터 재외동포들의 권익 신장과 동포사회 발전에 공헌한 분들을 선정 해 정부 포상을 실시해오고 있다. 재외동포를 대 표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자리인 만큼 심사과정은 해마다 더 촘촘해진다. 특히 재외동포청이 설립된 뒤 처음으로 진행되는 정부포상에서 쾌거를 거둬 이번 수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인뉴스는 사 공경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상 배경과 그간의 노력 그 부분을 인정받 아 수상의 영광을 얻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 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과 죽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2024년은 한국인이 태평양 전쟁의 포로 감시원 으로 징용되어 인도네시아 땅에서 피로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벌였고 그 후 이곳에 뿌 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 104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 다. 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걸 어온 길을 되새기며 그동안 봐왔던 한국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반응에 놀란 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가치관을 통한 상거래 관행을 자연스럽게 주목할 필요가 있 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사업가는 세상을 한 발 앞서고 그들의 생각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 럼 극적이었다. 일제에 반대하며 몰래 무기를 훔 쳐 그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한인뉴스》 학 생 기자로서 이번 역사 탐방에 참여한 나를 포함 한 25명의 학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과거의 아 픔을 잊지 않고 그래파이트퍼플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나라인 것 같 습니다. 굳이 한마디로 정의를 해야 한다면 ‘다 양성’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의 TV에 나오는 일기예보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걸쳐 비가 오겠다고……. 중국이나 미국처럼 큰 나라 전체가 비가 온다니. 그들에게는 노아의 홍수가 올 것이라는 예보나 같 은 것이겠죠. 얼룩말을 보고 흑인은 검은 바탕에 흰 줄이 있 다고 하고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Q.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유공 정부포상자 국무총리 표창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문화예술의 길’을 홀로 개척하다시피 하셨기에 수상의 의미가 더욱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정부에서 수여하는 포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는 영광이지만 그리고 어떻게 내 신상을 알고 회사로 연락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같이 운전면허 시 험장에 갔던 운전기사가 경찰에게 내가 어느 회사 에 다니는지 이야기한 것 같았다. 무슨 문제가 있 느냐고 총괄 부장님께 되물었다. 총괄 부장님께서 설명하시길 그리고 탐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 내지가 담긴 가방을 받았다. 세심한 것까지 챙겨 주는 한인회의 마음을 느끼며 탐방에 대한 기대감 이 높아졌다. 젠데랄 아마드 야니 공항에 도착한 뒤 그와 함께 역사적인 호기심과 지 적 탐구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박재한 한인회장은 “이번 암바라와 역사 탐방 은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글로벌 기업가정신 기관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회의(2013년 3월 8일)에 서는 ‘아카이브’를 ‘기록 보관’ 기념 뱃지와 간식 기사 공유와 기고 등으로 한인뉴 스를 지원해야 한다.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한동섭 교수는 재외한인언론이 정보 제공과 한인사 회 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동포언론 의 고유한 기능으로 고국과 거주국의 소식 보도 김성희(발리한국학교 교무 행정교감) 김소웅(재인도네 시아한인회 자문위원) 김영율(자유총연맹 인도네시아지부 수 석고문) 대통령표창을 수상하였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과 박재한 한인회장 김주명 시인님과 JIKS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들은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수모워노에 위치한 고려독립청년당 결 성지를 방문했다. 예상보다 작고 허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 한인들의 투쟁의 역사는 그 어떤 웅장한 건축물보다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먼 타 국에 남은 독립운동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면서 김진혁 교 사 2인 꼼플렉과 쇼핑몰 그리고 코리아센터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49 이렇게 외부와 구별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고 정의한다. ‘빗장 공동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빗장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낯선 느낌이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끝내 장렬히 자결을 선택한 그 들의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신비로우면서도 비현 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는 그 렇다고 답했다. 운전면허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 해 주겠다고 하시면서 나는 당시 거주하고 있던 지역 경찰서를 찾아갔다. 인도네시아 현지인 들은 외국인이 면허 시험장 접수 창구에서 어슬렁 거리는 것을 신기해하는 분위기였다. 경찰서 직원 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친절하게 물어 봤다. 나는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담 당 직원이 운전면허 접수 서류를 안내하면서 나는 원하는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면 된다고 했다. 시험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 었기 때문에 나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국가에서 진짜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운전 면허증이란 나를 경찰서 본관 건물 2층에 있는 한 사무실로 안 내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내 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돈을 주고 가짜 운전면 허증을 구매했다. 그리고 모두가 가짜 운전면허를 진짜 운전면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가짜 운전면허증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 이 들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평소 업무적으로 알고 지내던 관공서 업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에게 진짜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에 관해 물어봤다. 내가 저 렴하게 면허를 취득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오해 했는지 내 가 시험 보는 걸 지켜보던 젊은 경찰관 친구가 내 게 말을 걸었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내 모국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Q. 한인니문화연구원 원장으로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인도네시아는 어떤 나라인가요? 가장 많이 받아 본 질의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 려운 내가 경 찰서에서 큰소리로 200만 루피아를 줘야 면허증 을 발급해 주는 거냐고 되물었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내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 에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을 총괄 부장님께 설 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한국인 총괄 부장님은 내게 또 면허시험을 보러 갈 것이냐고 물었고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 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 시험 을 치르는 동안 시험장에서 실기시험을 본 사람이 나 혼자였던 걸 생각해 보면 내게 왜 계속 시험을 보러 오냐고 네 이버 밴드 네이버 밴드 노 병한의 자결지)를 거쳐 철도박물관 노병한 ‘3인의 열사’들이 활동했 던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열사들은 일본 군무원 으로 활동하면서도 일제의 통치에 맞서 싸운 조선 인들로 농업 전문가 뉴스 생산자와 공급자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인포스트 밴드와 인도웹 및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는 개인이 직접 소식을 전달하면서 쌍방향 소통을 한다. 2013 년부터는 한인 유튜버들이 등장했고 다문화 가 정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열린 사랑방’ 으로 통한다. 《무지개 공부방》 이란 《무지개 공부방》 은 2007년 고재천 교장님이 설립한 이래 다문화 가정의 인도네시아 어머니와 한인 2세 아이들은 혼자 남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 교장님은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며 다문화가정후원회 <찌뜨라 땅 그랑 코리안 (회장 최진덕)>과 <YAYASAN WARGA KOREAN INDONESIAN>이 주관한 K-FOOD MART 개원식이 열렸다. 앞으로 《무 지개 공부방》 에서는 한글 교육 다시 실기 시험을 보는 공터로 갔다. 시험감독관은 나 한 사 람을 위해 여러 번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워서 그런지 다시 작은 단지로 들어갈 때 한 번 이렇게 차단기를 두세 번 거치는 경 우도 있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확산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은 외부인에 대한 통제 가 더 강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외부인의 출입을 더욱 제한한다. 1998년 5월사태 전후로는 동네 골목길 도 주민들끼리 차단기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아예 설계부터 출입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주택단지는 더욱 통제가 더욱 심해졌다. 폭은 좁지만 사유지가 아닌 공용 도로와 골목 길조차 외부인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 점은 내 입장에서 낯설었다. 인도네시아 정치와 치 안이 안정되면서 주택가와 주택단지 통행이 완화됐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 시 한번 통제가 강화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단지 관리 서비스 제공 등을 꼽았다. 시티워크와 지하 물류 터널 인도네시아에는 쇼핑몰의 이름에 ‘시티워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깨끗한 바닥 그리고 2~4층을 터서 시원하게 보이도록 쇼핑몰 공간을 꾸민 곳으 로 단행본으로 만 드는 과정에서 일부 본문을 삭제하거나 축약하 였음을 밝혀둔다. 2020년 한인사 작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인 과 한국기업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계속해서 새 로운 역사를 써왔다. 서부자바주 가룻 지역의 꼬마루딘 양칠성길(Jalan Komarudin Yang Chil Sung)이 만들어져서 직접 취재해서 추 가하는 등 일부는 추가했지만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방 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고 지금 당장 본 인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나와 1층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 접 수장으로 갔다. 재시험 접수를 하고 싶다고 접수 창구에 물어보니 대사관 류완수 영사 대승적 기업관 대한민국 국민이 이주를 시작한 지는 50 여 년이 됐다. 외교부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재외 동포 수는 2017년에 31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가 수 교하고 대한체육회 대한체육회 인도네시아지회 명예고문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 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도심 테러 등 사회 혼란과 치안 불안이 심각했고 독립 투사가 되었던 그 들의 비애와 아픔에 분노하는 아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았던 그 때가 불과 80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라 얘기했습니다. 나라의 힘없음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삶이 무너지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숨까지 바쳤던 선조들이 불과 80여년전에 이 곳에서 그렇게 사셨 다는 것이 현장을 가보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직접 두 발로 걸어 서 그 분들이 걷고 뛰셨던 그 곳에 발을 딛고 선 자체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고려청년독립당의 강령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에는 그들의 의지와 정신이 그 때에 끝난 것이 아니 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해지며 독립군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 하는 마음을 간직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JIKS의 박지나 학생은 “이번 탐험을 통해 인도 네시아에서 한국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게 되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독일 국제학교의 류호진 학생은 “암바라와의 역사를 깊이 탐구하며 애국심이 강 해진 뜻깊은 탐험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12 학년 박민준 학생은 “타국에서도 독립운동을 했 다는 것이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소 감을 밝혔다. 박민준 학생의 말처럼 돈 주고 면허증을 사 는 게 진짜 인도네시아 면허증이 아닌가 하는 생 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돌아가던 길에 돈 주고 사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돈 주고 면허를 사는 게 맞냐고 되물었다.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동메달이 수여되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학생들의 수영 실력과 체력을 기르고 동시에 환경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여론 형성 동포사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 두 번째는 신체검사 증서였다. 경찰서를 여러 번 방문하기가 어려워 디자인 교육 라왕 세우에서 이 먼 타지에 끌 려와서 강제 노역을 하고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은 옛 모 습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 비극적인 역사로 가득 한 위안부 시설을 떠나기 전 마룬레드 마술쇼 마음은 그와는 반대로 무거워졌 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 역사 탐방의 첫 번째 목 적지인 ‘암바라와 성’에 내렸다. 암바라와 성은 1934년에 건설되어 처음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정치범과 성인 수감자들을 위한 교도소로 사용되었으며 많은 어머니들이 고민이 있 을 때마다 고 교장님을 찾아와 상담을 받기도 한 다.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 교장님은 《무 지개 공부방》과 교회의 선교를 이끌어갈 후임자 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1일 명예고문 몇 가지 다른 의미 없는 이야기를 더 하다 가 200만 루피아를 주면 면허증을 발급해 주겠다 고 말했다. 나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200만 루 피아를 줘야 면허증을 주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 경찰관은 살짝 흥분한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지 모두 가짜 운전면허증에 대한 방법만 알 려줬다. 왜 가짜 운전면허만 있냐고 관공서 업무 를 주로 담당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공신력과 지속성을 갖지는 못한다. 인도네시아 한인공동체의 아카이브로서 한인뉴스를 활용하는 방안 을 모두 고민하고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무 기고)을 방문하였다. 이어 수모워노 고려 독립청년당 결성지에서 탐방단의 목소리 로 결기가 넘치는 청년당의 강령과 ‘대 한독립만세’를 외쳤다. Novotel Semarang에서 탐방 첫 날을 마 감했다. 항일의거지(무기고)-성요셉성당 수모워노-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 12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둘째 날에는 스마랑 대표 관광명소인 라왕 세우(천개의 문)에 들렀다. 라왕 세우는 네덜란드 정 부에 의해 1904~1907년에 건설되었고 문인협회 김 주명 사무국장 및 한인회 사무국을 포함 총35 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가루다항공편의 스마 랑으로 향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조선인‘위안부’ 등의 군속의 신분으로 1942년 9월 14일 자카르타 딴 중쁘리옥 항에 도착하여 힘든 삶을 견뎌 낸 선조들의 자취를 따라 첫날 첫 탐방지인 암바라와로 이동했다. 드라마 세팅장처럼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암바라와 성은 옛 모습의 처연함을 담고 있지 않았고 관광지 로써 탈바꿈이 진행 중이었다. 허락된 소수를 제외한 탐방원들은 입구까지만 입장이 가능했다. 한편 문화 등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런 뉴스들이 쌓여서 역사의 기록이 되고 있다. 누구나 뉴스를 만들고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문화·예술단체 문화적 장벽을 넘어설 수단이 필요한 것. 그는 “서로가 어떤 배경을 가졌 는지 모를 때 선입견 없이 만나 사회가 융합될 수 있다” 며 “공원처럼 모두가 무료로 이 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현준 교수는 서울에서 도심 공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지하 물류 터널을 제안했다. 자 율주행로봇이 드나들 수 있는 지하 물류터널을 개발해서 화물차 운행 감소에 따라 여유가 생긴 차선을 공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서울의 통일로를 지하도로로 만들고 지 상을 공원으로 쓰는 공약을 제안한 정치인들도 있다. 자카르타도 이런 방안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담이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아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얼마나 교류하나? 아파트 또는 주택단지 밖에 이웃들과 얼마나 교류하나? 안전을 위해 만든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안전할까? 유럽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고급 주택단지가 위치한 주변 이웃 마을과의 단절과 주택단지 내 거주자 간의 단절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게이티드 커뮤니트의 폐쇄성으로 인해 담장 안에서 범죄가 증가하기도 한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주택단지의 담장이나 아파트의 보안검색대보다 이웃 간의 교류와 거주자들 간 의 친밀한 공동체를 통해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98년 5월사태 때 평소에 현지인 이웃에게 잘한 사람은 이웃들이 폭도의 공격을 막아준 반면 현지 이웃이나 고용인에게 못되게 군 사람은 피해를 입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이 여럿이다. Jl. Senopat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51 인도네시아 한인들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현지 생활이 어려 울 수 있다. 한인 미디어는 이들에게 인도네시아 법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원유 확보와 새로운 유전 개발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 통령의 최측근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인맥을 활용해 서부 마두라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성 사시켰다. 베니 장군은1969~1973년 기간에 주한 총영사로 근무했던 지한파이다. 앞서 최 회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 로 가던 유조선 뱃머리를 돌려 한국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드 플라자 민간인 신분의 보도요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자문위원 등을 지냈 다.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국제학교 이사장 민주화 시위와 압둘라흐만 와힛 대통령 탄핵 민중 중에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타국에서 그 세 종 류의 입지로 산 군속들과 자신을 대비해 시간여행을 해보길 바랍니다. 억울함과 희생 바깥 풍 경은 밝았지만 바꾸면 안 된다고 하던 직진 기어와 후진 기어를 여러 번 변 경하고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여러 번 건드린 후 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시험감독관에게 시험 규칙에 대해 다시 물었다. 시험감독관은 씩 50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보겠 다고 했다. 내 예상대로 직진으로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반복 적인 실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번 페트병 배 경주대회는 학생들에게 창의성 과 협동심 발전해왔는지를 소개한다. 1920년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 장윤원부터 최 근 건너오는 한국인까지 한인의 삶은 한국과 인도 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조건에 의존하며 방수기능이 제공된다. 색상 은 새도우 블랙 배영 백인은 흰 바탕에 검은 줄이 있다고 한 답니다. 다른 말인가요? 얼룩이 진 말이라는 점에 서는 본질은 같죠. 인도네시아는 지리적인 특성으 로 인해 수많은 종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다양성 이 있는 나라이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 베트남 전쟁 중에 보았던 한인 2세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고 한다. 2004년부터 자택에서 소수의 학 생들에게 성경과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보통 해외 동포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생활 하는 낱개의 삶에서 함께 어우러져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간다는 공동의 역사를 축적해 간 것이 상 당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복도 가장자리는 다채로운 컨셉의 식당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로 채웠다. 자카르타 스나얀 플라자 복잡한 본격적으로 종목별 개인 경기가 시작 되었다. Mr. Kevin와 Ms.Lulu(JIKS 부 모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이 없죠. 그 보편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첫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문화탐방을 사회화 하면서 교민사회에 대한 첫사랑 부회장 브로커는 그 가격에 일정 마 진을 덧붙여 운전면허를 알선한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한국인은 브로커에게 구매한 가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윤리 경영을 최우선 으로 내건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지인들도 비루함을 매일 짊어지고 살았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하루하루를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서류상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고 임금을 지급하였으니 정당한 노동행위라고 주장 하면서 실제 놓여진 상황의 실증을 회피하고 비정상이 정 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 뻐자뗀몰은 주변 주택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 소비자가 주된 방문객이다. 상업공간에 내재된 견고한 사회적 사물놀이 사산문화원 이태복 원장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살면서 상호작 용을 한다. 목포대학교 고고인류문화학과의 홍석준 교수는 차단기와 담장이 내부의 주민 들과 외부의 비거주자들을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산가 능인구가 약 70%인‘젊은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전체 인구의 40%에 걸맞 게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 규모도 동남아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동남아의 선도 국가이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40여년 전 인도네시아는‘미래의 대국’이라는 수식어 늘 붙어 있었다. 이후 잠재력이 발현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 다. 최근 ‘미래의 대국’이 기지개를 켜고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는 낯선 국가이다. 1년 내내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만 있는 날 씨와 17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배를 완성했다. 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력을 높이고 무게를 낮추기 위해 페트병 뚜껑을 닫아 공기를 가득 채 우고 테이프의 접착력을 고려하여 페트병을 어떻 게 연결해야 좋을지 직접 체험하며 과학과 기술에 대한 흥미를 키울 좋은 기회가 되었다. 대회에서 사용된 재료는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이었다. 가정에서 페트병을 모아 재활용하 는 과정을 거치며 석유와 목 재 선거관리규정 제정 보고 순으로 진행하였다. 박재한 한인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202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로 한인회에서는 양국 국민들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와 체육행사를 통해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며 한 인회 임원의 참여와 후원에 감사를 표했다.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9 김진연 책임 올해 한인회에서는 전반기에 작년 인니어본으로 출간했던 ‘한-인니 우정의 50 년 여정’을 재정비하여 한인의 관점에서 확장된 시각의 한글판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어 한인회는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들이 탐방했던 역사적 의미 가 있는 수모워노(Sumowono)를 비롯한 암바라와 일대를 미래세대인 한인 학생들 이 참여하는 역사탐방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박회장은 9월 20일 ‘한인의 날’에는 인도네시아 한인으로서의 연대감을 견 고히 함과 동시에 인도네시아 이웃들과 어울리는 문화행사를 통한 축제를 계획하는 등의 여러 사업들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했다. 회의 중 임원들은 한인회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결성 등 구체적인 논의의 필요 성을 공감했다. 식전 행사로 한국인 사망원인 2위인 심 뇌혈관계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 K-LAB 김진연 책임의 ‘심장이 말해요’ 강연을 들었다. 한인회에서 준비한 만찬을 나누며 총회가 마무리되었다. 선교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한인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은 봉 제 선발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해 한인회의 어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한국학교뿐 아니라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도 신청하여 갈 수 있다는 사 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하였기에 제비 뽑기를 통해 참여할 아이들이 정해졌고 선생님 성 노예가 되고 성당 성요 셉 성당(일본군의 연합국 국민 억류소 성장기 세 번 째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세계한인 무역협회(월드옥타)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공: 연합뉴스) 훈장과 포장 선정의 절차는 재외동포의 경우 세미나 소비촉진 확대 를 위해 상호협력하고 지원을 목적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7월 22일(월) 손양섭 쇼핑몰 수모워노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지 등을 돌아봤다. 박 회장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순국선열들 의 애국정신과 민족적 기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 획했다”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살피고 의미 있 는 기록으로 남겨 되새기는 게 한인회의 소명”이 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 104주년이 되는 ‘한인의 날’(9월20일) 즈음 해 출간한 책자 ‘인도네시아로 간 오랑꼬레아’ 도 소개했다. 이 책은 지난해 발간된 ‘한-인도 네시아 수교 50년 기념 책자’의 한국어판이다.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 공동체를 소개하기 위 한 목적이 담긴 책이 인도네시아어판이라면 한국 어판은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 한인들을 소개하 기 위한 것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을 맞아 KT&G 상상유니브 수석부회 장 수수료를 적게 받는 친한 브로커를 소개 해 주겠다는 답변밖에 받을 수 없었다. 한국인 지 인을 통해서는 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 는 수 없이 인도네시아 현지 지인들에게 진짜 운 전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을 물어봤다. 인도네시아 현지 지인들도 돈을 주고 운전면허증을 구매했고 수하르토 대통령 등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 다. 개발 초기인 1968년 인도네시아에 대한민국 해병대 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원시 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 임상조사와 위급환자 후송 등 목적으로 1969년 한국인 최초로 경비행기를 구매하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길 만큼 생각과 행동이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7 최 회장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애국자이다. 동서냉전기인 1964년 북한은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압도했고 쉐라톤 호텔(Sheraton Grand Jakarta Gandaria City Hotel)에서 한인회의 명예회장 스틸그레 이 시 설 시간이 될 때마다 실기시험을 보러 갔 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인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운전면허증 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인이든 인도네 시아 현지인이든 다들 나를 괴짜처럼 바라본다. 아직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짜 운전면허증이 진짜 운전면허증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작은 씨앗을 뿌렸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나타 나서 씨앗을 계속 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 다면 언젠가는 진짜 운전면허증이 인정받는 세상 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인도 네시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선이 한 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협력하고 우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고 시설은 지하로 옮기면 어떨까? 새로 생길 한인회관이 인도네시아에서 파편 화된 개인으로 사는 한국인들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장소이자 한국인의 역사성이 보존되는 공간으로 만 들어지길 바란다. 유현준 교수는 “모든 것이 새로 운 질서로 바뀌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현 재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100 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끝] 시인은 세상을 두 발 앞선다”고 합니 다. 이 말은 시인의 통찰력 시험 감독관을 통해 어떻게 필기시험을 준 비해야 하는지 물었고 시험감독관은 시험을 치렀 던 공터에 붙어 있는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도 착한 사무실 책상 위에는 탈락이라는 붉은색 도장 이 찍혀 있는 내 운전면허 접수증이 있었다. 시험 보기 전에 이미 도장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시험 감독관은 붉은색 도장이 찍힌 접수증을 돌려주며 시험감독관이 나를 공 터 옆 사무실로 안내했다. 어제와 같이 시험 접수 증에는 붉은색 불합격 도장이 미리 찍혀 있었다. 붉은색 도장을 보자 시험을 본 당일에는 재시험 접 수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 쉬는 날에 다시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경찰서를 나섰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신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 기 시작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 정착하면서 땅그 랑 찌뜨라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심리적 아 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과 예배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한인기업의 후원과 봉사의 손길로 운영되는 《무지개 공부방》 12년 전 메리츠금융그룹이 기증한 46인치 스마 트 TV가 여전히《무지개 공부방》의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조금은 낡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된 시설과 물건들에서 고재천 교장님과 사모님의 정 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국 2세 자녀들에게는 다문화 속 희망의 색을 덧칠하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르치는 《무지개 공부방》 이야기 한동훈(JIKS 아니면 역사적인 여정을 통해 16 I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느낀 감정들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일까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암바라와 성의 무 거운 역사와 그곳에 서린 아픔을 가슴에 새기며 아시타몰 등 자카르 타 시내 중심가에는 여러 건물의 지하를 연결해서 지하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게 상가 를 만든 곳도 있다. 50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자카르타의 토지가 제한적이고 땅값이 비싸고 건물이 밀집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쇼핑몰은 공원과 거리 등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대체하기 어렵 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는 여러 강의와 저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소 통하면서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 조했다. 자리에 앉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와 식당은 취향과 가격대 등 기호나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자카르타 남부에 위치한 뽄독인다몰은 주변 부촌과 아 파트에 거주하는 고소득의 외국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주된 방문객이고 아이들이 바르고 정직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아틱화이트 등 각각 총 6가 지가 있다. 이제 출범한 eMOA 생산공장은 현재 인도네시 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변화하는 차세대 교통 수단인 전기차의 비전과 함께하는 전기 오토바이 공장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며 특히 주목 할 만한 점은 한국기업으로 인도네시아 이륜시장에 도전 장을 내밀어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발이 되고 운송 및 이동수단을 이끌어 나가는 미래비전형 기업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아직 해결과제가 많지만 한국기업 특유의 끈기 와 집중력으로 인도네시아 전기자동차는 현대 악기 연주 등 그동안 갈고 닦았던 학생들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다 양한 무대로 구성되었다. 본교 나래홀에서 개최된 행사는 학생 대표들이 유창한 영어로 재미있게 진행하였으며 관람하는 학생 안전 추 구 안정적인 정착의 반세기는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가진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통해서 일구어낸 값진 시간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 해 준 우방국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3장에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 발전 단계에 따라 태동기 앞으로 더 의미 있는 행보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허브 《한인니문화연구원》을 성장시킨 주역’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과의 특별인터뷰 제17회 세계 한인의 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벼룩시장과 한울 양국 간 외교와 경제 교류의 틀 안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장기 적으로 체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60년 대 말 이후 양국 사이의 상호보완적인 경제 협력이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6)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55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양국의 우호 어떻게 정착했는지에 대한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안내서이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에 대 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교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어용 상인 등을 포함한 12명을 사살하고 억류소장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여러 번 방문해서 그런지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봉사 인 력과 재정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현실이 공개적으로 논의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 대 한 인식은 그리 활발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불균 형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많다는 뜻 이겠지요. 동남아의 인도네시아 문화와 동북아의 한국이 문화의 각각의 고유성들이 깊이 있게 소통 된다는 것은 그 문화적 토양의 다양성을 상호 이 해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한국사회에 인도네시아를 알리는 일들을 다양한 채널과 기회를 통해서 수행하고 싶습니다. 작년 한-인니 50주년으로 한국사회가 인니에 관 심이 높아진 만큼 그에 대응하여 좋은 통로로서 연구원이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인도 네시아 연구자들과의 결속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한인 여러분들이 자주 찾고 싶 은 연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려 오시는 중요 한 목적 중 하나는 경제활동입니다. 그 경제활동 이 더 원활하게 성과있게 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 아 사람들의 정서 역사의 비극이 서려 있는 ‘암바라와 성 식사 후 역사의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기를 바 랍니다.”라고 말하며 역사탐방 에 적극 참여할 진정성 있는 학생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연맹 기관) 등으로 부터 각각 대상자 추천을 받는다. 동일 국가 내 추천 훈격의 형평성 확보를 위하여 대사관이 종 합. 조정하여 추천한다. 추천 후보자가 다수인 경 우 영 화감독 영어 영어원어 민교사)의 재치 있는 진행으로 수영 경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예술의 상상력이 때론 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대부 분의 우리 교민들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시간 이 흘러갈수록 인도네시아 현지인과 교류하지 않 고 ‘한국인 섬’ 속에 갇혀 지내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인도네시아 거주 한인들이 누릴 수 있는 인니문화예술 인프라는 한 국의 인프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방대 한 나라에 살면서 우리 교민들이 애써 이런 부족 함을 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어느 시인에게 “당신은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인이 “당신은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우리 안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도 경제활동만큼이나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봅 니다. 연구원의 활동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알아가면서 인도네시아와 친 숙해지면 좋겠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바다 위에 길게 펼쳐 있는 넓기만 한 섬나라가 아니라 밀림의 중심부처럼 아주 깊 은 나라입니다 예전과 달리 오프라 인 모임도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물가가 오르고 작은 카페와 식당이 문을 닫 고 새로 생기는 식당과 카페는 고급화됨에 따라 개인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 는 공간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원격근무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직장에서 동료를 만 나는 일도 줄었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업무를 논의하지만 예전처럼 한 사무실에서 함께 보내고 식사하면서 쌓을 수 있는 유대감은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현준 교수는 화상통 화가 된다고 손잡는 데이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프라인 공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리아센터와 한인회관 자카르타에는 한인과 관련된 공간으로 한인회가 입주해 있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영 사동과 한국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코리아센터가 있다. 코리아센터에는 80~90년대에 설립 된 회사들이 아직 있고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습 니다. 이러한 뜻깊은 활동에 진정성을 가지고 참 여할 학생들을 모집하여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 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2020년 9월 20일 올해에는 민들레반 학생 들도 함께 참여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에 많은 교직원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내게 의자에 잠깐 앉으라고 했다. 직급이 높은 경찰관 같았다. 그 경찰관은 내게 간단한 안부를 물은 후 외출과 휴식이 있었다고 식민지배 권력에 의해 강제 로 동원되어 목숨을 위협받았던 국가적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정립되어야하는 역사가 있기에 그 첫 역사탐방지로 ‘중부자바주 암바라와 지 역 항일독립운동지’로 정하였습니다. 잘 고증하지 않은 지난 일이라는 틈새와 현재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맞는 태도일까요? 부끄러운 역사라고 각색하거나 포장할 일도 아닙니다. 거기에서 배움이 있고 기억이 있고 전승이 있다면 우린 다른 미래를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주권이 없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합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대외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것을 의미 하며 국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재외동포라고 스스로를 역사와 거리를 두거나 우 선 대사관에서 한인단체(협회 우리 학생들이 역사적 소양을 쌓으며 한국인의 정체성 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 기획되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역사는 학교 역사 수업시간에만 배웠던 아이가 우리 선조들이 인도네시아 땅까지 보내져서 겪었던 고 통과 아픔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여 1박 2일의 일정을 보내고 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스마랑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비행기 날개 사진 한 장. 일정 마치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며 푸짐한 저녁 식탁 사진 한 장. 자 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한 개가 연락의 전부였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와~~~” 라며 역사탐방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암바라와 조선인 소녀 위안소에서 운 전면허증 취득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먼저 주변 지인들에게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방법을 물었 다. 나는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방법을 물 었지만 운전면허를 이미 취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필기 시험장에 있던 직원이 내 운전면허 신청서 에 필기시험 합격 도장을 찍어줬다. 처음 필기시 험을 접수했던 접수 창구로 가서 실기시험을 접수 했다. 필기시험과 동일하게 소정의 실기시험 인지 비용을 지불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10분 정도 기 다리니 실기시험 담당 경찰관이 나를 실기시험장 으로 안내했다. 한국에서 운전 경력이 몇 년 있었 기 때문에 실기시험에는 자신이 있었다. 시험 장소는 경찰서 내에 위치한 공터였다. 한국 처럼 별도의 시험 장소가 세팅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도착하자 시험감독관은 공터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우기 시작했다. 꼬깔콘 간의 간격은 시험감독관 마음대로였다. 시험감독관은 눈대중 으로 꼬깔콘을 모두 세운 이후 내게 시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시험 항목은 단순했다. 일자 코스 운전이 하고 싶어졌다. 차량을 구매하기 전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지 위안소 운영자 등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군 소속이든 아니든 가릴 것 없이 낯 선 땅에서 굶주림과 고된 노역과 차별 대우를 견 뎌야 했다. 조선인이지만 국적은 식민통치국인 일본으로 되 어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이들은 조선인 이면서 일본인이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인이기도 한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조국의 독립과 개인 의 생존을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일부는 스 스로 조선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고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의 5분의 3 이상을 동포 사회 인사로 위촉하여 자체 공적심사위원회를 개 최하여 대상자 선정하여 포상적격자 선정을 위한 사전심사를 강화하였다. 외교부 홈페이지 등에 추 천대상자 명단 유머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터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유통 유튜브에 운전면허 시험 관련 강의가 있으며 음 악 의거 현장에서 이 경험은 우 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흔히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말의 뜻 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되새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영학 열사와 동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맞섰던 그 장소에 두 발로 서서 그들 의 결단과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오롯이 체 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성당과 그 속에 담 긴 역사의 흔적들을 보며 단순히 책에서 읽던 역 사적 사실이 아닌 이 수상의 영광은 저 한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한 회 한 회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추억과 시간 이 정신을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꼭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 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인도네시아 땅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었을 거라며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 리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를 보니 책을 통해 글로 배우 는 몇 년의 역사 수업보다 1박 2일의 현장체험이 이렇게 강력하게 아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한인회 여러분의 꼼꼼한 준비와 배려 그리고 인솔하신 한국국제학교 선생님들의 섬세한 보살핌으 로 아이는 1박 2일동안 많은 배움과 한국인으로서의 귀한 생각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서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이루어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탐방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 과 준비과정이었겠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 하고 싶어 시작한 편지가 꽤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이런 기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며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 학부모 고정화 드림 아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의 사무실에는 설립 당시의 풍경이 남아있다. 교회 이로 인해 코데코의 사세가 기울었다. 초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은 최계월 회장은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에 유치원 이를 계기로 2007년 《무지개 공부방》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우리은행 이를 바탕으로 실력을 키우고 이미 결과가 정해진 시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 현지 어머니 와 함께 자라며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 이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에 대한 상처 와 불신도 깊었다. 고 교장님은 이러한 다문화 가 정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며 그들 역시 한국인의 자녀임을 강조하며 이번 역사탐방을 통해 학 생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점들을 강조했다. 일본 군부대 및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위안부 시설로 이용 되던 이사(재적임원 156명 중 82명 참석(위임장 포함))가 참석한 가운데 ‘2024년도 이사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박재한 한인회 회장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이상덕대사로부터 전달받은 국무총리 표창장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45 지금까지의 50년보다 앞으로 더 긴밀해질 양국 의 관계를 위해서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한 단계 심화된 교류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설 레게 됩니다. 저는 이러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 고 영영 길에서 헤매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웃 음). 계속 길을 만들며 걸어가겠습니다. Q. 어떤 면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셨다고 보시는지요?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 도네시아에 오는 한인들도 다들 큰 꿈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리나 생업에 쫓기다 보면 문화예술 분야에 마음을 닫고 지내게 되죠. 문화예술이 밥 이 되지는 못하니까요. 우리 한인들이 문화예술 분야에도 마음의 문을 살짝 열어 놓게 하는 나무 쐐기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연구원의 역할에 대한 수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슬람 문화와 인도 문화가 공존하 는 곳. 인도네시아 영토의 최서단과 최동단의 거리는 약 5 이어 데일리인도네시아와 한인포스트의 뉴스도 인용했다.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모두가 미디어가 될 수는 없다.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한인뉴스는 1996년 7월 창간 이래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발행해왔고 이에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한인뉴스를 통해 인도네시 아 상황과 대응 방안을 알렸고 이제는 점차 동포 사회에서 알려지고 있으며 이제부터는 문화강국인 인도네시아의 저력을 한국사회에 알리는 것이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는 최고의 발전단계를 구가 하고 있는데 인 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이나 현지 화교들과 협력 해 인도네시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일제 패 망 후에는 일본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의 보복공 격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일본인과 분리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더 강조했다. 한편으론 일제 패망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인도네시 아를 점령하려 하자 인도네시아 민병대와 일본군 잔류자들과 협력해 네덜란드에 저항하는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1940년대에 온 조선인 가운데 대다수는 일본이 패망한 후 2~3년 사이에 조선으로 귀국했지만 소 수는 남아서 인도네시아에서 큰 족적을 남긴다. 그 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60년대에 오는 현대 한국인과 조우한다. 1) 인삼 상인 인삼의 나라 조선답게 인도네시아 체류 한인의 선 봉은 인삼 판매상들이었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싱가포르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 시아)로 가기 위해 여권 발급을 기다리던 한국인 인삼 판매 행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930년에 싱가포르에서 인삼 행상을 했던 한인이 동아일보 에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에 한인이 체류했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인삼 행상 임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인 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인도네 시아 시사 뉴스 인도네 시아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의 환경과 사회에 긍정 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다. 한편으로는 수시로 한국을 오가고 인도네시아 생활 정보 인도네시아 서민속으로 한 걸음 더... PT. Baterai Listrik Motorindo 박재한 대표 인도네시아 에서 운전면허는 각 지역 경찰서의 주요 수입원이 라고 한다. 각 지역 경찰서가 브로커에게 정해진 상납금을 제시하고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도 이런 흐름을 따르고 있다. 1. 식민지 조선을 떠나 또 다른 식민지 인도네시 아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 조선인들 1920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이 책에서는 한 국인의 인도네시아 진출 태동기로 분류한다. 하지 만 이보다 앞서서 적도의 자바섬과 말라카해협 인 근에서 활약했던 인삼 상인에 대한 기록은 1890 년대부터 존재한다. 20세기 초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온 한인들은 일본 과 관계가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 1호로 불리는 장 윤원은 1919년 3·1 운동 직후 일제의 탄압을 피 해서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갔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자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끌려 온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 쟁을 벌이며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했고 인도네시아 한인이 첫 발을 내디딘 이후 100년 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2020.12)를 편찬한 바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역사의 숨결을 찾아 암바라와로 떠난 시간여행 박승헌 (학생기자 인도네시아에 관심과 애정이 크고 인도네시아에 대 한 첫사랑을 실현하면서 시작된 단체입니다. 탐 방을 영상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많습니 다. 요즘 사람들은 텍스트 정보를 읽지 않은 추세 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직접 연구원을 방 문하지 않더라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방문하실 수 있도록 연구원의 활동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 에 게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인도네시아 문학상이 재정의 어려 움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한인이 첫 발을 내딛은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를 편 찬한 이래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습 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24년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학생(10~11학 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탐방을 통하여 묻혀 졌던 이야기를 되살리고 무관 심 속에 사라져갈 역사의 현장을 가슴에 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세 종류의 사람 탄압자 인도네시아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인 총괄 부장님 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제 경찰서에서 회사 로 연락이 왔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집에 살까? 한국인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 인들의 역사성이 담긴 공간은? 주택단지와 아파트 인도네시아에서는 원 래 돈을 주고 면허를 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 다. 원래 그렇다는 말을 들을수록 가짜 운전면허 증에 대한 내 본능적인 거부감은 강해졌다. 다음 주 시간 되는 날에 시험을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 하고 경찰서를 나섰다. 그 다음 주에 다시 시험장에 갔다. 시험장 접수 창구를 가니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오랑 꼬레아(orang Korea)는 이질감이 가득한 존재가 된다. 요즘은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같은 한류 컨텐츠를 통해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을 경험하며 한국인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시대 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고 애써 설명해야 했다. 1960 년대에 온 대한민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라고 인도네시아인들은 우리와는 얼굴 생김이 조금 다르지만 어른을 공경하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기 관과 한인단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뉴스를 공유해야 한다. 원고료를 지불함으 로써 원고의 질도 높여야 한다. 정부 기관과 한인들도 한인뉴스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한인뉴스는 기업들의 광고수입 과 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하며 인지 비용을 지불하고 접 수 창구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분쯤 지났을 때 일본 정·재계와 돈독한 인맥이 있던 최 회장은 외교 수완을 발휘해 네덜란드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귀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2년 최 회장을 인도네시아에 특별 초청했 고 일본군이 연합국 국민을 억류했던 성요셉 성당 일부 산업협회가 회보를 발행하지만 역시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아서 기록으로 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의 기록이 1회성으로 휘발되지 않고 모여서 저장되고 도서관의 책처럼 구글의 정보처 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한인뉴스를 아카이브(archive) 겸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을 제 안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카이브는 역사적 가치나 장기 보존의 가치를 지닌 기록 이나 문서들의 컬렉션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기록이나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 일요신문과 한타임즈는 이미 폐간했고 일행은 곧 바로 티크 트리(Teak Tree)라는 현지 식당으로 이동했다. 허기진 학생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고 입주민들에게 영역성을 제공한다. 반면 지역사회에 위화감을 조성 하고 통행제한과 주변지역 단절 등을 야기하는 문제점도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자 동차 자문위원 자연재해나 소요사태 등 위기 상황시 신속한 정보 전달(위기관리) 자원의 소중함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체험했다. 윤한수 교사는 “학생들이 일 상생활에서 쉽게 버려질 수 있는 페트병이 새로 운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었다”라고 강조 했다. 경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배가 뒤집히거 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 으나 팀원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자카르타한국국제학 교(이하 JIKS) 교사 등이 참여했다.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학생들은 한인 회에서 준비한 탐방팀 티셔츠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JIKS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장학금도 지급하며 더 많은 학생들에게 교 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무지개 공부방》 의 주요 활동은 포스코 현지 공장 계열사 조선내 화 등 한인 기업의 지원을 통해 한국계 2세들에게 월 장학금을 제공하고 재외동포 네트워크 형성 등을 꼽았다. 48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1945년에 포로감시원으로 왔던 조선인들은 소통과 교육의 수단으로 <조선인민보>를 발행했다. 현대 한국인들은 1972년 거류민회를 설립하고 1975년부터 1980년대 중반 까지 거류민회보를 발간했다. 인도네시아에 한국기업과 한국인이 급증하면서 1995년 교민세계와 여명 재외동포를 위한 의제 설정 재외동포와 한인도 한 예 가 되겠다. 인도네시아에는 1970년대에 진출해 지금은 여든 살을 넘긴 한인 1세대부터 그들의 자녀들 재외동포청이 주최한 ‘2024 세계한인회장대 회’ 참석차 최근 방한한 박재한(63) 재인도네시 아 한인회장은 지난 3일 행사장인 서울 송파구 롯 데호텔월드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역사 탐방을 한인회의 장기 지속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인회는 2020년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 사’ 출간을 시작으로 ‘한-인도네시아 수교 50 주년 기념 책자’ 인도네시아어판 출간(2023년) 과 한국어판 출간(2024년)에 이어 마지막 사업 으로 지난 8월 1박2일 일정으로 역사 탐방을 실 시했다. 제18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서 박재한 회장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한인회 우수사업 사례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장려상을 수상 (2024. 10. 3 세계한인회장대회)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선조 발자취 살피고 되새기는 게 소명” “다양한 사업 통해 역사 기억하고 보존하며 성찰해 미래 100년 준비”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재한 한인회장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15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재학생 등 한인 학생 25 명은 스마랑 지역을 찾아 암바라와 항일의거지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 이강현 회장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2024년도 이사회 정기총회> 재인도네시아 한인회(회장 박재한)는 1월 30일 재인도네시아한인회(회장 박재한)는 한인 이주 104주년을 맞이하여《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라는 역사 탐방을 진행하였다. 사전 공 지를 통해 선발된 25명의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JIKS)와 국제학교 학생들은 1박 2일의 역사 탐 방 프로그램을 위해 재정마련을 통 해 문학상 및 시상식을 거행하는 것이 두 번째 목 표입니다. 46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세 번째로는 조직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싶습니 다. 정회원(회비 납부 회원)을 늘리고 참여를 활 성화하여 안정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한 인도네시아인 팀원들을 모집하여 국제교류팀 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우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를 깊이 있게 아는 것에 집중해 왔다 면 저보다는 연구원에 주어진 포상이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 어느 날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에 반해버렸습니다. 다양한 세계화에 기 여할 수 있는 오리지널티가 있는 문화였으니까요. 낯설음이 주는 열정으로 무작정 집을 나와 외출을 감행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입니다. 아름답기 만 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외롭고 구부러 진 길이 더 많았습니다. 허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지혜는 부족했고 열정만 앞섰지 만 어설픈 사명감과 책임감은 저를 놓아 주지 않 았습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미래가 보였으니 까요. 연구원이 내 아까운 청춘을 빼앗아 갔다고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 주저 앉고 싶었습니다. 그 럴 때마다 저의 손을 잡아 준 누군가가 있었습니 다. 수상을 하고 보니 운명이 얼마나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는지 감사함을 느끼며 전 기 오토바이는 eMOA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MOA의 자세한 정보는 www.emoamotors. 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기오토바이 eMOA 출시 PT.Baterai Listrik Motorindo(eMOA 생산 업 체)는 지난 5일 찌까랑에서 인도네시아 전기 오토 바이 자체브랜드인 eMOA로 E1과 E2 전시회 기획 및 주 관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함께 하 신 분들이 약 50 전자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과 한인을 대 상으로 하는 자영업이지만 더불어 철강 절 등 종교시설과 한국학교도 있다. 하지만 종교시설은 포교가 목적이어서 종교가 다른 사람이 이 용하기 부담스럽고 젊은 경찰관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 다. 인도네시아 사람도 운전면허증을 돈 주고 사 는데 접수 에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증명 사진 정부기관 정부는 전기 오토바이의 보 급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 왔다. eMOA는 이러한 국가적 비전을 지원하고 정상이 정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서적으로 구분하는 가시적 장벽 역할을 수행하면서 거주자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 다. 그는 차단기와 담장으로 이루어진 주택단지를 선택하는 이유로 공동체 추구 정식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필기시험 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 점수를 받아 취득한 운전면허증이다. 한국에서는 진짜 운전면허를 취 득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진짜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가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이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가짜 운전면허란 진짜 운전면허와 반대로 정식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치 르지 않고 취득한 운전면허증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 1년쯤 됐을 때 정책 정치·사회적 소요사태 등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 대응 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인도네시아는 5월 사태와 수 하르토 대통령 퇴진 제 1차 성숙기 제 도 제 아이도 뽑혔습니다. 저는 아이가 설렘으로 역사탐방을 기다리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많은 아 이들을 대표하여 가는 탐방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에서 머문 시간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아이가 제2차 성숙기 등 다섯 단계로 나누었으며 제3장 한인들 (1) 들어가는 글 인도네시아에 한인(조선인)이 진출해 체류한 지는 100년 이상이 됐고 제도에 대한 정보 부재 제일 시원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시 험을 봤다. 시험은 인도네시아어로만 되어 있었 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 신하신 독립 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며 조연숙 편집장과 엄강심 인도네시아대학교 (Universitas Indonesia) 인류학과 방문 교수와 땅그랑 찌뜨라 라야에 위치한 《무지개 공부방》에서 고재천 교장님(75 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지개 공부방》 은 고재천 교장님이 2007년 좀 더 다양한 한국인 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장에는 지난 50년간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시기와 산업을 살펴봄으로써 양국의 경제개발이 상호보완적으로 맞물려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한국기업이 인도네시 아에 첫발을 디딘 후 2023년 현재까지 역사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서술했다. 각각의 출발점은 1968년 종목별 금 종이로만 발행하는 여명(구 소망)과 교민 세계도 이전(과거) 호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쉽지만 온라인화 이전의 정보들이 사라졌 다.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Kocham)와 대한체육회 인도네시아 지회는 웹사이 <한인뉴스>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아카이브로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47 트를 운영하지만 회원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고 주말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 다. 이처럼 《무지개 공부방》 은 다문화 가정 어 린이들이 더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든든 한 지원과 배움의 터전을 제공한다. 《무지개 공부방》 설립 목적 고재천 교장님은 한인 2세들에게 단순히 공부만 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증명사진 촬영 및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내게 서류를 안내했던 직원은 경찰서 바로 맞은편에서 필요한 서류 두 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진짜 운전면허증 SIM Asli 남기훈 (PT HWA SEUNG INDONESIA) Kudus)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49 경찰서 건물 바로 맞은편에 증명사진 및 신체검사 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고 주요 산업협회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관 조성태 국토관 주차 세 가지 시험 코스를 모두 통과한 이후 주차 총 세 가지 항목에 대해 평가했다. 특이한 점은 직진으로 일자 코스 주택단지와 아파트의 출입 관리 시스템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범죄와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주거환경을 제공한다. 또 물리적으로 외부로부터 분리된 공간이 되면서 중 부자바한인회(회장 채환)와 한인회의 노력으로 공원 입구에 세워 질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가 준비 되어 있었다. 암바라와 위안소의 과거와 현재 한인뉴스 2024년 9월호 I 11 암바라와 항일의거지(민영학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해야 했다. 한류를 필두로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져 이젠 현지인들이 먼저 다가와 “한국사람입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묻는다.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왜 인도네시아로 가서 중년쯤 되어 보 이는 즉 천개의 문이라는 별 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극소 수의 철도 관련 물건들과 안내문으로 과거 동인도 나 일제에 반대한 자들을 넣어둔 곳이다. 결국 수 많은 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귀신의 집이라고 또 한 유명하다. 대부분 방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 었지만 그럼에도 텅 빈 공간이 참으로 우울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은 탐방을 마친 참가자들의 생생한 소감이다. 박은주 JIKS 역사 교사는 “우리 인도네시아에서 도 역사탐방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 전통이 잘 이어져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 고 지금 내가 시험을 보는 경찰서는 정 해진 규격 없이 시험감독관이 교통 유도용 꼬깔콘 을 마음대로 두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 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격했던 사람은 10번 정도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이었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깨달음이 오늘의 나를 어제 와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천개의 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라왕 세우 철도박물관’ 과거 네덜란드 동인도가 건축한 이 건물은 자바 섬의 중심에 있었기에 더욱 효과적인 통재 수단이 철도로서 당시 건축된 철도 관련 건물로서 동인 도 총독부의 일부인 건물이다. 수많은 문들이 있 기 때문에 ‘라왕 세우’ 지난 6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에서 항일 독립 운동지 역사 탐방에 대한 공지를 받고 아이가 신청 해서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지역경제와 지역 고용인력을 늘리 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본다. 이번에 출시되는 E1 직종 질서정연함과 자산 가치의 보 존 차세대 정체성 강화 를 위한 한국어 교육 처음 봤을 때와 다르게 노련하게 교통 유 도용 꼬깔콘을 세웠다. 꼬깔콘 간의 간격도 제법 일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시험 결과는 전과 같 이 후진 기어를 놓고 후진하는 도중에 꼬깔콘을 건드려 탈락했다. 시험 보기 전 회사 울타리 내에서 회사 차량으 로 운전 연습을 장시간 해와서 그런지 처음 시험 봤을 때보다는 이동 거리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합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세 번째 시험에 불합격하고 나니 철도 박물관에서 초창기 총 괄 부장님께 직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관에게 200 만 루피아를 제시받았던 일에 대해서는 경찰서 내 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다음 주에 경찰서에 다시 방문했다. 이전과 동일하게 접수처에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시험감 독관은 다시 공터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세우고 시험을 보게 해줬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후진 기어를 넣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다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드렸다. 불합격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불합격 통보를 받자 최 회장의 산림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데코는 대한민국 1호 해외투자에 이어 1981년 ‘해외 유전개발 제1호’라는 새 역사도 썼 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최계월 “조국의 영광 최근 취 업 등을 통해 건너오는 20~30대 청년들까지 다양 한 연령대와 성장 배경을 가진 한인들이 공존한다.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경제활동을 위 해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유학생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 기 위해 기어를 후진으로 바꿨다. 후진으로 운전 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 드렸다. 탈락이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출신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인도 네시아인과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로 소통한다. 동남아지역연구자 엄은희 박사는 인도 네시아 한인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현 지화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고 인도네시아어 사용 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사회 와 문화를 존중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 력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 한국 을 소개하고 한국에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는 양국 인적 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 사 회가 어떻게 형성됐고 출신 학교 취득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현지 지인들은 인터넷에 서 찾은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다면 취업까지 지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 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생 수가 급감하 여 현재는 40명 남짓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다행 히 한인회와 교회 친구들의 응원 속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승부를 펼친 선수들에 게는 성별 친근하게 블랙커피 한 잔 마시겠냐고 물 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접 수 창구에 가서 실기시험을 접수하고 친근한 미소를 보이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운전면허를 취 득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운전 면허 시험을 접수할 때 필요한 비용은 전부 지불 했다고 대답했다. 그 경찰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 덕이고 카카오톡 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인도네시아 상 황과 자연재해 소식을 보도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에 새로 정착하는 한국인은 물론 인도네시 아에 오래 체류 중인 한국인들도 언어장벽 컨텐츠는 무료 원고로 채운다. 재외동포단체와 연구 자들은 해외 한인미디어의 영세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한국대사관의 지원 을 촉구한다. 또한 공신력이 있는 한인미디어를 활용해서 정부 정책과 대사관 소식을 알릴 것을 권한다. 한국기업과 한인들도 광고와 후원 컴 퓨터 교육 코 이카와 굿네이버스 등의 봉사자 코데코는 외환보유고의 10% 규모인 450만 달러를 빌 려 인도네시아에서 산림개발에 투자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고 남부 칼리만탄주 바뚜리찐 (Batu Licin) 지역에 27만㏊를 개발해 모국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현 지 간선도로의 이름이 ‘잘란 라야 코데코’(Jalan Raya Kodeco)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최 회장은 183㎝의 우람한 체구와 선이 굵은 얼굴에 운동 으로 다져진 강인한 신체. 보스 기질과 배짱 코로나 팬데믹 으로 인해 후원이 끊기면서 현재의 주택가로 이사 를 하게 되었다. 이 주택의 1층은 공부방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17 코리아센터 코발트 블루 키타스(KITAS) 타인(단지 외부자)에 대한 두려움 태권도 태권도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쳐 왔다. 최근에 는 한인 기업과 교민들의 후원으로 공부방을 확장 하고 통합 스마트키 판매 팬데믹이 끝나고 양국간 투자와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2023년에 25 페이 스북 페이스북페이지 페트병 경주대회 7월 19일 평 영 시합을 포로 감시원이 되고 포로가 되고 필기 시험까지 합격한 것에 놀란 눈치였다. 카메라맨 이 와서 내 사진을 찍었다. 비록 필기시험이었지 만 필기시험을 담당하는 직원이 내게 다가와 지금 바 로 시험을 보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바로 보겠다 고 답변했다. 내 답변을 들은 직원은 나를 허름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허름한 사무실에는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고 필요하면 브로커를 알아봐 주겠다고 답했다. 나는 진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싶다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햇볕을 느 낄 수 있었다. 마음가짐도 어제와 달랐다. 우리가 마주한 역사 속 인물들의 용기와 희생이 깊은 감 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이 땅에 우리보다 먼 저 머물렀던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닌 학교 등을 지어주는 등 현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또 우리 기업 진출 초창기인 1976년 자카르타에 한국학교 설립(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학년별(1~2학년 25m/3~6학년 50m)로 나누어 자유형 학부모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 었다. 많은 학부모님 학생들은 그들의 희 생을 기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지만 학생들은 민 영학 열사가 투쟁했던 곳 중 하나이자 일제의 무 기고로 사용되었던 성당으로 이동했다. 비교적 가 까운 거리에 있어 순식간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열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려독립청년당의 결성지 ‘수모워노(Sumowono) 보병 훈련장’ 오후가 되자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갔지만 박재 한 한인회장님을 비롯한 류완수 영사님을 비롯한 이태복 사산문화 원장님 학생들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역사 탐방 두 번째 날이 밝았다. 학생들은 개운 한 정신으로 두 번째 날을 맞이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학생들의 출발 시 범 참관 후 한·인니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국 어 우수 학생 4명은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유학 중 이다. 이들은 모두 야야산의 보증을 통해 한국 유 학 지원을 받는다. 또한 한국 에서는 물정을 모르는 재외동포로서 어색해 한다. 한 사람이 고국의 보호와 안정감을 박차고 해외로 나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이 책은 단기간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시 선이 아닌 장기간 일하며 살고 있는 거주자이자 생활인의 기록이다. 이 책이 한국과 한 국인들이 인도네시아로 간 한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국이 외교와 국방 한국 에서는 물정을 모르는 재외동포로서 어색해한 다. 한 사람이 고국의 보호와 안정감을 박차고 해외로 나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관련해‘최초’또 는‘1호’수식어가 붙은 역사가 많다. 1968 년‘한국 해외 투자 1호’한국남방개발(KODECO)의 원목 사업 한국 인이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해 야 할 문제라고 인터뷰에서 강 조했다. 앞으로의 계획 17년간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고재 천 교장님 부부는 학생들과 깊은 정을 쌓아왔고 한국 지역사회의 의료 봉사 단 체들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과 인도네시아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 르치기 위해 설립한 무료 교육센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 소개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 우호 관 계를 통해 회사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최 회장의 소망을 사훈에 담았을 것으로 그를 아는 사람 들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해외자원개발에 매진해온 최계월 회장은 2015년 11월 향년 96세로 일본에서 별세했 다. 최 회장의 삶은 애국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는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등에 관 한 기록이다. 이 책의 발행인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은“2020년 출간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 사>는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기록한 것이 고 한국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 업을 어떻게 펼쳤는지 한국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펼쳤는지 한국슈퍼 등이 한국인들의 주된 공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산다면 가 까운 거리에 공원과 산이 있어서 산책을 할 수가 있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좀 어렵다. 자카 르타에서 경험한 공간과 앞으로 생겼으면 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도네시아 주택단지와 아파트: 차단기와 담장으로 누리는 안전 자카르타와 수도권 지역에 있는 주택단지에 설치된 차단기와 담장은 1990년대 말에 인도 네시아에 와서 본 낯선 풍경 중 하나였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주택단지마다 입구에 차 단기와 경비원들 그리고 단지 주변에 담장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다. 심지어 단 지 입구에서 한 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취 득한 운전면허증을 함께 제출했다. 접수 창구 직 원은 내가 제출한 서류를 모두 복사한 후 다시 돌 려줬다. 그리고 오늘 필기시험을 볼 거냐고 물었 다. 경험 삼아 보겠다고 답변했다. 소정의 인지 비 용을 내야 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살 고 있는지 등에 관한 기록이다. 1장 한국인 한국인으로서 인도네시 아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성실 히 수행해 왔기에 이러한 영광된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러한 활동은 궁극적으로는 한 국 한국인의 근면함과 정 직함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심 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 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IMF 사태 때 퇴 직한 후 한국학교 등 을 통해 한인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했고 한국학교 등도 각자 회보나 신문을 만들지만 한국학교는 시내에서 멀리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한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한인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인회관 은 다양한 한인들이 만나서 화합하는 소셜믹스를 이루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코리아센 터는 개인 소유이고 영사동도 한국정부 소유로 되어 있어서 한글 교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 고 한식당 등이 설립됐다. 한인 중 일부가 가족 을 동반해 진출함에 따라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설 립된 것.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한인회를 필두로 종교단체 한인 슈퍼 한인기업 한인들의 문학작 품 등 다양한 뉴스를 보도한다. 한인 광고지는 한국식당과 한국슈퍼 등 한국인을 대상 으로 하는 업소를 광고하는 매체지만 한인들의 생활을 살피고 현지에서 정체 성을 유지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도 담았다. 다만 이 책은 한인회 주관으 로 진행된 만큼 한인회와 한국대사관의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한인들의 소통과 정체성 형성 기능은 여전히 유효해 1990년대에 온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식당과 상점에 가고 어떤 활동을 하 며 살았을까? 자카르타국제한국학교(JIKS) 건설 후원금은 누가 냈을까? 한국 ‘평화 의 댐 한인문화예술총연합 회와 함께 진행한 ‘쓰담쓰담 그린런’ 행사 역시 호평이 많아 뿌듯했다고 전했다. 한인 초등학생 등 참가자들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플로깅(조깅하거나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통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생각하 는 시간을 가졌다. 박 회장은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핵심 국가”라며 “다양한 사업을 통 해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며 현재를 성찰해 미래 100년을 준비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포사회에서는 인도네시아 한국봉제협의회장 한인미디어 한인회 손한평 수석 부회장과 인도네시아 조선인 위안소 기록을 담은 소설 한인회 회의실에서 함평군의 농특산품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 유통 한인회와 대사관의 활동 함평군과 농특산품 수출지원에 관한 업무협약 전라남도 함평군(함평군수 이상익)과 재인니한인회(회장 박재한)는 2024년 7월 24일 항거자 해당 지역 경찰서 에서 회사 HRD 현지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고 향유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한인들 현상을 보면서 도 새롭게 추가하지 못한 내용들은 아쉬움을 남았다. 현재 자리보다는 다른 장소에 한인회관이 세워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코리아센터는 역사성을 보 존하면서 재건축할 수 있을까? 현재 코리아센터 건물과 주차장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 원으로 만들고 현지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 많은 한국 아버지들이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목격했 다. 그 결과 현지에서 장기간 일하며 살고 있는 거주자이자 생활인의 기록”이라며“이 책이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왜 인도네시아로 갔는 지에 대한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안내서가 되 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한인뉴스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실린 기사와 칼럼을 기초로 쓰였고 호 I 41 창의성과 협동심을 키우는 특별한 도전 혹은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통하는 고 재천 교장님은 목회자의 마음으로 희생과 사랑을 담아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해 오셨다. 《무지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고재천 교장님 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많은 다문 화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 가거나 화 를 내며 한국인 관리를 똑바로 하라는 연락을 받 았다고 한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화가 났다. 왜 불합격 도장이 미리 찍혀 있냐고 따져 물었다. 시험감독 관은 대답이 없었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돌아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1 가려는 순간 화학 환경 보호의 중요성 등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전달한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될 것이다. 회사 총괄 부장 님이 비용을 대납해 주겠다고 했을 때 그냥 알겠 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면허 시험장에 왔을 때는 가짜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 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번영’은 한국남방개발㈜(KODECO/코데코)의 사훈이 다. 매우 독특한 사훈에는 코데코 창업자 최계월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 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에 폐허가 된 조국이 영광을 되찾고 회사의 번영”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투철한 애국심과 진정한 글로벌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해외자원개발의 선구자 ‘조국의 영광 회원이나 구성원이 아니면 접근하기가 힘들다. 대중성과 접근성 그리 고 공신력에서는 한인뉴스를 포함한 한인미디어를 따라오기 힘들다. 실제로 <인도네시 아 한인100년사>와 <동남아한인연구 총서 인도네시아편>은 한인뉴스의 기록을 가장 많이 인용했고 회장인사 후진으로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 간에 기어를 바꿀 수 없었고 후진으로 돌아오는 코스 절반 정도 온 후에 교통 유도용 꼬깔콘을 건 드렸지만 시험감독관이 불합격이 아닌 합격 처리 를 해줬다고 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국적이었다. 합격했던 사람이 있다고 하니 희망이 보였다. 나 는 이후에도 회사 울타리 내에서 장시간 운전 연 습을 했고 후진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 유도용 꼬 깔콘을 건드렸다. 시험감독관은 불합격이라며 차 에서 내리라고 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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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및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지속하려면 체중 조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도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의 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는 폭식이나 불균형한 식습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식이요법과 운동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읽어주는 여자스트레스 관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핵심입니다. 꾸준한 습관 형성으로 건강과 체중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https://joo-da.tistory.com/임플란트 임플란트는 치아 손실 후 가장 효과적인 대체 수단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이 시술은 치조골에 인공 치근을 심고, 그 위에 크라운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치과에서의 정밀한 검사가 필수적이며, 치아 읽어주는 남자 치아 상태에 따라 맞춤형 계획이 세워집니다. 임플란트의 주요 장점은 내구성과 자연스러운 외관이지만, 시술 후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치과 방문과 구강 위생 관리로 임플란트의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https://dentalnam.com/고객센터 고객센터는 고객과 기업 간의 중요한 소통 창구입니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제품의 환불 절차, 사용법 안내, 서비스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주황오리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객의 요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만족스러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https://teetoo.co.kr/…
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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