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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여명의 산 악 마을. 늘 경험해 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쉽게 마 음 먹고 나서긴 힘들었다. 멀고 험하고 또 평범치 않은 곳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내가 벌써 마카사 르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비행기는 단 1분의 연착도 없이 부드럽게 마카사 르 ‘술탄 하사누딘’ 공항에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다시 시내의 버스 터미널로 이동 2025년 3월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났습니다. 그가 술탄으로 재위한 것은 두 번의 재 위기간을 모두 합쳐 865일에 불과했으니 2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대 한 왕실 장례의식이 치러진 후 그의 유해는 이모 기리 빠지마딴(Pajimatan)에 묻혔고 그의 묘역 은 아스타나 까수와르간(Astana Kasuwargan) 이라 불렸습니다. 한 시대가 그렇게 빨리 저물고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이복동생 입누자롯 왕자 는 그때 막 10살의 나이로 하멍꾸부워노 4세가 되 어 술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성인이 될 때 까지 디포네고로 왕자가 국사를 도울 섭정이 될 것을 누구도 의심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 코 자기 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래플스 총독은 영국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 다.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던 빠꾸알람 1세 를 섭정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스뻐히 전투에서 영국이 끄라톤을 함락시킨 후 영국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자치구인 빠꾸알 라만 봉국을 할양받고 그곳의 영주가 된 빠꾸알람 1세는 말레이 반도 삐낭섬으로 유배된 하멍꾸부 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가 어린 하멍꾸부워노 4세를 대신해 족자 술탄국의 모든 국사를 영국 총 독부의 입맛에 맞게 결정할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총독부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로서는 이미 예 상했던 일이었지만요. 빠꾸알람 1세의 초상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125605764@ N04/22639770464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3 디포네고로 왕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다 누레죠 재상에게 그렇게 여러번 다짐을 받았고 그 후 정기적으로 술탄을 만나러 오는 일을 빼고는 대부분 뜨갈레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 기서 목가적인 생활을 즐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족자와 수라카르타는 물론 자바 전역의 이슬람 사 회와 인편과 서신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백성들 의 목소리와 지방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하 지 않았습니다. 뜨갈레죠에는 귀족들과 이슬람 학 자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시종들을 제외하고도 식솔들만 수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는데 그들 중 엔 학문과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었고 일단의 젊은이들은 부기스 부대 장교출신 무관들로부터 무술과 창검술을 배웠으므로 하긍 왕후의 저택은 물론 뜨갈레죠 일대가 학교나 병영처럼 기능하면 서 한껏 활기에 넘쳤습니다. “고모님 4진은 망문문절 (望闻问切 -보고 8시간 버스 야간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라자 Mengkendek에 공항이 있으나 마카사르 와 발릭파판에서 각각 하루 한 편의 소형비행기 만이 운행되고 있어 대부분은 버스로 이동한다.) 야간 이동은 좌석이 일반 버스 좀 더 푹신한 Executive 버스나 침대 버스(Sleeper Bus라 불린 다.)가 운행되고 있었다. 마카사르에서 가장 큰 터미널인 Regional Daya Makassar는 에어컨 시설도 깔끔한 식당 하나도 없 는 UIA 대학 교수) 전세계 인구의 77억명 중 무슬림 신도는 23%를 차지하며 세계 전체 인구 중 무 슬림 수가 제일 많다. 무슬림의 영역 ‘Fitri’는 순수함이나 본래의 상태를 의미해. 그러니까 오늘은 단 순히 금식을 마치는 게 아니라 ‘무딕이 줄고 “Terima kasih”는 “terima”는 “받다”를 의미하고 “kasih”는 “사랑 “복잡다단한 인도네시아 이슬람 쉽게 이해하기”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에서 좀 살다 보면 현지 사회가 이슬람 사회인지 잊고 살 때가 많다. 물론 인도네 시아는 국교가 이슬람은 아니지만 인구 약 2억8천만 명 가운데 85%가량인 2억4천만 명이 무 슬림으로 이슬람 주류사회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중동지역 은 물론 다른 나라의 이슬람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도는 이슬람의 본거지인 중동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고 “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이 유지되고 기독교가 확장되지 못 했을까?” 1602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를 점령하면서 식민지를 확장한 네덜란드 동인도회 사(VOC)는 소수의 인력과 병력으로 식민지화를 하는 과정에서 정복보다는 향신료 무역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중요한 요소는 무 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카르타 시민들은 가 족(95.6%) “인샬라” 논설위원칼럼 논설위원 신성철 인도네시아 관광지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성가시다. 섣불리 대응하면 계속 따라 붙기 일쑤다. 이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뜨리마 까시~”라고 말한다면 가족과 함께 조상의 묘 에 성묘를 하는 풍습은 마치 우리 설의 명절 풍습 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르바란 명절 전에는 금식 기간 12개월 중 한달 금식기간의 최대의 소비시장이 형성되는데 각 해당 국가에서 무슬림들의 수 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도 인도네시아에서 이제는 이슬람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인도네시아 정착을 위한 문화적 접촉의 하나로 종교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고 많은 강의를 통해 전달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약 87% 가 이슬람 종교인 무슬림이다. 하지만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 같이 국교가 이슬 람이 아닌 “다양성 속의 통일 국가” 즉 빤짜실라 건국이념을 모토로 하는 다민 족. 다언어. 다종족의 다양성 속의 하나의 통일 국가로 지칭한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 에 없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영원한 벗이 될만한 사랑과 평화의 사 도를 발견하고 한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간단한 간식 정도 살 수 있는 매점만 줄지어 있 는 그냥 대기실이었다.(매점도 밤이 되니 문을 다 닫아버려 물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화장실 시설도 열악해서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현지 여행사이트에는 출발 시간 한 시간 전부터 탑승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되어 있었 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텅 빈 대기실에 사람 들이 우르르 한번에 나타나면 잠시 후 버스들이 우르르 들어와 그들을 싣고 떠나고 간도 익혀 따로 놓았다. 팬에 고추 간염 간장 소스를 더해 만든 깡꿍볶음(kangkung tumis)은 밥반찬으로 사랑받는 국민 요리다. 40 I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깡꿍볶음은 아삭아삭하고 삼발 고렝 아띠랑도 잘 어울려. 오늘 진짜 제대로 르바란 상이 되겠다.” 그날 밤 부엌에는 고향의 냄새가 가득했다. 요리하는 닝시의 얼굴에 할머니의 미소가 겹쳐 보였다. 나눔의 마음 감사합니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해준 도움 감정-좋은 마음을 갖고 거부 걸음걸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lahir)뿐 아니라 겨울은 의례의 계절입니다. 가족 겪 어온 경험들 결혼식 경제는 경제로 분 리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적 안정감 고모는 아이들을 불러 하나씩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뭐예요?” 꼬마 닝시는 처음 만져보는 얇고 질긴 잎사귀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건 야자 잎이야. 우리가 이걸로 밥주머니를 만들거란다.” 할머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어른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갔고 고모랑 고향집 마루에 돗자리가 깔리고 온 가족이 모였다. 할머니는 오래된 대나무 바구니에서 야자 잎 뭉치를 꺼내오셨고 곡선으로 말려 올라간 지붕과 앞 뒤로 긴 형태의 전통 가옥 궁밖에서 살면서 접하게 된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두 번씩이나 끄라톤을 유린한 이민족 의 만행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 이미 굳건한 가치관 을 가지고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 총독부는 다른 왕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술탄이 평생 열 명 가까운 왕후와 후궁을 들이는 왕가에서 왕자들은 얼마든지 넘쳐났습니다. 나중 의 일이지만 디포네고로 왕자 자신도 평생 아홉 명의 아내를 가지게 되죠. 하멍꾸부워노 3세의 아 들들 중 총독부의 눈에 든 것은 여덟 번째 왕자 인 구스티 라덴 마스 입누자롯(Gusti Raden Mas Ibnu Jarot)이었습니다. 그는 구스티 깐젱 라투 끈쪼노 (Gusti Kanjeng Ratu Kencono) 왕비에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1 게서 1804년 4월 3일 태어났고 스뻐히 전투가 있 던 1812년엔 겨우 여덞 살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입누자롯 왕자의 사이는 마치 인디아 라마야나(Ramayana) 전설에 나오는 크 레스나(Kresna)와 아르쥬나(Arjuna) 같은 관계 였다고 전해집니다. 크레스나는 힌두신 비슈누의 화신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에 서는 아르쥬나의 절친으로 등장하고 바가바드 기 타에서는 주인공 아르쥬나의 조언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비슈누신의 모습으로 화해 친족과의 전쟁 을 거부하는 아르쥬나를 다시 전쟁터에 나서도록 설득하죠. 디포네고로가 많은 이복형제들 중 스무 살 가까이 차이지는 입누자롯 왕자를 각별하게 여 긴 것은 그의 온순한 성품이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를 너무나 쏙 빼어닮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랬기에 영국 총독부 역시 입누자롯 왕자에게 눈도 장을 찍어 두었던 것이고요. 재상 신두네고로는 날로 악화되던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자신이 스뻐히 전 투 당시 입은 부상이 도져 1813년 어느 날 권유에 대한 정중한 거절로 “띠닥 뜨리마 까시”(Tidak terima kasih) 또는 “뜨 리마 까시”를 쓸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귀-좋은 소리만 듣고 귀족들과 네덜란드 지주들을 위해 아무 보상도 없 귀족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스캔들 이 터지고 부패와 독직이 만연했을 뿐 아니라 왕 가의 비옥한 토지가 대단위로 유럽인들이나 중국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12 인들에게 임대되면서 가중된 백성들의 고통에 대 해 끄라톤이 외면으로 일관하자 민초들의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각종 세금이 천정부 지로 치솟아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피폐해 갔는 데 도시와 성읍 관문들의 운명권마저 중국인들에 게 넘어가자 자바의 백성들은 길을 다니는 것만으 로도 통행세를 뜯겨야 했습니다. 민란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만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 었던 것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술탄의 측근들로 이루어진 자문기구에 참여해 어린 술탄을 보위하고 왕정을 바로 세우려 했으나 끄라톤의 실권은 이미 다누레 조와 네덜란드 총독부에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습 니다. 네덜란드는 자바의 왕가를 쥐락펴락 하면서 게걸스러운 탐욕으로 왕국의 이권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있었죠. 나폴레옹 전쟁으로 국가 역 량의 대부분을 소모한 후였으므로 네덜란드는 당 면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세계 식민지 전체 에서 강력한 조세정책을 시행했고 사업과 판매의 독점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습니다. 당연히 자바와 수마트라 전역도 예외가 아니었고 세 살짜 리 술탄이 다스리는 족자 왕국이야말로 가장 만만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21 한 밥그릇이었겠죠. 더욱이 실질적인 섭정으로서 왕실의 왕자들과 왕후들을 압도하며 막강한 실권 을 휘두르던 다누레조 재상은 노골적으로 네덜란 드의 편을 들었습니다. 가혹한 조세정책과 네덜란 드의 독점행위가 왕실의 무력감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똑같았어.” 닝시는 피르만에게 야자 잎을 하나 건넸다. “우리도 한번 엮어볼까? 모양은 서툴러도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떠나지 못한 사람 들 그 안에 밥과 양념한 고기를 채워 넣은 음식 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가 85%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인샬라”(Insya Allah)라는 말이 있다.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샬라”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약속이나 기대하는 바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당장 결정하기 어렵거나 본인이 결정 권한 밖에 있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할 때 많이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인샬라”라고 말할 때 그 와중에도 인상되어 버린 세금을 내야 했으므로 그나마의 소득도 국가에 모두 빼앗 겼습니다. 기아선상에 내몰린 그들의 원성은 당연 히 드높았습니다. 한편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총독 부가 토지임대권을 독점해 자신들이 직접 토지임 대를 하지 못하게 되자 이로 인한 기회이익의 상 실로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귀족들은 민중의 고통 보다는 자신의 빼앗긴 이권 때문에 네덜란드에 이 를 갈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각도는 매우 달랐지 만 결과적으로 귀족들과 백성들 모두 네덜란드의 게걸스러움에 반감을 품게 된 것이죠. 자바의 중국인들 https://nusantara.news 족자에서 멀지 않은 머라삐 화산 http://www.mixanitouxronou.gr 22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디포네고로 왕자님이 어쩌면 자야바야 예언서가 말한 라투 아딜(Ratu Adil)의 현신인지도 몰라!” 의 시조 라덴 위자야(Raden Wijaya) 등이 그 중 인구의 45%인 약 1억2천만 명의 자바족 이 자바섬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그곳에서 나는 몸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간신히 빠져나와 차까지 걷는 길이 천 년같이 느 껴졌다. 유난히 쨍한 햇볕과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장례식을 위해 비로소 똥꼬난 안에 모셔두 었던 고인의 시신을 비로소 관에 담은 이들은 그들의 말씨 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샬라”를 듣는 순간 그렇지 않아도 고통받고 있던 인 도네시아 민중들의 목을 더욱 졸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822년 머라삐 화산(Gunung Merapi)이 폭발하고 1824년 콜레라가 창궐하면 서 자바섬엔 더욱 큰 혼란의 시대가 찾아왔고 민 중들은 물밑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저항을 준비하 고 있던 디포네고로에게 은연 중 큰 기대와 희망 을 품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관료들과 현지 영주들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아무 댓가 없이 노동력을 차출당해야 했던 농부들은 자신의 논을 경작하지 못해 소득이 급격 히 감소했고 그리고 기도 다음 날 아침 그리고 다진 릉꾸아스를 넣고 정성스레 볶았다. 달궈진 기름에서 퍼지는 매콤한 향과 함께 그리고 변화를 따뜻한 이야기로 엮고자 한 작은 시도입니다. 올해 르바란을 앞두고 그리고 새로 밝혀진 이론들이 접 목되어 예전보다 발전한 것으로 보이나 그리고 스물 네 마리 이상 이 되어야 성대한 장례식으로 꼽힌다. 이들은 장 례식을 잔치(Acara)라고 부르며 온 마을과 지역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장례식을 즐기고 장례식에서 희생된 물소과 돼지 고기를 나눠 먹는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른 체크인을 했다. 무박의 여독을 풀기 위해 샤 워를 하고 똥꼬난을 바라보며 야외 식당에서 아침 도 먹었다. 34 I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앞으로 펼쳐질 첫 경험의 기대로 피곤도 잊었던 설렜던 아침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렌터카의 사장은 다름 아닌 그 호 텔의 매니저였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들뜬 목 소리로 말했다. “Ada acara hari ini!” (오늘 잔치가 있어요!)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진짜 전통의 하이라이트를 보여 줄 수 있어 매우 기쁜 듯 했다. 매일 있는 행 사가 아닌데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이미 만들어놨던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이 잔치 부터 가세요. 또라자 장례 문화의 시작은 이 잔치 부터니까요.” 장례식을 잔치라 표현하는 이들에게 장례식은 진 정 또 다른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였다. 우리를 태운 기사는 호텔 매니저가 적어준 약도 를 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그 지역 사람 들이 장례식 다 소식을 알고 있는 듯 기사가 길을 물을 때마다 서슴없이 잔칫집을 알려주었다. 잔칫집은 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앞쪽 정면에 커 다란 똥고난이 서 있었다. 똥꼬난 이층 난간에는 예수의 마지막 만찬 그림이 붙어있는 고인의 하 얀 관이 있었다. 왼쪽으로는 가족들이 머물고 있 는 집과 오른쪽으로는 십자가가 크게 붙여진 방송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회자는 계속해서 고인 과 가족 그리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끓이는 오뽀르 아얌 냄새까지. 그 풍경은 닝시의 기억 속에서 매년 르바란이 가까워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엄마 그리고 이슬람 사회의 지지 등을 보고 들으 며 그리고 정성으로 만든 꺼뚜빳과 오뽀르 아얌이 놓여 있었다. 에필로그 2025년의 르바란은 조용했다. 무딕은 줄었고 그리고 코코넛 밀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늘 그녀는 르바란 아침을 위한 전통 반찬인 삼발 고렝 아띠(Sambal Goreng Ati)를 만들기로 했다. 피르만이 재료를 하나하나 만져보며 물었다. “엄마 근거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각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객관성을 배제하고 애기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 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아래에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신의 사전적 의미: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이다. 마음이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는 것 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에 대한 맹신을 의미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가 미신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한의학을 심도있게 연구하고 탐구해 보면 미신과는 동떨어진 학문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인체는 소우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주만물의 이치를 관찰하고 공부하여 소상히 알면 인체도 보이게 됩니다. 자연과 인체가 둘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을 모두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지금까지 많이 밝혀져 왔고 앞으로도 많이 밝혀지겠지만 근심 금식 관련 소식 정보에 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에 내용을 이번호를 통해 나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르바란( Idul- Fitri) 긍정적 사고 방 식으로 나 자신부터 변한다는 생각에 이노베이션 을 시작하자. 변화의 초점은 우선 사기진작 긴장감 등을 감추려 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인도 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무시당한다거나 뻔뻔하다고 느 끼고 화가 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조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친근하게 다가 온다. 이들의 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격언에 “비아르 람밧 아살 슬라맛”(Biar lambat asal selamat)이라는 말이 있다. “늦 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라는 이 격언은 한국인의 습성인 “빨리빨리”와 대비되는 인도네 시아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다. 느림의 미학인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이들 을 태도에 익숙해져야 인도네시아인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끝) 깡꿍 볶음이 완성되는 과정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인 거야.” 피르만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엄마 꾸랑따우 (kurang tahu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인샬라”는 모든 결정에 신중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습성을 나타낸다. 동남아시아 해양부에 유치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바다를 통한 해상무 역을 통한 경제 활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환경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 큼 신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7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왕국 간 또는 멀리 인도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슬람 무슬림신도 대다 수의 나라에서 종교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여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융합과 화합의 문화를 이들 무 슬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또한 이슬람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한 옥석을 찾 고 내가 전에 괜히 짜증내고 말 안 들은 거… 그것도 용서해?” 닝시는 아들을 꼭 안았다. “물론이지. 엄마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덧붙였다. “‘모혼 마압 라히르 단 바띤.’은 그냥 인사말이 아니라 네덜란드는 족자에 서 문띨란(Muntilan)을 거쳐 마글랑까지 이어지 는 도로계획의 원래 경로를 조금 틀어 굳이 뜨갈 레조(Tegalrejo)를 통과하도록 수정하면서 자바 전쟁의 직접적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렇게 수정 된 도로공사가 하멍꾸부워노 외가의 조상 묘소들 을 지나게 된 것입니다. 비록 매일 등청하진 않았 지만 당시 술탄 하멍꾸부워노 5세의 숙부이자 가 장 중요한 후견인 중 한 명인 디포네고로 왕자에 게 사전 언질은 물론 양해와 허락을 받아야 마땅 했으나 그런 절차가 깡그리 무시된 것은 다누레 조 4세 재상의 은밀한 입김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 이었죠. 다누레조 재상이 공사강행을 위해 그 땅 에 경계표시 말뚝을 박으려 하자 그제서야 조상들 의 묘역이 파헤쳐지게 된 것을 알게 된 디포네고 로 왕자가 크게 격분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었습니다. “저 놈들이 우리 묘역 에 박은 말뚝들을 모조 리 뽑아버려라!” 디포네고로 왕자는 수 하들을 시켜 그 말뚝들 을 모두 뽑아 불태워 버렸습니다. 포네고로 왕자도 남쪽 바다 마물들의 여왕 니롤로 키둘과 만났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야기 들이 당시 세간에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니롤로키 둘은 세노빠티와 만난 후 역대 마타람 제왕들의 영적 아내였다고 믿어졌으므로 니롤로키둘이 디 포네고로 왕자를 찾아왔다는 항간의 소문은 그가 진정한 마타람의 후예이자 족자 술탄국의 적통이 라는 증거처럼 여겨졌습니다. 한편 이슬람 울라마 집단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하는 서구의 관습이 날로 퍼져나가며 자바의 민 속과 이슬람의 가르침을 타락시키는 것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들은 민중들에게 이슬람에 입각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고 도덕적 타락의 근원인 네 덜란드를 속히 퇴치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고 디포 네고로 왕자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마타 람 까르타수라 왕국 초창기인 1647년 폭군 아망 꾸랏 1세가 울라마들과 이슬람 학자들을 무더기 로 학살하면서 왕가와 이슬람 울라마들 사이엔 오 랜 불신과 증오의 앙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 만 스스로 왕족이면서도 울라마이기도 한 디포네 고로 왕자가 200년만에 그 간극을 극복하며 왕가 와 이슬람 사회 양쪽을 모두 아우른 것입니다. 그 리하여 그는 이슬람 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 어 모았고 더 나아가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상과 분명한 저항의 결기가 모든 울라마들 노트 에 수기로 우리 좌석 번호를 적고는 기다리면 불 러준단다. 첫 경험은 불안했다. 한 시간 넘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동네 꼬마들 과 잡담을 하며 버텼다. 드디어 우리의 버스가 도 착했다. 밤 10시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침대 버스 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깔끔하고 안락했다. 마카사르에서 또라자를 운행하는 버스는 장시간 운행을 하다보니 운전사 이외 두 세 명의 보조원 이 타고 있다. 그들은 손님들의 좌석 번호와 승차 지 누군가의 식탁이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차 올랐다. 르바란 아침 눈-좋은 것을 보고 닝시는 스마트폰을 꺼내 Baznas (Badan Amil Zakat National Agency) 앱 에 접속했다. 르바란을 맞기 전 무슬림이라면 실천해야 하는 자깟 피트라(Zakat Fitrah)를 납부하기 위해서다. 자깟 피트라는 라마단 한 달 동안의 금식을 완성하는 의무 기부로 닝시는 피르만과 함께 거실 카펫 위에 자리를 깔고 이드 기도(Shalat Id)를 드렸다. 라마단을 마무리하며 드리는 이드 기도는 평소와 다른 특별한 예배로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단순히 개인적 성취를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시 간이기도 합니다. 광복절 기념행사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행사로 다누레조 재상의 부패와 맞물려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나누는 거야.”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 “그래. 라마단은 금식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단다.” 피르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다시 시골 고향에서 자카르타 도시로 귀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생각지도 않은 이촌 현 상의 일환으로 르바란 휴가를 떠났던 친구들이 고 향 친구들 하나 둘 데리고 다시 자카르타에 운집 하게 되면서 다원성과 관용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전통을 유지하 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정의합니다. 재인도네시아 한인들에게 이러한 의례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강력한 연결고리입니다. 또한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의무를 넘어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바 라보아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힌두교 담이 결렸 을 때 가는 곳 당신의 어깨가 매우 무겁다 는 걸 명심하시오. 내가 끄라톤을 멀리 떠나 있진 않겠지만 이젠 당신이 술탄 전하와 섭정전하를 가 장 가까이에서 잘 보필해야 하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재상 다누레죠 4세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버지 술 탄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장례식을 위해 빠꾸알라만 봉국에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채 곧바로 술탄의 섭정이 된 빠꾸알람 1세의 견제를 벌써부터 받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 세와 함께 당시 어린 무스타하르 왕자를 흐뭇한 눈 으로 지켜보던 노토꾸수모 왕자는 여전히 혈색좋 은 얼굴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었지만 왕실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던 디포네고로 왕자를 더 이상 흐뭇하게만 여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토꾸수모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멍 꾸부워노 4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끄라톤에 공의 사람들을 심어 족자 술탄국이 우리 총독부에 더 욱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오. 그것이 우리와 보조 를 맞추고 있는 빠꾸알라만 봉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아니오?” 래플스 총독은 서신을 통해 빠꾸알람 1세에게 그 렇게 속삭였죠. 그러기 위해선 왕가와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던 디포네고로 왕자의 힘을 줄 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빠꾸알람 1세 가 섭정이 된 후 끄라톤 궁에서 디포네고로의 행 동은 크게 제한되기 시작했고 많은 회의와 행사들 이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열렸습니다. 디포네 고로 왕자가 하멍꾸부워노 4세를 만나는 것은 다 행히 여전히 자유로왔지만 그것은 어린 술탄이 전 혀 실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난 수마디뿌라공만 믿겠소.” 당혹스러움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슬람은 정복전쟁을 통해 전파됐으나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르바란 음식이다. 닝시는 조심스럽게 손에 남은 야자수 잎 하나를 펼쳐 보았다. 그 순간 더 넓은 인 도네시아 사회로 확장되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끝] 사진 제공: 김혜정(자카르타 거주)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고 물러난다. 자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의 말 한마디이다. 물론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르바란 전날 밤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I 49 송년회와 광복절 같은 의례는 인도네시아 한인 공동체에 어떤 의미인가? 송년회와 광복절 기념행사는 전통의례는 아니지만 인도네시아 한인 공동체의 결속력을 상징하 는 의례입니다. 송년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성취와 노력을 공유하고 돼지들은 있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높여 울어댔다.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정말 저런 것 이었구나 듣고 들려오는 소문과 전해 내려오는 전설 디포네고로 왕자님에게 니롤로키 둘이 현신했데. 그분이야말로 마타람의 적통이란 뜻이지. 그분이 우리 왕국을 지켜내실 거야!” 마타람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술탄 아궁 (Sultan Agung)의 무덤에서 사람들이 보았다는 불길한 원귀(寃鬼)의 이야기부터 그 옛날 마타람 왕국의 시조 권능왕 세노빠티가 그랬던 것처럼 디 동인도인들이 맨 가마 위에 올라탄 네덜란드인들 자야바야의 예언 (배경의 문자는 자바어 알파벳) 쁘라렘방 자야바야(Pralembang Jayabaya) 예 언서란 분열되어 있던 12세기의 중부 자바 끄디 리(Kediri) 왕국을 재통일한 자야바야 대왕의 예 언을 담은 것으로 당시 사람들은 자야바야가 힌두 신 비슈누의 환생이라고 했다죠. 그 예언의 골자 는 세상이 혼돈과 불의로 편만 하거나 거대한 위기 가 닥쳤을 때 라투아딜(Ratu Adil - 공의의 여신 또는 정의로운 제왕)이 강림해 세상을 평정한다 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까후리빤(Kahuripan) 의 국왕 아이르랑가(Airlangga) 디포네고로 왕자도 따뜻한 마음과 전통은 그대로 지켰어요. 진짜 르바란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마도 떠르스라(terserah 또 그게 반복 되고. 버스 탈 사람들이 나타나서 버스를 타고 떠 나는 데 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쪽에는 버스 회사별로 작은 사무실이 줄지어 있는데 또는 친절한 행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 현하는 방식이다. 직역하자면 똥꼬난Tongkonan. 하늘을 향 해 치솟은 지붕은 마치 무거운 운명을 거슬러 올 라가는 영혼의 여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똥꼬난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단순한 전통 주거 공간이 아닌 띠닥따우(tidak tahu 모른다) 르바란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끝] 노트 이 소설 《조용한 귀향》은 2025년 인도네시아 르바란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가족애 릉꾸아스 릉꾸아스 특유의 향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이거 매워요?” 피르만이 물었다. “응 리더 십 그리고 책임감 즉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이슬람 종교 무슬림으로서 현재 충실하게 이행할 일은 바로 이슬람의 5대 교리 즉 주요 의무사항 중의 하나인 금식을 종교의식의 방식에서 충실이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슬람 신도의 행동이다. 금식의 경우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이 계시한 12달 중에 제일 성월의 달로 우선시 하고 있고 마그립 마늘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고향 마을의 꺼뚜빳 냄새 마음속 감정(batin)까지도 용서받고 용서하는 진짜 르바란의 말이야.” 영상통화 속의 고향 “할머니 마음은 여전히 하나였다. 브이로그의 마무리 밤이 되자 마자빠힛 왕국(Kerajaan Majapahit)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23 는 강제노역에 자주 동원되어야 했던 백성들 마침내 또라자의 대지를 밟았다. 버스는 티켓에 쓰여진 터미널이 아닌 우리가 미리 예약한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산악지대의 서늘한 새벽 공기가 코 안 깊숙이 스 며들었다. 텅빈 거리에서 고요한 신비로움마저 느 껴졌다. 수천년 그들만의 특별함을 간직한 그곳에 내가 있었다. 호텔 정원에는 또라자의 전통 가옥인 똥꼬난이 줄지어 있었다. 네 개의 기둥 위에 화려한 무늬의 나무 벽 만세 삼창이 진행됩니다. 작게는 식사 전 감사 기도를 드리거나 맞아.‘Idul’은 축제 맥을 짚는다)을 뜻합니다. 그래서 한의원에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을 진찰할 때 望-얼굴표정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왕 궁의 충신들이 하나 둘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습 니다. 1813년 12월 2일 임명된 후임 재상은 자빤 (Japan - 지금의 모조꺼르토 (Mojokerto)) 군 수였던 마스 뚜멍궁 수마디뿌라(Mas Tumenggung Sumadipura)였습니다. 그는 아직 30대 초 반의 젊은 영주였어요. 대개는 전임 재상의 자식 이나 피붙이 중 한 명을 선택해 다음 재상을 대 물림시켰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당시 모조꺼르 토를 동부자바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드 는 수완을 발휘한 수마디뿌라를 족자 술탄국 내 정을 관장할 재상으로 직접 발탁한 것입니다. 그 에게는 ‘다누레죠 4세 재상’이라는 칭호가 붙 었습니다. 그러나 일천한 가문과 배경을 가진 그를 왕도의 고위 귀족들이 순순히 재상으로 떠받들었을 리 없 습니다. 기득권 귀족들의 시기를 한몸에 받은 재 상은 한껏 풀이 죽어 처음엔 크고 작은 실수를 저 지르며 대전에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므 로 디포네고로 왕자가 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다누레죠 4세 재 상도 끄라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37 년간이나 머물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에측하지 못 했습니다. 그가 디포네고로 왕자와 평생의 원수가 되리란 사실도 말입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은 날로 더욱 악화되 어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대 술탄들이 가졌던 인도네시아 전통 와양 인형극에 등장하는 아 르쥬나(좌)와 크레스나(우) 출처- https://wayang.wordpress. com/2010/03/07/jatidiri-dan-sikaphidup-kresna-27-kedudukan-dan-sikapkresna-dalam-masyarakat/ 2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용기와 배포를 전혀 닮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자식들 대부분이 자신의 유약함을 그 대로 빼어박은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 매일 문 안오는 디포네고로를 만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굳은 심지 를 가진 큰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들아 면역질환 등은 병원 에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몇 몇의 청년들이 들어와 돼지들을 건물 뒤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중앙 마당에 박혀있는 말뚝에 물소를 매고 목을 벨 것이라고 이방인들을 데려온 가이드가 설명했다. 뿔이 하늘로 잘 뻗은 물소는 한 마리에 한화 수 백 만원에서 모든 무슬림이 납부해야 하는 기부금이다. 가난한 이웃들도 르바란 아침에 배고프지 않도록 하는 연대의 실천이다. 닝시는 화면을 보여주며 피르만에게 말했다. “이건 우리가 오늘 맛있는 음식 먹는 만큼 모쪼록) 무다무다한(mudah-mudahan 무함마디야는 교육 부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은 이슬람 지도자들을 찾아가 정책을 알리고 지지를 요청한 다. 이는 이슬람이 단순한 종교를 넘어 정치적 협상과 지지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함을 시사한 다. 또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서도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히잡(또는 질 밥) 착용은 과거에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였지만 문화 및 정 치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한국 사람이나 현지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이 슬람의 다원성과 독특함을 이해하고 이슬람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현지 사회와 무 리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물어 보고 물질적 풍요로움 (95.9%) 등을 꼽았다. 특히 신앙(믿음)에 대한 응답 비율이 93.9%로 뭉낀(mungkin 미국 등으로 이주하게 됨으로써 민망 반면에 비통한 전쟁과 억압의 역 사를 보면서 슬픈 마음을 금하지 못하기도 한다. 인류문화사 심층에는 반드시 종 교라는 씨앗이 심어져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저변에는 유. 불. 선의 3교를 비 롯한 인도의 힌두사상 그리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발리 섬 동쪽에 위치한 롬복섬 사삭족의 무슬림들은 하 루 3번 기도를 하는 종교적 관습이 남아있다. 자바 무슬림 중 다수는 ‘아방안’(Abangan)이라 불리며 토착 신앙적 요소와 이슬람을 결 합한 독특한 신앙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전파되던 시기에 지역 문화와 충돌하지 않고 유연하게 융합된 결과이다. 한편 1912년 이슬람단체 무함마디야가 설 립되면서 정통 이슬람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독실한 이슬람교도라고 할 수 있는 산뜨리(Santri)가 확장된다. 한인뉴스 2025년 2월호 I 7 34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지역이나 필리핀 등은 가톨릭이 전파되었던 반면 밤에는 기존 하루 다섯번 예배 외 에 따라위 특별 예배(Shalat Ijtihad)로 자신의 심 적 고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 믿음에 대한 만족 과 신뢰감 그리고 믿음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10일의 경우 이슬람 율법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도 무함맛의 선행을 잘 이행함 은 물론이고 백성들은 오직 디포네고로 왕자만이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유일한 인물이라는 기대 를 더욱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1825년 7월 중순 보통은 모스크나 공터에 수천 명이 모여 함께 드리지만 부끄러움 부엌의 시간 닝시는 깊은 숨을 쉬며 부엌에 들어섰다. 싱크대 위에는 닭 간 부작용이 적은 미용시술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의학의 전통적인 진료방법은 4가지 방법으로 진찰한다 하여 4진이라 하고 불교 붉은 고추 사람과 사 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이는 한인 공동체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는 동물의 감정과 사고영 역이 복잡하기에 사촌들은 서로 엮은 모양을 자랑하듯 보여주며 깔깔 웃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소리 사회 단체 등 다양한 공동체 가 송년회를 개최해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교회에 서는 크리스마스에 공연과 음식 나눔을 통해 예수님 의 탄생을 축하하고 신앙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합 니다. 주인도네시아한국대사관을 포함한 많은 기관과 기업은 신년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새해 업무를 시작 합니다. 학생들은 한 학년을 마치는 종업식 사회적 신뢰 등의 차이를 비교·분석했다. 조사 결과 사회적이고 정치적 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인도네시아에는 나들라뚤울라마(Nahdlatul Ulama NU)와 무함마디야(Muhammadiyah)라는 대표적인 이슬람단체가 있다. 이들 이슬람단체는 20세기 초 창립해 네덜란드 식민제국에 대항해 독립을 위한 인도네시아의 국민국가와 민족 정체성 확립하고 교육의 기초를 닦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독립 후 인도네시아공화국 초 기에 NU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정부와 대항하거나 협력하는 등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역할을 사후 세계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통해 천국(Surga)으로 갈 수 있다고 무슬 림 신도들은 믿고 있다. 이슬람의 주요 5대 교리 중의 하나가 바로 금식 라 마단 이슬람 5대 의무 중 4번째 항목이다. 1. 신앙고백 (Syahadat) :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 님을 없고 무함맛은 그 분의 마지막 예언자이시다 (유일신 강조) 2. 예배 (Shalat) : 하루 5번 (파자르 삼발 고렝 아띠를 만드는 장면 새 시작을 축하 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노랫 소리로 고인이 떠나는 길을 축제로 즐기고 있었 다. 가짜 울음소리라도 내어야 하는 우리의 장례 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놀라서 달아나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눈에는 얼 마나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웠을까. 내가 정작 이곳 에 온 목적은 이 장례식과 장례문화를 내 눈으로 확인하러 왔던 것인데 샬롯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 안에 있겠죠.” 닝시는 그 영상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식탁 위에는 아직 식지 않은 깡꿍 볶음과 삼발 고렝 아띠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 관을 파악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 이다. 이번 열린강좌는 그 여정의 하 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화로운 삶’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자카르타의 구체적인 생활 조건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는 강연자의 깊은 학 문적 통찰과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 인 강의였다. 후원: KOSA (한인중소벤처기업협의회) (제공: 한인니문화연구원) 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제88회 열린강좌 최경희 박사의 ‘자카르타인들의 삶과 가치관’ 강의 열려 서상영의 한방칼럼20 전통의학은 과학인가 미신인가 한의학은 전통의학입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체를 치료하는 학문인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의학 또한 진단기계와 치료기계의 도입 서울 시민은 42.3%로 조사 대상 도시 중 가 장 낮았다. 경제상황 서울은 30.3%로 크게 낮았다. 흥미로 운 점은 종교성과 물질적 가치가 자카르타에서는 배타적이지 않고 선물 성월의 달을 30일로 계산 성월의 보름달이 비추는 특별한 날 을 통하여 금식일 라마단 달에 제일 큰 행운과 축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라마단 금식 기간 을 통해 또한 이 기간에는 이슬람 신도들이 흔히 두려워하는 지옥의 길을 피하고 성지순례 기간에 못할 경우 단식 절차의 순 례인 움러(Umroh)를 다녀옴 이슬람의 신도들은 주요 5대 교리 외에도 6 종류 의 믿음이 있다. 1. 유일신(Allah) 2. 천사들(Malaikat) 3. 하나님의 성서들(Kita-kitab Suci) 4. 예언자들(Nabi & Rosul) 5. 내세(Hari Akhir) 6. 정명 (Qada & Qadar) “이슬람 율법을 기초 근거로 한 금식에 대한 올바 른 이행과 능률적 사고 행동 진작” 금식을 통해 올바른 변화와 이해 세 금 징수를 맡은 화교들의 횡포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디포네고로 왕자의 저항이 획기적 지지 를 모을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 다. 여기에 더해 세계 종교의 사상적 뿌리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종교가 인간에 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종교에 대한 이해와 공부에 대한 지식도 그만큼 소중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21 인도네시아 금식월 (Rahmadhan)에 대해 알아보자 금식월이면 어김없이 바쁜 일정을 보낸다. 각 교 육기관이나 정교. 정부단체 등의 모임에서 금식 일에 대한 주요 의미와 이행 그리고 그 목적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의 교육을 많이 해왔다. 이번 호에는 본인이 인도네시아 식약청(BPOM) 을 방문 소비도 위축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집을 단장하고 소비도 줄었지만 여전히 풍성한 마음이 살아 있다’는 여 러 미디어 기사를 접하면서 소셜미디어로 마음을 전하는 아이들. 방법은 바뀌었지만 그 들은 여전히 ‘함께’였습니다. ‘슬라맛 이둘 피트리(Selamat Idul Fitri)’란 말처럼 손에 익으면 재미있어. 옛날엔 할머니랑 수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떠난다. 매년 이맘때면 닝시도 이미 자카르타를 떠나 고향길 에 올랐을 터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저축은 바닥났고 슬라맛 이둘 피트리 (Selamat Idul Fitri)!”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41 영상통화 속에서 고향의 어머니는 흐린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브레베스의 낡은 거실 너머로 보이는 바나나잎 그림자는 익숙하면서도 아득했다. 곁에는 닝시의 남동생도 있었다. 그는 최근 실직 후 고향에 머무르고 있었다. “요즘 힘들지? 괜찮아. 우리 건강한 게 어디야.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좋네.” 닝시는 울컥했지만 웃었다. 함께 모이지 못해도 신앙(93.9%) 신앙과 가족애를 되새겼다. 변한 건 방법일 뿐 신앙과 물질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독특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적 토양과 다른 경험을 한 한국-인도네시아 사람들 의 발전적 공존을 위해서 신의 뜻대로) 등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는 걸 원치 않거나 말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할 때는 부 모 또는 가족이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실수하거나 무안한 마음이 들 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돼지들의 울부짖 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가득한 절규였다. 잠시 후 실상을 예전과 비교해보면 옛것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퇴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것이 잘 이어지고 보존만 되었어도 한의원은 발목이나 허리를 삐끗했을 때 가는 곳 실제로는 미용에 관련된 시술법이나 심장병 심하게 말해 왕실 의 재산이었으므로 싱가가리 왕국 라자사 왕조 (Rajasa Dynasty)의 켄 앙록(Ken Angrok) 아 샤르 아랍 일부 국가의 멸망으로 몇몇의 능력 있는 부유층 무슬림의 경우 유럽이 나 아프리카 아마도) 아무리 그들이 원한다 해서 디포네고로가 술탄이 되는 것을 영국이 승인할 리 없다는 사실 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포 네고로 왕자가 어떤 식으로든 왕국의 미래를 일정 부분 좌우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 멍꾸부워노 3세는 마주 잡은 아들의 손을 꼭 쥐며 엷은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는 두 번째 즉위 후 불과 2년 만 인 1814년 11월 3일 아버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왕국 의 술탄이 아니라 이민족들을 모두 몰아낸 자바땅 전체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 말은 또 다시 족자 술탄국의 왕좌를 거절한다 는 의미였죠. 하지만 그의 말속에 담긴 원대한 포 부에 하멍꾸부워노 3세는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 꼈습니다. 사실 하멍꾸부워노 3세도 아이들은 잎을 엮다가 헝클어뜨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고모가 웃으며 도와주고 아이들의 폭죽 소리 아직 남아있는 수수께끼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그렇다고 한의학이 “음양오행 아직 들어오지 않은 THR(명절 보너스)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엄마 아직도 술탄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느냐?” 디포네고로 왕자는 부왕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 었습니다. “네 알쏭달쏭 말 한마디 “뜨리마 까시” 알아서 하세요) 어린 시절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르바란을 앞둔 어느 해 저녁 어서 오세요.” 뜨갈레죠를 방문한 라덴 아유 무르실라(Raden Ayu Mursilla)는 돌아가신 술탄 하멍꾸부워노 3 세의 여동생으로 이모기리의 묘소를 돌아보고 수 라까르타 가까이의 빠장(Pajang) 집으로 돌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 살 남짓한 아들과 동행하고 있었어요. 작은 몸집에 초롱초롱한 눈 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무슬림 모하마드 칼리파 (Muslim Mochammad Khalifah)라고 했습니다. “좋은 이름을 가졌구나.” 선지자의 이름을 딴 아이의 이름은 이미 그가 아 주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에 푹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슬림이란 알라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하마드는 선지자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수마디뿌라공(公) 엄마.” 닝시는 아들의 손을 감싸며 웃었다. “잘했어 열 한 마리에서 스물 세 마 리까지는 중급 장례식 영어로는 갈랑갈(galangal) 한인뉴스 2025년 4월호 I 39 이라고 해. 생강보다 향이 더 강하고 시원한 맛이 나서 옆에 있는 프라이팬에서는 초록빛의 깡꿍(kangkung)이 센 불에 볶아지고 있었다. 마늘과 삼발 예전같이 많은 질병을 치료하는 한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한의원은 관절이나 근육문제가 생겼을 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 역시 한의학의 발전 방향과 연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의서에 수록된 질병들을 보면 당뇨병 오늘 잔치 온 가족이 모여서 꺼뚜빳을 엮었지. 모양이 조금씩 달라도 온갖 좋지 않은 행동 등의 몸 가짐을 금식기간에 바른 자세로 전 환하고 절제 등을 통한 이슬람 종교 율법의 가르 침에 응하라! 하는 더 깊은 의미도 있다. 그리 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IMAN) 온라인 기도와 영상통화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자막이 떴다. “우리는 올해 고향에 가지 못했지만 올바른 종교의식 과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Allah)께서 배려해 주 신 천국으로 가는 제일의 지름길이라고 무슬림 신 도들은 믿고 있다. “Ya ayyuhal ladzina amanu kutiba ‘alaikum ush-shiyamu kama kutiba ‘alalladzina min qablikum la’allakum tattaqun” Al-Quran Surah Al-Baqarah ayat 183 쿠란 알바카라 183 문장에 언급한 금식의 의미: 이슬 람을 믿든 신도이시여 ! 금식은 당신들의 의무조 항이고 올해도 그들은 온라인 중계로 참여했다. 기도가 끝나자 피르만은 두 손을 모아 엄마에게 다가왔다. “모혼 마압 라히르 단 바띤(Mohon maaf lahir & batin) 외부 환경보 다는 인간관계와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요 즘은 그런 전통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요 즘은 똥꼬난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똥꼬난 옆에 신식 집을 지어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라자 사람들이 천국에서 왔다고 믿었던 또라자 전통 신앙 ‘알룩 또돌로Aluk Todolo’의 공동체 가 행하던 ‘람부 솔로’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 존된 가장 오래된 장례문화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례식을 위해 산다’ 할 정도 로 전통을 지키는 또라자 사람들은 람부 솔로를 위 해 오랫동안 저축을 한다. 시신을 집안에 두고 살 며 돈을 모아 성대한 장례식을 열게 되는 것이다. 망자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가려면 물소가 수레 를 끌어주어야 하므로 더 많은 물소가 희생될수록 가문의 권위와 자녀들의 효심이 크다고 생각한다. 뿔이 하늘로 곧게 잘 뻗은 물소 한 마리에서 열 마 리까지는 작은 장례식 우 리 버스 티켓을 발매한 사무실에 문의하자 우리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용서하고 껴 안을 수 있는 그런 르바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문화의 장점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장점 을 통해 새로운 창작 문화의 (Corporate Culture)융합과 화합의 하모니를 형성해 보자. 우리 올해도 못 가는 거야?” 열 살 난 아들 피르만의 눈빛에는 어른스러운 이해심과 아이 특유의 아쉬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영상통화로도 반가워하시니까. 대신 맛있는 르바란 음식은 꼭 해먹자 우리는 왜 의례를 행할까요? 설날과 추석의 차례는 인도네시아 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1997년 9월 운 좋게 참석한 이 잔치에 서 나는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정말 이들에겐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 을 웃거나 미소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웃음소리 음 식 응?” 닝시는 웃으며 말했지만 의례가 단순히 전통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하며 세대 간의 연결고리로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설날과 추석은 고국을 떠난 재외동포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확인 하는 기회이자 이 렇게 맺은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 종족이 있으며 이 모든 정보들을 취합해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합니다. 저는 4진에 환자분들의 체질을 살펴서 성향과 습성을 구분하고 이 슬람 학자와 지도자들을 움직여 얼마 후 자바 전 쟁의 선봉에 서게 합니다. 이와 같이 네덜란드가 점령하다시피한 끄라톤 궁전에서 온갖 권모술수와 비도덕적 행위들이 횡 행하고 네덜란드 민간사업자들에 대한 왕국 토지 의 대규모 임대로 인한 네덜란드의 영향력 강화 이 행되는 르바란 이슬람 최대의 명절 행사이다. 이 슬람 명절 르바란의 시작은 금식을 마친 다음 날 전체적으로 단체 예배를 동네 운동장이나 넓은 공 간 아니면 모스크를 통해 합동 예배를 이행한다. 합동예배를 마치고는 차려 놓은 이슬람 명절의 대 표적인 음식 끄뚜빳(찰밥과 비슷)과 염소사테. 양 고기국을 온 가족이 모여서 우리 한국의 설 명절 과 같이 이거 만들기 어려워요?” “처음엔 어렵지만 이거 생강 아니에요?” 닝시는 손에 든 조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달라. 이건 릉꾸아스(lengkuas)라고도 하고 이건 우리 가족의 꺼뚜빳이니까.” 피르만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냄비에서는 오뽀르 아얌(opor ayam)이 부드럽게 끓고 있었다. 닭고기에 코코넛 밀크와 향신료를 넣어 푹 고아서 만든 르바란 대표 요리다. 한편 이는 각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경우 1년에 한번 르 바란 보너스를 받는 달이기도 하다. 르바란에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고향을 찾기 위해 민족 대 이동(Mudik)을 시작하는 데 이러한 의례는 한국 문화를 인도 네시아에 알리는 역할도 합니다. 결국 의례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하며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신이 이행하기 전에 이행되었기에 당신도 강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의 길을 가노라! UIN Sunan Kalijaga 대학교수 아흐맛 자난씨 의 금식을 통한 이슬람 율법의 근본 도덕적 행동 의 장점은…? 1.열심히 자신의 역량을 넓혀 일하는 것은 하나님 곁으로 가는 믿음의 신뢰이고 2. 지식을 넓혀 나가는 기회이고 3. 하나님 Allah의 지시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길 이니라 -책임감 고취 -하나님 Allah에게 좀더 다가가는 믿음의 길 -다수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배움의 길로 인도하노라 금식을 통한 마음의 정서에 대한 선물 1) 하나님Allah대한 축복의 감사 2)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바른 행동 3) 인내심 고취 (인고의 연습) 4) 마음의 정서를 가다듬고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좀더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는 기회 5) 금식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하나 님 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더욱 숙지하게 됨 6) 마음의 안정과 평화 부드러움을 심취할 수 있 는 시간. 금식에 대한 정의가 보다 넓게 알려져 있으나 이민족이 궁에 들어와 궁안의 여인들과 함부로 잠자리를 한다는 것은 끄라톤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어야 마땅할 술탄이 아무 것도 모르는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었다면 절대 벌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왕족 이샤) 3. 자선 또는 선행 (Zakat) : 주변 불우한 이웃들 에게 베푸는 절차 4. 금식 (Puasa) : 금식(Puasa/Rahmadhan)을 통한 많은 깨달음의 경지 5. 성지순례 (Haji) : 이슬람 신도라면 의무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통한 성지 순례 이슬람 교리 공부를 통한 종교 지식과 믿음을 높이고 이슬람 최대 명절 르바란 이슬람 명절은 한달 금식월이 끝나고 이슬람교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슬람사원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는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이슬람의 의무사항 중의 하 나인 금식과 르바란 이슬람 문화 풍경에 대해 스 케치를 해 보았다. 이슬람 문화에 이해와 학습을 통해 이제는 이슬람을 단순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 고 이슬람의 의미와 금식의 중요성 그리고 르바란 안선근 박사 (UIN 국립이슬람대학교 이슬람화 또는 폭탄테러 등과 같은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이해하려면 인 도와 중국 사이의 열대우림 지역에 위치한 만큼 유목 생활을 했던 중동국가과 내륙지역인 중 앙아시아 국가 민족들의 이슬람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다른 나 라의 이슬람과 비교할 때 다원성과 혼합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인도네시아 이슬람이 주 류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이슬람 신앙을 강요하거나 타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 지 않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보면 인도네시아 군도에는 평화롭게 해상무역을 통해 오랜 기간을 거쳐 확산됐다. 인 도네시아 군도의 이슬람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부터 이슬람 상인들이 인도네시아 지역에 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본격적으로 이슬람교가 포교되기 시작한 시기는 12~13세기 아 랍과 인도 상인들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대 체로 힌두·불교적 요소와 토착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낭까바우(서부수마트라) 지역은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인도네시아 쌀과 찹쌀로 만든 송편과 탕국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이것이 익숙하 지 않은 다른 종족이나 외국인들은 자바사람들을 음흉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단어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정적 인 결과를 우려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끼라 끼라(Kira-kira 대략) 인도네시아 요리에 자주 써. 특히 삼발이 나 오뽀르 같은 음식엔 꼭 필요하지.” 피르만은 코끝을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으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사회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 에서 영향을 받아 축제처럼 진행됩니다. 동포체육대회나 골프대회를 열며 한국과 다른 방식의 의 례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조국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기회가 됩니다. 장례식 인샬라(insya Allah 인식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언뜻 보면 한의학은 계속 발전해 온 것 같지만 일부 질병의 치료 에 한해서 진전이 있었을 뿐 일부는 중국 지역으로부터 건너왔다. 이슬람이 뿌리를 내리는 방식도 독특하다. 자바의 토속신앙과 풍습을 일컫는 끄자웬(Kejawen) 과 이슬람이 혼합이 되는 방식으로 이슬람교가 안착한다. 이에 따라 일상적인 의미로는 “고맙습니다”에 더 가깝다. 또 의견이나 발 표를 마치고 맺음말로 “뜨리마 까시”라고 하면 무난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자마다대 학교(UGM)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학과가 몇 년 전 학과명을 모두 한 국언어문화학과(Prodi Bahasa dan Kebudayaan Korea)로 바꿨다. 언어와 문화의 밀접 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일자리 불안 정성 등 세부 항목에서는 자카르타와 서울이 비슷 한 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식 입학식과 졸업식은 개인의 성장을 축하하고 가족과 공동체가 그 여정을 공유합니다. 결혼식은 두 사람과 양가 가족이 하나로 엮이 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장례식은 고인의 삶을 기리고 산 자에게 위로와 삶의 연속성을 깨닫게 하는 의례입니다. 특히 토 라자족의 장례식은 시신을 오랫동안 보관하며 대규모의 공개 행사를 통해 고인을 기립니다. 이러 한 의례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의례 이러한 의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예배와 미사를 드렸습니다. 졸업식과 입학식도 줌으로 했습니다. 차례를 지내는 음식을 간소화하고 현지 재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인이 가정에서 차례를 드리지 않고 위령미사나 추도예배로 대체하 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의 의례는 전통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실용적이 고 현대적인 방식도 활용합니다. 맺는 말 디미트리스는 의례를 인간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 카르타 시민 중 76.6%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자깟 식사를 준비한 뒤 자녀들에게 정체성을 전승하는 수단입니다. 한인 공동체 차원에서 차례는 가족 단위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축제로 확장됩니다. 서로의 전 통을 공유하며 한식을 나누고 한국 문화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죠. 이를 통해 한인들은 정서적 지 지와 연대를 느끼며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합니다. 재인도네시아 한인에게 의례란 글: 조연숙 자신의 신념 등에 따라 같은 집에서 자라난 형제라도 살아온 삶의 스토리는 틀리고 자연히 다른 인격체를 형성합니다. 인생자체가 다사다난 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 가에서 버스를 탈 수도 내릴 수도 있었다. 보조원 들은 그들에게 WA를 통해 몇 분 후에 자신의 승 차지에 버스가 도착하는지 일일이 알려주는 일까 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한 시간 넘도록 그 덥고 딱딱한 의자에서 기다리는 벌을 서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 람들은 터미널 대기실에 나타나 5분 만에 버스를 타고 사라졌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세상의 끝자락 같은 또라자Toraja를 향해 달 려가고 있었다. 몇 번에 걸쳐 길가에서 승객을 태웠 고 화장실이 딸린 상점 앞에서도 몇 차례 정차를 했 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누워 졸며 눈 을 감았지만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는 대단한 학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의학이 미신이라는 프레임을 씌울만한 학문은 아니라는 애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미르한의원 원장 서상영 자카르타 닝시는 새벽부터 창가에 앉아 고향 브레베스의 날씨를 확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인 르바란(Idul Fitri)은 한 달 간의 금식(라마단)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축하하는 날로 자카르타 시내 인구 가 거의 텅 비었을 정도로 한산하고 교통도 혼잡 하지 않을 정도로 각자 고향을 찾아 떠나는 민족 대이동 현상이 수도 자카르타부터 시작된다. 개중에는 르바란 명절 휴가가 거의 1주에서 2주 에 끝나면 자카르타 인 구밀도의 증가추세를 막기 위한 주요 지역 통제를 했었던 바 있다. 르바란 명절이 끝나면 이슬람 문화의 또 하나 의 독특한 점은 축제“Halal bi Halal : 할랄 비 할랄”(1년에 있어서의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시 함께 잘 해보자) 행사이다. 그리고 각자 가 슴에 손을 얹고 다짐하면서 두손 모아 인사를 하 거나 악수를 하고 “Minal Aidizin Wal Faizin: 미날 아이딘 왈 화이진”.“Mohon Maaf Lahir & Batin”영혼과 마음을 통해 상호 용서를 구한 다”라는 의미의 이슬람 무슬림 신도들의 한해 다 시 잘 해보자는 인사말이다. 결론 이슬람의 금식과 르바란 이슬람 명절에 대해 이 번호를 통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지인이나 모르는 경우의 경우 미력이나마 도 움이 되었으면 하고 자카르타 한인성당에서는 설 미사가 열린 뒤 떡국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일부 한국식당과 한인슈퍼마켓은 고객들에게 떡국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고국에 묻힌 조상이 먼 파푸아까지 와서 차례 음식을 드셨을까요? 차례를 받은 조상은 우리를 축 복해 줄까요? 의문이 가득한 명절 의례를 재외동포들이 왜 인도네시아까지 와서도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걸까요? 한편으로 새배처럼 효과와 대상이 명확한 의례도 있습니다. 어른께 절을 올리 면 축복의 말과 새뱃돈이라는 보상을 받는 방식이죠. 그러나 차례와 같은 명절 의례는 상징성과 공동체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저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에서 자카르타에서 술라웨시의 마카사르로 향하 는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마카사르에서 약 290Km 떨어진 또라자. 인구 258 자카르타와 서 울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 자카르타인들은 사회적 조화를 중 시하며 자캇을 통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며 작게 썬 감자 잘 모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밤새 컴컴하고 덜컹이는 산길을 달려 새벽 빛이 죽음과 삶의 경계가 없는 전설의 땅 또라자Toraja 글: 조은아 편집위원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33 번져 오를 무렵 장례 식 이후 똥꼬난을 닮은 상여에 관을 싣고 바위를 뚫거나 동굴 혹은 절벽에 매달린 가족묘로 향하 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장례식 전 체적인 삶의 만족도는 자카르타 시민들이 훨씬 높 았다. 이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의 가치 중 ‘조 화(Rukun)’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국이 들썩이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무딕(Mudik)’이라 불리는 귀향 행렬이 시작되며 전국적으로 흩어져 거주하는 만큼 자바문화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바사람들의 신앙이자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끄자웬 (Kejawen)이 이들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은‘아니다’라는 의미의 띠닥(tidak) 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회피한다. 무엇인가 를 사양할 때조차 인도네시아인은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다. 따라서 자바인들과 대화할 때‘야’(ya 또는 iya)가 진정한 의미의 ‘예’인지 ‘아니오’ 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상황이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전이 차례상에 올랐습니 다. 2024년 1월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요 지를 정리하고 이슬람의 금식기간이 포함된 라마 단의 중요성과 금식 이후 르바란 인도네시아 무슬 림들의 분위기를 설명해 본다. 금식의 의미는 식. 음료 절제 외에 나 자신의 주 변에 탐욕의 유혹과 이슬람신도로서 도덕적 위반 행위에 대한 이슬람 율법이 금하는 모든 악의 근 원으로부터 멀리 한다. 즉 우리 신체의 5가지 주요 기능(Panca Indra) 중 입-언어의 조심 전통 음식을 만들고 정 월대보름에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 일도 의례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개인으로든 공동체로든 다양한 장소에서 끊임없이 의례를 행합니다. 그렇다면 정보들을 종합하여 진료를 하 고 있습니다. 생활 한의학4-(1) 한방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5 간혹 진료를 마치고 신기 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말하지 않은 내용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제4장 자바전쟁의 시작 세상의 모든 왕가들이 그렇듯 어린 술탄 뒤에서 실권을 쥐려는 왕족들과 정치가들은 섭정 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기 마련이죠. 뿐만 아니라 민 심도 흉흉해지면서 하멍꾸부워노 5세의 즉위 직 후인 1822년 왕가를 비난하는 소요가 일어나기 도 했습니다. 술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네덜 란드 관리들의 전횡도 도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궁전을 함부로 드나들던 그들이 궁전 안 여인들을 범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궁 안에서 일하는 여인 들이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한 당시의 관념으로 는 술탄의 여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몰라 도 최소한 왕실에 속한 여인들 조금. 하지만 꺼뚜빳이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지.” 가족의 꺼뚜빳 추억 주방 한쪽에서는 꺼뚜빳(ketupat)이 천천히 쪄지고 있었다. 꺼뚜빳은 야자수 잎을 엮어 네모난 주머니를 만들고 조사 대상 도시 중 가장 높 았다. 반면 조상과 후손이 함 께 숨 쉬는 성스러운 장소였고 과거와 현재를 동 시에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바라보는 것 만 으로도 그 위세가 우리를 압도했다. 또라자의 신비한 장례문화 람부 솔로Rambu Solo 또라자의 장례식은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새로 운 삶의 시작을 선물하는 의식이다. 또라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장례를 치루 지 않는다. 시체를 방부처리 한 후 깨끗한 흰 천으 로 덮어 똥꼬난 안쪽 방안에 눕혀둔다. 손님이 오 면 손님을 맞고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평소와 다 름없는 생활을 하며 몇 개월 졸업식 같은 의례는 어떤 의미인가? 인생의 전환점을 기념하는 성인식 졸업식 등 통과의례는 개인과 공동체 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미트리스는 “의례가 공동체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구조화하고 연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성인식은 아이가 성장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언하며 종교 단체 종교는 종교 주택 불안정성 주흐르 중국 중동의 상인들과 거 래하려면 이방인과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적 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태도이며 즉 이슬람 종교는 다 출산 문화와 이주민 정 책 지난 1월 11일 오전 한인니문화연구원(원장: 사 공 경)에서 제88회 열린강좌가 개최되었다. 이번 강좌는 KOSA(한인중소벤처기업협의회) 후원으로 동남아시아 연구에 깊이 있는 학문적 발 자취를 남기고 있는 최경희 박사를 모셨다. <자카르타인들의 삶은 어떠한가? 그들의 사회 인식과 가치관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최경희박사는 서울대학교 아 시아연구소 연구교수이자 한인니문화연구원 부원 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KBS1 <이슈 PICK 쌤과 함께>의 아세안 재발견 ‘인도네시아’ 편에 출 연하여 인도네시아의 비전과 숨겨진 매력을 알린 전문가이며 진료를 통해 얻어진 정보를 토대로 유추한 내용이라 다 맞을 순 없습니다. 자라온 환경 집에서 명절을 준비하는 어머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떠한 기준이나 논리 천국에 대해 소리 높여 연설 과 기도를 했고 음악 소리와 함께 멀리서 참석한 가족들이 무리지어 입장하기도 했다. 마당을 둘러싸고 손님들을 위한 방갈로가 지어져 있었다. 장례식에 온 손님들은 방갈로에 앉아 음 식을 대접받으며 함께 장례식을 즐겼다. 장례식을 위해 몇 주 혹은 몇 달에 걸쳐 손님을 잘 맞을 수 있는 장례식장을 직접 짓는다고 했다. 가족들은 새로운 손님들에게 음료와 간식을 내어 주고 있었다. 장례식을 보기 위해 모인 다른 나라 의 이방인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방갈로 앞 뒷쪽으로 몇 마리의 물소가 편안한 표정 으로 묶여있었다. 오늘 이 잔치에서는 총 열 일곱 한인뉴스 2024년 11월호 I 35 마리의 물소가 고인과 함께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고인이 떠난지 2 년만에 치러지는 장례식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마리의 물소가 희 생된 후였다. 마당 중앙이 흥건하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친적들과 마을 사람들이 선물한 돼지들이 앞 뒤로 발이 묶여 대나무에 매달려진 채 마당으 로 들어와 한 켠에 쌓아졌다. 사회자는 돼지가 들 어올 때마다 더 목청을 높였다. 고인을 모시고 천국으로 떠날 물소의 편안한 표정 과는 달리 첫 번째 10일 금식이 시작한 일의 기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성월의 초기 의식으 로 금식일 시작과 함께 충실히 이행하고 친절”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사랑(호의)을 받는다”라는 뜻이지만 친척들과의 포옹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피르만은 이미 전날부터 틱톡으로 ‘르바란 브이로그 만들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그리움은 세대를 뛰어넘었다. [단편소설] 조용한 귀향 글: 조연숙 코-좋은 냄새 를 맡고 토착 신앙과의 조화를 통해 형성된 독특 한 모습으로 톡 쏘는 냄새! 하지만 신기해요.” 닝시는 웃으며 감자를 노릇노릇하게 튀기고 통풍 파푸아의 한 회사 식당에서 차례를 지냈습니다. 두 달 전에 자카르타 한인마트에 주 문해서 받은 북어포와 정종 패션과 종교적 정체성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러한 모습은 여성의 종교적 자 유와 사회적 역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회는 이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만큼 지역에 따라 자유에 제약이 따 르기도 한다.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체 주는 공식적으로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를 적용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이슬람은 원리주의 또는 과격한 모습을 보이면서 폐결핵 같은 질병을 다스린 처방과 내용 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의원에서도 다스릴 수 있는 중증질병인 당뇨병 플 랜테이션 및 광산 개발 등 경제 활동을 통한 이윤 추구 중심의 실리주의에 집중했기 때문이라 는 이유가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단순히 개인적인 종교적 믿음으로 그치지 않고 피르만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지?” “응! 이둘 피트리(Idul Fitri). 금식 끝났다고 축제하는 날이잖아!” “그래 피르만은 하루를 영상으로 정리했다. 영상에는 엄마와 함께 쿠키를 굽는 모습 하 나님(Allah)에게 자신의 모든 행동을 통한 신뢰 와 인정(Tawakal) 즉 하루 다 섯번 예배 외에도 이프타르 하루 금식일을 깨는 행사 후 마그립 저녁 예배 후 바로 따라위 라는 예 배인 11 번 절을 하는 방식의 예배를 금식기간 한 달 동안 하게 된다. 22 I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두 번째 10일의 경우는 10일 간의 그간 하나님 에게 보인 무모한 행동이나 이슬람 율법을 위한 사례에 대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곁으로 가는 올바른 선행의 행동을 말한다. 즉 성월의 러 마단 달은 하나님의 시험 고사장이라고 흔히 이슬 람에서는 말한다. 금식 성월 한달 동안 충실하게 러마단 금식이행 외에도 낮에는 쿠란을 낭송하고 암기하며 하차지를 메모하고 하차지 순서에 맞게 짐칸 도 분류해둔다. 돌아올 때 안 사실이지만 현지인 들은 직접 전화나 WA로 버스를 예약하고 버스 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한 과정을 마치 는 졸업식을 거치며 다음 단계로 도약합니다. 교회와 성당에서는 매주 일요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문화예술지식 정보시스템 기획위원으로 동남아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팀이 2021~2022년 진행한 아 시아 대도시 가치조사를 기반으로 한때는 자카르타시 공무원들이 각 버스 버스터미널이나 주요 항구 등 한편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에서 술탄 하멍꾸 부워노 3세의 정무고문이자 권한 대리인의 역할 을 했습니다. 그런 디포네고로의 행동을 눈여겨 본 네덜란드의 족자 주지사 존 크로퍼드가 1812 년 말경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능하고 협조적이니 차기 술탄으로 적합할 것 같다는 추천의견을 바타 비아에 보냈고 며칠 후 레플스 총독대행이 직접 디포네고로에게 족자 술탄국의 태자 지위를 제안 해 왔습니다. 엄연히 왕위를 지키고 있는 부왕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태자며 차기 술탄을 거론하 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수 백 년간 자바땅을 좀먹어 들어오던 네덜란드 못지 않게 왕국을 유린하고 술탄 왕가를 그토록 가볍게 여기는 영국을 디포네고로는 괘씸하기 짝이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 도록 안으로 갈무리하며 그는 총독대행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후궁의 아들입니다. 족자 술탄국은 더 훌 륭한 태자가 필요한 나라고요.”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후궁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9 않았습니다. 그는 이민족들이 내미는 선물에는 반 드시 독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고 이 를 완곡히 거절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핑계가 필 요했던 것뿐이었죠. 영국 측은 인품도 있고 왕실 장악력이나 백성들에 대한 영향력에서 손색이 없 는 디포네고로 왕자가 자기들 편이 되어준다면 금 상첨화였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디포네고로는 깊은 이슬람 신앙 위에 함께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명절날이라 고 보면 된다.이날 명절에는 모두 새 옷을 입고 자 한인뉴스 2024년 4월호 I 23 녀들에게는 용돈을 주고 현대 에 들어서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선봉에 섰던 술탄 하멍꾸부워노 9세와 수까르노 초대 대통령 같은 이들이 라투 아딜이라 여겨졌죠. 1820년대 의 자바 백성들은 디포네고로 왕자가 라투 아딜 의 현신이라 믿었습니다. 사족이지만 훗날 인도 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맞았을 때 네덜 란드 특수부대 대위 출신인 베스털링이란 영악한 자가 라투 아딜을 자처하며 수까르노의 신생정부 를 상대로 아프라 반란(Pemberontakan APRA: Angkatan Perang Ratu Adil - 공의로운 여신 군대의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습니다. “요즘 매일 밤 술탄 아궁 대왕의 무덤에 꾼띨아 낙이 나타난다는군. 불길한 징조야.” 꾼띨아낙이란 출산과 관련해 목숨을 잃은 여인의 원귀로 대체로 우리 손말명이나 처녀귀신과 통합니 다. “걱정하지 마 현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여성들이 자발적 선 택으로 착용하며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직장 상사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로 만족하거나 수긍할 때와 어색 혈색을 관찰하고 闻-목소리와 숨소리를 관찰하고 问-증상이나 특이사항을 물어보고 切-진맥을 짚어서 혹은 몇 년에 걸쳐 장 례식 람부솔로를 준비한다.(과거에는 시신을 사 람 대하듯 음식도 제공하고 목욕도 시키고 새 옷 으로 갈아입혀 함께 외출하기도 했다고 하나 회사 흥건한 죽은 물소들의 피 냄새에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마당 중앙에 섰다. 그리고 다가 온 칼잡이가 앞춤에서 날 선 칼을 꺼내어 단숨에 물소의 목을 친다. 정말 찰라의 순간이었다. 물소는 목이 반쯤 벌어 진 채 피를 뿜으며 묶인 말뚝 주위를 한 바퀴 돌 고는 이내 푹 쓰러진다. 그리고 다음 물소가 들어 온다. 이번 물소는 얼굴과 턱 밑에 하얀 얼룩이 있 었다. 제 눈 앞에서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 을 텐데 이 물소 또한 당당히 걸어들어온다. 마치 이 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운명을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단칼에 목이 베어져 쓰러졌다. 쓰러진 물소의 벌어진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마당 정면 방갈로 위에 신발을 벗고 앉아있던 나 는 앞에 앉아 사진을 찍던 프랑스 할머니 등에 얼 굴을 묻고는 놀란 가슴을 달랬다. 도저히 앞을 볼 수가 없어 벗은 신발을 끌어안고 방갈로 뒤쪽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방금 죽은 그 소가 묶여있던 방갈로 뒤쪽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똥들 이 가득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었다. 그러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 다. 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장례식을 다 같이 즐기고 있었다. 물소를 잡아 죽이는 것이 아 니라 고인과 함께 천국으로 떠날 흰 무늬가 있는 물소는 그 흰 무늬의 범위에 따라 그 가치가 서너배씩 올라가고 하얀 몸에 파란 눈을 한 물소 는 한화로 억대가 넘는다고 했다. 피가 튈 수 있으 니 뒤로 조금씩 물러나란다. 햇빛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검은 물소 한 마 리가 한 청년의 손에 이끌려 마당 중앙으로 들어 왔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더 커져 옆 사람의 목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과는 달리 이 물소는 제법 당당하게 입장을 했다.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발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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