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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가 언어와 세대를 아우르 는 진정한 화합의 장이자 '한인니문 화연구원 2025 문학상 시상식 및 축하공연'이 지 난 11월 29일 오후 2시 <노을> <레스토랑의 꽃> <스포츠 하는 여자> 등 인도네시아 영화를 제작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akarta korean children’s choir : 이하 JKCC)>을 아시나요? 2005년 3월에 창단된 JKCC는 올해로 17번째 기수를 맞이한 <제2회 나의 한국 이야기> 등 각 부문 수상작을 축하하는 이날 자리는 재외동포 청 <제4 회 생태 이야기> <파란나라>같은 귀한 동요들을 여전히 아이들에 게 불러 줄 수 있습니다. 외국에 살며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동요를 따라 부른다는 것 1952년 2월 9일 자카르타에서 사망해 뻐땀부 란 공동묘지에 묻혔다. 김만수 2학년) 학생과 한국 초등부 임솔리(MISJ G4) 학 생이 각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 중간에 는 이은주 K-pop 아카데미의 커버댄스와 지테라 예술단의‘Tari Piring(접시춤)’공연이 축제의 흥을 돋웠다. 2부: 한국을 사랑하는 인도네시아의 목소리 2부는 최경희 부원장(고려대학교 아세안센터 부 소장)과 에바 라티파(Eva Latifah) UI대 한국학 과 교수의 공동 사회로 500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운다. 1961년 8월 9일 유형배는 자카르타 특별법원에 서 정식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북한 출 신인 유형배는 수카르노 정권의 2인자였던 수반드 리고 외무상의 평양 방문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는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을 자주 왕래 하며 사업을 키운다. 유형배는 1967년 이슬람 신 자가 되고 6)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인 조직 600명에 달 했다. 그들은 일본군과 분리해서 귀국할 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인 공동체를 만들었 다. 한국은 광복 후 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과 달 리 귀국선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BODIMAX Jakarta)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대상 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상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45 대가 되어드리는 건 덤이었다. 아버지 말씀에 따 르면 경로당이 생기고 난 뒤 KF KOSA Kec. Cibodas Kota Tangerang Lippo / 08128388774 Panunggangan Bar. Ruko Palais Tugu Group YANG CHIL-SUNG “500주년을 앞 두고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자카르타의 문화적 다양성과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뜻깊은 자 리”라고 의의를 강조했다. 김종헌 한인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경국 자문 위원은 대독한 축사를 통해 "AI 시대일수록 인간 고유의 공감과 사유를 가능케 하는 문학의 힘이 중요하다"며 “별 갈룽궁 산속 게릴라본부 등에서 벌어 진 전투에서 활약했다. 반둥과 족자카르타를 잇 는 철도와 도로를 공격하고 감독했다. 이 중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인 도네시아 영화 최초로 키스신을 선보여서 사회 전 반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야기했다. 허영은 일제 말기 조선에서 총독부의 국책 영화 <너와 나>(1941)를 찍으면서 맹렬한 친일영화인 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 건너가서는 일본군 휘하의 포로수 용소에서 살아가는 호주군 포로들이 호화로운 하 루 일과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주는 <콜링 오스트 레일리아!>라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 사진 허영 [출처: Id Film Center]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61 제로 호주군 포로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고 교류의 역사가 되다 한인니문화연구원은 2010년 <인도네시아 이야 기> 문학상을 제정한 이래 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남쪽과 북쪽 지역이다. 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한 자카 르타 경로당은 개소한 지 올해로 2년째를 맞이했 다. 한인회와 대사관 국경을 넘은 우정을 확인 하는 <나의 한국 이야기> 시상식이 진행됐다. 영 예의 대상 대사상은 세니 수잔나 알와실라(Senny Suzanna Alwasilah 국재만 등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부자바 가룻 지역에서 활동한 민병대 빵에란 빠빡(Pangeran Papak) 부대에 자원한다. 이들이 민병대에 가입 한 시점은 194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빵에란 빠빡 부대’에는 조선인 4~5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칠성 귀환 준비 등 생존을 위 한 활동과 함께 태극기 게양 그날은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잔단 말이지.” 어르신들의 얘기를 한 달 남짓 듣다 보니 깨달았 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세상에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는 걸. 그리고 가슴 아래서 뭉클뭉클 올라오는 이 느낌. 머릿속 에 “무엇이든 보탬이 되고 싶다.”는 울림이 멈 추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목록을 적고 실천해 나갔다. 첫째.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불편 한 곳이 있는 어르신들은 그때그때 바로 통보하도 록 안내하기. 둘째.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동네의원들과 한의원 그는 그의 아내를 내세워 현 지 파트너가 된다. 1962년 아시안게임이 자카르타에서 열리자 그들을 네덜란드 의 은인」이라 불렀다. 종전 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네덜란드인 칸나백(Kannabeg) 백작은 김만수의 이런 활동을 증언했고 김 만수는 항상 자결용 권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네 덜란드인들은 김만수와 그의 동료들의 인도주의 적 배려 덕분에 생명을 건졌고 김경국 한인회 자문위원 등이 시 상자로 나서 수상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행사의 대미는 지테라 예술단의 웅장한 역사 무 용극‘Sendra Tari Kerajaan Sriwijaya(스리위 자야 왕국)’와 두타 사만(Duta Saman) 팀의 역 동적인 사만 댄스가 현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 어올렸다. 마지막으로‘Tanah Airku(나의 조국)’ 앙끌룽 연주가 흐르 는 가운데 김만수는 교민 대표로 참석해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는 한 인사회 형성기에 인도네시아를 드나드는 많은 한 국 사업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한인사회의 맏형’역을 자처했다. 그는 1975년 자카르타에 서 사망한다. 유형배 꽤 오랜 역사를 자랑 하는 자카르 타의 유일무이한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코로나19 로 약 3~4년간 활동이 중단 되었다가 작년 2024 년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 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부 터 6학년 사이의 어린이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함 내가 바라는 세상을 노래해요!!! 권영경 (Jakarta korean children’s choir 17기 단원 학부모) 어른들이 거짓말 안 하는 세상 끌라빠가딩 등지에서 온 어르신들로 자 카르타 경로당의 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주차장이 또 만석이네.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온 손주들이 아래층에서 간식을 먹느라 좀 소란 스럽지?” 시끌벅적한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어리숙한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쿵짝 쿵짜라 짜라자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시에 어르신들이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 어깨춤을 들썩이신다. 흥에 겨워 분위 기는 정오의 적도 땡볕처럼 뜨겁게 달궈진다. 냉방 을 최대치로 돌리는 에어컨이 무색할 정도로 강당 은 후끈후끈하다. 경로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무릎 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쑤신다던 어르신들이 노래 를 부르며 땀이 흠뻑 젖도록 춤을 추신다.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자리에 앉는 분들이 하나둘 생긴다. 앉아서도 박수만은 끊이지 않는다. ‘저렇게 재미있으실까? 인생의 황금기라는 이십 대인 나는......’ 때로는 내가 어르신들보다 더 나이 든 기분이 든 다. 보통 1주일에 네다섯 번은 공연이나 강연 나이 먹으니 용기가 더 안 나더라고. 보다 못한 아들에게 끌려오다시피 해 서 처음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지. 그 후 나의 인도네 시아 생활은 180도 달라졌어. 잃었던 웃음도 찾았 고 건강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졌지.” 여기까지 말한 사탕 할머니는 마음 편한 미소 를 지었다.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천국이 따로 없어. 어찌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매일매일 감사 기도하는 버릇 도 생겼어. 그런데 한가지 내 얘기 듣고 있지?” “그럼요!” 내가 맡은 업무는 자카르타 경로당에 들어오는 후원 물품 관리와 매번 열리는 행사 일정을 관리 하는 일이었다. 경로당에 오는 어르신들의 말 상 소설 자카르타 경로당 Balai Manula Jakarta 서상영 (미르한의원 원장 내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명랑해 보이지만 뒤로는 어두운 그림 자가 있는 나는 내가 바라는 세상!! >> 이토록 아름다운 글은 시가 아니라 윤일상 작사 네가 꿈꾸던 세상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하던 파라다이스 싸우지 않는 세상 네덜란드 정부는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김만수는 1947년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인도 네시아로 돌아가서 1955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과 재혼한다. 1973년 한국 기업인 미원 인도 네시아가 진출하자 네덜란드의 은인 김만수는 서부자바주 반둥 근교 수까미스낀 (Sukamiskin)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 으로 일했다. 그와 동료인 조남훈 등은 네덜란드 포로들에게 지정된 음식 외에 물품을 공급해 주 고 비밀리에 바깥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행 위가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누들 킹 다량의 무기를 탈취 했다. 네덜란드 군의 포위를 저지하기 위해 찌마 눅(Cimanuk) 다리를 파괴했을 정도로 폭파 전문 가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군은 1948년 11월 기습 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양칠성과 아오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버릇 이 생겼다. “딸애가 인도네시아 거주하는 사위를 만나 결혼 한 지 5년 만에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어. 손주가 너무 보고 싶어 왔다가 다시 태 어난 기분이야. 나 다시 한번 도전해 볼래.” “그래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5년 11월에 32 I 한인뉴스 2025년 12월호 고향 이태복 내 고향은 아름답고 슬펐어요 우리 집은 새마을운동으로 초가 머리를 깎고 슬레이트 모자를 썼지만 겨울의 정오 라디오에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단음을 뜯는 기타 멜로디는 내 마음을 뜯어 슬펐지요 내 고향은 볏짚마저 귀해 마구간으로 간 황량한 들판 같은 마음에 여백이 많아 쓸쓸했지만 넓은 밤하늘의 별처럼 꿈이 채운 여백은 넉넉했습니다 자바의 악기 가물란이 있고 가진 게 없어도 부족한 게 없는 자바에서 그리운 게 있습니다 바로 내 고향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 각 댄스와 노래 교실 등이다. 여러 한인 단체들과 기업 독립 후에는 우스마르 이스마일 영화감독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큰 족 적을 남긴다. 반둥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던 김만 수ㆍ조남훈 등은 일제에 대한 간접 저항의 하나로 포로들의 외부연락을 담당하였으며 동살풀이)과 앙끌룽 연주(인도네시아라야 땅그랑 뚜벅뚜벅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 는 나는 말도 안 통해. 친구도 없어. 낯 선 곳에서 적응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설상가상 며느리와 마찰이 나날이 심해져 고성이 오가서 손주들 보기 창피해. 그 스트 레스로 우울증도 앓았고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도 앓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창문을 뛰어 내리 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 그러다 자카르타 경로당 얘기를 들었는데 맞벌이 부부라 내가 손주 를 돌봐 주면 어떻겠냐고 며느리와의 관계가 아 직도 서먹서먹해. 오늘도 나오는데 자가용 쓰는 문 제로 티격태격하고 나왔더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아 서 집에 들어가기 좀 그래. 그래서 물어본 거야. 혹 시 오늘 하룻밤 여기서 자고 가면 어떨까 싶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사탕 할머니에게 차분 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할머니 명부 작성 모든 수상 자와 시상자가 무대 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며 한-인니 문화교 류의 날은 깊은 여운 을 남긴 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한 미프타후스 사다(Jihan Miftahus Sa'adah 무궁화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축제 문학을 매개로 한 양 국 교류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왔다. 2021년 팬데 믹 위기 속에서도 생태적 가치를 조명하는 <인도 네시아 생태 이야기>를 신설한 데 이어 문학이 전하는 공감의 힘 52 I 한인뉴스 2025년 12월호 주요 내빈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이장근 주 ASEAN대한민국대표부 대사는“올해 출품작들 은 문학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을 움직 이며 민회) 는 1945년 9월 1일 설립돼 구성원들이 모두 귀 국선을 타게 되면서 1946년 4월 13일 해산한다. 자카르타 꼬따(Kota) 지역에 본부를 두고 빠사르 스넨(Pasar Senen) 주택가에 주택을 수십 채 임 차하여 극장 박수덕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대 리를 대신해 이성호 영사가 시상하였다. K-Art Studio 배애리 무용단의‘등불아리랑’과 The Bamboo’s Melody의 앙끌룽·아룸바 협주가 어우러진 2부 무대는 수상자와 참석자들이 함께 밖이든 안이든 돌아다니고 싶다고. 지 금 제2의 인생을 사는 느낌이랄까. 허허허.” 부유하기로 소문난 이 씨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 며 말씀하셨다. “누가 건강이 소중한 걸 모르나. 술 담배가 해로 운 것도 알지만 마음이 괴로우니 또 찾게 되는 거 지. 몇 년 전 그 많던 돈과 친구들. 다 부질없더라고. 내가 잘 나갈 때 귀찮도록 찾아오던 사람들이 사업 이 기울었다는 얘기를 듣더니 발걸음이 뚝 떨어지 는 건 한순간이더군. 우리 회사가 인도네시아에 건 설한 건축물과 교량만 해도 몇 개인데...... 정부가 결정하는 일을 난들 어떡하란 말이야! 이런저런 방 법 써봤지만 돈만 날리고 시간만 허비하니 속이 안 썩을 수가 있나. 화병에 걸려서 수면제를 안 먹으면 잠도 못 잘 지경인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 졌어. 노래 교실 댄스 교실에서 한껏 흔들고 나면 반둥 파순단 대학) 씨가 차 지했으며 반둥조선인 회 반짝이 모자를 쓰신 일명 김 박사 라는 분이 진행을 맡았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경 쾌한 율동에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호응은 트 로트 콘서트 현장 못지않다. 그 덕에 오늘도 찌까 랑 발레인더 부대장 친척 주아나(Juana)를 생포한다. 이 듬해 8월 10일(5월 말 설도 있다) 양칠성은 일본 인 동료 두 명과 함께 가룻 시내 공동묘지에서 공 개 총살된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린체 (Lience Wenas)를 만나서 에디 자완(Eddy Jawan)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1975년 다후란 등 ‘빵에란 빠빡 부대’ 동료 였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 청원하면서 양칠성과 아오키 부모와의 협연 뿌리의 힘을 믿어보세요. 양이 몽이 안은 전무연 실장님>> 2023년 6월호 31 [반려동물 랜선집사] 에도 소개된 전 실장님과 양이와 몽이는 여전히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어요. * 스칼렛(Scarlett) 미용실: 15138 Banten 사람 많이 모여도 안전한 세상 사람을 잇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 하며 서너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자카르타 경로당은 단순한 모임의 장소가 아닌 ‘사랑과 소 망과 희망’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신기한 것 은 또 있었다. 어르신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서로 다 른 목소리를 요리조리 화음 맞춰 하나로 만들어 내 보는 것 그리고 그 연습의 시간들을 크고 작은 무대에서 멋지게 선보이는 것!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아름다운 가사를 예쁜 음에 태워 한없이 맑은 표 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미소를 기억합니 다. 그리고 그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순 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살면서 일어나 는 좋고 나쁜 수많은 일들이 사실은 이해 못할 것 도 서부자바주 가룻 독립영웅묘지에 안장된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우쓰미 아이코(內海愛 子)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부부가 선뜻 나가기가 망설여지더군. 몇 번 아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선생님 두 분 의 노력으로 지난 6월 7일 자카르타 늘푸른교회 에서 2025년 JKCC정기 연주회를 멋지게 마무리 했습니다. 합창 뿐 아니라 랩과 춤 성인들이 주관하는 건강 강좌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드는 힘이 있음을 다 시금 일깨워주었다”며 손주들 돌보는 게 너무 버거 워. 그나마 돌아오면 다행인데......” 이번에는 할아버지들 곁에서 핸드폰 하는 척하며 자리를 잡았다. “지금 이 정도로 걸어 다니는 것도 기적이지. 중 풍이 올지 꿈에도 몰랐으니 정말 많이 후회했어. 마누라가 그렇게 술 담배 적당히 해라고 했는데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고. 그동안 건강에 소홀한 것부터 해서. 한국에 가서 치료받아야 빨리 나으려나? 여기도 한국 병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는 한 친구 가 찾아와 나에게 이렇게 묻더군. 만약 나에게 방안 한가득 쌓인 금덩이와 걸을 수 있는 신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걷고 싶다고 했지. 내 발로 가고 싶 은 곳 가고 수르요 수만또(Surjosumanto) 등에게 영화와 연극에 대 해 가르쳤다. 1947년 12월 2일 딴중쁘리옥 항구 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휴전 협정 조인 식의 기록사진을 찍은 사람도 허영이다. 1949년 독립전쟁이 종식된 후 허영은 자카르타 로 돌아와 영화제작사 ‘키노 드라마 아틀리에’ 를 설립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수상작들이 “두 나라의 삶을 잇는 소중한 기록이자 문화적 다리”가 되기를 응원했다. 축하 공연으로는 지테라 인도네시아 예술단이 ‘Tari Gending Sriwijaya(환영의 춤)’를 선 보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어진 <생태 이야기 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인도네시아 초등부 한인뉴스 2025년 12월호 I 53 한 단체 사진 촬영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3부: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인들의 축제 다시 채인숙 시인과 장대영 부원장이 마이크를 잡 은 3부는 상가르 메와르 부다야(Sanggar Mewar Budaya)의 우아한‘Tari Payung(우산춤)’ 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한인 동포들의 삶과 애환 이 담긴 <나의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시상 식이 진행됐다. 학생부 대상은 강동진(Springfield School) 학 생이 수상하여 이장근 주ASEAN 대사로부터 상 을 받았으며 수카르노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신생 정부는 350년 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를 사수하 기 위해 다시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전쟁’을 벌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 한 연합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에는 역부족이 라고 판단하고 숙소로 사용하였다. 본부에는 중경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보낸 태극기를 게양했 다. 민회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에게도 숙소 를 제공하고 집단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리고 일본군과 교섭하여 넉넉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물자와 자금을 확보한다. 조선어 교실 을 개설해 귀국을 앞둔 동포들에게 모국어를 가르 치고 스마랑조선인회 등 지역명을 딴 조선인(혹은 고려인)민회를 결성했다. 민회는 일본군이나 연 합군과 교섭을 통해 식량과 물자 확보 스스로 선택한 고난과 번뇌를 부정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행위(Economic Activity)를 위해서 분주 히 움직이고 있을 때 식당과 연대를 맺은 덕분이다. 그 ‘ 덕’에 자카르타 경로당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녹초가 되어 버리지만. 아 식물 식물을 보면 뇌에 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알파파가 활성된대요.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49 제가 키우는 식물들은 조금 특별해요. 길거리의 깨진 화분이 나 골프장의 꽃밭에서 솎아낸 죽어가는 생명이거나 바람을 타고 날아와 베란다의 화분에 직접 뿌리를 내렸거든요. 버려 진 식물을 데려다 곱게 키운 식물이 자리 잡고 그 식물에 새 잎이 돋고 꽃을 피울 때마다 뿌듯해요. 스칼렛 미용실에 뿌리내린 ‘푸른 생명체’가 어느새 제 마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네요. 여러분 아무 근심 걱정도 없어 보이시는 푸근한 이미지의 할머니였기에 나 는 걱정부터 앞섰다. “사탕 할머니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마지막 일과가 남아있 다. 바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즐 기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래요 애국가)가 어우러 지며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사공 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1999년 인도네시아 문화탐방으로 시작한 연구 원이 340여 회의 문화탐방과 90여 회의 강연을 통해 양국을 잇는 중요한 문화 가교로 성장했다” 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2010년 시작된 이 문 학상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진정한 이야기의 다리(Jembatan Cerita)가 되었 다”고 강조했다. 문학과 예술로 잇는 ‘화합의 울림’ 약국과 더욱 밀접한 교류를 형성해 나가기. 셋째. 교통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비슷한 동 네에 사시는 분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양국의 평화로운 미래 를 여는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정철호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은 기념사에서 “이번 생태 이야기 공모전 출품작들은 자연을 소 재로 한 미래의 희망 씨앗이자 지구를 보호하는 아름다운 힘”이라며“청소년들이 전하는 생태 적 메시지가 우리 모두의 약속이 되길 바란다” 고 역설했다. 쿠나르디 다르마 라이(Kunardy Darma Lie) KB Bank 국민은행장은 격려사를 통해 “문학은 금융처럼 미래를 설계하고 양칠성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2023년 11월 10일 서부자바주 가룻군은 인도 네시아 영웅의 날을 맞아서 찌삐쭝 마을의 한 도 로에 양칠성의 이름을 딴 ‘잘란 코마루딘(양칠 성)’을 명명했다. 찌삐쭝 마을은 팡에란 파팍 유 격대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글: 신성철(<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 저자) 사진. 양칠성의 묘비 어느 날 그는 내 귀에다 대 고 속삭이듯 말하였다. “형님 저는 직장이나 사업이 생리에 맞지 않아요.” 말끝을 흐리며 먼 산을 바라보는 이태복 시인의 눈빛은 담담하였다. 고국에 있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 그는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자카르타를 떠나 중 부 자바의 살라띠가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뒤이 어 시인이 되어 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화에 심취하며 지방의 전통 민속 춤과 노래를 발굴하고 공연 등을 통하여 많은 방문자들에게 웃 음과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디 편찮으세요?” “그게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멈칫멈칫하던 사탕 할머니는 좀 체 입을 열지 않았다.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주춤하던 사탕 할머니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영감을 떠나 보낸 후 한국 집을 팔고 아들 따라 인 도네시아로 왔는데 어르신들은 손뼉 치 고 웃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 문을 연 이래로 하루 도 빠짐없이 많은 교민이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이렇다 보니 행사 진행자와 자원봉사자 들의 자발 적인 참여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기가 많은 ‘시니 어 노래 교실’이 열리는 날이다. 트로트에 맞춰 춤 추고 노래하는데 어린 시절 아빠는 보르네오섬에서 목재업에 종 사하셨다. 몇 년간 가족이 떨어져 살다가 중학교 때부터 우리 가족은 자카르타에 정착해 생활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몇몇 나라를 돌아다니며 실무경험을 쌓던 나는 인도네 시아에 돌아와 백수 생활을 한 지 3개월을 막 넘 어섰다. 뒤늦게 한의사가 된 아버지는 자카르타에서 조 그만 한의원을 운영하셨다.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 리고 소설가인 어머니를 보필하며 소소한 나날들 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작품 활동에 침체기를 겪 던 어머니는 글쓰기보다 잔소리로 이야기를 풀어 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셨는데 어린아이들도 모여 서 쉴 수 있는 쉼터가 생겼고 엄마. 실컷 얘기하세요. 이 효녀가 다 들 어 드릴게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식사를 마치고 아버 지와 차 한잔하며 음악을 듣거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다. 베란다에 촘촘히 놓인 작은 화분 속의 식물들과 편안함을 주는 은은한 조명들. 그리고 아버지가 손수 준비하시는 구수한 전통차. 하루의 피로를 풀기 충분한 조건들이다. 지금은 알지 못해도 시 간이 흐른 뒤에는 차고 넘치는 작은 행복일지도. 한의사인 아버지는 종종 빵을 굽는다. 아버지는 하루가 조금 고됐거나 정성을 쏟은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속상하신 날 반죽을 치대신다. 아 버지는 종종 빵 만드는 비유를 통해 당신의 속내 를 비친다. “포슬포슬한 빵을 만들려면 적당한 배합과 숙성 엄마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알겠니? 여자 는 말이야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선구 자가 됐다. 일제 패망 이후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귀환하였 지만 허영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인 도네시아 독립투쟁에 참여한다. 1946년 식민종 주국이던 네덜란드가 영유권을 내세우며 인도네 시아를 침략하자 예원 오늘은 바로 들어 가시는 게 좋을 것 같 아요. 늦게 귀가하시면 식구들이 많이 걱정할 거 예요. 어서 저랑 같이 나가요. 자가용은 걱정 마 시고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인사 하려는데 사탕 할 머니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사탕을 두 개 건네셨 다. 무엇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다 가가 손을 부여잡고 속삭였다. “오늘은 이 사탕 며느님 드리세요.”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47 나는 방긋 웃어 보이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둑해진 하늘처럼 마음 한 편이 먹먹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홀가 분했다. 보색처럼 반대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리가 안 되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중 얼거리는 버릇이 있는 나는 독백을 시작했다. 그 러다 알게 되었다. 사실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내 내 오른쪽은 빵에란 빠빡 부대 활 동 당시 모습 [출처: 책 적도에 묻히다에서 캡처] 60 I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8) 인도네시아에 남은 조선인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로 온 조선인 중 소수는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는다. 영화 감독 허영은 족자로 망명한 수카르노 정부에서 홍 보 활동을 하고 외동딸에게 양보와 배려를 배 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오디션에 참가했습 니다. 그렇게 1년! 아이들과 부모 요리 요리 교실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하고 말이죠. 아이들의 목소리엔 어른들이 갖지 못한 순수함 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엔 뭐든 다 괜찮아지는 마법의 힘이 있지요. 아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사 실 아주 가까이에 있고 이 먼 타지에서도 아이들 의 맑은 목소리는 한국의 정서를 담아 많은 사람 들에게 단단한 울림을 줄 것입니다. 올해 놓치신 분들이 있다면 내년 JKCC공연 놓 치지 마세요! <JKCC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에서 제 18기 새 단원을 모집합니다. 2013년~2016년생 대한민국 어린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하모 니로 음표를 쉼표로 바꿀 어린 이들을 기다립니다. 동요 한 곡 을 동영상 촬영하여 아래 구글폼 (QR코드)으로 신청하세요. 문의 : 카카오톡 bong0528 께 화음 맞춰 노래 부르는 JKCC는 그 자체로 따 뜻한 음악 공동체입니다. 저 역시 작년에 단원 모 집 소식을 접하고 우리 딸. 예전에도 지금도 엄마 아빠는 우 리 혜미를 응원한단다. 매일 밤 너를 위해 엄마와 기도를 드린단다. 아빠는 정말 흐뭇하구나. 예쁜 우리 딸 우주의 먼지 뿐만아니라 벌레 등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의 피리 부는 사람의 곡에 맞추어 춤을 출 뿐이다.’”라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식물과 동물이 춤추는 ‘스칼렛’ 미용실. 반려식물 랜선집사 스칼렛 미용실을 점령한 푸른 생명체 ‘반려식물’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정서적으로 가까이 두고 기르는 식물을 뜻해요. 식물을 기르고 가꾸면서 식물과 교감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며 생겨난 용어예요. 반려식물은 관상용부터 공기정화 우중버뚱 운영한 역사 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태복 작가의 『소설 암바 라와』는 현지인 위안부 할머니의 고증과 조선 처 녀의 위안부 실태를 증언한 고(故) 정서운 할머니 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이다. 한편 웃음만이 넘치는 행복 가득한 세상 유족이 없 고 일본 이름치곤 이상한 한 사람을 집요하게 추 적하면서 양칠성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 는 것이 밝혀진다. 1995년에는 한국 시민단체 등 의 노력으로 묘비명이 일본인 ‘야나가와 시치세 이(梁川七星)’에서 ‘KOMARUDIN 유치 원 음식을 제공 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네덜란드인 포로들을 도와 주었다. 당시 수까미스낀 수용소에서 김만수와 같 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로는 유홍배ㆍ이병용 등 이 있었다. 김만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하여 자카르타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는 196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총영사관 개 설에 일익을 담당할 만큼 초창기 이곳 한인사회 형성에 공헌하였다. 유홍배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인과 결혼하여 1970년대 초에 자카르타에서 사 망하였다. 이병용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결혼 해 동부자바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살다가 그곳에 서 사망하였다. ★허영 의료기관 이승에서의 힘겨웠 던 삶을 에둘러 “아름다운 소풍”이라 하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 중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시 「귀천」에서 이태복 시인은 유작 시 「귀향」에서 그려낸 그 의 인도네시아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사실 적으로 실토하고 있다. 녹록지 않은 길 무지와 오만 가득한 아집을 따라 고난을 자청 한길 인생 사흘길 되려나 쉰다섯 해 구불구불 비틀비틀 이제 내려가야 할 나이 돌아보면 아련하다 - 이태복의 시 「귀향」에서 고인은 비록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여유 도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하였지만 이태복 작가는 암바라와 성의 역사적 실 상을 알리기 위해서 지방정부를 설득하여 유적지 자바로 떠난 소풍 길 - 고(故) 이태복 시인의 영면을 기리며 <故 이태복 시인 추모의 글> 김준규 시인 |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회장 한인뉴스 2025년 12월호 I 31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한인사회의 협조를 지속적 으로 홍보 한바 있다. 이태복 작가는 무소유적 가 치관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늘 남루한 옷차림 에 뚝배기처럼 질박한 미소로 현지인들과 조우하 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고단한 현실 속에 건강의 악화를 실감하고도 자신 을 혹사했던 시간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난하고 외롭지만 문학과 예술을 위해서 유유 자적하던 고인은 어느 날 이후 글로독 형무소로 이감된다. 1946년 4월 무 렵 이후 이슬람학교 설립 자금을 후원하 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1915~1949)은 인도네시아 외국인 독립영 웅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과 친일 매국노 사 이를 오간 조선인 영화감독 허영(1908-1952)은 ‘독립 인도네시아’를 꿈 꿨던 한국인 영화감독으로 일본식 이름은 히나 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 인도네시아 영화공사(BFI) 관 계자들과 함께 족자카르타로 가서 수카르노 망명 정부에 합류한다. 허영은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선을 누비며 항쟁의 역사를 뉴스와 기록영 상으로 담아냈고 한편으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 했다. 허영은 당시 일본 군정감부 선전부 소속 인 도네시아인 직원이었던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인도네시아 이름은 꼬마루딘(Komarudin) 이다. 양칠성은 일본군 군속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파견돼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뒤에 양칠성은 귀국하지 않고 한국인 동료 8명과 함께 인도네 시아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1946년 양칠성 은 200~300명 규모의 ‘빵에란 빠빡 부대’에 서 행동조의 팀장으로 활약했다. 반둥 인도네시아 이름은 후 융이다. 1948년 허영은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 시아의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인터넷과 스마트 폰 사용법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사용법 알려 드리기. 그 뒤 인테리어 일반부 대상은 조은아 씨에게 돌아 갔다. 이성호 영사를 비롯해 쿠나르디 다르마 라 이 국민은행장 일정을 확 인하기. 그 결과 자고로 청순하고 싹싹하게 보여야 해. 이렇게 덤벙대서야 시집이나 가겠니?” “엄마는 또 시집 타령이야? 난 시집갈 생각 일 도 없거든.” 정해진 시간마다 들리는 아잔 같은 어머니의 잔 소리를 피해 내가 향한 곳은 어느새 나의 쉼터가 된‘자카르타 경로당’이었다. 자카르타는 동서남북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데 자기 손주와 결혼해 달라고 농담하시던 문 씨 할머니. 모두가 잊지 못 할 소중한 인연들이다. 내 인생의 조각조각 중 가 장 빛나고 소중한 기억들이 숨 쉬는 곳 자야꾸스마(Djajakusma) 자카르 타 북쪽의 끌라빠가딩에 거주하시는 김 할머니는 문을 나서다 발걸음을 멈추셨다. 김 할머니는 입 담이 좋아서 인기가 많다. 주머니 속에 사탕을 챙 겨 다니시며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사탕 할 머니’란 별명으로 불린다. 주춤하시던 김 할머니 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혜미씨. 오늘 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될까?” 활발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면 자카르타 경로당에 몸담고 나서 자카르타 경로당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기장과 자료를 어머니에게 넘겼 다. 미동도 하지 않고 일기장을 넘기던 어머니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추억에도 빛깔이 있다면 자카르타 경로당에서 보낸 나의 시간은 구수한 전통 차 빛깔이 아닐까. 찻잎의 발효 정도에 따라 색과 향과 맛이 변하는 찻잎처럼 자카르타 경로당을 찾는 환자들과 나눈 정이 다양한 빛깔로 우러났다. 막 우려낸 찻잎처 럼 푸릇하던 나의 이십 대의 이야기가 엄마의 주 름진 손에서 책으로 쓰였다. 이제 자카르타 경로당이 그리울 것이다. 잊지 못할 ‘적도의 사 람 사는 냄새’들도. 내가 떠나고 반년이 지났다. ‘자카르타 경로당 초고’라는 제목의 메일을 어머니에게 받았다. 작 품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카르타를 떠나기 전 자카르타로 오기 전에 면접 을 보자는 제안에 덜컥 겁이 났다. 왜 나만 힘들다 고 생각했을까. 막연히 부모님이 계신 자카르타로 돌아오면 숨이라도 쉬어질 것 같아서 무작정 도망 쳤다. 아직 어른이 되기 싫었던 몸만 큰 어른의 피 터팬 증후군을 앓았는지도 모른다. 한 차례 열병 이 지나간다. “아빠 자카르타문화청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나래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올해 행사는 인도네시아 해양박물관과 협력하여 ‘스리위자야-수마트라 페스티벌(SRIWIJAYA -SUMATRA Festival)’을 핵심 테마로 기획되 었다. <제14회 나의 인도네시아 이야기> 작곡 <내가 바라는 세상> 동요의 노랫말 입니다.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59 기 다른 마음들과 의견을 조율한다는 것 잔소리로도 글 이 풀리지 않을 때면 목적지 없는 외출을 하셨다. 그런 어머니와의 ‘동행’이 외동딸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였다. “혜미야 장편소설 『소설 암바라와라』 를 집필하며 건강을 돌볼 여유도 없이 몇 년을 보 냈다. ‘암바라와’ 성은 네덜란드의 통치 시절 재봉틀도 비치해 여성들에게 양재기술을 가 르치는 등 귀국 준비를 시켰다. 또한 『조선인 민 보』라고 하는 기관지를 등사판으로 인쇄해 매주 배포했으며 100호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7)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운 조선인들 일본이 패전한 후 네덜란드가 다시 일본을 점령 하자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재자바조선인민회 종전 후 전범 처리나 귀국선 탑승을 기다리며 자 카르타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약 1 적 당한 관심이 필요하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들 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시간이 다. 향수처럼 아버지의 손에 밴 한약재 냄새와 잘 우러난 차 향. 몽글 몽글 부푼 빵 내음. 46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자카르타 경로당에 몸담은 지 3개월이 되어간다. 저녁 7시면 문을 닫는 시간이라 어르신들과 아이 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물 품들을 체크하고 정리 정돈을 마칠 무렵 적당한 발효와 온도 가 중요해. 우리네 인생도 그렇단 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배려 적도의 반대편에서 막 시작된 나의 이야기 에 따뜻한 찻물을 부을 시간이다. 내 삶의 향기가 어떤 빛깔로 우러날지 기대하면서. 적십자 봉사요원이었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여성 우이 마리아(Oey Maria)의 도움을 받아서 석방된다. 후일 유형배는 우이의 딸인 스리 뿌르 나마와띠(Sri Purnamawati)와 결혼해 5남 1녀 를 둔다. 1951년 유형배 부부는 자카르타 북부 안쫄 지 역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메리야스 공장인 글로리 아사(PT. Gloria)를 설립한다. 당시 적십자 활동 을 하며 대통령 영부인 파뜨마와띠를 비롯한 고위 층 부인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던 우이가 그의 사 업을 지원했다. 1954년 유형배는 자카르타 뜨붓 지역에 두번째 사업체인 트리코트를 생산하는 회 사 뻐르소조(PT. Persodjo)를 설립해 종업원 수 1 전범 조사를 받기 위해 임시수용소에 수감되고 젊은 양반 정수 호 제 경우에는 ‘마음 정화’예요. 식물은 휘 발성 유기화합물과 미세먼지 등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효과 가 있어 공기도 정화되고 눈도 정화되지만 조직원에 게 숙소 제공 졸업생 들의 특별 솔로도 있었습니다. 26명의 어린이들 이 맑고 고운 우리말 동요를 화음 맞춰 부르는 모 습은 꼭 단원 부모라서가 아니라 묘한 뭉클함과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었어도 마찬가지 였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 죠? 제가 어릴 땐 매년 5월이 되면 <창작동요제> 가 열렸고 어린이날 그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TV 앞에서 보는 것이 그날의 가장 큰 이벤트 였는데 말이죠. 그 덕분에 우리는 <새싹들이다> 종교 단체 종교 단체와 여러 기업이 힘 을 합쳐 설립한 자카르타 경로당은 하루 방문객이 200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번화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박 회장님의 열정이 한층 더 교민들의 관 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름이 경로당이지 애들 과 어르신들 그리고 성인 할 것 없이 모여드는 ‘ 핫플’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한 한인 사업가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시 작되었지.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적적한 노인 들이 모여 함께 어울리고 나눔을 갖는 장소. 이것 이 그 양반이 이 자카르타 경로당을 설립한 계기 란 말이여. 거기 주차선을 바르게 지키는 세상 중부 자바 총독부로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는 군 사기지로 사용하며 위안소를 설치 중부 자바의 소풍길에 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집 『자바의 꿈』에 수록된 고향을 되새 기며 지금은 외출하는 것도 눈치 보여.” 찌까랑에서 온 한 씨 할머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쯧쯧. 나는 휴가 때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니까. 돌봄이 색시가 돌아온다고 약속한 날이 며 칠이라도 늦어지면 지난해에 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어에 담아낸 한국적 정 서를 발굴하는 <나의 한국 이야기>를 출범시켰 다. 특히 <인도네시아 이야기>는 해외 동포 단체 가 주최하는 문학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 며 진짜 전범인 일 본인과 조선인을 분류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면 서 빠른 귀국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인도네시아 각지에 재자바조선 인민회를 시작으로 팔렘방조선인회 차선책으로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외교전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이를 위해 민병대 창설을 독 려하고 창살 없는 감옥이 나를 옥죄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는지도 모른다. 자동차 창문을 내 렸다. 비릿한 저녁 공기가 밀려든다. 평소라면 진 저리를 쳤을 냄새를 맡자 이상하게도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맡기 싫어하던 비린내는 사 람들이 만들어가는 인생의 냄새였던 것일까. 그날 이후 천재 시인 천상병 선생은 그의 지독한 가난 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최초의 메리아스공장 설립 유형배는 김만수와 함께 반둥 지역 수까미스낀 수 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그는 동료 7명 과 함께 서부자바 지역에서 독립전쟁에도 참여했 다. 유형배는 1946년 4월경에 귀국선을 타기 위 해 자카르타 딴중쁘리옥 항구에 갔다가 체포되어 치 료와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을 도왔더니 내 마음도 치료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카르타 경로당에서 만 나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거울을 보았다. 모두 나의 이야기였고 나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들의 거울이었고 나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 야기였으리라. 며칠 전 나는 부모님에게 호주로 돌아간다고 선 언했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취업의 문은 결 국 나에게도 열렸다. 이력서를 보냈던 호주의 한 호텔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다. 이제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겼다. 사실 치과 치유 목적 등 다 양하게 활용되는데 태극기를 그리기 통 사정하길래 그 길로 정착했는데 특히 학생부 대상 수상작 인 강동진 학생의 <삶의 끝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 작>에 대해 “토라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 따뜻하고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밉타훌로(Bapak Mochamad Miftahulloh Tamary) 자카르타 문화청장은 자카르타 주정부를 대표해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학인들의 축제를 넘어 문 화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라며 평화로 가득한 곳 포 로감시원 시절 동료인 유형배와 함께 한국 선수 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원한다. 동아일보 특파 원은 1962년 9월 2일자 기사에 두 사람의 적극 적인 봉사 이야기를 소개했다. 1966년 12월 1일 주인도네시아 한국영사관이 개설될 때 포로 들의 실상을 ‘조작’한 이 영화는 종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되레 포로 학대를 입증하는 증 거로 채택된다. 한편 우스미 아야코는 그의 저서 『적도에 묻히 다』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허영은 일본군과 협 상을 벌여서 일본군 감옥에 갇힌 조선인 군속의 석 방을 요구하고 조선인들이 귀국 때까지 머물 식량 과 자금을 일본 측에 요구해 받아냈다고 전한다. 허영은 인도네시아에서 마나도 출신 여성 안나 마 리아(Anna Maria Karuntu)와 결혼해 딸을 두었 고 푸놀 치 등 양국 주요 기관 및 기업의 후원이 더해져 한 층 높아진 행사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15년을 이어온 문학의 힘 하고픈일 다 되는 마법 같은 세상 사랑하는 친구와 매일같이 모여서 넓은 잔디밭에서 맘껏 뛰게 해주세요 꽃과 새가 노래하고 동물들과 어울려 햇살 가득 받으며 미소 짓는 우리들 아픔도 외로움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사라지기를 우리들 누구라도 좋아 이제 여기서 모두 다 같이 모여 함께 노래 할래요 내가 바라는 세상 하세가 와 하세가와 등 3인은 처형 26년 만에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 되고 학교 학습 한 글과 한국 노래를 배우기 그리고 한국 춤·음악· 연극 등을 공연하며 조선인의 정체성을 찾는 활동 을 펼쳤다. 가장 먼저 설립된 재자바조선인민회(이하 한국 국제학교 한번 안아보자.” 한약재와 빵 냄새가 섞인 아버지의 품은 따뜻했 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처음 세 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호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사탕 할머니와 며느 님이 같이 오셨다. 어김없이 사탕 할머니는 나에 게 사탕 두 개를 건네셨다. 조기 치매 증세로 물건 잃어버리시는 양씨 할아버지 한옥 한인 사회 내 독보적인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 김했다. 1부: 화려한 개막과 생태적 상상력의 향연 채인숙 시인과 장대영 부원장의 사회로 막을 올 린 1부는 5인의 난타 공연(아리랑 한인니문화연구원 2025 문학상 시상식 성료 ㅡ ‘스리위자야-수마트라 페스티벌’ 컨셉으로 양국 문화 교류의 정수 선보여 ㅡ 15년 역사의 ‘인도네시아 이야기’ 등 3개 부문 시상... AI 시대 한인회에서 차량 2대를 추가 지 원받는 쾌거 달성. 만세! 48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넷째.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해양박물관 행 사가 있다. 유치원생들 장기자랑부터 초중고등생 들의 연극과 노래자랑 회관 훈련된 전투원과 무기를 확보를 위해 일 본군 출신 하사관과 사병들을 용병으로 중용했다. 이 과정에 조선인 35명가량이 인도네시아 ‘독립 한국-인도네시아 우정의 50년 여정 (8) 사진 1945.12.16. 재자바 조선인민회 반둥지 부.사진 [안승갑 회고록] 한인뉴스 2024년 8월호 I 59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참전 한 조선인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양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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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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