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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학년 선배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다는 점에서 의미 가 깊었다. 비행기가 두 시간 가까이 지연되면서 우리는 호 텔 체크인도 하지 못한 채 곧장 SKBA 배드민턴 클럽으로 향했다. 점심은 공항 근처 맥도날드에 서 급히 해결했다. 훈련장이 크다는 이야기는 들 었지만 20개가 넘는 코트가 끝없이 이어진 규모 에 모두 놀랐다. 첫날 연습은 두 시간 동안 다섯 개 조로 나뉘어 드롭샷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났습니다. 그가 술탄으로 재위한 것은 두 번의 재 위기간을 모두 합쳐 865일에 불과했으니 2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대 한 왕실 장례의식이 치러진 후 그의 유해는 이모 기리 빠지마딴(Pajimatan)에 묻혔고 그의 묘역 은 아스타나 까수와르간(Astana Kasuwargan) 이라 불렸습니다. 한 시대가 그렇게 빨리 저물고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이복동생 입누자롯 왕자 는 그때 막 10살의 나이로 하멍꾸부워노 4세가 되 어 술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성인이 될 때 까지 디포네고로 왕자가 국사를 도울 섭정이 될 것을 누구도 의심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 코 자기 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래플스 총독은 영국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 다.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던 빠꾸알람 1세 를 섭정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스뻐히 전투에서 영국이 끄라톤을 함락시킨 후 영국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자치구인 빠꾸알 라만 봉국을 할양받고 그곳의 영주가 된 빠꾸알람 1세는 말레이 반도 삐낭섬으로 유배된 하멍꾸부 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가 어린 하멍꾸부워노 4세를 대신해 족자 술탄국의 모든 국사를 영국 총 독부의 입맛에 맞게 결정할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총독부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로서는 이미 예 상했던 일이었지만요. 빠꾸알람 1세의 초상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125605764@ N04/22639770464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3 디포네고로 왕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다 누레죠 재상에게 그렇게 여러번 다짐을 받았고 그 후 정기적으로 술탄을 만나러 오는 일을 빼고는 대부분 뜨갈레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 기서 목가적인 생활을 즐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족자와 수라카르타는 물론 자바 전역의 이슬람 사 회와 인편과 서신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백성들 의 목소리와 지방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하 지 않았습니다. 뜨갈레죠에는 귀족들과 이슬람 학 자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시종들을 제외하고도 식솔들만 수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는데 그들 중 엔 학문과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었고 일단의 젊은이들은 부기스 부대 장교출신 무관들로부터 무술과 창검술을 배웠으므로 하긍 왕후의 저택은 물론 뜨갈레죠 일대가 학교나 병영처럼 기능하면 서 한껏 활기에 넘쳤습니다. “고모님 ACS Jakarta 배드민 턴부 대표팀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모였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지난해 싱가 포르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전지훈련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IB 과정의 CAS 프로젝트로 ACS 배드민턴부 G10) 지난 9월 4일 새벽 6시 Hanok Res. Noodle King 강원준 총영사 (좌)President University Jababeka 설립자 PT Fin Centerindo Dua PT INARE 대표 Harianto Solichin 사공경 시인 사공경 원장 출간기념회의 대미를 장식한 사만가요팀(Saman Gayo Team) 42 I 한인뉴스 2026년 5월호 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PT INARE 대표 Harianto Solichin이 축하의 뜻 을 전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하나로 모였다. 문학은 가장 조 용하지만 가장 깊은 방식의 외교라는 점이었다. 끝이 아닌 시작 - 하나의 테이블 Pak S.D. Darmono Saint James Tableware Yewon Res. [한인니문화연구원] 2026년 4월 6일 《Tugu그룹 헤리티지》 후원: 한인중소벤처기업협의회(KOSA) 「바타비아의 오래된 항구」 「바틱」 「수디르만 장군」 「양칠성」 『잘란 잘란 자카르타』 라 는 또 하나의 기록을 써 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시인은 “이것은 결실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라며 개인적 기억과 역사적 맥락을 풀어내어 시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사람들 공간이 응답하다 사공경 시인에게 이번 출판기념회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외사랑’이 마침내 응답을 얻는 순 간이었다. 오랜 시간 드나들던 Tugu Kunstkring Paleis는 더 이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국립박물관 궁밖에서 살면서 접하게 된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두 번씩이나 끄라톤을 유린한 이민족 의 만행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 이미 굳건한 가치관 을 가지고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 총독부는 다른 왕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술탄이 평생 열 명 가까운 왕후와 후궁을 들이는 왕가에서 왕자들은 얼마든지 넘쳐났습니다. 나중 의 일이지만 디포네고로 왕자 자신도 평생 아홉 명의 아내를 가지게 되죠. 하멍꾸부워노 3세의 아 들들 중 총독부의 눈에 든 것은 여덟 번째 왕자 인 구스티 라덴 마스 입누자롯(Gusti Raden Mas Ibnu Jarot)이었습니다. 그는 구스티 깐젱 라투 끈쪼노 (Gusti Kanjeng Ratu Kencono) 왕비에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1 게서 1804년 4월 3일 태어났고 스뻐히 전투가 있 던 1812년엔 겨우 여덞 살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입누자롯 왕자의 사이는 마치 인디아 라마야나(Ramayana) 전설에 나오는 크 레스나(Kresna)와 아르쥬나(Arjuna) 같은 관계 였다고 전해집니다. 크레스나는 힌두신 비슈누의 화신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에 서는 아르쥬나의 절친으로 등장하고 바가바드 기 타에서는 주인공 아르쥬나의 조언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비슈누신의 모습으로 화해 친족과의 전쟁 을 거부하는 아르쥬나를 다시 전쟁터에 나서도록 설득하죠. 디포네고로가 많은 이복형제들 중 스무 살 가까이 차이지는 입누자롯 왕자를 각별하게 여 긴 것은 그의 온순한 성품이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를 너무나 쏙 빼어닮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랬기에 영국 총독부 역시 입누자롯 왕자에게 눈도 장을 찍어 두었던 것이고요. 재상 신두네고로는 날로 악화되던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자신이 스뻐히 전 투 당시 입은 부상이 도져 1813년 어느 날 그 리고 두 문화를 연결하려는 사유가 응축된 하나 의 장면이었다. 시인이 돌아온 자리 그 순간 이 바로 ‘불멸’이라는 이름으로 남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꿈을 위해 기꺼이 공간을 내어준 Tugu Kunstkring Paleis 그것이 바로 『불멸의 테 이블』이 말하는 ‘불멸’의 의미였다. 이어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축 사가 이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강원준 총영 사 그리고 Menara Syariah 그리고 그 무대를 빛낸 시인 사공경. 두 거장이 만들어낸 만남에 큰 응원의 박 수를 보낸다. 공동주최: 《한인니문화연구원》 그리고 마지막 「자카르타 연가」까지 이어진 낭송은 하나의 문화적 체험으 로 확장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다양한 인물들에 의해 각기 다른 목소리로 낭송되었다는 점이다. 해양박물관 관장이 순다 끌라빠를 노래하고 그리고 시 행사의 시작은 앙끌룽 연주였다. 서로 다른 음 이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이 악기는 이번 행 사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어진 한국 전통무용 ‘정중동’은 고요 속 움직임이라는 미 학으로 또 하나의 문화적 언어를 펼쳤다. 마지막을 장식한 사만(Saman)은 몸과 리듬만으 로 공동체의 호흡을 완성한 춤이었다. 그 장면은 『불멸의 테이블』이 펼쳐놓은 풍경과 닮아 있었 다. 서로 다른 삶과 시간이 하나의 리듬으로 맞닿 는 순간 그리고 시간의 밀도 이날 행사에는 정부 그리고 팀원들과 함께 흘린 땀과 추억은 내 가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2박 3일은 혹독한 훈련과 설레는 자유 시 간 그리고 함께한 친구 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말레이시아 코트에 서 흘린 ACS Jakarta 라켓소녀단의 피·땀·눈 물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 한 자리에 앉아 같 (좌)보건복지부 차관 Ibu. Veronika Tan (우) Menara Syariah 꼬따 뚜아 네트 플레이 다 가올 자카르타 500년에 바치는 하나의 헌시로 단 순한 스포츠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배드민턴은 두려움 많은 나를 극복하고 성장하게 해 준 운동 이다.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의 어깨가 매우 무겁다 는 걸 명심하시오. 내가 끄라톤을 멀리 떠나 있진 않겠지만 이젠 당신이 술탄 전하와 섭정전하를 가 장 가까이에서 잘 보필해야 하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재상 다누레죠 4세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버지 술 탄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장례식을 위해 빠꾸알라만 봉국에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채 곧바로 술탄의 섭정이 된 빠꾸알람 1세의 견제를 벌써부터 받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 세와 함께 당시 어린 무스타하르 왕자를 흐뭇한 눈 으로 지켜보던 노토꾸수모 왕자는 여전히 혈색좋 은 얼굴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었지만 왕실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던 디포네고로 왕자를 더 이상 흐뭇하게만 여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토꾸수모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멍 꾸부워노 4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끄라톤에 공의 사람들을 심어 족자 술탄국이 우리 총독부에 더 욱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오. 그것이 우리와 보조 를 맞추고 있는 빠꾸알라만 봉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아니오?” 래플스 총독은 서신을 통해 빠꾸알람 1세에게 그 렇게 속삭였죠. 그러기 위해선 왕가와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던 디포네고로 왕자의 힘을 줄 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빠꾸알람 1세 가 섭정이 된 후 끄라톤 궁에서 디포네고로의 행 동은 크게 제한되기 시작했고 많은 회의와 행사들 이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열렸습니다. 디포네 고로 왕자가 하멍꾸부워노 4세를 만나는 것은 다 행히 여전히 자유로왔지만 그것은 어린 술탄이 전 혀 실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난 수마디뿌라공만 믿겠소.” 디포네고로 왕자도 또 다른 여정을 향하여 행사의 마지막 뚜구 그룹 헤리티지 리프트 같은 기본기를 익히 는 것으로 시작됐다. 곧이어 풋워크 훈련에 돌입 했는데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왕 궁의 충신들이 하나 둘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습 니다. 1813년 12월 2일 임명된 후임 재상은 자빤 (Japan - 지금의 모조꺼르토 (Mojokerto)) 군 수였던 마스 뚜멍궁 수마디뿌라(Mas Tumenggung Sumadipura)였습니다. 그는 아직 30대 초 반의 젊은 영주였어요. 대개는 전임 재상의 자식 이나 피붙이 중 한 명을 선택해 다음 재상을 대 물림시켰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당시 모조꺼르 토를 동부자바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드 는 수완을 발휘한 수마디뿌라를 족자 술탄국 내 정을 관장할 재상으로 직접 발탁한 것입니다. 그 에게는 ‘다누레죠 4세 재상’이라는 칭호가 붙 었습니다. 그러나 일천한 가문과 배경을 가진 그를 왕도의 고위 귀족들이 순순히 재상으로 떠받들었을 리 없 습니다. 기득권 귀족들의 시기를 한몸에 받은 재 상은 한껏 풀이 죽어 처음엔 크고 작은 실수를 저 지르며 대전에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므 로 디포네고로 왕자가 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다누레죠 4세 재 상도 끄라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37 년간이나 머물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에측하지 못 했습니다. 그가 디포네고로 왕자와 평생의 원수가 되리란 사실도 말입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은 날로 더욱 악화되 어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대 술탄들이 가졌던 인도네시아 전통 와양 인형극에 등장하는 아 르쥬나(좌)와 크레스나(우) 출처- https://wayang.wordpress. com/2010/03/07/jatidiri-dan-sikaphidup-kresna-27-kedudukan-dan-sikapkresna-dalam-masyarakat/ 2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용기와 배포를 전혀 닮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자식들 대부분이 자신의 유약함을 그 대로 빼어박은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 매일 문 안오는 디포네고로를 만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굳은 심지 를 가진 큰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들아 문 학을 통한 문화외교의 장으로 펼쳐졌다. 이번 행 사는 단순한 신간 소개를 넘어 문학은 마음과 감정으로 다가갑니다.” 이날의 출판기념회는 공식 외교의 형식을 넘어 깊은 교감을 만들어낸 자리였다. 서로 다른 언어 와 문화 문화·예술계 인사들 이 참석했다. 한복을 입은 한인니문화연구원 팀리 더들과 바틱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 풍경은 두 문화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모든 관계가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라는 점이 다. 35년의 시간 속에서 쌓여온 인연이 이날 하나 의 장면으로 드러났다. 이날의 만남은 ‘함께 걸 어온 시간’이었다. 문학이 잇는 마음의 외교 사공경 시인은 환영사에서 이렇게 말했다.“외 교는 제도와 언어로 이루어지지만 불빛으로 가득한 야경은 고흐 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게 했다. 인근 KLCC 쇼핑몰에서 하이난 치킨 라이스를 먹 고 기노쿠니아 서점과 윌슨 매장에서 시간을 보냈 다. 친구들과 피클볼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밤이 s 한 인 뉴 스 학 생 기 자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63 깊었고 새로운 여정을 이어갈 뜻을 전했다. 우리는 왜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가. 그 답 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하 나의 이야기로 마주 앉을 수 있다는 것 새벽까지 이어진 수다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부모님과 선배들 선물 또한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작은 요소 하나까지도 문 화와 감각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시’였다. 문화가 만나는 방식 - 음악 선생님들 세월과 기억의 흔적 위 에서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를 마주하게 한다. 행사에서 준비된 다과와 장식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쉽게 잠들 지 못했다. 새벽까지 보드게임과 술래잡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훈련은 기본기와 체력 강화에 집중됐다. 장애물을 넘으며 하체 지구력을 키우고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 공간은 『불멸의 테이블』이 태어난 장소적 원 형이기도 하다. 『불멸의 테이블』은 단순한 시집 이 아니다. 순다 끌라빠 시인은 새로운 계획을 밝혔다. 이 도시를 다시 걸으며 시인의 기억과 내면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었다. 식민지 시절의 흔적과 예술 시인이 35년간 인 도네시아에서 살아오며 쌓아온 시간과 애정 아령을 머리 위로 들고 점프하며 반응 속도를 높였다. 배 틀 로프로 전완근을 단련하고 러시안 트위스트로 코어 근육까지 강화했다. 세 시간이 지나자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아무리 그들이 원한다 해서 디포네고로가 술탄이 되는 것을 영국이 승인할 리 없다는 사실 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포 네고로 왕자가 어떤 식으로든 왕국의 미래를 일정 부분 좌우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 멍꾸부워노 3세는 마주 잡은 아들의 손을 꼭 쥐며 엷은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는 두 번째 즉위 후 불과 2년 만 인 1814년 11월 3일 아버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왕국 의 술탄이 아니라 이민족들을 모두 몰아낸 자바땅 전체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 말은 또 다시 족자 술탄국의 왕좌를 거절한다 는 의미였죠. 하지만 그의 말속에 담긴 원대한 포 부에 하멍꾸부워노 3세는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 꼈습니다. 사실 하멍꾸부워노 3세도 아직도 술탄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느냐?” 디포네고로 왕자는 부왕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 었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뜨갈레죠를 방문한 라덴 아유 무르실라(Raden Ayu Mursilla)는 돌아가신 술탄 하멍꾸부워노 3 세의 여동생으로 이모기리의 묘소를 돌아보고 수 라까르타 가까이의 빠장(Pajang) 집으로 돌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 살 남짓한 아들과 동행하고 있었어요. 작은 몸집에 초롱초롱한 눈 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무슬림 모하마드 칼리파 (Muslim Mochammad Khalifah)라고 했습니다. “좋은 이름을 가졌구나.” 선지자의 이름을 딴 아이의 이름은 이미 그가 아 주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에 푹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슬림이란 알라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하마드는 선지자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수마디뿌라공(公) 오랑 꼬레아 장윤원 등 자카르타의 공간과 사람들을 하나의 ‘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외교 우리가 결국 한 식탁에 함께 앉아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였다. 한인뉴스 2026년 5월호 I 41 시가 열어놓은 식탁 - 낭송과 해설의 깊이 이날 행사의 중심은 단연 시 낭송이었다.시집 의 제목이기도 한 「불멸의 테이블」을 시작으로 이슬람대학교 교 수 이어진 말레이시아 학생 선수들 과의 스파링에 다시 긴장했다. 내 또래인 상대 선수들의 기량은 한 수 위였다. 복식과 단식을 번갈아 치르며 매 경기마다 한계를 시험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서로 손을 맞잡고 “다음 국제대회에서 또 만나자” 약속했다. 이 런 게 스포츠맨십일까? 지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태도. 마지막 날은 말레이시아 최상위권 학생 선수들 과 맞붙었다. 작년 싱가포르 전지훈련에서 중학 교 2학년이던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선수에게 완 패했던 기억이 떠올라 긴장이 컸다. 그러나 이번 에는 지는 게 두렵지 않았다. 내 한계를 시험하 는 기회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승리 는 놓쳤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몸소 배웠고 자카르타 멘뗑에 위치한 Tugu Kunstkring Paleis에서 시인 사공경의 시집 『불 멸의 테이블』 인도네시아어판 출판기념회가 성 대하게 개최되었다. 한인니문화연구원과 Tugu Group Heritage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자카르타 주정부 문화청 부청장(Disbud DKI Jakarta) Ibu Retno 집중력이 뛰어난 상대 선수들의 태 도에 감탄하며 나 역시 조금 성장했음을 느꼈다. 누군가 내게 배드민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카페 바타비 아 코트 중앙에서 빠르게 발을 움직이다가 코치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서브라인까지 전 력 질주해야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때마다 코치 님은 곧바로 지시를 내리셨다.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지만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리고 다시 힘을 냈다. 힘든 와중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훈련을 마치고 들어선 호텔 방은 넓었지만 가구 가 적어 썰렁했다. 창 옆 고속도로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음 때문에 잠들기 쉽지 않았지만 쿠알라룸푸르 2박 3일 전지훈련 말레이시아 코트 누빈 ACS 라켓소녀단의 피·땀·눈물의 기록 학생기자 | 남윤주 (ACS Jakarta 한-인니산림협력센터 한국어 교수와 문화 인사들이 시를 나누는 장 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적 풍경이었다. 시인은 작품마다 직접 해설을 덧붙이며 한편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에서 술탄 하멍꾸 부워노 3세의 정무고문이자 권한 대리인의 역할 을 했습니다. 그런 디포네고로의 행동을 눈여겨 본 네덜란드의 족자 주지사 존 크로퍼드가 1812 년 말경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능하고 협조적이니 차기 술탄으로 적합할 것 같다는 추천의견을 바타 비아에 보냈고 며칠 후 레플스 총독대행이 직접 디포네고로에게 족자 술탄국의 태자 지위를 제안 해 왔습니다. 엄연히 왕위를 지키고 있는 부왕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태자며 차기 술탄을 거론하 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수 백 년간 자바땅을 좀먹어 들어오던 네덜란드 못지 않게 왕국을 유린하고 술탄 왕가를 그토록 가볍게 여기는 영국을 디포네고로는 괘씸하기 짝이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 도록 안으로 갈무리하며 그는 총독대행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후궁의 아들입니다. 족자 술탄국은 더 훌 륭한 태자가 필요한 나라고요.”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후궁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9 않았습니다. 그는 이민족들이 내미는 선물에는 반 드시 독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고 이 를 완곡히 거절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핑계가 필 요했던 것뿐이었죠. 영국 측은 인품도 있고 왕실 장악력이나 백성들에 대한 영향력에서 손색이 없 는 디포네고로 왕자가 자기들 편이 되어준다면 금 상첨화였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디포네고로는 깊은 이슬람 신앙 위에 훈련장 이 차로 3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저녁에는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 윈타워를 찾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은 목이 아플 만큼 높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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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란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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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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