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 Ever Ind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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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 서도 인도네시아 생태를 주제로 한 <인도네시아 생태 이야기> 문학상을 추가했으며 26년 동안 모태솔로인 나는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 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2부는 앙클룽 연주단이‘아리랑’과 ‘벙아완 솔로’를 연주하 며 시작되었다. 청소년부 시상 후 Bali 전통춤 ‘Tari Cendrawasih’와 ‘Gending Sriwijaya’를 감상하고 일반부 시상이 이어졌다.‘자카르타 경로당’으 로 대상을 수상한 서상영 씨는 자카르타에서‘미 르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로 2부는 채인숙 시인과 장대영 팀리더가 맡았 다. 행사에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예술인의 공연이 이어졌으며 2시간 정도 기다린 후 드디어 공연장에 들어갔 다. 너무 설레서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3층이에요.”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을까. 시험실에 들어가서도 내 자리를 바로 찾지 못하고 두 번이나 헤맨 끝에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순간 ‘내가 그냥 바 보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험은 아직 시작 도 안 했는데 벌써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다니 47년간 인도네시아에 거주해 온 한인으 로서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의 한국 이야기> 공모전을 후 원한 《PT. System Ever Indonesia》 권오철 대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새로운 다리가 될 작품들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0년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을 시작 으로 7개월 동안의 고단함과 그리움이 마법처럼 녹아내렸다. 그리고 또 하나 반가운 우리 집 고양이. 몇 달 사이 새끼 호랑이처럼 자랐지만 PT System Ever Indonesia에서 통번역사로 취업했 다. 한 달 동안 자카르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나 이키 신발 생산하는 회사와 진행하는 프로젝트 때 문에 수카부미로 내려갔다. 나는 회사 안에서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사이 의 소통을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직 장 생활은 물론 복잡하다. 매주 1-3번이나 회의 통역사로 맡으면서 새로운 단어에 당황한 적도 있 다. 하지만 엄마 말씀에 따라 주재원에게 “조금 더 쉬운 말로 설명해 줄 수 있으세요?”라는 말 이 필수다. 빠른 발음과 억양도 또 다른 장애물이 다. 회의 끝나고 회의록 System Ever Indonesia 한인뉴스 2025년 6월호 I 51 생들을 줌 플랫폼으로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에 대 한 얘기 System Ever Indonesia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57 솔직히 그 당시에는 울고 싶어도 울고 있을 짬 이없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배우면서 더 쉬워지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힘든 점이 있는 만큼 행복한 점도 있다. 특히 회 의를 통역할 때 눈을 맞추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참석자의 반응을 보면 마냥 행복했다. 내가 통역 한 말을 이해하는 표현이다 싶었다. 이 작은 몸짓 에 안도감을 느꼈다. 감사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특히 처음으로 인 도네시아에서 근무하거나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는 한국인 주재원들에게 통번역사 역할은 중요하다. 주로 프로젝트 관련 상황에서 번역이나 통역하 지만 실제로는 개인적인 일도 부탁을 해오곤 한 다. 보건소나 병원 일정이 있을 때 UNAS)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고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3] 고양이 카페부터 콘서트까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4] 꿈에서 현실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5] 7개월 만에 찾은 그리운 고향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6] 한글 스토리에서 토픽 시험까지: 나만의 특별한 한글날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s 아 증 의 코. 인 사 이 드 10월 9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7] 이 다정함이 모여 아주 조금만 더 행복해지길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s 아 증 의 코. 인 사 이 드 3월 3일. 거래처 회사로 첫 출근을 한 날이 엊그 제 같은데 ‘2024년 문학상 시상식 및 문화예술공연’ 성황리 개최 한인뉴스 2024년 10월호 I 57 《PT. System Ever Indonesia》《PT. Freight Cargo Logistics》《PT. Pratama Abadi Industry》《F1 Logix》《재인니한인중소기업협 의회(KOSA)》《한국자유총연맹》 《인-한청년기업가협회》에서 후원하는 “꿈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한국어로 일하기로 했다.” 엊그제 같던 2024년이 지나고 “또 보고 싶을 거예요” “아증 님 “여러 분들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빠가 무대에서 사라진 뒤 벅찬 감동에 눈물이 살짝 흘러내렸고 “저 문법은 어떻게 쓰는지”에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한인뉴스 2025년 11월호 I 65 그래서 기초를 놓쳐 중간에 어려운 단어를 만나면 더듬더듬 발음하는 학생들을 자주 봤다. 중급 학 생인데도 문법 사용은 잘하지만 발음이 여전히 틀 린 경우도 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운 지 10년이 된 나도 읽기가 완벽하지 않다. 올해는 지난 토픽 성적을 갱신하기 위해 두 번째 시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2년 전보다 공부를 덜 했다. 회사에서 회의와 교육이 잦아져 집에 돌아 오면 너무 피곤해서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 웠다. 공부 방법은 2년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제가 요즘 생각이 많은데 집에서 쉬는 것보다 에리들을 만나는 게 오히려 더 좋아요” “콘서트할 때 에리들한테 힘을 받 아요”라고도 했다. 에리들은 그 말 만으로도 뭉클해 졌다. 어떤 팬분 이 “잘했어요!” 라고 외쳤고 《Historika Indonesia》 Abdul Basyith 회장 《PT. Pratama Abadi Industry》정차운 이사 《PT. System Ever Indonesia》권오철 대표 《UNAS》정수아 교수 《UPI》Didin Syamsudin 교 수 《민주평통동남 아남부협의회》최태립 부회장 《인한친선협회》 Adhi Wargono회장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이선아 교장 《재외동포청》《재인도네 시아한인회》《무궁화유통》《영림원소프트랩》 한인니문화연구원 《재인니한인중소 기업협의회(KOSA)》장윤하 회장 《재인도 네시아한인회》박재한 회장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수석부회장 이자《무궁화유통》김종헌대표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관》박수덕 공사와 이성호 《중국여성협회》Surijaty 등 기관 《한-인니산림협력 센터》조준규 센터장 가 슴이 뭉클했다. 동생이 내 짐을 번쩍 들고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리는 동안 가끔 포기하고 싶은 생각 들은 이 삶을 헤쳐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기 마련이지! 사위가 어두워지면 복잡한 생각이 드는 나에게 딱 맞는 책이다. 지금은 나 자신과 일에 집중해도 괜찮다. 창밖에 내리는 밤비에 나의 외로움도 씻겨 내려가기를. 한 권의 책 같은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에는 분명 히 가슴 뛰는 근사한 일이 일어날 테니까.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놀 수 있어서 정말 반 가웠고 고생이 많네. 밥부터 먹자.”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에게 건네는 말이 어찌 나 반갑던지. 도시로 취직한 딸에게 거의 매일 문자 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주는 엄마를 만나니 고향으로 돌아 온 게 실감났다. 한인뉴스 2025년 10월호 I 65 그런데 전에 없던 것들로 장식된 벽이 눈에 띄었 다. 바로 내 졸업식 사진들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가 도시로 취직한 딸이 자랑스럽다며 붙여 놓 으셨단다. 손님들이 집에 와서 “사진 속에 아이 는 누구요?” 물을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대답하셨단다. “제 딸이에요. 자카르타에서 한국어 통번역사 로 일하고 있어요.” 다음 날은 가족 모임이 있어 할머니 댁으로 갔 다. 할머니 과연 1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있 었다. 그럼에도 나는 직장을 선택했다. “그래 그게 좋잖아.” 엄마의 말에 나는 다시 물었다. “근데 난 아직 자신이 없단 말이야. 일을 할 때 실 수하면 어떡해?”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그리 고 아이샤의 친구 니다와 함께 자카르타한국국제 학교로 향했다. 호텔을 나설 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다양한 민족적 특성을 깊이 이해해 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의 사업가적 경험을 전하며 그리고 쓰기에서 중요 한 문어체 표현까지 모두 온라인 자료를 활용해 정리했다. 첫 도전이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열 심히 공부했고 그리고 올해 는 꼭 입학하겠다고 다짐했던 나. 그런데 그와 동 시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회사로부터 입사 소 식을 받게 되었다.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에 선 셈 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집이 좀 셌다. 16살부터 품 어온 유학의 꿈이 내겐 우선이었다. 직장 생활은 그 다음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좋아하게 되었고 한 국어를 몰라서 방송을 봤을 때 인도네시아어와 영 어 자막을 꼭 붙였다. 이 답답함을 풀 방법은 하 나였다. 이 언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에는 지금처럼 온라인 한국어 수업이 많지 않았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집이나 교실에서 유 튜브와 한국어 공부 웹사이트 보고 한국어를 꿋꿋 하게 공부했다. 당연히 매일 한국 방송과 노래를 즐기면서 새로운 어휘도 배웠다. 그만큼 한국어 공부를 누구보다 좋아했고 그만큼 내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김치전은 물론 밥이나 라면을 먹을 때도 김 치는 빠질 수 없으니까! 무궁화 슈퍼에는 할랄 재료가 많진 않지만 꿈까지 듣고 끝없이 펼 쳐진 푸른 물결이 눈앞에 일렁였다. 오직 이곳에 서만 볼 수 있는 그 아름다움 앞에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복잡했던 머릿속은 파도 소리에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꿈을 좇아 멀리 자카르타까지 왔지만 나 는 앞으로도 한국어 공부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다. 나 에게는 집이다. 롬복 공항에 닿기도 전에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 는 롬복의 바다와 산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비행 기 문이 열리자 나는 공연장을 나왔다. 정말 소중한 2시간 30분 이었고 나는 롯데몰 에 있는 광야 자카르타로 걸음을 옮겼다. 간단히 말하면 광야는 SM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과 Pink Blood (팬들의 애칭)의 세계라고 보면 된 다. 일종의 굿즈샵이자 팬을 위한 체험 공간 같 은 곳이다.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s 아 증 의 코. 인 사 이 드 한인뉴스 2025년7월호 I 57 8월 16일 나는 이제 또 다 른 삶의 장면 속에서 눈을 떴다. 한국 유학을 가고 싶다는 오랜 꿈 나도 남자친구가 필요한가?”라 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긴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나만 혼나는 것도 아니니 너무 힘들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일 더 잘하면 된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 했다. 원래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봐도 위로가 되 고 회복이 빠르던 내 일상이 멈춘 듯한 기분에 시 달렸다. “설마 나에게는 새롭 고 정말 큰 도전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짜릿함”이다. 내가 좋아하 는 한국어와 모국어를 매일 쓸 수 있다는 점이 참 행복하다. 내 실력이 그만 큼 충분하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나는 유학의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잠시 네 Home Ground.” 에스파의 Next Level 가사처럼 네가 사고 싶은 것 도 사고 노래로 서로 의 응원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감 동적이다. 특히 오빠는 SNS에서도 그렇고 콘서트 때도 에 리들과의 소통을 가장 좋아한다. 같이 노래하고 춤 추라고 하며 질문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어 니은 다시 만나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과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이 기분을 잃지 않겠다. 다시 수카부미로 돌아왔다. 한글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꿈을 시작했다는 사실 은 다행 히 내가 필요한 건 거의 다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자카르타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1박 2일의 짧은 힐링이었지만 몸과 마음이재충 전되는 시간이었다. 자카르타는 분주하고 정신없 는 도시지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다행히 5급을 취득할 수 있었다. 2024년에는 귀한 기회를 얻어 기초 한국어반 TA를 맡아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기초는 읽기가 제일 중요합니다.”라고 말씀하 셨다. 문법을 배우기 전에 한글을 제대로 익히고 발음해야 한국어를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다고 하셨다. 기초반 학생들은 마음이 급해서 한글을 대충 배운 경우가 많다. “이 문법은 언제 배우는지” 단체 외에도 학계 더 귀여워졌다! 엄마가 만든 밥을 먹고 고양이한테 밥을 챙겨주 며 익숙한 가족의 온기를 느끼자 드디어 자카 르타로 다시 올라가게 됐다. 하숙집이 공장과 가까워서 그런지 시내와는 꽤 거리가 있다. 오토바이도 없으니 주말이 와도 종종 심심할 때가 많다. 수카부미는 조용한 작은 도시라 시내에 나가도 사실 볼거리가 그리 많지는 않다. 예전에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이...... 숨을 좀 돌려야지.”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아서 나만의 숨을 돌리 기 위해 자카르타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간 곳은 고양이 카페였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이 자주 생각나는데 디귿’처럼 하나의 글자 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따스한 롬복의 햇살과 공기가 나 를 감쌌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동생의 얼굴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누나!” 환하게 웃으며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자 또 온라인으 로 구매한 택배가 아직 도착 안 하면 처리 부탁 도 받는다. 가끔 인도네시아인들의 습관 롬복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s 아 증 의 코. 인 사 이 드 오랜 그리움을 참은 끝에 드디어 7개월 만 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휴가를 내어 잠들 지 않은 도시 생활의 소음을 벗어나 롬복 땅을 다 시 밟았다. 사람들은 롬복은 관광지라 하지만 롬복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 1 월이었으니 꽤 오랜만의 재회였다. 내가 자카르타 에 온 줄 몰랐던 동생들은 나를 보자 너무 반가워 하며 그리웠다고 류완수 영사 마음이 닿 아 있는 곳은 언제나 롬복이다. 가족의 축복과 사 랑을 가득 받으며 짧은 휴가를 마무리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마치 16살인 나를 본 것 같다. ‘강사’라는 직업은 내게 어둠 속에서 비춰준 빛과도 같다. 그래서 쉽게 그만둘 수 없다. 많이 벌 수는 없지만 막상 학교로 출발하니 긴장감이 밀려왔 다. 주차장에 도착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 속 에서도 설렘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험표를 받고 4층에 있는 15번 시험실로 올라 가려는데 매년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함께 기념하는 ‘한글날’. 외국인인 나에게는 한국어를 처음 배 웠을 때 외우기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 다. 한글은 ‘기역 먹는 모습 모국어가 아닌 한 국어를 공부했습니다.” “언어를 통해 더 맑은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의 열정과 진심이 고스란 히 전해졌다. 8년 전 무료로 제공하 는 웹사이트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출문제를 풀 어보며 공부했다. 모르는 어휘는 노트에 적고 그 어휘의 반대말 문서 등 번역 업무도 한 다. ERP 시스템 그리고 신발 공정 문화와 음식 질문 도 자주 받았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답답함을 해소할 누군가가 필요하겠지. 한국어로 말할 할 수 있는 통번역사라는 직업이 힘든 만큼 보람을 느낀다. 이제 사무실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힘겹지 만은 않 은 이유이다. 미디어 등에서도 많은 귀빈들 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대사관이 13년간 꾸준히 지원해 온 시상식은 앙 클룽 연주로 인도네시아 국가와 대한민국 애국가 로 청중에게 감동을 전하며 시작되었다. 시상식 은 <인도네시아 생태 이야기> <나의 한국 이야기 > <인도네시아 이야기> 순으로 진행되었다. 1부 사회는 이영미 아동문학가와 장대영 연구원 팀리 더가 반드시 성공한 여자가 될 거 라고 다짐했다. 이런 삶을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 은가.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 받침이 있고 없음을 이해 해야 한국어 문장을 읽을 수 있다. 2023년에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토픽 시험을 봤 다. 한국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과정 중 하 나였다. 토픽 관련 책이 없었지만 백현 오빠의 첫 월드투어 “Reverie” 소식을 듣고 신이 났다. 티켓팅 날 벌써 11월이 되었다. 9개월이라는 시 간이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갔다. 닥쳐오는 모든 일 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는 내가 흘린 웃음과 눈 물만큼 성장한 것 같다. 집에서 독립한 지도 어느덧 10개월이 되었다. 첫 독립 경험이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방 정리부터 빨래 비슷한 말 빛나던 백현이의 무대로 인생 첫 콘서트 경험 사람들이 “한국어 왜 공부했어요?“라는 질문 에 내 답은 딱 하나뿐이다. “10년 전에 엑소 좋 아해서 한국어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10년 전 사무실에서 아 수라장이 된 내 모습에 동료들이 빵 터졌다. 공연 장에서 오빠의 모습을 직접 볼 기회가 온다는 것 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8월 15일 퇴근 후 바로 땅그랑으로 갔다. 다음 날 16일 아침 사촌 모두 나를 반갑게 맞 아주었다. 자주 보던 얼굴인데 다시 모여서 이야 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가져온 수카부미 특산품도 함께 먹으며 우리는 웃 음꽃을 피웠다. 대학 동기들도 만났다. 한 친구가 얼마 전 출산 했다는 소식에 아기를 보러 집을 찾았다. 졸업한 지 3년 만에 친구가 엄마가 되었다니 믿기지 않 았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 게 다가왔다. 친구들이 나를 무척 보고 싶었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큰 도시에서 일하는 기분은 어떤지 사촌 언니와 함께 롬복 특산품 가게에 들렀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젤리를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샀 고 삼촌 상사나 동료들한테 물 어봐야지. ‘이거 어떻게 해요? 이렇게 하면 맞아 요?’라고. 넌 한국어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잖아. 너무 기죽지 마. 너 자신을 믿어봐.” 물론 지금은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다음 날엔 같은 롯데몰에서 열린 웅변대회도 관 람했다. “개인적인 즐거움을 넘어서 서로 놀 라며 반가워했다. 시험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 고 사진도 찍었다. 서로의 성공을 빌며 헤어졌고 서로 다른 삶을 이 야기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카르타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서로를 응원할 수 있어서 참 고마 운 시간이었다. 수카부미로 돌아가기 전 설거지 수상 소감에서 이방인들이 어려움을 나누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담았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의 앙클룽 연주가 끝난 뒤에는 2011 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만가요’를 끝으로 주인도네시아 한인회 한인 니문화연구원과 한인니산림협력센터가 주관하고 순서가 바뀐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온라인 강사를 하면서 2월부터 ERP(전사적 자원 관리)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 (주) 영림원이라는 한국 회사의 인도네시아 법인 신발 공장 에서 처음일해서 아직 공정을 잘 모릅니다.”라 고 대답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설명해 드릴게요. 아니면 현지인한테 물어봐요. 다들 일 한 지 5년에서 10년인 베테랑들이에요.”라고 말 씀하셨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2 나는 존재감으로 위로 받는다 《아증의 코-인사이드》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아 니면 직장?”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직장이지. 너 유학 장 학금도 세 번이나 지원했다가 떨어졌잖아. 이젠 돈도 벌고 아니면 너무 오래 서 있었던 건지 아무도 내 상황을 이해하지못한 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결국 아세안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아직 3층에 있다는 것을 착각해 직원에 게 “혹시 여기가 4층인가요?”라고 물었다. “아 니요 어휘와 문법은 그다음에야 공부했 다. 한글을 정확히 발음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 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글자가 다른 글자와 만 나면 발음이 달라지고 언어 언젠가 다시 찾을 그 바다 와 햇살을 기다린다. 엄마도 좀 도와주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떤 선택이 더 맞을 것 같아? 유학 엑소 백현 오빠의 자카르타 솔로 콘서 트를 처음으로 직관하기 위해 설렘 가득한 마음으 로 응원봉을 사러 간 거였다. 엑소 전체 콘서트는 아니지만 데뷔 10년 만에 엑소엘이 된 나에게 최 애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정말 기대되고 열정 예쁘게 화장하고 티켓을 교환한 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프 리비도 꽤 많이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 System Ever Indonesia 예술계 오빠 는 웃으며 “고마 워요”라고 답해 주었다. 아이돌과 팬들이 이렇게 서 로 응원하고 사랑 하며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콘서트 올해는 인도 네시아 친구들이 한국어로 한국 정서를 표현하는 <나의 한국 이야기> 문학상을 새롭게 출범시킨 《한인니문화연구원》사공 경 원장은 “문학상들 이 많은 단체의 후원과 한인 왼쪽 발에 쥐가 났다. 갑자기 음악이 크게 울리고 백현 오빠가 눈앞에 등장하자마자 “아 요리까지 스스로 해내며 소설 속 주 인공처럼 생활했다. 사무실에서 주재원님께 혼이 날 때면 ‘괜찮아. 넌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이잖아!’라고 스스로 를 위로했다. 동료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욕 심 같아서는 6급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를 나서는 길에 우나스(Universitas Nasional 우 리가 주역’이 <인도네시아 이야기>의 취지에 잘 부합한다고 말하며 이 번에는 사무실에서 한국인 직원들과 매일 소통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10월 19일 이곳 의 고양이들이 잠시나마 그 그리움을 채워줬다. 어릴 때부터 동물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입을 벌리며 말했다. 몸집 큰 댄서들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백현 오빠가 작아 보였다. 오빠는 하얗고 귀엽게 생겼고 이모 이어 인도네 시아 전통 공연 Tepak Kipas Koneng (Sanggar Mawar Budaya)이 펼쳐졌다. 국악사랑 팀의 선반사물놀이 공연으로 <나의 한 국 이야기> 시상식이 마무리된 후 익숙 한 풍경과 냄새가 무척 반가웠다. 오토바이가 멈췄다. 어렸을 때부터 매일 보던 익 숙한 대문 앞에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침내 엄 마가 나와서 내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안아주 셨다. “우리 딸 인도네시아인들의 참여로 발전했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제공: 한인니문화연구원)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이 다. 고급 어휘가 많이 나와 꽤 당황스러웠다. 그래 도 2년 만에 다시 시험을 봤다는 사실만으로 기분 이 좋았다. 현재 5급만 유지해도 다행이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이 해할수록 문학도 그 깊이와 감동을 더할 수 있다 고 당부했다. 《무궁화유통》 김종헌 대표는 “현지의 문화 자카르타 힐링 1박 2일 고향도 아닌 먼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응하는 게 쉽 지만은 않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잠깐 무궁화 마트에 들 러 장도 봤다. 나는 한국인은 아니지만 김치와 가 래떡은 냉장고에 쟁여두는 필수 재료다. 떡볶이나 김밥 정말 많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 대부분의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내 앞에 왔다는 건 정말 우리가 지금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빠가 퇴장하기 전 “행복하게 다시 만나요” 제13 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시상식을 모두 마쳤다. 해외에서 해외동포단체 주최로는 가장 오랜 기 간 지속된 한인 문학상은 <인도네시아 이야기>가 유일하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는 특히 축사와 기 념사가 더욱 빛났던 해였다. 《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이장근 대사는 BSJ 12학년 황다인 학생의 ‘글로벌 코리안 제가 좋아하는 사 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기라서 날씨가 매일 오후에 흐려서 마음 까지 쓸쓸해진 걸까. 이런 날씨일수록 따뜻한 사 람의 위로가 더 간절해진다. 애써 일에 집중하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세 계 최대 책 할인 행사 ‘빅 배드 울프 북 세일(Big Bad Wolf Book Sale)’에서 《이 다정함이 모여 아주 조금만 더 행복해지길》이라는 책을 샀다. 한국어 원본이 아닌 인도네시아어로 된 번역본이 라서 작가님이 책을 쓴 의도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고민과 걱정이 별일 아니라는 듯 공감 받는 느낌이 들며 위로를 얻었다. 사랑과 일에 대한 고민 조 금 부끄러웠다. 시험을 보며 느낀 점은 듣기와 쓰기는 2년 전보 다 수월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통해 성장하고 행복을 찾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국의 전 통 문화가 어우러지는 행사가 양국이 함께 즐기 는 축제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조준규 센터장은 첫 회부터 공동 주최해 온 <인도네시아 생태 이야기> 공모전을 3 회나 함께한 기쁨을 표하며 주변 에서도 “한국어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지 만 정작 나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 서 통번역사로서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여러 번 그런 말을 해도 주아세안한국대표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주인도네시아한인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노력과 과정을 되돌아 보게 한다. 한글날을 계속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진짜 CD를 삼킨 듯 목소리가 좋고 안정적이었다. 오빠가 메인보컬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책 없이 온라인으로 검 색하며 한글을 공부했다. 독학으로 공부하다 보 니 혼자서 헷갈리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럴 때는 유튜브에 들어가 한국인 채널을 보고 따 라 하며 연습했다. 한글을 완전히 외우는 데 약 1 년이나 걸렸고 첫 번째로 ACS Jakarta Dance팀이 K-Dance를 선보여 흥을 돋우었고 춤을 추 면서도 흔들림 없이 라이브를 소화하는 모습은 이 미 알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한다’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미니앨범 1집 “City Lights”부터 5집 “Essence of Reverie”까지 총 25개의 다양한 타이 틀곡과 수록곡을 멋지게 소화했다. 백현 오빠는 솔로 활동에서 꾸준히 알앤비 장르를 선보이며 ‘ 알앤비의 황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무대마다 에리들이 떼창하고 소리 지르며 함께 노래했다. 멋지게 몇 곡을 소화한 후 오빠는 멘트도 해주었다. “안녕”과 “사랑해” 라는 말을 반복하며 통번 역사는 또 다른 차원의 능력자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어학과 졸업생 아니었어도 용기를 내서 작년 7월부터 수라바야 한국 문화 센터에서 온라인 한 국어 강사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기초-중급 학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통번역사의 이야기 1 나의 첫 한국 회사 도전기 《아증의 코-인사이드》 윌루증 에라닝띠아스 (아증) 통번역사 통역 한 번만…” 사무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이다. 통 번역사로 일하고 있으니 통역 부탁받는 것이 나 의 일상이다. 자카르타에서 일하다 프로젝트 때문에 3월에 수 까부미로 내려왔다. 롬복 사람이지만 자카르타에 서 일을 할 때는 적응하기가 생각보다 쉬었다. 막 상 수까부미에 왔을 때 무언가 허전함이 있었다.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서일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도 일이지만 오히 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보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나에 게는 문서를 번역하거나 대화와 회의를 순차적으 로 통역하는 것이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그 래도 재미를 느낀다. “재미있는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 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통 역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현지 직원들의 눈 에는 통번역사의 역할이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 수월하게 보일 거다. 하지만 통번역사 입장에서는 재미있어도 통역 부탁을 받을 때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무슨 대화 의 내용을 통역해야 할까? 이번에는 양쪽의 대화 를 빨리 이해하고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믿고 대 화의 흐름을 따라서 한 문장씩 한 문장씩 순차적 으로 통역을 했다. 이해 못 하는 부분은 상대방에 게 재차 설명을 부탁하면서 천천히 이해보려고 했 다. 그래야 잘 전달할 수 있으므로. 가끔 두세 번 정도 설명을 듣고 나서도 아직 이 해를 못 하면 눈치를 준다. 한번은 회의에서 이사님 한 분이 “아증 씨 통역사 동료들을 위해서는 특별히 롬복 티셔 츠도 챙겼다. 점심은 롬복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예전’이라는 한식당에서 먹었다. 가게 이름 ‘예전’은 우리가 흔히 쓰는 ‘옛날’이라는 뜻 일까. 이름처럼 음식도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롬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다로 향했다. 바닷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통역하기가 힘들지? 처음에는 눈물이 많이 날 거 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네 특히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해 왔던 나에게 고양이들은 언제나 작은 활력소가 되 어 준다. 자는 모습 패션 디자이너이Harry Darsono 팬미 팅이나 팬사인회 때만 짧은 시간 안에 만날 수 있지만 폰이나 컴퓨터 화면으로만 엑소의 무대 를 볼 수 있었던 16살의 나는 한 가지 꿈을 꾸었 다. 언젠가 한국어를 배워 직접 공연장에서 그들 을 만나는 것. 그 꿈은 나의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 게 한 유일한 이유였다. “수많은 아이돌 중에 왜 엑소야?” 케이팝 팬분들이야 이미 알고 있지만 일반 사람 들은 모를 수도 있다. 아이돌 그룹이 많지만 가수 답게 노래를 잘하는 그룹은 사실 많지 않다. 그때 나는 러닝맨 프로그램에서 “으르렁” 무대를 하 는 엑소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노래를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아이돌이 있다는 걸 몰랐다. 특히 고음 파트를 부른 변백현이라는 멤버가 제일 눈에 띄었 다. 귀여운 댕댕이 얼굴에 성숙한 음색을 가진 백 현 오빠는 나의 최애가 되었다. 10년이 지나 올해 회사에 입사해 돈도 벌 수 있 게 되면서 한국국제교류 재단(KF)이 협력하며 한국국제학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좋아 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축복이 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 다. 나도 믿는다. 엄마는 늘 옳다.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 신이다. 나도 믿고 싶었다. 그런데 가끔은 머릿속 에 무서운 상상들이 떠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 함은 점점 커졌다. 25살. 나에게도 ‘오춘기’가 찾아온 걸까. 그 와중에 지방에서 수도로 이사하게 되면 혼자 살 아야 하고 한국어학과 입학시험에서 떨 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도 저 무대에 설 수 있 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 이 렇게 좋은 회사에서 한국어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 다는 게 그 자체로 한 장면의 대답이 아닐까. 참가자들 중에는 UNAS에서 아는 교수님과 학생 들도 있었는데 한인사회 모두가 이 문학상에 힘을 더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박수덕 공사 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처음 개최된 <나의 한국 이야기> 공모전과 같은 ‘변화의 시 도’가 양국 간의 우정을 한층 더 깊게 만들 것이 라고 말했다.《재인도네시아 한인회》박재한 한 인회장은 기념사에서 자신의 서툰 색소폰 연주 경 험을 비유로 들며 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원장 사공경)이 주최 한‘2024년 문학상 시상식 및 문화예술공연’이 9월 28일 오후 2시 Gedung Kesenian Jakarta에 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날 기념행사에는《주아세안 대한민국 대표 부》이장근 대사 해보 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계속하면서 행복했다. 다음에는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광야로 걸어가~ 알아 회사 통번역사 동료인 아이샤 힘 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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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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