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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짜리 빨간 지폐에 두 분의 사진이 있다) 그 다음 날인 1945년 8월 18일 독립준비위원회는 독립연구원 이 초안한 헌법을 공식으로 승인 채택하고 공포했 다. 이 헌법을 인도네시아 역사에서는 1945년 헌 법이라고 부르며 1948년 제2차 침 공을 하고 신생독립국 인도네시아는 족자카르타 로 천도를 하기도 한다. 독립전쟁이 계속되는 동 안 유엔의 중재로 1949년 8월 23일부터 11월 2 일까지 화란의 덴 하그에서 인도네시아 1950년 7월 5일 대통령은 1945 년 헌법을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헌법으로 채택한 다는 비상조치령을 발표하고 즉시 발효시켰다. 법 리상으로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비상조치 령(Dekrit)으로 헌법을 바꾼다는 것이 어불성설 이지만 당시 인도네시아의 무소부재에 가까운 힘 을 가진 대통령은 비상조치령으로 헌법을 바꿨으 며 이를 부정하고 대항한 정치인이나 학자도 있었 다는 기록도 없다. 1959년 7월 5일 헌법으로 다 시 채택된 1945년 헌법은 수카르노 대통령 집권 기간과 수하르또 대통령 집권 기간에는 절대로 건 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되어 개정 운운하면 비 애국자 혹은 불온한 사상을 가진 자로 취급되었 다. 실제로 필자는 가까이 지내는 헌법학 교수에 게 1945년 헌법의 문제점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났습니다. 그가 술탄으로 재위한 것은 두 번의 재 위기간을 모두 합쳐 865일에 불과했으니 2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대 한 왕실 장례의식이 치러진 후 그의 유해는 이모 기리 빠지마딴(Pajimatan)에 묻혔고 그의 묘역 은 아스타나 까수와르간(Astana Kasuwargan) 이라 불렸습니다. 한 시대가 그렇게 빨리 저물고 있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이복동생 입누자롯 왕자 는 그때 막 10살의 나이로 하멍꾸부워노 4세가 되 어 술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성인이 될 때 까지 디포네고로 왕자가 국사를 도울 섭정이 될 것을 누구도 의심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 코 자기 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래플스 총독은 영국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 다.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던 빠꾸알람 1세 를 섭정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스뻐히 전투에서 영국이 끄라톤을 함락시킨 후 영국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자치구인 빠꾸알 라만 봉국을 할양받고 그곳의 영주가 된 빠꾸알람 1세는 말레이 반도 삐낭섬으로 유배된 하멍꾸부 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가 어린 하멍꾸부워노 4세를 대신해 족자 술탄국의 모든 국사를 영국 총 독부의 입맛에 맞게 결정할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총독부의 결정에 이의를 달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로서는 이미 예 상했던 일이었지만요. 빠꾸알람 1세의 초상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125605764@ N04/22639770464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3 디포네고로 왕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다 누레죠 재상에게 그렇게 여러번 다짐을 받았고 그 후 정기적으로 술탄을 만나러 오는 일을 빼고는 대부분 뜨갈레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 기서 목가적인 생활을 즐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족자와 수라카르타는 물론 자바 전역의 이슬람 사 회와 인편과 서신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백성들 의 목소리와 지방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하 지 않았습니다. 뜨갈레죠에는 귀족들과 이슬람 학 자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시종들을 제외하고도 식솔들만 수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는데 그들 중 엔 학문과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었고 일단의 젊은이들은 부기스 부대 장교출신 무관들로부터 무술과 창검술을 배웠으므로 하긍 왕후의 저택은 물론 뜨갈레죠 일대가 학교나 병영처럼 기능하면 서 한껏 활기에 넘쳤습니다. “고모님 ii). 정부통령의 취임선서 수취 iii). 특정한 상황에서 정부통령 선출 및 iv). 정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직무를 맡고 있다. 국 민협의회 의원은 별도로 선출하지 않고 국회의원 전원과 지방대표회 의원으로 구성되며 최소 매 5 년에 한 번씩 열린다.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는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와 제4대 대통령 구스 두르라는 애칭을 가진 압둘 라흐만 와힛을 탄핵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5. 국회/DPR 국회는 3개의 입법기관 중에 가장 중요한 입법기 관으로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은 의원으로 구성되 며 ‘절대 헤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마글랑이 있는 동북쪽 밤하 늘을 바라보며 애통함이 끓어 넘쳤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라덴 아유 렛나닝시와 자녀들 “어서 오세요. 세랑 왕자님!” 슬라롱의 본진에선 디포네고로 왕자는 물론 가 부장적이고 봉건적인 내용을 지적하고 감독결과 에 대하여 국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교육 및 종교에 관련 된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라. 지방대표회는 지방자치에 관한 사항 교육 및 종교에 관련된 법률 시행 에 대하여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 가 예산 국가 예산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국정자문회(Dewan Pertimbangan Agung/DPA)를 없애고 대신 대통령 휘하에 대통령이 자문회를 구성하며 궁밖에서 살면서 접하게 된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두 번씩이나 끄라톤을 유린한 이민족 의 만행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 이미 굳건한 가치관 을 가지고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 총독부는 다른 왕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술탄이 평생 열 명 가까운 왕후와 후궁을 들이는 왕가에서 왕자들은 얼마든지 넘쳐났습니다. 나중 의 일이지만 디포네고로 왕자 자신도 평생 아홉 명의 아내를 가지게 되죠. 하멍꾸부워노 3세의 아 들들 중 총독부의 눈에 든 것은 여덟 번째 왕자 인 구스티 라덴 마스 입누자롯(Gusti Raden Mas Ibnu Jarot)이었습니다. 그는 구스티 깐젱 라투 끈쪼노 (Gusti Kanjeng Ratu Kencono) 왕비에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I 21 게서 1804년 4월 3일 태어났고 스뻐히 전투가 있 던 1812년엔 겨우 여덞 살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입누자롯 왕자의 사이는 마치 인디아 라마야나(Ramayana) 전설에 나오는 크 레스나(Kresna)와 아르쥬나(Arjuna) 같은 관계 였다고 전해집니다. 크레스나는 힌두신 비슈누의 화신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에 서는 아르쥬나의 절친으로 등장하고 바가바드 기 타에서는 주인공 아르쥬나의 조언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비슈누신의 모습으로 화해 친족과의 전쟁 을 거부하는 아르쥬나를 다시 전쟁터에 나서도록 설득하죠. 디포네고로가 많은 이복형제들 중 스무 살 가까이 차이지는 입누자롯 왕자를 각별하게 여 긴 것은 그의 온순한 성품이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를 너무나 쏙 빼어닮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랬기에 영국 총독부 역시 입누자롯 왕자에게 눈도 장을 찍어 두었던 것이고요. 재상 신두네고로는 날로 악화되던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자신이 스뻐히 전 투 당시 입은 부상이 도져 1813년 어느 날 그건 당신이 허락하고 말고 할 일 이 아니오. 그것은 신과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니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일이오!” 당초 우려했던 대로 회담은 금방 벽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뭔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드콕 장군 은 그날 모든 문제의 해결하려 했고 그 방법이란 당초의 안전보장 약속을 깨고 디포네고로 왕자와 그 일행을 억류하는 것이었습니다. “술탄 그렇게 군대를 나누면 슬라롱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칠 병력이 얼마 남지 않습니 다. 일부 지역을 잠시 포기하고 슬라롱 공격에 집 중하심이….” “적들이 우리 배후를 따라잡게 놔둘 수는 없는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16 일이요. 저들을 방치하면 우리가 슬라롱에서 섬 멸전을 벌이는 동안 족자를 동서 양쪽에서 압박해 오게 될 것이오.” 디포네고로 왕자의 봉기에 동조해 자바 전역에 서 들불처럼 일어난 백성들의 반란은 네덜란드군 이 자바섬 밖에서 힘겹게 소환해온 병력들을 적절 히 분산시키며 디포네고로군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5년 10월 2일과 4일에 대대적인 슬라롱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디포네고로는 미리 공격정보를 파악 해 한발 앞서 덱소(Dekso)로 본진을 옮겼고 부녀 자들과 노인 그리 고 센똣 쁘라위라디르죠까지 동원하고 드콕 장군 까지 본진을 방문하는 등 전력을 다해 그를 마글 랑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그곳에 헤어나오기 힘 든 치명적인 덫이 설치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기도 했습니다. <전하 꺼두 끼 아이 모조와 망꾸부미 왕자 등 디포네고로군 수뇌 들이 모두 나와 병사들을 인솔하고 들어오는 세랑 왕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계속된 전투로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세랑 왕자는 믿음직한 미 소로 그들의 환대에 답했고 디포네고로의 삼촌 뻘 인 그는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드콕 장군은 디포네고로의 슬라롱 본진을 포위 하려 했지만 먼저 스마랑 네덜란드 및 유엔의 대표 간에 회담이 열렸으며 네덜란드가 물러나지 않는 한 난 이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오. 어차피 이 회담 에 들어가 마지막 결정을 내릴 사람은 이제 나밖 에 없소. 하지만 이 전쟁을 이끌 사람들은 나 말고 도 이 막사에 한 가득이나 있지 않소? 내가 죽어 백성들 마음 속에 살아난다면 난 하늘의 무수한 별들 같은 대군이 될 것이오.” 지난 호에 이어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24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23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 시점에서 이미 생과 사를 초월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라마단 동안 금 식의 규례를 잘 세우기 바라오.” 그는 1830년 3월 18일 해가 중천에 뜰 즈음 말 을 타고 머노레를 출발했습니다. 100명의 호위대 가 앞 뒤를 둘러쌓고 네덜란드 군복을 입은 센똣 의 호위대가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머노레 외곽에 서 센똣의 삐닐리 부대 본대와 합류하여 행군을 계속해 그날 저녁 늦게서야 마글랑에 들어섰습니 다. 네덜란드군은 요새 앞 멀찌기부터 임시 뻔도 뽀(Pendopo)를 설치해 놓고 예를 갖추어 디포네 고로 일행의 방문을 환영했습니다. 거기엔 클레이 런스 대령과 몇몇 끄라톤 왕자들도 나와 있었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들에게 딱히 시선을 주지 않 았습니다. 그는 곧장 마글랑의 네덜란드 군영 내 쁘상그라한 (Pesanggrahan) 초대소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만났습니다. “전하 다시 주 단위로 지방대 표 국회의원을 뽑아 지방대표 국회를 결성하게 하 고 있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옥상옥 당사자 간 에 인도네시아 합중국(Negara Republik Indonesia Serikat/RIS) 설립에 합의하여 인도네시아 는 여러 개의 국가로 나뉘고 인도네시아 합중국 헌법에도 합의한다. 인도네시아 합중국 존재 기간 중 1945년 헌법은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k Indonesia) 영토 내에서만 유효했다. (3). 제3공화정 1950년 잠정헌법(1950. 8. 27. 1959. 7. 5.) 인도네시아 합중국 설립 합의는 인도네시아를 식 민통치했던 네덜란드의 강압에 의한 결정이었으 며 당신의 생각이 정히 그렇다면 당신을 여 기서 내보내 드릴 수 없소.”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오?” “이대로 당신을 내보내면 자바땅엔 또다시 전쟁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오.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오!” “당신들의 압제가 계속되는 한 이 땅에 전쟁이 그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아니오? 그리고 당신은 군복을 입고 장군계급장을 달고 있으면서도 전쟁 이 두렵단 말이오? 그건 비열한 배신자들이나 하 는 소리요!” 디포네고로 왕자가 회담장을 박차고 일어서자 네 덜란드군 병사들이 문을 막아섰고 왕자의 일행들은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드콕 장군이 뒤로 빠 지면서 회의장에 있던 하급 장교들이 뽑아든 권총이 불을 뿜자 마르타느가라 장군이 디포네고로를 감싸 며 총탄을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회의장과 그 앞 당신의 어깨가 매우 무겁다 는 걸 명심하시오. 내가 끄라톤을 멀리 떠나 있진 않겠지만 이젠 당신이 술탄 전하와 섭정전하를 가 장 가까이에서 잘 보필해야 하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재상 다누레죠 4세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버지 술 탄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장례식을 위해 빠꾸알라만 봉국에서 왔다가 돌아가지 않은 채 곧바로 술탄의 섭정이 된 빠꾸알람 1세의 견제를 벌써부터 받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하멍꾸부워노 2 세와 함께 당시 어린 무스타하르 왕자를 흐뭇한 눈 으로 지켜보던 노토꾸수모 왕자는 여전히 혈색좋 은 얼굴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었지만 왕실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던 디포네고로 왕자를 더 이상 흐뭇하게만 여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토꾸수모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멍 꾸부워노 4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끄라톤에 공의 사람들을 심어 족자 술탄국이 우리 총독부에 더 욱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오. 그것이 우리와 보조 를 맞추고 있는 빠꾸알라만 봉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 아니오?” 래플스 총독은 서신을 통해 빠꾸알람 1세에게 그 렇게 속삭였죠. 그러기 위해선 왕가와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던 디포네고로 왕자의 힘을 줄 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빠꾸알람 1세 가 섭정이 된 후 끄라톤 궁에서 디포네고로의 행 동은 크게 제한되기 시작했고 많은 회의와 행사들 이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열렸습니다. 디포네 고로 왕자가 하멍꾸부워노 4세를 만나는 것은 다 행히 여전히 자유로왔지만 그것은 어린 술탄이 전 혀 실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난 수마디뿌라공만 믿겠소.” 당에 소속 되지 않은 무소속의 순수한 지방대표를 선출하여 중앙 입법부에서 지방의 이익을 대표하게 하자는 취지가 지방대표 국회제도이다. 가. 각 주단위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의원으로 지 방대표를 구성하며 각 주 동일 인원을 선출하며 지방대표회(DPD) 의원의 인원은 국회(DPR) 의 원총수의 1/3을 초과하지 못한다. 나. 지방대표회는 매년 최소 1회 개회한다. 다. 지방대표회는 지방자치에 관한 사항 대다수의 인도네시아 국민은 이에 반대하고 단일국가를 원했다. 국민들의 단일 국가 형성 여 망에 부응하여 개별 국가 간에 통합을 이루어져 마지막 단계에는 인도네시아공화국(Republik Indonesia)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건을 강화하고 동인도네시아국(Negara Indonesia Timur)및 동수마트라국(Negara Sumatra Timur)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단일국가를 형성 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50. 5. 19. 단일국 가로 통합에 합의하고 이를 1950년 잠정헌법으 로 공포하고 다시 단일국가가 되었다. (4). 제4공화정 1945년 헌법으로 복귀(1959. 7. 5. - 1999. 10. 19.) 1950년 잠정헌법은 문자 그대로 임시 헌법이었 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헌법국회의원을 선출하 고 1956년 11월 10일 반둥에서 헌법국회가 개원 하고 새 헌법제정을 노력하였으나 중요한 이슈에 대하여 통과선인 2/3에 미치지 못하여 국론이 분 열되고 헌정혼란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당시 수까르노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헌법국 회가 1945년 헌법을 국가의 헌법으로 채택해달라 는 권유를 헌법국회에 보냈다. 그러나 헌법국회에 서 의결선인 2/3에 미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사 태가 계속되자 디포네고로 왕자도 디포네고로를 마침 내 생포했다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에 걸려 있 었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소. 술 탄 또는 내가 죽든 살든 라덴 마스 라압(Raden Mas Raab)을 위시하여 마르타느가라 장군(Basah Martanegara)과 끼아이 바다루딘(Kyai Badarudin) 등이 디포네고로 왕자의 등 뒤로 도 열했습니다. 한편 네덜란드 측에서는 드콕 장군 을 비롯해 발크 주지사(Resident Valk) 루스트 중령(Letkol Roest) 망꾸부미 왕자에 못지 않은 중요한 직책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6월 9일 네덜란드군이 강력한 폭탄을 터 뜨려 성벽 일부를 무너뜨린 후 성안으로 밀려들자 전황은 디포네고로군에게 급격히 불리하게 전개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계속된 전투에서 많은 희 생자를 낸 디포네고로군은 크게 패한 채 물러나야 했고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수비를 위해 700명 의 병력을 남겨두었으나 디포네고로군은 더 이상 탈환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1826년 7월 8일 네덜란드군은 쁠레레드 승전의 여세를 몰아 다시 덱소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 나 이번에도 미리 정보를 입수한 디포네고로는 이 미 까수란(Kasuran)으로 본진을 옮긴 상태였습 니다. 하지만 이번엔 네덜란드군을 회피하는 것만 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덱소를 더 이상 점령하 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네덜란드군이 7월28일 족 자로 철수하던 길에 디포네고로군은 회심의 기습 작전으로 적 부대의 허리를 끊었습니다. “알라후 악바르!” 쁠레레드 전투 삽화 (https://en.wikipedia.org) 디포네고로 전쟁 네덜란드 지원을 협의하는 마두라 술탄과 재상 (https://m.kiblat.net)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3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수풀 속에서 느닷없이 뛰어나와 아귀처럼 달려드는 디포네고로군은 앞 서 몇 번의 승전으로 자만에 차있던 네덜란드군 을 강타했습니다. “적장을 잡아라! 쁠레레드에서 당한 것을 철저히 갚아 주어라!” 이 전투에서 코치우스 대령과 족자 끄라톤의 두 왕자가 처참하게 전사했고 네덜란드군 사령관 환 긴(van Geen)은 간신히 목숨만 살려 수하 몇 명 과 도주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네 덜란드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디포네고로 군은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후1826년 내내 네덜란 드와 망꾸느가라안 봉국의 군대들을 맞아 승승 장구했습니다. 바글렌에서도 농민군이 네덜란 드군을 몰아냈고 끄지완(Kejiwan)에서도 베이 왕자(Pangeran Bei-조요꾸수모 왕자)가 승전 보를 전해왔습니다. 족자 북동부 방면의 들랑구 (Delanggu) 지역에서는 양쪽의 대군이 맞붙는 매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전황이 디포네고 로군에게 크게 유리해지면서 네덜란드군을 헤치 고 나가 결과적으로 ‘들랑구 대첩’이라 불려 마 땅할 큰 승리를 거둡니다. 여기서 디포네고로군은 수십 정의 소총과 12문의 화포를 노획했습니다. 그후 한동안 네덜란드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 자 디포네고로군 전략고문이 되어 있던 끼아이 모 조의 제안에 따라 디포네고로 왕자는 수라카르타 지역에서 망꾸느가라안 봉국에 대한 대규모 공세 를 조직했습니다. 네덜란드측에 가담해온 망꾸느 가라 2세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술탄 전하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왕 궁의 충신들이 하나 둘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습 니다. 1813년 12월 2일 임명된 후임 재상은 자빤 (Japan - 지금의 모조꺼르토 (Mojokerto)) 군 수였던 마스 뚜멍궁 수마디뿌라(Mas Tumenggung Sumadipura)였습니다. 그는 아직 30대 초 반의 젊은 영주였어요. 대개는 전임 재상의 자식 이나 피붙이 중 한 명을 선택해 다음 재상을 대 물림시켰지만 디포네고로 왕자는 당시 모조꺼르 토를 동부자바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드 는 수완을 발휘한 수마디뿌라를 족자 술탄국 내 정을 관장할 재상으로 직접 발탁한 것입니다. 그 에게는 ‘다누레죠 4세 재상’이라는 칭호가 붙 었습니다. 그러나 일천한 가문과 배경을 가진 그를 왕도의 고위 귀족들이 순순히 재상으로 떠받들었을 리 없 습니다. 기득권 귀족들의 시기를 한몸에 받은 재 상은 한껏 풀이 죽어 처음엔 크고 작은 실수를 저 지르며 대전에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므 로 디포네고로 왕자가 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다누레죠 4세 재 상도 끄라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37 년간이나 머물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에측하지 못 했습니다. 그가 디포네고로 왕자와 평생의 원수가 되리란 사실도 말입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의 건강은 날로 더욱 악화되 어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대 술탄들이 가졌던 인도네시아 전통 와양 인형극에 등장하는 아 르쥬나(좌)와 크레스나(우) 출처- https://wayang.wordpress. com/2010/03/07/jatidiri-dan-sikaphidup-kresna-27-kedudukan-dan-sikapkresna-dalam-masyarakat/ 22 I 한인뉴스 2024년 5월호 용기와 배포를 전혀 닮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자식들 대부분이 자신의 유약함을 그 대로 빼어박은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는 일어나지 못할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 매일 문 안오는 디포네고로를 만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굳은 심지 를 가진 큰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들아 바글렌 반유마스 마디운 분리 비서관 드스튜어즈 소령 (Major Ajudan De Stuers) 등과 함께 나타났 고 룹스 대위(Kapten Roeps)가 회담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우연이었을까요? 센똣과 클레이런스 대령은 이 날 자리에 없었습니다. 라덴살레가 그린 디포네고로 왕자의 체포 24 I 한인뉴스 2025년 7월호 한편 또 다른 방에서는 반 레이우벤 중령(Letkol De Kock van Leeuwen)이 이끄는 일단의 네덜 란드군 장교들이 디포네고로군 장교들을 상대했 습니다. 오직 두페론 중령만이 드콕 장군의 비밀 지령에 따라 주지사 청사 바깥에 언제 떨어질지 모를 기습공격 명령에 대비해 은밀히 병력을 집결 시켜 두고 있었죠. 이윽고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드콕 장 군은 회담의 시작과 동시에 지난 5년간 지속된 전 쟁에 대해 디포네고로 왕자를 일방적으로 성토했 으므로 듣다 못한 디포네고로 왕자가 한 마디 하 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적의만 가지고 있 다면 차라리 전쟁을 계속할 것이지 왜 이런 평화 회담을 하려는지 모르겠소. 장군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여길 오지 말고 차라리 바글렌으로 돌 아가 전투를 준비하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드콕 장군도 회의장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긴 그의 진영 한복 판. 그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습니다. “자바땅에 이슬람 지도자가 지배하는 단일 독 립국가를 세운다는 건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일 이오. 단일 독립국가라니! 족자 술탄국이나 수라 카르타 수난국도 동의하지 않을 게 틀림없소.” “드콕 장군 산과 들은 물론 그들의 부대 안에도 있을 것이란 의구심이 네덜란드군 고위 장교들 사 이에 팽배했습니다. 디포네고로는 그 사이 덱소에 본진을 갖추고 부대를 재편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 비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I 21 1825년 말 디포네고로군은 이모기리를 공격하 던 네덜란드군을 격파했고 족자술탄국 동쪽 지역 에서는 뚜멍궁 수로네고로(Tumenggung Suronegoro)가 이끄는 군대가 네덜란드군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많은 소총과 화포들을 노획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족자 술탄국 서편에서는 전열을 정 비한 네덜란드군이 덱소의 디포네고로군 본진을 포위해 들어왔습니다. 치열한 방어전에서 적잖은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디포네고로군은 네덜란 드의 예봉을 잘 막아냈습니다. 쁠레레드(Plered)는 1677년 마두라의 뜨루노 조요 왕자가 이끈 반란군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마 타람 까르타수라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왕가의 인물인 디포네고로 왕자에게 매우 의미깊은 곳이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디포네고로는1825년 쁠 레레드를 손에 넣은 후 몹시 기뻐하며 덱소의 본 진을 쁠레레드로 옮겨오기까지 했습니다. 디포네 고로군이 이동과 기동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릴 라전 위주의 군대였다 해도 본진의 잦은 이동이 번거롭지 않을 리 없었지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쁠레레드에 입성했습니다. 그곳에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모든 백성들과 귀족들 삼권분립이 되어 있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I 57 회의원으로 구성하며 세금 센똣 알리바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절 대 마글랑으로 따라 나서시면 안됩니다.> 그 사이 센똣의 일행 중 어떤 인물로부터 이렇 게 자바어로 적힌 쪽지가 전달되어 오기도 했습니 다. 센똣이 지휘하는 삐닐리 부대 안에서도 심정 적으로는 여전히 디포네고로를 지지하는 이들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서 마글랑으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디포네고로 왕자는 더욱 분명 히 알게 됩니다. 다음날 그는 지휘관들을 불러 모 았습니다. “난 오늘 마글랑으로 들어갈 것이오. 나와 함께 출발할 호위대는 100명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아놈 왕자의 지휘 아래 주둔지를 정리하고 부대를 산개시켜 전투에 대비하시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험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디포네고로 왕자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하게 했을까요? “전하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노술탄께서 족자에 돌아오셨다는 것 말입니다.” 수라카르타 접경의 동쪽 지역으로 군대가 이동 하던 중 알리바사(사령관) 센똣 쁘라위로꾸수마 가 디포네고로 왕자의 말을 따라잡으며 우려섞인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일찍이 영국이 유배시 킨 노술탄 하멍꾸부워노 2세를 네덜란드가 족자 로 다시 불려들이기 위해 삐낭섬에 사람을 보냈다 는 소문이 그 사이 자바 술탄국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1826년 9월 21일 족자에 도착해 다시 술탄으로 즉위한 것입니다. “하멩꾸부워노 5세 전하를 폐위하고 노술탄께서 다시 즉위하셨다는 소문에 귀족들 사이에 동요가 있습니다. 특히 망꾸디닝랏 왕자님은 끄라톤으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모 양이고요.” 노술탄과 삐낭섬에 함께 유배되던 중 탈출해 우여 곡절 끝에 족자 술탄국에 돌아온 망꾸디닝랏 왕자 는 디포네고로군의 정예부대 중 하나인 삼비로조 (Sambirojo)의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하멍 꾸부워노 왕가의 상당한 위치에 있던 그의 동요는 디포네고로군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분으로선 다시 뵐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 버님이 돌아오셨으니 만감이 교차하겠지.” 다음 호에 계속 수라카르타 등지에서 벌어진 농민군의 저 항에도 맞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엘 중령(Letkol Diell)! 자네는 반유마스 의 반군들을 진압하고 수리아디닝랏 왕 자(Pangeran Suryadiningrat)가 쁠레레드를 다 시 공격해 왔습니다. 네덜란드군 클리렌스 대령 덱소 22 I 한인뉴스 2024년 12월호 하지만 쁠레레드의 강고한 방어력에 네덜란드의 초반 공격은 무위에 그쳤습니다. 쁠레레드의 방 어선엔 용맹스러운 소년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총 사령관 ‘알리 바사 쁘라위라디르조(Ali Basah Prawiradirjo)라 불리는 센똣 쁘라위라꾸수마 (Sentot Prawirakusuma)였습니다. 그는 당시 19살이었어요. 디포네고로의 다섯 번째 부인 라 덴 아유 렛나닝시의 이복동생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멍꾸부워노 2세의 사위이자 디포네고 로 왕자의 장인어른이기도 한 라덴 롱고 쁘라위로 디르조(Raden Ronggo Prawirodirdjo)였고 앞 서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일찌기 마디운 반란의 수괴로 몰려 덴덜스 장군(General Daendels)에 게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 드를 극도로 미워한 센똣이 일찌감치 디포네고로 군에 합류해 끼아이 모조 시(Kota) 및 군(Kabupaten) 단위로 구분하고 있으며 아동들은 수웰라(Suwela)라는 지 역으로 소개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텅 빈 슬라롱 에 도달한 네덜란드군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 므로 디포네고로군의 정보력과 기동력에 혀를 내 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포네고로가 심어놓 은 눈과 귀가 아무리 그들이 원한다 해서 디포네고로가 술탄이 되는 것을 영국이 승인할 리 없다는 사실 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포 네고로 왕자가 어떤 식으로든 왕국의 미래를 일정 부분 좌우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 멍꾸부워노 3세는 마주 잡은 아들의 손을 꼭 쥐며 엷은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하멍꾸부워노 3세는 두 번째 즉위 후 불과 2년 만 인 1814년 11월 3일 아버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왕국 의 술탄이 아니라 이민족들을 모두 몰아낸 자바땅 전체의 술탄이 되겠습니다.” 그 말은 또 다시 족자 술탄국의 왕좌를 거절한다 는 의미였죠. 하지만 그의 말속에 담긴 원대한 포 부에 하멍꾸부워노 3세는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 꼈습니다. 사실 하멍꾸부워노 3세도 아직도 술탄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느냐?” 디포네고로 왕자는 부왕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 었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뜨갈레죠를 방문한 라덴 아유 무르실라(Raden Ayu Mursilla)는 돌아가신 술탄 하멍꾸부워노 3 세의 여동생으로 이모기리의 묘소를 돌아보고 수 라까르타 가까이의 빠장(Pajang) 집으로 돌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열 살 남짓한 아들과 동행하고 있었어요. 작은 몸집에 초롱초롱한 눈 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무슬림 모하마드 칼리파 (Muslim Mochammad Khalifah)라고 했습니다. “좋은 이름을 가졌구나.” 선지자의 이름을 딴 아이의 이름은 이미 그가 아 주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에 푹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슬림이란 알라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하마드는 선지자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수마디뿌라공(公) 어찌 저희 같은 것들을 돌아보시려 이런 험지에 들어오십니까?” 렛나닝시는 남편의 모습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 으며 울음을 터뜨렸고 디포네고로 왕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와 아이들을 보듬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는 별도의 공식 행사나 회합도 없이 금식월의 마지막 며칠간을 쁘상그라한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도록 네덜란드 측의 양해를 얻었습니다. 그가 샤왈월의 첫날 이둘피트리까지 지내는 동안 그와 동행한 다른 왕자들과 호위병들이 쁘상그라한의 안팎을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샤왈월 둘 째날인 1830년 3월 28일 아침 7시 디포네고로 왕자가 마글랑 중심부에 있는 꺼두(Kediu) 주지 사 청사에 나타났습니다. 머노레에서부터 극구 동 행해 온 세 아들 즉 아놈 왕자와 라덴 마스 죠나 드(Raden Mas Jonad) 예산입법 기능과 감독 기능을 보유 하고 있다. 가. 국회는 매년 최소 1회 개회한다. 나. 모든 법률안은 공동 승인을 얻기 위하여 국회 와 정부가 공동으로 심의한다. 다. 공동 승인을 얻지 못한 법률안은 폐기되며 동 일 회기에 재 상정하지 못한다. 라. 공동승인을 득한 법률안은 대통령이 공포한다. 법률안이 공동승인을 얻은 지 30일 이내에 대통 령이 법률로 공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발효한다. 마. 모든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권이 있다. 그러 나 국회의원이 제출한 법률안이 국회의 동의를 얻 었을지라도 대통령이 공포를 거부하면 폐기되며 동일 회기에 국회에 재상정하지 못한다. 바. 불가피한 특수한 사항에 대하여 대통령은 비 상조치령을 내릴 수 있으나 대통령은 내린 비상조치령에 대하여 차기 국회에 서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 승인을 얻지 못하는 경 우에는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사.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의견 표현 과 표결에 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부여되어 있다. 6. 지방대표회 / DPD 인도네시아 입법부의 특이한 제도가 지방대표 국 회(DPD)이다. 지방선거구 단위로 국회의원을 뽑 아 국회를 결성하게 하고 이건 함정이기 쉽습니다. 센똣 알리바 사는 배신자입니다. 그의 약속을 믿어서는 안됩니 다.” “그러니 전투를 대비하라는 것이오. 내가 마글 랑에서 회담의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이곳 머노레 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할 것이오. 난 알리바사도 네덜란드도 믿지 않소. 난 오직 신을 믿을 뿐이오. 그분이 우릴 여기까지 이끄셨다면 이제 부딪혀 볼 도리밖에 없지 않소?” “아버님 이슬람 울라마들의 강권에 따라 ‘자바 땅의 술탄 압둘하미드 헤루짜 끄라 아미룰묵미닌 사이딘 빠나따가마 깔리파뚤 라’ (“Sultan Abdulhamid Herucakra Amirulmukminin Sayidin Panatagama Kalifatullah Tanah Jawa)라는 칭호의 술탄으로 추대받았습 니다.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붙였던 ‘압둘 하미 드’라는 이름도 녹아든 이 긴 칭호는 그가 자바 의 칼리파임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옛날 아버지 하멍꾸부워노 3세의 임종 당시 약속 했던 것처럼 족자 술탄국이라는 일개 왕국의 국왕 이 아니라 자바 전체를 아우르는 이슬람 왕국의 술탄이 된 것입니다. 그는 쁠레레드에 견고한 방 어선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1826년 4월 16일에 망꾸느가라안 봉국 의 군대가 쳐들어와 디포네고로군의 쁠레레드 방 어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일단 순순히 후퇴한 디포 네고로군은 얼마 후 네덜란드가 물러난 후 다시 쁠레레드를 차지했지만 그해 6월 6일 마두라 군 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코치우스 대령(Kol Cochius)의 네덜란드군과 족자 끄라톤에서 출정한 수리아 왕자(Pangeran Suria) 인 도네시아 영토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에게 인 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헌법(Undang-Undang Dasar/UUD) (2) (330회) (전호에서 계속) 라. 독립 이후의 헌법 (1). 제1공화정 1945년 헌법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민족의 지도자 수 까르노(Soekarno)와 무하맛 핫따(Muhamad Hatta)는 인도네시아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을 선포했으며(*독립을 선포하는 수까르노와 무하 맛 핫따의 기념 동상이 중부 자카르타 뻐강사안/ Pegangsaan에 서 있으며 Rp.100 인도네시아는 법치 국가이다”라 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호는 대 한민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주권은 국민에 게서 나온다고 주권재민 사상을 구체적으로 규정 하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헌법에는 주권은 인민에 게 있다고 주권의 보유 주체는 인민이라고 규정하 고 있으나 주권의 근원은 밝히지 않고 있다. 주권의 보유 주체에 대한 용어도 인도네시아 헌법에는 통 상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인민(Rakyat)이 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나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국 적을 보유하고 있는 자를 의미하는 구체적인 용어 인 국민(Warga Negara)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3. 입법부(LEGISLATIF) 인도네시아 입법부는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식 단원제도 아니고 미국식 양원제도 아닌 특 이한 삼원제이다. 그러나 각각의 기능이 상이하 므로 삼원제라는 호칭보다는 다원제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입법부는 국민협의회(MAJELIS PERMUSYAWARATAN RAKYAT / MPR)와 국회(DEWAN PERWAKILAN RAKYAT/DPR) 및 지방대표회(DEWAN PERWAKILAN DAERAH/DPD)로 구성된다. 이 승 민 변호사 . 변리사 yisngmin@gmail.com YSM & PARTNERS 지 않고 입법 기능 자연자원 및 다른 경제자 원 개발 및 중앙과 지방간의 균형 재정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하여 법률안을 제출하고 국회와 공동 심의 할 수 있으며 자연자원 및 다른 경제자원 개발 및 중앙과 지방간의 균형 재정 전체 국가예 산의 20%를 교육비 예산으로 배정해야하며 전체가 41조밖에 되지 않은 간 단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2) 제2공화정 인도네시아 합중국 헌법(1949. 12. 27. - 1950. 8. 27.) 인도네시아 역사에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네덜란드에 대한 독립전쟁 기간으로 기록하고 있 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 후 이틀이 지난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독립 을 선포한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 립을 인정하지 않고 재점령하기 위하여 영국군의 지원을 받아 1947년 1차 침공 정부통령 의 심신건강 조건 추가와 정부통령의 선출방법을 간선을 버리고 국민 직접 선거방법을 채택한 것 과 제가 아버님을 호위하겠습니다.” 디포네고로의 아들 아놈 왕자가 호위대장을 자 청했습니다. 회의장엔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내가 마글랑에 들어가든 그렇지 않든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국민의 주권 행사는 헌 법에 의거하며 주권재민 실현을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가 인 도네시아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으면 다시는 그러 한 말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1998 년 5월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 후 민주화 개혁을 향한 헌법 개정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주민을 인도네시 아 국민과 인도네시아 영토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 국 국적 보유자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 민에게 국가 수호의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고 중앙정 부와 지방자치 정부와의 관계 중앙정부 와 지방자치 정부와의 관계 지금까지 애매모 호하여 혼란을 빚었던 국군과 경찰의 임무를 국군 은 국방의 임무를 경찰은 치안질서 유지 임무라고 명확하게 그어주고 있다. (다). 2001년 11월 3차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 은 국민협의회의 위치 및 임무 변화와 지금이라도 항복의 뜻을 밝히고 전국의 수하 들에게 무장해제를 명령힌다면 그대의 형량도 참 작될 것이고 그대의 수하들도 더 이상 목숨을 잃 는 일이 없게 될 것이오.” 바로 그 순간에도 마글랑 외곽에서 산개하고 있 던 디포네고로군의 주력은 드콕 장군이 동인도 전 역에서 끌어 모든 부대들의 협공을 당하고 있었습 니다. 그 역시 드콕 장군이 오래동안 준비해 온 작 전의 일환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군은 요새들과 통신로에서 튀어나온 적들의 맹공을 받아 밀리기 시작했고 남은 지휘관들은 마글랑에 들어간 디포 네고로 왕자 일행의 운명이 어떤 파국을 맞이한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 이름은 깐젱 술탄 압둘하미드(Kanjeng Sultan Ngabdulkhamid)! 나는 자바땅 이슬람의 수호자로서 신에게 불충한 자들을 처분할 의무를 다할 것이다!” 손발을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디포네고로 왕자는 드콕 장군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19세기 유럽에서 명성을 떨쳤던 동인도의 귀족 출신 화가 라덴 살레(Radeh Saleh)는 많은 시간 이 흐른 후 디포네고로의 체포장면을 전해 듣고 애통해 하며 이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그 림 속에서 디포네고로 왕자는 많은 추종자들이 울 부짖는 가운데 강제로 끌려가는 순교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지방대 표국회(Dewan Perwakilan Daerah/DPD) 지방자치 정부의 구성 지붕 위에 다 시 지붕을 둔 것 같이 여겨지지만 인도네시아 사 람들의 의견은 우리의 시각과 다르다. 당의 공천 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은 분명히 민선의원이지 만 당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국회의원 자신의 의견 이나 뽑아준 선거구의 이익보다는 소속 당의 이익 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으니 청 사의 넓은 홀에서 근거리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총성이 들려왔 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를 호위해 왔던 부대가 몰래 전개한 두페론 중령의 부대에게 포위공격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 했던 네덜란드군의 기습작전에 마글랑에 들어온 디포네고로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렸고 두 페론 중령의 부대 중 중대규모 병력이 청사 안으 로 뛰어들어 오면서 디포네고로 왕자와 그 일행들 도 수에 밀려 모두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마글랑의 꺼두 주지사 청사. 1830년 3월 20일 디포네고로 왕자가 사로잡힌 곳 (https://kerisnews.com)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25 “계속 저항한다면 당신 수하들의 목숨이 무사 하지 못할 것이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자신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덫에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안전을 보장하겠다던 클레이런스 대령과 센똣 알리바사는 어디 있소? 그들을 데려와 보시오!” 머리와 어깨의 부상으로 피를 철철 흘리던 아놈 왕자가 그렇게 소리치자 그의 머리에 총을 겨군 네 덜란드군 장교는 웃음을 흘리며 빈정거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소? 우린 모르는 일이고 그들은 지금 마글랑에 없소이다.” 전형적인 발뺌이었죠. 디포네고로 왕자는 네덜 란드 측이 한 약속을 조금이나마 신뢰하려 했던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교들 뒤로 몸을 피했던 드콕 장군이 다시 앞으 로 나와 무장해제 당한 디포네고로 일행 앞에 섰 습니다. 그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지 만 지난 5년간 염원했던 바 최초 로 1999년 10월 19일 1차 헌법 개정이 실현됐다. (5). 과도기 헌법(1999. 10. 19. - 2002. 8. 10.) (가). 1999년 10월 1차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의 임기를 5년x2기 최장 10년으로 제한하 고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들 수 있다. 수하르또의 32년간의 장기 집권으로 인한 해악을 임기 제한 으로 막자는 취지의 개헌이다. (나). 2000년 8월 2차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지방자치제 실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다. 지 방자치는 주(Propinsi) 클리렌스 중령(Letkoll Cleerens) 자네는 뜨갈과 뻐깔롱랑으로 나가 적 들이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게 하시오!” “사령관 각하 한편 디포네고로 왕자는 끄라톤에서 술탄 하멍꾸 부워노 3세의 정무고문이자 권한 대리인의 역할 을 했습니다. 그런 디포네고로의 행동을 눈여겨 본 네덜란드의 족자 주지사 존 크로퍼드가 1812 년 말경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능하고 협조적이니 차기 술탄으로 적합할 것 같다는 추천의견을 바타 비아에 보냈고 며칠 후 레플스 총독대행이 직접 디포네고로에게 족자 술탄국의 태자 지위를 제안 해 왔습니다. 엄연히 왕위를 지키고 있는 부왕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태자며 차기 술탄을 거론하 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수 백 년간 자바땅을 좀먹어 들어오던 네덜란드 못지 않게 왕국을 유린하고 술탄 왕가를 그토록 가볍게 여기는 영국을 디포네고로는 괘씸하기 짝이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들키지 않 도록 안으로 갈무리하며 그는 총독대행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후궁의 아들입니다. 족자 술탄국은 더 훌 륭한 태자가 필요한 나라고요.”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후궁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배동선작가의 술술 읽히는 인도네시아 역사 9 않았습니다. 그는 이민족들이 내미는 선물에는 반 드시 독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고 이 를 완곡히 거절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핑계가 필 요했던 것뿐이었죠. 영국 측은 인품도 있고 왕실 장악력이나 백성들에 대한 영향력에서 손색이 없 는 디포네고로 왕자가 자기들 편이 되어준다면 금 상첨화였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디포네고로는 깊은 이슬람 신앙 위에 합병에 관한 사항 헌법 개정에 관한 규정을 완화시켰다. *1999년부터 3년간 4차에 걸친 헌법 개정 결과 로 개정 전에 총 41조 77개 항이던 1945년 헌법 은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개혁 여망에 부응하 여 현재 총 78조 199항으로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많은 향상을 이루었다. 2. 국가 정체 및 주권 헌법 제1조는“인도네시아 국가의 형태는 공화국 이며 헌법 재판소(Mahkamah Konstitusi/MK)와 사법위원 회(Komisis Yudisial/KY)을 신설했다. (라). 2002년 8월 4차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 은 국민협의회의 구성을 국회의원과 지방대표국 58 I 한인뉴스 2024년 2월호 4. 국민협의회/MPR 국민협의회는 그 직무를 보면 “헌법의회” 라고 호칭하면 이해가 더 쉬어진다. 국민협의회는 i). 헌법을 제정·개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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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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