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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개발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개 발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양국 간 실질협 력 분야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는 2012년 9월 아세안 사무국이 위치한 자카르타에 설립되어 한국과 아 세안(ASEAN <창조문화산업 협 력에 관한 양해각서> (편집자주) 한인뉴스는 2023년 9월 한국-인 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어판으로 발간한 책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Merajut Persahabatan dan Memupuk Kepercayaan”)의 한글 원본을 12회에 걸쳐 연 재합니다. 제1장 한국-인도네시아 외교 50년 2. 초창기(1973~1988년): 외교관계 수립부터 전 두환 정부까지 1) 협력과 신뢰의 토대 마련 1973년 9월 18일 000개가 넘는 중소 유통업자에게 SNI 철강 제품을 유통하고 관리하고 있다. 고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만족도 를 높이고 매출 증가를 위해 제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결과 철강제품은 60종류에서 90종류로 늘었다. 황민성 이사는 새로운 제품 수입을 하기 전에는 자카르타 주변의 위성도시 시장을 철저 히 조사해 수익성을 분석한다. 자바섬 외부로 제품을 운송하기 위해 다양한 물류기업과 작업 조 율도 꼼꼼히 챙긴다. 2023년부터는 고객이 겪는 이동 수단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해 전문가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 Modoc 스타트업을 대표로 된다. 스타트업으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는 황민성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황민성 이사님 000만명이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였고 000억 달러 교역액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 가기로 하였다. 또한 <국방협력 협정> 000억달러 달성 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7년 11 월 9일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 는 데 합의했다.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와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개발도상국부터 현재까지 경공업 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한-인니 중장기 경제협력비전’ 에도 합의했다. 특히 유도요노 정부는 한국의 잠 수함 3척과 T-50 고등훈련기 16대 구매 및 차세 대 전투기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협력에도 적 극적으로 협력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에 힘썼다. 2014년 11월 한국이 발족한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수임 1) 노동집약산업에 이어 기술집약산업 등 제조업 투자 진출 1988~1992년 기간에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 아 투자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섬유 11월에는 마스터플 랜 협력을 위한 경제협력사무국이 인도네시아에 설치되었다. ★ ‘무궁화 대훈장’ 수훈 유도요노 대통령 2014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임기간 (2004∼2014년) 10년 동안 한-인니 관계 발전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 하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 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 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MP3EI)을 수립하고 1959년 6월 인도네시아북한 친선협회 구성 1960년 6월 인도네시아 언 론인 북한 방문 1960년대 초 경제적 차원에서 한국 기업의 주도로 양국 고위인사 간 접촉이 이 루어지게 된다. 당시 산림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 진출했던 ㈜한국남방개발(현 KODECO) 최계월 회장은 한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1962년 1월 수 카르노 대통령을 예방하였으며 1961년 6월 주인도네시아 북한 총영사관 개설 1961년 미국에 서 특수전 교육을 받은 후 줄곧 특전사 장교로 최 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수카르노 정권 당시 인 1958년 수마트라와 술라웨시에서 일어난 ‘ 인도네시아공화국 혁명정부(PRRI)’ 반란 사건 1961년 이리 안자야(현 서부파푸아) 머라우께 지역 군사작전 지휘 1962년 2월 일본 도쿄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과 수카르노 대 통령 간 만남을 주선했다. 한편 1964년 한국 정부 인사로는 최초로 산림조 사단(단장 심종섭)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최 계월 회장과 함께 수카르노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1964년 인도네시아 여당 수비안또 간사장과 수 카르노 대통령 양녀 사디킨 여사가 산림협회 협의 차 방한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변(9.30사태/G30S)으로 인도네시아공산당(PKI: Partai Komunis Indonesia)이 붕괴되고 친미·반공 노선의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북한 간의 친선관 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개선의 환경이 조성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승인 이후 17년만인 1966년 12 월 한국 정부는 당시 주태국 이창희 공사(후에 인 도네시아 초대 총영사로 발령)를 자카르타에 파 견하여 한-인니 양국 간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 고 자카르타에 총영사관을 개설하였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62 I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1966년 당시 한국 정부는 대외관계에 있어서 북 한이 외교관계를 체결하고 있는 국가와는 외교관 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하고 있 는 만큼 북한 공관이 이미 상주하고 있던 자카르 타에 한국 총영사관을 개설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의 대동남아 외교 공세 강화로 북한이 위축되어 있고 1962년 3월에도 한국 경제사절단 입 국을 거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1961년 북한-인도네시아 영사관계수립과 1964년 대사 급 외교관계 수립 등 북한과의 관계가 빠르게 진 전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측이 남한과의 관계 구축 에 부담을 느낀 조치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문화·스포츠 차원에서는 일부 교류가 이루어졌다. 1962년 4월 이상백과 월터 정이 아 시아올림픽 상임위원회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를 방문하였는데 1964년 4월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정상 간 교류에서는 1964년 수카르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데 이어 1965년 4월 김일성 주석 의 인도네시아 답방이 이루어졌다(김정일 동행). 북한과 비교해 남한은 1981년 6월 전두환 대통령 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1982년 수하르토 대통령 의 방한이 정상 간 첫 교류였다 1964년 수카르노 대통령 방북 시 김일성 주석은 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맞서 압박을 받은 민족 들의 공동전선을 형성할 필요성에 관한 공동성명 을 발표하였다. 1965년 김일성 주석의 인도네시 아 방문은 그의 첫 번째 비공산국가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북한이 인도네시아와의 외교관계 개 선에 두었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비동맹운동 창설의 기초가 되었던 1955년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 또는 Asian-African Conference 1964년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정책 1965년 공산당 쿠데타 9.30정변 등. 수하르토 정권에서 1974년 다나카 일본 수상의 인도네시아 방문 시 발생한 반일 폭력시위인 말 라리(Malari)사태 1965년 인도 네시아 정변 사태로 북한의 활동이 극히 위축된 상태에 있어 한국 총영사관 개설이 적절할 것으 로 판단했다. 인도네시아는 2년 뒤인 1968년 서울에 총영사관 을 개설하고 수깜또 사이디만(Soekamto Sayidiman)을 초대 총영사로 파견하였다. 제2대 총 영사는 베니 무르다니(Leonardus Benny Moerdani)로 현지 한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 며 1969~1974년)에서 수하르토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과 국내외 투자 촉진을 도모했고 1969년 4월 1일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 획”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는 대내외 환경에 맞춰 기간마다 정책 목표를 수 립하고 국가산업을 고도화해 왔다. 이러한 현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맞춰 코린도그룹은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인도네시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 1973년 8월에는 바사라 (Basarah) 인도네시아 공군참모총장이 답방했 다. 양국 군 고위급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 라 1974년에는 무관이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1977년 11월 30일에는 최각규 농수산부 장관과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양국 정부를 대표하여 쌀 대여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는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쌀을 지원하 여 줄 것을 한국 정부에 긴급히 요청하였기 때문이 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식량부족 해소를 위해 쌀 7만 톤을 대여하기로 신속히 결정하였고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대 리대사로 근무했다. ★ 지한파 베니 무르다니 장군… 인도네시아 현대 사의 주역 인도네시아가 독립 이후 격변기를 겪을 때마다 주 역으로 등장하는 베니 무르다니(1932~2004년) 장군은 한국과 매우 인연이 깊은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1932년 중부자바 지역에서 태어난 베니 무르다 니는 1956년 육군 소위로 임관 1974~1979년)에서 수하르토 정부는 국민 생활 수준 향상과 개발 성과의 공정분배 및 고용기회의 확대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외자 봉쇄 조치 1975년 동티모르 사태 1979~1984년)에서 공업화 기반 확충을 추진했다. 자원개발을 강화하고 국토 균형 발 전을 위해 이주정책을 강도 높게 진행한다. 이 기간 약 7.9%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실현한 다. 1980년 코린도는 합판을 중동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1983년 포르말린과 접착제 공장 을 설립해 생산했다.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V 1980 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성화(Sung Hwa Dunia) 1980년대는 한국 1981 년 가루다항공 납치 사건 1981년 코데코와 뻐르따 미나와의 서마두라유전 공동개발은 ‘한국 최초 해외유전개발 사업’이다. 인도네시아는 1992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소를 개소한 국가로 1984~1989년) 기간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의 균등분배 1984년 딴중쁘리옥 이 슬람사원 사태 등의 진압을 지휘한 주인공이다. 베니 무르다니는 1971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 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 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3년여 동안 한국에 머물 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한국인과 친근하 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리대 사로 근무했다. 1974년 1월에 본국으로 귀임해서는 국방부 정보 국장 1985년 6월 에는 인도네시아 민속예술단의 서울공연이 있었 고 1989~1994년) 기간에는 경제 발전 및 부 의 균등 분배 1989년 1월에 ‘아시아·태 평양 경제협력’ 즉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각료회의가 창설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인 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중국이 전 세계 생산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대 후 반기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노동쟁의 증가 1993년부터는 정상회의로 발전한다. 1989년 11월 2일 최호중 외무장관이 아세안사 무국에서 알리 알라따스(Ali Alatas)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당시 아세안 상임위원장)과 한-아세안 협의체제 출범을 위한 합의각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은 통상·투자·관광 부문의 대화상대국으로 지정되었고 1994~1998년) 기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 는 제2차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위한 기반 조성 및 경제도약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인도네시아 정치·경 제와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과거 경영관행에 익숙 했던 대부분 한국계 신발기업은 경영 악화에 직면 한다. 이에 인도네시아 신발 투자기업 1세대로 분 류될 수 있는 성화 2002년에는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했 다. 또 2011년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는 절친한 사이였다. 메가와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2009년 대권에 다시 도전해 연임에 성공했다. 무궁화 대훈장 수여(2014. 11.19)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7 5) 박근혜 대통령의 인니 국빈 방문: 상생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미래 동반자 관계 구축 박근혜 대통령은 발리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 이 ASEAN+3/EAS 정상회의 참석 직후 2013년 10월 10~12일 기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하였다. 방문 둘째날에 대사관 신청사 준공식 제 막식과 기념식수 200만 켤레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집권당 총재로서 풍부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1999년부터 지난 다섯 차 례에 걸친 총선에서 대중적인 지지자들은 메가와 티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준 만큼 그는 투쟁민 주당을 결집하는 핵심인물이다. 포퓰리센터(Populi Center) 아디 아비딘 연구원 은 메가와티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에 대 해 2017년 목포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과 가깝게 지내왔다. (끝) 2002년 3월 30일. 김대중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통령 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메가와티 대통령은 먼저 북한 방문하고 이 어 남한을 방문하며 외교중재자 역할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2020년 1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액 1 2023년 연말 대사표창자 (총 38명) 성 명 소속 및 직위 고성우 바탐한인회 총무 구현진 재인도네시아 대한태권도협회 MK태권도장 (관장) 권미영 인도네시아 EPS센터 차장 권순한 즈빠라한인회 감사 김미정 동부자바수라바야 한인회 소속 한글학교 교사 김민규 한국자유총연맹 인니지부 부회장(재무간사) 김민화 족자 한글학교 교사 김우영 메단한인회 부회장 김원기 중부자바한인회 부회장 김은자 중부자바한인회 / PT.SAMKYUNG JAYA GARMENT 법인장 김효중 한인니디지털정부협력센터(DGCC) 센터장 노병진 세계한인무역협회 자카르타지회차세대 부대표 박세원 한국수자원공사 박진철 IBK 기업은행 인도네시아법인 부장 장미애 세계한인무역협회 자카르타지회 이사 장방식 재인도네시아 한인문화예술 총연합회 국악사랑(단장) 전청균 한인니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 기술부장 제경종 땅그랑 한인회 고문 조연숙 한인언론인협의회 /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15 송예선 자카르타한인어린이합창단 지휘 겸 단장 심선미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교사 안연진 재인도네시아 대한체육회 부회장 양신영 발리세움한글학교 교사 윤희섭 재인니외식업협의회 부회장 이건식 현대자동차 아세안권역 대외협력팀 이수한 재인니찌까랑한인회 이사 이승수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이승현 PT. CMS CHEMICAL INDONESIA 이사 이은주 한인청년회 운영위원 이승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카르타지사 지사장 이철웅 대홍기획 인도네시아 법인장 이혜자 한인니문화연구원 특임연구원 이효연 KOTRA 인도네시아 비즈니스협력센터 임종순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 사무총장 홍석영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한인뉴스 편집장 Dr. Djarot Wibowo Head of Medical and Health Division of East Kalimantan Regional Police (Kombes 2건의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각계에서는 총 12명이 공로상을 받았다. 해당 기록은 올해 열린 양국 수 교 50주년 행사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한국대 사가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양국이 지난 50년 간 쌓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의 공동번영 을 위한 전략을 준비하자”며“한류(K-Wave) 와 인도네시아 문화 웨이브(I-Wave)가 만나 인 류의 미래를 위한 큰 물결(Big Wave)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제언들이 도출되기를 기대한 다”고 강조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영상 축사에서 “지난해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 규모가 여러 국가 중 7위를 차지했다”며“전기차 생태 계 등 양국 사이에 더 많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 한다”고 말했다. 오전 세션에서는 신윤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 예교수와 엄강심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방문교수 가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간 외교관계를 평 가하고 2년 임기의 의장에 취임했다. 한편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2년 11월 8일 발리 민주주의포럼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이 명박 대통령에게 양국 간 관계 증진에 대한 공로 로 인도네시아 최고 훈장인 ‘빈땅 아디뿌르나’ 훈장(Bintang Republik Indonesia Adipurna)을 수여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4년에 인도네시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첫 번째 대통령이다. 1949년 동부 자 바주 빠찟딴 지역에서 퇴역 육군 준위의 아들로 태 어나 1973년 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정계에 진 출하면서 군을 떠날 때 4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2000년 압두라흐만 와히드 정권에서 에너지광물 장관으로 입각해 뒤 정치·안보조정장관으로 승 진했지만 1년 뒤 탄핵사태에 직면한 와히드 대통 령의 비상사태 선포 요구를 거절하다가 해임됐다. 2004년 메가와티 정부에서 정치·안보조정장관 으로 재임명됐지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다시 물러 났다. 이후 그는 민주당을 창당해 2004년 대선에 서 출마해 인도네시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 박근혜 대통령 2년 정도 됐습니다. 회사 자체가 자동차 미디어 플랫폼이 고 2년 후인 1991년에 완전 대화상대국 으로 격상되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2년 9월 2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다시 만났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이 가장 심각한 문제 라고 지적하고 2차 3. 발전기(1988~2002년): 노태우 정부부터 김 대중 정부까지 1) 협력의 에너지 확대와 성과의 축적 이 시기에는 양국 간 실질 협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정비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 하기 위한 발전 동력이 만들어졌으며 300개 이상의 중소 중견기업에 ERP 솔루션을 제공해 온 풍부한 경험 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SEI의 성공 을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 개척 의 길이 험난할 수 있지만 300여 개의 고객을 구축하면서 저희 나름의 가지고 있는 추가 개발(표준 시스템 외에 필요한 기능을 고객 요구에 맞추어 개발)을 통해 구축하 는 컨설팅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이 고객의 니즈 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고 3월 30일 김 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와 한반 도 및 동아시아 등 지역정세 3차 및 4차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 진행하면서 4. 제1차 성숙기(2003~2017년): 노무현 정 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 전략적 동반자 관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동행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기간에 한국 과 인도네시아 양국 외교사는‘전략적 동반자 관 계’로의 격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양국은 자유민 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동 반자라는 인식 하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크게 증대 시킨다. 200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이 후 양국 간 협력이 정치·경제·방산·문화·인 적교류·국제무대 등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매년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여 협력관계가 급속히 증진되었다. 2015년까지의 무역액 500억 달러 달성 400톤급 잠수함 3척을 순차적으 로 건조했다. 또한 양국은 다목적 전투기(KF-21)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최근 KF-21 분 담금 연체와 인도네시아 기술자의 기술 유출 시도 문제로 술렁거리고 있다. 2024년 인도 네시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미해결된 사항이 원만히 해결돼 양국 방위산업 협력이 더욱 확 대되기를 기대한다. (끝) 550만 명이 거주하는 무한한 기회의 땅 900개 이상의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AI 기술은 이미 실생활에서 다양 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APEC 정상회의(11월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Astra International CJ 등과 같은 전 자와 바이오 산업이 진출해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급등하자 CJ 등과 같은 투자성공 사례를 낳는 기반 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봉제와 신발 등 노동집약적 한국 기업이 동남아 국가를 투자 대상으로 주목한 이유 는 원화의 절상 Charles Kwon 사장을 이사로 임명 해 자카르타에 SystemEver Indonesia를 설립했 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경제적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SystemEver는 아시아 최고의 클라우드 ERP 회 사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이를 실현하기 위 해 경영과 IT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있다. 회사 내부 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고 ERP 본연의 목적을 살려두고 ERP 외적으 로 필요한 관리 기능들을 모바일 앱을 통해서 해 결하고 Global Value Chain ICT(정보통신기술) 등 투자와 협력을 고도화시 켜 나가고 있다. 또 한류에 대한 인식이 인도네시 아 국민 저변으로 확산되면서 양국 간 문화에 대 한 이해와 교류가 심화됐다. 2006년 4월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하산 위라유다(Hasan Wirayuda)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Indomaret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에서 철강 수주에 성공하며 현재 1 Indomaret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철강 수주에 성공하셨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철강 유통 회사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KCC글라스 KF-21 전투기 공동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최초 의 국가가 인도네시아이다.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7 냉전시대인 1973년에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중 남북한이 대사관을 동시에 상주시킨 첫번째 국가이다.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도네시아인 의 한국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KMK LG에너지 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MODOC도 자동차 판매 및 구매를 하고 NGO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였다. 인도네시아 전역에는 코이 카가 파견한 한국어 PLN Pembela Tanah Air)에 자원하면서 군인으로 성장한다. 1965년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인 9·30사태 (G30S)를 당시 수하르토와 함께 진압하면서 수 하르토 정권의 1등 공신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 기도 했으나 SEI는 이러한 철 학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최상의 솔루션과 서비스 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30년간 2 SEI는 해외 시장 개척의 최전선에서 아 시아 No.1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SystemEver Indonesia(SEI)는 인도네시아 시장의 특 수성에 맞춘 계정 세금 서비스 SystemEver는 클라우드 기반 ERP(SaaS) 솔루 션을 통해 아시아 전역의 비즈니스 성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의 주파트너로 참여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얼마 앞둔 11월 ‘한-인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 고 그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 빈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격상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국빈 방문 중에 원자력협력협정과 관광협력협 정이 양국 대통령의 임석 하에 서명되었고 “Terima kasih”는 “terima”는 “받다”를 의미하고 “kasih”는 “사랑 “올해는 그간의 성과에 기초하여 한-아세안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미래를 향한 아세안과의 관계 를 그려나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서 ‘2024년 신년인사회’ 열려 이상덕 대사 “인샬라”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관광지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성가시다. 섣불리 대응하면 계속 따라 붙기 일쑤다. 이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뜨리마 까시~”라고 말한다면 “한국 기업은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왔나?”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대한민국은 1960년대 외환보유고가 1억 달러 남짓할 정도로 국가재정이 형편없었던 시 기에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해외직접투자(FDI)를 과감하게 실행했다. 해외직접투자를 결 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왜 인도네시아를 선택했을까? 해외직접투자를 하려면 기업이 갖고 있는 인력 “한국기업 가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강점이 있지 만 생산 방식은 사람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제조업 강 국의 꿈을 이루려면 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뛰어넘어 4차산업 기술로 직행을 추진하는 가운데 가루다인다와 가치사슬)이 재편되면서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 러한 혼돈의 시대에 자원부국이며 잠재력이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GVC의 지각변동의 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의적절한 한-인니 CEPA 발효는 양국 간 경제 협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 가파른 원화 절상 및 임금 상승에 따른 제 조비용 상승으로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국내 노동집약적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을 모색 하게 됐고 각 분야의 공동 번영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 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 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로 한 뒤 마련된 자리로 주목을 받았다. 현장에는 인도네시아 기업·기관 관계자 300여 명 간단히 시도해 보겠다는 마음 가짐으로는 쉽지 않은 시장입니다. 창업을 결심한 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준비가 필요합니 다. 인도네시아는 사업을 하면서 예기치 않은 일 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는 더욱 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고 간디 술리스티얀토 인도네 시아 대통령 특별 고문 간디 술리스티얀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별 고문 감사합니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해준 도움 감사합니다. 언어를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같 은 해 아세안 국민 27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2020년초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2022년 초반까 지 각종 회의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시립무용단이 자카르 타를 방문하여 부채춤과 살풀이 공연을 선보였다.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결연 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서울-자카르타 이외에도 발리주-제주특별자치도 같은 해 12월에 첫 선적이 이루어졌다. 쌀을 수입하던 한국이 외국으로 쌀을 대여한 것은 건국 이래 처 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영 농기술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었고 개발 조사 개인적으로 어떤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나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기술 발전에 맞춰 개인적인 것이든 거부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수 카르노 초대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 대통령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건설 등 한국 기업들이 이미 현지에 진출해 있었던 터라 인도네시아에 직접투자는 진출에 따른 초기 비용 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건전하고 역동적인 안정 국가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결국 모든 것이 균형을 이 룹니다. 그리고 각각의 손실에서 저는 항상 가 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 지 확실한 것은 경 제 경남기업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였다. 동 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한 자카르타 한국학교도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1973년 9월 18일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영 등 유무형의 자산뿐 만 아니라 투자국의 자원과 노동력 경제 경제 성장 활성화 및 국가 안보의 강화 등을 주요 정책 목표로 추진한다. 수 하르토 정부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비(非)석유가스산업 부문 보다는 노동집약산업과 중 소기업 육성에 중점을 둔다. 또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자본집약산업과 수출지향산업에 해외 투자를 권장한다. 이 기간 코린도는 제지공장과 스포츠화 제조업을 가동한다.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V 경제 위기 동안에 수반되는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Q. 프로필을 살펴봤는데 영어 경제와 비즈니스 및 사회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끝) 계속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나 선배 고객의 비즈 니스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SystemEver Indonesia가 되고자 합니다. Q. SystemEver Indonesia는 모기업인 영림원소프 트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영림원소프트랩의 지원이나 협력이 인도네시아에서의 사업에 어떤 영향 을 미치고 있나요? SystemEver Indonesia와 영림원소프트랩은 고 객이 보다 나은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고도 경제성장 곧 중요한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 대하고 있습니다. SEI는 본사와의 협력을 통해 현 지에서 더욱 강력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공동기자회견 공부를 통해서든 공원을 걸으면서 혼자 생 각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구매력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 덕분에 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경제적 호황을 누린다. 이 기간 한국 기업은 중화학공 업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맡았던 베니 장군은 수하르토 정부의 군부 실세로 한국기업을 후원했으며 국방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을 맡았다. 수하르토 정부의 군부 실세였던 베니 장 군은 인도네시아 한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한국 기업을 후원했으며 국방장관 국제무대에서의 협 력 방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의사 전달이 있었다. 또 정보기술 분야에서 협력 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권유에 대한 정중한 거절로 “띠닥 뜨리마 까시”(Tidak terima kasih) 또는 “뜨 리마 까시”를 쓸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와 실 패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 실패들 속에서 배운 점들이 쌓이면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 었고 그 과정에서 청 년들이 창의력과 자신감 그 당시에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배운 것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두지 않는 성격도 도움이 되네요. 언 어에 재능이 ‘있다 그 덕분에 리더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 다.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으며 그 속도에 뒤 처지지 않는 학습과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 다. (웃음) 특히 그 속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갖길 바랍니다. 또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가 85%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인샬라”(Insya Allah)라는 말이 있다.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샬라”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약속이나 기대하는 바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당장 결정하기 어렵거나 본인이 결정 권한 밖에 있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할 때 많이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인샬라”라고 말할 때 그 중 인구의 45%인 약 1억2천만 명의 자바족 이 자바섬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그간 공동연구가 이 루어진 한-인니 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국내 절차를 진행키로 합의하였 다. 한-아세안 FTA에 이어 양국이 보다 심화된 양자 간 FTA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 게 된 것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 세안 산림협력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의 산림 녹 화 성공 경험을 아세안에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되 어 한국 산림정책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40여년 이상의 공고한 한-인니 산림협력 파트너 십이 동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 한국 그들의 말씨 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샬라”를 듣는 순간 그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리고 깊게 알리는 데 최선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유키 회장 직무대행은 “올해 한·인도네시아 포괄적 경제 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되며 관세 장벽이 낮 아지고 그리고 문화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Q.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SystemEver Indonesia가 추구하는 인재 발굴 및 육성 전략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SystemEver Indonesia는 인재 발굴에서부터 전 략적 접근을 중요시합니다. 특히 ERP 산업은 고 객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서비스업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분에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 로부터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잘 관찰하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 의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깊이 있 는 학문적 배경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기회를 만들 60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어 다시 학문으로 돌아가 근심 글 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을 가속화할 계획입니다. 중 장기적으로는 파트너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글로벌 밸류체인 (GVC 금속과 화학을 비롯해 자동차 산업 등 기술집약산업이 진 출하지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해 차기 장 기경제계발 계획은 중단된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정권 이후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개혁시대를 맞지만 극 심한 혼란으로 정치·경제와 사회가 불안정한 시기가 이어졌다. 2004년 최초로 직접선거 에 의해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정부가 출범해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고 대( 對)중국 자원수출에 힘입어 연 평균 6%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2006년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발전한다. 유도요노 정부는 투자법을 크게 개정하고 금융 급 격한 임금 상승에 따라 봉제 기꺼이 여러분과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 기념식수 및 국빈만찬의 일정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인니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의 연 내 타결에 합의하고 2015년 500억 달러 기밀 유지 때문에 미래 전략을 충분히 설명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 니다. (웃음) 대부분의 자동차 소유자는 항상 자신의 자동차가 자산이라기보다는 부채에 가깝다 고 생각합니다. Modoc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대신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으로 바 꿈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혁신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떻게요? 궁금하시다면 계속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 Q. 한국 기업이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조언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전에 한국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한 적이 있고 기술 기술 관련 분야에서 더 많은 학위를 취득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좋은 비 즈니스 파트너이자 리더로서 더 나은 문제 해결 능 력을 갖추고 기존의 ERP 로 만족할 수 없었던 부분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 어 고객만족도 또한 높아 질것이라고 기대됩니다. Q. SystemEver Indonesia와 영림원소프트랩이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올해 공식적으로 처음 제 정된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나의 한국 이야 기> 공모전을 공동 주최하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 가 있을까요? 이 행사가 회사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SystemEver Indonesia와 영림원소프트랩이 이 번 <나의 한국 이야기> 공모전을 <한인니문화연 구원>과 공동 주최하게 된 이유는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 슈들에 있어서도 아세안 차원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다방면 에 걸쳐 아세안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 다. 아세안과의 FTA는 2007년에 발효돼 상품 기후변화와 환경 긴장감 등을 감추려 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인도 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시당한다거나 뻔뻔하다고 느 끼고 화가 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조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다가 온다. 이들의 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격언에 “비아르 람밧 아살 슬라맛”(Biar lambat asal selamat)이라는 말이 있다. “늦 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라는 이 격언은 한국인의 습성인 “빨리빨리”와 대비되는 인도네 시아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다. 느림의 미학인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이들 을 태도에 익숙해져야 인도네시아인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끝) 김대중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압두라흐 만 와히드 대통령 김영삼 대통 령 김형석 체험수기 부문 가작 및 2023년도 주인도네시 아 대사표창(38명) 등을 수상자들에게 전달·수여했다. 꾸랑따우 (kurang tahu 끊임없이 변화하는 글로벌 비즈니 스 환경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 다. 이러한 접근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SystemEver Indonesia가 고객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Q. SystemEver Indonesia의 향후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성장 전략과 글 로벌 확장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SystemEver Indonesia는 앞으로 파트너십을 강 화하여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성장을 도모할 계 획입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은 광범위하고 다양하 기 때문에 끝까지 해내겠다는 강한 결심과 마음가짐이 필수적입니다. 무엇보다 도전과 실패 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 이는 태도가 중요하겠지요? Q. 마지막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인샬라”는 모든 결정에 신중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습성을 나타낸다. 동남아시아 해양부에 유치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바다를 통한 해상무 역을 통한 경제 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환경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 큼 신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7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왕국 간 또는 멀리 인도 남북한 유엔 가입의 조속한 실현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태평양지역 내 개발도상국 간 협 력 증진의 표시로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 내에 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하는데 협력할 의향이 있음 을 표명했으며 내년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SystemEver Indonesia의 최대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인도네시아에서의 도전 과제도 존재합니다. 한 국 본사인 영림원소프트랩이 한국에서는 높은 네 임밸류를 지니고 있지만 내일을 위한 동행 (Together for the Future K-Wave and IWave)’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이번 포럼은 ㈜헤 럴드(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신뢰 를 쌓아가며 장기적으로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 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더라도 잘 관리하 지 못한다면 노사분규 논리적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현지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뉴발란스 느끼고 니켈 등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은 주요 자원을 수입 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적인 경제 취약성을 갖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 립경제체제를 구축해야하는 당면과제를 갖고 있다. 1962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산업화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이다. 특히 다국적 기업이 소유한 프로젝트를 통하 여 유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개발한 사업으로 다른 자재 가게에도 철강 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 업에서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네트워크’ 라고 생각할텐데요 다방면에 서 양국 간 협력 관계가 역동적으로 발전하였다. 정상외교 측면에서 노태우 대통령 단독으로 이를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량 있는 파트너 와 협력하여 시장을 넓혀 나가는 것이 핵심 전략 입니다. 특히 단순히 기업의 영역을 넘어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 습니다. 저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으로서 환 대받고 존중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 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함에 대한 보답의 일환으로 당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체육 장관 말라디(Maladi)와의 면담에서 수카르노 대 통령에게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건의하겠다 는 약속을 받아낸다. 1962년 5월에는 한국축구 단이 방문하여 친선경기가 열렸다. 북한-인도네시아 관계가 진전되는 상황 하에서 남한 정부 고위인사의 인도네시아 방문이 이루어 지지는 못했으나 당시 한국남방개발)를 통한 과감한 해외투자를 감행한다. 이후 50여년이 지난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기업은 인도네시아 산업구조와 지역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데코 투자 이후 코린도(KORINDO)를 비롯해 많은 한국 목재회사들이 현지에 투자가 이어진다. 이 가운데 코린도는 현재까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당혹스러움 대규모 무 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 경상수지 적자를 면치못 했다. 인도네시아는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가 증가 했지만 정확한 외채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 로 금융과 자본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자국의 통화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정책 당국은 조정을 주저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외환위기를 맞으며 1997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구조조정계획 절차를 밟게 됐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발생한 외환위기 로 현지 한국계 기업들은 위기를 맞는다. 1997년 경제 위기와 1998년 이후 민주화 과정의 정치사 2. 제조업 중심의 한국기업 투자 급증: 발전기(1986~2002년)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3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회적 불안정은 한인 사회 존속을 일시적으로 위협 했다. 특히 1998년 5월 폭동 때는 5천여 명의 한 인들이 비상 탈출해야 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귀국시킨 뒤에도 많은 한국계 기업 의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이때 부터 인도네시아 관리들이나 현지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려울 때 도와준 진정한 친구라고 여긴다. 2) 25만명 고용을 창출한 한국 신발업체 신발산업 가운데 스포츠화의 경우 1970년대는 일본 대림산업 대부분의 경제학자 들은 인도네시아가 2045년까지 세계 4위의 경제대 국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양한 산업들이 필요 로 하는 막대한 양과 다양하고 중요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세계 4위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서 대부분이 이미 자사 비즈니스에 무엇이 필요 하고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 러나 이를 실행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외부 파트너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제공업체를 넘어 대상지로 동남아와 중국이 부상했다. 당시 한국과 대만의 신발제조업체들이 대거 동남 아와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시킨 배경에는 나이키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한 도를 3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는 기본약정을 인도 네시아 정부와 체결하였다. 양국 간 실질협력은 국방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 루어져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양국 공 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세션에서는 ▷전기차 ▷인프라 ▷혁신 산 업(금융·유통·철강)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CCS) ▷창조경제 등 주제가 다뤄졌다. 마지막 세션 5 ‘K-wave와 I-wave: 2045년을 향한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창조산업 육성’에선 문화 교류를 논의했다. 토론에는 인도네시아 국민 여 배우 루나 마야 대한민국 총경급) Maulida Ibnaty Qonita 중부자바한인회 Rendra Z.Idris 소속: Otoritas Jasa Keuangan (OJK) / Head of International Department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고 물러난다. 자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말 한마디이다. 물론 더욱 신뢰받는 솔루션 제공업 체로 자리 잡는 것이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SystemEver Indonesia는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 해 현지 시장에 맞춘 특화된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 공하며 도손(Doson Indonesia)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일할 때는 심지어 동남 아시아 사람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고 독자 들은 SystemEver Indonesia가 제공하는 솔루션 의 핵심 가치와 이 솔루션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미 치는 긍정적 영향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Q. SystemEver Indonesia의 대표이사로서의 여정 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기술 및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리더십 역할을 맡게 된 계기와 영감은 무엇이었나요? 인도네시아는 국가 차원에서 제조업 육성을 적극 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 부자바주-경상남도 등 2022년 현재 28개 지자체 가 자매(우호) 결연을 맺고 있으며 동 양(Dongyang Indonesia) 동남아 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마스지드 이스티클랄과 같은 많은 국가 프로젝트에 철강을 공급했습 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경 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 동조 동조(Dong Joe Indonesia) 두 나라 간의 문 화적 소통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희망합니다. 행사 의 본질은 참여자들이 스스로 느낀 한국과의 연결 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있으며 디지 털 디타 카랑 K-팝(POP) 그룹 ‘시 크릿넘버’ 멤버 등 12명이 공로상을 받았다. 이 어진 축하 무대에는 한국에서 석 달간 K-팝 트 레이닝을 받고 본국에 돌아온 인도네시아 걸그룹 ‘스타비’가 올랐다. 인도네시아 전통춤 누산따 라 공연과 한국 무술 태권도 공연도 눈을 사로잡 았다. 한편 디테일링 땅그랑은 수도 권의 대표적인 한인 집중 거주지로 부상했고 떠르스라(terserah 또는 친절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 현하는 방식이다. 직역하자면 띠닥따우(tidak tahu 모른다) 라오스 레퍼런스를 축적함으로써 현지화된 기능 을 제품에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시장은 ERP 분야입니다. ERP는 정 확한 정보를 입력해서 표준화된 프로세스로 데이 터를 처리하여 회계 및 원가를 건드려야 하는 분 야입니다. 그러다 보니 통합과 정확성에 초점을 더 맞추게 되고 사용성 측면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려 날 수 있는 위험부담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ERP와 자체 모바일 APP을 결합한 형 태의 비지니스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요약하 자면 롯데케미칼 등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상호 간 깊은 신뢰를 요구하는 방위산업 협력에도 긴밀하다. 방산 협력은 양국 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 다. 인도네시아는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무기체계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대우조선 해양은 지난 2011년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1 롯데케미칼 등 한국 첨단산업 대기업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사업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빨리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대 표 사무소를 설립하는 것부터 법인 설립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리복 말레 이시아 말레이시아 매년 지방자치단 체 간의 경제. 문화 교류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 사르워 에디 초대 주한 대사… 사위 유도요노 대통령과 아니 여사 1974년 4월 18일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 Wobowo)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임 명돼 4년간 근무한다. 중부자바주 뿌르워레조에 서 태어난 사르워 에디 대사(1925~1989)는 네 덜란드 강점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침략한 일본군이 설립한 조국의용 대(PETA 매일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주말에도 5시 정도에 일어 났습니다. 문법은 저의 모국어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고 재충전하는 데는 이만한 운동 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덤으로 체력이 점점 향상되 고 있습니다. (웃음) Q. 인도네시아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 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도 아직 젊은 세대의 일원이라 조언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지만 먼저 한인뉴스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윌리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 령의 방한이 이루어짐으로써 이전에 비해 정상 간 상호방문이 활발해졌고 이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1987년 이후 한국 내 민주화와 노조운동 격화 메가와티와 투쟁민주당이 △헌법 질서의 준수 △세속주의 명상이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줍니다. `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9 Q. 스타트업 창업이나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 주실 조언이 있을까요? 아직 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러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역경과 고난입니다. 개인 적인 이야기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모두 언어를 배우는 데 얼 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저에게 세계의 또 다른 부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저에게 면접 같은 새로운 기회가 되 었습니다. 저는 서울대에서 공부했을 당시 모쪼록) 목재 무 역·투자 무다무다한(mudah-mudahan 무역 및 유통 문제는 그 기술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도코 인도네시아 대통령 비 서실장 뭉낀(mungkin 미숙한 인력관리 등으로 현지 사회와 갈등을 빚었 다. 한편 인도네시아로 집중되던 노동집약적 중 소 규모 제조업 투자는 1992년 이후 중국과 베 트남이 신규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한때 하락하기 도 했다. 1990년 초부터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점차 기술집약산업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도자기 생산 공장인 한국세라믹(한국도자기)과 피아노와 악기 제조회사인 삼익인도네시아(삼익악기)가 각각 설 립됐다. 이어 LG전자 미얀 마 미용 미원인도네시아 민간 주도의 성장을 권장한다. 이 기간 코린도는 금융사업부 민간기업 간 MOU 등도 체결되었다. 민간 조림투자 50만ha 조 성을 합의하여 향후 한국 기업의 임업 부문 진출 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선언에 따라서 2007년 4 월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단 장으로 한 20여명의 민관합동 경제사절단이 자카 르타를 방문했다. 경제사절단은 에너지·자원 민망 박재 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박재한 회장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13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은 “한-인니 수교 50주년인 2023년 에 한인회는 양국 간 우호증진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와 체육 행사를 개최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오피스빌딩과 아파트 등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던 여의도에 공관용 부지를 분양해주어 지금은 엄청난 자산가치를 지니고 있 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르워 에디 대사를 청와대 로 불러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의 7남매 가운데 셋째 딸인 크 리스티 아니(Kristiani Herawati) 여사는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힌 지한 파로 알려져 있다. 사르워 에디 대사가 한국에 근 무하던 시기에 아니 여사는 당시 군인이었던 수 실로 밤방 유도요노와 결혼했다. 인도네시아 최 초 직선제로 유도요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국 과 인도네시아 관계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방위산 업에 이르기까지 양국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가 까웠다. 2019년 별세한 아니 여사는 1973년 자카르타 소 재 인도네시아기독교대학교(UKI) 의과대학에 입 학했으나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가 근 무한 한국에서 생활했다. 이후 1998년 인도네시 아 개방대학교(Universitas Terbuka) 정치학과 를 졸업했다. 아니 여사가 부모와 함께 서울 생활 을 할 당시 유도요노 전 대통령이 아니 여사를 만 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결혼 전 연애 이야 기도 큰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 장남 아구스 하리무르띠 유도요 노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해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발전소 건 설 방산 및 한류와 관련된 상품과 콘텐츠 산업 등 자본과 기술집약적 산업이 진출한다. 코린도그룹은 상용차와 윈드밀 생산 등 중공업 분 야에 진출한다. 이 기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노 동집약산업이 지역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수도권 외곽 또는 중부자바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 라 우리 기업이 비수도권 지역의 산업 발전 및 고용창출에 기여한다. 8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후 양국은 2017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 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던 시기에 양국 정부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논의를 재개해 합의를 끌어냈다. 2023년 1월부터 발효된 한-인니 CEPA는 양국의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인 FTA와 비슷한 협정이다. 하지만 CEPA는 상품 과 서비스 교역 방위산업 등 8개 분과별로 회 의를 가졌고 배 터리 배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것을 습득하 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배터리 공장 설립 번영의 3대 비전 과 법무법인 베트남 보고르) 참석 직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해 수하르토 대통 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 해결 관련 협조 본사에서 시행하는 적성검사 시험을 적용하 여 논리적 사고 능력을 평가합니다. 채용 후에는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직원 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합 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지식과 시야를 넓혀 고 여 있지 않고 봉제 부 패방지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및 산림투자 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부끄러움 북한과 관련 한 내 경험이 도움이 되면 기쁘다고 밝혔고 북한은 불참)를 주 도하면서부터 북한은 인도네시아의 외교적 중요 성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1964년 인니여당 간사장 수비안또와 수카르노대통령양녀 사디킨여사 박정희대통령 예방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61 1956년 김일성 주석은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원 칙들을 언급하면서 비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 계 유지의 중요성과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관계의 시작… 총영사관 개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북한과 인도네 시아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적으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발전은 속도를 내 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 양국 간 고위급 인사 교류가 처음으로 이루어 지는 등 양국 간 관계개선이 시작되었다. 1962년 7월 6일 한국 외무부 문서에는 1960년 6월 인도네시아 측은 한국 친선사절단 방문을 거 부하였으며 브레베스 등지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있 다. 2016년 이후 한국계 신발업체의 인도네시아 내 이전(반뜬주에서 중부 자바주 또는 수도권에 서 수방과 가룻 등 서부 자바주 외곽지역)이 가속 화돼 화승 사리나 플라자 사업은 작게 시작할 수밖에 없어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 고 사업이든 무엇이든 간에 사용 후에도 만족 도가 높습니다. 이와 더불어 현지 인적 자원의 육 성에 많은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현지 컨설턴트와 개발자를 양성하여 사용자 수 등과는 별개로 일반적으로 우리는 투자 마일스톤으로 스타트업의 성공을 정의합니다. 저는 적어도 다음 펀딩 라운드에 대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키기를 희망합니다. MODOC이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자동차 분야의 환경에 기여하고 가 치를 더할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사업을 키우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하나 더 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회·문화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회원 국들간 통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역분쟁 이나 금융위기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로 협력 관계를 넓혀 나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3)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I 55 한국 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설립 (1987년 6월) 이후 제1호 유상원조 사업이 인 도네시아 빠당(Padang)시 우회도로 건설사업 (1987년 12월)으로 시작된다. 이어 1992년 9월 1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1호 해외사무 소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개설됨으로써 무상 원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KOICA 사무소는 한국 초청연수 산업기술협력 산업장관 삶에서 실제 로 잃는 것은 없으며 삼 성전자 삼성물산 등 종 합상사가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정관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니 무르다니는 1971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2대 주한 인도네시아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3 년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한국인과 친근하게 지낸 것으로 알 려져 있다. 1973년 양국 관계가 대사급을 격상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리대사로 근 무했다. 1974년 1월에 본국으로 귀임해서는 국방부 정보국장 삼성전자 새로운 미래 열다”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경제포럼] 12시간·연사 58명·관중 1000명…양해각서 2건 외교·경제계 리더 한자리…“앞으로 50년을 함께” 한인뉴스 2024년 1월호 I 29 아세안연구원 연구교수와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 연구원 연구교수는 아세안 차원에서 한·인도네 시아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경수 연세대학 교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주독일대사 및 외교 부 차관보)와 디노 빠띠잘랄 전 인도네시아 외교 부 차관도 참석했다. 이상덕 대사는 축사에서“우정은 두 몸에 살고 있는 단 하나의 영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명언을 인용하며“양국도 향후 50년을 바라보 며 협력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통찰력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할 때 서 비스 협정에 이어 2009년 투자 협정이 발효되었 다. 한-아세안 관계는 2010년 ‘전략적 동반자관 계’로 격상되었다. 무엇보다 아세안은 한국의 제 2의 교역대상 지역이자 건설 수주 대상 지역이며 서울 등 여러 나라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약 2년 전 에 아버지께서 가족 사업인 철강 유통 회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셔서 자카르타로 돌아왔습니다. 스타트업으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는 Mobility Doctor ‘Modoc’ 황민성 대표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2 인구 2억 7550만 명이 기다리는 무한한 기회의 땅 인 도네시아. 붉은 적도의 땅에서 당당히 자리잡은 젊은 사업가들의 성공 사례가 미래의 CEO를 꿈꾸는 사람 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칼럼을 기획했다.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5 우리 회사의 사업은 당시 시나르 아시아라는 회사 이름으로 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 다. 수카르노 대통령 시대에 외가 쪽 할아버지는 자카르타에서 유일한 두 철강 유통업체 중 하나 를 운영하셨습니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호텔 석유·가스·석탄 개발 석탄 선물 선진국과의 통상마찰 등 국내외적 경영 여건의 나빠졌기 때문 이다. 당시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노 동력이 풍부하고 비교적 임금이 낮았을 뿐 아니 라 설립 이후 지난 50여년 간 정치·안보 세차 소비 습관 수라바야-부산광역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며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비즈니 스 확장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출하기 전에 이곳에서 가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사업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두 가지 사업을 한꺼번에 하시려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실 텐데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인도네시아에 적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 혔다. 1989년은 한국이 동남아 외교에 있어서 전기가 마련된 해이다. 북미 및 유럽의 지역 경제공동체 가 배타적 경향을 보이자 수하르토의 사위인 쁘라보워 수비안또와의 경 쟁과 수하르토 정권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스타윈 스타윈 (Starwin Indonesia) 스트레스나 불안을 다스리는 대 표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오토파일럿 아래에서 과거의 행동이나 이전의 경험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하는 데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재무적 현금 흐름을 발전시켜 시대의 요구에 맞춰 사업 을 다각화하고 있다. 특히 코린도는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에 발맞춰 성장해온 대표적인 한 상기업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있을 때 신 발회사 직원들의 소비는 땅그랑 지역경제에 활력 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 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하였고 신발 신발 등 노동집약산 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신용 규제를 통한 토착 자본 을 보호한다는 정책을 펼쳤고 신의 뜻대로) 등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걸 원치 않거나 말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때는 부 모 또는 가족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실수하거나 무안한 마음이 들 때 신타 위자 야 캄다니 인도네시아 경영자협회(APINDO) 회 장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 가대표팀 감독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신한기공 실질적 협력을 심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 하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이러한 한국의 대아세 안 협력 강화·발전 의지를 환영하였으며 싱가포 르 싱가포르 아디다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빅바 이어들이자 브랜드 마케팅 기업들이 개발도상국 인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편 했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 전후 한국의 중소자 본이 가장 선호한 투자대상국으로 아마도) 아식스 등 글 로벌 브랜드 제품을 연간 1억3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경 제조정장관(부총리) 아태지역의 국가들도 무역 자유화 및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알쏭달쏭 말 한마디 “뜨리마 까시” 알아서 하세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도 멀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이 된 사건을 꼽자면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확신합니다. Q. 황민성 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MODOC이 자립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아직 초기 운영 단계 에 있습니다. 수익 앞으로도 분명 실패할 때가 있겠지만 액화천연가스(LNG)의 안 정적 공급 확보에 대해 중점적으로 협의했다. 북 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제네바합 의로 해결의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북한의 합의사 항 이행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수하르토 대통령 도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 라고 지적하면서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인도네시아산 LNG 수입과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 령은 안정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가격 합리화도 중 요하다고 언급하였으며 수하르토 대통령은 공감 을 표하고 실무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개최 하루 전에는 양국 과학기술 담당 장관 간 원자력협력의향서 서명이 있었다. 김영 삼 대통령은 귀국 후 11월 23일 수하르토 대통령 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정상회담 성과와 수하르토 대통령의 APEC 의장 역할을 평가하고 인도네시 아의 LNG 가스 공급에 대해 재확인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병행 추진이라는 공동의 가치에 입각해 새 로운 협력관계 발전을 위한 고위급 교환방문이 지 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 11월 27일 아세안 +3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과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 독립을 승인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용단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이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 임을 강조했다. 와히드 대통령은 동티모르와는 달 리 아쩨는 역사와 현실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토의 일부라고 언급하면서 독립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 다. 한국군의 동티모르 파병에 대해 인도네시아 동 포들은 한국 언론에 반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환담을 했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3월호 한국 정부는 동티모르 파병이 유엔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른 것으로 동티모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5) 와히드 대통령 방한 및 메가와티 대통령의 남북 동시 방문 2000년 2월 와히드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양 국 간의 문화적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좋 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의 한국 이야기> 공모 전이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자리잡 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특정한 성과나 영향을 기대하고 시작한 것 은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한국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 하고 양국 간 ‘포괄적동반 자협정’(CEPA) 등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 한 구체적인 목표들이 정해지고 이의 달성을 위 해 공동 노력했다. 한국 기업들은 에너지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 력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이명박 대통령(2008~2013년)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2004~2014년) 간 관 계는 각별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 (MP3EI)’을 수립해 양국 간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 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투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제1차 한-인니 포럼’이 개최됐다. 양국 정상 간 실질 협력 강화 합의에 따라 한국 기 업의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2007년 중 부발전·삼탄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출입은 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통해 약 7억4천만 달러 규모의 찌레본 석탄화력 발전소 민자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4)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55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양국 대통령은 민간 부문 합작사 업의 증진을 장려하기로 했다. 4) 한국과 인도네시아 지방자치단체 자매결연 1984년 7월 25일 염보현 서울시장이 자카르타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4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를 방문 수쁘랍또(Suprapto) 자카르타 주지사와 자매결연 조인식을 개최했다. 이는 양국 지방정부 간 최초의 자매결연이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각 각 김좌겸 총영사와 베니 무르다니 총영사를 대 사대리로 임명하고 이를 통보하였다. 1973년 10 월 23일 한국 정부는 김좌겸 주자카르타 총영사 를 초대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했다. 인도네시아 는 1974년 4월 18일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에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e Wibowo) 를 임명했다. 2) 초창기 군사 관계 및 인도네시아에 쌀 대여 한국과 인도네시아 군사 관계는 1970년대 초 군 고위급 인사의 상호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 10월 인도네시아 안보·질서회복사령관 빵가베안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2) 1974년5월14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았다. [한-인도네시아외교40년사]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53 (Panggabean) 장군 일행이 심흥선 합참의장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군사회담을 가졌다. 1972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군의 초청으로 서종철 육군참 모총장 일행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였다. 1973년 5월에는 옥만호 공군참모총장이 인도 네시아를 방문하였고 양국 항공사의 취항도 이루어졌다. 2) 노태우 대통령 공식 방문: 협력 관계 발전의 또 하나의 계기 제공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 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과 수하 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한 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이후 대한민국은 자원개발을 뛰어넘어 신 발·봉제 등 노동집약산업을 필두로 제조업 부문에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11월 8일부터 닷새 동안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했다. 노 대통령 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서부수마트라 주도 빠당(Padang) 시 도로 건설 등 인 프라 구축을 한국 정부가 유상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과 신뢰 관계를 재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 졌다. 초창기 산림개발 업체들의 뒤를 이어 미원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 정된 수상작들은 문학적 가치도 지니고 있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여러 일을 결정하는 데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는 삶의 한 부분이고 여러분은 항상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들이 많고 여전히 성숙되지 않은 시장이 많아 성장 가능 성이 큽니다. 다만 연이은 풍작으 로 주곡인 쌀이 자급선을 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3) 한국 대통령의 최초 인니 방문과 인니 대통령의 최초 방한 1980년대 한국 정부는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외교 다변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81년 6월 25일부 터 7월 9일까지 아세안 5개국(인도네시아 연장 59km)로 현대건설이 1973년 수주해 1978년에 완공했으며 지금도 현지에서 훌륭한 토목공사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게 한 나라도 인도네시아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19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릴 때 연평균 7%의 고도성장 을 달성했다. 이 기간에 한국 기업들이 원목을 비롯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에 투자하는 시기였다. 코데코와 코린도 등 한국 원목개발회사들의 투자가 몰렸고 한국 내 합판산업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한국 기업은 칼리만탄과 수마트라 등 오지 밀림에서 과감하게 사업을 펼쳤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I 영림 원소프트랩의 한국 내 명성은 한국 기업들의 신뢰 를 확보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영림원소프트랩의 기 술적 지원과 투자 덕분에 SEI는 인도네시아 현지 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 원은 특히 역량 있는 직원 채용과 인도네시아 시 장에서의 성장 완구 등 노동집약산업을 중 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저임금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일과 관련된 것이든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 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고도 현금으로 새로운 자산을 구입하거나 사무실을 신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에 비해 성장이 느리지만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언제 사고 팔아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우익 및 소수자 포용 △전통적 인 이슬람과의 협력 등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고 꼽았다. 메가와티는 한반도 평화에 관심과 영향력을 발휘 하는 등 오랜 기간 한반도 평화 중재자 역할을 기꺼 이 맡아왔다. 메가와티는 1964년 아버지인 수카르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해 김일성 주석을 만 났고 운영 비용을 줄이 기 위해 온라인 수익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오프 라인 비즈니스에 더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전환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우리 회사가 Pondok Indah 지역에 첫 번째 자동차 워크샵을 진 행하는 이유는 이 지역 자체에는 사내 자동차 수 리 웃거나 미소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윌리엄 슈퍼맨. 황민성 이사의 영문이름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이름 을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DC 코믹스가 출판하는 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를 성으로 채택한 이유를. 하지만 황민성 이사와 얘기를 나눈 뒤에는 자 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캐릭터를 이름에 넣은 그의 DNA가 ‘호기 넘치는 자신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참고로 탄생 80년 동안 여러 해석을 거친 슈퍼 맨이 ‘정의’와 ‘희망’을 상징한다. 1980년에 설립한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는 Sinarmas Land 유도요노 대통령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 결과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사 르워노 장군이 주한 대사로 재직할 당시 예비 사 위였던 자신에게 “한국 국민의 역동성과 자립 의 지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을 닮아라.’”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다음 호에 계속) 유아 교육 유키 누그라하완 하나피 인도네시아 상공회의 소 회장 직무대행 유통 이 기간 연평균 6.8%의 성장을 달성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원목수출 규제정책을 진행함에 따라 코데코와 코린도는 현지에 합판공장을 설립했다. 또 한국의 건설사가 현지에서 고속도로와 플랜트 건설을 수주하는 등 현지 진출이 러시를 이 루었으며 주로 자바섬 이외의 지역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7 앞서 10년 간 경제 기반을 다진 인도네시아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III 이 기간에는 자카르타와 수도권 지역에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제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Repelita VI 이 렇게 맺은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 종족이 있으며 이 로써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더욱 부 각되었다. 이 회의 계기에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 직후 양국 대통령 내외는 예정에 없던 단독 오찬 에 이어 서귀포 바다를 산책하면서 각별한 친분 을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에 한-아세안/아 세안+3/EAS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발리를 방문하였고 이 작은 정보가 결국 여러분의 전략적 인 비즈니스 결정에 사용될 수 있는 가치 있는 데이터로 이어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한인뉴스 독자들에게도 인사 부탁 드립니다. 개인적인 삶이든 이 행사를 통해 한국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9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이곳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 들에게 우호적인 투자 정책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점은 인도네시아에서 대부분의 기업들 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 중 하나가 얽히고 설킨 ‘관료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를 설립하거나 자격증을 신청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매우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강한 면과 약한 면은 제쳐두고 이는 1982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 이래 인도네시 아 정상의 첫 방한이었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 통령은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 증진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 국 방문으로 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한국 방문으로 이는 한국 국가원수로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동북아와 동남아의 평화와 안전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 전 세계의 평 화 및 안정의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는 점 에 견해를 같이하고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와 인 도네시아 진출에 큰 교훈이 됐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신발산업 이 2005년 파크랜드(PT Parkland World Indonesia)의 풍원제화 인수를 계기로 현지 한국 신발제조업계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어 창신(Chang Shin Indonesia)과 태광(Taekwang Industrial Indonesia) 등 대규모 한국 신 발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신발업계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집권 후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대외 여건이 변화하면서 제조업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이러 한 맥락에서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SystemEver를 통해 이곳에서 고객 기업의 운영 을 돕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있습 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많은 고객들을 만나보 면 이러한 요소 들이 인도네시아 기업들의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2 / 기획 및 인터뷰: 이영미 인구 2억 7 이러한 한인 사회가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한인 기 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있으며 이런 바탕 에서 무역과 투자 등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 가기로 했다. 1982년 10월 16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전두환 대 통령의 초청으로 나흘 일정으로 공식 방한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 로서는 최초의 한국 방문이었다. 또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방한은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아세 안 5개국 순방 이후 아세안 지도자로서 최초의 답 방이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 달성 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 간 의 직접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를 통 해 기업의 발전은 물론 궁극적으로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성 장은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SystemEver의 기술력과 비즈니스 노하우 를 나누며 이미 깊이 뿌리내린 한인 사회가 이분들을 잘 흡수하고 지원 한다면 이번 에는 한국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상황 이 긴장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포럼의 공동주재자 역할을 기 꺼이 받아들였다. 9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발리에 체류하는 동안 8개의 행사를 치렀다. 이렇게 축적된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친분은 결국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56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이날 정상회담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인도네 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MP3EI)에 주요 파트 너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마스터플랜 참여 요청에 대 한 구체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그 다음 해인 2011 년 2월 하따 라자사 경제조정부 장관을 단장으로 이번 포럼은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 록 대면 행사와 온라인 생중계로 동시 진행됐다. 헤럴드포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제공: 헤럴드 경제) 공로상 수상자 중 좌로부터 박재한 한인회장 이어 1962년 3월에 우리 경제사절단 입국을 거부한 것으로 1962년 7월 한국 외무부 문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1961년 북한과 인도네시아는 영사관계 수립과 1964년 대사관계를 수립하는 등 외교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인도네시아 는 대한민국과의 관계 구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63년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정관계 인맥이 있던 최계월 ㈜한국남 방개발(현 KODECO) 회장의 주선으로 도쿄에서 수카르노 대통령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7 부장과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1965년 인도네시아 정변(G30S)으로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붕괴되고 친미·반공 노선의 수하르토 정권 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북한 간의 외교관계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인도네시 아 관계개선의 환경이 조성됐다. 1966년 12월 자카르타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설립됐다.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이전인 1968년 대한민국 최초 해외직접투자가 인도네시아에 서 이루어지면서 현지에서 우리 기업이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다. 1973년 9월 18일 이장근 아세안대사 이주한 RS 그룹 대표 이주한 RS그룹(로얄 수마트라그룹) 대표 인 도네시아 신발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 최저임금 인상율이 연간 10%를 상회함에 따라 인도네시아 에서 생산비 절감 효과가 낮아진 동시에 한국에서 더 가까운 중국과 베트남이 대안 생산기지로 부상 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계기 로 중국의 생산원가가 급속도로 인상되면서 중국 54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에 진출했던 한국계 기업 중 일부는 한국으로 U턴하거나 인도네시아로 재이전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 투자기업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반뜬주 땅그랑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 아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는 동시에 인도네시 아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합니다. 그러니 한 번 시 도하기로 했다면 인도네시아 국군통합사령관의 방한 인도네시아 내 다양한 지역을 커버 하고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파트 너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향후에는 인 도네시아에서 더 많은 고객 레퍼런스를 확보함으 로써 인도네시아 머라삐 화산이 폭발하여 200명에 가 까운 사망자와 2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 하였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또다시 서울로 향했다. 이는 신뢰에 기 초한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더욱 성숙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민주주의 포럼(Bali Democratic Forum)을 앞둔 2010년 11월 하순 인도네시아 배우 겸 사업가인 라피 아마드 란스 엔터테인먼트(RANS Entertainment) 회장 등이 참여했다. 포럼 이후 열린 ‘한·인도네시아 친선 우호의 밤’은 올해 잇달아 열린 양국 수교 50주년 행사 에 마침표를 찍는 성격으로 진행됐다. 먼저 간디 술리스티얀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별 고문 인도네시아 산업 구조와 지역 변화에 큰 영향 미쳐”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2023년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이었다. 올해 2024년은 또다른 50년 즉 100년 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해이다. 1960년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생산을 위해 코데코(KODECO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이것이 익숙하 지 않은 다른 종족이나 외국인들은 자바사람들을 음흉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정적 인 결과를 우려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끼라 끼라(Kira-kira 대략) 인도네시아 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 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의 방문은 당초 8월로 추진되었으나 서 울올림픽 일정으로 연기됐다. 방문 기간 중 양국 정상이 골프를 치면서 정상회담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었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종자를 원료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최고책임자 회담과 한국 정 부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양국 대통령은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관 계에 있으며 그러한 보완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서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도네시아 최초의 백화점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들 에게는 그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ERP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현지의 레퍼런스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현지 인력의 경험 과 역량을 강화하고 인도네시아. 붉은 적도의 땅에서 당당히 자리잡은 젊은 사업가들의 성공 사례 가 미래의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인터뷰 2.0] 영 비즈니스리더 칼럼을 기획했다. SystemEver Indonesia 대표이사 Charles Kwon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57 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주 요 투자대상지로 부상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진출 지원을 위한 투자 관련 협정들이 체결되었 고 인도네시아경영자협 회(APINDO)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행사는 외교·경제·문화 분야를 총망라해 지난 50년을 되돌아보고 인도네시아군사관학교(Akademi TNI) 교장과 지역사령관을 역임한 후 전역한다. 사르워 장군은 사관학교장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 요노 후보생을 수석 졸업으로 배출한 이후 인도네시아는 많은 외국 기업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었고 인도네시아는 한류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 가 가운데 하나이고 인도네시아로 파견된 것이 가 장 큰 계기였습니다. 만약 제가 인도네시아로 오지 않았다면 인도네시아상 공회의소(KADIN) 인도네시아어 인도네시아어판 기념 도서 Merajut Persahabatan Memupuk Kepercayaan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한-인니 수교 50년사)를 출간 했다”며 “올해는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비 건립의 마무리 작업과 미래 세대인 한인 학생들이 참여하는 역사탐방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9월 20일 ‘한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표창장 전수 및 시상식도 열었다. 이상덕 대사는 제17회 세계 한인 의 날 유공 정부포상자 국무총리 표창에 사공경과 재외 동포문학상에 권영 경 수필 부문 가작 인도네시아에서 1 인도네시아에서 ‘대한민국 최초’ 역사를 쓰는 한국인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일본 자동차기업이 독점하다시피한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 든 현대자동차가 2022년 3월 인도네시아 최초 전기차 공장을 세우고 현지 생산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앞세워 최대 전기 차 판매기록(2023년 1~7월)을 달성했다. 앞서 2019년 산유국이면서도 수입국인 인도네 시아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뻐르따미나(Pertamina)로부터 우리나라가 현지에서 최초로 총사업비 6조원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현대 엔지니어링 단일 플랜트사업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같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에는 최초와 1호가 많다. 오늘날 같이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이룩한 데는 선배들의 피와 땀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준 의미있는 나라라는 것은 다음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제1호 한국 ‘해외투자사업’은 1968년 코데코(Kodeco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신발제조업체로서 첫 투 자회사인 코린도그룹의 신발사업부 가루다인다와 (PT. Garuda Indawa 인도네시아의 넓은 시장을 보다 효과 적으로 공략해 나갈 것입니다. Q. Charles Kwon 대표님 인도네시아의 유명 한 K-팝 커뮤니티 ‘K Vibes’의 창업자 디카 인도네시아의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9~1993년)에 한국의 자본 기술이 참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한국 기업의 인도 네시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투자보장협정의 조기 타결 및 자원 공 동 개발을 장려하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6년 12월에 양국 외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 상돼 정치·경제·방산·문화·인적교류 등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 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한국 기업 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 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가 서명되었고 인도네시아인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 1위로 한국을 꼽았다. 그리고 60%가 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을 자국 발전 모델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답한 것 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가장 신뢰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국제 환경 변화 속 에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 의 동력은 무엇보다도 경제와 비즈니스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목재산업으로 시작해 경 공업인 섬유·봉제와 전자산업 등 제조업 분야의 협력을 넘어서 인샬라(insya Allah 인프라 일명 이글)가 1980년 중 반기에 가동을 시작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만 큼 해외투자에 경험이 없었던 한국 신발업체들은 가루다인다와의 선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계 신발제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1985 년 가루다인다와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수혜를 받고 있었던 만큼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투자가 몰렸다. 하지만 영세한 자본의 중소기업이 다수 진출하면 서 현지 언어와 문화의 이해 부족과 장시간 노동 일본 일상적인 의미로는 “고맙습니다”에 더 가깝다. 또 의견이나 발 표를 마치고 맺음말로 “뜨리마 까시”라고 하면 무난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자마다대 학교(UGM)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학과가 몇 년 전 학과명을 모두 한 국언어문화학과(Prodi Bahasa dan Kebudayaan Korea)로 바꿨다. 언어와 문화의 밀접 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임금 상승 자동차 등 기간산업 분야와 플랜트 건설 및 사회간 접자본시설 확충 부문에도 대거 참여했다. 다양한 산업의 진출과 더불어 현지 한국계 기업을 주로 겨 냥한 손해보험 서비스를 목적으로 1996년 삼성화 재(현지법인명 PT Asuransi Samsung Tugu)가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1997년 KB손해보험 (KB Insurance)과 1998년 메리츠화재(Meritz Korindo Insurance) 등이 각각 진출한다. 1990년대 들어 수출 호조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내수도 증가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문 모두 활 황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 과열에 따른 물가 상승 과 부동산 시장 등의 거품이 발생했고 자동차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 기 때문에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이사회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Q. 현재 모독에 대한 계획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앞으로 이 회사를 어디로 옮길 것입니까? 인도네시아에서 눈에 띄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되는 것이 저희의 주된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우선 외부 투자 없이도 지속 가능한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전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타트업은 캐피탈로부터든 높은 운영비로든 초기 단계에서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I 27 많은 비용을 지출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로 IT 부문에서 운영되는 스타트업은 서버 비용과 IT 개발자를 포함한 고임금 인력 등 숨겨진 유지 보수 비용이 많기 때문인데요 자본 자세한 내용과 그 이면에 있는 이 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PT MOBILITY DOCTOR INDONESIA의 CEO가 되겠다고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아버지를 돕고 있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이었고 자원 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을 중시하는 문화를 조성하여 직원들 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 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급속히 성장하는 인도네시아 시장 에서 SystemEver Indonesia가 중소기업들과 어 떻게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 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Charles Kwon 대표이사와의 대화를 통해 잘 모른다) 재난 대응 재인니 한국상공회의소(Kocham)와 재인니한인신발산 업협의회(KOFA)를 중심으로 다시 반등의 기회 를 마련했다. 최근 자바섬 내 최저임금 차별화의 이점과 조코 위도도 정부(2014~현재)의 국토 균 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여 한국 신발기업은 중부자 바 주도 스마랑 주변의 즈빠라 지역과 살라띠가 저 역시 한인 사회의 많은 도움 을 받아왔고 저 자신을 더 밀어붙일 수 있도록 동기부여로 삼았습니 다. 제로에서 시작한 이후로 저는 인생에서 겸손해지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고 저는 1991년생으로 현재 33세입니다. 저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보냈고(17년 이 상) 이전에 말레이시아 저는 CEO와 현지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몇 년 동안 스타트업 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었고 저는 우리 모두가 삶에서 어느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삶에서 불확실성이나 손실을 느낄 때마다 저는 이 생각에 어느정 도 동의하지만 저는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해 서 도전해 나가고자 합니다. (웃음) Q. 업무 외의 시간에는 어떤 취미나 활동으로 에너지 를 충전하시나요? 업무 외 시간에는 주로 건강에 투자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복싱에 푹 빠졌습니 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 도 들었지만 저는 평소에 독서와 명상을 하고 저는 항상 동전의 반대쪽에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부모님은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할아버 지의 자본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적절한 현지 인재를 찾아서 관리직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제가 본 바로는(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기업들이 관리직에 현지인이 전혀 없고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팩토리로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ERP 시스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스 마트 팩토리의 핵심 기술로서 ERP는 기업의 경 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흩어져 거주하는 만큼 자바문화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바사람들의 신앙이자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끄자웬 (Kejawen)이 이들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아니다’라는 의미의 띠닥(tidak) 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회피한다. 무엇인가 를 사양할 때조차 인도네시아인은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다. 따라서 자바인들과 대화할 때‘야’(ya 또는 iya)가 진정한 의미의 ‘예’인지 ‘아니오’ 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상황이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전기차 등 아세안의 미래 발 전 수요를 반영하는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 방향을 높이 평가하였다. (끝)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 도약을 맞게 된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하여 양국 대통령은 ‘전 략적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 기 위해 2009년 6월 제주에서 개최된 한-아세 안 특별정상회의는 유도요노 대통령으로서는 매 우 민감한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내 정치 문제로 여념이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유도요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정보통신기술(ICT) 정부 도 그해 11월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정상 간 교류 등 관계 개선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북한-인도네시아 간에는 1958년 8월 주인도네 시아 북한 무역대표부가 개설되었고 인도네시아 예술사절단 북한 방문 정원주 ㈜헤럴드 회장 겸 대우건설 회장(한국주택건설협회장) 정원주 코리아 헤럴드 미디어 그룹회장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한다 해 도 무의미해집니다. 26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Q.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40년 이상 사업이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강점은 명성과 공급업체와의 믿 음을 바탕으로 한 관계 형성과 고객에 대한 오랜 노력으로 쌓은 명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환경 등 많은 요소들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 다. 대인도네시아 직접투자에는 정치·외교적 요인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글은 한국의 대 인도네시아 해외직접투자에서 크게 작용한 정치·외교정책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석유 제1장 한국-인도네시아 외교 50년 (편집자주) 한인뉴스는 2023년 9월 한국-인 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어판으로 발간한 책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 은”(“Merajut Persahabatan dan Memupuk Kepercayaan”)의 한글 원본을 12회에 걸쳐 연 재합니다. 1. 태동기(1949~1972년): 인도네시아 국가 승 인부터 외교 관계 수립 전까지 1) 남한과 북한과의 외교전… 초반의 열세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에 따라 외국의 국 가 승인 및 자유우방과의 우호관계 증진에 1차적 목표를 두고 아시아 신생독립국과의 관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외교 정책에 따라 한 국 정부는 1949년 12월 30일 신생독립국 인도네 시아의 국가를 승인을 하였다. 동서냉전기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비공산권 및 제3세계에 대한 외교공세를 펼친다. 특히 비동맹운동 창설의 중심적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와의 우호관계 구축에 매우 적극적 으로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북한-인도네시아 간 에는 외교관계 수립 제가 외국에서 살았을 때의 기업 경험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 했기 때문에 네트워크도 없고 제게 다른 인생의 관점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언젠가 제가 대표가 된다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 른 사람을 대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문적이고 사업적인 면입니다. 저는 겸손한 법을 배우는 것 제약·바이 오 및 한류 관련 산업 부문에서도 인도네시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2020 년 11월 고용창출법(일명 옴니버스법)을 제정해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여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에서 윈윈(win-win)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 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 도네시아 4.0’을 진행하면서 제조 산업을 위한 SystemEver iSeries를 출시하여 중 소기업의 성공적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모기업인 영림원소프트랩은 30년 이상의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전역에 혁신적인 서비스 를 제공해온 선구자이다.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 로 2021년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 조업 경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 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의 제조업은 의류와 섬유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5대 육성산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철과 석유화학은 물론 전기차 생태계 구축 및 신수도 건설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를 이어가면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인도네시아 포괄적 경제 동 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양국의 협력관계는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는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1차 제트 훈 련기 T-50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이다. 또 우리가 생산한 잠수함을 가장 먼저 구매한 국 가(2011년 3척 구매계약 체결)이며 조림 투자 등의 협력 프로젝트 등을 발굴했다. 2) 노무현 대통령 인니 방문과 유도요노 대통령 국빈 방한 그리고 성과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 회의 참석차 발리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아 세안 FTA 추진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 의가 있다.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새로운 투자법이 제정되 고 한-아세안 FTA 상품무역 협정이 발효됨으로 써 한국 기업의 대인도네시아 진출 환경이 더욱 개선되었다. 2007년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여 대인도네시아 투자 관련 16개의 MOU 가 서명되었고 조립금속 등 ‘중간기술 제조업’과 철강 조만 간 가장 좋은 쾌거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 고 있습니다. Q. SystemEver Indonesia는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주요 사업을 펼치고 있나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주요 성과와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요? SystemEver Indonesia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중소·중견 제조업체 종합상사 좌익 주(駐)인도네시아 한국대사 관 주식 시장에서 손실을 입는다면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을 받는다.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은 당초 서울 이태원에 있 었는데 주한 인도네시아대사관 중국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 가능하시네요. 언어 쪽에 특히 재능이 뛰어나시네요? 하하 중동의 상인들과 거 래하려면 이방인과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적 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태도이며 중소·중 견 제조업에 특화된 SystemEver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다고 판단했습니 다. SystemEver의 강점은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 스 관리와 효율성 극대화에 있으며 중화학공업에 이어 지식산업으로 다각적인 발전의 성과를 냈다. 이는 인 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외교정책을 통한 각 시대별 산업시대에 필요한 자원을 수급하고 자 원보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 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항상 현지화와 다운스트림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자카르타에서 한국 스타트업 대표로 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모든 한국 기업들도 더욱더 ‘현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 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도 인도네시아에서 가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지난 1월 3일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은 2024년 새해를 맞아 한인 사회 주요 인사와 대사관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인사회를 개최했다.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는 축사에서 “지난해 다양한 형태 로 진행된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행사가 성공적으로 열렸다”며 “올해는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 우리 대사관은 동포사회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국가발전 목표를 지원하면 서 신정부와도 견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우리 진출 기업 및 동포 여러 분이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힘쓰 겠다”고 말했다. 이장근 주아세안 대한민국대표부 대사는 “올해는 한국과 아세안(ASEAN)이 공식적인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3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면 서 지불 방법 및 수천 가지 이상의 변수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연구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쉬 운 일이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AI와 기술 환경 에서 앞서 나가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Q. 성공적인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 기나 인생에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사건이 있다면 무 엇인가요? 저는 아직 성공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습니다. 여 전히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Q. 인도네시아에서 현지화 전략을 어떻게 실행하고 58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계신가요? 인도네시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 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인도네시아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 소는 철저한 현지화입니다. 초기에는 한국 본사의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파는 전략으로 접근했습 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브랜드 이미지가 있는 것 도 아닌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현지에서 팔겠다 는 생각 자체가 오만했던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에 서 환영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에 서 2 지역개발 등 각 분야의 해외봉사단(Korea Overseas Volunteers)이라는 명칭으로 파견을 시작한 한국의 해외봉사단은 2010년 이후 세계 의 친구(World Friends Korea)로 이름을 바꾸 어 인도네시아 국민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4)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 인도네시아 방문 김영삼 대통령은 제2차 APEC(아시아태평양경 제협력체) 정상회의(1994년 11월 직면할 과제들을 슬기 롭게 헤쳐 나가자”고 전했다. 경제와 산업을 주제로 한 오후 세션은 최진영 코 리아헤럴드 대표의 개회사에 이어 밤방 수사트요 인도네시아 상원의장 직원들 짧은 기간 동 안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처음이자 집중적 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에 한국은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 이전 시기였던 만큼 부산에 밀집되었던 신발 제조업체들이 이전을 고려한 국가는 태국과 인도 네시아였다. 앞서 인도네시아에는 1960년대 후 반부터 원목개발과 합판제조 짧은 시간이지만 오로지 그 순간에 만 몰두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 다. 체력이 부족해 오래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지 만 차남 에디 바스꼬로 유도요노 역시 정치 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차별을 받고 심지어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창신 처음에는 철강뿐만 아 니라 다른 건축자재도 판매하는 작은 가게에 불과했습니다. 회사가 차츰 커지면서 PT Sumber Bangunan은 철강 유통에만 집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다른 철강 유통업체 및 철강 공장과 여러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Q. 철강업계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주목하고 있는데요. Sumber Bangunan Private Limited도 사무실을 확장하고 있다고요? 스리 물야니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가 5% 내외로 여전히 아세안과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철강과 목재 등 필수재에 대한 수요는 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사업 을 확장하고 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 회사는 2개의 주요 창고를 소유하고 있으 며 철강 쇼핑몰이 될 3번째 창고를 건설하는 중입니다. 40년 동안 우리 사업은 건축 프로젝트와 소규모 건설 매장에 철강 도매 공급품을 판매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소매 부문에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 Sinarmas Land 천연가스 철강 청 정개발체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총 35 억 달러 매출액을 기록해 인도네시아 수출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충전소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사랑(호의)을 받는다”라는 뜻이지만 카페 및 한식 레스 토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차량을 관리하는 동시에 우리가 제공하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올인원 스톱 서비스입니다. IT 회사는 보통 손익분익점까지 가는 데에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빠른 시간안에 회사의 자금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오프라인 비즈니스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수익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면 첫 번째 외부 투자처를 찾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많지만 캄보디아가 순차적으로 가입하면서 10개국 지역협의체로서 틀을 갖추고 성장해왔다. 2022년 말에는 동티모르를 11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세안은 다자주의에 기반하여 설립된 지역협의 체이며 컨테이너 생산 시작 컴퓨터 케이팝 그룹 시크릿 넘버의 인 도네시아인 멤버 디타 카랑 코리네시아 코리네시아(Korinesia) 금강제화 등이 대규모 생 산설비를 갖추고 주문자상표 생산방식(OEM)의 체제를 구축했다. 초창기 진출한 신발기업들은 동 양을 제외하고 모두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 지역에 공장을 세웠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두 나라는 한국의 주요 투자지로 부상했다. 이를 계 기로 글로벌 신발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태광 등 대기업들이 이러한 대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내 한국계 신발업체는 노동집 약적인 산업에서 생산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장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0년 현재 KOFA는 신발제조회사 20여개 회원사와 자재 및 임가공 회원사 180여개 등 총 200여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회원사는 한국 인 근로자 2천여명과 현지인 근로자 25만여명을 고용해 나이키 태국 태권도 태화 등이 2005년을 전후하여 폐업 절차를 밟는다. 인도네시아 진출 초창기 한국 신발기업들은 반 뜬주 땅그랑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식 대량생산 제 조라인 설비를 갖추고 OEM 방식의 유명 브랜드 주문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경영방식을 채택한 우리 신발기업은 해외투자 경 험이 없었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노 동자와 갈등과 마찰을 빚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고 태화(Tae Hwa Indonesia) 통상장관 통합군사령관 투자 등 무역 확대에 무게를 둔 FTA에 비해 정부 간 경제 협력 및 인적· 문화적 교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의 경제협정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투자 촉진을 통한 산업 고도화 를 꾀한다. 이 기간 전기·전자 투자보장협정(1991년 2월) 등 을 통한 체계적인 제도 구축에도 힘입은 바 크다. 1990년대 초반에 기술집약산업인 전자산업과 바 이오산업의 진출이 시작되어 오늘날 LG전자 투자청장이 포함 된 대규모 대통령 특사단이 방한하였다. 특사단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시찰에 대통령 전용기 까지 제공하는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1년 5월에는 한-인니 경제협력실무 T/F가 발리에서 출범하여 한-인니 경제협력 파트너십 을 위한 MOU가 한국 지식경제부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간에 체결되었고 투쟁민주당의 전신) 내 반대파에 의해 총재직을 박탈당하며 민주투사 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메가와티는 1987년에 정치에 입문해 수하르 토 정권 하에서 탄압을 받으며 혹독한 정치훈련 을 거쳤다. 수하르토 퇴진 후 메가와티는 1999 년부터 2년 동안 인도네시아 부통령 이어 압두라 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승계 해 2001∼2004년 3년 동안 5대 대통령을 역임 했다. 2004년부터 2014년 10년간 야당 당수 이후 특히 봉제 및 신발 산업을 대상으로 사업 저변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 장은 인도네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 고 있으므로 아시아 No.1이라는 비전을 달성을 위 해 본사에서도 스포츠웨어 사업부를 새롭게 개설 하여 인도네시아의 대형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 으며 파크랜드 파트너와 함께 인도네시아 전역에 SystemEver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고 적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중소기업뿐만 아 니라 더 큰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파푸아 원목 개발 등 개시한다. 이 기간 한국은 노동집약산업이 대거 인도네시아 투 자가 이루어지고 LG전자와 삼성전자 및 초기 기술집약산업 등 다양한 제조업이 진출한다. 앞서 목재와 건설 산업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주로 자바섬 이외의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면 파할라 누그라하 만수리 인도네시아 외교 부 차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정원주 헤럴드 회장은 “양국은 더욱 다양한 협 력을 모색할 준비가 됐다”며 “포럼을 계기로 양 국의 우정과 협력을 널리 패턴 페루 리마) 등 다자 정상 회의 계기에 이루어졌다. 2009년부터는 양국 정 상이 상호 방문하면서 평화 포스코 포용 풍부한 자원 및 적 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에 힘입어 한국기업 의 현지 투자가 급증했다. 이는 이중과세방지협정 (1988년 11월) 프라타마 프라타마(Pratama Abadi Industri) 프로젝트 필리핀 5개국 간 합의한 방콕선 언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후 아세안은 1980년대 부터 1990년대 말까지 브루나이 필리핀)을 공식 방문하였 다. 아세안의 첫 방문지는 인도네시아였고 필요한 정보는 ERP와 연계하여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도네시 아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많은 시장 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소비층이 형성되어 있지 만 한-인니 비즈니스포럼 참석과 대우조선해양 방문에 이어 한-인니 현대미술교 류전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동포간담회를 개최하 여 우리 동포 350여명과 만남을 가졌다. 방문 마 지막 날에는 영웅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유도요노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한국 LVTP-7A1 상륙돌격 장갑차 10대를 인도네시아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3)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의 만남: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재확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첫 해 양국 대통 령 간의 회동은 G-8 정상회의(7월 일본 도야코) 한국 기업인 약 150명 등 총 10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 간에 걸쳐 58명 연사가 강단에 섰고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 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 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또한 아세안의 제5위 교역대상 국가이다. 인 적교류도 활발하여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국 국 민 1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공모전을 통해 한국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 여지고 있는지 한국 해외원 조의 첫 사례이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유일한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개발한 프로펠러형 훈련기 KT-1을 최초 수입한 국가이며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 교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한국 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의 구체적인 사례로 평가되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남·북한이 대사관을 한 곳에 개설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당시 비동맹 중립국 진영 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와의 정식 수교는 한국 정부가 비동맹 중립국과 관계를 개선 하고 이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 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계 발 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답방이 있 었는데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식 수교하면서 한국의 투자에 활기를 띠기 시 작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쓰라린 경험을 한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확보를 위한 투자와 건설 및 무역 분야의 진출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 시기에 코린도(KORINDO)를 비 롯한 원목개발회사와 대림산업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수교 반세기를 기념해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호텔 물 리아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협 력 포럼’이 양국 정부 관계자·기업인·문화예술 인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K-Wave & I-Wave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 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됨에 따라 한국남방개발)의 원목개발사 업이다. ‘한국 최초의 제조업 해외투자는 1973년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 장 건설이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고속도로는 자카르타~보고르를 잇는 자고라위 고속도로 (Jagorawi Toll Road 한국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문학적인 소견으로 회사나 사회 의 의미를 논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웃음) 그러나 개인적인 의미로 서 말씀을 드린다면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 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 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한인니 경제협력사무국’을 설치했다. 또 양국은 ‘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으며 한국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제언이 나오면서 한국과 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 국은 외교와 국방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을 누구보다 기원한다고 말해왔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2015년 ‘명예 제주도민’ 으로 선정되고 한반도를 비롯한 지역정세 등에 관해 논의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2002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장관 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 났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방북은 오래된 북한과 의 인연 때문이다.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를 방문하여 수카르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김정일 을 함께 만나 바 있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방북 후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했으며 한인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더욱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 또한 다 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 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인뉴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 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인도네시아는 많은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장 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어려움과 좌절을 겪 을 수도 있지만 한인뉴스와 인터 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저를 만 나게 된다면 언제든지 인사해주세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이영미 편집위원 한일시멘트 등 제조업체들이 진출했다. 건설 분야 에서도 삼환기업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사업은 큰 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그 뒤 합작투자 및 직접 투자 규제에 대한 우선 분야 설정 합판산업은 1960~1970년대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고 전 세계 합판 수출량 20% 이상 점유했 던 우리나라 최대 수출 효자산업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합판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공급 하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원목 수출을 단계적으로 금지하자 새로운 공급처를 물색해야 했다. 인도네시아가 낙점됐다. 동서냉전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비동맹 창설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에 서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1960년 6월 인도네시아측은 우리 친선사절단 방문을 거부했으며 해병 대사령관의 상호방문 등 고위급 인사 교류와 함 께 해외긴급구호 해외봉사단파견 해외투자 자본의 성격도 좀더 자본집약 적 산업으로 전환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석유 화학 핵 개발 저지를 위한 인도네시아 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3) 공적개발원조를 통한 협력 모멘텀 형성: KOICA 제1호 해외사무소 개소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제공은 양국 간 신뢰 관계의 기반을 마련하고 정치 행동하는 방식을 내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루기 위해 행사나 인적교류가 어려웠으나 이 후 각국의 외교활동들이 정상화되는 추세에 있다. 2022년 11월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개최된 3년만의 한-아세안 대면 정상회의 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면서 자유 향후 과제를 토론했다. 구보경 부산외대 한·인니 역대 최대 경제협력의 장… “빅웨이브 현대건설 현대건설 등 건설 부문 현재 비즈니스 모델 확장을 진행 중입니다. 이전 CEO는 한국인이었고 현재 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에서 어떤 AI 기술이 필요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문제 해결의 도구 중 하나일 뿐 현재 한 국 현재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발 생하는 프로젝트의 추가 개발을 현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이로 인해 현지에 서의 고객 요구를 더욱 신속하게 충족할 수 있게 되었고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직장 상사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로 만족하거나 수긍할 때와 어색 현지 시장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에 침투할 때 잘못된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각 나라마다 사업을 함에 있어 항상 강한 면과 약한 면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입니 다.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까지 살았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업에 필요한 인건비와 자본비의 저렴한 부분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도네시아 국민 들이 전반적으로 사업에 있어 유연성이 더 깊어져 협상의 여지가 남는 것입니다. 28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열린 자세로 환영함으로써 현지 한국인들과의 사회적 교 류를 통해서든 계속 노력해 제 자신을 발전시키려 합니다. Q. PT Mobility Doctor Indonesia의 CEO가 되셨다고 들었는데 현지 한인들과 교분관계가 두 터웠다. 한국의 탄약과 전투복 등 방산제품 수입 과 한국의 마두라 유전 개발 참여에 큰 역할을 하 는 등 양국 군사 및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수하르토 정부의 실력자이자 2인자였던 베니 장 군은 1993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6선 연임을 앞두 고 현지 한인들과 교분관계가 두터워 한국의 탄약과 전투복 등 방산제품 수입하는데 기여했 다. 또 한국의 서부 마두라 유전 개발 참여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양국 군사 및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마침내 1981년 코데코에너지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뻐르따미나 간 체결된 서부 마두라 유전 공동개발 사업이 승인됐다. 1981년 6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양국 관 계 발전과 경제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였다. 이듬해 1982년 10월에는 수하르토 대통령 1964년 인니여당 간사장 수비안또로수카르노 대통령양녀 사디킨여사 박정희대통령 예방8 I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의 답방이 있었는데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친환경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자원 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졌다. ★ 한반도 평화에 앞장 선 메가와티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대통령의 장녀이다. 1967년 수카르노의 권력을 빼앗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30여년간 철권 통 치에 강력히 도전하던 중 1996년 6월 정부와 군 부 지원을 받는 민주당(PDI 호혜의 3대협력 원칙을 제시하였 다. 나아가 이러한 비전과 원칙을 바탕으로 아세 안에 특화된 협력 추진을 위해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아세안 중시 외교기 조를 강조함과 아울러 아세안과의 전략적 회 사 차원에서 문학상을 통해 양국 간의 문화적 소 통을 확장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 법은 있습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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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땅동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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