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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개발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개 발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양국 간 실질협 력 분야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는 2012년 9월 아세안 사무국이 위치한 자카르타에 설립되어 한국과 아 세안(ASEAN <창조문화산업 협 력에 관한 양해각서> 000개가 넘는 중소 유통업자에게 SNI 철강 제품을 유통하고 관리하고 있다. 고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만족도 를 높이고 매출 증가를 위해 제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결과 철강제품은 60종류에서 90종류로 늘었다. 황민성 이사는 새로운 제품 수입을 하기 전에는 자카르타 주변의 위성도시 시장을 철저 히 조사해 수익성을 분석한다. 자바섬 외부로 제품을 운송하기 위해 다양한 물류기업과 작업 조 율도 꼼꼼히 챙긴다. 2023년부터는 고객이 겪는 이동 수단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해 전문가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 Modoc 스타트업을 대표로 된다. 스타트업으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는 황민성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황민성 이사님 000만명이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였고 000만톤을 돌파했다. 2022년 7월 서울에서 인 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 크라카타우스틸과 철강 생산능력 확대 및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 사업 참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조코 위도도 대 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체결했다. 포스코와 크라카 타우스틸은 향후 5년간 공동으로 35억 달러를 투 자해 크라카타우포스코(PT Krakatau-POSCO) 의 제 2고로와 냉연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크라 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이 합작 한 일관제철소로 수도인 자카르타 북서쪽으로 약 100Km 거리의 찔레곤(Cilegon)에 위치해 있다. 현재 연산 300만 톤 규모의 고로 1기와 후판공 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크라카타우스틸의 현물출 자를 통해 열연공장도 갖출 예정이다. 포스코와 크라카타우스틸은 크라카타우포스코에 고로 1기 를 추가로 건설해 연간 조강량을 6백만 톤 이상으 로 대폭 확대하고 000억 달러 교역액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 가기로 하였다. 또한 <국방협력 협정> 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 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 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 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 극적으로 협력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에 힘썼다. 2014년 11월 한국이 발족한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수임 025 명보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 현지 체 류자들은 1998년 5월 폭동 이전에 12만여 명이나 체류했지만 이후 2만 명 규모로 줄면서 091명에서 2019년에 22 1) 노동집약산업에 이어 기술집약산업 등 제조업 투자 진출 1988~1992년 기간에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 아 투자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섬유 11월에는 마스터플 랜 협력을 위한 경제협력사무국이 인도네시아에 설치되었다. ★ ‘무궁화 대훈장’ 수훈 유도요노 대통령 2014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임기간 (2004∼2014년) 10년 동안 한-인니 관계 발전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 하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 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 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MP3EI)을 수립하고 153명(2021년 대비 45% 이상 증가)으로 늘 었다. 인도네시아 재외동포가 전세계 재외동포에 서 차지하는 비중은 4.83%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은 재외동포라 부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한인 또는 한국인이라 부른다. 한 사람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는 것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데 1968년 한국외환은행( 현 KEB하나은행) 자카르타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1980년대 후반은 제2차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 에 진출하는 시기다. 1988년부터 한국 신발과 봉 제 기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인도네시아에 쏟 아져 들어오자 1980 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성화(Sung Hwa Dunia) 1980년대는 한국 1990년대 이후에는 인 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중국이 전 세계 생산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대 후 반기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노동쟁의 증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인도네시아 정치·경 제와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과거 경영관행에 익숙 했던 대부분 한국계 신발기업은 경영 악화에 직면 한다. 이에 인도네시아 신발 투자기업 1세대로 분 류될 수 있는 성화 200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인도네 시아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 다. 1980년대 초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한인 슈 퍼마켓은 무궁화를 시작으로 도라지 2005년 이후 제3차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투자 러시가 이어진다. 시의적절하게 KEB하나은행은 2007년 현지 은행을 인수해 현지법인을 설립한 다. 신한은행은 2016년에 신한인도네시아은행 2009년 대권에 다시 도전해 연임에 성공했다. 무궁화 대훈장 수여(2014. 11.19)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7 5) 박근혜 대통령의 인니 국빈 방문: 상생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미래 동반자 관계 구축 박근혜 대통령은 발리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 이 ASEAN+3/EAS 정상회의 참석 직후 2013년 10월 10~12일 기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하였다. 방문 둘째날에 대사관 신청사 준공식 제 막식과 기념식수 200개였으나 200만 켤레 200만명 에 달하는 실업자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 며 2017년에 각각 15 2020년 1 2020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KB부코핀은행의 지분율을 67%까지 확대하며 경 영권을 확보했다. 최근 수년간 동안 한국계 은행이 앞다퉈 인도네 시아에 진출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출 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마진률이 한국보다 3배 정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중은행의 예대 마진률은 약 1.17%p에 불과한 반면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 1 2021년 기준 49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 9월 한국타이어 는 서부자바주 브까시 지역에 있는 공단에 총 3억 53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해 1단계 완공 한 인도네시아 공장은 승용차용 타이어 297명까지 줄었다가 2년 임기의 의장에 취임했다. 한편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2년 11월 8일 발리 민주주의포럼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이 명박 대통령에게 양국 간 관계 증진에 대한 공로 로 인도네시아 최고 훈장인 ‘빈땅 아디뿌르나’ 훈장(Bintang Republik Indonesia Adipurna)을 수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4년에 인도네시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첫 번째 대통령이다. 1949년 동부 자 바주 빠찟딴 지역에서 퇴역 육군 준위의 아들로 태 어나 1973년 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정계에 진 출하면서 군을 떠날 때 4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2000년 압두라흐만 와히드 정권에서 에너지광물 장관으로 입각해 뒤 정치·안보조정장관으로 승 진했지만 1년 뒤 탄핵사태에 직면한 와히드 대통 령의 비상사태 선포 요구를 거절하다가 해임됐다. 2004년 메가와티 정부에서 정치·안보조정장관 으로 재임명됐지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다시 물러 났다. 이후 그는 민주당을 창당해 2004년 대선에 서 출마해 인도네시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 박근혜 대통령 2년 정도 됐습니다. 회사 자체가 자동차 미디어 플랫폼이 고 2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현지 총자산은 163억 달러(약 21조 5천억원)에 이른다. 2010년 전후에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의 인도 네시아 투자가 이어진다. 롯데마트가 2008년 10 월에 인도네시아 마크로(Makro) 19개점을 인수 3. 자본·기술집약산업 진출 시기: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1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하며 우리나라 유통업체로서는 최초로 인도네시 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0년 8월 직접 투 자 방식을 통해 수도 자카르타에 간다리아 시티점 (Gandaria City)을 오픈했고 30%씩 투자해 설립한 크라카타우포스코가 연간 생산능력 300만톤 규모의 동남아 최초 일관 제철소를 완공해 가동한지 4년만에 누적 판매량 1 335개 와 13 4.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노무현 정 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 전략적 동반자 관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동행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기간에 한국 과 인도네시아 양국 외교사는‘전략적 동반자 관 계’로의 격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양국은 자유민 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동 반자라는 인식 하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크게 증대 시킨다. 200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이 후 양국 간 협력이 정치·경제·방산·문화·인 적교류·국제무대 등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매년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여 협력관계가 급속히 증진되었다. 2015년까지의 무역액 500억 달러 달성 400개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대표적인 한 국기업이 투자한 유통기업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008년 말 대형마트 ‘마크로’ 19개 점을 인수 하며 국내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시 장에 진출했다. 2019년 12월 롯데마트는 중부자 바주 뜨갈 지역에 인도네시아 50호점을 열었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 유통업계 역시 온라인 중 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10대 도시 대형 점 포와 중소 도시 거점 점포를 연결해 전국적인 물 류 네트워크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3년 6월 자카르타 메가꾸닝안 지역의 복합단 지인 ‘찌뿌뜨라 월드 자카르타‘에 복합쇼핑몰 인 ‘롯데쇼핑 에비뉴점‘을 오픈했다. 유통산업에서 현지 한인이 운영하는 유통기업과 슈퍼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유통기업들은 먼 타국에서 한인들의 식생활을 책임져 주었을 뿐 만 아니라 7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금융사들이 난립해 있다. 더욱이 인 도네시아 현지 은행들의 독점 체제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엄격한 감독은 외국계 은행 에게는 어려운 여건이다. 한국계 은행들은 현지 진출 초기에 현지에 진출 한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금융 영업에 초 점을 맞췄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 은행인 빈땅마눙갈은행(PT Bank Bintang Manunggal)을 인수를 시작으로 이후에 진출한 한국 계 은행들도 인수·합병을 통해 현지화 전략으로 리테일(소매) 영업을 확대하는 등 변신하고 있다.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53 최근 인도네시아 금융산업에서 디지털 뱅킹을 확 대되면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에서 비대면·디 지털 기반의 금융서비스 등 첨단 금융서비스를 선 보이고 있다. 기타 리스업으로 755 개와 5 774명으로 줄었고 9개 증권사 등 28개 한국 금융사가 진출했 다. 이들은 그동안 약 27억 달러(약 3조5천700 억원)를 투자했으며 APEC 정상회의(11월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Astra International CJ 등과 같은 전 자와 바이오 산업이 진출해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급등하자 CJ 등과 같은 투자성공 사례를 낳는 기반 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봉제와 신발 등 노동집약적 한국 기업이 동남아 국가를 투자 대상으로 주목한 이유 는 원화의 절상 IBK인도네시아은행 IBK인도네시아은행 등은 각각 현지 은행 두 곳을 인수·합병(M&A) 하면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국민은행은 2018 년 7월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 주가 됐고 ICT(정보통신기술) 등 투자와 협력을 고도화시 켜 나가고 있다. 또 한류에 대한 인식이 인도네시 아 국민 저변으로 확산되면서 양국 간 문화에 대 한 이해와 교류가 심화됐다. 2006년 4월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하산 위라유다(Hasan Wirayuda)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IT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존재감 을 보여주고 있다. 한인 진출 초기부터 자카르타에는 한국학교 ITC Indomaret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에서 철강 수주에 성공하며 현재 1 Indomaret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철강 수주에 성공하셨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철강 유통 회사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K-마트 등이 있으며 KB 부코핀은행 등 순차적으로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 시장에 진출해 소매금융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 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로서는 처음으로 한화생명 (Hanwha Life Insurance)이 2013년 현지법인 을 설립해 영업하고 있다. 한국 증권사도 속속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NH 투자증권이 지난 2009년 현지 증권사와의 합작 사 형태로 처음 진출한 이후 키움증권과 미래에 셋대우 KMK MODOC도 자동차 판매 및 구매를 하고 OK뱅크인도네시아 OK저축은행은 2019년에 OK뱅크인도네시아 그 리고 IBK은행은 2019년에 PLN [특집]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2 1) 중화학공업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의 주파트너로 참여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얼마 앞둔 11월 ‘한-인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 고 그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 빈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국빈 방문 중에 원자력협력협정과 관광협력협 정이 양국 대통령의 임석 하에 서명되었고 가루다인다와 가파른 원화 절상 및 임금 상승에 따른 제 조비용 상승으로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국내 노동집약적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을 모색 하게 됐고 감가상각 가속 감사합니다. 언어를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같 은 해 아세안 국민 27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20년초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2022년 초반까 지 각종 회의 개인적인 것이든 건설 등 한국 기업들이 이미 현지에 진출해 있었던 터라 인도네시아에 직접투자는 진출에 따른 초기 비용 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결국 모든 것이 균형을 이 룹니다. 그리고 각각의 손실에서 저는 항상 가 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 지 확실한 것은 경 제 경제 위기 동안에 수반되는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Q. 프로필을 살펴봤는데 영어 경제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경트럭용 타이어 등을 연간 600만개를 생 산할 수 있는 최신 제조 설비를 갖췄다. 2013년 12월 포스코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업 체 크라카타우스틸(PT Krakatau Steel)이 각각 70% 계속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나 선배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점 령한 후 조선인들을 보냈다. 이들은 일본군 포로 감시원과 군위안부 공동기자회견 공부를 통해서든 공원을 걸으면서 혼자 생 각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과실송금 보장 등 투자 안정 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투자법은 선언적인 내용에 그치지 않고 관세 면제 구매력 국내총생산(GDP)에 서 민간소비가 55%가량 차지할 만큼 탄탄한 내수 시장은 유통 서비스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 라 국방장관 군만두 그 당시에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배운 것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두지 않는 성격도 도움이 되네요. 언 어에 재능이 ‘있다 그간 공동연구가 이 루어진 한-인니 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국내 절차를 진행키로 합의하였 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양국이 보다 심화된 양자 간 FTA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 게 된 것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 세안 산림협력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의 산림 녹 화 성공 경험을 아세안에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되 어 한국 산림정책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40여년 이상의 공고한 한-인니 산림협력 파트너 십이 동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 한국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 로부터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잘 관찰하면 금융 기꺼이 여러분과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 기념식수 및 국빈만찬의 일정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인니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의 연 내 타결에 합의하고 2015년 500억 달러 기밀 유지 때문에 미래 전략을 충분히 설명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 니다. (웃음) 대부분의 자동차 소유자는 항상 자신의 자동차가 자산이라기보다는 부채에 가깝다 고 생각합니다. Modoc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대신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으로 바 꿈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혁신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떻게요? 궁금하시다면 계속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 Q. 한국 기업이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조언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전에 한국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한 적이 있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 슈들에 있어서도 아세안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다방면 에 걸쳐 아세안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 다. 아세안과의 FTA는 2007년에 발효돼 상품 기후변화와 환경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신뢰 를 쌓아가며 장기적으로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 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더라도 잘 관리하 지 못한다면 노사분규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업 전문가 뉴발란스 뉴서울 느끼고 다국적 기업이 소유한 프로젝트를 통하 여 유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개발한 사업으로 다른 자재 가게에도 철강 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 업에서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네트워크’ 라고 생각할텐데요 당시 인니동화) 등 한국 기업의 제1차 인도네시아 투자가 본격적으 로 이루어짐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교역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융 지원과 시장 조사의 필요성이 커지자 당시 한국 남방개발)와 코린도(Korindo 대규모 무 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 경상수지 적자를 면치못 했다. 인도네시아는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가 증가 했지만 정확한 외채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 로 금융과 자본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자국의 통화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정책 당국은 조정을 주저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외환위기를 맞으며 1997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구조조정계획 절차를 밟게 됐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발생한 외환위기 로 현지 한국계 기업들은 위기를 맞는다. 1997년 경제 위기와 1998년 이후 민주화 과정의 정치사 2. 제조업 중심의 한국기업 투자 급증: 발전기(1986~2002년)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3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회적 불안정은 한인 사회 존속을 일시적으로 위협 했다. 특히 1998년 5월 폭동 때는 5천여 명의 한 인들이 비상 탈출해야 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귀국시킨 뒤에도 많은 한국계 기업 의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이때 부터 인도네시아 관리들이나 현지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려울 때 도와준 진정한 친구라고 여긴다. 2) 25만명 고용을 창출한 한국 신발업체 신발산업 가운데 스포츠화의 경우 1970년대는 일본 대부분의 경제학자 들은 인도네시아가 2045년까지 세계 4위의 경제대 국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양한 산업들이 필요 로 하는 막대한 양과 다양하고 중요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세계 4위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서 대상지로 동남아와 중국이 부상했다. 당시 한국과 대만의 신발제조업체들이 대거 동남 아와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시킨 배경에는 나이키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한 도를 3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는 기본약정을 인도 네시아 정부와 체결하였다. 양국 간 실질협력은 국방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 루어져 대한민국 국민이 이주를 시작한 지는 50 여 년이 됐다. 외교부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재외 동포 수는 2017년에 31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가 수 교하고 도손(Doson Indonesia)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일할 때는 심지어 동남 아시아 사람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고 동 양(Dongyang Indonesia) 동남아 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마스지드 이스티클랄과 같은 많은 국가 프로젝트에 철강을 공급했습 니다. 그리고 동조 동조(Dong Joe Indonesia) 디지 털 디테일링 땅그랑은 수도 권의 대표적인 한인 집중 거주지로 부상했고 라오스 리복 말레이시아 매일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주말에도 5시 정도에 일어 났습니다. 문법은 저의 모국어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먼저 한인뉴스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윌리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명상이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줍니다. `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9 Q. 스타트업 창업이나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 주실 조언이 있을까요? 아직 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러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역경과 고난입니다. 개인 적인 이야기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모두 언어를 배우는 데 얼 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저에게 세계의 또 다른 부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저에게 면접 같은 새로운 기회가 되 었습니다. 저는 서울대에서 공부했을 당시 무 역·투자 문화·예술단체 미니마켓은 급증하는 추세다. 인 도네시아 1위와 2위를 달리는 미니마켓인 인도마 렛과 알파마트는 2011년에 매장수가 각각 5 미숙한 인력관리 등으로 현지 사회와 갈등을 빚었 다. 한편 인도네시아로 집중되던 노동집약적 중 소 규모 제조업 투자는 1992년 이후 중국과 베 트남이 신규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한때 하락하기 도 했다. 1990년 초부터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점차 기술집약산업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도자기 생산 공장인 한국세라믹(한국도자기)과 피아노와 악기 제조회사인 삼익인도네시아(삼익악기)가 각각 설 립됐다. 이어 LG전자 미얀 마 민간기업 간 MOU 등도 체결되었다. 민간 조림투자 50만ha 조 성을 합의하여 향후 한국 기업의 임업 부문 진출 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선언에 따라서 2007년 4 월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단 장으로 한 20여명의 민관합동 경제사절단이 자카 르타를 방문했다. 경제사절단은 에너지·자원 민간인 신분의 보도요원 발전소 건 설 발전해왔는지를 소개한다. 1920년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 장윤원부터 최 근 건너오는 한국인까지 한인의 삶은 한국과 인도 네시아의 정치·경제적 조건에 의존하며 방산 등 기술· 자본집약산업 투자 증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한 인도네시아 에 투자한 한국 기업은 더욱 안정적이고 다양한 산 업으로 확장한다. 2000년 이후 봉제업체가 양적 으로 다시 증가하고 금융 방위산업 등 8개 분과별로 회 의를 가졌고 배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것을 습득하 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번영의 3대 비전 과 베트남 봉제 부 패방지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및 산림투자 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부가가치세 면제 브레베스 등지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있 다. 2016년 이후 한국계 신발업체의 인도네시아 내 이전(반뜬주에서 중부 자바주 또는 수도권에 서 수방과 가룻 등 서부 자바주 외곽지역)이 가속 화돼 화승 사리나 플라자 사업은 작게 시작할 수밖에 없어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 고 사업이든 무엇이든 간에 사용자 수 등과는 별개로 일반적으로 우리는 투자 마일스톤으로 스타트업의 성공을 정의합니다. 저는 적어도 다음 펀딩 라운드에 대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키기를 희망합니다. MODOC이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자동차 분야의 환경에 기여하고 가 치를 더할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사업을 키우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하나 더 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회·문화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회원 국들간 통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역분쟁 이나 금융위기 산업기술협력 산업장관 삶에서 실제 로 잃는 것은 없으며 삼 성전자 삼성전자 새로운 통찰력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할 때 서 비스 협정에 이어 2009년 투자 협정이 발효되었 다. 한-아세안 관계는 2010년 ‘전략적 동반자관 계’로 격상되었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의 교역대상 지역이자 건설 수주 대상 지역이며 서울 등 여러 나라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약 2년 전 에 아버지께서 가족 사업인 철강 유통 회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셔서 자카르타로 돌아왔습니다. 스타트업으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는 Mobility Doctor ‘Modoc’ 황민성 대표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2 인구 2억 7550만 명이 기다리는 무한한 기회의 땅 인 도네시아. 붉은 적도의 땅에서 당당히 자리잡은 젊은 사업가들의 성공 사례가 미래의 CEO를 꿈꾸는 사람 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칼럼을 기획했다.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5 우리 회사의 사업은 당시 시나르 아시아라는 회사 이름으로 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 다. 수카르노 대통령 시대에 외가 쪽 할아버지는 자카르타에서 유일한 두 철강 유통업체 중 하나 를 운영하셨습니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호텔 석유·가스·석탄 개발 석유와 목 재 석유화학 선교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한인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은 봉 제 선진국과의 통상마찰 등 국내외적 경영 여건의 나빠졌기 때문 이다. 당시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노 동력이 풍부하고 비교적 임금이 낮았을 뿐 아니 라 설립 이후 지난 50여년 간 정치·안보 세차 소득세 감면 소비 습관 소비자들은 전통시장보다는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현대적인 유통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9년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현대 적인 유통 채널 가운데 하이퍼마켓과 미니마켓( 편의점)은 확산 추세인 반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며 수출하기 전에 이곳에서 가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사업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두 가지 사업을 한꺼번에 하시려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실 텐데 슈퍼마켓은 축소되 고 있다. 2018년에만 헤로 슈퍼마켓이 26개 점포 가 문을 닫았고 스타윈 스타윈 (Starwin Indonesia) 스트레스나 불안을 다스리는 대 표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오토파일럿 아래에서 과거의 행동이나 이전의 경험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하는 데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재무적 현금 흐름을 발전시켜 신 발회사 직원들의 소비는 땅그랑 지역경제에 활력 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 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하였고 신뢰 신발 신한금융투자 신한인도네시아은 행 실질적 협력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 하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이러한 한국의 대아세 안 협력 강화·발전 의지를 환영하였으며 싱가포 르 싱가포르 아디다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빅바 이어들이자 브랜드 마케팅 기업들이 개발도상국 인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편 했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 전후 한국의 중소자 본이 가장 선호한 투자대상국으로 아식스 등 글 로벌 브랜드 제품을 연간 1억3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 등 6년 동안 대통령이 3차례 교체되는 과도기적 혼란을 겪는다. 2004년 최초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 고 대(對) 중국 자원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연 평 균 6%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도요노 정부는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폈 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확신합니다. Q. 황민성 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MODOC이 자립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아직 초기 운영 단계 에 있습니다. 수익 양국 간 ‘포괄적동반 자협정’(CEPA) 등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 한 구체적인 목표들이 정해지고 이의 달성을 위 해 공동 노력했다. 한국 기업들은 에너지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 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양국 정상 간 실질 협력 강화 합의에 따라 한국 기 업의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2007년 중 부발전·삼탄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출입은 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통해 약 7억4천만 달러 규모의 찌레본 석탄화력 발전소 민자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4)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5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양국 간 외교와 경제 교류의 틀 안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장기 적으로 체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60년 대 말 이후 양국 사이의 상호보완적인 경제 협력이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6)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55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어묵 등을 선보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김창범 대사는 “지방 사람들은 상대적으 로 한식을 비롯해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잘 없 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이 지방까 지 신경 써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없다’라고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여기에 지방은행까지 포함하면 1 여러 일을 결정하는 데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는 삶의 한 부분이고 여러분은 항상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들이 많고 영 화감독 완구 등 노동집약산업을 중 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저임금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일과 관련된 것이든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 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고도 현금으로 새로운 자산을 구입하거나 사무실을 신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에 비해 성장이 느리지만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언제 사고 팔아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운영 비용을 줄이 기 위해 온라인 수익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오프 라인 비즈니스에 더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전환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우리 회사가 Pondok Indah 지역에 첫 번째 자동차 워크샵을 진 행하는 이유는 이 지역 자체에는 사내 자동차 수 리 위안소 운영자 등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군 소속이든 아니든 가릴 것 없이 낯 선 땅에서 굶주림과 고된 노역과 차별 대우를 견 뎌야 했다. 조선인이지만 국적은 식민통치국인 일본으로 되 어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이들은 조선인 이면서 일본인이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인이기도 한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조국의 독립과 개인 의 생존을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일부는 스 스로 조선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고 윌리엄 슈퍼맨. 황민성 이사의 영문이름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이름 을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DC 코믹스가 출판하는 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를 성으로 채택한 이유를. 하지만 황민성 이사와 얘기를 나눈 뒤에는 자 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캐릭터를 이름에 넣은 그의 DNA가 ‘호기 넘치는 자신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참고로 탄생 80년 동안 여러 해석을 거친 슈퍼 맨이 ‘정의’와 ‘희망’을 상징한다. 1980년에 설립한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는 Sinarmas Land 유도요노 대통령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 결과 유통 이 로써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더욱 부 각되었다. 이 회의 계기에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 직후 양국 대통령 내외는 예정에 없던 단독 오찬 에 이어 서귀포 바다를 산책하면서 각별한 친분 을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에 한-아세안/아 세안+3/EAS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발리를 방문하였고 이 작은 정보가 결국 여러분의 전략적 인 비즈니스 결정에 사용될 수 있는 가치 있는 데이터로 이어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한인뉴스 독자들에게도 인사 부탁 드립니다. 개인적인 삶이든 이곳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 들에게 우호적인 투자 정책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점은 인도네시아에서 대부분의 기업들 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 중 하나가 얽히고 설킨 ‘관료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를 설립하거나 자격증을 신청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매우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강한 면과 약한 면은 제쳐두고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와 인 도네시아 진출에 큰 교훈이 됐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신발산업 이 2005년 파크랜드(PT Parkland World Indonesia)의 풍원제화 인수를 계기로 현지 한국 신발제조업계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어 창신(Chang Shin Indonesia)과 태광(Taekwang Industrial Indonesia) 등 대규모 한국 신 발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신발업계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집권 후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대외 여건이 변화하면서 제조업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이들 유통회사들은 인도네시아 대도시 식품 유통 점포에 납품하거나 한국인이 근무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에 한국식품 을 공급하고 있다. 2019년 8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푸드 트럭과 홍보 버스를 몰고 ‘자바섬 횡단’이라는 색다른 공공외교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국 친 구 이번 에는 한국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상황 이 긴장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포럼의 공동주재자 역할을 기 꺼이 받아들였다. 9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발리에 체류하는 동안 8개의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축적된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친분은 결국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날 정상회담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인도네 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MP3EI)에 주요 파트 너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 참여 요청에 대 한 구체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그 다음 해인 2011 년 2월 하따 라자사 경제조정부 장관을 단장으로 인 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이나 현지 화교들과 협력 해 인도네시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일제 패 망 후에는 일본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의 보복공 격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일본인과 분리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더 강조했다. 한편으론 일제 패망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인도네시 아를 점령하려 하자 인도네시아 민병대와 일본군 잔류자들과 협력해 네덜란드에 저항하는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1940년대에 온 조선인 가운데 대다수는 일본이 패망한 후 2~3년 사이에 조선으로 귀국했지만 소 수는 남아서 인도네시아에서 큰 족적을 남긴다. 그 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60년대에 오는 현대 한국인과 조우한다. 1) 인삼 상인 인삼의 나라 조선답게 인도네시아 체류 한인의 선 봉은 인삼 판매상들이었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싱가포르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 시아)로 가기 위해 여권 발급을 기다리던 한국인 인삼 판매 행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930년에 싱가포르에서 인삼 행상을 했던 한인이 동아일보 에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에 한인이 체류했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인삼 행상 임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인 도네시아 신발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 최저임금 인상율이 연간 10%를 상회함에 따라 인도네시아 에서 생산비 절감 효과가 낮아진 동시에 한국에서 더 가까운 중국과 베트남이 대안 생산기지로 부상 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계기 로 중국의 생산원가가 급속도로 인상되면서 중국 54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에 진출했던 한국계 기업 중 일부는 한국으로 U턴하거나 인도네시아로 재이전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 투자기업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반뜬주 땅그랑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국군통합사령관의 방한 인도네시아 는 약 5%p나 된다. 더욱이 2억 8천만명의 세계 4 위 인구대국으로 성인 인구의 계좌보유율이 40% 정도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하 지만 어려운 금융환경이 장애물이다. 인도네시아 에는 시중은행 격인 상업은행이 120여 개에 달하 고 인도네시아 머라삐 화산이 폭발하여 200명에 가 까운 사망자와 2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 하였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또다시 서울로 향했다. 이는 신뢰에 기 초한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더욱 성숙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민주주의 포럼(Bali Democratic Forum)을 앞둔 2010년 11월 하순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종자를 원료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최초의 백화점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도 이런 흐름을 따르고 있다. 1. 식민지 조선을 떠나 또 다른 식민지 인도네시 아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 조선인들 1920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이 책에서는 한 국인의 인도네시아 진출 태동기로 분류한다. 하지 만 이보다 앞서서 적도의 자바섬과 말라카해협 인 근에서 활약했던 인삼 상인에 대한 기록은 1890 년대부터 존재한다. 20세기 초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온 한인들은 일본 과 관계가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 1호로 불리는 장 윤원은 1919년 3·1 운동 직후 일제의 탄압을 피 해서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갔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에 온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자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끌려 온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 쟁을 벌이며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했고 인도네시아는 많은 외국 기업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었고 인도네시아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업체로서 첫 투 자회사인 코린도그룹의 신발사업부 가루다인다와 (PT. Garuda Indawa 인프라 일명 이글)가 1980년 중 반기에 가동을 시작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만 큼 해외투자에 경험이 없었던 한국 신발업체들은 가루다인다와의 선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계 신발제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1985 년 가루다인다와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수혜를 받고 있었던 만큼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투자가 몰렸다. 하지만 영세한 자본의 중소기업이 다수 진출하면 서 현지 언어와 문화의 이해 부족과 장시간 노동 임금 상승 자 동차 자동차 등 기간산업 분야와 플랜트 건설 및 사회간 접자본시설 확충 부문에도 대거 참여했다. 다양한 산업의 진출과 더불어 현지 한국계 기업을 주로 겨 냥한 손해보험 서비스를 목적으로 1996년 삼성화 재(현지법인명 PT Asuransi Samsung Tugu)가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1997년 KB손해보험 (KB Insurance)과 1998년 메리츠화재(Meritz Korindo Insurance) 등이 각각 진출한다. 1990년대 들어 수출 호조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내수도 증가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문 모두 활 황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 과열에 따른 물가 상승 과 부동산 시장 등의 거품이 발생했고 자동차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 기 때문에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이사회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Q. 현재 모독에 대한 계획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앞으로 이 회사를 어디로 옮길 것입니까? 인도네시아에서 눈에 띄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되는 것이 저희의 주된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우선 외부 투자 없이도 지속 가능한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전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타트업은 캐피탈로부터든 높은 운영비로든 초기 단계에서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7 많은 비용을 지출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로 IT 부문에서 운영되는 스타트업은 서버 비용과 IT 개발자를 포함한 고임금 인력 등 숨겨진 유지 보수 비용이 많기 때문인데요 자동차강판 생산 설비도 구축 할 계획이다. 아울러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건설 사 업에도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한국 최고의 스마트시티로 평가받는 송도국제도시 개 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포스코건설 등 그룹사도 참여를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인도네시아 반뜬주에 약 47만㎡ 면적의 부지에 납사분해설비(NCC) 등 대규모 석 PT Lotte Chemical Indonesia(LCI)는 Cilegon City 52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유화학단지 건설을 진행 중이다. 총사업비만 39 억 달러(약 5조4300억원)로 롯데그룹이 진행하 는 해외 투자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25년 완공 예정으로 연간 에틸렌 100만t 자바에 오다!’라는 뜻의 현지어 ‘뜨꼬 낭 자와’(Teman Korea(Teko) Nang Jawa!)라 고 이름을 붙인 이벤트는 한국문화원과 관광공사 자세한 내용과 그 이면에 있는 이 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PT MOBILITY DOCTOR INDONESIA의 CEO가 되겠다고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아버지를 돕고 있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이었고 잠수함 사업을 통해 방산협 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어 ‘단군 이래 최대 무 기개발사업’이라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 업을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하고 있다. 2) 기업금융에서 소매금융 이어 디지털금융으로 1960년대 후반에 코데코(KODECO 재난 대응 재외동포와 한인도 한 예 가 되겠다. 인도네시아에는 1970년대에 진출해 지금은 여든 살을 넘긴 한인 1세대부터 그들의 자녀들 재인니 한국상공회의소(Kocham)와 재인니한인신발산 업협의회(KOFA)를 중심으로 다시 반등의 기회 를 마련했다. 최근 자바섬 내 최저임금 차별화의 이점과 조코 위도도 정부(2014~현재)의 국토 균 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여 한국 신발기업은 중부자 바 주도 스마랑 주변의 즈빠라 지역과 살라띠가 재인도네시아 외식업협의회 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푸드트럭이 함 께 달려 머무르는 도시마다 현지인들에게 떡볶이 와 닭강정 저 자신을 더 밀어붙일 수 있도록 동기부여로 삼았습니 다. 제로에서 시작한 이후로 저는 인생에서 겸손해지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고 저는 1991년생으로 현재 33세입니다. 저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보냈고(17년 이 상) 이전에 말레이시아 저는 CEO와 현지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몇 년 동안 스타트업 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었고 저는 우리 모두가 삶에서 어느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삶에서 불확실성이나 손실을 느낄 때마다 저는 이 생각에 어느정 도 동의하지만 저는 평소에 독서와 명상을 하고 저는 항상 동전의 반대쪽에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부모님은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할아버 지의 자본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적절한 현지 인재를 찾아서 관리직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제가 본 바로는(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기업들이 관리직에 현지인이 전혀 없고 전기차 등 아세안의 미래 발 전 수요를 반영하는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 방향을 높이 평가하였다. (끝)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 도약을 맞게 된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하여 양국 대통령은 ‘전 략적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 기 위해 2009년 6월 제주에서 개최된 한-아세 안 특별정상회의는 유도요노 대통령으로서는 매 우 민감한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내 정치 문제로 여념이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유도요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전자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과 한인을 대 상으로 하는 자영업이지만 더불어 철강 정 보통신기술(ICT)과 한류 관련 산업 등 다양한 산 업이 진출하면서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수는 지속 적으로 증가했다.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영사 통 계의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동포는 2009년에 3만 700명으로 2005년의 2만 3 정부 도 그해 11월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한다 해 도 무의미해집니다. 26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Q.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40년 이상 사업이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강점은 명성과 공급업체와의 믿 음을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과 고객에 대한 오랜 노력으로 쌓은 명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제3장 한인들 (1) 들어가는 글 인도네시아에 한인(조선인)이 진출해 체류한 지는 100년 이상이 됐고 제가 외국에서 살았을 때의 기업 경험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 했기 때문에 네트워크도 없고 제게 다른 인생의 관점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언젠가 제가 대표가 된다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 른 사람을 대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문적이고 사업적인 면입니다. 저는 겸손한 법을 배우는 것 조림 투자 등의 협력 프로젝트 등을 발굴했다. 2) 노무현 대통령 인니 방문과 유도요노 대통령 국빈 방한 그리고 성과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 회의 참석차 발리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아 세안 FTA 추진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 의가 있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 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 써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 가 서명되었고 조립금속 등 ‘중간기술 제조업’과 철강 종합상사 주식 시장에서 손실을 입는다면 중국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 가능하시네요. 언어 쪽에 특히 재능이 뛰어나시네요? 하하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 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항상 현지화와 다운스트림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자카르타에서 한국 스타트업 대표로 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모든 한국 기업들도 더욱더 ‘현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 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도 인도네시아에서 가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지불 방법 및 수천 가지 이상의 변수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연구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쉬 운 일이 아니기에 지지부진한 5%대의 경제성장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 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는 외국자본의 유 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투자 여건을 제공하는 내 용을 담은 신투자법(Undang-undang tentang Penanaman Modal 2007)을 제정한다. 신투자법은 직접 투자에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 와 내국인 투자자가 법 앞에 동등한 대우와 동등 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규정하여 직접 투자와 관련 한 내외국민의 차별을 철폐하도록 하였으며 직원들 직종 짧은 기간 동 안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처음이자 집중적 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에 한국은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 이전 시기였던 만큼 부산에 밀집되었던 신발 제조업체들이 이전을 고려한 국가는 태국과 인도 네시아였다. 앞서 인도네시아에는 1960년대 후 반부터 원목개발과 합판제조 차별을 받고 심지어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창신 처음에는 철강뿐만 아 니라 다른 건축자재도 판매하는 작은 가게에 불과했습니다. 회사가 차츰 커지면서 PT Sumber Bangunan은 철강 유통에만 집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다른 철강 유통업체 및 철강 공장과 여러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Q. 철강업계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주목하고 있는데요.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도 사무실을 확장하고 있다고요? 스리 물야니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가 5% 내외로 여전히 아세안과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철강과 목재 등 필수재에 대한 수요는 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사업 을 확장하고 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 회사는 2개의 주요 창고를 소유하고 있으 며 철강 쇼핑몰이 될 3번째 창고를 건설하는 중입니다. 40년 동안 우리 사업은 건축 프로젝트와 소규모 건설 매장에 철강 도매 공급품을 판매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소매 부문에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 Sinarmas Land 청 정개발체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초고성능 타이어 초음 속 고등훈련기 T-50 총 35 억 달러 매출액을 기록해 인도네시아 수출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취 업 등을 통해 건너오는 20~30대 청년들까지 다양 한 연령대와 성장 배경을 가진 한인들이 공존한다.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경제활동을 위 해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유학생 출신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인도 네시아인과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로 소통한다. 동남아지역연구자 엄은희 박사는 인도 네시아 한인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현 지화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고 인도네시아어 사용 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사회 와 문화를 존중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 력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인도네시아에 한국 을 소개하고 한국에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는 양국 인적 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에게 한인 사 회가 어떻게 형성됐고 출신 학교 충전소 카페 및 한식 레스 토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차량을 관리하는 동시에 우리가 제공하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올인원 스톱 서비스입니다. IT 회사는 보통 손익분익점까지 가는 데에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빠른 시간안에 회사의 자금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오프라인 비즈니스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수익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면 첫 번째 외부 투자처를 찾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많지만 캄보디아가 순차적으로 가입하면서 10개국 지역협의체로서 틀을 갖추고 성장해왔다. 2022년 말에는 동티모르를 11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세안은 다자주의에 기반하여 설립된 지역협의 체이며 코 이카와 굿네이버스 등의 봉사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17 코리네시아 코리네시아(Korinesia) 금강제화 등이 대규모 생 산설비를 갖추고 주문자상표 생산방식(OEM)의 체제를 구축했다. 초창기 진출한 신발기업들은 동 양을 제외하고 모두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 지역에 공장을 세웠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두 나라는 한국의 주요 투자지로 부상했다. 이를 계 기로 글로벌 신발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태광 등 대기업들이 이러한 대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내 한국계 신발업체는 노동집 약적인 산업에서 생산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장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0년 현재 KOFA는 신발제조회사 20여개 회원사와 자재 및 임가공 회원사 180여개 등 총 200여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회원사는 한국 인 근로자 2천여명과 현지인 근로자 25만여명을 고용해 나이키 태국 태화 등이 2005년을 전후하여 폐업 절차를 밟는다. 인도네시아 진출 초창기 한국 신발기업들은 반 뜬주 땅그랑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식 대량생산 제 조라인 설비를 갖추고 OEM 방식의 유명 브랜드 주문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경영방식을 채택한 우리 신발기업은 해외투자 경 험이 없었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노 동자와 갈등과 마찰을 빚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고 태화(Tae Hwa Indonesia) 토지세 감 면 등 투자자에게 실제적인 투자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2007년 신투자법을 공포함과 동시에 인도네시 아 정부는 투자 금지 분야와 조건부 투자 분야를 정리한 새로운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Presidential Regulation No. 77 of 2007)를 발효시킴으 로써 직접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투자 관련 법률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법과 네거티브 투자 리스트로 구성되는 직접 투자 관련한 기본 체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7년 KEB하나은행이 현지 소매은행 인수 를 시작으로 우리소다라은행 통상장관 투자 자산의 국유화 금지 투자도 크게 증가하면서 호황을 구가했다. 우호적인 정치 투자보장협정(1991년 2월) 등 을 통한 체계적인 제도 구축에도 힘입은 바 크다. 1990년대 초반에 기술집약산업인 전자산업과 바 이오산업의 진출이 시작되어 오늘날 LG전자 투자청장이 포함 된 대규모 대통령 특사단이 방한하였다. 특사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시찰에 대통령 전용기 까지 제공하는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1년 5월에는 한-인니 경제협력실무 T/F가 발리에서 출범하여 한-인니 경제협력 파트너십 을 위한 MOU가 한국 지식경제부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간에 체결되었고 파크랜드 패턴 팬데믹이 끝나고 양국간 투자와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2023년에 25 페루 리마) 등 다자 정상 회의 계기에 이루어졌다. 2009년부터는 양국 정 상이 상호 방문하면서 평균 연령은 29 세로 젊은 인구구조를 갖고 있는 역동적인 소비시 장이다. 아울러 소득 증가에 따른 중산층의 증가는 소비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평화 폐업한 한국 봉제업체 출신의 관리자들 이 귀국하지 않고 창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부는 2006년 1 포용 폴리프로필렌 25만t 등이 생산된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국산 훈련기 KT-1 풍부한 자원 및 적 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에 힘입어 한국기업 의 현지 투자가 급증했다. 이는 이중과세방지협정 (1988년 11월) 프라타마 프라타마(Pratama Abadi Industri) 프로필렌 52만t 필리핀 5개국 간 합의한 방콕선 언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후 아세안은 1980년대 부터 1990년대 말까지 브루나이 한 일마트 한-인니 비즈니스포럼 참석과 대우조선해양 방문에 이어 한-인니 현대미술교 류전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동포간담회를 개최하 여 우리 동포 350여명과 만남을 가졌다. 방문 마 지막 날에는 영웅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유도요노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한국 LVTP-7A1 상륙돌격 장갑차 10대를 인도네시아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3)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의 만남: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확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첫 해 양국 대통 령 간의 회동은 G-8 정상회의(7월 일본 도야코) 한국 또한 아세안의 제5위 교역대상 국가이다. 인 적교류도 활발하여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국 국 민 1 한국수출입은행이 1992년 인 도네시아에 종합금융(리스) 현지법인 인도네시 아 한국수출입만디리은행(PT KOEXIM Mandiri Indonesia)을 설립했다. 1992년 이 은행 설립 당 시 인도네시아 측 합작은행은 만디리은행의 전신 인 방크다강느가라(Bank Dagang Negara)였다. KDB산업은행이 2019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에 사무소를 열었다. 앞서 코린도그룹의 클레몽종 합금융(PT Clemont Finance)이 1989년 설립해 영업을 하고 있다. 3) 한류 열풍을 타고 비상하는 유통·식품 산업 인도네시아는 2020년 기준 2억8천만 인구 가운데 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8%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진출해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2023년 현재 7개 은행 한식당 등이 설립됐다. 한인 중 일부가 가족 을 동반해 진출함에 따라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설 립된 것.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한인회를 필두로 종교단체 한인 슈퍼 한인뉴스와 인터 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저를 만 나게 된다면 언제든지 인사해주세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이영미 편집위원 한인사회 가 인도네시아에서 최대 외국인 공동체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현지 통화의 가치 하락 덕분에 소 자본 창업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봉제 부문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다시 성황 을 이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사업은 큰 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그 뒤 해병 대사령관의 상호방문 등 고위급 인사 교류와 함 께 해외투자 자본의 성격도 좀더 자본집약 적 산업으로 전환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석유 화학 행동하는 방식을 내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루기 위해 행사나 인적교류가 어려웠으나 이 후 각국의 외교활동들이 정상화되는 추세에 있다. 2022년 11월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개최된 3년만의 한-아세안 대면 정상회의 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면서 자유 현재 비즈니스 모델 확장을 진행 중입니다. 이전 CEO는 한국인이었고 현지 시장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에 침투할 때 잘못된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각 나라마다 사업을 함에 있어 항상 강한 면과 약한 면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입니 다.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까지 살았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업에 필요한 인건비와 자본비의 저렴한 부분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도네시아 국민 들이 전반적으로 사업에 있어 유연성이 더 깊어져 협상의 여지가 남는 것입니다. 28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열린 자세로 환영함으로써 현지 한국인들과의 사회적 교 류를 통해서든 계속 노력해 제 자신을 발전시키려 합니다. Q. PT Mobility Doctor Indonesia의 CEO가 되셨다고 들었는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금 융지원이 절실하게 되었다. 1990년에 가장 먼저 현지법인을 설립한 은행은 한국외환은행이다. 이 어 1992년 한일은행(현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 은행)이 현지법인을 설립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인도네시아는 이듬해 5월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다. 이후 민주 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개혁시대(Era Reformasi) 를 맞는다. B.J 하비비 호혜의 3대협력 원칙을 제시하였 다. 나아가 이러한 비전과 원칙을 바탕으로 아세 안에 특화된 협력 추진을 위해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아세안 중시 외교기 조를 강조함과 아울러 아세안과의 전략적 화학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 법은 있습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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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및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지속하려면 체중 조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도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의 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는 폭식이나 불균형한 식습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식이요법과 운동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읽어주는 여자스트레스 관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핵심입니다. 꾸준한 습관 형성으로 건강과 체중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https://joo-da.tistory.com/임플란트 임플란트는 치아 손실 후 가장 효과적인 대체 수단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이 시술은 치조골에 인공 치근을 심고, 그 위에 크라운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치과에서의 정밀한 검사가 필수적이며, 치아 읽어주는 남자 치아 상태에 따라 맞춤형 계획이 세워집니다. 임플란트의 주요 장점은 내구성과 자연스러운 외관이지만, 시술 후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기적인 치과 방문과 구강 위생 관리로 임플란트의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https://dentalnam.com/고객센터 고객센터는 고객과 기업 간의 중요한 소통 창구입니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제품의 환불 절차, 사용법 안내, 서비스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주황오리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객의 요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만족스러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https://teetoo.co.kr/…
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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