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0 무관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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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면 모든 범죄자들을 처단해 피바다를 만들며 범죄자들의 시체를 마닐라 만에 쳐 넣겠다고 공언해 왔던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지난 6월 30일 필리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지방검사 출신으로 1988년이래 필리핀 제 2의 도시 다바오 시장을 역임하며 막말과 기행으로 인기를 모아온 정치인이다. 취임 후 6개월 내 범죄근절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두테르테 대통령이 최근 경찰관과 군인이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다 형사책임을 지면 사면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마약사범에 관한 한 무관용주의를 보이고 있다.
2015년 3월 17명의 무장그룹이 중부자와 소재 쯔봉안(Cebongan) 교도소에 들이닥쳐 바로 전날 족자카르타 경찰서에서 이감되어 온 네 명의 피의자를 현장에서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불과 15분 사이에 벌어진 보복성 즉결처형 사건이었다. 바로 이 네 명의 희생자들은 슬레만(Sleman) 시내 한 카페에서 근무 중이던 전직 육군특전사 요원과의 시비 끝에 까진 병으로 그를 살해한 용의자들로서 4일전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 중이었다.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무관용주의’의 한 단면이었다.
이보다 훨씬 앞서 인도네시아는 국가의 공권력을 제쳐놓고 조직적으로 초법적인 행동을 자행한 전례를 남겨 지금까지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사례가 있다. 군부철권정치가 극에 달해 있던 1982년 초 자카르타를 비롯한 자와 지역 몇몇 대 도시에서 벌어진‘우범자 즉결처형’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비밀작전은 당시 무소불위의 법치기관 치안질서회복사령부(Kopkamtib)를 이끌던 수도모 제독 재임말기부터 준비작업이 시작되어 그 후임이 된 베니 무르다니 장군 재임기간 중에 집중적으로 집행되었다. 1983년 5월 3일 남부자카르타 우범지역인 블록 M 상업지역에서 발견 된 두 사람의 시신을 신호탄으로‘미스테리 저격 사건’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며, 관련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으며 정조준 된 듯한 두세 발의 총상흔적이 남아 있는게 공통점이었다. 똑같은 사건들이 이젠 수라바야, 스마랑, 족자카르타 등 대도시로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3주가 지난 5월 21일 베니 사령관은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하였다.
작금의‘미스테리 저격사건’은 우범조직간의 이권다툼에서 나온 보복사건일 뿐, 정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를 믿을 국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공식발표만 따르더라도 1983년 한 해 동안 532명, 1984년 107명, 그리고 1985년에는 74명으로 집계되고 있었다. 피살 된 희생자들은 강, 바다, 산중에 유기되어, 발견되지 않은 시체만 따져도 공식집계 수사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하였다. 그런데 이즈음 시 사주간지 템포(Tempo)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이‘초법적인 조치’를 지지한다는 반응이었다. 범법자들을 아무리 재판에 넘겨봐야 금방 감옥에서 풀려 나와 재범을 일삼을 바에야 차라리 없애 버리는 편이 낫다는 여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내 동향과는 달리 국제여론은 이를 방관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국제인권 단체인‘Amnesty International’이 앞장서서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서한을 보내 이에 대한 해 명을 요구하였다. 이즈음 네덜란드 외무부장관 한 스 반 덴 브루크(Hans Van Den Broek)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면서 파트너인 목따르(Mochtar Kusmaatmadja) 외무부장관에게 강한 어조로 항의하였다. 그에 의하면 현재까지 전국적으로3천여 명이 처형되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목따르 장관을 압박하였다.
이후 국제적으로 문제가 확대될 기미가 보이자이 사건은 서둘러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평민으로 돌아간 수하르또 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당시 사건에 대해 정부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시인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그 당시엔 범죄행동이 잔인 하고 확산되는 추세라 할 수 없이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국민들도 대 찬성이었고……”
선거공약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사망자를 불러온 필리핀 마약범죄 소탕작전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랬듯이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다. 글로벌화가 되어 국가간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작금의 지구촌은 서로 허물없이 교류하는 세상이 되어버린지 오래 되었다. 인권선진국을 표방하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담 개막 전에 미국-필리핀 양국정상회담 석상에서 논의될 의제 중에 마약범 소탕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들어있다는 암시를 받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막말을 섞어가며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오바마 대통령은 참모진들의 의견을 구한 후, 하루 전에 이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하는 외교적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두테르테는 필리핀 인권문제를 자주 거론하였던 반기문 유엔사 무총장이 주관한 아세안-유엔정상회담마저 보이콧 하였다.
이와 같이 비엔티안에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던 두테르테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차 곧장 자카르타에 들어왔다. 인도네시아를 지리적, 역사적인 관점에서 형제국이라 칭하며 술루해 석탄운반선 선원납치사건, 필리핀 쿼타를 이용한 인도네시아 무슬림 메카성지순례, 남중국해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준수 등 현안 들을 풀어나가는데 유연성과 기민성을 보여 주었다. 형제국이라 표현한 것은 아마 1963년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흩어져 있는 멀라유 족(Melayu)을 비정치적으로 통합해 보자는 구상 이 필리핀 마카파갈 대통령에 의해 제창되었던 당시를 연관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소위‘마필린도 (Maphilindo)’라고 지칭되었던 당시의 구상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간의 대결정책으로 빗나가면서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 구상이 확대 되어 아세안(ASEAN)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그 형제간의 우의가 큰일을 해냈다 고 자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의‘즉결처형’도 30년 전에 이를 선행(先行)한적이 있는 형제국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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