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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ima kasih”는 “terima”는 “받다”를 의미하고 “kasih”는 “사랑 “인샬라”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관광지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성가시다. 섣불리 대응하면 계속 따라 붙기 일쑤다. 이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뜨리마 까시~”라고 말한다면 감사합니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해준 도움 거부 권유에 대한 정중한 거절로 “띠닥 뜨리마 까시”(Tidak terima kasih) 또는 “뜨 리마 까시”를 쓸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귀족들까지 도착했 고 뜨갈레죠에서 불려온 무흐타하르 역시 거기 있 었습니다. 그러자 하멍꾸부워노 2세는 쩌렁쩌렁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너희들은 왕국과 정사를 농단한 자의 최후 를 보게 될 것이다. 다누레죠 그 놈을 잡아오너라!” 외세와 결탁한 적폐의 숙청작업은 당연히 술탄과 댄덜스 사이에서 끝없이 불화의 불씨를 제공했던 다누레죠 2세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 지만 실각시키는 것만으로는 그가 지금까지 저지 른 전횡과 방자함을 상쇄하기에 너무나 부족했습 니다. 다누레죠라고 해서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영국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하지 만 그로서는 지금까지 네덜란드에게 그래 왔듯이 이제부터 영국의 비위를 살살 맞추면 여전히 족자 술탄국의 재상으로서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끄라톤 궁 앞의 텅 빈 브레더부르크 요새에서 환영식을 준 비하며 영국군을 기다리는 정성을 보였고 영국군 이 이미 진주한 멀리 바타비아에도 인편으로 선물 을 보내며 영국 편에 줄을 서던 중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 그는 궁전회의가 소집되었다는 소식을 듣 고 자신이 영국과 이미 모든 거래를 끝내 놓았다 고 큰소리를 칠 요량으로 끄라톤 궁전에 들어서 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던 것은 부 기스(Bugis)족 경비부대의 날카로운 창 끝이었습 니다. 포박당한 다누레죠 2세는 시티힝길(Sitihinggil) 대전의 단 위에 하멍꾸부워노 2세가 무 서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 치게 놀라며 그제서야 자신이 죽을 곳에 들어섰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오금이 저려 대전 초입에서부터 엉거주춤 앉은 채 경비병들에게 질 질 끌려 들어왔고 오줌과 똥까지 지려 바닥이 흥 건했습니다. “술탄 전하! 제가 그동안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 고 있었습니다. 이제 결단코 마음을 고쳐 먹겠사 오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옵소서!” 시티힝길 대전 (Siti Hinggil Ler Kraton Yogya ) (출처 - http://krjogja.com/web/news/read/29086/Siti_Hinggil_Ler_dari_ Pelantikan_Soekarno_Hingga_Peresmian_UGM) 30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다누레죠는 그렇게 울부짖으며 목숨을 구걸했지 만 하멍꾸부워노 2세는 말없이 왕좌에 앉아 신료 들이 속속 대전에 모여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신료 들 중 많은 수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다누레죠의 위세를 업고서 마치 자기 세상이라도 온 듯 끄라톤을 어지럽혔던 그의 친인척들이 상황 을 눈치채고 도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대 전에는 모든 왕자들과 왕족들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가 85%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인샬라”(Insya Allah)라는 말이 있다.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샬라”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약속이나 기대하는 바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당장 결정하기 어렵거나 본인이 결정 권한 밖에 있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할 때 많이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인샬라”라고 말할 때 그 중 인구의 45%인 약 1억2천만 명의 자바족 이 자바섬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그것이 네덜란드든 영국 이든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천하의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입장을 부왕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를 바라보 는 노술탄의 눈매엔 찬바람이 쌩쌩 불었으므로 대 대적인 숙청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칫 하멍꾸부워 노 3세조차도 목숨 보전이 쉽지 않을 듯했습니다. “이렇게 된 게 아버님 잘못이 아닌 걸 할아버님 이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할아버 님께 말씀드려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1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수척해진 하멍꾸부워노 3세는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차분한 미소를 지 을 뿐이었습니다. “유폐되어 있던 동안 전각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셨으니 그분의 사무친 한을 내가 이해하지 못 한다면 누가 이해해 준단 말이냐? 그러니 너는 마 음 쓸 것 없다.” “하지만 아버님조차 목숨이 위험하다 하는 얘기 가 들려옵니다.” “부왕께서는 내가 미덥지 못할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 다. 그러니 너도 당분간 나와 조금 거리를 두는 것 이 좋겠다. 내 옆에 있다가 너까지 불벼락을 맞아 서는 안될 일이지.” 그렇게 농담하듯 말하던 아버지의 웃음이 어딘가 슬퍼보인다고 무흐타하르는 생각했습니다. 결국 노술탄은 아들을 폐위해 태자로 내려 앉히고 자신 이 다시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상황을 매 듭지었습니다. 유약한 아들이 미덥지 못했던 것이 죠. 그리하여 1811년 11월 5일 하멍꾸부워노 2 세의 두 번째 대관식이 거행되었고 하멍꾸부워노 3세는 태자로 강등되어 아디빠티 아놈(Adipati Anom)의 칭호를 받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태 자’라는 뜻을 담고 있었죠. 래플스 영국 총독대행 (출처 - https://www.npg.org.uk/collections/ search/portrait/mw05193/Sir-ThomasStamford-Bingley-Raffles) 그들의 말씨 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샬라”를 듣는 순간 근심 긴장감 등을 감추려 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인도 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시당한다거나 뻔뻔하다고 느 끼고 화가 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조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다가 온다. 이들의 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격언에 “비아르 람밧 아살 슬라맛”(Biar lambat asal selamat)이라는 말이 있다. “늦 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라는 이 격언은 한국인의 습성인 “빨리빨리”와 대비되는 인도네 시아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다. 느림의 미학인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이들 을 태도에 익숙해져야 인도네시아인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끝) 꾸랑따우 (kurang tahu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인샬라”는 모든 결정에 신중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습성을 나타낸다. 동남아시아 해양부에 유치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바다를 통한 해상무 역을 통한 경제 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환경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 큼 신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7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왕국 간 또는 멀리 인도 당혹스러움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고 물러난다. 자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말 한마디이다. 물론 떠르스라(terserah 또는 친절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 현하는 방식이다. 직역하자면 띠닥따우(tidak tahu 모른다) 라 덴 마스 수로요를 아디빠티 아놈(태자)으로 순순 히 승인해 주었던 래플스는 불과 1년도 지나지 않 아 하멍꾸부워노 2세와 무섭게 대립하기 시작했 습니다. 하멍꾸부워노 2세로서는 왕궁에 영향력 을 행사하려는 이민족을 먼저 이 왕국 의 구석구석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그의 선택은 이슬람 사회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슬람 연구자들은 공부를 마치면 포교활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지방으로 떠돌곤 했 는데 무스타하르는 그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족 자 술탄국은 물론 자바땅 전역에 대한 정보를 차 근차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6 그러다가 1811년 영국군이 자바에 들어와 네덜 란드 점령지를 빼앗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네덜란 드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랑스에 합병되는 바람에 더 이상 해외 식민지를 관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사실상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죠. 그런 예기치 않았던 사변을 맞아 네 덜란드 총독부는 선택의 여지없이 영국에게 식민 지의 모든 권리를 이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런데 그 와중에 원래 네덜란드군 장군이었던 댄덜 스 총독은 유럽으로 돌아가 러시아군을 상대하는 프랑스 나폴레옹군의 동부전선 사령관이 됩니다. 댄덜스는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돌아올 만큼 끈질 긴 생명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게서 영국으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동 인도에 힘의 공백기가 찾아오자 연금되어 있던 하 멍꾸부워노 2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를 가두어 둘 네덜란드군이 끄라톤 궁전에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유 폐되어 있던 전각 앞에 무장을 갖추고 나선 하멍 꾸부워노 2세는 거기 모여든 자신의 아들 하멍꾸 부워노 3세를 위시한 신료들과 군인들에게 첫 명 령을 내렸습니다.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29 “다누레죠 모쪼록) 무다무다한(mudah-mudahan 뭉낀(mungkin 민망 부끄러움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던 하멍꾸부워노 3 세는 네덜란드 지방총독과 귀족들이 다가오자 아 무 일 없는 것처럼 그들을 맞았고 무흐타하르는 그날로 뜨갈레죠에 돌아갔습니다. 폐위된 할아버 지가 유폐된 전각은 네덜란드 군인들이 겹겹이 지 키고 있어 만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경 직된 왕궁의 분위기를 보면서 그는 왕국이 힘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끊임없이 곱 씹었습니다. ‘힘 없는 왕국은 철저히 짓밟히다가 결국 멸망할 뿐이다. 싸우기 위해선 적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적이 얼마가 강한지 알기 위해선 내가 얼마나 약 한지 신의 뜻대로) 등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걸 원치 않거나 말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때는 부 모 또는 가족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실수하거나 무안한 마음이 들 때 아마도) 알쏭달쏭 말 한마디 “뜨리마 까시” 알아서 하세요) 웃거나 미소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렇게 맺은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 종족이 있으며 이 왕국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알아 야 할 것이다. 내가 힘을 키우려면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이것이 익숙하 지 않은 다른 종족이나 외국인들은 자바사람들을 음흉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정적 인 결과를 우려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끼라 끼라(Kira-kira 대략) 인샬라(insya Allah 일상적인 의미로는 “고맙습니다”에 더 가깝다. 또 의견이나 발 표를 마치고 맺음말로 “뜨리마 까시”라고 하면 무난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자마다대 학교(UGM)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학과가 몇 년 전 학과명을 모두 한 국언어문화학과(Prodi Bahasa dan Kebudayaan Korea)로 바꿨다. 언어와 문화의 밀접 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잘 모른다) 저 자의 악행은 뼈 마디 하나하나를 자근자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 으나 오늘 저 자의 목을 베어 무너진 왕국의 기강 을 다시 세우겠노라!” 그와 동시에 건장한 부기스 무사가 장검을 들고 나와 살려달라 울부짖는 다누레죠의 목을 단칼에 날려 버렸습니다. 그의 잘린 머리는 대전의 천장 에 닿을 듯 튀어올랐다가 바닥을 굴러 대전 밖으 로 떨어졌고 목을 잃은 그의 몸은 통나무처럼 대 전 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자들은 다누레죠 저 자와 함께 국사를 농단한 자들이니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주살하라!” 끄라톤 궁전의 외곽을 지키던 발리(Bali) 경비대 는 이 명령에 따라 척살할 자들의 명단을 나누어 받고서 곧바로 말을 달려 나갔습니다. 숙청작업은 그후로도 한동안 철저하게 이루어졌고 끄라톤 궁 엔 피비릿내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가 장 난처한 입장에 있던 것은 무스타하르의 아버 지 하멍꾸부워노 3세였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총 독부에 등떠밀렸을 뿐이지만 본의 아니게 살아계 신 선대 술탄을 끌어내리고 성급하게 왕좌에 오른 시티힝길 대전 (출처 - https://destinasiwisatadomestik.blogspot.com/2016/05/ kompleks-keraton-jogjakarta.html)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31 한편 영국군은 찌레본(Cirebon)에서 네덜란드군 에게 잡혀 있던 노토꾸수모 왕자를 풀어주었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는 하멍꾸부워노 2세의 동 생입니다. 그는 영국이 동인도 총독대행으로 보낸 토마스 스탬포드 빙글리 래플스(Thomas Stamford Bingley Raffles)를 만나 그가 가진 자바문 화의 깊은 이해에 감탄하여 친분을 다졌고 그와 하멍꾸부워노 2세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게 되었 습니다. 하지만 하멍꾸부워노 2세는 네덜란드와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 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영국 총독대행에게 붙 어 다니는 동생도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처음엔 하멍꾸부워노 2세를 족자 술탄국의 지배자로 전국적으로 흩어져 거주하는 만큼 자바문화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바사람들의 신앙이자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끄자웬 (Kejawen)이 이들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아니다’라는 의미의 띠닥(tidak) 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회피한다. 무엇인가 를 사양할 때조차 인도네시아인은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다. 따라서 자바인들과 대화할 때‘야’(ya 또는 iya)가 진정한 의미의 ‘예’인지 ‘아니오’ 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상황이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중국 중동의 상인들과 거 래하려면 이방인과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적 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태도이며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사랑(호의)을 받는다”라는 뜻이지만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직장 상사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로 만족하거나 수긍할 때와 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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